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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명룡자의 요구는 육합검법을 내공이 떨어질 때까지 쓰라는 것!
당연히 여태 생각도 안해본 수련법이었기에 나는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렇게 해야합니까?"
내 질문에 명룡자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네 녀석은 지금 자신의 무공이 어떤 특징이 있다 생각하느냐?"
"그야 뇌신류의 무공을 기반으로 무당파의 절학을 섞은 것입니다만..."
"아니. 내가 보기엔 거기에 서너가지가 더 섞여 있다. 상당한 현기(玄氣)가 섞여있기도 하고 다른 무예의 요결도 이따금 사용하고 있지. 내 말이 틀렸느냐?"
"......"
"잡스럽지. 뇌신류와 무당파의 달인이 아니라면 네가 어느 한쪽 문파라고 단정짓기 힘들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듣자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나는 지금까지 무공을 높이면서 여동빈의 천둔검법의 비결을 접목시키기도 했고, 창술이나 권술의 수법을 검술에 많이 섞기도 한 것이다. 명룡자가 말을 이었다.
"물론 큰 문제는 없지만, 네 무공은 하나의 맥을 탄다기 보다는 많은 뿌리가 공존하고 있는 형태이다. 네 무공에서 뇌신류 무공과 무당파 절학을 정확히 나눌 수 있겠느냐? 그 하나하나의 연원을 네 스스로 모두 파악하고 있느냐?"
"... 아니오."
"네 재능이 뛰어나다면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재능이 뒤쳐지기 때문에, 지금 이 특징이 단점이 되어서 네 성취를 얽어매고 있다."
명룡자가 말했다.
"네가 검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잡다한 무공의 기억이 네 깨달음을 분산시키기 때문에, 기(氣)와 의(意)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할 수가 없는 거지. 난잡한 무예의 맥이 커다란 한걸음을 가로막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방금 말했지 않느냐? 육합검법을 펼쳐라."
그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빛났다.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웠던 것이 바로 육합검법! 너는 내공조차 모두 소진한 무아지경에서 몸의 기억을 추슬러서 잡념을 떨치고 의(意)를 얻어야 한다. 마침 가장 단순한 것이 육합검법이니 이런 극한 수련에는 제격이지."
"......"
"잡념을 일소하고 기예를 잊어버리고 뜻 하나에만 집중할 때 검강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론은 알겠다.
그리고 무술의 경험에 비춰볼 때, 명룡자의 이론이 아주 일리가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설득력도 있었다.
' 무... 무섭다.'
하지만 나는 수련과정이 얼마나 혹독할지를 예감하고 치를 떨었다.
지옥훈련이 무엇인가.
말 그대로 인간이 지옥에 빠지는 고통이 느껴진다고 해서 지옥훈련이다. 보통 사람이 지옥훈련을 했다가 죽어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나는 예전에 검마와 한 달간의 지옥훈련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신물을 토하고 깼다 기절하고 어지러움과 두통에 눈물을 줄줄 흘렸다. 왠만한 무술인들도 사나흘만 하면 학을 떼며 튀어나갈 정도로 괴로운 일이었다. 체력이 다 소모되어서 근육이 풀릴 정도로 혹사된 상태에서 또 죽어라고 일어나야 한다.
그 과정을, 언제가 될지 모르는 한계까지 계속해서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내공이 완전히 소진된 상태에서는 체력이 더욱 쉽게 깎이고, 결국 악만 남은 상태에서 전신을 뒤덮는 피로와 고통에 정면으로 대항해야 한다. 그 때의 참담한 괴로움은 차마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전신의 근육이 당장 쓰러져서 죽은듯 쉬어야 한다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으면 이해를 못 한다.
명룡자가 훗하고 웃었다.
"날 원망하지 마라. 원래 검강이란 건 이런 식으로 익히는 게 아니라 의념의 깨달음을 서서히 응용하게 만들어서 얻는 것이다. 그러나 오성이 부족한 네게는 특별요법을 쓸 수밖에 없다. 감수해야만 할 것이다."
"... 정말 다른 방법이 없습니까?"
"글쎄. 한 100년 정도 무념무상으로 칼만 휘두르다보면 되겠지. 네게 그럴 생각이 있다면."
아무리 그래도 100년동안 칼만 휘두를 수는 없다. 나는 결국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 라는 변명은 지금 통하지 않는다. 지옥훈련을 하느니 맘 편하게 죽는게 낫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힘을 얻어야 할 이유가 있었기에, 나는 도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굴공검의 전수를 받은 후 명룡자에게 가서 집중지옥훈련을 받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첫 날, 나는 코피를 흘렸다.
"으흑."
"왜? 육합검법이라고 해서 내공을 소모 못할 줄 알았냐?"
옆에서 보고 있던 명룡자가 이죽거렸다.
