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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39화 (23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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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신단으로 떠나게 되었다.

' 너무 빠르게 도착하는건 의심을 사겠지.'

이미 한 차례 직접 도보로 장백산 신단까지 가본 적이 있었기에, 마음만 먹으면 지금 당장이라도 근처에 갈 수 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무슨 수로 신단까지 빠르게 왔냐는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소 천천히 유람을 하는 기분으로 신단으로 가기 시작했다.

파아앗

멸혼보를 써서 강과 산을 건너자, 예전보다도 몇 배는 빠르고 쉽게 지형을 이동할 수 있는 게 느껴졌다. 가혹하기 그지없는 북극까지의 여정에 비하면 고려 국내의 땅은 평탄한 지형이나 다름없었다. 전속력을 내지는 않았고 쉬고 싶을때 쉬며 편하게 갔다.

그렇게 적당히 미적미적대며 갔는데도, 나는 약 6주야 만에 신단 근처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내 신법이 워낙 빨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으음..."

신단은 장백산의 고미 유역에 있었다. 지형을 기억하고 있기에 고미 유역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갔지만 그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분명히 이 근처였던 거 같은데."

보이지 않는다.

분명히 기억속에서는 고미 유역에서 어렵지 않게 신단을 찾아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내가 기억하는 신단 마을의 흔적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나는 그때 문득 십이율주의 예전 말이 생각났다.

[ 하하. 저건 신단수(神檀樹)라고 해. 아홉 개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전설이 있지. 보다시피 왠만한 산만큼 커.]

[ 이상하네요.]

[ 뭐가?]

[ 여기까지 산을 넘어오면서 저런 나무는 멀리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왜 이 신단 마을에 들어오고 나서야 보이는 겁니까?]

[ 결계 때문이지. 보통 사람 눈에는 신단수가 보이지 않아. 신단에 들어오도록 허락된 자만이 신단수를 볼 수 있지.]

그러고보니 신단은 신단수라고 하는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신수(神樹) 아래에 지어진 마을이었다. 그리고 십이율주는 신단에 들어오도록 허가된 자만이 신단수를 볼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결계! 허가!'

신단에 결계가 쳐져 있다면, 허가받지 않은 방문자에게는 신단수가 당연히 보이지 않을 것이며 신단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현재 신단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되지 않았기 때문에 결게때문에 신단을 발견할 수 없는 셈이었다. 내가 이걸 어쩌나 싶어서 그 자리에서 반 시진 정도 끙끙거리며 고민할 때였다.

위이이잉

갑자기 기이한 음향이 울리더니 허공이 쩍 열렸다. 그리고 그 곳에서 창백한 인색의 왠 사내가 걸어나왔다.

사내의 모습은 독특했다. 고려의 복색같지 않은 고유한 복장이었지만 묘하게 중원의 것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옷이었다. 거기에 외모 자체도 준수한 미남이지만 워낙 창백해서 당장이라도 건드리면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키는 멀대처럼 컸기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이하다'라고 느끼게끔 했다.

그 창백한 멀대 사내는 나를 보며 말했다.

"나는 운사(雲師)다. 그대가 칠요의 주인인가?"

"......"

운사!

그 이름은 예전에 미호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같은 십이율 사이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았지만, 십이율주의 측근에는 3인의 가공할 실력자가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들은 삼사(三師)라 하여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라고 불렸다. 그리고 미호는 삼사를 언급할 때 생각만 해도 두렵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소. 무영문의 호법인 백웅이라고 하오."

"속세의 직책은 알 바가 아니다. 그대가 칠요의 주인이라는 게 중요하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오?"

"그대를 주군께 데려가는 게 내 임무다. 따라와라."

스스스스

운사가 손을 휘젓자 다시 허공에 기이한 오색구름으로 이루어진 통로가 만들어졌다. 오색구름에서는 신령스러운 영기(靈氣)가 느껴져서 사람을 편하게 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운사의 술법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그 통로로 따라들어가기 전에 운사에게 물었다.

"저기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소만."

"뭐냐?"

"당신이 말하는 '주군'이라는 건 십이율주 하은천을 말하는 것이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

"네게 그 이상 이야기해줄 이유는 없으니 따라와라."

운사는 그 말을 남기고는 오색구름통로 안으로 성큼 몸을 옮겨 버렸다. 운사가 통로 안으로 사라지자 나도 별 수 없이 통로 안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통로로 들어가서 약 삼 장 정도 되는 거리를 걷자 출구가 나왔다.

출구로 나오자, 그 곳은 내가 예전에 왔었던 신단의 심장부인 조그마한 오두막이 있었다. 나는 주변을 힐끔 살펴보았는데 역시 천애의 협곡 곳곳에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지형이었다. 먼저 도착해 있었던 운사가 말했다.

"들어가거라."

운사의 말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압박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무인의 기백과는 좀 다른 영통력(靈通力)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의념을 깨달은 내게 이 정도의 압박을 줄 수 있다는 건, 운사의 경지 또한 달인중의 달인이라는 걸 의미했다. 나는 운사의 역량을 암암리에 깨닫고 침음성을 흘렸다.

