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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24화 (22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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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목갑에서 무영문도들을 해방한 후 다음날, 바로 무당파로 향했다. 무당파에는 이미 한번 가봤던 적이 있기에 즉시 황금비등을 이용해서 갈 수 있다고 검마에게 말했다. 그러자 검마가 잘 되었다는 듯 말했다.

"시간을 아낄 수 있겠군."

"명룡자를 찾아가는 이유는 역시 굴공검과 천축검 때문이지요?"

"그것도 있고, 그와 해보고싶은 이야기가 있네."

파앗!

비등을 이용해서 무당파 산문 앞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해검지가 나올 것인데 새벽시간이라 그런지 인기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약 이십 장 정도를 걸어가자 서서히 무언가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 문지기군.'

상당한 고수가 우리 기척을 발견하고 경계하는 게 느껴졌다. 눈치챈 것은 검마가 먼저인 듯,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어딘가로 전음을 보냈다.

스스스...

스산한 새벽의 산야에 한 도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모습은 내가 저번에 봤던 도사 무광(無光)같은 게 아니었다. 무자 항렬의 일류고수인 무당팔검(武當八劍)이 아니었다. 그렇게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눈 앞에 나타난 도인의 기력이 무광을 몇 배나 넘어서는 강력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명백히 절정고수!

귀밑머리가 새하얗지만 전반적으로 새까만 머리카락에 잔잔한 인상의 도인은 이쪽을 힐끔 바라보더니 말했다.

"본도는 현종(玄宗)이라 하오. 천하에 이름높은 검마(劍魔) 무영문주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현종 도인의 인사에 검마는 마주 포권했다.

"이쪽이야말로 무당파의 현종도인을 이런 자리에서 보게 될 줄은 몰랐소."

현종도인!

나는 그의 이야기를 현천도인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 현자 항렬 중에서도 특히 무공이 고강한 도인이라 들었다.'

무당파 현(玄)자배 항렬은 현재 무당파의 중진(重陣)으로써 장로직을 맡고 있었다. 현천도인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무당파를 나와서 도관을 만들었지만 현종도인은 현 무당파의 장로로서 무당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현자 항렬보다 한단계 높은것은 청자 항렬로써 청풍자를 비롯한 무당파의 장문인급으로써 전면에 잘 나서지 않으니, 실질적으로 천하무림에서 영향력이 높은 무당파 인물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천도인의 평가대로 현종도인의 기력은 매우 막강해 보였다. 정순하기 그지없는 무당파의 정종내공을 수십년간 익혔는지 웅혼한 기세가 풍기고 있었다. 무공의 실력으로 따지자면 초절정을 목전에 둔 절정급 고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종도인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새벽에 우연히 산문쪽을 산책하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당황스럽구려. 무영문주께서는 어인 일로 본파를 방문하셨소?"

현종도인과 검마는 구면인 듯 했다. 검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받았다.

"명룡자를 보러 왔소."

현종도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엇이? 설마 사숙조 님을 말씀하시는 것이오?"

"명자 항렬의 무당파 도인이 당금 무림에 한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렇겠지."

"돌아가시오."

현종도인은 더 듣지도 않고 축객령을 내렸다. 가당치도 않다는 기색이었다. 그는 매서운 기세로 이쪽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사숙조께서는 중요한 일을 하고 계셔서 일일이 외인을 만날 수 없소이다."

"그 일이라는 건 굴공검과 천축검의 복원이겠지. 그렇지 않소?"

"......!!"

"나는 그 일을 논의하러 왔소."

깜짝 놀란 현종도인이 뭐라 항의하기도 전에 무영문주는 사람나쁘게 씨익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어서 명룡자에게 데려다주지 않는다면 이대로 그 비밀을 강호에 퍼뜨릴수도 있는데 말이오."

"으윽... 감히 무당파 본산에서 협박이라니!"

"나와 명룡자는 어차피 구면이오. 그는 격의없는 사람이니 내 말을 더 쉽게 알아들을 것이오."

검마는 마치 현종도인을 농락하듯이 밀어붙이기와 풀어주기를 거듭했다. 현종도인은 검마의 화술에 말려들자 성이 난듯 미간을 좁히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절기의 비밀이 강호에 유출되는 건 더욱 두려운 일이었으므로 망설이는 듯 했다. 잠시 후 현종도인이 검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대는 그 비밀을 다른 누군가에게 이야기했소?"

"전혀.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는가?"

"... 좋소. 허나 만일 그 말이 거짓일 경우, 그대는 살아서 본산을 내려갈 수 없을 것이오."

"걱정말고 안내나 해 주시오."

"잠시 기다리시오."

파앗

현종도인은 갑작스럽게 무당파 제운종을 발휘해서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마 다른 무당파 도인, 혹은 현자 항렬의 장문인급 무당파 고수에게 이야기하러 간 모양이었다. 검마는 근처의 나무등걸에 편하게 걸터앉으며 피식 웃었다.

"똥줄이 타겠군."

"대단하시군요."

"현종도인 정도야 편하게 대할 수 있네."

"......"

