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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다음 날 검마와 다시 대련하는 시간을 가졌다. 비록 언제 진소청과 싸우게 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의 일과를 빠뜨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련을 끝내고 초수를 추스리자, 검마가 말했다.
"딸아이가 자네와 얘기하고 싶다더군."
"......"
"껄끄러워하지 말게. 혼약 이야기는 아닌 듯 했네."
"죄송합니다."
나는 내 감정이 티가 났다는 걸 깨달았다. 나름 무심하게 지나가려 했지만 역시 아직도 감정을 감추는 일이 익숙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조금 일찍 수련일과를 끝내고 나서 서문혜의 방으로 찾아갔다. 서문혜는 예전과 달리 궁장 차림이 아니라 몸에 딱 붙는 무복(武服)을 입고 있었으며, 건(巾)을 매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결전을 준비하고 있는 무사의 차림새였다. 그녀는 나를 보자 인사했다.
"오셨군요, 호법."
나는 6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녀의 외모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그녀는 특유의 백발의 머리카락에 20대의 절세미녀의 미모를 여전히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절정고수인데다 지닌바 내공이 높아서 적어도 40대까지는 현재의 외모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다.
"소문주께서 부르시니 당연히 와야지요."
내가 대꾸하자 그녀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이제 포기하신 듯 해요."
"무엇을..."
그녀는 말없이 그윽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눈빛에서, 나는 말하지 않아도 무엇을 포기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 검마는 나와 서문혜를 이어주는 일을 포기했구나.'
원래 검마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은인이자 사윗감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 열심히 딸의 연정이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했으리라. 그러나 내 기억을 읽은 후에는 의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으므로 자신의 계획을 포기한 듯 했다.
"흐음."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지금 문파 내외로 뒤숭숭합니다. 저도 빠르게 대비할 시간이 필요할 듯 합니다."
"진소청의 일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그의 무공은 도저히 후기지수라고 볼 수 없는 지경이랍니다. 아버님께서 돌아오시기 전에 최대한 정보를 모아봤는데, 정말로 저로서는 그를 대적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제 두 분이 돌아오셨으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진소청은 강합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힘주어 말하자 서문혜가 말했다.
"당연하죠. 마도팔마 중 그 누구도 그의 앞에서 50초를 버티지 못했으니까요."
"... 네?"
"강호를 진동시키고 있죠."
나는 서문혜의 말을 듣자 꽤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 그 정도란 말인가?'
회귀의 시작점에서부터 대략 칠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에 내 몸은 명백히 20대의 청년으로 자라나 있었고, 진소청 또한 지금은 30대 초중반일 것이다. 그 동안 진소청이 논 게 아니라면 분명히 실력이 성장해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마도팔마는 사파무림 최고의 고수들이다. 그런 마도팔마를 모조리 50초 내에 쓰러뜨렸다는 건, 그의 실력이 초절정위 중에서도 높은 지경에 이르러 있다는 걸 의미했다.
내가 팔짱을 끼고 고민하자 서문혜가 말했다.
"아버님께서는 진소청을 충분히 감당하실 수 있다 말씀하셨어요."
"물론입니다."
"다만 저는 걱정이 되고 마음이 답답해요. 진소청은 너무 강해요..."
그녀는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백 호법. 아버님을 지켜 주세요."
"......"
"부탁드려요."
나는 그녀의 간절한 눈빛을 보자 할 말을 잊었다.
설마 부녀가 둘 다 내게 서로를 지켜달라고 부탁할 줄이야!
강호의 다른 이해타산적 관계와는 달리 그들은 진심으로 가족을 위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런 무영문이 마도팔문에 들어가 있는 것도 사실 언어도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대답했다.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제 목숨을 걸고."
결정했다.
이번 생에서는 설령 허망하게 죽는 한이 있어도, 그들 부녀를 지켜내고 말겠다.
내가 확답을 주자 서문혜는 눈가의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후후... 믿음직스럽네요."
나는 서문혜와 차 한잔 마실 시간동안 그동안의 잡담을 하다가 검마에게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 날은 다시 수련을 마치고 잠들었다.
이변이 생긴것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백 호법님. 문주께서 급히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나는 새벽에 무영문의 검랑이 나를 부르자 득달같이 일어나서 무영문의 회의장으로 달려갔다. 회의장에는 이미 반수 이상의 무영문도들이 와 있었고, 검마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내가 도착한 것을 확인하자 입을 열었다.
