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49화 (24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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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와 검마는 우선 흑야문의 비전절기와 비급이 숨겨져 있는 장소로 향했다. 과연 흑마가 목숨걸고 말한 정보는 진실이었는지, 그곳에는 흑야신공(黑夜神功)을 포함해서 흑월장(黑月掌), 흑월검법(黑月劍法) 등이 수록된 비급이 있었다. 나는 무공의 이름을 보자 황당해서 중얼거렸다.

"전부 흑월이 붙어있군요. 살수문파에 제대로 된 무공비급이 있는것도 놀라운데..."

살수라고 하는 건 원래 무공이 낮은 직종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강호에서 일반적으로 청부할 수 있는 살수들은 일류 수준의 무공을 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이렇게 정식비급이 존재하며 살수문파내에 초절정고수나 절정고수가 존재하는 게 도리어 이상한 일인 것이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야. 내가 알기로 흑야문도 과거에는 은둔해서 무공을 수련하는 정식문파였네. 그게 어느 순간부터 청부문파로 변질되었을 뿐."

"흐음."

"흑마의 무공이 팔마 중에서 제법 높은 편인 것도 그 때문이지."

내 의문을 풀어 준 검마가 말을 이었다.

"이 무공들은 소장할 만 하네. 자네는 이 위치를 잘 알고 있게."

"네."

검마가 소장가치가 있다고 평가한 걸 보면, 흑야문 또한 원래는 무술의 명가(名家)였으리라. 나는 이 장소를 잘 외워두었다. 나중에라도 혹시 찾아오면 흑야문의 비급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후에 흑마의 직인을 가져가서 대백전장을 찾아갔다. 그 곳에는 흑마가 모아왔던 알토란같은 금괴를 비롯해서 온갖 집문서와 땅문서가 보관되어 있었다. 적어도 은자 수천 냥에 이르는 가치의 재산을 가지고 나오는데 성공하자 검마가 말했다.

"금괴는 그렇다치고 집문서나 땅문서는 어쩌는게 좋을까?"

"문주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나야 전부 금으로 환원해서 고려로 가져가고 싶지. 헌데 자네가 쓸 일이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는 것일세."

"음..."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는 대답했다.

"흑마가 괜히 산 곳이 아닐 것 같습니다. 좀 더 연원을 알아봐도 좋지 않을까요."

"땅투기 용으로 산 게 아니라 살수문파의 운영에 필요한 땅이라는 건가?"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긴 그렇겠군. 그 음흉한 놈이 돈벌이만 하려고 땅을 샀을 리가 없지. 그건 좀 알아보도록 하지."

검마는 납득하고는 말했다.

"앞으로 자네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따라서 나머지도 재산이 될 수 있네."

"새끼살수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흑야문은 현세대 살수들이 은퇴하거나 사망할 경우를 대비해서 10~15세 내외의 고아들을 모아서 살수로 양성하고 있었다. 흑마는 죽기 전에 그 양성장소를 우리에게 말해 준 것이다.

"그렇네. 강호인들은 도의적으로 살수를 배제하지만, 향후 몇 년 내에 전력이 될 수 있는 살수들을 보유한다는 건 큰 이득이니까."

"......"

검마는 넌지시 내게 살수문파의 주인이 될지를 묻고 있었다. 현재 우리는 새끼살수들을 키우는 훈련소의 장소를 알고 있기에, 거기서 교관을 제거하거나 포섭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뇨, 그들에게는 양지를 걷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래? 자네가 그 새끼살수들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할 이유는 없을텐데... 여전히 살수나 소모품으로 쓰더라도 그들은 자네를 원망할 생각조차 못할 걸세."

검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고아로 태어나서 한평생 살수로 키워지는 자들은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힌 셈이었으므로 그저 위의 명령에만 복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제가 앞으로 상대할 자들은 살수의 힘이 있어봤자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섣불리 갖고놀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생각한다면 오늘 내로 정리하도록 하지."

"네."

파앗

우리는 새끼살수들의 훈련소로 갔다. 그리고 살수들을 훈련시키는 교관을 찾아내서 일 초만에 제압하고는 말했다.

"비혈검(泌血劍). 흑마는 죽었다."

"......"

