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28화 (228/1,615)

0228 ----------------------------------------------

천계(天界)

파앙

명룡자가 내 등짝을 강하게 치면서 기혈이 강하게 돋우어졌다. 입에서 피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침을 뱉으며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자세를 잡고, 뇌명을 일으켜서 육합검법의 초식 중에서 육합개산 초식을 시전했다.

부웅!

내력이 엄청나게 빠져나간다. 나는 입술을 질끈 감고 뇌 한켠이 부숴지는 듯한 그 소모도와 허탈감을 견뎌냈다. 지금쯤 아마 눈이 충혈되어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이 짓거리를 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괴로운 망상과 상상이 중첩되고 있다.

' 견뎌, 견뎌, 견뎌!!'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육합검법의 초식을 완결했다. 단순한 초식이지만 이걸 끝내는 동안에 정말 죽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팔과 다리, 심장, 늑골까지 비명을 지르며 내 이성에 매달렸다. 이대로면 죽는다고, 제발 그만두라고 내 뇌에 하소연했다. 하지만 그런 상념에도 상관없이 명룡자의 차가운 말이 떨어졌다.

"오십 일."

겨우 한 번이 끝난 것이다. 절망이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 으으, 더! 아직 더 할 수 있어!'

휘두른다!

나는 휘두른다!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

"... 육십."

휘두른다!

나는 휘두른다!

휘두르다가 쓰러졌다! 눈 앞에 별이 보인다!

어? 무슨 생각 하고 있더라?

쫘악

"이놈아 정신차려라!"

나는 명룡자가 내 뺨을 갈기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무량신공을 불어넣어서 겨우 나를 정신차리게 한 명룡자가 질렸다는 듯 말했다.

"정신력 하나는 정말 엄청나군. 어떻게 죽어가면서 비명소리도 안 내느냐?"

나는 정신없는 상태에서 희미하게 대답했다. 경어 쓸 생각이 안 들 정도로 지쳐있었다.

"... 낼 힘이... 없어..."

"아, 그렇겠군. 미안하구나."

대충 대답한 명룡자가 내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 말이 마치 천상의 지복이자 은혜처럼 느껴졌다. 다른 의미에서 감격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꼬맹아! 내일은 육십 회 이상을 노려보자."

나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배알이 꼴리도록 짜증난다.

"... 미... 친... 초... 회... 복..."

"그렇다. 초회복!"

명룡자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쩔 수 있느냐? 머리가 안 따라주면 몸이 고생하는 것이다!"

"......"

반박할 수 없는 말인데 이렇게 미워지기는 처음이다!

' 으윽 제기라아아알...'

나는 그 날 동굴 안에서 죽은 듯이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끌려나와서 육합검법으로 탈진과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이 무시무시한 체력과 내공소모는 끝날 기미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왠지 명룡자가 어떤 스승인지 알 것 같았다.

이광과 달리 제자를 진심으로 생각하긴 한다. 그러나 그 방법이나 전개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무식함과 똘끼가 존재했다. 그리고 제자의 고통에 상당히 심드렁하고 방관적인 일면조차 있었다. 어째서 청 자 항렬 무당파 고수들이 명룡자를 두려워하는 기색인지 알 것 같았다.

"으어어어어..."

얼굴을 땅바닥에 박은 채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또 반죽음 상태로 동굴에 돌아온 것이다.

' 윽... 속이 아파...'

폐부를 찌르는 듯한 고통!

이틀 째가 끝나자 나는 왠지 내장이 망가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무량신공이 대단해도 이 무시무시한 소모도에서 인간의 몸을 완전히 보호해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이 목갑에서 힘겹게 침구를 꺼내서 내 몸의 경혈을 자극했다.

의술의 경혈을 이용해서 임시방편으로 내공을 회복시킨 후 진기도인법으로 내장을 치유했다.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 으윽... 폐도 약간 다쳤고... 비장과 췌장에 염증이 생기고... 경락이 몇 군데 끊어졌어... 심장도 약해졌구나.'

나는 급히 침술로 염증을 완화시키는 혈도를 누르고 경락도 회복시켰다. 그렇게 약 한 시진동안 필사적으로 자가치유를 하자 좀 상세가 누그러들었다. 나는 치유를 끝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정말... 고려에서 의술을 배워오지 않았다면 여기서 또 어이없이 죽었겠군...'

무슨 무당파 도인의 수련법이 이렇게 과격하단 말인가?

보통 사람이라면 지금쯤 한 다섯 번은 죽었을 것이다!

