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09 ----------------------------------------------
삼황오제(三皇五帝)
파앗
나는 잠시 후 망량과 함께 하북(河北)으로 갔다. 내가 가본 곳 중에서 하북 적룡문과 가장 가까운 장소를 고르다보니 하북성의 북쪽 외딴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망량은 지도를 살피다가 말했다.
"반천맹원에게 얻은 정보로는, 여기서 북동쪽으로 삼백 리를 가면 적룡문이 나오는 듯 싶소."
"삼백 리 정도야 금방이지. 어서 갑시다."
타다닷
나는 망량과 함께 뛰기 시작했다. 들판을 헤치고 강가를 뛰어서 건넜다. 하지만 약 일백 리를 갔을 때 망량은 크게 지쳤는지 헐떡거렸다.
"허억... 허억... 잠깐만..."
"음? 벌써 지쳤소?"
너무 빨리 지치는 거 아닌가?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망량은 허탈하게 웃었다.
"하... 하하... 보통 인간은 일백 리를 말처럼 전력질주할 수 없소... 지금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잖소... 헉... 헉... 나도 영약으로 얻은 내공을 가지고 있기에 이만큼 뛴 것인데... 당신은 전혀 지치지 않았군..."
"......"
나는 그제야 내 체력이 얼마나 괴물같은 경지에 올라있는지를 실감했다. 현재의 망량도 무림에서 일류고수로 불릴 정도이고 뛰어난 내공을 보유하고 있는데 백 리를 전력질주하자 파김치가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배려가 없었다는 걸 생각했다.
"쩝, 미안하오."
"후... 좀 쉬었다 갑시다."
"아니오. 그냥 내가 당신을 업고 가겠소."
"뭣? 어...."
나는 즉시 망량을 들쳐업고 멸혼보와 뇌명을 끌어올려서 뛰기 시작했다. 북극으로 갈 때는 너무나 장거리라서 속도를 조절해야 했지만, 앞으로 이백 리밖에 남지 않았다면 그냥 미친듯이 뛰기만 해도 내공이 남아돌 것이다.
쒸이이익!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말보다 열 배는 더 빠른 속도로 쉬지 않고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이 확확 좁혀지는 게 축지법에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았다. 내 등에 업혀있던 망량은 그저 내 어깨만 꽉 잡고있는 듯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산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뛰어난 시력으로 여기저기를 내려다보다가 커다란 건물이 모여있는 지형을 발견했다.
"저기요?"
"그렇소. 저기가 적룡문이오."
나는 내심 적월이 강호에서 철저하게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대놓고 큰 건물을 만들어서 문파를 운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폭급해보이는 성정과 달리 상당히 교활하고 머리도 잘 돌아가는 인물이 적월이리라.
"흐음... 정면으로 가도 좋소?"
"물론 아니오. 적월은 근방에 있는 석림촌(石林村)에서 보자고 했소."
"석림촌? 저기인가."
산 위에서 보자, 적룡문에서 약 3리 정도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마을이 있는 게 보였다. 망량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는 망량을 업고 석림촌까지 갔다.
타앗
나는 마을 앞에서 망량을 등에서 내려 주었다. 망량은 체력이 다 회복되었는지 땀을 닦고 있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날 업고 왔는데 안 지쳤소?"
"쌩쌩하오."
내공과 체력이 소모되었지만 금새 재회복되었다. 아마 앉아서 일 각 정도만 쉬면 다시 완전한 상태로 되돌아갈 것이다.
"... 당신은 아마 신법으로 천하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지 않을까 싶소."
망량은 질린 표정을 짓고는 앞장섰다.
"석림촌의 촌장집 뒤편에 동굴이 있다고 했소. 거기에 적월이 기다리고 있을 거요."
"거 참 복잡하게도 가는군... 적월은 왜 이렇게 몸을 사리는 거요?"
"만일 백련교의 원로원 고수들이 쳐들어온다면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오. 늘 백련교의 습격을 경계하고 있는 거지."
"......"
나는 새삼 이광이 특이한 부류였다는 걸 깨달았다. 이광은 정천맹의 비호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세상 정면으로 돌출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렇게 하니 백련교에서도 섣불리 건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은 배짱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취할 수가 없으며 보통은 적월처럼 숨어사는 게 정상일 것이다.
잠시 후 우리가 동굴 앞에 도착하자 그 앞에 서 있던 왠 붉은 옷의 장년인이 말했다.