검마의 말에 살수교관 비혈검은 이를 꾹 다물었다. 그는 일류살수라서인지 섣불리 일희일비하지 않는 듯 했다. 검마는 잠시 그에게 흑마의 직인을 보여준 후 말을 이었다.

"불문곡직하고 네 목을 벨 수도 있지만 일단 살려두겠다. 한 식경 내로 새끼살수들을 모두 모아서 여기로 와라."

"당신들이 우리를 몰살시키려는 게 아니란 걸 어찌 믿을 수 있소?"

검마가 코웃음쳤다.

"웃기는군. 너는 내가 누군지 알고 하는 말이냐?"

"당신이 누구요?"

"나는 검마 서문대룡이다."

"......!!"

"흑마도 내게 십초지적이 되지 못했다. 내 이름을 걸고 죽이지 않을 테니, 까불지 말고 당장 모아와."

비혈검은 믿기지 않는 눈으로 검마를 쳐다보았으나, 이내 검마가 이기어검으로 나무 열 그루를 한 번에 베어버리자 입을 벌렸다. 그로써는 상상도 한 적 없는 사파제일고수의 무위를 보았기 때문이리라. 그러더니 상황을 파악한 후 비혈검이 어디론가 뛰어갔다.

잠시 후 비혈검이 새끼살수들을 모두 모아왔다. 이 곳은 인적이 드문 산야였기에 곳곳에 지어진 오두막에서 생활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새끼살수들 뿐만이 아니라 두세 명의 교관급 살수들도 함께 찾아왔다.

검마 서문대룡이 말했다.

"흑야문은 끝났다. 그리고 너희는 흑마가 남긴 재산이니, 내가 인도받도록 하겠다."

교관급 살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는 듯 했다. 그러더니 비혈검이 대표로 나와서 말했다.

"이대로 계속 양성을 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다. 너희는 오늘부로 무영문의 소속이며 무공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

"말해두겠지만 무영문의 문도로서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 자리에서 즉결처형하겠다. 각오가 된 자만 손을 들어라."

그러자 교관급 살수들과 새끼살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는 듯 했다. 잠시 후 그들은 전원 손을 들었다. 거역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걸 검마가 이미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반강제로 동의를 얻은 검마는 흡족하게 웃었다.

"좋아."

나는 그들 전원을 목갑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검마 서문대룡에게 말했다.

"새 문도 26명이 생겼군요."

"마침 잡일할 아랫놈들이 부족하던 참일세. 중원에서야 하부문파를 거느리며 살았지만 고려에 오니 눈치가 보여서..."

그렇게 중얼거리던 검마가 말했다.

"그럼 이제 흑마의 재산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세."

나는 검마와 함께 며칠간 각지의 전장을 돌아다니면서 흑마의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흑마가 중원 각지에 사둔 전답과 건물만 해도 엄청난 규모이며 일개 성의 제일거부에 맞먹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수상쩍어하던 흑마의 의도 또한 알 수 있었다.

검마는 기가 막힌 듯 말했다.

"이 미친 놈... 그냥 돈 모으는 재미로 살았구나!"

"......"

"어떻게 왕야의 정원을 살 생각을 하지?"

그랬다.

알아보니 의도고 뭐고 없었다. 그냥 흑마는 청부업으로 벌어둔 돈을 알토란처럼 모아두던가 어딘가의 건물을 사들였을 뿐이다. 하루하루 불어가는 자신의 재산을 재미나게 지켜보는 게 아마 흑마의 낙이었으리라. 게다가 황제의 친족인 왕야가 소유하고 있던 거대정원마저도 돈을 내서 본인에게서 직접 사들인 걸 보면, 돈지랄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청부업이 이렇게 돈을 많이 번단 말입니까?"

"흑마는 그래봬도 중원 최고의 살수였으며 흑야문도 최고의 청부문파였지. 정사파를 막론하고 쉴새없이 일거리가 쏟아졌을텐데 돈을 못 벌면 이상하지 않나? 하물며 청부금액도 굉장히 비싼 편인데."

"으음..."

"일개 평민이 흑야문에 청부하려고 하면 살림이 거덜나지."