"그게 아닌건 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명룡자의 말대로였다. 그냥 보통의 기를 불어넣어서 휘두른다면 육합검법을 칠주야 내내 휘둘러도 체력과 내공이 도로 차겠지만, 지금 나는 뇌명을 넣어서 급격히 내공을 소모하면서 육합검법의 단순한 초식 하나하나에 엄청난 내공을 불어넣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수련하면 반 시진도 안되어서 체력과 내공이 모두 동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탈력해서 주저앉은 상태로 코피를 닦아내자 명룡자가 말했다.
"혼자 회복하는건 시간이 걸릴테니 내가 도와주지."
파아아앗!
"......!!"
나는 명룡자가 근처에 다가와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기운을 불어넣자, 즉시 기운이 맥동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내공이 차는 걸 느꼈다. 놀라서 그를 돌아보자, 명룡자가 피식 웃었다.
"무당파 비전의 무량신공(無量神功)의 공능이다. 회복을 촉진시켜주지."
"이... 이건."
나는 할 말을 잊었다.
엄청난 진기회복력!
아무리 내 내공이 엄청나고 자가회복속도가 빠르다고 해도, 무량신공의 자극력은 상상을 뛰어넘었다. 나는 채 반 각도 되지 않아서 내 전체 내공의 절반 이상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 것이다.
나는 순간적으로 두려워졌다.
' 뭐야? 현천신공의 진기도인결만으로도 뇌신류 무공에 접목해서 백웅결을 만들 정도였는데... 현천신공보다 더욱 뛰어난 내공이 무당파에 존재했다는 말인가?'
가히 정종신공(正宗神功)!
일점의 파괴력에 있어서는 천하의 다른 내공에 조금 뒤질지도 모르지만, 그에 못지 않은 현기와 응용력과 발전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는 게 무당파의 내공이었다. 무당파의 내공심법이 천하일절이라는 건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약 한 식경이 지나자 다시 수련이 가능한 상태가 되어서 일어설 수 있었다. 명룡자는 팔짱을 낀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정신 차려라. 아직 시작도 안 했어."
"네."
"너는 초식 하나하나를 펼칠 때 너무 많은 변수를 생각한다. 오랜세월 훈련받은 영향으로 그 생각은 그대로 초식에 적용되어서 빠르게 펼쳐지지. 그리고 그건 기(氣)를 움직이는 방식이지 의(意)를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검강의 성취와는 멀어지는 일이다."
그가 검지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하나! 단순한 육합검법을 펼치면서 단 하나만 생각해라. 자신의 의(意)를 검극(劍戟)에 담는다고!"
"네!"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
자신의 뜻을 검 끝에 담는다!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듯이 되뇌이며 육합검법에만 몰두했다.
문득 상념이 들었다.
' 이 육합검법은 죽으나 사나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구나.'
설마 지금에 와서야 육합검법을 죽을동살동 수련하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참 지긋지긋한 인연이었다. 하지만 이게 강해지기 위한 길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무려 반 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몸에서 붙였던 검법이기에 종래에는 무아지경에서 펼치게 되었다.
명룡자에게서 받는 수련이 끝나면 다시 굴공검의 진수를 배우러 검마에게 갔다. 검마는 전신이 땀으로 젖어서 엉망이 되어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근처에 개울이 있으니 씻고 오게."
"죄송합니다."
내가 씻고 오자 검마가 말했다.
"이 정도로 혹독할 줄은 예상도 못 했는데... 일정을 바꿔야겠군."
"네?"
"일단 오늘은 쉬게. 그리고 내일부터는 명룡자에게서 하루종일 훈련을 받게."
"......!!"
검마는 고개를 저었다.
"굴공검의 요령을 전수하는게 지금 상태로 봐서는 해가 되겠군."
검마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내심 뼈아프게 느껴졌다.
' 언제 성취할지도 모르는 검강지기 때문에 실전적인 굴공검의 요령을 늦게 배우는 건가?'
크게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내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자 검마가 허허 웃었다.
"힘이 많이 빠진 듯 하니 힘이 되는 얘기를 해 주지. 자네는 검강을 지닌 자가 그렇지 못한 자보다 얼마나 이점을 갖게 되는지 알고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만났던 강기경의 고수들은 하나같이 내가 상대하기에는 까마득한 강자들이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강기의 위력을 비교해 볼 엄두도 못 냈다. 강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도 그런 무지에 한몫 했다.
검마가 말했다.
"강기를 사용할 수 있는 순간부터 절초의 공격력은 몇 배가 된다고 보아도 좋네."
"으음..."
"여하튼 강기 또한 의념을 사용해서 발휘하는 것이니 말일세. 단지 효율이 매우 좋은데다 성능이 준수한 의념절기라고 할 수 있겠군."
나는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검강이 의념절기의 일종이라면, 제가 내공을 극한으로 모아서 구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검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쉽게 생각하게. 의념을 이용해서 검강을 형성하면 1의 노력으로 100의 힘을 얻는거지만, 내공을 이용해서 형성하면 100의 노력으로 100의 힘을 얻는거지. 그저 효율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네."
"......"
"물론 자신이 익힌 무공이나 내공의 특성에 따라 편차는 있을 수 있네만..."
