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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20화 (220/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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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계(天界)

그 후로도 나는 계속해서 명상 수련을 하면서 검마의 지도를 받았다. 그렇게 다시 두세 달이 지나자, 무언가 변화가 느껴졌다.

' 알 것 같기도 해...'

자신의 의지력이 경계(境界)를 돌파하는 느낌!

기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형의 흐름이 내 몸을 은연중에 감싸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니, 이건 차라리 실(絲)이라고 해야 할까? 슬며시 감겨있는 실덩이는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나선형을 그리며 움직이는 듯 했다.

내가 그 느낌을 처음 느꼈을 때 검마에게 말하자 그가 대답해 줬다.

"이제야 감을 잡은 모양이군."

"그 실이 의념입니까?"

"그렇지. 하지만 그게 기(氣)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네."

검마는 대련장에 앉아서 설명을 해 주었다.

"자네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실은, 자네의 방어본능일세."

"방어본능?"

"의념의 실은 균일하게 감겨있지 않았을 걸세. 몸의 부위에 따라서 감겨있는 정도나 밀도가 다르지 않았나?"

나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검마의 말대로 머리, 심장에는 실이 아주 칭칭 감겨있었고 팔다리쪽은 실이 엉성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그랬습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검마는 검지손가락으로 내 심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는 절정무예를 단련하면서 급소를 방어하도록 훈련받았지. 그렇기에 치명적인 급소일수록 거기에 의지가 가고 신경이 쓰이는 걸세. 싸우는 도중에도 자신의 요혈과 급소를 방어하는 건 기본이 아닌가?"

나는 그의 말을 깨닫고 반문했다.

"의념이란 건 제가 평소에 의식하고 있는 정도를 보여주는 겁니까?"

"그렇네. 뭐, 그것만은 아니지만."

즉 내가 평소에 방어하려고 신경쓰는 부분일수록 의념의 실이 강하게 감겨있다는 소리였다.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그건 일류급 고수 이상이라면 다들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것일세. 어디를 방어하고 어디를 노출시킬지 선택하는 것이 고수들의 기본이 아닌가?"

"아!"

"자네가 느낀 의념의 실은 그걸 보다 명확하게 시각화(示覺化) 시켜준 것이네. 좀 더 수준이 오른다면 타인이 지닌 의념도 볼 수 있지."

"흠..."

"그러나 의념을 깨달아서 사용한다는 건 거기에서 멈춰서는 안되는 거지. 자네는 이제 의념을 인지(認知)했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필요가 있네."

다음 단계라는 건 무엇일까?

내가 검마의 입에 집중하자 그가 말했다.

"의념의 실을 움직이게. 그걸 해낼 수 있을 때 자네는 의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라네."

"알겠습니다."

나는 검마의 말을 듣자마자 다시 명상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크게 집중하자, 아까처럼 내 몸을 감고 있는 의념의 실이 보였다. 나는 그 실을 내 뜻대로 움직여보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잘 되지 않았다.

' 왜 안 움직여?'

이 의념의 실이 방어본능이라는 것을 상기해서 일부러 내 몸 각 부위에 집중력을 다르게 해 보았지만, 그래도 변함없었다. 실은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한 시진 내내 시도를 하다가 탈력해서 앉아있자 검마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안 움직이지?"

"네."

"단순한 의지와 의념은 다른 것이기 때문일세. 극한까지 연마된 정신이 세계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것이 바로 의념! 머릿속에서 생각하는대로 자아를 움직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

수련 초기였다면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했을 것이다. 하지만 명상수련을 반 년 가까이 해 온 지금의 나는 검마의 말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방금 전에도 의념의 실을 인지하는 동안에 무언가가 '걸쳐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형이하학적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계'가 존재하는 건 확실했고, 그걸 넘어가야 의념을 구사할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후... 정말 어렵군요. 강호의 초절정고수들은 이걸 혼자 힘으로 깨닫는다는 말입니까?"

"재능이 있는 자는 자연스럽게 체득(體得)하게 되고, 그렇지 않더라도 스승의 지도 아래에서 천천히 일깨우게 되어 있지. 혹은 무시무시한 아수라장을 헤쳐나오다가 실전에서 알아내는 자도 있긴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네. 그래서 명가(名家)의 가르침이 위대하다는 것이라네."

