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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검마와 내가 청룡무관으로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대략 사흘이 지나서였다. 검마는 그 동안 문파의 유지 정리에 더욱 힘썼는데, 그 이유는 십삼율에 들어온지 얼마 안되는 무영문의 기반이 아직 약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검마를 방해할 수가 없어서 사흘동안은 내 무예를 점검하는데 그쳤다.
"없군."
청룡무관에 막상 도착하자 수련생들이 보이지 않았다. 뇌신류 사범인 윤광과 지평도 없었다. 청룡무관은 그 넓음이 무색하게 휑한 폐건물이 된 것처럼 보였다. 안쪽으로 걸어들어갔지만 역시 인기척이 없어서, 대략 반 시진을 둘러본 후 청룡무관을 나왔다. 검마가 걸어나오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풍신류와의 항쟁이 본격화되었으니 청룡무관에서 버틸수는 없었겠지. 혹시했건만.."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저번에 신녀문에 알아본 바로는 아직 강호무림에 이광의 소식은 들리지 않았네. 아직까지는 표면적으로 진소청만을 내세워서 기습전투만 벌이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광을 찾아내려면 따로 노력을 해야겠군."
"그 당시에 명확히 시간 장소를 잡지 못한게 걸리는군요."
"그럴 상황이 아니었지."
짧게 말한 검마가 말을 이었다.
"이광이 아니라 진소청의 행보부터 쫓아야겠군. 둘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있을테니 진소청을 찾는 게 곧 이광을 찾는 것일세."
검마는 다시 신녀문과의 연락망을 가동시켰다. 약 반 나절이 지나자 신녀문의 당주가 나와서 정보를 거래하기 시작했다. 정보료도 미리 가지고 온 상태였다.
"진소청은 현재 신창(神槍)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최근에는 종남파(終南派)로 향했다는 소식입니다."
"신창이라... 그럴 만 하군. 헌데 종남파?"
"네."
"거기는 왜 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
곰곰히 생각하던 검마가 다시 질문했다.
"진소청이 마도팔마를 깨고 있었는데 그 행보는 어찌되었지?"
"현재 검마님과 흑마를 제외하곤 모두 당했습니다. 지금 현재는 마도쌍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크큭! 쌍마?"
검마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흑마는 어떻게 살아남았지?"
"완전히 흑야문을 해체하고 쉴새없이 도피중인 걸로 보입니다. 진소청도 반쯤 포기한 것 같더군요."
"알았네. 그만 가 보게."
이윽고 신녀문의 당주가 가버리자, 검마는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며 말했다.
"오늘 확신했네. 진소청은 신녀문의 정보를 이용한 게 틀림없네. 그녀들의 정보력을 이용해서 마도팔문의 정보를 알아내서 공격한 거겠지."
"진소청이 신녀문의 정보를?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왜 말이 안 되나?"
"진소청이 마도팔마와 겨뤄서 살려둔 예가 없습니다. 신녀문의 문주인 음마(陰魔)도 진소청의 손에 당했다던데, 자기 문파의 원수인 자에게 어떻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겠습니까?"
"크크크..."
검마는 껄껄 웃더니 말했다.
"그렇지 않아. 뇌신류는 현실적으로 개방이나 동창의 정보를 이용할 수 없는 상태지. 하지만 풍신류같은 거대세력과 싸우려면 정보가 필수적이야. 그렇다면 신녀문의 정보력이 없으면 애초에 뇌신류가 싸울 수조차 없는 것이 아니겠나."
"아."
"이광이나 진소청이 바보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협력자는 놔두겠지."
나는 검마의 말을 듣자 퍼뜩 생각나는 게 있었다.
"신녀문의 음마가 죽은 척 하고 실제로는 뇌신류에 협력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겠지. 음마가 죽었다지만 음마가 죽었다는 정보도 그저 신녀문에서 흘린 이야기일 뿐이야. 정황으로 볼 때 뇌신류와 신녀문이 협력하고 있는 건 확실해."
"흠."
"음마 또한 평소부터 마도팔문의 존재 자체에 회의적이었으니. 이번 기회에 뇌신류의 힘을 빌려서 마도팔문을 와해시키고 과거를 세탁해서 정사중간의 문파로 세상에 나설 생각일지도 모르네."
"......"
"흑마 놈은 원체 청부업을 하면서 숨어지내는데 특화되어 있으니 신녀문의 힘으로도 잠적한 흑마를 찾지 못한 거겠지. 다른 팔마는 패도성향이라 흑마만큼 잘 숨지 못했을 테고."
