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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26화 (22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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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우선 명룡자에게도 내 사정을 설명하기로 했다. 물론 명룡자에게는 검마처럼 흑요석의 기억을 보여주는 게 너무나 위험한 일이었으므로, 내가 과거 뇌신류의 제자였으며 이런저런 일을 거쳐왔다는 정도를 이야기해 준 것이다.

명룡자가 얼추 납득한 후, 나는 그들 앞에서 재차 장삼봉의 절학을 펼쳐냈다. 만 하루 동안은 검마와 명룡자가 그저 내 절학시전을 지켜보고 침묵한 채 생각에만 잠겨 있었다.

' 앞으로의 수련방침을 정하려는 거군.'

그 날은 명룡자가 갖다준 선식과 채소, 벽곡단을 먹고 편하게 잤다.

[ 이봐. 잠깐 나와보거라.]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명룡자가 따로 전음으로 부르길래 나갔다.

명룡자는 새벽의 호수 앞에 서서 내게 말했다.

"네 녀석은 무쌍패(無雙覇)를 뭐라고 생각하느냐?"

뜻밖의 질문이었다. 당연히 굴공검이나 천축검의 심득이나 묘결에 대해 질문할 줄 알았는데 무쌍패라니?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엄청나게 패도적일 것 같습니다. 아마 의념절기(意念絶技)겠지요."

"하지만 너도 검마도 무쌍패를 펼칠 수 없지."

"네 그렇습니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

내가 알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무쌍패를 수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장삼봉의 절학을 수련한지도 꽤 시간이 흘렀지만 무쌍패에 대해서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것은 뇌신류의 천재들이나 검마조차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침묵하고 있자 명룡자가 말했다.

"무쌍패는 당분간 생각하지 말아라."

"쓸데없는 일에 관심가지지 말라는 말씀이십니까?"

"검마는 네가 잘못된 스승 밑에서 끝없이 견제받았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 말을 의심할 수도 있지만, 이건 순수한 충고로 들었으면 한다. 지금의 네가 쓸데없이 무쌍패를 의식하면서 수련하는 건 역효과일 뿐이다."

"......?"

역효과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명룡자가 말을 이었다.

"평생 무당파의 무공을 익혀온 나라고 할지라도 이 생의 끝에서나 무쌍패를 얻을까말까 할거란 말이다. 우리 셋 중 그 누구라고 하더라도 그 기술을 익히는 건 버거운 일이다. 무시무시한 난이도라고 할 수 있지."

"그 정도입니까?"

"그래."

명룡자는 힐끔 내 얼굴을 살펴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 납득 못하는 표정같으니 기준은 제시해 주마."

"기준?"

"검천(劍天)을 이루어라. 그 수준이 되면 비로소 무쌍패를 연구할 자격이 생길 것이다."

검천이 무엇인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질문하자 명룡자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건 저기 검마 녀석에게 물어봐라."

아니나 다를까, 약 이십 장 밖에서 천천히 검마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 또한 나와 명룡자가 만나는 걸 먼 발치에서 보고 있었던 듯 했다. 검마는 껄껄 웃으며 말했다.

"명룡자. 그 정도 이야기라면 내가 있을때 해도 상관없지 않소?"

"네 녀석은 이 꼬맹이의 수련진도를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꽉 차있더군. 네 수고를 덜어줬을 뿐이다."

"하하... 고맙소."

검마는 처음부터 다 듣고 있었던 듯 했다. 그의 무공이 심후해서 천리지청술 정도는 가볍게 쓸 수 있는 것이다. 검마는 내 쪽으로 걸어와서 말했다.

"명룡자의 말이 맞네. 검천을 이루기 전에는 무쌍패를 생각하지 말게."

"검천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의념을 담아서 초식을 의념절기로 만드는 단계는 예전에 설명했지."

"네."

"그 단계를 넘어서서 추상화된 상상력을 현실에 구현화시키는 단계일세. 본격적으로 필살기(必殺技)라고 칭할만한 기술을 얻는 단계를 뜻하지."

"......!!"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검천이 어떤 단계인지 알 수 있었다.

이광이 펼치던 뇌공섬 혹은 검마의 이기어검처럼 강대한 위력을 현실에 드러내는 극강의 의념절기! 그걸 펼칠 수 있는 무공수준을, 검술가들이 검천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그건 단순히 초식에 의념을 섞어서 강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를 게 분명했다.

나는 그 말의 속뜻을 알아챘다.

"그건... 이광급 고수가 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네. 무쌍패는 현 무림의 최절정을 달리는 수준이 아니면 연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보니까."

"......"

나는 두 고수가 내게 일부러 이런 충고를 해 주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무쌍패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점이 많은 신비한 무학이기 때문에, 검학을 수련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내가 무쌍패에 혹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익힐 수도 없는 높은 절학에 욕심을 부리기보다는 검술에만 집중하라고 미리 지침을 준 셈이다.

' 노력해야겠군.'

그리고 셋이 모인 김에 새벽부터 수련이 시작되었다.

우선 수준이 떨어지는 나는 굴공검과 천축검을 명룡자에게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명룡자는 반나절 동안 계속해서 내 동작을 관찰하고 비결을 전수받다가 말했다.

