소설리스트

전생검신-250화 (25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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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검마와 다시 장령곡으로 향했다. 장령곡주 제갈사가 되살아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가 묻힌 묘지에 가는 게 가장 빨랐기에, 황금비등을 시전하자마자 묘지 위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사방을 살폈는데 별다른 인기척은 없었다.

' 묘를 파 봐야 하나?'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쩌면 무덤 속에서 살아났기 때문에 관 안쪽에서 낑낑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뭐야...? 어째서 내가 여기 있는 거지?"

저만치 대나무 숲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목소리의 주인은 우리가 여기있는지를 모르는 듯 인기척 투성이였다. 나는 검마와 시선을 교환한 후 기척을 숨기며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대나무 숲 한가운데에는 제갈사가 서 있었다. 지금까지의 퇴폐적인 눈빛과 달리, 제갈사도 상당히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설마 반혼(反魂)의 비술인가? 하지만 내가 죽은지 몇 년이나 된 데다가 화장하고 뼛가루를 모조리 강에 버렸을 텐데... 그 상황에서도 반혼을 성공시킬 수 있는 건 대라신선 뿐이다."

그는 혼잣말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했다. 검마는 의념으로 자신의 기척을 숨기고 있다가 내게 눈짓했다. 나는 잠시 마음을 다잡고 제갈사 앞으로 걸어나갔다.

"살아난 기분은 어떠시오, 제갈사."

그러자 제갈사가 홱하고 내 쪽을 바라보았다. 제갈사는 내 기척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모양인 듯 더욱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냉정을 되찾고는 말했다.

"네가 나를 살려냈느냐?"

"그렇소만."

"술법은 초보로 보이는데 무슨 수로? 이건 도대체 무슨 술법이냐?"

나는 제갈사를 잠시 응시하다가 말했다.

"내가 그걸 알려줄 이유가 있나?"

"......"

제갈사가 눈을 꿈벅거리다가 대꾸했다.

"뭐 그렇겠지. 아무 이유도 없이 나를 살려내진 않았겠지. 내게 원하는 게 무엇이냐?"

"그건 내가 아니라 다른 분이 설명해주실 거요."

스윽

검마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옆에 나타났다. 제갈사의 눈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사람이 튀어나온 것으로 보였는지 그가 침음성을 흘렸다. 검마는 제갈사에게 포권을 한 후 말했다.

"반갑소, 장령곡주 제갈사. 나는 검마 서문대룡이라 하는 사람이오."

"......!!"

"그리고 이 쪽은 본문의 호법인 백웅이오."

검마가 인사하자 제갈사는 어이없는 표정, 황당한 표정, 질색한 표정이 동시에 섞인 얼굴이 되었다. 그러더니 상황을 파악한 듯 검마에게 말했다.

"당신들도 알다시피 나는 죽었었소. 이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서 죽기로 했던 것이오. 죽어서 저세상을 떠돌던 나를 함부로 불러내다니 당신들은 세상의 이치를 뭘로 아는 것이오?"

그 호통은 제법 준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검마는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거 안 됐군. 기왕 살아난 김에 열심히 살아보는 게 어떻소?"

"당신을 위해서?"

"그렇소."

그러자 제갈사는 음울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군. 나한테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찾아온 거지? 나는 고작해야 장령곡의 대장노릇이나 하고 있었던 형편없는 인간쓰레기요. 자기자신을 버티지 못해서 자살이나 한 한심한 놈을 뭐하려고 살려냈는지 모르겠군."

자기비하가 극심했다. 혹자가 듣는다면 제갈사가 이미 삶을 포기한 인간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과거 그를 만났을 때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라고 하는 걸 느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의 제갈사도 그 때와 다르지 않은 듯 했다.

검마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백 호법. 그걸 꺼내게."

"네."

이미 제갈사를 어떻게 설득할지는 이야기를 끝내놓은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죽고싶다고 발악을 해대는 저 미친 인간의 태도 앞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수를 꺼낼 수가 있는 것이다.

내 손에는 수요 막야가 어느 새 들려 있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막야를 쳐다보던 제갈사는 이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듯 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칠요(七曜)? 어떻게 네가 그걸..."

"백 호법은 칠요의 주인이지. 그대를 되살려 낸 것도 칠요와 관계있소."

"......!!"