검마의 추측대로라면 앞뒤가 맞았다. 마도팔문의 문주인 팔마도 바보가 아니므로 진소청과 싸우지 않으려고 피하려 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소청이 이 짧은 시간에 끈질기게 팔마를 찾아내서 싸움을 걸 수 있었던 이유는, 같은 마도팔문이자 정보전문 문파인 신녀문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검마가 턱을 쓰다듬었다.
"신녀문의 당주를 구슬려서 음마를 만나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좀 힘들겠지. 음마는 공식적으로 죽은 자이니 필사적으로 나를 피하려 할 것일세. 우선은 진소청이 갔다는 종남파로 가 보세."
"종남파의 본산까지 가본 적이 있습니다. 비등으로 바로 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마을 앞까지만 이동합세. 상황을 살펴야 하니."
"네."
파앗
나와 검마는 종남산 앞에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혹시 이 곳에 진소청이 있는지 낌새를 살폈는데, 진소청은 없었다. 아직 오지 않았거나 이미 종남산에 들어갔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았다. 검마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진소청이 종남파에 왜 오려 하는걸까?"
"음..."
"목표로 했던 마도팔문 토벌은 거의 끝난 셈이고 풍신류와의 항쟁만이 남았지. 그 상황에서 종남파라... 흠..."
검마가 평상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자, 나는 번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했다.
"황산파 때문이 아닐까요?"
"황산파?"
"황산파는 중원에서 풍신류의 가장 큰 근거지입니다. 장문인인 도룡신검 용중일은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의 직계 혈육이기도 하고요."
"호오. 그거 말 되는군. 그러니까 황산파와 대립하는 종남파와 화산파에 협력을 얻으러 왔다는 말인가?"
"네. 어쩌면 황산파가 풍신류라는 걸 까발리려고 온 걸지도 모릅니다."
"흐음..."
검마는 한참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말이 맞는 것 같군. 종남제일검 연정홍이 있으니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만 해. 합리적이야."
나는 그의 말을 듣자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것은 내 전생동안 축적해온 정보에서 불확실한 부분을 찾아내려는 꿈틀거림에 가까웠다. 그래서 검마에게 질문했다.
"연정홍은 구파일방 종남파 최고의 고수이자 장문인이라 했는데, 그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요?"
"섬서제일(?西第一)!"
검마는 단언하듯이 말했다.
"고수의 수든 질이든 화산파가 훨씬 뛰어난데도, 종남파가 화산파와 자웅을 가릴 수 있는 건 전적으로 연정홍 한 명 덕분일세. 나도 과거 마도팔문과 구파일방의 회합 자리에서 그의 무위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정말 대단한 고수였네."
"......!!"
"그 정도 되니까 이광이 자신의 친우로 받아들일 수 있는 거겠지. 이광같은 자는 자신과 비슷한 격에 이르지 않는 자와 친하게 지내지 않으니."
나는 깜짝 놀랐다.
' 그 정도였단 말인가?'
검마가 대놓고 대단하다는 표현을 쓸 정도면 과거에도 연정홍의 무위는 절세고수급이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초기에서 꽤 시간이 지난 지금에는 어느 정도일지 측정이 되지 않았다. 예전에 종남파에 진소청과 쳐들어갔을 때 괜히 진소청이 연정홍 앞에서 긴장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검마는 말했다.
"마을에서 대기해 봤자 진소청이 어디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무의미하네. 어쩔 수 없이 종남파 내부로 잠입해야겠군."
"본단 건물로 이동할까요?"
"그래야겠군."
파앗!
나는 비등을 써서 검마와 함께 종남파 본단 건물에서도 외진 곳으로 이동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기에 나와 검마는 기척을 숨기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쪽인가."
검마는 뭔가를 느낀 듯 귀신처럼 어딘가를 짚어서 나아갔다. 곳곳에 종남파 고수들이 있었지만 검마는 칠성둔영의 조화를 이용해서 뛰어난 은잠술을 얻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 듯 했다. 나 또한 검마처럼 조용히 이동하기 시작했지만 칠성둔영의 성취가 낮아서 꽤 진땀을 빼야만 했다.
이윽고 우리는 본단에서 꽤 떨어진 한적한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나 있는 암자였다. 숲에서 기척을 숨기고 암자를 관찰하고 있자, 거기에 한 명의 인영(人影)이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 종남제일검 연정홍!'
그는 암자에 가만히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검마는 그를 한동안 관찰하다가, 약 한 식경이 지나자 암자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반갑소 연정홍."
여기서 연정홍에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나는 검마의 생각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당황했지만 별 수 없이 그를 따라나갔다. 그러자 명상을 하고 있던 종남제일검 연정홍이 눈을 반개하면서 대답했다.
"누군가 했더니 검마 서문대룡인가."
"과거 회합 이후로 처음 보는 듯 하군. 반갑소 연 장문."