운사의 실력도 환신 천우진에 못지 않아 보였다. 그렇다면 남은 풍백이나 우사 또한 이 정도로 강하다는 말인 것일까?

잡생각을 하며 오두막 안으로 걸어들어가자 역시 예전처럼 바깥보다 안이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수천 평이나 되는 으리으리한 공간은 고급 술법으로 만들어진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넓은 오두막의 안쪽 공간에는 강아지탈을 쓰고 있는 십이율주 하은천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십이율주 하은천은 나를 보자 반갑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어이 여기야 여기~"

"......"

역시 이번에도 복실복실 강아지탈이다. 아주 재미가 들렸는지 털까지 손질을 해놓은 것 같았다. 나는 왠지 웃을 수도 없어서 머리를 짚고는 말했다.

"십이율주님. 저기 궁금한 게 있습니다만."

"응 뭔데?"

"그 강아지탈은 대체 왜 쓰고 있는 거죠?"

그러자 십이율주가 대답했다.

"뒤틀린 인과의 흐름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지."

"......?"

"후후, 그냥 최신 유행이라고 알아 두라고."

십이율주는 가볍게 넘겨 버렸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뭔가 의미심장한 의미가 있다는 걸 알아채고 그의 대답을 기억해 두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예를 갖추며 그에게 포권했다.

"십이율주님. 무영문의 호법인 백웅이라 합니다. 예전에 방문하라는 말씀을 듣고 늦게나마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래그래 잘 왔어. 오는 길 고생 많았어~"

그는 의자에 앉은 상태로 턱을 괴고는 말을 이었다.

"백웅. 우선 칠요를 얻은 경위와 해방한 방법에 대해서 좀 알고 싶은데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네. 그건..."

내가 입을 열자 십이율주가 아차해했다.

"아 손님께 앉을 자리를 내어드려야겠구만!"

그가 손가락을 마주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휑하고 넓기만 하던 공간에 호화스러운 탁자와 의자가 생겼고, 그 위에는 잘 차려진 만찬이 대령되어 있었다. 틀림없이 이건 모종의 술법일 테지만, 술법공부가 거의 되어있지 않은 나로서는 술법의 정체를 파악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십이율주의 술수경지가 대단한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말을 이었다.

"수요 막야는 황산(黃山)의 어느 외딴 곳에서 얻었습니다. 절벽 뒤편에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장소였는데 그 곳의 연못으로 우연히 뛰어들게 되자 이상한 유적이 있었고, 저는 그 유적에서 거미 수호자를 쓰러뜨리고 막야를 얻은 겁니다."

"그게 전부가 아닐텐데?"

십이율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 거미는 칠요의 수호자가 아니야. 덤으로 나오는 졸개같은 거지. 그렇다면 백웅 너는 다른 곳에서 2차 해방을 한 게 틀림없어."

"......"

역시 칠요에 관해서 상세하게 알고 있다. 나는 그를 내심 경계하면서 대답했다.

"네. 저는 막야에 추가봉인이 걸려있다는 걸 알고 그걸 해제할 방법을 찾아서 천하를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중 방법을 알아내서 봉인을 해제한 겁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합니다만..."

나는 차분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십이율주께서는 그걸 왜 알려고 하시는 겁니까? 물론 무영문이 십이율에 들어오는데 큰 도움을 주셨으니 저로써는 응당 알려드려야겠지만, 그래도 이유 정도는 알고 싶습니다."

"흐음. 일리있는 질문이군."

십이율주는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말했다.

"뭐라 대답해야할까... 해동문 십이율(十二律) 만하령문(萬河靈門)의 봉황(鳳凰)을 다스리는 23대 하백(河伯)으로서의 의무감... 혹은 삼위태백의 신단수를 다스리는 단군(檀君)으로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실천하려는 의무감... 혹은 칠요 중 목요(木曜) 해인(海印)의 주인으로서 다른 칠요의 주인에 대한 호기심..."

"......"

"어느 쪽으로 봐도 좋겠군."

나는 십이율주의 대답을 듣자 기가 질리고 말았다.

' 뭐야? 십이율주에게는 다른 직책이 있었던 건가?'

단군(檀君)!

그건 분명히 내가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칭호이자 직책이었다. 그리고 아까 운사의 대답으로 보아서는, 그를 포함한 직속세력들은 '십이율주'로서의 하은천과 '단군'으로서의 하은천을 분명히 구분하는 듯 했다. 나는 그 차이가 무엇일지 생각하다가 말했다.

"저는 그 방법이 북극에 가서 대지에 피를 바치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공간으로 인도되어서 계약을 이어받고 칠요 중 수요 막야를 해방하게 된 겁니다."

"흐음, 그랬던 거군."

십이율주 하은천은 팔짱을 풀며 말했다.

"막야의 봉인 하나조차도 그리 엄중하게 했다니 과연..."

"뭔가 알고 계시는 겁니까?"

"뭐어 남들만큼은 알고 있지. 그나저나 백웅 너는 굉장하구나. 북극까지 갔다 오다니."

