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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215화 (215/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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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미호에게서 커다란 한 개의 흑요석을 받아서 중원으로 돌아왔다. 흑요석의 크기는 약 2척 정도로, 한아름 들어야만 할 정도였다.

' 이 정도 흑요석이면 세부정보까지 넣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내가 망량과 미호에게 기억을 전달할 때 썼던 흑요석은 기껏해야 손바닥만한 크기로써, 그걸로는 내가 겪었던 14회의 전생에서 대략적인 부분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망량과 미호는 마치 책을 읽듯이 내 기억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묻어있는 감정의 편린을 이정표로 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망량과 미호는 내 기억을 읽긴 했지만 내가 익혔던 기술이나 술법, 무공을 얻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흑요석이 크면 클수록 압축해서 넣을 수 있는 기억의 양은 훨씬 더 많아지게 된다. 이 정도 크기의 흑요석이라면 기술이나 무공까지 바로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흑요석을 우선 목갑에 넣어둔 채 망량에게로 향했다.

망량은 내게서 흑요석의 설명을 듣자 말했다.

"내가 볼 때 흑요석의 술법은 굉장히 사기적인 술법이오."

"그렇소?"

"기존의 도가술수 중에도 기억을 전달하는 술수는 존재하오. 그러나 그 술수를 쓰기 위해서는 굉장한 선천능력과 후천적인 술법이해가 필요하오. 최소한 최상급 술법사가 되어야 하는데, 그런 존재는 중원을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아.

당신처럼 단순히 광석을 매개체로 해서 별다른 제약도 없이 기억을 저장하는 건 엄청난 효율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오."

거기까지 설명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백웅. 최대한 마도서(魔道書)를 모을 필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아스타나의 선지자가 보유한 술법을 하나라도 더 얻을수록 당신의 향후 행보는 쉬워지게 될 것이오."

"그래야겠군."

아스타나의 선지자와는 마도서를 주면 댓가를 주는 거래를 할 수 있다. 이번에는 흑요석의 술법을 받았으니 다음번 전생에는 다른 술법을 받을 수 있으리라. 내가 망량의 말을 명심하고 있자, 문득 생각나서 질문했다.

"그런데 망량. 백련교가 황궁을 습격한다고 이야기한지도 꽤 지나지 않았소?"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 했소."

망량은 한숨을 쉰 후 말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백련교가 갑자기 미적거리기 시작했소. 당장이라도 백련교주가 호법사자를 인솔해서 황궁을 칠 기세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 시작했소. 대신에 화신류 한씨세가의 자금을 이용해서 우선 중원에 영향력을 뻗치는 전략을 택한 모양이더군."

"......!!"

이게 무슨 소린가!

백련교가 황궁을 쓸어준다고 기대하고 있었고, 바로 그 전제하에 모든 계획이 진행되지 않았던가! 백련교가 황궁을 조기에 제압하지 못한다면 앞으로의 모든 예정이 틀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백련교주가 황궁 공격에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

"... 그건 잘 모르겠소. 하지만 마지막으로 보았던 백련교주는 전혀 그런걸 신경쓰지 않는 듯 했소. 내 생각이지만 백련교주가 황궁공격을 주저하고 있다면 '힘' 이외의 다른 요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오."

"다른 요인이라..."

망량은 자신있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백웅. 걱정마시오. 내가 이번에 다시 백련교주와 이야기해서 정확한 의사를 알아보겠소."

"무리는 하지 마시오..."

"하하! 걱정말고 무영문에 다녀 오시오."

나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향후 전개를 생각하면 백련교에 내 정체를 드러내서는 안된다는 망량의 말에 따르고는 있지만, 과연 이대로 가도 괜찮은 걸까? 지금이라도 망량을 도와서 불철주야 백련교가 강호를 제패하도록 도와야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내가 이렇게 고민해봤자 망량의 계책이 내 머리보다 나으니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파앗

나는 비등으로 다시 하남 무영문으로 향했다. 무영문에 도착하자 문지기들은 내 얼굴이 눈에 익었는지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나는 포권하며 말했다.

"다시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소협. 잠시..."

갑자기 경비무사 중 대장격인 자가 슬며시 앞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서는 소근소근 이야기했다.

"문주를 뵙기 전에 소문주께서 소협을 보고싶다 하셨소."

"......?"

"잠시 따라오시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그를 따라갔다.

' 무영문의 소문주는 서문혜일텐데 무슨 일로 나를 보자는 것일까? 지금 나는 성형술로 외모를 바꾸어서 백웅과 동일인으로 보이지 않을텐데...'

내가 소문주 서문혜의 방 앞에 도착하자, 서문혜가 방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손하게 나를 맞이했다.

