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8 ----------------------------------------------
천계(天界)
이광과의 대련이 끝나고 며칠 후, 검마가 내게 말했다.
"잠깐 짚고 가야할 게 있겠군."
검마는 나를 비밀리에 부른 자리에서 말했다.
"백웅. 자네는 황궁과 앞으로 어떻게 싸우려는 생각인가?"
"......"
그간 생각은 해 오고 있었지만 껄끄러워서 넘어가고 있었던 문제가 나왔다. 나는 침음성을 흘리다가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왠만한 이변이 없는 한 지켜볼 것 같습니다. 황궁과 싸울 생각은 현재로써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나는 검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첫째는 이미 때가 늦었다는 것입니다. 황궁에서는 이미 연금술사의 힘으로 마인(魔人), 용인(龍人), 초상기인(超上奇人)같은 특수한 병사들을 양산했을 겁니다. 대라신선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한 지금 제 힘으로 그 자들을 어떻게 하는 건 무리입니다."
"흐음. 또 하나는 뭔가?"
"이렇게 힘이 미치지 않는 상태에서 공연히 황궁에 대적하면 문주님과 무영문이 위험해지게 됩니다."
나는 진심을 털어놓았다.
내가 예전부터 전생하자마자 죽기살기로 황궁에 덤벼들었던 이유는, 초기라서 승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생 후 십여년이 다되어가는 지금 황궁의 세력이 극도로 강력해졌기에 그런 승산을 점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 갓 십이율에 진입한 검마와 무영문에도 큰 폐를 끼치는 일이기 때문에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검마는 그 대답을 듣자 한참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보도록 하지. 그럼 자네는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으로써는 전생 초기에 황궁을 초전박살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야. 자네는 문제의 핵심을 짚고있지 못해."
"네?"
검마가 나를 고요히 응시하더니 말을 이었다.
"자네가 설령 힘을 키워서 황궁을 전생초기에 초전박살을 냈다고 가정해봅세.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황궁을 조종하는 흑막인 복마전의 음모를 막았다고 할 수 있을까? 또한 인간세력을 쓸어봤자 고대신의 사도인 달기와 고대신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일세."
"음... 그렇겠죠..."
"나는 어쩐지 자네가 지금까지 [황궁]이라는 것에만 집착해왔기에 실패해 왔다고 생각하네. 그건 아마 자네의 동료였던 망량의 영향이 컸겠지."
검마는 무슨 말을 하고싶은 것일까?
내가 검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검마가 말했다.
"최대의 적은 황궁이 아니라는 말일세. 이해 못하겠나?"
"황궁이 아니면 누구란 말씀이십니까?"
검마는 팔짱을 끼며 단호하게 말했다.
"신(神)!"
"......!!"
"궁극적으로는 [옛 지배자]라고 불리는 고대의 괴물들을 물리쳐야 하는 게 바로 자네의 승리조건이란 말일세."
나는 그의 말에 놀라서 눈을 껌벅거렸다.
[옛 지배자]!
더러는 암천향에 거하고 있으며, 인지(人知)를 한참이나 뛰어넘은 성좌의 지배자들! 심지어 천계에서조차도 감히 그들의 기휘를 범하지 못해서 일부러 외면할 지경이었다. 진정한 의미에서 신적인 권능을 휘두르는 존재들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어, 어떻게 제가 그 존재들을 없앨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건 대라신선조차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네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끝이 없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횡포를 무한대로 견디는 건 질색이라고."
"......"
"황궁은 [옛 지배자]의 졸개에 지나지 않아. 그러면 그놈들에게 집착하는 것보다는 놈들을 거느리는 우두머리부터 쳐야하는 게 올바른 자세지."
검마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실제로 나도 검마같은 생각을 종종 할 때가 있었다. 나라고 해서 [옛 지배자]가 악의 근원이라는 걸 모르는 게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검마의 말에는 묘한 확신이 있었기에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검마가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이번 생에 황궁에 대항하는 걸 반쯤 포기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네. 왜냐하면 지금 중요한 것은 자네 본신의 무위(武威)가 아니기 때문이지."
"대항할 방법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충분히 있지."