순간, 나는 과거에 촌장이 나를 죽이려고 돈을 써서 흑야문에 의뢰했던 게 생각났다. 그 당시에는 그저 죽은 게 억울해서 별 생각을 안 했는데, 나름대로 마을의 지배자이자 폭군이었던 촌장도 사람 하나를 죽이려면 엄청난 돈을 써야만 했던 것이다.

나는 문득 궁금한게 생각나서 검마에게 질문했다.

"정말로 흑마가 중원 최고의 살수입니까?"

"음? 그건 무슨 뜻으로 질문하는 거지?"

"그냥 궁금해서..."

"아하. 흑마 따위가 살수의 한계인지가 궁금한 거군."

검마는 큭큭 웃더니 말했다.

"물론 아닐세. 중원 최고의 암살자가 흑마일 리가 없지."

"네?"

"무림에 은밀히 떠도는 소문이 있네. 무살(無殺)의 경지에 이른 궁극의 암살자가 존재하며, 그 문파는 일인전승(一人傳承)이라고 하지. 한때는 그 암살자가 흑마인가도 했지만 놈으로써는 턱없이 불가능이야."

"무살이라고요? 죽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암살자라고 할 수 없는데..."

"그게 아닐세. 아무것도 죽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을 죽여버릴 수 있는 사신(死神)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네. 살아있다면 뭐든 죽일 수 있다는 말을 뒤집어놓았다고 할까."

무살의 경지!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시키는 말이었다. 나는 검마의 말 뜻이 이해되지 않아서 반문했다.

"그건 말 그대로 꿈같은 소리 같습니다. 그런 암살자가 정말로 존재할까요?"

"나는 존재한다고 믿네."

검마는 팔짱을 낀 후 말을 이었다.

"... 왜냐하면 본문의 사조(師祖)께서도 그 사신을 만난 적이 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네."

"......!!"

"그 존재는 암살자답지 않게 오로지 자신의 원칙에 따라서만 움직이며, 거대한 대의(大義)를 위해서 암살을 한다더군. 또한 그 어떤 초절정고수라고 해도 그 자의 손에서 목숨을 지켜낼 수 없다고 하더군."

놀라운 일이었다.

사신을 방불케 하는 전설의 암살자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내가 놀라서 입을 벌리자 검마가 피식 웃었다.

"뭐, 무려 3대 전의 일이었으니 당대에는 그냥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일인전승이니 전승이 끊겼을 수도 있고. 확실한 건 크게 의(義)를 그르치지 않는다면 결코 그 존재의 표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일세."

"그렇군요."

"잡설은 이 정도로 하고 이만 중원으로 돌아가지. 이 정도 규모의 재산이라면 하루아침에 처분할 수는 없겠어."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 무영문이 지금까지 사파에 속하긴 했어도 극악한 행동을 하지 않은 이유는 그 무살의 사신 때문이 아니었을까?'

극악한 행동을 할 수록 사신의 표적이 되기 쉬워진다.

그 말은 달리 말하자면 정도만 지키고 살아가면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검마가 사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일수도 있다. 하지만 직접 검마에게 물어볼만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마음속에만 묻어 두었다.

우리는 당장 26명을 먹여살릴 금전적인 여유가 필요했으므로 5개의 건물을 매각하고 그걸 모두 금괴로 바꾼 후 고려로 돌아왔다. 그리고 교관급 살수들과 새끼살수들에게 신입 무영문도로 받아들이는 의식을 치른 후, 그들이 지니고 있던 내공을 무영문의 내공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거쳤다. 변환율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살수의 무공에는 한계가 있었으므로 장기적으로는 그들에게 좋을 게 분명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자 무영문은 순식간에 세가 커지는 듯 했다. 고수의 수가 많긴 해도 소수정예라는 게 약점으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새로운 문도 영입으로 그 단점이 해소된 것이다.

검마는 그로부터 약 칠 주야동안 문파를 정비하고는 내게 말했다.

"그럼 슬슬 가 보게."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탈출하게."

"......"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속으로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하튼 해야할 일이었으므로 나는 일단 중원으로 향했다.

파앗!

태산 근처의 칠살마을로 이동한 나는 곧장 촌장에게 찾아갔다. 여전히 천민처럼 거지꼴을 하고 있는 건강한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촌장에게 찾아가서 대뜸 까만 목패를 보여주었다.

