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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나는 검마에게 어떻게 해야 의념절기를 최강의 형태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검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건 누가 말해서 되는 게 아니라 자기자신의 삶에 비춰보며 내리는 결론일세."
"으음..."
"가장 어려운 단계이긴 하지. 왜냐하면 섣불리 자신의 한계를 정하면 약해지겠지? 반면에 너무 광대한 상상력을 이루려 하다가는 의념이 역류해서 기혈이 터져나갈테니까."
"위, 위험한거 아닙니까?"
기혈이 터진다니!
의원으로서의 내 지식으로서는 도저히 살릴 방도가 없는 치명적인 상태였다. 그리고 기혈이 터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검마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의념은 그렇게 편리한 도구가 아니야. 분수에 맞지 않는 위력을 원하다가는 반작용이 되돌아와서 기(氣)와 신(身)을 동시에 파괴해 버린다네."
"으음!"
"누군들 천하제일의 무공을 원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일세. 이상과 현실의 한계 사이에서 최대한 적절한 기준을 잡고 자신의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밖에 없어."
"그렇군요."
의념이란 최강의 형태를 구현화하는 것이지만, 그건 전적으로 자신의 역량에 맞아야 한다.
또한 자기자신의 마음에도 충실해야 한다.
전제조건을 만족시키면서 뛰어난 의념절기를 얻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힘겨운 수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가 고민하자 검마가 조언해 주었다.
"일단 계속 명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게. 제일 좋아하는 것, 하고싶은 것, 해야하는 것, 자신의 꿈 같은 걸 계속 생각해 봐. 그러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검마의 조언대로다.
의념절기를 얻어내는 것은 자신의 삶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결코 일조일석에 섣불리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하면서 조각을 깎듯이 섬세하게 다듬어야만 했다.
' 자기자신의 무공을 정립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나는 명상수련에 한층 몰입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저 의념의 실을 다루기 위한 지루한 수행일 뿐이었으나,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는 건 의외로 골치아픈 일이었다.
' 나는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
선(禪) 수행에서는 아주 뻔한 질문이지만 내게는 절실한 질문이다.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백웅'이라고 하는 인간의 인생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대답해야 한다!
"......"
하지만 며칠내내 머리가 빠개지도록 생각했지만, 지금까지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 정신없이 16회차까지 달려오기만 했으니 내가 누구인지 같은 고매한 질문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 내가 뭐지? 나는 뭔데 이러고 있지?'
정말 어렵다. 차라리 몸을 움직이며 땀이나 줄창 흘리며 육체수련을 하는 편이 낫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 궁구(窮求)하는 그 자체가 내게 심마(心魔)를 불러오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다.
그렇게 다시 7주야가 지났다. 여전히 명상수련 후 검마에게 무당파 절학을 전해주는 나날은 계속되었다. 검마는 하루가 다르게 무공이 발전해가는 듯 했고 나는 내 머리속에 갇혀서 나오지를 못했다.
결국 나는 괴팍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 아 젠장 모르겠어! 흑요석에 내 기억을 담아 보자!'
그렇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내 기억을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생각이 나자마자 그 날 취침시간에 목갑에서 커다란 흑요석 덩어리를 꺼냈다. 틈날 때 동영에 가서 미호와 함께 갔던 흑요석 광산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이 정도 크기면 내 전생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서 상세한 감정까지 함께 기록할 수 있었다.
"좋아."
나는 흑요석에 두 손을 올리고 심호흡했다.
자기자신의 전생기억을 모두 저장하고 다시 본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제 3자의 시점으로 백웅이 어떤 인간인지 알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우우웅!!
기억이 저장된 후 나는 재차 자신의 기억을 보기 시작했다.
1회차에 화살을 맞아서 죽었을 때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15회차에서 예의 백시에 죽었을 때의 처참한 모습, 그리고 최근까지 열심히 무공수련에 몰두했던 모습까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자기자신의 기억을 쳐다보는 기분은 그리 썩 좋지 않았다.
' 나... 정말 힘들게 살았구나.'
흑요석의 기운을 전달받은 망량이 어째서 전에 없이 호의적으로 변했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나라서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백웅'은 천암비서를 얻고 난 후 미친듯이 구르면서 살았다. 지금까지의 고생을 쭉 보고있자니 목이 따가워지고 눈물이 흐를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기억을 살펴본 후 2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어라? 그러고보니 왜 이 녀석은 더 안 보이는거지?"
