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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29화 (229/1,615)

0229 ----------------------------------------------

천계(天界)

나는 그로부터 사흘간은 편하게 푹 쉬면서 내 몸의 체력과 기력을 절호조로 만드는데 힘썼다. 마음같아서는 바로 굴공검과 천축검의 요결을 전수받고 싶었지만, 올바른 몸상태가 아니면 공연히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이었다. 전신의 근육통을 다스리는데는 다소 빡빡한 시간이었다.

"한 번 겨루지."

그리고 체력을 다 회복했을때 즈음에는 검마가 내게 대련을 하자고 말했다.

카앙!!

검음이 부딪혔다. 예전과 별로 다를 바가 없었지만, 나는 초수의 변화가 약 이십 초 째를 넘어가던 시점에서 뭔가를 느꼈다.

' 수월해...'

내 검술 자체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이제 일반초수에서도 의념을 이용해서 공방을 판별하거나 검강으로 검마의 강력한 초수에 원활하게 대응하게 된 듯 했다. 그래서인지 검마의 신출귀몰한 초식에 당황하기는 해도 큰 우세를 주지는 않았다.

파앗

약 일백 초를 넘었을 때 검마가 검을 거두며 뒤로 물러났다.

"성장했군."

"네."

"이 정도면 바로 요결전수에 들어가도 무리가 없겠어."

검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굴공검의 요결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대략적인 것은 예전에 설명을 들었기에 이해하기 쉬웠다. 검마는 거기에 덧붙여서 설명을 해 주었다.

"중요한 건 의념으로 공간을 구부린다는 느낌일세. 자신의 초식과 마음과 호흡을 적절히 맞춰야 좋은 굴곡도가 나오게 되지."

부웅

검마가 가볍게 무영탈혼검의 일 초식을 펼치자, 지난번처럼 마치 초식의 형태를 무시하는 듯 기괴한 방향으로 검로가 꺾였다. 아까 대련하면서 느꼈던 거지만,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굴곡된 검로가 날아오면 정말로 피하기가 힘들다. 그것도 무영탈혼검의 특성과 합쳐지면 천하에 다시 없는 필살검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검마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 원래라면 이 정도가 내가 가르쳐줄 수 있는 한계였겠지. 그러나 나와 명룡자는 석 달 동안에 굴공검의 또 다른 묘용을 발견했네."

"또 다른 묘용이라고요?"

"그렇네. 아마도 자네의 전생(前生)에서 이광이란 자가 연구끝에 얻어낸 경지와도 일맥상통하지."

검마는 중단세를 잡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는 마치 적이 있는 것처럼 살기를 곧추세웠는데, 내게 초식의 실전적인 위력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검마의 의념은 순식간에 마치 꼿꼿한 대나무처럼 강렬하게 뭉쳤고, 이윽고 한 마디 기합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합!"

그 순간의 일이었다.

쿠구궁

나는 검마의 몸이 삼 장 밖에서 다시 나타나더니, 현란한 빛이 마치 꽃잎처럼 흩날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더니 거대한 힘이 스쳐지나가는 게 내 의념에 느껴진 것이다. 패도(覇道)적인 힘이었다.

"......!!"

나는 지켜보면서 주먹을 꽉 쥐었다. 검마가 나를 대련상대로 해서 저 절초를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알았기 때문이다.

' 저 공격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압도적인 거력(巨力)!

아무리 연습대련이라고 해도 저런 절초를 내가 맞이하면 즉시 피떡이 되거나 죽을 게 뻔했다. 내가 절초의 위력에 경악하고 있자 검마가 숨을 고르며 자신의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이광의 천공섬이란 것과 꽤 비슷하지?"

"네..."

실제로 그랬다.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의 비기인 풍마멸진 구극혈풍신권을 상대로 일격에 분신들을 날려버리고, 용비천의 호신강기를 처참하게 깨버렸던 뇌신(雷神)의 일보(一步), 천공섬(天空殲)! 예전에는 수준이 너무 달라서 어떻게 펼치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 검마의 한 초수에서 느낀 것은 천공섬과 대동소이했다.

검마가 말했다.

"굴공검으로 공간을 구부리는데 충분히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지. 바로 천축검결과의 합일(合一)일세."

"천축검결과 합일한다고요?"

"그래. 그게 나와 명룡자가 내린 결론일세."

그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채 말을 이었다.

"원원자 장삼봉이 이 두 개의 광세절학을 구상하면서 붙여놓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는 거지. 굴공검과 천축검의 숙련도가 일정수위 이상 오르게 되면 상승효과가 발생하게 된다네. 그 결과가 방금처럼 공간을 통째로 '먹어 버리는' 기술이 되는 거지."

"먹어 버린다..."