"자. 목패를 가지고 왔소."

"오오... 오오오...!!"

지팡이를 짚은 촌장이 깜짝 놀랐다. 그러더니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이보게... 신객(神客)이 오셨네!! 모두 맞이하세."

"오오...!!"

그러자 꾀죄죄한 꼴로 먹고살고 있던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몰려들더니 남녀노소 할것없이 다같이 이상한 춤을 췄다. 율동을 맞춰서 손뼉을 치며 춤을 추는 모습이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허이~ 허이~ 허이~"

"아~싸~ 아~싸~"

나는 그들의 원진에 갇혀서 가만히 그들의 춤을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그저 우스꽝스럽게 느껴졌지만, 사실 이 칠살마을 사람들 하나하나가 전부 이족(異族)인 개인간이며 이 춤도 이족의 의식이라는 걸 알면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 때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 #&%^**~~ @$^&@&~~"

"......?"

뭔가 이상하다. 그저 허이허이 아싸아싸 거리던 그들의 언어가 뭔가 [다른 것]으로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처음에는 영문모를 괴어(怪語)처럼 들렸지만, 이내 명확한 의미를 가진 다른 말이 섞여서 들렸다.

보냅니다

보냅니다

우리의 신이여

위대한 자여 우리의 공물을 받아주소서

갈수록 이 주언(呪言)이 명확하게 들렸다. 나는 그제서야 칠살마을 사람들이 춤추며 부르는 노래가 사실은 괴어(怪語)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인간의 말에 섞어서 교묘하게 파장을 내뿜고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은 알아들을 수 없을 뿐이었다.

이윽고 춤이 끝나자 촌장이 말했다.

"신객이시여. 어디서 어떻게 목패를 얻었는지, 누구한테 얻었는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단지 목패를 가지고 오신 이상, 저희는 최선을 다해 신께로 인도해드릴 뿐입니다..."

나는 물끄러미 흰색 나무를 쳐다보았다.

"저 나무 밑으로 가면 되겠군."

"헉... 그걸 어떻게...!!"

웅성

칠살마을 사람들이 당황했다. 나는 그들을 지긋이 쳐다보고는 말했다.

"내가 [그]를 만나러 가기 전에 한 가지 묻겠소."

"......"

"만일 내가 당신들을 운명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면, 당신들은 내게 무엇을 보답하겠소?"

마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내가 칠살마을의 비밀을 상세하게 아는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방금 전까지 멀쩡하던 촌장은 사시나무 떨듯 떨다가 말했다.

"다... 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설마 [위대한 자]이십니까?"

"아니오. 나는 인간이오. 단지 특수한 힘을 가졌을 뿐이지."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말했다.

"다시 한 번 묻겠소. 내가 당신들의 운명을 해방시켜 준다면 당신들은 내게 무엇을 해 주겠소?"

"......"

웅성웅성

그들은 뭐라고 괴어로 지껄이는 듯 했다. 나는 아직 그 정도 괴어를 해석할 능력이 되지 않는지 그저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몰려들어서 뭔가 격렬하게 토론을 하더니, 한 식경 후에 내 앞에 촌장이 걸어나와서 말했다.

"저희는 당신을 영혼의 주인으로 섬길 것입니다. 평생 복종할 것이며, 저희 부족이 지니고 있는 최대의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소. 그 말을 결코 잊지 마시오."

파앗!

내가 백목 아래에 서자, 천지가 진동하는 기분이 들었다.

잠시 후 주변 공간이 뒤바뀌면서 나는 요상한 이계(異界)에 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엄청나게 울창한 수림은 그 크기가 몇십 장이나 되었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마물들이 여기저기에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바로 이 곳이 암천향이었다.

나는 이미 이 곳에 와본 적이 있었기에, 침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따로 마물들이 인도하지 않아도 어디로 가야 [그]를 만날 수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쿠구구...

거대한 무언가가 유폐되어 있었다. 몸뚱이의 크기가 수십 장을 훨씬 넘는, 검정색의 박쥐날개가 달린 촉수덩어리가 거대한 협곡의 한가운데에 몸을 누이고 있는 것이다.

