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13화 (213/1,615)

0213 ----------------------------------------------

삼황오제(三皇五帝)

이번에도 진소청은 란을 사용했는데 아까와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나는 아까같은 방법으로 상대하면 안된다는 걸 깨닫고는, 이번에는 정면충돌을 하는 대신에 멸혼보(滅魂步)를 이용해서 빠르게 진소청의 공격범위를 피했다.

[ 음... 정말 빠르군!]

진소청은 내 속도에 놀라는 듯 하면서도 멸혼보를 뇌영보 천주살로 따라붙었다. 나는 그런 진소청의 추격속도에 그만 기가 질리고 말았다.

' 뇌영보 천주살은 보법비기이며 전투용이라서 단거리에서 극단적으로 빠르지만, 그래도 멸혼보에 비하면 하위보법이다. 적어도 속도차이가 두 배는 난다. 그런데 어떻게 천주살로 이런 속도를?!'

이해불가!

하지만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현실에서 해내고 있는 상대가 바로 진소청이며 무학의 절세천재였다. 나는 새삼 얼마나 미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런 전투광을 상대로 내가 이길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다니!

나는 독한 눈빛을 품었다.

' 미안하지만 오늘은 어떻게든 이겨야겠소 사형!'

나는 허공에서 다시 공중제비를 돌아서 자세를 다잡자마자 재차 뇌명을 끌어올렸다.

"앗!"

진소청은 내가 연속으로 뇌명을 전개하는 걸 보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추격을 멈추고 방어자세로 들어갔다. 그도 그럴것이 뇌명의 최대속도는 진소청이 뇌명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막을 수 없으므로, 섣불리 공세를 취했다가는 내게 반격당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으득 깨물었다.

' 빌어먹을. 이건 비겁해서 별로 쓰고싶지 않았는데...'

상시뇌명으로 이기는 전법.

나는 적어도 한 식경은 뇌명을 전개할 수 있었으므로 계속 뇌명을 쓰면서 상대방의 방어만 유도하다가 승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무(武)로 승리를 거둔다기보다는 그저 내공빨로 이기는 셈이었으므로, 진소청과의 비무에 쓰기는 비겁한 방법이라서 자제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해야만 할 정도로 진소청의 무위는 나를 위협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자 진소청이 머리를 긁적였다.

"흐~음. 정말 무시무시한 내공이군. 그러면 이쪽은 한번에 끝내는 수밖에."

설마 이 전법에도 아직 대응할 수법이 남아있다는 소린가?

나는 오만한 마음은 커녕 속에서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진소청이 허언을 하지 않는 인간이란 걸 알기 때문에, 저 말이 진실이라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뇌명을 쓰면서 공격력과 방어력 민첩성이 몇 배나 증폭된 나를 상대로 단기간에 끝낼 수법이 대체 무엇일까.

스윽

진소청의 창이 늘어뜨려지더니 기묘한 자연체를 취했다. 나는 그게 반격기라는 걸 알아챘으므로 섣불리 공격하지 않고 그의 주변을 돌았다. 하지만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의심이 떠나지 않았다.

' 저게 반격기가 아니라 기를 모으는 거라면? 이렇게 기다려주는 거 자체가 바보짓 아닌가?'

어쩌다 심리전으로 넘어온 걸까. 내공의 차이로 보면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한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비로소 뇌신류를 상대하는 풍신류 호법사자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기본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일순간의 폭발력을 감당하지 못하면 뇌신류에게 순식간에 패배해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견제를 해야만 했다.

콰과광

순식간에 내 좌장(左掌)에서 뇌령인이 날아가서 진소청에게 부딪혔다. 진소청은 그 뇌령인을 피하지 않고 최소한의 힘으로 비껴냈다. 나는 그 찰나에 빈틈을 발견했지만 그조차도 진소청의 함정일까봐 두려워서 섣불리 공격하지 못했다. 이마에서 땀이 송골송골 나며 긴장이 끌어올려졌다.