그는 나를 검지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의 자네가 용맹정진하여 무공을 쌓는다고 해도 이광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십오 년은 필요할 걸세. 그리고 설령 그렇게 이광을 넘어선다고 한들 세상에는 이광도 하룻강아지로 여길 수 있는 강자가 적어도 다섯 명은 존재하지. 자네는 애초부터 무공으로 해낼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었어."
"음..."
"하지만 말일세, 자네에게는 칠요가 있어. 그리고 신비한 목갑과 비등도 지니고 있지. 그건 자네를 뛰어넘는 절세무공의 소유자들도 어찌할 수 없는 최대의 장점일세."
"도구를 활용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당연하지. 자네의 강함은 무공의 강함이 아닐세. 끝없는 정신력과 의지, 그리고 강력한 도구의 활용 그 자체라고 볼 수 있지."
거기까지 조언을 해준 검마가 잠시 숨을 들이쉰 후 말했다.
"오늘부터 막야를 성장시킬 방법을 찾아보세. 자네가 [옛 지배자]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을 듯 하네."
나는 그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인간의 무공을 쌓아서 황궁에 도전하려면 적어도 몇 세기나 되는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그 때까지 내 정신력이 버틸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그 전에 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칠요 막야를 성장시켜서 그 힘을 이용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렇게까지 검마가 말해준다면 막야의 비밀을 말해줘도 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칠요 막야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뭔가를 막야로 죽여야 합니다."
"흠... 흥미롭군. 살생(殺生)을 통해 성장하는 기보라는 말인가?"
"네."
"그럼 시험삼아서 중원에서 몇 놈 죽여보는 게 어떻겠나? 사마외도의 마두들을 몇 놈 알고 있으니."
"......"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는 검마를 보며, 역시 그의 인품이 뛰어난 것과 성향은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파의 종주라는 말은 괜히 붙여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검마의 말에 대답했다.
"그것도 좋겠지만, 지금 두 가지 일이 밀려있지 않습니까?"
"용왕곡의 일과 제갈사의 일 말이군."
"네."
"우선순위를 따지자면 용왕곡의 독고성에게 가르침을 받는게 먼저겠지. 하지만 내가 이광을 낚으려고 뿌려놓은 떡밥이 있어서 잠시 두고보고 싶군. 한 번 용왕곡에 들어가면 폐관수련을 하느라 자네가 나오지 못할테니 말일세."
"네? 떡밥요?"
검마는 씨익 웃었다.
"그 날 대련이 끝나고 헤어질 때 이광에게 말했네. 독고성의 행방을 알고 싶다면 벽력삼존부터 찾아내라고."
"......"
"이광은 제 3자인 내가 볼 때 너무 서두르고 있어. 정상적인 수순이라면 먼저 벽력삼존을 찾아서 그들과 협력체제부터 갖춰야 할 텐데, 풍신류와 단기결전을 치르려고 성급하게 종남파부터 찾아간 것일세. 저렇게 하면 그저 풍신류를 크게 들쑤시는 것에 지나지 않고 백련교 전체를 자극하게 될 것이야."
나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대꾸했다.
"이광이 왜 그런 선택을 하는 걸까요?"
"천하무림을 혼란으로 몰아넣으려는 거겠지. 백련교와 정사무림간에 큰 대립이 일어나고, 거기에 황궁까지 엮어넣으려고 할지도 몰라. 그리고 그 진흙탕 싸움 속에서 이득을 얻으려는 생각이겠지."
"으음!"
"승산이 없지는 않아. 허나 내가 볼 때는 이광의 행동은 도박일세. 자네가 충분히 강해질 때까지 이광이 죽어버리면 좋지 않으니 최대한 뇌신류를 살려두는 게 좋아."
나는 검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벽력삼존을 찾는 동안에는 이광이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군요."
"그렇겠지. 그로서는 독고성을 반드시 찾아내야 할 테니."
검마는 무언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검마처럼 거대세력을 거느려본 적 있는 종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는 새삼 검마의 역량을 깨닫고 그를 쳐다보았는데, 검마가 말을 이었다.
"... 이렇게 하지. 우선 마두 몇 놈을 막야로 죽여보고, 그 다음에 제갈사를 살려내도록 하세. 용왕곡의 수련은 그 다음으로."
"꼭 살려내야겠습니까?"
"후후. 자네가 후생(後生)에 시도해보기 힘든 일 아닌가? 망량은 자네가 이 방법을 쓰려 한다면 기겁해서 말릴 게 뻔한데."