역시 그는 어물쩡 자신이 아는 비밀을 말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도 공치사를 적당히 받아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흐음... 그러면 막야를 잠시 볼 수 있을까?"

"......"

올 게 왔다.

어쩌면 이대로 막야를 빼앗기고 여기서 살해당할지도 모른다. 잠시 불길하기 그지없는 상상이 머릿속에서 스치고 지나갔지만, 나는 이내 각오를 하고 십이율주에게 수요 막야를 넘겨 주었다.

' 죽으면 죽는대로 좋아.'

십이율주가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성과이기 때문이다.

내가 크게 경계하며 막야를 건네주자, 십이율주가 내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걱정 마. 뺏을 생각 없으니까."

"당신께서 그러려 하면 여반장이겠지요."

"뭐 그렇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냐."

왠지 심통맞게 대꾸한 십이율주는 이윽고 천천히 수요 막야의 검신(劍身)을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는 검신에 새겨져 있던 글자를 보자 싸늘하게 말했다.

"역시 사황 창힐의 힘이 깃들어 있군. 칠요는 다 마찬가지인건가."

"......?"

사황 창힐?

그러고보니 망량은 황제 공손헌원의 부하 중 한 명인 창힐이 굉장한 힘을 지닌 존재라는 걸 말한 적이 있었다. 삼황오제의 바로 아래급 신으로써 무시무시한 권세를 고대에 휘둘렀다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 막야를 들여다보던 십이율주가 내게 막야를 돌려주었다.

"잘 봤어."

나는 막야를 받아들자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그대로 막야를 뺏기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돌려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를 경계하자 십이율주가 말했다.

"경계할만 하지. 칠요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보물이니까. 하지만 나는 타인의 손에서 강탈하면서까지 얻을 생각은 없어."

나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십이율주는 진실을 말하는 척 나를 기만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월요가 동영에 있다는 정보와는 달리 실제로는 강화도의 마니산에 숨겨져 있으며, 심지어 서산대사와 유정이라는 법력높은 승려들도 십이율주의 명에 의해 배치되어 있었다. 그의 말을 보이는 그대로 믿다가는 큰코 다칠 것이다.

나는 말했다.

"당신은 목요 해인을 이족에게서 요동과 반도를 지키는 일에 쓰는 거 같습니다만..."

"응? 눈치가 빠르네. 맞아."

"혹시 과거에 해신(海神)이 서경에 상륙했을 때 봉황을 소환한 것도 당신입니까?"

"맞아. 그 때도 내가 나섰지."

역시.

내 전생 초기에 서경에 봉황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떠돈 적이 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보물의 단서인가 싶어서 서경까지 찾아갔었지만, 실상은 해신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 봉황이 소환된 일이었다. 나는 줄곧 그 일을 행한 게 십이율주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오늘에서야 진상을 확인한 것이다.

"믿기지 않습니다. 봉황은 천계에서도 으뜸가는 신수인데 그걸 소환하고도 멀쩡하시다는건..."

그러자 십이율주가 왠지 피식 웃는 듯 했다.

"하하.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네 짐작대로 그건 목요 해인의 힘을 빌려서 일으킨 이적(異跡)이야."

"음..."

"너도 알다시피 칠요는 그 자체로 신의 기적을 행사할 수 있는 보물이야. 봉황소환 정도는 그리 대단할 것도 없지."

"......"

술법에 대해 잘 모르는 자들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전설의 투선이자 대라신선인 여동빈이 천계의 화룡소환을 할 때 내 팔문을 다 열어서 힘을 끌어모으는 걸 몇 번이나 느낀 적이 있다.

천계의 최상급 신수를 소환한다는 건 왠만하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술법으로 하려면 최상급 술법사가 몇 명이나 목숨을 바쳐도 모자랄 것이다. 그걸 멀쩡히 시전할 수 있게 한다는 것 자체가 목요 해인이 지닌 힘이 엄청나다는 걸 의미했다.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십이율주가 본론을 꺼냈다.

"너는 아무래도 막야의 힘을 빌려서 황궁이나 백련교와 싸우고싶은 모양이군. 그 일을 우리 십이율이 도와주기를 바라는가?"

아무렇지도 않게 중요한 이야기를 꺼내는 십이율주였다. 그는 대충대충 이야기하는 듯 하면서도 일의 핵심을 다 짚고 넘어가는 특징이 있었다. 나는 깊이있게 생각해둔 바가 있었기에 즉시 대답했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닙니다."

"호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대가없는 부탁은 누구도 들어주기 싫겠죠. 지금 무영문과 저는 그만한 일을 부탁드릴 담보도 깜냥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려 합니다."

이게 정답이다.

지금 내게는 망량이라는 책사도 없고, 내 자신의 힘을 키우는 수련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공연히 십이율을 끌어들이다보면 서로 책임과 댓가를 논하게 될 것이고, 필연적으로 수요 막야를 담보로 내놓는 이야기도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런 아수라장은 원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즉각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십이율주는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백웅. 너는 성좌(星座)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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