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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이광과 삼 장 거리를 두고 마주선 상태에서 문득 알 수 있었다.
' 이광의 의념은 저렇게 안정되어 있구나.'
고수끼리 단순히 간격을 두고 마주선 게 아니라, 마치 결계처럼 서로와의 간합을 칭칭 얽어맨 느낌. 의념을 깨달은 자들은 그 단계에서 한단계 넘어서서 결계조차도 비집어서 비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광은 그 빈틈조차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헛점을 극도로 숨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의념을 수련한지 오래되었고 검마에게서 가르침을 받았기에 진정한 초절정고수들의 간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차라리 망상에 가까운 집착이었고 자신의 세계로 상대의 세계를 뒤집어쓰려는 맹목적인 광기에 가까웠다.
스으으으...
나는 서서히 검을 들면서 코끝에 땀이 맺히는 걸 느꼈다. 아직 제대로 일 초수를 겨루지도 않았건만 이광과 간격을 다투다보니 심력이 소모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광에게 섣불리 말려들지 않고 중심을 유지하며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었다.
그러자 물끄러미 나를 보던 이광이 말했다.
"나이치고는 정말 제법이구나. 허실(虛實)을 잘 보고 있군."
"먼저 가겠습니다."
파앙!
나는 이광의 칭찬을 듣는둥 마는둥하며 곧장 공기 터져나가는 소리와 함께 쇄도했다. 첫 초식은 바로 뇌영검법의 뇌영도도였는데, 뇌신류의 검술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초식이었다. 내 검식을 본 이광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까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철이 깨져나가듯 격렬한 파동이 일었다. 그리고 나는 파동 사이로 험상궂게 변한 이광의 얼굴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이광은 창을 크게 휘두르며 나를 떨쳐내었고, 나는 압력을 차분하게 버티며 이 보를 물러섰다.
이광이 사자후로 외쳤다.
[ 뇌신류 전승자가 타 문파의 제자로 들어갔단 말이냐!!]
그는 직접 무예를 부딪히기 직전까지도 긴가민가했던 모양이었다. 이광 입장에서 뇌신류의 전승자가 타 문파의 제자로 들어가는 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옆에서 관전하고 있던 검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뭐가 문제요? 그게 대련에 지장을 줄만한 일인가?"
이광은 홱하고 고개를 돌려서 검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당신은 무슨 생각이오. 뇌신류에 대해 알고 있을텐데 우리 문파의 전승자를 제자로 받았다고...?"
"혼자서 열받지 마시오. 당신이 백호법이 뇌신류인지 아닌지 물어본 적도 없잖소."
검마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승자가 타 문파에 들어가면 안된다는 율법이라도 있으면 모르되, 당신네 문파는 산산조각나서 그런 걸 따질 처지도 아닌 듯 싶군. 도리어 자신의 무예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제자를 칭찬해줘야 하는 게 아니겠소?"
"율법은 없소. 하지만 도의적으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오."
"그런 소리는 대련이 끝나고 하는게 어떻소? 대련중에 외적인 일로 으르렁대는 것만큼 꼴보기 싫은 일은 없는데 말이오."
으득
이광이 대놓고 이를 악무는 소리가 들렸다. 검마가 여러모로 이광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 무력행사를 할 수 없을 뿐더러, 한다고 먹히는 상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광은 흉맹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전승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나는 뇌신류의 종사(宗師)로써 네 성취를 들어봐야겠다."
나는 픽하고 비웃으며 말했다.
"종사라고요? 그걸 누가 인정해 줬답니까? 전대 호법사자는 죽고 주요고수들은 뿔뿔이 흩어졌으며 벽력삼존조차 행방이 묘연한 상황에서 당신 홀로 종사를 자처할 수 있습니까, 이광."
"......"
