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07화 (207/1,615)

0207 ----------------------------------------------

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망량의 말에 따라 당분간 북극행을 접어두고 화신류의 무공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비등을 타고 북극에 가서 막야에 피를 먹여서 땅에 꽂는다면 2차봉인지로 갈 수 있겠지만, 그건 목숨의 위험이 너무 크게 느껴진다. 난데없이 돌연사할 걱정이 있으므로 그 전에 챙길 것을 다 챙기기로 한 것이다.

"내 직계스승은 바로 화신류 호법사자인 한백령이오."

"그녀는 화신류의 대종사(大宗師)일텐데 단번에 그녀의 직계로 들어가다니..."

내가 알기로 화신류 내에는 상당히 많은 초절정고수들이 존재했다. 그자들 중에는 아마 이광이나 진소청에 못지 않은 실력자도 있을 것이다. 그 기라성같은 화신류 달인들의 정점에 서 있는 게 바로 화신류 호법사자 한백령인데, 그녀의 직계제자가 되는 건 그 자체로 기연(奇緣)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교주가 그만큼 소교주의 괴질을 치료한 공을 크게 평가했다는 뜻이겠지. 나는 그 덕에 화신류의 무공을 아주 쉽게 익힐 수 있었소."

화륵!

그렇게 대꾸한 망량은 자신의 손에서 화령지기(火靈之氣)를 방출했다. 물질적인 불꽃은 아니지만 내공이 기화(氣化)되어서 선연한 광채를 내뿜고 있었다. 나는 그 크기와 형태가 굉장히 견명하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침음성을 흘렸다.

"대단하군. 겨우 1년만에 이 정도의 진경이라!"

나 또한 뇌룡일기공을 익혀서 뇌령을 얻었기에 자연지기를 사용하는게 얼마나 어렵고 까다로운지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내공과 달리 자연지기는 아주 순수하고 밀도가 높았기 때문에 제대로 정제해서 쓰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련이 필요했다.

망량이 설명을 계속했다.

"화신류의 내공은 여러가지가 있으나 가장 주류가 되는 것은 염령신공(炎靈神功)이오. 아마 뇌룡일기공에 대비되는 공력일 것이고, 염령신공의 특징은 순간가속능력이 있다는 것이오."

"순간가속능력?"

"잘 보시오. 지금 염령신공을 끌어올릴테니."

망량은 권법의 기수식을 잡은 후 차분하게 전방을 노려보았다. 나는 그의 자세가 무술을 얼마 익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적고 차분하다는 걸 깨달았다. 보통 초보들이 자세의 헛점을 없애는데만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는 걸 생각하면 망량의 무재(武材)는 대단한 게 틀림없었다.

파앗!

순간적으로 망량의 몸이 빠르게 움직여서 정면에 일 권(一拳)을 뻗어냈다. 나는 그 변화와 속력을 관찰한 후, 짤막하게 감상을 남겼다.

"굉장히 빠르군... 그리고 일 권에 많은 변초가 스며들어있어."

"후우... 그렇소."

망량은 약간 기력을 소모한 듯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이 기술을 가리켜서 염령신공 오의(奧義) 용아(龍牙)라 하오. 내면의 화령을 격발시켜서 순간적으로 속도를 높이는 거지."

염령신공 오의 용아!

물론 망량의 순간속력은 초절정고수라 칭하는 자들에 비하면 아직 많이 모자란다. 그러나 현재 망량의 무공수준에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간적인 속도가 빨라진 게 육안으로 보였다. 간단한 일 권의 초식에도 무려 세 번의 변화를 섞을 수 있을 정도이니 망량과 동 수준의 무인은 난데없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전성이 높은 기술이 분명하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뇌명(雷鳴)같은 기술이군."

"아마 그럴거요."

"하지만 여러모로 다른 것 같소. 뇌명보다 소모하는 내력이 훨씬 적어보이지만, 뇌명의 가속보다는 많이 떨어지는군."

이건 내가 뇌신류라서 자파의 무공을 우월하게 보는 관점이 아니다. 용아는 뇌명과는 추구하는 바가 본질적으로 다른 기술인 것이다. 뇌명은 수준격차를 깨부수고 필살(必殺)을 노릴 수 있는 결전오의인 반면, 용아는 좀 더 한계치가 낮은 기술으로 보였다.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뇌명은 그 자체로 필살오의라 할 수 있소. 용아는 뇌명에 비하면 많이 떨어지는 기술이지. 그러나 이 기술의 진수는 일반기술에 자유자재로 섞어쓸 수 있다는 것이오."

그는 잠시 후 옆에 놓아두었던 청강장검을 뽑으며 말했다.

"이것은 내가 익힌 화신류의 비전검법인 무극용왕검(無極龍王劍)이니, 잘 보시오."