"소웅 소협.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녀와는 소웅으로써 한 달간 무예수련을 받을 때도 마주쳐서 여러 번 인사를 한 적이 있어서 구면이라는 설정이었다. 서문혜는 잠시 눈을 깜박이며 나를 쳐다보다가 내 손을 섬섬옥수로 붙잡았다.

"귀하는 백웅 소협이 아니십니까?!"

역시 의심하고 있었구나!

뜬금없이 정면공격을 당한 듯 했다. 나는 감정을 통제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형님이 아니오."

"그 말이 진실이라면 제가 소웅 소협의 얼굴을 만져봐도 될런지요?"

"마음대로 해 보시오."

잠시 후 서문혜는 더듬거리며 내 얼굴 요모조모를 뜯어보고, 기를 불어넣어서 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마 기를 이용해서 내 외모의 부자연스러움, 피부의 형성, 골격의 부조화 따위를 찾아내려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약 반 시진 가까이 끈질기게 살펴보던 서문혜는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아니군요."

"그렇다고 말했잖소."

나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속으로 화서명 의원의 엄청난 실력에 감탄했다. 전적으로 화서명 의원의 성형술을 믿고 서문혜에게 들이댄 것이지만, 화서명 의원은 한 줌의 부조화도 느껴지지 않게끔 완벽하게 성형에 성공한 것이다. 기를 투과시켜도 부자연스러움을 깨닫지 못할 정도이니 가히 신의 의술이라 할 만 했다. 보형물따위를 하나도 쓰지 않은 덕이 크겠지만 화서명은 신의(神醫) 반열에 드는 인물인 것이다.

' 서문혜같은 절정고수가 이렇게 찾아봐도 모를 정도면 그 누구도 모르겠지.'

서문혜가 내 뺨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소협은 정말 아름답군요. 이대로 자라면 천하의 절세미녀가 되실 듯 합니다."

"나를 놀리는 거요?"

"우후후... 반쯤은 진심이랍니다."

서문혜는 까르르 웃는 기색이었다. 차마 화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화사하면서 단아한 웃음이었다. 그녀는 그리운 듯 허공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대의 형님은 비록 외모가 추하나 대협(大俠)의 풍모가 있는 사내였습니다. 저는 그 분을 연모하고 있답니다..."

"......"

"억지로 청해 무례를 범해서 미안해요. 사례로 한 가지 원하시는 걸 들어드리겠습니다."

사례라.

나는 서문혜의 말을 듣자마자 대뜸 말했다.

"나는 당신이 어째서 해적섬같은 장소에 잡혀있었는지 궁금하오. 그 원인을 이야기해 주시오."

내 질문을 듣자 서문혜는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

그러더니 말했다.

"약속이니 말씀드려야겠군요... 저는 암경무투회라고 하는 지하무술대회에 출전했다가 패배하여 몸과 정신을 제압당했던 일이 있습니다. 그때 팔리듯이 해적섬까지 향하게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신은 왜 암경무투회에 출전했던 것이오? 사파제일문인 무영문의 소문주이자 금지옥엽이며 강호의 절정고수로 부족할게 하나도 없었잖소."

"......"

서문혜는 머뭇거렸다.

백웅으로 여러번 그녀를 해적섬에서 구출했으나, 서문혜는 여기까지는 잘 이야기하려 들지 않았다. 나 또한 그녀에게 부담감을 주면서까지 캐어물을 일이 아닌지라 그동안은 놔두고 있었다. 하지만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김에 '거래'로써 알아볼 생각이었다.

"... 자령언월도(紫靈焉月刀)를 얻으려 했어요."

"자령언월도?"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예전에 암경무투회에 대해서 흑사회주에게 설명을 들을 때, 그 자는 전 회의 우승자가 전륜도법(轉輪刀法), 은율과(銀栗果), 자령언월도(紫靈焉月刀)를 상품으로 받았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다.

"당신의 주 무공은 검(劍)이잖소? 그런데 어째서 언월도같은 병기를 얻으려 한 것이오?"

"자령언월도에는 천하제일(天下第一)의 무공이 숨겨져 있다는 비밀을 입수했기 때문이에요."

"......!!"

"주최자인 투마조차 몰랐던 비밀이었죠. 투마가 그걸 알았다면 절대 경품으로 내걸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는 아마 자령언월도를 일개 병기로만 알았겠죠."

"당신은 어떻게 그걸 알게 된 거요?"

"그건 말씀드릴 수 없어요."

서문혜가 한숨을 쉬었다.

"저는 무영문의 소문주이지만 무재(武材)가 아버님에 비하면 너무나 떨어져요. 앞으로 무영문을 이어받기 위해서는 강한 힘이 필요했죠. 그래서 자령언월도의 비밀을 풀어서 더 강해지려는 생각이었어요."