이광은 물론 옆에서 관전하던 진소청까지 크게 놀란 표정이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어린 전승자답지 않게 뇌신류의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벽력삼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기에 현재의 이광에게 종사의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으며, 정당한 반박이 들어오자 이광은 잠시 당황하는 듯 했다.
이광이 잠시 후 으르렁거리며 대꾸했다.
"네 뇌신류 스승이 누군지는 몰라도 못되고 고약한 놈이군. 그리고 천하의 쌍놈이 틀림없다."
나는 그 말에 반색해서 동의했다.
"물론입니다! 그 자는 천하의 개자식이며 후레자식입니다. 아주 잘 알고 계시군요!"
"......?!"
"그 자는 뺨을 갈겨서 저자거리에 개처럼 피똥싸며 나뒹굴게 해버려야 합니다. 속시원히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열렬하게 동의하자 이광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광이 패도적이며 잔인한 성격이라고는 해도 기품과 품위가 있는 자라서 이런 예상밖의 상황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설마 자기 스승을 앞장서서 욕하는 자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광의 행동은 누워서 침뱉기였다. 나는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잡설은 그만두고 종사를 자처하는 실력 좀 보여주시죠. 저도 예전부터 꼭 보고 싶었으니 말입니다."
"... 좋다. 후회하지 마라."
이광은 약간 분노한 기색으로 자신의 창을 다잡았다. 지금까지는 뭣도 모르는 애송이를 때려잡는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어느정도 진심을 보이면서 내게 격차를 깨닫게 할 생각이 틀림없었다.
그런 말은 한 마디도 없었음에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저 자와 수십 년이 넘도록 악연을 지속해 왔기 때문이다.
피잉
대기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내 검에서 만승검결이 뿜어져 나갔다. 만승검결 하나하나에는 검염이 스며있었으며 힘과 속도도 최대한 실어넣을 수 있었다. 특히 검로의 흐름이 열 개째의 변화를 보이자, 마치 구름같은 검영(劍影)이 이광의 상반신을 쓸어가는 형세가 되었다.
그러자 이광은 마치 철판교를 시전하듯 상체를 눕히며 유연하게 살초를 피했고, 동시에 창을 크게 휘둘러서 내 검로를 절반 이상 떨쳐내 버렸다. 나는 압도적인 내공을 이용해서 그 압력을 버티고는 도리어 가속해서 쾌검을 날렸다.
사아아...
그 순간이었다. 이광의 몸이 흔들리더니 난데없이 사라져 버린게 아닌가? 나는 일순간에 목표가 사라지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엄청난 속도로 무언가가 날아드는 걸 깨닫고 급히 회피했다.
귀밑머리가 터져나갔다. 살짝 상처가 일어난 뒤켠을 보자, 그 장소에는 이광이 서 있었다. 나는 이광이 순간이동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게 아니란 사실을 깨달았다.
' 뇌영보 천주살!'
뇌영보의 보법비기이자 실전용으로 특화된 신법! 내가 별것아닌 수준일 때도 천주살만 익히면 왠만한 절정고수가 두렵지 않았는데, 이광이 펼치니 진퇴를 자유자재로 해낼 수 있는 절세의 보법이 된 것이다. 내 천주살의 성취와는 천지차이였다.
나는 이광의 분신에 속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전투경험이 말해주는 진실이었다. 나는 눈에 보이는 이광의 공격을 차분하게 걷어내며 감각을 더더욱 돋우었고 이내 강렬한 창섬(槍殲)이 후방에서 날아드는 걸 깨달았다.
나는 즉시 멸혼보를 써서 창섬이 날아드는 속도와 같이 앞으로 뛰었고, 동시에 방향을 전환해서 이광이 있을 장소를 향해서 검강을 날렸다.
꽈과광!!
거센 폭음과 함께 먼지바람이 일어났다. 숲이 일렁이며 풍력이 장내를 쓸고 지나갔다. 그것은 내가 뿜어낸 검강과 이광의 강기가 격돌했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광은 내 공격을 걷어낸 후 의외라는 듯 말했다.