"이래도 우리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 들지 않소?"

아니나 다를까 칠요가 눈 앞에 나타나자 제갈사는 죽느니 마느니 난리를 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극도로 고민을 하는듯 중얼중얼거리면서 막야를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한참동안 고민하던 제갈사가 말했다.

"좋소. 어디 한 번 어찌된 일인지 들어나 봅시다."

"한 가지 약속해줘야겠소."

"뭘?"

"당신이 하는 이야기에 거짓이 없을 것."

"좋소."

그리고 우리는 제갈사와 함께 장령곡의 안쪽 건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도왕 벽지상이 장령곡주로서 늘 대기하고 있을 게 분명했는데, 이상하게도 안쪽으로 들어가자 벽지상은 어디에도 인기척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수상쩍어서 제갈사에게 질문했다.

"도왕 벽지상이 없군. 어떻게 된 거요?"

"내가 아나? 오늘 되살아난 사람한테 별걸 다 묻는군."

퉁명스럽게 대꾸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그 녀석 걱정은 안 해도 되오. 우리 얘기나 합시다."

잠시 후 우리는 탁자에 마주앉았다. 제갈사는 우묵하면서도 퇴폐적인 특유의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당신들이 어떻게 나를 살려냈는가에 대해서 말해 주시오."

검마는 그를 마주보며 말했다.

"백 호법이 신이(神異)한 방법을 썼다는 것밖에 모르오. 아마 칠요의 힘이겠지."

제갈사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마의 말을 받았다.

"방법은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칠요 막야를 각성시켜서 특수한 힘을 손에 넣었소. 그리고 제갈사 당신을 살려줄 것을 문주님께서 요청했기에 받아들인 거요."

"흐음... 칠요의 각성이라... 이해 안되는 것도 아니군... 하지만 너무 엄청난 힘이지 않은가."

중얼중얼거리는 제갈사의 얼굴에는 얼핏 탐욕이 스쳐지나갔다. 보나마나 칠요를 탐내는 게 분명했다. 내가 그를 경계해서 칠요를 뒤로 숨기자, 제갈사가 입을 열었다.

"뭐 그렇다 칩시다. 그럼 당신들은 나를 책사로 받아들이기를 원한다는 거요?"

"그렇소."

"그 이유는? 자랑은 아니지만 나는 천하에 한 번도 내 능력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었고 친지혈육과 연을 끊고 살았소. 뜬금없이 사파제일고수가 나를 되살리면서까지 영입하겠다고 찾아오는 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데."

제갈사의 말이 일리가 있다 생각했는지 검마가 대답했다.

"중원지보(中原之寶) 제갈부에게 대항할 수 있는 게 당신뿐이기 때문이오."

"......"

"내가 알기로는 당신들 제갈 일족은 천문관의 일족으로써 제갈공명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다고 알고 있소. 그리고 당대에 손꼽히는 일재가 바로 제갈부이며 당신 또한 그에 견줄만한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알고 있소."

제갈사는 인상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제갈부와 싸운다고? 당신은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거요? 황궁을 쓰러뜨리겠다는 소리라도 하려는 건가?"

"그 정도가 아니면 내가 여기까지 찾아왔겠소?"

"......"

제갈사는 침묵했다. 검마의 표정이 진심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그러더니 난데없이 즐거워보이는 표정을 지었다.

"크큭, 재밌군.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이 없었는데 이런 재미도 생기는 건가."

"어쩌시겠소."

"좀 더 들어보고 결정하려 하오."

단호하게 말한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내가 당신들에게 도움이 된다 칩시다. 그럼 황궁을 쓰러뜨리려는 이유가 무엇이오? 황제를 쓰러뜨리고 새로운 황제가 되려고 하는 것인가?"

검마는 그 질문에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전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황궁에 숨어있는 마(魔)를 토벌하는 것이오. 죄없는 민초들을 약탈하고 인신공양하여 [옛 지배자]의 힘을 빌리는 사악한 무리를 척결하려는 것이오."

"허... 당신은 정말 많은 걸 알고 있군. 설마 무림인이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제갈사는 놀란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확실히 그 일을 이뤄낸다면 천하에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대영웅이 될 것이오만..."

"무슨 문제라도 있소?"