' 난 뭘 두려워하는 거지? 정말로 공격해도 되나? 정말?'

두웅

나는 눈 앞에 서 있는 진소청이 한없이 거대하게 보였다. 내 안의 공포심과 압박감이 진소청의 존재를 더욱 크게 만들고 있었다. 접근하는 순간 찢겨버리는 환영이 눈 앞을 스쳐지나가자, 나는 어느 새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아!"

나는 이내 이게 심공(心功)의 일종이라는 걸 깨달았다. 갑작스럽게 이게 진소청이 의념으로 만들어낸 압박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연스럽게 원래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정신력은 소모할대로 소모해서, 내 목에서는 땀이 흥건하게 배어나오고 있었다.

진소청의 눈은 한없이 정심하고 맑았다. 나는 지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그를 노려보았다.

"......"

"......"

무한 대치상태.

' 네가 죽든 내가 죽든 해 보자!'

내가 마음속의 망설임을 거두고 공격방법을 정하려고 할 때였다.

"그만!!"

갑자기 거대한 사자후가 들려왔다.

나와 진소청이 거의 동시에 사자후 쪽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팔짱을 끼고 있는 공증인인 정천맹주 위지혼이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나와 진소청을 한 번씩 노려보더니 호통을 내질렀다.

"이건 동문(同門)의 친선비무가 아닌가? 그런데 서로가 마음속에 흉심(凶心)을 진짜로 머금다니! 방금 전 서로가 생각한 초수가 격돌했다면 둘 다 성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

틀린 말이 아니다. 나와 진소청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서 서 있자 위지혼이 이광과 적월, 녹월 호법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들도 과연 문파의 종사라 칭할 자격이 있는 것인가? 왜 방금 아무도 말리려 하지 않은 것인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소!!"

그러자 뻘쭘하게 있던 적월이 항변했다.

"이건 실전에 가까운 비무요. 당신이야말로 무사의 긍지를 훼손한 게 아닌가?"

"닥치시오! 문파의 종주뻘 되는 자가 그딴 소리를 할 수 있다니...!! 저 아이들은 문파의 미래가 아니오? 동량이 아닌가?!"

"음..."

위지혼은 진심으로 화를 내며 뇌신류 고수들에게 어이없어하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대로 나와 진소청이 마지막 초수를 부딪혔다면 둘 중 하나는 죽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광도 적월 녹월도 그걸 내심 바라는 기색이었다.

위지혼이 이광을 노려보며 나직이 말했다.

"자네에게 실망했네 삼절. 무사의 도리를 행해야 할 때를 구분치 못하다니."

그러자 이광이 대답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도리와 나의 도리가 다른 것 뿐일세."

"흥, 그런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듯 허이."

"......"

이광이 대꾸하지 않자 위지혼이 우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승부는 나 정천맹주 위지혼의 이름을 걸고 무승부(無勝負)일세. 둘은 내려오게."

나와 진소청이 살기를 풀고 내려오자, 나는 새삼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지친 건 나뿐만이 아닌지 진소청도 꽤 체력과 기력을 소모한 표정이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좋은 승부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보고 마지막 예를 행해서 비무를 끝냈다.

망량이 끼어든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잠깐, 이대로 끝낸다고? 이 반천맹주가 납득할 수 없소!"

모두의 이목이 그때까지 조용히 관전하고 있다가 튀어나온 망량에게로 쏠렸다. 망량은 초절정고수들의 시선을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걸어나와서는 이광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삼절 이광. 분명히 그대는 호언장담하지 않았소? 자신의 제자라면 어디서 튀어나온지 모르는 근본없는 자를 일백 초 내에 쓰러뜨릴 수 있다고."

그러자 이광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대답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었지. 그런데 왜?"

"무승부가 된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구려."

이어진 망량의 말에 장내의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당신은 천하제일의 재능을 의미없이 썩히고 있는 게 아니오?"

망량의 도발!