"어떻게 뇌영섬(雷影殲)이 올 거라는 사실을 간파한 거지?"
"분신에 속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 조심성이 아니었는데. 내게 뇌영섬이란 기술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그렇게 피할 수 없다."
이광이 나직이 읊조렸다.
' 그야 그렇겠지.'
나는 청룡무관에서 수십 수백 번이나 이광과 대련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광과의 대련에서 처참한 패배를 맛본 이유 중에서 3할은 바로 저 뇌영섬에 있었다. 상대방을 현란한 천주살의 보법으로 홀려놓고 기척도 없이 급소로 날아드는 뇌영섬을 막는 것은 왠만한 수준에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뇌영섬을 수없이 당해봤기 때문에 이광이 어떤 버릇으로 시전하는지를 대충 알고 있었고, 언제쯤 날아들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힐끔 검마에게 눈짓하며 전음을 보냈다.
[ 써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검마가 마주 전음을 보냈다.
[ 이광은 자네에게 중상을 입히지 못한다네. 이 틈에 최고의 기술으로 우세를 점하게.]
[ 알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졌다.
이제부터는 굴공검과 천축검도 쓸 생각이다.
"하앗!"
파지직
나는 서서히 기를 끌어올리며 증폭시키기 시작했고, 이광은 그 기세를 가만히 두고보지 않고 내게 공격해 왔다.
"받아라!"
뇌공섬이 날아들어왔다. 예고도 없이 통강의 형태로 뻗어든 뇌공섬은 죽음의 빛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호법사자급 고수를 제외하고는 저 뇌공섬을 멀쩡히 받아낸 자를 본 적이 없는 것이다.
' 몇 년 동안 꿈에서도 생각했다. 저 뇌공섬을 어떻게 받아칠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일부러 기를 모으면서 빈틈을 만들었던 이유는 바로 저 뇌공섬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단기전에서 이광에게 우세를 보이기 위해서는 그가 먼저 공격하게 만들어서 반격하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가 끌어모아진다.
뇌공섬은 의념절기이기 때문에 통상적인 초식으로는 방어도 회피도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의념절기로 대처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드는 뇌공섬을 심적권청의 순간에서 끝까지 주시하며, 전신의 반사신경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팔문에 모여있던 기를 격렬하게 해방시키며 백웅결과 분심결을 동시에 운용했다.
"흡 - "
숨이 가슴에 끌어당겨졌다. 그와 동시에 내 몸은 멸혼보를 따라서 정확하게 뇌공섬의 사각지대로 피해 있었다. 멸혼보의 속도라면 뇌공섬의 사정거리를 회피하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역시 이광답게 즉시 뇌공섬의 방향을 틀어서 연속으로 나를 따라서 공격해 왔다. 빛의 사선이 맹렬하게 끓어오르는 그 기세는 마치 천군만마도 꿰뚫어버릴 돌격창처럼 느껴졌다.
"파!"
숨을 뱉어낸다.
그와 동시에 내가 펼쳐낸 검로가 공간을 비스듬히 베어냈다. 공간 그 자체를 베어버리는 의념절기가 이윽고 길게 검은 선을 그어내기 시작했고, 그어진 부분은 그대로 뒤틀려 버렸다.
의념절기
굴공참(屈空斬)!
"......!!"
이광은 난데없이 굴공참이 뇌공섬의 공격로를 왜곡시켜버리고 뜬금없는 방향에서 검격(劍擊)이 날아들자 당황한 듯 했다. 그는 한쪽 발을 축으로 땅에 굳건히 박아넣더니 선 자리에서 즉시 32개의 창격을 연속으로 뿜어냈는데, 하나하나에 강기가 흐르고 있었다.
콰과광!!
' 연속 의념절기?'