"누구냐?"
망량이 대답했다.
"하늘에 거역하는 자들이오."
"들어가라. 기다리고 계신다."
장년인은 동굴에서 비켜주었다. 나는 그 또한 상당한 고수라고 짐작했다.
' 은은한 뇌령지기가 느껴지는 걸로 봐서는 저 자도 뇌신류의 무공을 익혔나...'
하긴 적월이 이런 곳에 데려올 정도면 어지간히 신뢰할 테니, 뇌신류의 무공을 깊게 익힌 적룡문의 고수라고 봐도 좋았다. 우리가 동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갈수록 등불덕분에 시야가 밝아졌으며, 동굴의 끝에는 적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적월은 망량과 나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말했다.
"누가 반천맹주냐?"
"나요."
망량이 망설임없이 손을 들자 적월이 의외라는 듯 말했다.
"네가? 저 괴물같은 놈이 아니라?"
"그렇소."
"흐음..."
적월은 침음성을 흘리다가 마련되어 있던 의자에 앉았다.
"거기 앉아라. 이야기를 좀 해보자."
"물론이오."
나와 망량은 자리에 앉았다. 적월은 한참 우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진소청이란 자가 그렇게 대단한 천재인가?"
"물론이오. 세상에 그보다 무술재능이 뛰어난 자는 없을 것이고, 아마 당대 백련교주와 동급일 것이오."
"그런 놈을 왜 여태껏 우리는 몰랐지?"
"삼절 이광이 꽁꽁 숨겨놨기 때문이오. 그 나름대로 백련교에 복수할 최대의 비책이었겠지."
그러자 적월이 음산한 미소를 흘렸다.
"크크... 그 애송이 놈 따위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진소청의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당신들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있소. 원하신다면 진소청이 적룡문에 향하도록 도와드릴 수도 있소이다."
망량의 말에 적월이 손을 저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다."
"무슨?"
"우리가 직접 보고 놈을 판단해야겠다. 무슨 방법이 없겠는가?"
적월의 질문에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물론 방법은 있소."
"말해봐라."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여기 이 무사(武士) 또한 백련교에 저항하는 뇌신류의 후예. 이 자가 진소청과 한판 겨루는 걸 보면 당신들도 납득하지 않겠소?"
"......!!"
"대련장에 직접 와서 구경하시면 되오."
나는 깜짝 놀라서 망량을 쳐다보았지만 망량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망량의 말에 적월을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입구에 왔을 때부터 신경쓰였다. 감추고는 있지만 무시무시한 내공... 그리고 뇌신류의 무공을 익힌 게 분명한 뇌령(雷靈)의 힘이 느껴졌다. 너는 분명 뇌신류 면허개전 이상, 종사(宗師)급의 초절정고수이다."
"......"
역시 그는 내 내공수위를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겉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천령단과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일 테니 경계할 만도 하다.
"너는 누구냐?"
나는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이 상황에 내가 누군지를 어떻게 밝혀야 하는가?
내가 고뇌하고 있을 때 망량이 대신 말했다.
"그는 천년설삼(千年雪參)을 복용한 후 이름없는 뇌신류의 고수 아래에서 수학했소. 엄청난 내공 덕에 어린 나이에 높은 진경을 얻을 수 있었지만, 천년설삼의 부작용으로 어린외모에서 잘 나이를 먹지 않는 체질이 되어버렸지. 그 탓에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것이오."
"으음... 천년설삼...!!"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망량의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더러 사실인 부분도 있어서 뭐라 하기가 힘든 교묘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망량은 거기까지 설명한 후 빙긋 웃으며 말했다.
"... 그러나 이 무사의 재능도 진소청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오. 그 정도면 기대할만 하지 않소?"
"......"
적월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말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망량은 이후 적월과 어떻게 해서 진소청과 나의 대련을 보여줄 것인지를 한참 이야기하고는 동굴을 나섰다. 나는 동굴을 나서서 망량과 함께 약 이십 리를 벗어난 후에야 추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말했다.
"망량. 그게 무슨 소리요? 진소청과의 대련? 나한테는 아무 말도 안했잖소."
"미리 이야기를 했다면 당신은 미리 쫄아들어서 하지 않으려 했을 거요. 여기에 오려고 하지도 않았을 거고."
"......"