나는 당장이라도 이광이 망량을 공격할까봐 재빨리 그의 옆으로 갔다. 정천맹주 위지혼 또한 이광이 폭주하지 않을까 은근히 이광을 보고 있었다. 적월과 녹월 호법은 이 상황이 흥미진진한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광은 의외로 화를 내는 기색은 아니었다. 대신에 고민하듯 잠시 턱에 손을 갖다대다가 말했다.

"만일 나를 격동시키려는 계책이라면 사람을 잘못 골랐군. 의미없이 내 명예를 훼손하는 도발이라면, 나도 내 명예를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지극히 정치적인 말이었다. 순식간에 이광은 망량을 정당하게 쳐죽일 명분을 좌중에 설파한 것이다. 이광이 자신의 애창(愛槍)에 손을 뻗는 순간이 그렇게 긴장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어진 망량의 말에 이광은 멈칫하고 말았다.

"여기 소웅 무사의 나이가 얼마나 된다 생각하시오?"

"......"

"소웅 무사는 물론 보이는 것보다는 나이가 많소. 천년설삼의 부작용 때문에 거의 나이를 먹지 않아서 망정이지, 아마 진소청과 비슷한 나이일 거요. 그러나 그는 천하를 떠돌면서 수많은 무공을 섭렵했으며 자기 나름대로의 무학세계를 만들어 냈소."

망량의 말에 이광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래봤자 아직 의념에 대해서 감도 못잡은 것 같군. 아직 숙련자라고 할 수 없는 경지다."

"하지만 그런 자에게 당신의 제자는 승리를 이끌어내지 못했소. 당신은 정말 위지혼 맹주의 판정이 억지로 나온 결과라 생각하오?"

"......"

이 질문은 굉장히 날카로웠다.

대답하지 못하는 이광에게 망량은 마치 환멸하듯 말했다.

"뇌신류의 최종목표가 뭔지는 모르지만, 당신이 천하제일의 기재를 청룡무관에 가둬놓고 잉어처럼 양식하고 있으니 당신의 제자는 더 이상 성장할 수가 없는 것이오. 진소청이 이 무관에서 더 배울 수 있는 건 없단 말이오! 그에 반해 소웅 무사는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부족한 자신의 재능을 향상시키고 틀을 깨고 있소. 뭔가 느껴지는 게 있지 않으시오?"

이광이 신경질적으로 반문했다.

"말하고 싶은 게 뭔가? 반천맹주."

망량은 히죽 웃었다.

"당신의 제자 진소청을 우리 반천맹에 맡기시오. 그렇다면 그는 점수의 단계를 넘어서 단번에 돈오의 단계에 도달할 것이외다."

"음..."

설마 이광이 저 말에 꼬여넘어갈까?

나는 조마조마하며 살펴보았다. 이 설득이 통하지 않는 순간 이광이 무슨 수를 써서든지간에 망량을 공격해서 죽이려 할게 뻔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망량을 데리고 비등으로 튈 생각을 하며 긴장했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였다. 이광이 한참 고심하다가 대답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겠다."

"반은 긍정으로 보아도 좋겠소?"

"네 멋대로 해라."

이광은 그렇게 대꾸하고는 성큼성큼 걸어서 자신이 거하는 와룡전 안으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난데없는 태도라서 위지혼은 물론 적월과 녹월 호법도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이광이 저렇게 심기가 불편한데도 억지로 와룡전에 치고들어가서 심경을 물을 정도로 대담한 자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험!"

위지혼은 헛기침을 한 후 진소청에게 말했다.

"그럼 이걸로 오늘의 친선비무를 종료하겠네."

우선 청룡무관을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와룡전에서 느껴지는 이광의 신경질적인 살기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 아 맞아.]

등을 돌려서 무관을 나가던 중, 위지혼의 전음이 내게 은밀히 날아왔다.

[ 소웅 무사. 반드시 무당파에 들러 주게.]

[ 네?]