나는 폭음 사이에서 침음성을 흘렸다. 내가 방금 의념절기 굴공참을 썼지만 심력과 기력소모가 심해서 잘 쓰지 못했다. 하지만 이광은 뇌공섬에 이어서 정체모를 변초까지도 의념절기로 운용한 것이다. 그것은 의념절기에 대한 이해도가 나보다 월등히 앞선다는 뜻이었다.
연기 사이로 뛰어오른 이광이 재차 창섬을 뿜어냈다.
천뢰무극창(天雷無極槍)
윤환뢰(輪環雷)
투두두둥
"윽..."
천뢰무극창의 절초 윤환뢰는 마치 소나기처럼 창영을 쏟아내며 연속으로 회전했다. 회전하는 창날 하나하나가 무시무시한 위력을 품고 있었으며 나는 그 변화를 파악하는 것만도 벅찼다. 나는 이것 또한 의념절기라는 걸 알아채자 속으로 경악했다.
' 뭐야? 이 자는 내공도 그리 많지 않을텐데 어떻게 의념절기를 이렇게 연속으로...'
하지만 궁금해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이번에는 천축검의 묘의를 이용해서 윤환뢰의 거센 공격을 척력(斥力)으로 튕겨냈다. 동시에 거대한 내공을 끌어안고 전력을 다해서 검광(劍光)을 날리자 이광도 경시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까강!
까가강!!
나는 직후 약 이백 칠십여 초 동안 정신없이 이광과 초수를 나누었다. 나는 내공을 앞세워서 이광을 눌러버리고 싶었지만 이광은 전혀 호락호락 당해주지 않았고, 도리어 의념절기를 응용해서 나를 밀어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그 때마다 굴공검과 천축검을 이용해서 생로를 찾아내기를 반복한 것이다.
이마에 구슬땀이 배어나왔다. 나는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며 생각했다.
' 뇌명을 쓸까?'
뇌명을 쓰면 왠지 우세를 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광의 배때기에 크게 한 칼을 먹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전투상황을 보면 그건 거의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육감이라고 해야 할까? 초절정고수로서 쌓여있는 경험과 알 수 없는 감각이 그건 아니라고 외치고 있었다. 딱히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는 없는데도 육감이 뇌명의 시전을 거부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그건 틀린 선택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카앙!
어느새 이광도 꽤 지친 듯 땀이 여기저기서 배어나오고 있었다. 내공에서 내게 크게 뒤지는 이상 나와 초수 하나하나를 부딪힐 때마다 그에게 부담이 가는 것이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더더욱 갈등이 되었다.
' 한 칼만... 한 번만... 찌르게 해줘!'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격렬한 갈등에 휩싸였다. 이광의 공격력을 이제 감당할 수 있는 이상 그에게 반격당해도 피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불안감이 그걸 막고 있다. 오로지 고수만이 느낄 수 있는 이 모순을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았다.
"......"
참자.
백 년의 한을 푸는 일이다.
조금 더 참아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격렬하게 전투에 임했다. 섣부르게 나섰다가 이광에게 반격당하면 정말로 천추의 한이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가 느낀 게 승기가 아니라 도박이라는 생각도 거기에 한 몫을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이광이 약 삼백여 초수째를 나눌 때 변화를 보였다.
"이건 어떠냐!"
키잉 -
이광의 전신이 빛으로 휩싸이는 듯 했다. 나는 순간 환영을 보나 싶었지만, 그건 분명히 빛이었다. 그리고 이내 이광에게서 호흡이 흘러나오더니 익숙한 흐름으로 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
이광의 다음 호흡이 흘러나오기 직전, 나도 급히 호흡을 내질렀다.
뇌명(雷鳴)!
퍼버벅
나는 다음 순간 전신에 거센 충격을 받고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갔다. 등에 부딪힌 나무가 부숴지며 뒤로 훨훨 날아갔다. 나는 그 찰나의 순간에, 날아가는 속도보다 더욱 빠르게 이광이 내 눈앞까지 날아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쐐애액
까앙!