그 독특한 개념을 내가 되뇌고 있을 때 검마가 말했다.

"고수에게 있어서 상대방과의 간격은 목숨과도 같은 것이야. 굴공검을 연마하면 공간을 왜곡시킬 수 있고 천축검을 연마하면 상대방과의 거리를 조절할 수 있지. 이 두 개의 특성이 합쳐지면 다룰 수 있는 검로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이다. 차원이 더 높아진다고 표현하는 게 올바르겠군."

그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 놀라운 점은 이 합일요결은 무공의 성질을 안 가린다는 것일세. 본디 익힌 무공이 뇌신류든 무영탈혼검법이든 무당파 검법이든 삼류검법이든... 정말 장삼봉은 위대한 절세무인일세."

"......!!"

"자네는 오늘부터 합일요결을 얻을 수 있게 노력하게. 한 번 얻기만 하면 천하에서 자네를 감당할 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니."

"알겠습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길이 바로 눈 앞에 제시되었는데, 누군들 전력을 다해서 연마하지 않겠는가! 비록 재능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그리고 검마의 굴공검 지도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의 친절한 지도 아래에서 부단히도 의념을 사용해서 검로를 꺾는 일에 집중했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어서 지지부진한 경우도 있었지만, 대략 두 달이 지나가자 이제 초식을 구부릴 수 있게 되었다.

스아앗

"됐다!!"

처음으로 초식을 굴공검으로 응용하는 데 성공하자 뛸 듯이 기뻤다. 검마처럼 자유자재로 초식의 검로를 늘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실전에서 사용할만한 수준으로 연마한 것이다. 내가 기뻐하자 검마가 핀잔을 줬다.

"너무 기뻐하는 거 아닌가? 당연한 일인데."

"당연하다고요?"

"그래. 자네가 의념을 다루는데 서툴렀다면 두 달이 아니라 10년이 걸렸겠지. 허나 자네는 검강을 사용할 정도로 숙련되어 있으니 이 성취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네. 게다가 단순수련시간만으로는 자네가 나보다 훨씬 오래되지 않았는가."

"그렇군요..."

뭔가 김이 빠진다. 검마는 훗하고 웃은 후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는 천축검 또한 가르쳐 주지. 그리고 남는 시간에는 명룡자에게서 칠성둔영(七星遁影)을 배우도록 하게."

"칠성둔영은 신법(身法)이잖습니까. 그걸 왜 지금..."

내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칠성둔영은 현재 무당파에는 실전(失傳)되어 있는 무공이며 절세신법이기도 했다. 물론 그런만큼 현묘한 힘이 잠들어 있다. 그러나 하루바삐 합일요결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 칠성둔영에 시간을 소모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물며 나는 이미 절세보법인 멸혼보를 얻은 상태라서 굳이 칠성둔영이 필요하지 않았다. 단순속도라면 멸혼보가 훨씬 빨랐다.

그러자 검마가 대답했다.

"그게 참 신기한 걸세. 칠성둔영의 비결(秘決)을 익혀야 굴공검과 천축검의 합일요결을 얻기 쉽게 되어 있어."

"헉..."

"원원자 장삼봉이 자네에게 의미없이 무당파 7대절학을 전수한 게 아니란 소리겠지."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검마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자네가 검강을 얻기 위해서 석 달간 지옥수련을 할 때 나와 명룡자는 쉴 새 없이 서로 토론하며 7대절학을 분석했네. 그 결과, 무쌍패를 제외하고 나머지 6대절학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네."

"연결..."

"자네가 그동안 오랫동안 무당파 절학을 연마하면서, 왠지 춤사위처럼 동작들이 연계되는 걸 느꼈을 것이네."

"그렇습니다."

"그건 6대절학에 잠들어 있던 비결이 서로 호응했기 때문이네. 굴공검과 천축검의 합일요결이 있다면, 그걸 얻기 위해서는 칠성둔영의 비결을 얻어야 하고, 그 비결을 얻다보면 어느 새 진무칠절경의 흐름도 알아야 하고, 그걸 터득하다보면 현천오신결의 경락도 알아야 하고, 그걸 알다보면 태극요지유검의 검로도 익혀야 하고, 그건 종래에는 굴공검과 천축검에 다시 연결된다네."

검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천지가 공명(共鳴)하는 것일세. 6대절학이 통째로 묶여서 하나의 무공인 셈이야. 결국 모든 걸 일정수위 이상 익혀야 하나를 대성할 수 있어. 그리고 그 하나는 다시 모든 것이 되지. 이걸 어찌 태극(太極)이며 혼원(混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그 순간 나는 머리를 둔중한 뭔가로 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 세상에... 장삼봉...!!'