그 때 당장은 의술이 의미없이 보였지만 이런 데서 내 생사를 좌우하는 도움을 주는 것이다. 나는 이대로 수련이 계속되면 어느날 갑자기 덜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걸 예감하고는 뭔가 대비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나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화타의술비전 중에서 좋은 해결책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화타오금희(華?五禽戱)

비기(秘技)

장사(?死)의 술(術)!

스으으으

나는 내게 주어진 휴식시간 동안 단순히 자는 게 아니라 최대한 수면시간을 활용하기로 했다. 화타일족에게 전승되는 체술인 화타오금희 중에는 동물의 형상에서 본뜬 비기가 있었고, 그게 바로 이 장사의 술이었다.

나는 정해진 비기의 호흡대로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서서히 의식이 사라진다.

그리고 내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정확하게 세 시진의 시간이 흘러 있었다. 수련시간보다 빠르게 깨어난 나는 몸의 상태를 다시 점검했는데, 확실히 완전회복 되어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좋아!"

장사의 술이란 바로 동물처럼 죽은 척 동면상태가 되는 것!

주로 화타의술을 전승받은 의원이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구명절초였으나, 여기에는 휴식시간동안 몸을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효과도 함께 있었다. 나는 장사의 술을 이용해서 신체의 손상을 빠르게 치유한 것이다. 왠만한 내공심법의 효과보다 압도적으로 좋은 회복효과가 있었다.

사실 엄청난 내공을 지니게 된 후에는 이 술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이런 데서 아주 요긴하게 쓰이는 것이다! 나는 나중에 화서명에게 한층 더 고마움을 표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휘두른다!

나는 휘두른다!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

휘두른다!

나는 휘두른다!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

......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

죽고 또 죽고 계속 가사상태를 느낀다.

나는 문득 짜증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미 뇌가 미쳐버렸을 것이리라.

언제 끝나지...?

내가 펼치는 게 초식이긴 한 건가...?

나는 왜 이러고 있었지?

나는 벌써 오백 번이 넘게 반죽음을 거듭하고 있었고, 시간이 며칠이나 지났는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확실한 것은 초장에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며, 명룡자의 눈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무념무상의 시간이 흘러갈 때였다.

"......?"

윤회.

전생(轉生)·재생(再生)·유전(流轉)이라고도 한다.

불교에서는 윤회하는 세계에 지옥, 아귀(餓鬼). 축생(畜生), 아수라(阿修羅), 인간, 천상(天上)의 육도(六道)가 있다고 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 - 왜 내가 휘두르는 육합검법의 검극에 그 육도의 윤회가 비쳐보였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이내 나는 내가 허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무의 근원 속에서 떠돌면서 보는 것은 허무밖에 없다.

몸이 사라지고, 노력도 사라지고, 마침내 삶조차도 스러져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희미한 의식이다. 수백여년의 영겁에 이르는 정신은 자연에 쓸려나가지 않고 남아있다.

죽음이라고 본다면 가장 확실한 죽음이다. 생명이 사라지는 현상을 입몰(入歿)이라고 한다면 몸조차도 사라진 지금은 입몰이 끝난 상태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의식이 남아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몸은 없지만 의식은 존재한다. 이런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몸이 있는지 살펴 보지만, 역시나 몸 따위는 없다.

의식은 생각하는 속도를 따라서 어디까지든 움직일 수가 있다. 나는 의식을 따라서 하늘을 향했다. 혼은 하늘로 향하고 백은 땅으로 향한다는 이론에 비춰볼 때, 나는 혼(魂)이 된 것 같다.

난 죽은 걸까?

더 이상 회귀전생을 거듭하지 않고 죽은 걸까?

새삼스럽지도 않은 일이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지만, 문득 그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는다고 한다면 이렇게 거창한 현상이 일어나지는 않기 때문이다. 외양간의 천장을 쳐다보면서 왜 죽었는지 곱씹고 있을 것이다.

아.

그렇다.

그저 내 정신이 내 몸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구나.

스스스스

그 순간, 나는 왠지 비명처럼 외쳐왔던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라는 한 문장이 어떤 뜻인지 본질적으로 알 것 같았다. 모든 잡념이 제거된 상태에서 '휘두른다' 라는 하나의 동작만이 극히 찰나의 순간에서 영원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렇기에 모든 기력을 잊어버리고 하나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키잉!

예리한 송곳보다 더욱 날카로운 집중력은 이윽고 검 끝에서 의념의 실을 뭉쳐버렸다. 실은 빛의 구체가 되어서 빛나더니, 이내 검신(劍身)을 타고 흘렀다. 시퍼런 빛을 내뿜던 그 실은 더욱 두툼하고 견고한 형태를 띄더니 한없이 투명하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스아아앗

"아...!!"