"역시 기본요결은 본파에 있던 것과 큰 차이가 안 나는군."

"그렇습니까?"

굴공검과 천축검은 무당파에서 제대로 전승되어 온 모양이었다. 명룡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만일 장삼봉 진인께서 굳이 굴공검과 천축검을 남겼다면, 좀 더 고급응용편에 그 이유가 있을 것 같구나."

나는 그 말을 듣고서는 내 머릿속에 있는 장삼봉 진인의 심득 중 굴공검과 천축검의 응용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딱히 그렇게 칭할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명룡자는 씁쓸하게 말했다.

"그냥 본파의 명맥이 끊어질 것을 우려하신 모양이구나."

"그럼..."

"내가 굴공검과 천축검에 있어서 네게 가르침받을 건 딱히 없다. 나머지 진무칠절경(眞武七絶經), 현천오신결(玄天五神決), 태극요지유검(太極曜志柳劍), 칠성둔영(七星遁影)을 내게 좀 더 상세히 알려다오."

나는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명룡자에게 무공을 전달했다. 그 과정이 끝나고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야 검마에게 본격적으로 무공수련을 받을 수가 있었다. 검마가 히쭉하고 웃었다.

"후후. 마음같아서는 하루종일 무공수련을 하고싶을 텐데 명룡자에게 붙들려 있으니 괴롭겠군."

"아... 그건."

나는 눈치를 살폈다. 명룡자는 약 오십 장 밖에서 혼자서 오늘 전수받은 절학을 수련하고 있었지만, 그 또한 대단한 고수이기에 우리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검마는 도리어 그게 재밌는지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명룡자는 굴공검과 천축검 하나에 있어서는 우리 중 누구보다도 진도가 앞서나가 있으니, 그가 나머지 절학을 공유해야 우리도 그 떡고물을 얻을 수 있는 것일세. 대략 두세달 정도는 명룡자에게 투자하는 시간을 아깝게 생각하지 말게."

"알겠습니다."

"그럼 수련을 시작하지."

타다당

나와 검마는 가볍게 대련으로 수련을 시작했다. 무영문에서도 했었던 일과였기에 딱히 새로울 건 없었다. 단지 내가 의념을 이용한 기본적인 공방이 가능하게 되었으므로, 이제 백 초를 버티는 정도는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몸풀기 대련이 끝나자 검마와 마주보고 좌정한 채로 이야기를 했다.

"심(心)과 의(意)와 념(念)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겠지. 그럼 이제는 그걸 더욱 익숙히 하면서 초식에 자연스럽게 섞어보게."

"네."

"그렇게 하는 도중에 무엇이 가장 나은 의념절기인가를 스스로가 깨달으면 되네."

검마의 충고는 하나하나가 금과옥조 같았다. 나는 지금까지는 기본적인 공방에만 의념을 사용했지만, 검마와 대련을 하는 동안에 초식에 의념을 불어넣어서 강화하는 법을 숙련시키게 된 것이다.

그렇게 명룡자에게 무공을 전수하고 대련을 하는 나날이 지나다 보니 훌쩍 세 달이 지나 있었다.

명룡자가 절학을 곱씹다가 말했다.

"검마와 할 말이 있다. 그를 불러 다오."

"네."

나는 명룡자의 요청대로, 다른 곳에서 개인수련을 하고 있던 검마를 불렀다. 검마와 명룡자는 이내 어딘가 더욱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아무래도 굉장히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는 듯 했다.

그들이 반나절 후 되돌아온 후 내게 말했다.

"오늘부터 자네에게 굴공검의 응용을 가르쳐 주겠네."

"응용이라고요?"

"물론 의념절기로서의 응용이다."

내가 지금까지 사용하던 표상적인 효과가 아니라, 본격적으로 굴공검의 진수에 들어간다는 걸 의미했다. 그렇게 말한 검마가 명룡자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전수하는 시간이 끝나면 명룡자에게 검강(劍罡)을 배우도록 하게."

"......!!"

나는 그 말에 전율했다.

검강!

그것은 검술에서 가장 지고한 경지 중 하나로써, 어찌보면 이기어검에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 가공할 경지였다. 강기경을 이룬 무인은 어디에서나 우러름을 받았으며 평생 한 번도 강기경의 무인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 지금까지는 내공으로 억지로 형성시킬수밖에 없었는데... 제대로 검강을 쓸 수 있게 되는건가!'

진짜 강기는 검기나 검염같은 기술과 차원이 다르다!

나는 마음속으로 벅차올랐지만 의문이 들어서 검마에게 말했다.

"왜 굳이 명룡자 님께 배워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내 질문은 꽤 당돌했고 명룡자에게 무례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제대로 묻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자 내 질문에 검마가 씁쓸하게 대답했다.

"물론 나도 자네에게 검강을 가르쳐줄 수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당파의 진신절학을 계승하고 있는 명룡자에 비할 순 없네. 무공이 아니라 체계화된 교수법과 경험의 차이라고 할 수 있지."

"아..."

