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204화 (20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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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망량은 고대의 삼황오제가 사실 식인(食人)을 했다는 충격적인 말을 하고는 내게 말했다.

"물론 이 사실은 그 자체로는 경계의 의미밖에 없소. 그냥 그것 뿐이니 크게 생각하지는 마시오."

"알았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물론 이건 경악스러운 역사의 진실이었지만 지금 수요 막야의 봉인을 해금하는 일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었다. 파고들면 없지야 않겠지만 아직 우리가 거기까지 알 수는 없다. 망량이 미호가 없는 자리에서 내게 이 사실을 설명한 것도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이 아니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설령 삼황오제가 인간을 잡아먹었다 한들 그건 고대의 일이 아닌가? 지금 당장 내 일과 관계되는 건 아닌 것이다. 지금은 달기에 대항할 힘을 얻는 게 더욱 중요하다.

망량이 말했다.

"백웅. 이렇게 된 이상 무식한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소."

"설마..."

"다시 대초원의 호수로 가서, 그냥 당신 몸의 감각을 믿고 북쪽으로 계속 가 보시오. 한빙의 대륙이 나올 때까지."

"끙, 그 수밖에 없겠군."

지금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독도법을 찾아서 그 많은 장서관의 책을 모두 뒤적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얼추 보아도 수만 권은 되는 것 같았고, 망량은 현재 황궁세력을 정치적으로 견제하며 자신의 역량도 올려야하기 때문에 시간을 너무 낭비할 수 없다.

나는 한서불침의 몸인데다가 엄청난 내공을 체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두꺼운 털옷만 잘 갖춰가면 도중에 동사(冬死)할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최대한 북방의 땅을 달려나가다가 힘들면 다시 진랑곡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다.

' 죽이되든 밥이되든 그 북극 대륙이란 걸 일단 두 눈으로 봐야겠다.'

내가 각오를 다지자 망량이 말했다.

"백웅. 혹여 등평도수(登萍渡水)를 쓸 수 있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오."

원래는 못 썼다. 하지만 14번째 생에서 뇌신류에게 집중적으로 가르침을 받는 동안에 경공재간도 필수적으로 익혀야 했기에 초상비(草上飛), 등평도수 같은 고급 경공수법도 함께 익힌 것이다. 원래는 경공수법도 뛰어난 재능이 필요한 것이지만 기초적인 기의 운용이 완벽하게 되어있고 각종 절세무공을 배우면서 무공 전반에 대한 이해력이 좋아졌기에 문제가 없었다.

곧이어 미호가 돌아왔다. 미호는 앞으로 동북의 땅을 통과해서 북극대륙 정면돌파를 하려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설마 했는데 그 무식한 방법을 쓰려는 거구나."

"미호. 너는 목걸이가 되어서 따라와 줘."

"뭐 그거야 상관없는데 정말 괜찮겠느냐? 중원의 험지를 넘는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고난일 텐데."

"고생 하루이틀 하는거도 아니니까 괜찮아."

아무것도 못 이루고 죽는 게 더 무섭다.

나는 그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나와 미호가 진랑곡을 떠나기 전에 망량이 말했다.

"백웅. 지금 당장은 신화적 존재들에 힘이 미치지 못한다고 괴로워하지 마시오."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백여 년 가까이 힘을 기르고 수양을 했는데도 그 자들의 힘에 발끝만큼도 미치지 못하니 어찌 걱정하지 않겠소?"

"하지만 당신은 앞으로 다시 백 년 동안 힘을 기를 기회가 있소."

"......"

내가 물끄러미 망량을 바라보자 그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막야와 내공의 기연을 가져다준 이후 밤잠도 아끼면서 무공과 술법을 수련했소. 왜냐하면 책략으로 황궁을 무찌른다는 목표가 더욱 커져서, 신대(神代)의 마왕(魔王)인 달기와 싸우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오. 생존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나는 노력했소."

"......!!"

나는 그제야 이번 생에서 망량의 엄청난 발전속도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망량은 반천맹을 발전시키고 각종 전략을 펼치는데 집중했으며 개인의 무위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압도적인 힘의 차이가 존재하는 이상, 망량은 언제든 반천맹이나 아군이 전멸당하고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걸 알아챈 망량이었기에 지금까지보다 더욱 필사적으로 수련을 한 것이리라.

망량이 빙긋 웃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오."

"내 마음?"

"그렇소. 바로 백웅 당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세상은 어떻게든 바뀔 것이오. 그러니 늘 마음에 의(義)와 협(俠)을 잊지 말아 주시오."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나도 이번 생에서 망량이 얼마나 수고하며 노력했는지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 마시오. 나는 잘 해낼 거요."

파아앗!