장난스러운 검마의 말에서 마치 못된 장난을 함께 하는 친구같은 느낌이 느껴졌다.
"벽지상이 껄끄럽지 않습니까?"
"그 여자가 명분대로 제갈사의 유지를 지키는 거라면, 제갈사가 살아나는걸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 벽지상과 대립하는 일과는 다르다고 보네."
나는 그다지 내키지 않았지만 이렇게 검마의 의지가 확실하다면 한번쯤 시도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해 보겠습니다."
"좋아. 그럼 당장 마두 놈을 때려잡으러 가 봅세."
파앗!
나와 검마는 이윽고 비등을 써서 중원의 어딘가로 향했다. 검마의 주문대로 안휘성에 도착하자, 검마는 안휘성의 성 내부로 들어갔다. 안휘성 내부에 진입해서는 종남파 때처럼 은밀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면서 더욱 깊숙한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와 검마는 안휘성주나 살 법한 은밀한 내실(內實)까지 올 수 있었다. 나는 뜬금없이 이렇게 깊은 성 내부로 들어오는게 껄끄럽게 느껴졌다. 평민이라면 여기에 존재하는 걸 들키기만 해도 그대로 삼족이 멸해질 대죄였기 때문이다.
[ 저기, 이런 곳에 마두가 있습니까?]
[ 그래. 분명히 그 놈은 여기 있을 것일세.]
쉬익
검마는 더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돌벽이 가득 세워져있는 어떤 공간에 도착하자, 슬며시 내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돌벽은 자연스럽게 밀려나면서 또다른 통로를 만들어 내었다.
' 비밀통로!'
기(氣)에 반응하도록 하는 비밀통로는 결코 자연적인 게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었다. 검마는 비밀통로를 열고서 쏜살같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검마를 따라서 비밀통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왠 생활공간이 눈에 보였다. 약 서너 명이 살 법한 공간에는 식료품을 비롯해서 각종 생활에 필요한 편의도구들이 있었다. 한켠에서는 사람 두세 명이 몸을 꿈틀거리며 수면 중인 듯 했다.
검마는 그 공간을 둘러보더니 내게 전음을 보냈다.
[ 놈이 숨어 있군. 섣불리 움직이지 말게.]
[ 숨어 있다고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데...]
[ 놈의 은형술(隱形術)은 굉장한 수준이야.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최소한 중상을 입을테니 사방을 경계하게.]
어딘가에 숨어있는 존재를 경계하며 나는 감각을 돋울 수밖에 없었다. 검마의 말대로라면 한 발짝 내딛는 것만으로도 죽음에 이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검마는 잠시동안 장내를 노려보다가 호통을 질렀다.
"거기냐!"
쐐액!
이기어검 두 줄기가 허공의 어딘가를 타격했다. 동시에 기막이 나타나서 이기어검을 막아냈는데, 반탄력 때문에 그 시꺼먼 존재가 뒤로 물러나는 듯 했다. 공중제비를 돌며 소검(小劍)을 꺼내든 그 은신술사가 격하게 외쳤다.
"이게 무슨 짓이냐 검마!!"
그 자는 검마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자 검마가 씩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야 뭐. 보면 모르겠나?"
"으으... 뭐가 아쉬워서 배신을 하는 거냐? 네놈은 이미 십이율에 가입해서 살 길을 찾았지 않느냐! 왜 나를 죽이려 드는거냐!!"
검마는 그의 비통한 외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러니까 죽어줘야겠네. 마도팔문이 완전히 쓸려나가야 우리 무영문이 새 출발을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리고 평소부터 나는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
"웃기지 마라. 순순히 죽어주진 않는다!!"
"하하하. 정말인가?"
검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흑마(黑魔). 오늘 여기가 네 무덤이다."
그랬다.
안휘성에서도 아주 깊은 곳에 은둔하고 있던 검은 은형술사, 그것은 중원 최고의 살수이자 청부업자로 불리던 마도팔마 중의 흑마였던 것이다. 아무래도 검마는 흑마와 손을 잡기로 한 후 그의 은거지를 따로 들었는데 그 장소로 와서 흑마를 죽이기로 한 듯 했다.