그렇게 여운을 남긴 검마가 말했다.
"확실한 건 자네가 이광을 이기려 한다면 검강은 반드시 습득해야만 하네."
그는 내 심리를 파악하고 있다. 나는 숨기지 않고 긍정했다.
"그렇겠지요."
"이광은 단순히 창으로 강기를 만들어내는 걸 넘어서서 의념절기와 필살기, 심지어 심적권청 공간에서 허실을 자유자재로 시전하는 초고수 같더군. 나 또한 그와 싸우면 승패를 가리기 힘들 것일세.."
나는 얼굴이 무거워졌다.
그런건 검마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수십여 년을 옆에서 보아오면 싫어도 알게 되는 것이다. 이광을 이길만한 고수는 천지사해를 통틀어도 얼마되지 않았다.
지금의 내 무공 또한 왠만한 절정고수를 가볍게 꺾을 정도이지만 이광의 진심어린 공격을 백 초 이상 받아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일개 무관의 관주라고 자신을 숨기고 있을 뿐 천하를 오시하는 초절정고수가 바로 이광이었다.
' 하지만 나는 그 자를 꺾고 말 테다. 반드시... 한 방 먹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지옥훈련을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힘들고 보잘것없는 한 걸음을 쌓아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광의 뇌공섬을 내 검강으로 반격할 수 있는 수준이 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광과의 대결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내 눈에 결연한 각오가 스쳐지나가자 검마가 말했다.
"힘 내게."
그가 껄껄 웃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는 일이겠지.
나는 검마의 한 마디에 마음이 약간 편해지는 걸 느꼈다. 아무리 대단한 고통과 절망이 있어도 결국 거대한 인생의 흐름속에서 스쳐지나가는 구간에 불과하다. 다른 그 누구보다도 내게 희망을 주는 말이었다. 전생자를 위한 구절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나는 반죽음을 거듭하면서 육합검법을 펼치고 또 펼쳤다.
"으아아아아!!"
절규하듯 육합검식을 오십 번째 펼치고는 탈진해서 쓰러졌다. 눈물콧물이 다 나오고 신물이 혓바닥에 감돌았다. 내 몸은 이미 한계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 이건 미친 짓이야!!'
예전에 십만 번 베기를 할 때에 비하면 초라한 횟수 같았지만, 달리 말하자면 내가 내공과 체력을 완전히 소모한 횟수가 50번씩이나 된다는 뜻이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인도 하루만에 이렇게 소모와 회복을 거듭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가공할만한 회복횟수는 명룡자의 무량신공 덕에 가능한 것이었다. 무량신공으로 내 체력과 내공을 회복시켜준 명룡자가 클클 웃었다.
"초회복(超回復)이라는 현상을 들어본 적 있느냐?"
"......"
내가 바닥에 누워서 힘을 회복하느라 대답을 못 하자, 명룡자가 말을 이었다.
"너도 알고 있겠지만 근육이란 건 극한까지 혹사를 하고 나면 다시 회복될 때 한층 더 강인해지지. 나는 이걸 초회복이라고 개인적으로 부르고 있다. 이게 근육 뿐만이 아니라 체력 전반에 적용되는건 알고 있을 게다."
"......."
대답할 기력도 없다.
"물론 내공의 고수인 네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근육이 한계까지 혹사하기 전에 본능적으로 내공이 기를 움직여서 몸을 보호해 주니까. 하지만 내 생각에 이 초회복이라는 건 추상적인 무술경험에도 적용이 되지 않을까 한다."
"무슨... 소리..."
"한계까지 모든 걸 소모하면서 목숨만 간당간당하게 붙어있는 상태를 계속 반복하다보면 재능이나 오성과 상관없이 무공이 늘어날 거라는 가설이다. 몸의 방어본능이 계속해서 너의 투쟁본능을 자극하기 때문이지!"
그 순간 나는 기가 막혔다.
설마 그 가설 하나를 믿고 나를 끊임없는 반복소모의 무한지옥에 내던졌단 말인가? 만일 실패한다면 내 몸이 맛이 가거나 도중에 내가 진짜 죽어버릴 수도 있는데? 아무리 무량신공으로 날 회복시켜줄 자신이 있다고 해도 믿기지 않는 소리였다.
명룡자는 한층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오십 번이다."
나는 겨우 목을 들어서 말했다.
"대... 대체... 내게 이 미친 짓을 몇 번 시키려는 거..."
각오를 했는데도 목소리가 떨린다.
지금까지 쏟은 피로도만 해도 북극까지 1차 횡단을 할 때 겪었던 피로도에 맞먹는다. 달리 말하자면 이 지옥수련을 하느니 차라리 북극까지 달리기를 하겠다는 소리다. 내가 기가 질려서 중얼거리자 명룡자가 말했다.
"음... 나도 잘 모르겠군. 하지만 아무리 네가 둔재라도 천 번쯤 죽다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정도 하면 어떻게든?"
"......!!"
수많은 죽음을 겪어본 나였지만 그 말에는 등골이 오싹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자,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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