나는 다음 순간 미호와 함께 오브스 호수로 갔다. 망량의 말에 따르면 위도상으로 볼 때는 모스크바나 아스타나보다 오브스가 도리어 북극에 가까울 수 있다는 조언 때문이었다. 이제 이 곳에서부터 북쪽을 향해서 쭉 달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미호가 말했다.

"그 서역인, 벨로프와 이반 4세의 일에는 더 끼어들지 않을 생각이지?"

"응. 그건 나중 일이라고 생각해. 어차피 당장 봉인된 용의 해주법이 없을테니 서둘러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잘 생각했다."

"그나저나 미호, 궁금한 게 있는데."

"뭐냐?"

나는 앞으로 기나긴 길을 숨도 안쉬고 달려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차분하게 호수 근처의 바위에 앉았다. 미호를 쳐다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삼황오제가 인신공양을 받은 사악한 신(神)들이었다면, 천계는 도대체 뭐야?"

"......"

미호는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그, 그런걸 왜 궁금해 하느냐? 지금 북극에 가는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지 않느냐?"

"이상하잖아. 천계라는 건 분명히 삼황오제의 치세일 때도 존재했을텐데, 인신공양이 행해지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었다는 걸까?"

광성자를 비롯해서 천계의 최고참 선인들은 황제 공손헌원과 친하게 지냈다는 기록이 <산해경>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천계 또한 삼황오제가 인간의 공물을 받고 잔혹한 인신공양을 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내 의문에 미호가 대답했다.

"본녀도 잘 모르느니라. 하지만 본녀가 보았던 천계의 선인들이나 신수(神獸)들은 모두 정의롭고 질서를 추구하는 존재들이었다. 암천향에 거하는 마물처럼 사악한 존재들이 아니었느니라."

"흠..."

"본녀가 모시던 서왕모(西王母)께서도 마찬가지이니라. 그 분은 인간들이 서왕모의 사당에 기우제를 지내거나 염원을 하면 아주 인심좋게 들어주기로 유명하셨다. 대라신선들은 하나같이 선한 존재들이며 인간을 좋아하느니라."

"그렇군."

미호가 이런 문제로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아니, 도리어 천계에서 추방된 미호가 이런 말을 한다는 데서 진실성이 느껴졌다. 천계의 대라신선들이나 신수들은 정말로 선한 존재들이며 사신(邪神)들과는 정 반대의 존재인 것이다.

' 그럼 천계는 그냥 삼황오제의 횡포를 방관했다는 뜻인가?'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또 하나 걸리는 게 있다.

봉신연의(封神演義)!

대라신선이자 투선인 검선 여동빈의 말로는 은주시대가 교체되던 시기를 그려낸 봉신연의라는 소설(小設)은 허구라고 했다. 그리고 은나라는 인신공양을 자주 하던 사악한 제국이며, 주나라가 그런 은나라의 인신공양 풍습을 끊어냈다.

그렇다면... 실제로는 은주 교체기에는 과연 어떤 일이 있었다는 말인가?

"답답하구만."

"뭐가 말이냐?"

"과거로 가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나는 지나가듯이 중얼거리고는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혹시 과거로 되돌아가는 보패나 술법같은 건 없냐?"

그러자 미호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하필이면 본녀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

"아... 미안."

미호는 천계에서 추방당했다는 우울한 과거를 가진 대요괴였다. 내 질문 자체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 했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미호에게 사과하자, 미호는 별안간 꺄르륵 웃으면서 내 볼을 잡아당겼다.

"아하하, 장난이다. 본녀가 알기로 그렇게 편리하고 어마어마한 기적은 존재할 수가 없느니라."

"왜? 술법이 극한에 도달하면 죽은 자도 살려낼 수 있다고 하던데."

"흐흥... 자세히는 모르지만 시간(時間)을 다루는 술법은 원래 불가능하다고 하느니라. 대라신선들조차도 시간을 어찌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괜한 꿈 깨고 지금 일에나 집중하는 게 어떠냐?"

"쳇, 말도 못 해보냐."

"너는 지금 초급 술법사에 지나지 않으면서 어딜."

미호가 가소로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말대로 나는 미호에게서 받은 법구를 오랫동안 품은 덕에 기초 법력과 술력은 마련되어 있지만 배운 술수가 미천해서 초급 술사에 불과했다. 적어도 상위 술법사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미호에게 있어서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가당찮게 보일 것이다.

나는 문득 생각나서 미호에게 말했다.

"아 맞다, 미호."

"또 뭐냐? 한 번에 질문해라."

"나 술법을 배워야 하는데 네가 내 스승이 되어줄 수 있을까?"

"화염술을 가르쳐주지 않았느냐."

"그 외에도 여러가지 술법을 알고 있잖아."

그러자 미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여태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도 인간과 요괴의 술법이 어떻게 다른건지 모르는것이냐?"