연정홍은 당황하지 않은 듯 했다. 아마도 그 또한 검마의 은신술을 어렴풋이 눈치챘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검마가 더 모습을 숨겨봤자라고 생각해서 연정홍 앞으로 나온 것이다. 연정홍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무슨 일로 본파를 찾아오셨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진소청이 그대를 만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온 것이오."
"호오..."
연정홍은 눈을 깜박거리더니 말했다.
"진소청을 만나서 뭘 할 생각이오?"
"그의 사부인 삼절 이광과 나는 약속을 했소. 본문의 호법과 대련을 해 준다는 약속이었소. 허나 이광이 강호 어딘가에 숨어서 종적을 드러내지 않으니, 나로서는 그 제자인 진소청에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오."
"확실한가?"
"나 검마, 태어나서 지금까지 허튼소리를 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소."
잠시동안 연정홍과 검마의 눈이 마주쳤다. 연정홍은 마치 심연처럼 그윽한 눈빛으로 한동안 검마와 나를 관찰하더니 내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천하의 기재로군. 허나 이광과 겨루기에는 미숙하지 않소?"
"그건 그 쪽이 걱정해주지 않아도 좋소."
"후후. 당신은 참 별난 사람이야..."
연정홍은 뭐가 즐거운지 씨익 웃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잠시 여기서 기다리시오. 진소청을 데려오지."
역시 진소청은 이미 종남파에 와서 연정홍과 만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암자에 앉아서 기다리자 잠시 후 연정홍이 진소청과 함께 나타났다. 진소청은 검마를 발견하자 놀라운 듯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내 평정심을 되찾으며 포권했다.
"간만에 뵙니다, 검마 서문대룡."
"그간 잘 지냈는가?"
"별 일은 없었습니다."
검마는 그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내가 뭐때문에 찾아왔는지는 짐작하겠지?"
그러자 진소청이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불민하군요. 스승님께서는 근자에 바쁘셔서 강호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스승님의 결례를 대신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하하, 되었네. 그나저나 나로서는 이제 약속을 이행할 때가 되었다 생각하네만."
그렇게 운을 띄운 검마가 허공의 어딘가를 바라보며 날카롭게 말을 이었다.
"안 그렇소? 삼절 이광!"
스으으으
"......!!"
그 순간 마치 공간이 열리듯,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광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저게 술법이나 공간전이술인가 생각해서 경악했지만, 장내의 절세고수들이 별다른 반응이 없는 걸로 봐서는 의념절기인 듯 했다. 의념을 이용하면 인식을 조종함은 물론 자연에 묻혀있다가 낮도깨비처럼 나타나는 것도 가능한 것이다.
이광은 진소청과 함께 종남파와 와있었던 듯 했다. 그는 물끄러미 검마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참 희한한 집착을 가지고 있군. 그 애송이의 경험을 쌓게 해주는 게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까지 따라온 거요?"
"하하하. 당신이 진소청을 아끼는 것만큼이나 나도 내 제자를 아끼는 것 뿐이오. 고수와 한 수를 겨루게 하고 싶다는게 부끄러울 일은 아니지."
이광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다. 역시 그에게 있어서 검마는 꽤 대하기 부담스러운 존재인 듯 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말했다.
"좋소. 마침 장소도 좋으니 이 자리에서 그대 문파의 백웅 호법과 대련하도록 하지."
"아, 그 전에 한 가지 묻고싶은 게 있소만."
"무엇이오?"
검마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이광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혹여 독고성(獨孤星)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소?"
"......!!"
그러자 이광은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철석간담에 노회한 이광조차도 놀랄수밖에 없는 기습적인 이야기였던 탓이었다. 그러더니 이광은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독고성이 뭐가 어쨌단 말이오."
"별 거 아니오. 나는 근자에 그 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일이 있었는데, 어쩌면 추가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말을 빙빙 돌리지 마시오. 나는 당신이 독고성의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어떤 댓가를 지불해서라도 얻고싶은 마음이오."
이광은 몸이 달아있는 듯 했다. 검마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더니 대꾸했다.
"하하. 우선 대련부터 끝나고 이야기 합시다. 서로간의 친선을 도모해야 하지 않겠소?"
"... 알았소."
스으
이광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나는 그와 마주서며 생각했다.
' 고맙습니다, 스승님.'
검마가 방금 전에 독고성 이야기를 꺼낸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이광이 실수를 빙자해서 내게 살초를 쓰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독고성이라고 하는 중요정보를 가지고 있는 검마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생긴다면, 이광은 절대로 독고성에 대해서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검마가 나를 생각해서 보호장치를 마련해준 셈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검을 강하게 다잡았다.
드디어 이런 날이 왔다.
이광과 제 3자로서 칼을 맞대는 날이!
"한 수 부탁드립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오게."
백 년의 한을 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