그 촉수덩어리는 마치 여인의 유방과도 같은 것을 무수히 몸뚱이에 달고 있었다. 그리고 거대한 촉수덩어리의 유방에, 아까 보았던 얼굴없는 박쥐가 달라붙어서 마치 아기처럼 빨고 있는 중이었다.

그 존재를 다시금 맞닥뜨리자, 예전에 느꼈던 거대한 압박감 대신에 되려 친밀함이 느껴졌다. 저 존재를 만나는 건 이번이 2번째인데 압박감이 한결 줄어든 것이다.

그 존재는 나를 응시하는 듯 하다가 말했다.

[ 나의 부름이 없어도 나를 느끼고 찾아온 것인가? 넌 아주 재밌는 존재다.]

그 말투에서 느껴지는 건 '호기심'이었다. 나는 정중하게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마음 속으로 말했다.

[ 옛 지배자시여. 저는 당신의 권능을 빌리고자 암천향에 찾아왔습니다.]

[ 말하라... 나에게 주어진 반전(反轉)의 권능으로... 삶을 죽음으로... 죽음을 삶으로 바꿀 한 번의 권리를 주겠노라... 그 누구라 할지도... 이 권능을 피할 수는 없다...]

[ 그건...]

나는 마음속으로 말하려다가 멈칫하고는 질문했다.

[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말하라...]

[ 당신의 권능으로... 흉신(凶神)이라 불리는 존재를 죽음에 빠뜨릴 수 있는지요?]

[ ......]

그 존재는 잠시 박쥐날개를 파닥거리다가 말했다.

[ 그건 다른 문제이다... 르 뤼에의 지배자... 그 존재는 혼돈의 직계... 태초부터 삶도 죽음도 존재하지 않는 초월자... 그 자에게 반전의 권능을 적용시키는 것은 법칙으로 불가하도다.]

[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 존재는 무언가 우스운 듯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 너는 칠요로 초월자들에게 대항하고자 하는가... 그 또한 재밌는 일...]

상대는 내 마음을 읽어낸 모양이었다. [옛 지배자] 다운 초능력이었다.

[ 불가능합니까?]

[ 가능하다...]

긍정이긴 했지만 뭔가 찝찝함을 남기는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털고는 말했다.

[ 제갈사 라는 인간을 되살려 주십시오.]

[ 좋다...]

옛 지배자의 몸에서 촉수가 꿈틀거리며 뻗어나오더니, 허공 한 부분을 짚었다. 그러자 무언가 연기같은 것이 허공에서 흘러나왔다. 옛 지배자는 그 연기를 불어서 어딘가로 날려보내 버렸다.

[ 되살렸다...]

[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딱히 공포도 느껴지지 않아서 무덤덤하게 부탁했다. 그러자 옛 지배자는 의외라는 듯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말해라...]

[ 당신을 모시는 봉사종족들을 굴레에서 풀어 주십시오. 인간 세상에 맞지 않는 듯 합니다.]

[ 아주 쉬운 일이지...]

이윽고 그 존재가 웃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 너는 내킬 때 이쪽으로 오너라...]

파앗!!

잠시 후 나는 칠살마을에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길!"

시체가 널려 있다.

그것은 모조리 개 인간들의 시체였다. 본질로 되돌아가서 죽어있는 그 개인간들은 틀림없이 살아생전에 칠살마을 사람들이었으리라. 옛 지배자의 권능에 죽은 게 틀림없었다.

' 굴레에서 풀어달라는 걸 죽이라는 걸로 이해한 건가?'

죽음으로써 그들을 삶의 굴레에서 해방시켰다는 해석인 듯 했다.

' 정말 제멋대로군... 그래서 신인가.'

내게는 호의적인 듯 했지만 역시 [옛 지배자]라는 건 혼돈 그 자체인 무서운 존재였다.

나는 개 인간들을 땅에 묻어주고는 중원으로 되돌아갔다.

내게서 경과를 들은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가 보세. 되살아난 제갈사를 만나봐야지."

그렇다.

옛 지배자의 권능은 바로 반전의 권능!

산 자를 죽게 만들 수도 있고, 반대로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도 부활용으로 써볼까 싶었지만 이제야 제대로 써먹어보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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