[ 자네가 여유가 없다 하더라도 반천맹주에게 긴히 말해서 반드시 자리를 마련하겠네.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줄테니, 꼭 오게.]

[ ... 알았습니다.]

보나마나 굴공검과 천축검 이야기일 것이다. 그는 무당파 속가 최고의 고수였으므로 명룡자와 알고 지내는 사이일 게 뻔했다.

나는 이후 망량과 함께 적월과 녹월 호법을 만나서 따로 이야기하는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적월과 녹월 호법은 가면을 벗고는 크게 만족한 얼굴로 망량을 극찬했다.

"과연 반천맹주야. 대단해!"

"자네 덕에 우리는 진소청의 재능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네. 감사하네."

"하하, 별 말씀을."

그렇게 서로 공치사가 오간 후 적월 호법이 슬며시 말했다.

"저 이광 놈이 진소청을 내놓을까?"

"절반의 성공이라서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결과를 기다려 주십시오."

"후후... 이광 놈의 저 얼굴을 본 것만으로 통쾌하구나. 크하하."

적월과 녹월은 껄껄 웃으며 초상승 신법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잘 했소."

나는 속으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내 자신이 한탄스러운 기분이 들어서 한숨을 쉬었다.

"후우... 미안하오. 이기지 못했구려."

면목이 없다.

나는 쥐구멍이 있다면 파고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고개를 떨구자 망량이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오? 정말 잘 했거늘."

"... 나는 무려 백여 년 가까이 온갖 고생을 다 하며 무예를 고련했는데도 20대의 진소청에게 고전(苦戰)한 거요. 이게 어찌 좋은 결과요..."

그러자 망량은 껄껄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다.

"우하하, 거 참 쓸데없는 걱정이군! 내 말은 빈말이 아니오. 당신은 정말 잘 했소."

"......?"

망량이 근처의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솔직히 말해서 당신이 한 수나 반 수 정도는 딸렸소. 이광이 자신의 제자를 말리지 않은 것은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였고, 적월과 녹월도 진소청의 막강한 재능을 확인했으니 반천맹의 고수인 당신이 죽어주기를 내심 바라는 눈치였던 거요."

역시 그랬던 건가.

뇌신류 고수들이 진소청을 말리지 않은데는 그런 내막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착잡한 표정을 짓자 망량이 씩 웃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관점일 뿐. 달리 이야기하자면 당신은 진소청이 진심을 다하지 않으면 도저히 상대하지 못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소리요. 또한 앞으로도 계속 발전할 게 분명하지."

"......!!"

"당신은 앞으로 더 강해질 거요. 왜 기가 죽어야 하는 거요?"

나는 망량의 말에 갑자기 용기가 솟는 것을 느꼈다.

진소청에게 너무 고전을 했기에 그런 식으로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그렇군!"

"생각해보시오. 오늘 당신은 이광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준 거요."

망량이 큭큭대며 웃었다.

"그 자는 지금쯤 와룡전에서 똥밟은 표정을 지으면서 분을 삭히고 있지 않겠소?"

"푸하하하핫!!"

나는 눈물이 나도록 웃었다.

확실히 그 근엄한 이광이 무승부에 펄펄 뛰면서 신경질 부리는 상상을 하자 유쾌해지는 것이다.

아, 바로 이거다.

사실 검마와의 수련에서 의념은 전혀 얻지도 깨닫지도 못했다. 그저 한 달동안 죽어라 지옥훈련을 하며 체력과 기력만 미친듯 소모했을 뿐이다. 그래서 실망에 젖은 채 쓸쓸히 비무에 임할 뻔 했다.

그러나 검마는 내게 조언해 줬다.

[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쉽게 지지 않는다.]

나는 그 말 하나로 용기를 얻어서 자신감을 가지고 진랑곡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 지금 좀 막히면 어때.'

앞으로 의념이란 경지를 얻는 건 어려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미친듯 수련해도 못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고난이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지금은 기분이 좋았다.

내게는 동료가 있다.

그거면 충분한 것이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 힘이 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