"그는 천하에서 가장 쉽게 고급검학을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네. 나보다 훨씬 빠르고 쉽게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네."

옆에 있던 명룡자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송이, 영광으로 생각하거라. 내게서 검강을 제대로 배운 놈은 청풍자 외에는 한 놈도 없었으니."

"네..."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할 말이 없다. 청풍자는 현 무림의 초절정고수이자 무당파의 장문인데 그를 애 취급 하는 게 명룡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먼저 검마에게서 굴공검의 응용을 배웠다.

"자네는 굴공검을 여태껏 초식의 궤도를 약간 변화시키는 용도로밖에 사용하지 못했지. 하지만 굴공검의 진수는 그런 게 아니야."

쉬쉭!

검마가 무영탈혼검을 펼쳤다. 그리고 중간정도 전개되었을 때, 갑자기 뭉그러지듯이 검마의 모든 검로(劍路)가 제멋대로 꼬이고 왜곡(歪曲)되었다. 일반적인 검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전개였고, 이내 검마가 두세 개의 분영(分影)을 만들어 내어서 검기를 쏘아내자 행로를 추측할 수조차 없었다.

파파파팟...

겨우 열두 번의 초식일 뿐인데 몇 개의 변화가 섞인 걸까? 내가 멍하니 그 환상적인 변환검로를 쳐다보자 검마가 움직임을 멈추며 말했다.

"굴공검의 진짜 위력은 의념을 이용해서 언제 어디서든 공간을 뒤틀어서 공격방향을 달리 할 수 있다는 것일세. 굴공검을 완전히 익힌다는 건 변(變)과 환(幻)에 달통한다는 것과 같은 뜻이야."

"굉장하군요..."

"자네는 이제 의념의 활용에 익숙해졌으니 이 응용법을 배울 수가 있네. 오늘부터 최소 1년을 잡고 굴공검의 응용을 배워보게."

"네!"

"이걸 다 하면 천축검도 가르쳐 주지."

나는 굴공검의 응용을 배운 후에는 해가 지고 난 후 횃불 아래에서 명룡자에게 검강지기를 배웠다. 명룡자는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틀려먹었군! 이 멍청한 놈!"

퍼억

명룡자는 난데없이 달려들어서 나를 발로 차 버렸다. 나는 맞아서 날아가다가 허공에서 중심을 잡아서 다시 착지했다. 때리는 속도가 너무 가공해서 대항하기가 힘들 정도였으니, 과연 명룡자는 대단한 고수였다.

나는 항의했다.

"뭐가 틀려먹었습니까? 시키는대로 최대한 검기를 강하게 만들었는데."

"으으... 네 녀석 의념을 쓸 줄 안다면서 대체 뭘 배운거냐?!"

명룡자가 답답한 듯 자기 가슴을 탕탕 쳤다.

"기(氣)가 아니라 의(意)로 하라고! 내공을 불어넣어서 기질을 형성하면, 그건 아무리 크고 강해봤자 검기다! 검강이 아니란 말이야!"

"......"

"제길! 말 좀 알아들어봐 이 놈아!!"

명룡자는 악을 쓰듯이 필사적으로 내게 검강의 요령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무당파에 비전(秘傳)되는 요결까지도 내게 가르쳐 줬다. 하지만 나는 그가 아무리 설명해도 검강이 뭔지 감조차 잡히지 않았다. 급기야는 나도 짜증이 나서 내공을 극한으로 불어넣어서 억지로 검강을 형성했다.

휘오오오 -

콰칭!!

"이, 이런 거 말하는 겁니까? 이거 검강 맞죠?"

"......"

명룡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머리를 짚었다.

"검강은 맞는데... 그건 그저 기가 한계점을 돌파했을 뿐이잖냐. 그건 실전에서 써먹을 수가 없다."

"으윽..."

"후우... 그래. 네 녀석이 둔재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

명룡자가 골치아프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또한 무당파에서 엄선된 기재 출신으로써, 여태껏 수많은 경쟁을 뚫고 최상의 경지에 오른 천재였다. 그리고 그가 가르친 자들 또한 무당파의 뛰어난 인재들밖에 없었으리라. 그런 그가 둔재인 나를 가르치는 건 벽에 대고 말하는 것과 다름없이 느껴질 것이다.

명룡자는 말했다.

"그럼 네게 맞춰서 진행해 주지."

"어떻게요?"

"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익혔던 검술이 무엇이냐?"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육합검법(六合劍法)입니다."

"익힌 시간은?"

"대략 십여 년은 됩니다."

첫번째 생에 먹고자고 무공만 수련한 것도 아니다. 순수한 수련시간은 십여 년이거나 조금 덜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자 명룡자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호오? 그거 참 재밌구만."

"뭐가 재밌습니까."

육합검법은 강호에서 가장 흔한 검법이며 대각선베기를 비롯해서 가장 기초적인 초식밖에 없었다. 삼척동자도 몇 번 보면 따라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했다. 그러나 명룡자는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 정도 숙련도라면 해볼만 해. 너는 오늘부터 육합검법에 의념을 실어서 내공이 떨어질 때까지 펼쳐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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