"풍신류가 진소청과 오늘 싸우게 될 예정이다."
웅성...
무영문도들은 그 이야기를 듣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사실 나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풍신류의 움직임을 전해듣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검마는 느긋하게 소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풍신류는 우리에게 진소청의 본거지인 청룡무관을 치러 갈 것을 명령했다."
"......!!"
나는 풍신류가 삭초제근을 꾀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진소청은 풍신류가 해치우고, 겸사겸사 마도팔문의 대표로써 무영문이 청룡무관을 쳐서 멸하게 되는 작전이리라.
그 말에 무영문의 검랑이자 절정검객인 백혈검객이 일어나서 외쳤다.
"문주님! 저희는 풍신류의 부하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왜 그 자들이 우리에게 명령합니까!"
겨우 십수 명에 불과했지만 무영문의 절정고수들이 분통을 터뜨리자 기세가 굉장했다. 그들 하나하나가 천하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검객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수인 만큼 자신들의 무공과 문파에 굉장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자 검마가 차분하게 말했다.
"풍신류의 말에 거스른다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황산파는 물론이고 풍신류, 백련교와 싸운다는 뜻이지. 그들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다."
"크윽...!!"
"하지만 거역할 수 없다고 해서 충실하게 들어야 한다는 법도 없지."
슬며시 웃은 검마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나는 풍신류가 진소청을 처리하는 걸 확실히 확인한 후 움직일 생각이다. 가장 현실적인 방법을 택하려 한다."
무영문의 고수들은 눈치를 살피다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문주님의 혜안이 옳습니다!"
"하지만 청룡무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설령 풍신류가 진소청과 싸워 이긴다 해도 마음을 놓지는 말도록."
"넵!!"
회의가 끝나고 무영문의 고수들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는 검마와 일대일로 대면한 자리에서 그의 진짜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백웅. 어서 나와 함께 흑야문의 흑마를 만나러 가세."
"네?"
"서둘러야 하네. 오늘 해야할 일이 많네."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어쨌든 그의 요구대로 황금비등을 써서 하남성 대저로 향했다. 검마는 돌아오자마자 마도팔문 흑야문의 문주이자 팔마의 일인인 흑마와 만날 약속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속일은 공교롭게도 오늘이었다.
파앗!
우리는 곧 하남성 대저에 있는 고요한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남성에서 약 칠 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이 저택으로 나를 인도한 검마는 저택의 안채까지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슈슉...
이윽고 우리 앞에 은밀한 잠행술을 사용하는 고수들이 약 십여 명 가량 나타났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으며 강한 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들의 중앙에는 한 명의 노인이 서 있었는데 약간 뚱뚱하고 풍채가 있는 노인이었다.
노인이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이오?"
노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검마가 말했다.
"흑마. 솔직히 말하시오. 진소청의 살해의뢰를 받았겠지?"
"......"
그랬다. 눈 앞에 서 있는 풍채있는 노인은 바로 마도팔문의 일좌를 차지하는 흑야문의 수장이자 중원 최고의 살수(殺手) 중 한 명으로 불리는 흑야문주 흑마였다. 또한 그의 옆에 서 있는 흑의인들은 흑야문의 정예인게 틀림없었다.
흑마는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그렇소."
"의뢰인이 누구요?"
"말할 수 없소."
"그게 청부단체의 규칙이란 걸 알고 있소. 의뢰인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는 것."
검마는 운을 띄우고는 매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당신의 원칙을 굽히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오?"
"이대로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 그 자들은 나든 당신이든간에 마도팔문을 졸(卒)로밖에 보지 않소. 이대로라면 우리 둘 다 이용당하다가 처참하게 죽고 말 것이오."
"......!!"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는 우리 알아서 살아갈 길을 찾아나가야 하오. 그리고 나는 흑마 당신이 내 동료로 적절하다고 판단했소."
검마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흑마는 검마의 행간을 읽어들인 듯 엄청나게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투실한 얼굴에 땀이 줄줄 흐르는 걸 보면 굉장한 고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약 반 각이 지난 후, 흑마는 팔짱을 풀고 한숨을 쉬었다.
"... 황궁(皇宮)이오."
"그랬군."
"검마 당신 말대로요. 나도 의뢰를 받고 너무 수상쩍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차. 아무래도 백련교와 황궁은 마도팔문을 제멋대로 소모시킬 생각인 모양이오."