파바밧
검마가 의념절기를 펼쳐내며 연신 이기어검을 쏟아내었다. 왠만한 절정고수라면 검마의 한 수에 대번에 제압당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흑마 또한 마도팔마의 일인으로써 초절정고수였으며 살수들의 신이었다. 그래서인지 침착하게 이기어검을 방어하며 다시 은형술로 숨어버리려는 듯 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검마의 손가락이 횡으로 그였다. 그와 동시에 이기어검이 전에 없던 속도로 쇄도하더니 순식간에 흑마의 방어를 깨버리고는 그의 다리를 크게 베어버렸다.
풀썩
흑마는 다리가 잘려나가지는 않았으나 다리의 힘줄이 끊겨버린 듯 했다. 검마가 일부러 의도해서 흑마의 기동력을 봉쇄한 것이다. 그리고 초절정고수를 이토록 쉽게 제압할 수 있는 검마의 현재 실력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흑마가 이를 악물고는 상체만으로 몸을 움직이자 검마가 감탄하듯 말했다.
"비명도 안 지르고 움직인다? 이름값은 하는구나 흑마."
투웅
"커헉."
하지만 이미 검마는 의념절기로 소리소문없이 흑마를 제압한 후였다. 나는 힐끔 안쪽을 바라보았는데 안에서 자고 있던 살수들도 한 수로 검마가 제압해버린 모양이었다. 실로 신위(神威)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절망한 흑마가 말했다.
"크흑... 적어도 편하게 죽여다오."
"네가 알고 있는 정보를 말한다면 그래줄 수도 있지."
"알았다. 뭐가 궁금한가?"
"전부 다!"
검마는 그로부터 반 시진에 걸쳐서 흑마에게서 정보를 들었다. 흑야문의 비전절기와 비급이 숨겨진 장소는 물론 그가 꿍쳐두었던 재산, 청부경로, 새끼살수들의 양성법과 장소, 각종 청부자들의 흥미로운 비밀같은 것이었다. 개중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도 있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검마는 믿지 못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정말이냐?"
"그렇다."
"태산노옹(泰山老翁)이...?"
"방금 말한 건 내가 알고 있던 최고의 특급정보다. 제발 이걸로 봐 다오."
"흐음."
검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증거가 있나."
"이런 일에 내가 증거를 따로 갖고 있다면 나는 지금까지 황궁에게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도 그렇군. 나중에 따로 확인해 보지."
그렇게 말한 검마가 내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편하게 끝내 주게."
"네."
촤악!
나는 망설임없이 막야를 휘둘러서 흑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순식간에 쾌검으로 베어버린 거라서 아마 고통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검마는 제압당해 있던 살수들을 데리고 와서 꿇려앉혀놓았다.
검마는 얼굴 하나하나를 살펴보더니 말했다.
"살수조장이 없군. 역시 독립시켰나."
"독립요?"
"자신이 죽더라도 살수조장이 살아남으면 흑야문의 명맥이 이어진다는 생각이었겠지."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런 것 치고는 중대한 비밀을 다 털어놓았습니다만..."
굳이 고문으로 재확인할 것도 없었다. 흑마가 말한 비밀은 진실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흑마 놈은 문파에 대한 최소한의 의리를 지킨 다음에 자신의 이득을 추구했을 뿐이겠지. 고문당하며 죽느니 편하게 죽는게 훨씬 나으니까."
"그럼 살수조장의 행방을 물어보시지 않은 이유가..."
"흑마에게 있어서 그게 최대의 역린이었기 때문이었네. 그걸 캐내려는 순간 놈은 완전히 입을 닫고 죽어버릴 게 뻔하니까."
살수조장의 목숨과 나머지 비밀을 전부 바꿔버린 거래였던 셈이다.
촤아악!
나는 재차 막야를 휘둘러서 살수들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 광경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검마가 말했다.
"대략 네 명을 베었군. 막야에 뭔가 반응이 오는가?"
"아뇨. 별 느낌 없습니다."
정말로 아무 느낌이 없다. 막야가 피에 공명하거나 이타콰가 움직일줄 알았는데 아예 무반응이었다. 선지자의 조언이 거짓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흐음... 네 명 정도로는 간에 기별도 안 온다는 건가. 과연 신보 막야답군."
그렇게 중얼거린 검마가 말했다.
"좀 더 많이 죽일 기회가 필요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