이광이 다시 날린 찌르기에 나도 굴공참으로 반격했다. 허공에서 병기가 부딪히며 소리를 튀겼고, 나는 손이 얼얼하면서도 내가 부상없이 그의 필살공격을 막아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동시에 바닥에 착지했다.
그리고 이광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 네놈이 어떻게 뇌명을..."
"뇌명을 전수받은 게 당신 뿐만이 아니란 건 알고 있지 않소?"
"......"
그랬다.
방금 전 이광은 뇌명을 써서 단박에 결판을 내려고 나를 공격했고, 나는 반호흡 늦게 뇌명을 시전해서 겨우겨우 막아낸 것이다. 만일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내 배에 구멍이 너댓 개는 뚫려있었을 게 분명했다.
이광은 체력과 기력을 소모해서 비틀거리는 듯 했다. 그러더니 무서운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얕볼 놈이 아니구나. 제대로 간다."
그 때였다.
"거기까지!"
관전자들이 우리 근처에 몰려들었다. 진소청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광을 부축했고, 검마는 내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연정홍은 묘한 눈으로 장내를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검마가 이광을 바라보며 말했다.
"친선대련으로는 이 정도면 족할 듯 싶소."
"무슨... 당신 마음대로 대련을 끝내겠단 말이오!"
"그럼 백 호법을 죽이지 않고 제압할 자신이 있단 말이오?"
"......"
이광이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 윽...'
이광이 '제대로 간다'라고 했던 것. 그것은 이제부터 진심어린 살초를 써서 나를 상대할 생각이라는 말이었던 것이리라. 검마나 장내의 초절정고수들도 지금부터가 진짜 사투가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를 말리러 온 셈이었다.
검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무튼 많이 봐주셔서 고맙소. 백 호법도 이번 일로 많은 걸 깨달았을 거요."
이광은 완전히 똥씹은 표정을 하더니 퉁명스럽게 말했다.
"우리에게 더 이상 용건이 있소?"
"이제 없소만, 당신이 내게 용건이 있겠지."
그렇게 대꾸한 검마가 입술을 달싹이며 이광에게 전음을 보냈다. 전음을 받은 이광의 눈빛이 점차 냉정해지는 것을 보면, 검마가 또다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모양이었다. 검마는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대들을 응원하고 있겠소. 힘 내시오."
"......"
파앗
나와 검마는 대결이 끝나고 종남파를 벗어났다. 그리고 종남파를 완전히 벗어나서 황금비등을 사용해서 무영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검마가 별실에 와서는 내게 말했다.
"잘 했네."
"... 한 방 먹여주지 못했습니다."
나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이광에게 그럴듯하게 한방을 먹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심지어 나중에 뇌명을 쓸때까지도 넋놓고 이광에게 수세로 버티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자 검마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욕심이 과해! 자네는 이미 여러 방을 먹였는데."
"네?"
"비록 살초를 쓰지 않았다지만 이광은 나름 전력을 다했는데도 자네를 이백 초수가 넘게 제압하지 못했지. 게다가 마지막에는 결전오의인 뇌명을 썼는데도 자네에게 그럴듯한 부상조차 입히지 못했어. 이게 저 자존심 높은 이광에게 어찌 받아들여질 거라고 생각하는가?"
"......!!"
"하물며 진소청은 물론 연정홍까지 보고 있던 자리였지. 그의 체면은 이미 구겨질대로 구겨졌을 게야."
그렇게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듯이 의자에 쓰러졌다. 내가 탈력하자 검마가 말했다.
"잘 했네."
"감사합니다."
나는 지친 몸으로 대답하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직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아직 이광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여주지는 못했다.
백 년의 한도 아직 남아 있다.
' 하지만 다음엔...'
이광을 넘어서고 말 것이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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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가정사가 있었습니다 ㅠㅠ 앞으로 연재에 지장없으니 걱정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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