검마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속에 뱀이 백 마리는 들어있는 너구리들이 단순히 진소청의 제거로 끝낼 리가 없지. 그 자들은 우리를 골수까지 빨아먹다가 팽(烹)할 게 분명하오."
흑마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할 생각이오? 당신의 뒷배에 백련교가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소만."
"봉문(封門)하고 십이율(十二律)과 손을 잡아야 하오."
"십이율과...?"
"백련교와 황궁은 대립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는 밀월관계라는 정보를 입수했소. 백련교를 피해서 황궁에 붙든, 반대가 되든간에 마찬가지지. 우리가 믿고 기댈 수 있는 거대세력은 천하에 십이율밖에 없소."
흑마는 검마의 말을 듣자 곰곰히 생각하다가 손을 탁 쳤다.
"그렇군. 그게 좋겠소."
"자세한 계획은 차후에 논하도록 합시다."
검마는 흑마와 이야기를 끝내자 저택에서 나왔다.
나는 비등을 이용해서 하남성의 한가한 찻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검마와 차를 마시며 잠시 창가에서 쉬기로 했다.
나는 방금 전의 대담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검마에게 질문했다.
"왜 흑마와 그런 얘기를 하신 겁니까?"
"무슨 뜻인가 백웅."
"문주께서 백련교의 압력을 떨치고 십이율과 손을 잡으시려는 뜻은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얘기를 굳이 청부단체이자 살수인 흑마와 하셔야 합니까?"
나는 분노를 애써 억누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 나쁘다.
억지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눌러참고는 있지만, 흑야문은 지금까지 나를 2번이나 죽인 전적이 있다. 그것도 흑야문 살수조장의 손에 목이 베인 것이다. 방금 전에도 흑마라는 걸 알자마자 꼭지가 돌아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검마가 옆에 있기 때문에 꾹 눌러 참았을 뿐이다.
그런데 의뢰를 받고 사람을 죽이는 막장 청부단체인 흑야문과, 그 단체의 수장인 흑마와 앞으로의 일을 도모하다니!
검마가 내 표정을 보자 말했다.
"나는 자네의 기억을 보았기 때문에 자네가 흑야문에 어떤 원한이 있는지 알고 있네."
"......"
"그래. 바로 그렇기 때문에 흑마에게 이야기를 꺼낸 것일세."
"네?"
검마는 문득 차갑게 웃었다.
"말했듯이 나는 자네의 힘을 빌려 요동(遼東)으로 이주할 생각이야. 십이율과 교섭해서 그들의 비호 하에 무영문을 재건하고싶네. 헌데 그렇게 해버리면 자네가 따로 흑야문에 원수를 갚는 건 성가시게 되지 않겠나?"
"그렇겠죠."
"가능하면 조용하게 그 자들을 처리하기 위해서 이 일에 끌어들인 걸세. 왜냐하면 자네에게는 충분한 방법이 있으니까."
나는 그의 말을 듣자 방법을 알아차렸다.
"... 그렇군요!"
"그런 거지."
검마가 빙긋 웃었다.
"하지만 흑마를 해치운다 해도 살수조장의 이야기는 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생각하네. 그 자는 얻을만한 게 있을지도 몰라."
나는 그 말에 항변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놈은 저를 2번 죽인 원수놈입니다."
"그게 아니야.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흑야문 살수조장은 사파 제일의 후기지수 중 한 명일세. 아마 30대의 사파무림인 중에서는 최강(最强)일 것이고, 향후 초절정고수로 발돋움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라고 할 수 있네. 내 딸인 혜아보다 훨씬 더 강하지."
"헉..."
살수조장 놈이 그렇게 대단한 놈이었단 말인가?
내가 침음성을 흘리자 검마가 말했다.
"흑마는 빼도박도 못할 극악한 악인이지만 살수조장이 그런 자인지는 확실치가 않네. 자네도 알다시피 살수단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아를 양성하는 곳이고,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살인기계로 키워졌을 가능성이 높지. 그저 조직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에게 모든 분노를 묻는 건 온당치 않은 일이야."
나는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이를 으득 악물며 말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놈이 기계라고 해서 제가 목베여 죽은 원한이 어디 가는 건 아닙니다. 나는 그 자를 찢어죽여야겠습니다!!"
후우우웅
거대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나도 모르게 내공과 의념이 함께 방출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찻집 전체가 뒤흔들리며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검마가 자신의 의념을 사용해서 내 기세를 누르며 말했다.