"당신이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군. 당신은 가만히 있어도 사파의 영도자이자 제일고수로서 천하에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 않소? 뭐하려고 그런 초강적과 싸우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그러자 검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그건 내 생각이 아니라 백 호법의 생각이오. 백 호법은 본문에 큰 도움을 주었기에, 나도 힘닿는 데까지 그를 도울 생각이오."

"호오."

제갈사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잠시 나를 훑어보다가 말했다.

"칠요의 주인이여. 왜 황궁과 싸우려는 거지?"

"그놈들은 나쁜 놈들이오."

"그게 전부인가?"

나는 제갈사에게 그리 좋은 감정이 없었기에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오? 내가 알아서 쫄아있기를 바라시오?"

그러자 제갈사가 껄껄 웃었다.

"크하하하! 아니. 그냥 나만큼이나 미쳐있는 놈이 또 있었구나 싶다."

"......"

정말 속이 배배 꼬인 인간이다. 분명히 제갈사의 마음에 든 건 확실한데 저게 칭찬인지 욕인지 애매했다. 혹은 어느 쪽도 아닐 수가 있었다. 제갈사는 한동안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냉정해져서는 말했다.

"받아들이지. 나는 검마 서문대룡 당신을 주군으로 삼아서 살아갈 것을 맹세하겠소."

"잘 생각했소."

"지금부터는 하대를 하셔도 됩니다."

"그러지."

제갈사의 영입에 성공한 듯 했다. 제갈사는 잠시 무릎을 꿇어서 검마에게 군신관계를 확실히 한 후, 입을 열었다.

"내게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십시오."

"제갈사. 자네는 왜 자살을 했는가?"

"말씀드렸듯이 나 자신의 운명(運命)을 버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거역할 수 있는 천명도 아니었고."

검마는 그 말을 듣자 뭔가 위화감을 느낀 듯 했다. 그래서 잠시 생각하다가 질문했다.

"자네는 오래 살려고 해도 요절할 운명이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살고자 했다면 태산부군제같은 연명의 술법으로 수명을 늘릴 수 있지 않았는가?"

검마의 말에 제갈사는 의외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주군께선 술법에 대해 많은 걸 알고 계시군요."

"이 또한 백 호법에게서 전해들은 거라네."

"뭐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피할 수 없는 천명이라면 피하지 않기로 한 겁니다. 이 세상에 미련도 없었기에 그냥 죽기로 한 거죠. 어차피 연명술로 수명을 늘여도 한계가 있으니까 뒤틀어보려고 한 겁니다."

"뒤튼다라?"

"이 이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제갈사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벽지상에 대해서도 알고 계신 듯 한데, 그녀는 저와 계약관계입니다. 제 처소를 관리하고 돌봐주는 대신에 제 사후 장령곡을 맘대로 할 수 있도록 넘겼습니다. 그러니 벽지상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캐내는 건 좋지 않습니다."

"무슨 의미인가?"

"저와 그녀는 그저 협력관계일 뿐입니다. 그녀의 기휘를 침범하면 재앙이 닥칠 겁니다."

얼핏 제갈사는 대답할 건 다 대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전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뭔가를 숨기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 뭐, 만나자마자 자신의 비밀을 다 털어놓는 게 더 이상하겠지...'

지금으로서는 제갈사의 흥미를 끌어서 아군으로 만들었다는 게 중요했다. 검마도 그 사실을 인식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우선 우리는 무영문으로 돌아갈 생각이네. 따라오게."

"잠시 제 물건을 챙길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얼마면 되겠나?"

"반 시진이면 족합니다."

우리는 제갈사의 말대로 반 시진동안 앉아서 기다렸다. 한참 후 제갈사는 자신의 서재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다 나왔는데, 새하얀 보따리 안에 자신의 짐을 넣은 모양이었다.

"이제 가시죠."

"도왕 벽지상은 지금 자리를 비운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안해도 되겠나?"

"편지를 남겨뒀습니다. 그녀라면 다 이해할 겁니다."

"그럼 가지."

파앗!

우리는 제갈사와 함께 무영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검마는 약 반 시진동안 제갈사에게 현재 무영문이 처한 상태와, 내가 그동안 중원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백련교나 황궁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정보도 알려주자, 제갈사의 표정이 갈수록 심각하게 변했다.

한참 후 제갈사가 말했다.