그렇게 말한 검마가 희한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의 스승이란 자는 왜 자네에게 의념을 전수하지 않았을까... 대단한 고수가 분명한데."

"......"

"누구나 사정이 있는 법이겠지. 여하튼 이대로 계속 가면 안정적으로 의념을 터득할 수 있을걸세."

"언제쯤 가능할까요?"

"자네 하기 나름이지."

나는 그게 언제쯤인지 대충 미루어 짐작하고 있었다. 검마에게서 수련을 받던 중 나는 약 3년이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었고, 이번 생에서의 수련기간까지 생각하면 앞으로도 최소 2년동안은 고련해야 하는 게 분명하다.

' 2년 정도야...'

나는 수십 년 동안 무예의 길에서 미친듯이 굴렀다. 명상수련이 아무리 지루해도 2년 정도를 못 버텨낼 리가 없는 것이다. 되려 지금은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서 빠른 시일내에 터득하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다시 약 4달이 흘렀다. 나는 마치 식물처럼 매일같이 좌선을 하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하루종일 그렇게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조금씩 의념의 실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최근에는 어느정도 의념과 내공이 감응(感應)하는 것도 느낀 것이다.

검마는 내 성취를 듣고는 놀랐다는 듯 말했다.

"생각보다 빠르군!"

"그렇습니까?"

"실을 움직이는데만 1년이 걸릴거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빠른 시일내에 움직인 것을 보니, 아무래도 자네는 무의식적으로 의념을 운용한 횟수가 매우 많았던 듯 싶군."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격전을 거친 횟수는 수십 수백 회가 훨씬 넘었다. 그 동안에 나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지만 의념을 무의식적으로 사용한 일도 있었으리라.

' 그 때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서 명상수련의 진보를 빠르게 한 건가.'

검마가 껄껄 웃으며 축하해 주었다.

"아주 좋아! 이제 곧 훌륭한 대련 상대가 생기겠군."

뭐라고?!

나는 검마와 대련을 하다가 어떤 참사가 생기는지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검마와 대련을 하다가 난데없이 화를 내는 검마에게 팔이 날아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검마는 평소에는 느긋한 성격이지만 전투를 시작하면 마치 흉신악살, 아수라처럼 변화하는 일면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급히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보니 이제 곧 팔마회동이군요."

"흐음. 안 그래도 그 일을 이야기하려 했네."

검마는 차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번 팔마회동은 수도 낙양에서 열기로 했네."

나는 익숙한 지명이 들려서 깜짝 놀랐다.

"낙양이라면 투마와 수라문(修羅門)의 근거지가 아닙니까?"

"그렇지. 투마 놈이 강경하게 밀어붙였네."

팔마회동이 낙양에서 열린다는 것!

그것은 사파를 지배하는 마도팔문의 수장, 팔마(八魔)가 수도에 결집한다는 말이다. 또한 수도 낙양은 금의위와 동창의 세력이 가장 강력한 도시이기도 했으며 쌍문사가 장서이한이라고 불리는 육대 문파가 터전을 잡고있기도 했다. 나는 그런 배경을 전생하면서 알아낸 상태였기 때문에 아연실색해서 말했다.

"수도 낙양에는 수라문보다 강력한 문파들이 여럿 있습니다. 금의위나 동창도 있습니다. 그 자들과 충돌할 위험이 있는데도 팔마회동을 그곳에서 한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비밀리에 모인다고 해도, 일이 조금만 꼬이면 진정으로 아수라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검마가 쓴웃음을 지었다.

"후! 자네 말대로 멍청한 선택이지. 하지만 이번에 투마가 내어놓은 떡밥 때문에 다들 어쩔 수 없이 모이게 된 것일세."

"그게 무엇입니까?"

"......"

검마는 침묵하다가 말했다.

"백련교."

"......!!"

백련교라니!

나는 그 이름이 다시 나오자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마치 저주처럼 내 전생을 붙잡고 사라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검마는 그저 내가 백련교의 명성을 두려워하는 것으로 여겼는지 무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백련교의 호법사자(護法師者)가 우리와 손을 잡고 싶다는 의사를 타진해 왔다.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기에 들어보러 가는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주먹을 우득 말아쥐었다. 그 호법사자가 만일에 풍신류의 호법사자 용비천이라면 이번에 수도 낙양에 가서 철천지원수를 맞닥뜨리는 셈이었다. 어느 쪽이든간에 난데없이 거대한 압박감이 다가오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이상함을 느꼈다.