틀린 말이 아니다. 망량은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당신은 한 번쯤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않소? 지금의 진소청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필요가 있단 말이오. 다른 건 사실 겸사겸사 하는 일에 가깝소."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당신이 이기든 지든 상관없으니 그와 부딪혀 보시오."
"내가 이기면 곤란한 거 아니오?"
망량은 왜 그런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별로 상관없소. 적월과 녹월의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진소청에게 무시무시한 천재성이 있다는 건 즉시 알아볼 테니까. 나는 되려 당신이 이겨버리는 쪽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소."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망량은 훗하고 웃었다.
"나는 당신에게서 흑요석의 기억을 전해받았소. 단순히 이야기로 당신의 여정을 들었을 때와는 달리, 당신이 어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쳐왔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소리요. 그런데 어찌 내가 당신을 응원하지 않을 수 있겠소?"
"......!!"
"당연히 이길 거라고 믿고 있으니 이번 제안을 한 것이오."
나는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 망량은 이렇게까지 나를 믿어준다는 말인가?'
현재의 진소청은 초절정고수의 경지일 것이며, 나도 아마 동위(同位)일 것이다. 내가 크게 꿇릴 상황은 아니었지만 진소청의 천재성은 워낙 경악스러웠기에 장담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여태 살면서 그의 천재성에 쪼그라들기만 했던 것도 한몫 했다. 왠만하면 진소청과는 싸우기 싫다는 게 내 본심이었다.
그러나 내 친구인 망량이 이렇게까지 나를 믿어준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나는 여태껏 없었던 투지와 호승심이 내면에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이어진 망량의 말에 한층 더 투지가 불타올랐다.
"또한 진소청에게 이겨버린다면 이광의 표정이 볼 만 할 것이오."
"그렇군! 좋아!"
그건 아주 보고싶은 표정이다!
내가 투지를 불태우자 망량이 말했다.
"이광에게 비무신청 첩지는 내가 반천맹원을 시켜서 보내놓겠소. 대략 한 달 후로 잡아둘 생각이니 그때까지 무공을 갈고닦는 게 좋겠소."
"한 달이라고 해도 그동안 크게 발전하기는 힘든데..."
한 달이면 기간이 너무 짧다. 그러자 망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당신은 초절정의 단계에 올라있어서 쉽게 경지가 늘지 않겠지. 그렇다면 방법은 정해져있지 않소? 더욱 강한 고수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이오."
"누구에게?"
"백련교 호법사자에게 가르침받을 수 있다면 확실하겠지만, 당신은 가급적 백련교에는 얼굴을 숨겨두고 싶소. 그렇다면 가장 적절한 자가 한 명 존재하지."
나는 망량과 함께 진랑곡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망량은 미호에게 부탁을 했다.
"미호님. 우선 동영으로 돌아가셔서 흑요석을 모아주십시오. 미호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미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본녀의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서 모든 흑요석을 모아두고, 흑요석 광산을 발견해 두겠노라. 흑요석이 많다면 백웅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지겠지."
"감사합니다."
"감사할 일은 아니다."
미호가 내 뺨을 쓰다듬으며 싱긋 웃었다.
"본녀도 백웅을 돕기 위해서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느니라."
미호의 태도는 이전과는 많이 달랐다. 지금까지는 내 목숨만 살아있다면 나머지 일은 어찌되든 좋다는 시큰둥한 태도였지만, 얼마 전 토론에 끼어든 일도 그렇고 직접 나서서 흑요석을 모으겠다는 건 원래의 미호라면 생각하기 힘든 적극적인 태도였다. 나는 미호의 손을 덥석 잡고 말했다.
"고마워 미호!"
"흥, 이렇게 하면 내가 당황할 줄 아느냐?"
미호는 가소롭다는 듯 말하고는 별안간 팔을 두르며 내게 입을 맞춰왔다.
"......!!"
기습적으로 입술이 마주치자 등골에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 미호를 놀리기 위해서 반장난으로 하던 것과는 달리 농염한 기운이 내 몸에 흘렀다.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개지는 걸 느꼈고 숨이 막히는 게 느껴졌다.
미호는 한참 후 떨어지며 매혹적인 웃음을 흘렸다.
"우후후, 덤으로 이제는 진심이니라."
"윽..."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미호의 진심어린 매혹을 받으니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강력한 성적인 충동이 덮쳐오는 게 느껴진 것이다. 내가 안절부절 못하자 망량이 질린 듯 중얼거렸다.
"으으... 닭살..."
"흥! 꼬우면 너도 애인 만들어라. 꺄하하."