"만일에 향후 나를 죽여야만 황궁에게 복수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운명이 그렇게 흐른다면?"
멈칫
나는 뜻밖의 말에 당황해서 기세를 멈추었다. 그리고 급히 말했다.
"그, 그럴 일은 없습니다. 그렇다 해도 문주님을 죽이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검마가 눈을 멀뚱히 떴다.
"왜? 자네의 명제는 황궁을 쓰러뜨리는 게 아닌가?"
"그 과정에 억지로 타협하면서까지 결과를 얻어낼 생각은 없습니다."
"그건 너무나 무른 생각이야."
검마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자네가 조금만 더 독하게 굴었다면 이번 16번째 전생즈음에는 황궁을 반파시켰을 수도 있겠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면, 말일세. 자네도 한 번 정도는 생각해 본 적이 있겠지?"
"... 네."
"나를 죽이면서까지 복수할 생각이 없다는 것... 그러면서도 과거의 원한을 갚지 않고서는 못배긴다는 것... 이건 결국 같은 이야기야."
검마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자네는 전생자(轉生者)일세. 나같은 보통 인간이면 몰라도 시공을 회귀해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자네는 원한과 은혜를 다르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보다 넓은 안목에서 객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
"무슨 말씀이신지..."
"흑야문 살수조장은 자네를 2번 죽였지. 그럼 자네는 그를 몇 번 죽일 생각인가? 2번? 3번? 4번? 아니면 100번?"
"......"
"지금의 자네 무공이라면 100번도 더 죽일 수 있을 것일세."
그렇게 말한 검마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몇 번을 죽이든 대체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건가."
할 말이 없다.
"... 없죠."
"그런 것일세. 그리고 만일에 살수조장이 자네가 받아들여야 하는 귀중한 정보나 귀중한 흐름을 쥐고 있는 존재였다면? 자네는 그 자체로 전생과정에서 모순을 끌어안고 움직여야만 할지도 모르네."
"으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아니, 생각해볼 겨를조차 없었다. 지금까지 은혜와 원한이 너무 분명해서 단순무식하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가 턱을 괴고 곰곰히 생각하자 검마가 말했다.
"죽이면 거기서 끝이야. 사람의 인연이라는 건 죽이는 걸로 해결되지 않아."
"하지만... 저는 반드시 그 자에게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치사하게 굴지 말게."
검마가 단호하게 말했다.
"원한을 갚고자 한다면 그 흑요석을 써서 살수조장에게 자네의 은원을 분명히 보여주게. 그리고 그 자에게 원한을 어떻게 처치할 것인지 직접 듣고 결정하게. 정말로 이야기조차 되지 않는 망종이라면 100번을 죽이든 1000번을 죽이든 맘대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나는 한참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나서야 검마의 말을 납득할 수 있었다.
"문주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하! 물론 그와는 별개로 흑마 놈은 개새끼니까 쳐죽일 생각이지만."
"그 말도 맞군요."
검마는 빙긋 웃은 후 마지막으로 식은 차를 들이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그럼 슬슬 산동 대죽평(大竹坪)으로 가봅세. 지금쯤은 진소청과 풍신대가 부딪혔을 걸세."
"거기가 어디입니까?"
"산동성에서 대략 오십 리 떨어진 장소일세."
파앗!
말이 끝나자 우리는 황금비등으로 산동성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는 검마의 인도에 따라서 대죽평이라는 곳을 향해서 움직였다. 대나무숲이 아주 많다고 해서 대죽평으로 이름지어진 지형까지 쉴새없이 달렸다.
우리가 대죽평에 도착했을 때는 거대한 기(氣)가 쉴새없이 폭사하는 잔향(殘響)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쿠콰콰쾅
콰콰쾅!!
거대한 강기가 천공으로 오색빛을 내며 폭발했다. 아마도 진소청이 뇌공섬을 시전한 듯 했다.
"시작했군!"
검마는 짧게 읊조리고는 더욱 경공에 가속도를 내어 대죽평 안으로 진입했다. 그의 보법은 칠성둔영의 조화를 내포하고 있었기에 멸혼보에 못지 않은 속도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들어가며 생각했다.
' 드디어 진소청의 무공을 볼 수 있겠구나.'
복잡미묘한 기분이다.
지금의 나는 그가 약했으면 하면서도, 동시에 6년 후의 진소청이 얼마나 강할지 기대또한 되는 것이다.
============================ 작품 후기 ============================
멸혼보 관련 설정오류 수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생검신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