' 나는 이번 생에서 강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대뢰옥과 해적섬에서 포로들을 구출했지만 그건 늘 하던 일이다. 하지만 이 전개대로라면, 검마는 매 전생(轉生)마다 낙양의 팔마회동에 갔다는 소리가 아닌가?'

그건 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 것치고는 내가 봤던 검마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뭔가가 이상해서 검마에게 물었다.

"문주님. 이 회동을 거부하려면 거부하실 수 있지 않으셨습니까? 이렇게 위험한 회동에 참여한다는건..."

검마는 자신의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흠. 원래대로라면 거부했을 것일세. 차라리 다른 장소를 고르라고 하거나 무시했겠지. 호랑이굴에 기어들어가는 취미는 없으니 말일세. 하지만 이번에는 좀 모험을 해 보기로 했네."

"네?"

"자네가 내 딸을 구출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본문의 훌륭한 전력이 되지 않았는가?"

"어..."

내가 당황하는 동안 검마가 빙긋 웃었다.

"나 혼자라면 한계가 있겠지만 자네가 함께 해 준다면 나는 안심할 수 있네. 아주 많은 정보를 회동에서 얻을 수 있을 걸세."

검마는 나를 믿고 팔마회동에 참여하기로 한 건가!

나는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 원래대로라면 검마는 팔마회동을 무시하고 투마를 족칠 기회만 기다리고 있었던 거구나. 하지만 내가 무영문의 호법이 되자 자신감을 가지고 백련교의 진실을 간파하러 가려는 것이다.'

내가 무영문에 끼여들어서 역사가 바뀌었다.

나는 난데없는 분기점이 생겼다는 걸 깨닫자 황당했다. 가만히 수련을 하려고 하는데도 결국 백련교와 엮이게 되는 것인가? 물론 이번 일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천금같은 가치가 있겠지만, 나는 영 내키지 않았다.

' 이번 생은 수련만 하고 싶다. 그리고 검마가 백련교 때문에 위험에 처하는 것도 바라지 않아.'

음모에 말려들면 말려들수록 수련할 시간이 줄어든다. 아무리 천금같은 정보라고 해도 실력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는 걸 그동안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백련교에 대해서도 지금 알 만큼 알고 있는 상태라는 생각이 들자, 팔마회동을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할까?

검마가 팔마회동에 가는 것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 그래, 이거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검마에게 말했다.

"문주님. 사실은 제가 스승에게 배우고 하산한 후 얻어낸 신묘한 검학(劍學)이 있는데 혹시 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응? 그런 게 있는가?"

"네. 왠 기인이 남긴 유적에서 얻은 것인데, 저로서는 그 신비함을 잘 알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무당파 장삼봉 진인의 절학을 펼쳐내기 시작했다.

파바바밧

굴공검과 천축검에서 시작해서 무쌍패를 제외한 나머지 절기를 모두 펼쳐내는데는 채 한 식경도 걸리지 않았다. 내 무공시연을 옆에서 지켜보던 검마는 경악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건...!!"

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이걸 수련하다보면 의념의 경지에 도달하기 용이할지요?"

"물론일세! 그 무공들을 어디서 얻은 건가?"

"그건..."

나는 예전처럼 둘러대었다. 그러자 검마는 골치아프다는 기색으로 말했다.

"흠... 어쩔 수 없겠군. 그럼 이번 팔마회동은 그냥 무시하지."

"그래도 괜찮습니까?"

"대신 자네의 그 절학을 함께 연구해 봅세."

검마는 진성무골이자 천재이자 골수무인이었다. 이런 기회를 결코 보아넘길 수 없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무공을 수련하는 것에 비하면 백련교 같은 건 사소한 문제였다.

"네."

나는 속으로 작전이 먹혀들어갔다고 생각했다.

장삼봉 진인의 무당파 절학을 미끼로 검마의 낙양행을 취소시켰을 뿐만 아니라, 정당하게 그와 무당파 절학을 연구할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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