10번째 전생에서 미호를 처음 만났을 때.
그 때 미호가 있던 건물의 1층을 지키던 동영 무사가 있었다. 그 자는 방립을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 무사의 실력은 정말 별것 아니라서 십이율의 절정고수인 자륜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후 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그 놈은 나를 보더니 난데없이 발악하며 덤벼들다가 목이 잘려서 죽고 말았다.
분명히 나를 알고 있는 기색이었다.
꽤 인상깊은 일이라서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런데 미호에게 '힘'을 원해서 찾아간 놈이라면, 어째서 그 이후에 미호가 동료가 되었을 때 이 놈은 보이지 않았던 걸까? 전생할 때마다 인과관계가 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나는 이걸 내버려둘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 흠... 그 실력이면 별로 중요한건 아닌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의념을 얻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였기에 곧 신경을 끊었다. 그 당시에 겨우 일류급에 턱걸이한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내게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 어차피 미호 근처를 맴돌던 어중이떠중이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다.
' 왜 아무도 천암비서의 회귀능력을 눈치채지 못하는 거지?'
내게는 잘된 일이긴 하지만, 여태까지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존재도 천암비서로 역행한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대라신선은 물론, 심지어는 [옛 지배자]조차도 역행에 대해서 모르는 듯 했다.
... 왜 모르는 걸까?
명색이 신적인 존재인데 일개 마도서의 주술능력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는 건 조금 이상했다. 지금까지 진작 궁금해 했어야 하는 일인데, 내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 바빠서 눈치채지 못했던 일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 그래. 천암비서는 마도서니까... 이족 중 누군가가 괴이한 술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겠지.'
술법에 깊은 소양이 없는 지금은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사실 아스타나의 선지자에게 천암비서를 보여주고 싶지만, 그에게 섣불리 천암비서를 보여줬다가는 갑작스럽게 도망쳐 버리거나 시공간에서 탈출해버릴 것 같았다. 천암비서를 보고 시공간을 탈출했다는 황궁 대주술사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인생을 한차례 되짚어보자 마음속이 한층 가라앉았다.
현재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절로 보였다.
"좋아. 나중에 무당파에 가 볼까."
우선은 검마에게 무당파 절학을 완전히 다 가르쳐준 후에 떡고물을 받아먹자. 그 이후에 완전히 자신감이 붙어있는 검마를 꼬드겨서, 무당파의 명룡자를 만나러 가는 것이다. 그러면 명룡자와의 만남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약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이 구름처럼 흐른다고 표현해야 할까? 나는 1년동안 정신없이 수련하면서 검마와 대련을 미친듯이 반복한다고 시간가는줄 몰랐다. 검마는 대련이야말로 최고의 수련이라고 하면서 틈날 때마다 나와 목검대련을 했고, 나는 얻어맞으면서도 그에게서 무영탈혼검과 검술의 심득을 배우는 입장이었다.
그날따라 검마가 대련을 빨리 끝낸 후 심각한 어조로 내게 말했다.
"큰일이 났네, 백 호법."
"무슨 일이십니까?"
검마는 우울한 눈으로 창공을 쳐다보며 말했다.
"호법사자가 내일 무영문을 방문한다고 오늘 아침에 통보를 해 왔네."
"......!!"
예상했던 일이긴 하지만 막상 듣고나니 당황스러웠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역시 지난번 팔마회동에 불참했기 때문입니까?"
"그렇겠지."
"호법사자가 무영문을 공격한다면 버틸 수 없을 것입니다."
내 의견은 진심이었다.
현 삼대 호법사자 중에서 그 누구라고 해도 천령단(天靈檀)과 초절정 그 이상의 가공할만한 무공을 지니고 있다. 검마 또한 내로라하는 실력자이지만 호법사자급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천령단은 내공이 무한이라는 특성이 있으므로 조금만 중장기전으로 가도 천령단이 없는 자에 비해서 압도적인 우위를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도 같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항전이 아니라 도주 혹은 교섭이겠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내 측근들과는 이미 새벽에 회의를 열어서 의견을 교환했네. 마지막으로 백 호법의 말을 듣고 나서 내 거취를 결정할 생각이라네."