옆에 서 있던 망량이 내게 다가와서 속닥거렸다.
[ 고간을 진정시키시오.]
미호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봤다.
"아주 크구나."
"......!!"
나는 급히 비등으로 외진 곳에 갔다. 그리고 폭포수를 맞으며 뇌신류의 내공인 뇌룡일기공을 그 어느때보다도 집중해서 수련하며 뇌정경을 필사적으로 외웠다.
"으아아압!!"
번뇌여 사라져라!
사라져라 번뇌!
그렇게 약 반 시진이 흐르자 내 분신이 진정되어서 진랑곡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꺄하하... 오래 걸렸네?"
미호가 낄낄댔지만 나는 쳐다보지 못했다.
' 좋지 않아.'
미호가 더 매혹하면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미호가 반장난으로 인간 하나를 홀리려 들었다면, 지금의 미호는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며 요력을 총동원해서 매혹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자 가자!"
"어어?"
나는 미호의 손을 잡고는 재빨리 비등으로 동영의 천황궁으로 날아갔다. 그리고는 천황궁에 미호를 내려놓았다.
"흑요석 잘 부탁해!"
"야 잠깐..."
파앗
직후 득달같이 진랑곡으로 되돌아 와버렸다.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심력을 너무 써버린 것 같아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미호는 위험하다. 다음번에 미호를 만난다면 못참고 덮쳐버릴지도 모른다.
망량이 그런 나를 보며 피식 웃더니 말했다.
"천하의 절세미녀인 서문혜 소저나 사공린 소저를 볼 때는 그렇게도 별 감흥이 없던 사람이 미호님에게는 왜 그리 약하오?"
"......"
몰라서 묻냐!
나는 속으로 한 마디 외치고 싶었지만 그냥 딴청을 피우기로 했다. 괜히 입을 열었다가 망량에게 논박당할까봐 겁이 난 것이다.
"아무튼 잘 갔다오시오. 좋은 성취를 얻기를 빌겠소."
"맡겨두시오."
나는 잠시 후 비등으로 익숙한 장소에 갔다.
그 장소에 도착하자, 경비무사들이 내 얼굴을 모르는 듯 질문했다.
"너는 누구냐?"
여기에는 '백웅'이라는 이름으로 한 번 와본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성형술을 써서 외모가 바뀌었으므로 잘 모를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나는 소웅이라고 하는 사람이오. 문주께 바칠 선물이 있기에 찾아왔소."
"선물? 어떤 선물이냐."
"죄송하지만 직접 뵙지 않으면 말씀드릴 수가 없소."
문지기들은 안에 들어가서 한번 보고를 하더니 돌아와서 말했다.
"들어가라."
나는 문파 안으로 들어가서 머지않아서 문주를 만날 수가 있었다. 사내답게 생긴 장년인이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여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소웅이라 했나? 자네는 백웅과 어떤 관계인가?"
"저는 그의 동생입니다."
"동생이라... 그런 것 치고는 외모가 전혀 안 닮았군."
"그런 이야기는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형님과 같은 문파에서 수학했습니다."
나는 이미 그가 내 내공과 무공실력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래서 교묘하게 버무리기로 했다. 성형술로 목소리까지 달라졌는데 어떻게 나를 백웅이라고 생각하겠는가.
"......"
문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뭐 좋네. 그래서 백웅의 동생인 소웅이여. 내게 바칠 선물이란 게 뭐지?"
"바로 이것입니다."
나는 그에게 무라마사(村正)를 내밀었다. 무라마사를 받아든 문주는 이리저리 살피더니 감탄했다.
"과연 요도 무라마사인가! 큰 선물이군."
"기뻐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래... 이런 절세의 무기를 내게 진상했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용건을 말해 보게.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에서는 들어 주지."
나는 공손하게 말했다.
"저는 천하에 이름높은 마도팔문의 수장이자 무영문의 문주이신 검마 서문대룡께 한 달간 검을 가르침받고 싶습니다."
내 말을 들은 검마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지. 자네의 실력도 상당하니 한 달간 꽤나 즐거울 듯 하군."
"감사합니다."
그렇다.
이 곳은 바로 하남 최강의 사파이자 마도팔문 수위의 강자인 무영문!
그리고 나는 요도 무라마사를 대가로 무영문주 검마 서문대룡에게 검을 배우기로 한 것이다. 그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속성으로 내게 맞는 검술 성취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