"지금 상황에서 최고의 계책이 생각났습니다."

"무엇인가?"

"암살입니다."

망설임없이 제갈사가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 저와 함께 제갈부를 죽이러 가면 됩니다. 그럼 앞으로의 일은 매우 쉬워질 것입니다."

"......"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나는 제갈사의 말을 듣고 있다가 황당해서 말했다.

"당신은 제갈부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시오? 무공은 초절정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데다가 보패 백우선을 이용해서 다중술법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괴물이오. 게다가 황궁에 결계가 펴져 있으면 무적에 가깝소. 그 자를 어떻게 단숨에 죽인단 말이오?"

그러자 제갈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면 안다. 비등으로 나를 황궁으로 데려다주기만 하면 돼."

"잠깐. 그런데 왜 당신은 내게는 반말을 쓰는 거요?"

"엥? 나는 검마를 주군으로 모셨는데 니가 뭐라고 존댓말을 해줘야 하냐?"

"......"

내가 울컥해서 한마디 하려 하자 검마가 손을 내저었다.

"그만. 백 호법의 말이 일리가 있네. 대관절 어떻게 제갈부를 죽이겠다는 건가?"

"놈은 완벽한 천재로 보이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으니 말입니다."

"치명적인 약점?"

제갈사가 말했다.

"놈을 이용하는 게 아니라 죽이려 한다면 여반장입니다."

잠시 후 제갈사가 어떻게 제갈부를 죽이는지 설명했다.

"확실하겠군."

그 말을 듣고 납득한 검마는 나에게 황금비등을 사용할 것을 주문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황궁의 심처에 있는 내황각으로 향했다.

파앗!

우리 세 명은 가면을 쓴 채 황궁 내황각 내부에 나타났다. 날이 어두워져서 내황각 내부는 촛불을 켜지 않으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갈사는 제갈부가 곧 쫓아올 것이 두렵지도 않은지 어정거리며 느긋하게 책을 하나하나 뽑아서 자신의 흰 보따리에 구겨넣었다.

잠시 후 커다란 빛줄기와 함께 내황각주 제갈부가 우리 앞으로 전이술을 써서 나타났다. 제갈부는 노한 기색으로 우리를 노려보다가 외쳤다.

"또 침입했구나 도둑놈들! 용서하지 않..."

그 때였다.

제갈사가 제갈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터져라 고(蠱)."

퍼엉!

"...... 쿨럭..."

그 순간이었다. 조그마한 폭발과 함께 제갈부의 심장부근에서 뭔가가 터졌다. 제갈부는 상반신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로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술법이고 뭐고 펼쳐볼 틈도 없이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 저건... 화서명이나 동방무결도 못 살려...'

나는 의술을 배웠기에 제갈부의 상세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심장이 터져버리고 근처의 장기들이 몽땅 훼손되어버렸기에 대라신선이 오지 않는 이상 살릴 수 없었다.

제갈사는 바닥에 누워서 꿈틀거리는 제갈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안녕, 우리 조카. 오랜만이야."

"... 제... 제갈사..."

"내가 제갈일족을 떠날 때 생각해 보니까, 너는 참 거슬리는 놈이더라고. 그래서 송별식사에서 내가 특별히 배교의 비술로 폭발형 고독을 넣어뒀다."

"......!!"

제갈부가 눈을 부릅뜨자 제갈사가 킬킬 웃었다.

"심심풀이로 해놓은 게 쓸모있을 때가 있군."

퍼억

제갈사가 내공을 실은 발길질을 하자 제갈부의 머리통이 떨어져서 날아가 버렸다.

순식간에 황궁 최대의 장애물 중 하나인 제갈부를 없애버린 제갈사가 말했다.

"어이 백 호법. 여기에 있는 책들 전부 목갑에 쓸어담아."

"왜 명령질이오?"

내가 투덜거리자 제갈사가 어깨를 으쓱였다.

"꼬우면 너도 머리 쓰던가."

"......"

나는 별 수 없이 목갑에 열심히 내황각의 책을 쓸어담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업을 하면서 나는 제갈사에게 기가 질렸다.

' 조카를 해치워놓고 표정 하나 안 변하는군.'

확신할 수 있다.

제갈사는 망량과 다르다.

저 자는 인간의 도리같은 걸 완전히 무시하는 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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