그녀의 말만 들으면 서문혜가 천하의 둔재처럼 느껴지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20대의 나이에 절정고수에 이르렀으니 앞으로 천하를 오시할 가능성이 높은 일재(溢才)였다. 단지 검마 서문대룡이 너무나 뛰어난 천재이기 때문에 그녀가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자령언월도!

천하제일의 무공!

듣기만 해도 혹하는 문구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이상하군. 내 형님은 당신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 분을 위험에 빠뜨리고싶지 않았어요."

"무슨 소리요?"

서문혜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제 이야기를 듣는다면 누구든지 현 자령언월도의 주인에게 찾아가서 도전하려 할 거예요. 그러나 그 자는 무시무시한 고수이니, 어찌 생명의 은인에게 위험을 안길 수가 있겠습니까?"

그녀의 말은 진심인 듯 했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 눈을 빛냈다.

"당신은 자령언월도의 현재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군."

"거기까지 말씀드릴 의리는 없어요."

"왜?"

"원인까지만 말씀드린다 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은인의 동생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어요."

"......"

서문혜의 지금 태도로 보아서는 절대 말해주지 않을 듯 했다. 설령 목갑에 있는 금괴나 보물을 준다고 하더라도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뜻밖의 귀중한 정보였기에 가능하면 지금 빠르게 얻어내고 싶었다. 나는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말했다.

"어차피 그 이야기를 들은 이상 나는 어떻게든 자령언월도의 주인을 알아내려 할 거요. 그리고 알아내는 법은 간단하지. 투마의 부하인 흑사회주를 구슬려서 정보를 얻든가, 아니면 투마 본인을 찾아가던가."

"무모한 짓 하지 마세요. 그 자들은 그리 만만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럼 그냥 가르쳐 주시오. 자령언월도의 주인에게 도전할지 말지는 내가 알아서 결정하면 되는 일 아니오?"

"으음..."

"내 형님께 진 구명지은을 내게 갚는다고 생각하시오."

내 말을 듣자 서문혜가 기가 막힌듯한 표정을 지었다.

"뻔뻔스럽군요!"

"최선을 다한다고 해 주시오."

"좋아요, 당신의 목숨은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서문혜는 반쯤 포기한 듯 말했다.

"자령언월도의 현 주인은 전(前) 암경무투회의 우승자이자 새외제일인(塞外第一人)이라고 불리는 자예요."

"설마..."

이어진 서문혜의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십이율주(十二律主). 그가 자령언월도를 가지고 있어요."

동방무림 그자체라고 할 수 있는 십이율, 그 십이율의 지존(至尊)인 십이율주가 자령언월도의 주인이라니!

나는 당혹해서 그녀에게 반문했다.

"십이율주라니? 신단에 박혀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 자가 어째서 중원 낙양의 암경무투회에 나와서 자령언월도를 가져갔단 말이오?"

"저도 자세한건 몰라요. 그저 암경무투회의 우승자가 십이율주로 결정되었다는 것만 들었을 뿐이니까요."

"......!!"

"그래서 저도 마음속에서 자령언월도를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군..."

나는 서문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천하의 그 누가 있어서 십이율주의 손에서 자령언월도를 탈취할 수 있겠는가!

그건 서문혜가 아니라 검마라고 해도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 골치아프군. 자령언월도가 천하제일의 무공을 품고 있다고 해도 십이율주의 손에 있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이래서야 얻으나 마나한 정보다.

"아무튼 고맙소."

"네."

나는 서문혜와 헤어져서 이번에는 검마가 기다리는 곳으로 향했다. 검마는 의자에 앉아서 차분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내가 어디를 갔다왔는지 이미 들은 듯 태연하게 말했다.

"딸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한 모양이군."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아닐세. 어차피 언제고 그 아이와 심도있는 이야기를 해 주었으면 했다네."

검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나는 자네가 백웅이든 소웅이든 상관없네. 확실한 건 자네가 진짜배기 무인이라는 것이니, 최선을 다해서 가르쳐 주겠네."

"감사합니다."

"허나 조건이 있어."

"네?"

"아무리 내가 자네가 마음에 든다지만, 나는 일파의 종주일세. 그런 내가 외인(外人)에게 일정수위 이상의 무공지도를 하는 건 문규(門規)에 어긋나는 일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나는 관자놀이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무영문에 입문(入門)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검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네. 그렇게 되면 나는 우리 무영문의 비기(秘技)까지 자네에게 가르쳐 줄 의사가 있네. 자네의 항렬도 소문주에 버금가는 호법(護法)으로 즉시 올려주지."

"......!!"

검마의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무영문에 들어오기만 하면 비기전수는 물론이고 문주 바로 아래위치인 호법위를 준다는 게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뇌신류에 대한 의리가 생각나서 망설여졌지만 이내 그 마음을 던져버리고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번 생에서는 무영문의 무공을 익히기로 작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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