현자 배의 도인이 대개 절정고수이자 무당파의 장로이며 천하를 오시하는 무림인들이란 걸 생각하면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말이었다. 특히 현종도인 정도의 실력이면 즉시 무당파를 나가서 따로 도가문파를 하나 설립해도 될 정도인 것이다. 사파제일인인 검마 서문대룡쯤 되니 현종도인을 쉽게 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약 두 식경 후 되돌아온 현종도인의 옆에는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고수들이 있었다. 현종도인은 마치 잡아먹을 듯 이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따라오시오."

"나를 전혀 못 믿는 기색이군. 설마 청일자(靑一子)까지 부랴부랴 데려올 줄이야."

"......"

그랬다.

현종도인이 데려온 여섯 명 중에서 다섯 명은 현자 배의 무당파 장로들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내가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 청일자였다. 청일자는 무당파 장문인 청풍자의 사제로써 명백히 초절정고수였다. 이 자리에 모인 무당파 도인들의 힘은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청일자는 우묵한 눈으로 검마 서문대룡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문주는 평소에 겸양하며 예의바르다 들었으나 살기를 곧추세우면 별호 그대로의 검마(劍魔)가 된다 들었소. 그리하여 그대를 경계하는 것이니, 부디 우리와 큰 충돌이 없기를 바라겠소."

"마음대로 하시오. 되려 나는 그대들이 나를 함정에 빠뜨리는 건가 의심스러울 정도인데."

"흥..."

청일자가 코웃음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앞장서서 일행을 인솔해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면서 생각했다.

' 장관이군.'

당금 천하무림에 이렇게 고수의 밀도가 높은 곳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절정고수가 쉽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득 이 자리에 모인 무당파 도인들이 무당파 전력의 몇할이나 될지 생각해 봤지만, 명룡자나 청자배 항렬의 힘이 추측되지 않아서 계산을 포기했다.

약 한 식경이 지나서, 우리는 왠 커다란 봉우리 앞에 도달했다.

"기다리시오."

봉우리의 중턱에 도달한 청일자가 절벽을 타고 올라가서는 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절벽을 타고 오르는데 손도 쓰지 않는 청일자의 경공은 대단하다고 할 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동굴에서 무언가 조그마한 것이 훨훨 날아서 이쪽으로 왔다.

타앗

무려 수십 장이나 되는 거리를 날아서 눈 앞에 착지했는데도 그 인영은 착지음조차 거의 내지 않았다. 명백히 허공답보의 경공이었다. 일행 앞에 나타난 조그마한 무당파 도복차림의 소년(少年)은 물끄러미 검마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애송이 놈, 무슨 속셈이냐?"

그러자 검마는 훗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속셈은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하니 당신네 제자들을 좀 치워 주시오."

명룡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너희는 모두 물러가라."

"사숙조!!"

현자 항렬의 무당파 장로들이 당황했다. 그도 그럴것이 사파제일고수인 검마를 홀로 대면하겠다는 명룡자의 행동이 위험해보였으리라. 명룡자가 신경질을 내려고 할 때 뒤따라 내려온 청일자가 말했다.

"알았습니다 사숙. 부디 조심하시길."

"그래. 청풍에게는 내가 따로 연락하마."

"네."

파앗

이윽고 청일자를 포함한 무당파 고수들이 장내에서 사라졌다. 명룡자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굴공검과 천축검? 검마 네놈은 무슨 농담이라도 하는 것이냐?"

"농담이 아니오. 한 번 보면 알 것이오."

검마는 명룡자가 뭐라 하기도 전에 검을 뽑아서 넓은 공터에서 천천히 검술을 시연하기 시작했다. 그의 검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고 평범한 사람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움직임이 느렸다. 절세검법이라고 보기 힘든 것 같았지만 실상은 그 내면에 굴공검과 천축검의 요결이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스아아아

"......!!"

검마가 무영탈혼검법이 요결을 섞어서 약 오십 초 정도의 시연을 펼치자 명룡자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잠시 후 시연을 끝낸 검마가 말했다.

"이제 좀 믿겠지."

"어떻게 얻어낸 거지?"

"이쪽의 백 호법 덕분이오."

명룡자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고 검마의 설명이 이어졌다.

"백 호법은 어떤 무당파의 유적에서 기억으로 전승되는 무공의 기연을 얻었소. 그 내용은 굴공검, 천축검, 진무칠절경, 현천오신결, 태극요지유검, 칠성둔영, 무쌍패였소. 나는 백 호법 덕분에 그 중에서 내게 큰 도움이 되는 굴공검결과 천축검결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오."

"믿기 힘들다."

"백 호법, 한 번 펼쳐보이게."

검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무당파 절학을 빠르게 펼치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이제는 아주 몸에서 다 외우도록 익혔기에 내 절학의 숙련도는 상당히 높아져 있었다. 오차없이 완벽하게 익힌 덕분인지 연계해서 펼치는 속도도 빨라져 있었다. 한 식경도 되지 않아서 절학을 다 펼쳐내버리자 명룡자는 탈력한 듯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

명룡자는 한참을 굳어있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

"빌어먹을! 어찌 무영문이 그 심득을 얻었단 말인가?!"