의식이 몸으로 돌아온다. 나는 홀황경 속에서 한숨을 토해내었다.

검강이다!

내 검은 분명히 검강을 이루고 있다(劍氣成?)!

그것도 지금까지처럼 내공을 무진장으로 소모하며 억지로 비벼낸 게 아니라 내공의 부담도 거의 없는 진짜 강기였다.

나는 그 백색의 빛을 바라보며 믿겨지지 않아서 눈을 꿈벅거렸다.

내 옆에는 어느 새 검마와 명룡자가 다가와 있었고, 그들은 거의 동시에 말했다.

"해냈구나!"

"훌륭하다!"

그들은 잠시 서로를 머쓱하게 바라보더니 내게 말했다.

"정말... 미친 수련법인데 그걸 해냈구나."

옆에서 보던 검마는 황당해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는 기색이었다.

"후! 나는 성공할 줄 알았다!"

명룡자는 자신있게 이야기했지만, 사실 내가 별도의 의술을 구사하며 악바리로 버티지 않았으면 예전에 죽어버렸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지금도 명룡자가 얼떨떨한 표정인 걸 보면 그 또한 성공할거라고 생각지 못한 듯 하다.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었다. 그동안의 혹사 덕분인지, 지금 내 몸은 내공이 한계치까지 떨어져 있는데도 피로도를 가볍게 버티고 있었다. 아니 - 실제로도 내공의 절대치가 많이 늘어나버린 느낌이다.

' 가혹한 초회복 과정 때문에 천년설삼의 기운이 더 강하게 용해된 건가...?'

콰칭

내가 검강을 거두자 그 백색 빛은 빠르게 사라졌다. 검기나 검염과는 다르게 검강은 그 자체로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감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으로 의념세계의 전투에서 초보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으리라.

나는 내 몸에서 퀘퀘한 악취와 피딱지가 온통 묻어있는 걸 알아챘다. 나는 내 몸의 냄새가 마치 걸레 빤 냄새를 몇십 일동안 버무린것보다 더한 악취라는 걸 알아채자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윽...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겁니까?"

"대략 석 달 정도 지났구나."

"... 네? 그렇게 많이 흘렀다는 겁니까?"

횟수로 체감해볼 때는 길어야 보름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흐른 것이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명룡자가 말했다.

"보아하니 반죽음 횟수를 착각했군. 네 녀석은 어느 순간부터 의식을 잃고 초식 휘두르는 기계처럼 되어서 건조하게 수련만 했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검강을 깨달은 것이다."

"부, 분명히 도중에 깨어나서 의술처치도 했는데."

"네녀석이 뭘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생존본능만으로 시전한 게 아닐까? 지금 네 녀석의 시간감각은 틀림없이 고장나 있을거라 생각한다."

"......"

황당한 일이었다.

그러면 나는 이성도 없이 육합검법만 수천 번을 휘두르며 초회복을 반복했다는 소리인가?

내가 할 말을 잃자 검마가 빙긋 웃었다.

"석 달이면 굉장히 빠른 시간이고 속도일세. 자네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해도 돼."

"그런가요..."

"물론. 그 미친 수련법을 버텨낸 자네는 이미 초인(超人)일세."

검마는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자,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수련에 들어가세. 나와 명룡자는 그 동안 천축검과 굴공검을 계속해서 연구했고 예전보다 한 단계 나은 경지를 발견했네. 자네에게 곧 그 심득을 알려줄 것이네."

"정말입니까?!"

나는 듣던 중 기쁜 소식이라 반겼다. 그러자 검마가 내게 확신을 주었다.

"물론. 게다가 자네는 이제 검강을 깨달았기에 우리의 심득을 전해받을 때 손쉽게 얻을 수 있을거라네."

"다행이군요."

"흐하하, 다행이다 뿐인가."

검마는 껄껄 웃었다.

"검강을 시전할 수 있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르겠나? 자네는 이제 천하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무예의 명인(名人)이 된 것이란 말일세!"

"......!!"

명인!

나는 그 단어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천지간에 달인이라 자칭하는 자는 많으나, 달인 중의 달인인 명인위를 얻은 무술인은 천지를 뒤져도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내 무예의 경지가 이제 초절정고수 중에서도 최소 중급 이상이 되었다는 의미였고 전반적인 무공이 한단계 끌어올려졌다는 뜻이었다.

============================ 작품 후기 ============================

전생검신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