파바바밧

이윽고 망량의 손에서 무극용왕검법의 초식이 개진되기 시작했다. 마치 허공에 가상의 적이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초식을 잇는 걸 보니 그는 무극용왕검의 형태를 모두 터득한 듯 싶었다. 무극용왕검의 흐름에서 나는 문득 한백령과 싸울 때가 떠올라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 그렇군... 한백령도 저걸 익혔구나!'

수준은 다르지만 유사함이 한눈에 느껴졌다. 지금 망량이 펼치고 있는 초식 하나하나가 수준이 올라갈수록 절정고수를 일격에 격살하는 흉악한 공격력을 머금은 필살기로 변모해버리는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망량의 무극용왕검 초식을 바라보던 중 기이한 점을 발견했다.

"흠..."

이윽고 망량이 24초를 끝으로 무극용왕검을 끝냈다. 망량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용아의 위력을 느꼈소?"

"그렇군. 순간가속을 해서 일반초식 사이에 다시 파생절초를 만들 수 있으니... 실질적으로 초수의 변화는 무한(無限)이구려."

"잘 봤소. 순수한 무극용왕검은 한계가 있지만, 용아는 화령을 격발시키는 체술(體術)의 개념이기 때문에 그 어떤 무공에라도 섞어쓸 수 있는 거요."

"으음...!!"

나는 망량의 말 뜻을 알아챘다.

자연지기 화령을 격발시킨다!

그것은 원래 한 번 벨수밖에 없는 초식에서 순간적으로 선택지를 두세 개로 늘릴 수도 있으며, 원래 정해진 각도에서 베어야 할 때 광각(廣角)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론적으로는 용아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다면 같은 무공이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운용하는 게 가능했다.

' 이것도 뇌명에 못지 않은 오의인 건 틀림없구나.'

내가 곰곰히 생각하고 있을 때 망량이 말했다.

"그럼 어디 한번 뇌명과 용아의 비결(秘決)을 비교해 봅시다. 그러면 뭔가 더 나은 기술이 탄생할지도 모르지."

"좋소."

나는 망량에게서 그가 알고 있는 모든 화신류의 기술과 내공비결, 특징을 그로부터 석 달 동안 배웠다. 종종 망량이 자리를 비울 때는 내 나름대로 화신류를 연구해보기도 했다. 그렇게 꽤 시간이 지나자 화신류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망량이 말했다.

"좀 성과가 있소?"

나는 망량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다 좋지만 뇌명과 용아를 비교분석해서 더 좋은 기술을 만드는 건 무리요. 두 기술 모두가 절세무공이라서 내 오성(悟性)으로는 두 개의 장점만을 끌어내는 게 불가능하오."

아니, 천재라고 해도 이게 가능한 일일까? 뇌명은 극단적인 속도향상을 이끌어내는 단기결전용이며 용아는 순간가속을 통해서 일반기술의 위력과 범용성을 끌어올리는 기술이다. 각자가 장점을 얻기 위해서 포기한 일면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걸 둘 다 혼합시켜서 최고의 기술을 만드는 건 현재로서는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무극용왕검을 당신의 만승검결에 도입시키는 건 어떻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오. 단순히 초식만 덧붙이는 걸로는 무공의 위력을 좌지우지할 수 없소. 두 개의 검술을 모두 내밀한 심득(心得)까지 얻어도 될까말까라 생각하오."

"흠... 그럼 화신류의 약점을 알게 된 성과밖에 없군."

"그렇소."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화신류의 약점... 방어력이 취약하다는 걸 알게 된 걸로 만족하오."

화신류의 무공은 굉장히 공격력이 강력하다. 어느 정도냐면, 어디 가서 파괴력으로는 꿇리지 않는 뇌신류의 무공보다 되려 막강할 정도였다. 실제로 나는 망량과 틈날 때마다 대련을 해 봤는데 망량이 용아를 이용해서 초식의 장점을 살리며 연속공격을 하자 막거나 피하기가 굉장히 성가셨던 것이다. 만일 화신류의 초절정고수라면 나와 싸울 때 반드시 단기전으로 둘 중 하나는 죽는 식으로 끝나고 마리라.

그러나 그 공격력을 얻은 대신에 방어력이 취약했다. 용아를 이용해서 방어력을 높일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장점을 살리지 못하므로, 강력한 검격을 퍼부은 직후에 반격(反擊)을 넣으면 극도로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즉, 화신류를 쉽게 상대하기 위해서는 굴강한 방어력과 뛰어난 반격능력이 필요하다!

망량이 말했다.