원래라면 몰랐겠지만, 검마의 말을 듣자 무당파 절학에 담겨있는 아득한 현기(玄氣)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뇌신류 절학에 비해서 파괴력이 부족하다는 인상밖에 없었지만 - 의념단계에 올라서 무공의 본질을 관찰하게 되면서 안목이 달라졌다.

식은땀이 난다.

' 난... 정말 애송이였다!'

장삼봉이라고 하는 절대종사(絶對宗師)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무의 경지에서 삼라만상의 변화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관조하는 광경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나같은 애송이가 겉으로 보이는 위력만으로 함부로 재단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6대절학 하나하나가 마치 실에 꿴 것처럼 호응하며 한 줌의 모순도 없이 공명하며 완벽한 형태를 이루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태극이 혼돈 속에서 일어나는 양태는 대자연(大自然)마저 상징했다.

괜히 이광이나 검마 등 현 강호의 최절정고수들이 장삼봉의 깨달음을 접하자마자 기겁하며 무학의 뛰어남을 찬양하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은 의념단계를 최고조로 숙련시킨 자들이라서 고수 특유의 오만함이 굉장한데도 장삼봉의 깨달음 앞에서는 겸허해질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검마가 말했다.

"걱정 말게. 10년 정도면 자네는 충분히 6대절학의 의념절기와 기본을 모두 얻을 수 있을 것이네."

"세상에... 그게 가능합니까?"

나는 되려 내가 믿기지 않아서 검마에게 반문했다. 10년이라고 하면 보통 사람에게는 길어 보이겠지만, 댓가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초절정의 경지에 숙련되었기 때문에 6대절학을 제대로 얻으려면 최소한 1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10년 정도면 굉장히 싸게 치는 셈이다.

검마는 갑자기 즐거워보였다.

"흐흐흐. 당연히 원래라면 나와 명룡자의 힘만으로는 여기까지 연구하는게 불가능했겠지. 어찌 장삼봉의 절학을 빠르게 익힌단 말인가? 백련교주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할 일이지. 하지만 자네 덕에 가능했네."

"네?"

"자네는 뇌신류의 기재들과 수 년 동안 절학을 연구하고 토론한 기억이 있더군. 뿐만 아니라 의념절기의 응용인 이광의 천공섬과 역린섬, 진소청의 무공을 보았던 기억까지 있었어. 나는 힘들이지 않고 수십 년치 연구를 앞당길 수 있었네."

"......"

"명룡자는 나를 절대천재로 알고 있더군, 껄껄."

정작 수련했던 나는 뭐가 뭔지도 못알아들었던 그 합숙훈련의 기억! 검마는 흑요석을 통해 기억을 전달받으면서 무당파 절학을 연구하는 시간을 극단적으로 단축시킨 것이다. 나는 새삼 선지자에게서 얻어낸 흑요석의 효과를 깨달았다.

' 흑요석을 이용하면 전생에 얻었던 성취를 전승(傳承)할 수 있어!'

나는 선지자에게 얻어내는 술법이 굉장히 효과가 좋다는 걸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에도 선지자에게서 반드시 술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검마에게 수련을 받은 후 명룡자에게 가서 칠성둔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명룡자는 다소 귀찮은 기색으로 말했다.

"네 놈은 이미 칠성둔형의 형(形)은 질릴 정도로 수련했을 테니 비결전수부터 하겠다. 뭐 질문할 거 있냐?"

"아뇨."

"그래야지."

나는 더 이상 질문해봤자 미혹에 휩싸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오성이 딸리기 때문에 비결을 익히는데 전력을 집중하지 않으면 시간이 너무 낭비되는 것이다.

' 노력하자!'

이번 생은 무공을 올리는데만 집중하는 거다!

바깥 세상 일이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다!

그렇게 6년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나는 굴공검과 천축검의 합일요결은 아직 얻지 못한 상태였다. 대신 굴공검과 천축검을 제대로 의념절기로 운용하는 법을 배웠으며 나머지 절기들도 응용법을 알 수 있었다. 예전 생에서 껍데기만 핥았던 것에 비하면 진정으로 무공성취를 높였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수련을 하고 있던 중 검마가 내게 말했다.

"백웅. 나는 잠시 무영문에 돌아가야 할 듯 하네."

"무슨 일이십니까?"

"별로 큰 일은 아니야."

거짓말이다.

큰 일도 아닌데 검마가 굳이 수련시간을 포기하고 무영문에 되돌아갈 리가 없다.

내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검마가 졌다는 듯 말했다.

"알았네. 사실은 큰 일일세."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래주면 고맙겠군."

"무영문에 변란이 일어난 겁니까?"

검마는 내 질문에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사실은..."

하지만 나는 그 대답에 절로 몸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진소청이 마도팔마를 때려잡으러 나섰더군. 그래서 돌아갈 수밖에 없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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