왠지 분통을 터뜨리던 명룡자가 갑자기 검마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애숭이 놈... 무슨 생각이냐?"

"무슨 생각이라니?"

"이 절학을 네놈이 독점해서 십여 년만 수련했다면 무공이 몇 배나 발전했을 텐데 굳이 이 사실을 내게 알려주러 온 이유가 뭐냔 말이다."

"지당한 의문이군."

검마는 씁쓸하게 웃더니 말했다.

"지금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기 때문이오."

"설마..."

"그렇소. 백련교가 이미 중원무림을 암중에 접수하기로 마음먹었소. 나 또한 현재 명목상 백련교의 산하로 들어가 있소이다."

"......!!"

명룡자는 그 말을 듣자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팔마회동이군. 호법사자가 직접 나온 거냐?"

"그렇소. 그것도 최강이라 불리는 수신류의 호법사자 독고준이 나를 굴복시켰소. 나머지 팔마는 이미 백련교의 꼭두각시가 되었겠지."

"빌어먹을..."

욕지기를 내뱉던 명룡자가 말했다.

"네놈은 백련교 밑에 들어가기 싫은 거군. 그래서 대항할 방법인 굴공검과 천축검결을 나와 공유해서 네놈의 수준을 더욱 발전시키려는 게야."

"맞았소."

"크크크, 미친 놈이군. 정말로 호법사자를 네 힘으로 이기려는 것이냐?"

명룡자의 말에는 차라리 허탈함마저 감돌고 있었다. 그러자 검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 생각에 아마 백 호법이 얻어낸 심득은 원원자 장삼봉이 직접 만든 것일 확률이 크다고 보오. 장삼봉의 심득이 백련교 사대무류보다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자는 천하에 아무도 없을 것이오."

"......"

명룡자는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네가 봤던 독고준의 무력수위는 어떠했느냐?"

"나와 당신이 동시에 덤벼도 그 자의 한쪽 팔을 베기도 힘들 것이오."

"후... 명실공히 백련교 2인자일테니 당연한 일인가."

검마의 절망적인 평가에도 명룡자는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검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당신은 이미 백련교 호법사자들의 무위를 알고 있었군."

"모를 수가 없지. 그 괴물들의 힘을..."

중얼거리던 명룡자가 말했다.

"네놈 말대로 그 심득을 연마하면 호법사자와 맞먹거나 능가하는 무위를 지닐 수 있다. 그러나 네놈은 가장 중요한 문제를 잊고 있다."

"천령단(天靈丹) 말이오?"

명룡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한의 내공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그 천령단에 상응하는 경지를 얻지 못하면 초식과 의념절기가 아무리 심묘해도 열세할 수밖에 없다."

"무당파에는 천령단에 상응하는 경지가 존재하오?"

"그랬다면 여태 내가 못 익혔을 리가 있는가? 그런 터무니없는 경지는 따로 없고, 굳이 따지자면 신선이 되어 등선(登仙)하는 수밖에 없지."

"......"

터무니없는 경지.

검마는 그 언급에서 무언가 감을 잡은 듯 입을 다물었다.

명룡자가 웃으며 말했다.

"네놈도 눈치챈 모양이군."

"당신은 천하에서 가장 오래 산 구파일방의 정파인이자 반로환동을 이룩한 고수요. 당신의 내공은 아마 정파제일이겠지. 그런 당신조차도 천령단을 터무니없다고 하는 것은..."

검마의 읊조림에 명룡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천령단은 무술경지가 아니다. 그건 특수한 의식을 거쳐서 강신(降神)받은 권능(權能)이라고 본다."

강신과 권능!

이건 통상적인 우도의 무공체계에서 논할 수 있는 단어가 아니었다. 명백히 좌도방문의 단어인 것이다. 무당파 제일의 기인인 명룡자가 천령단에 대해서 논하면서 이런 단어를 썼다는 것은, 그 자체로 천령단이 수상쩍기 그지없는 경지라는 걸 의미했다. 명룡자의 말이 이어졌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 신통력(神通力)에는 호법사자들의 천령단이 발휘될 때마다 마치 강신이 이뤄지는 듯한 접신(接神)의 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접신이라고?"

"나는 풍신류 호법사자와 화신류 호법사자 두 사람과 겨룰 일이 있었다. 그 때 느꼈던 직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검마는 명룡자의 말을 듣자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잘 이해가 안 되는군. 접신이라느니 강신이라느니... 그건 호법사자들이 누군가의 힘을 빌려서 천령단을 이룩했다는 것이오?"

"조금 다르지. 천령단은 이룩하는 게 아니라 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통한다고? 누구와?"

"신(神)."

명룡자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백련교에서 모시는 거대한 '무언가'와 연결되는 고리가 인간의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서, 무제한으로 힘을 빌려주는 상태... 그게 아니면 천령단을 설명할 수 없다. 그 어떤 도가의 상승경지로도 천령단은 불가해(不可解)하다."

"......"

"나는 그것이 신(神)의 힘이라고 본다."

천령단은 신의 힘을 빌려오는 상태!

그것이 명룡자가 천령단에 내린 정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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