현재 무영문에서 내 위치라는 건 한없이 애매했다. 명목상의 위치는 호법이지만 원래 무영문에 호법이라는 직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대 때부터 무영문주의 혈족을 따르던 뛰어난 무인들이 무영문의 무공을 수련하며 검주(劍主), 혹은 검랑(劍狼)이라고 불렸다.
워낙 무영문이 소수정예였기에 그들의 숫자는 다 합쳐도 스무 명이 되지 않았으며 대략 열서너 명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파의 하늘을 자처할 수 있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최소한 일류 막바지에 이르렀거나 절정급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영문도들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그러나 그런 무영문도들조차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쭈뼛쭈뼛 인사하기 일쑤였다. 내가 소문주 서문혜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사실은 이미 다 알고 있는데다, 검마 서문대룡이 나를 직계제자처럼 하루종일 무공지도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나를 대할 때 벽을 느끼고 있는 듯 했고,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나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 이럴 때 망량이라면 어떻게 대답했을까?'
이렇게 크고 중요한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언제나 망량의 의견부터 들어보고는 했다. 망량의 생각이 훨씬 옳을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망량과의 인연을 터놓지 않은 상태였으며 전적으로 나 혼자서 모든 판단과 의사결정을 해야만 했다. 나는 과거에 홀로 모험하던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리며 심호흡했다.
잠시 후 나는 말했다.
"걱정 말고 호법사자와 일단 이야기를 해 보십시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씨익 웃으며 그에게 목갑과 황금비등을 보여주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대피할 수 있으니까요."
"......?"
"이건 목갑이고 이건 황금비등입니다."
나는 잠시 후 검마에게 목갑과 황금비등의 위력을 직접 보여주고 설명해 주었다. 직접 황금비등의 순간이동능력과 목갑의 저장능력을 확인한 검마는 크게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세...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보물들은 처음 보는군."
그는 목갑에 대해서는 서문혜의 언급으로 존재 정도는 알고 있었던 듯 했다. 하지만 비등에 대해서는 처음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무영문에 들어온 이래로 내게 그런 보물이 있다고 한마디도 안 했기 때문이다. 검마가 괜히 보물의 위력에 욕심을 부려서 수련 외적인 사건을 일으킬까 염려되어서 함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수련할 시간 자체가 사라질 위기였으므로 어쩔 수 없이 꺼낸 것이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경우에는 모두가 안전하게 피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군! 아주 좋구만."
검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일 호법사자와 만날 때는 나와 자네만 호법사자를 만나도록 하지. 나머지 문도들은 모조리 목갑 안에 넣어 주게."
"그러면 되겠군요."
"자네를 믿겠네."
나는 검마가 대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검마가 말한 저 방법이 가장 무영문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소중한 문도들의 목숨을 목갑 안에 저당잡히는 셈인데도, 나를 믿겠다고 한 것이다. 심지어 소문주 서문혜의 목숨까지 들어가는데도!
' 나를 정말 믿고 있구나.'
이번 생에서 나는 결코 검마를 배신하지 않겠다. 그를 실망시키는 일이 있더라도 떳떳하게 말하고 댓가를 받아들이겠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맹세하는 순간이었다.
다음 날, 계획대로 모든 무영문도들을 목갑 안에 넣었다. 나와 검마는 사람이 없어서 한산한 무영문 건물의 정문에서 어정거리며 호법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직접 문지기를 해야 호법사자를 빨리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오가 약간 지나려 할 때, 갑자기 거대한 비구름이 무영문 쪽으로 다가왔다.
쿠르르르
그 비구름에서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잠시 후 빗방울과 안개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마치 용이 구름을 토한 듯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빗방울이 완전히 그치고 사방에 고적한 안개만 남았을 때 육합전성이 들려 왔다.
[ 오랜만이군요, 검마.]
슈르르륵
다음 순간 우리 앞에는 한 인영이 나타나 있었다.
그는 호법사자 특유의 상징인 금룡(金龍)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체구는 약 20대 남성으로 보였으며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침음성을 흘렸고, 검마 또한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검마는 그를 마주대하자 예의바르게 포권했다.
"먼 길 오느라 수고하셨소, 독고준."
그랬다.
신비한 안개와 함께 등장한 것은 바로 백련교 수신류(水神流)의 호법사자(護法師者), 독고준(獨孤俊)! 백련교 사대무류 중에서 교주의 유파이며 최강을 자랑하는 수신류의 호법사자가 검마와 이야기를 하러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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