"너무 속단하지는 마시오. 내가 한백령에게 배운 건 아직까지 화신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오. 심오한 경지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떤 비밀이 숨어있을지 모르는 일이지. 당신도 오랜 세월 뇌신류를 익히며 그런 걸 느끼지 않았소?"

"진실로 그렇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망량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백련교 사대무류라는 건 무려 천여 년 이상 전해져 내려오며 천재와 달인들에 의해 완성된 거대한 무술유파였다. 그런만큼 셀 수도 없는 기술과 경지가 존재했으며 파고들어도 끝이 없었다. 나는 이광 밑에서 수학하며 그런 점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망량은 더운지 대청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미호 님은 언제쯤 부끄러움을 멈추실지 모르겠군."

나는 말없이 진랑곡 앞의 가까운 야산을 쳐다보았다. 휘영청 밝은 달이 산봉우리를 비추고 있었는데, 나무 위에 미호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서 있는게 보였다. 거리가 3리가 넘었지만 고수인 내 안력에는 미호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미호는 기억을 보여준 후 저렇게 진랑곡 근처에서 서성이며 맴돌 뿐 쉽사리 내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조심조심 진랑곡 안으로 들어오는 미호에게 말을 걸면 깜짝 놀라며 도망치기 일쑤였다. 나는 경험상 저런 미호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지금 어떻게 대해야 할지 난감한 상태였다.

나는 알 수가 없어서 망량에게 물었다.

"그게 그렇게 부끄러운 일인가? 미호는 왜 저러는 거요?"

"하하하... 당신은 부끄럽다는 감정에 어떤 감정이 섞여있는지를 잘 알아야겠군."

"무슨..."

"슬슬 미호 님도 진정되었을 테니 당신이 직접 가서 이야기해 보시오. 지금이라면 이야기를 받아주실 거요."

"알았소."

파앗!

나는 다음 순간 비등을 이용해서 미호가 있는 산봉우리로 이동했다.

"앗!"

나무 위에 서 있던 미호는 나를 보자 깜짝 놀란 듯 다시 신행백변을 사용해서 도망치려 했지만, 나도 그녀를 놓칠 생각이 아니었으므로 급히 뇌명과 멸혼보를 이용해서 최대속도로 미호를 붙잡았다. 내 손이 미호의 허리를 감싸안자 미호가 놀라서 그 자리에 멈춰섰다.

나는 미호를 데리고 나무 밑으로 내려가서 말했다.

"미호. 왜 그러는 거야?"

"......"

미호는 우물쭈물하며 눈을 돌리며 바닥만 바라보았다. 나는 미호의 손을 잡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지금 이럴 때가 아냐. 네 힘이 간절하게 필요해. 다시 돌아와 줘."

"... 백웅."

한참 망설이던 미호가 갑자기 두 손을 내 목 뒤에 감싸더니, 나를 꼭 끌어안았다. 미호 쪽에서 먼저 끌어안는 일은 꽤 있었지만 지금의 포옹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미호는 나를 안은 채 말했다.

"그 기억을 보고 나서 내게 어떤 감정이 생긴 줄 아느냐?"

"......"

"그 흑요석은, 네 시점에서 보고 느꼈던 모든 감정을 생경하게 전달했느니라. 네가 지금까지의 '미호'를 보면서 생각했던 마음도 함께 전달되었다는 거지."

그러더니 미호가 약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멍청한 녀석아. 도대체 몇십 년을... 홀로 괴로워했던 것이냐? 얼마나 혼자 끌어안으면서 살아왔던 것이냐?"

"미호..."

"너는, 언제나 내게 진심이었다는 걸 알게 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느니라..."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미호는 전생할 때마다 내게 살갑게 대해주었지만, 진정으로 연심(戀心)을 품은 적은 거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서왕모의 명에 따라서 보호해주어야 할 인간으로써 접근한 적이 대부분이었다. 그 외에는 고고한 대요괴의 자세를 잃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호를 좋아한다.

지금까지 좋아했고, 앞으로도 계속 좋아할 것이다.

보답받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다면 그건 도리어 나같은 전생자에게 있어서 축복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미호는 포옹을 멈추고 살짝 몸을 떼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도 미호와 마주앉아서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미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백웅. 나와 함께 천계에 가자."

"천계에...?"

"그래. 십 년간 너를 보호해주는 계약이 끝나고 나면 본녀는 천계에 되돌아갈 수 있게 되느니라. 그 때 함께 천계에 가자꾸나."

내가 멍하니 미호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딘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너는 이대로 인간 세계에 남아있어도 한없이 부평초처럼 떠돌 뿐이 아니겠느냐? 그럴 바에는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본녀와 함께 가자..."

"......"

나는 말없이 미호를 끌어안았다. 미호의 체온이 느껴진다.

"응."

미호와 함께 천계에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이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부탁드려요~ 힘이 됩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