"잘 몰라. 설명을 들은 적이 없으니."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술법은 후천적(後天的)인 것이고 요괴의 술법은 선천적(先天的)인 것이다. 요괴가 다른 술법을 배울 수도 있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술법은 아무런 수련도 하지 않아도 강력하게 쓸 수 있지. 왜냐하면 요괴의 존재는 음(陰)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세상의 어둠에서 저절로 힘을 습득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대부분이 선천적으로 술법을 타고나지 못하며, 후천적으로 배워야만 한다. 그래서 술력(術力)이 요괴선인보다 딸리는 경우가 많으며 힘보다는 기교로 싸우는 경우가 많은 거지."

"그렇군..."

"인간이라면 인간 술법사를 스승으로 두는 게 옳으니라."

순간적으로 나는 번뜩하고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 어라, 이 방법이 있었네?'

아주 좋은 생각 같다.

나는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미호와 대화한 덕분에 귀중한 단서를 얻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호를 꼭 껴안았다.

"고마워 미호!"

"끄으으응... 알아듣긴 한 것이냐?"

미호의 어깨를 끌어안고 뺨을 부비적거리자 미호가 징그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살 손으로 내 몸을 밀어냈지만 나는 더 기분이 좋아져서 미호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미호가 얼굴이 홍당무처럼 되어버렸다.

"으이그 그만해라! 일이나 해."

미호가 버럭 외치더니 그대로 목걸이로 변신해서 내 목에 걸렸다. 이제 잡소리 그만하고 북쪽으로 가자는 소리였다. 나는 미호의 살갗 감촉을 되새기자 광대뼈가 치솟는 기분이 들었다.

타닷

나는 엄청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내가 바람처럼 달리는 동안에 미호가 퉁명스럽게 심어를 걸어왔다.

[ 뭐가 좋아서 그렇게 히죽대느냐?]

"헤헤."

잘은 모르겠지만 미호를 껴안자 내면의 무언가가 충만해진 기분이다. 미호 성분이 가득 채워진 것이다. 요 며칠간 있었던 피로감이나 정신적인 짜증같은게 한 번에 날아간 기분이 든다.

그렇게 약 하루 나절을 뛰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설원에 도착해 있었다. 초원을 벗어나서 완전한 동토(冬土)에 접어들자 엄청난 추위와 한파가 쉴새없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눈바람이 몰아치자 한치앞도 안 보일 정도였다.

휘이이잉!!

칼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보통 인간이라면 이런 장소에서는 털옷을 입고 있어도 한 시진도 못버티고 얼어죽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한서불침인데다 엄청난 내공이 있었으므로 아무렇지도 않고 험준한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산맥의 거대한 바위를 밟으며 만장단애를 가로로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아예 인간의 흔적이 없는 오지에서 제일 빠르게 산을 넘는 방법인 것이다. 옆으로 가로지르기 시작하면 도리어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더 빨리 보이게 마련이었다.

나는 그렇게 약 한 시진동안 경공으로 오르면서 황당한 기분이 들었다.

' 뭐, 뭐 이렇게 높아?'

나는 길어도 한 식경이면 하나의 준봉을 오를 정도의 경공술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 산은 어찌나 높고 험한지 별의별 애를 쓰면서 겨우 정상을 보는 것이다. 왠만한 등산술로는 도전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산이었다.

겨우 산 위에 올라서 보자 커다란 광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지나쳐온 장소가 보였고 앞으로 가야할 곳도 보였다. 나는 맞은편에 있는 큰 산을 목표로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휘이이이이이 -

완전히 한시도 쉬지 않고 쉴새없이 칼바람과 한파, 눈보라가 몰아친다. 이렇게 험난한 장소는 생전 처음이었다. 나는 입고 있던 옷이 점차 얼기 시작하는 걸 깨닫고 기를 흘려보내서 눈을 털었다. 그리고 달리고 또 달리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 미치겠군. 쉴 장소도 변변히 보이지 않아.'

몇 시진이나 지났을까. 적어도 네 시진은 지난 듯 했다.

벌써 삼백 리는 달린 것 같은데 아직도 인간의 흔적이 없는 망망한 설원이며 한파며 오지였다. 나는 이것이 진정한 북쪽의 대륙이란 걸 깨닫자 몸서리가 쳐졌다. 엄청나게 넓으면서도 인간이 변변히 살아갈만한 환경이 마련되지 않은 것이다.

휘오오오 -

나는 문득 달리다말고 칼바람이 불어대는 설원 한가운데에 멈춰섰다. 아직 지치지는 않았지만 어둠이 갈수록 강해지며 후두둑거리는 눈덩이만 여기저기에 굴러다녔다. 나는 여기에서 야영을 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다.

' 음... 비등을 써서 이쯤에서 한 번 돌아갈까?'

아직 큰 난항은 없었지만 너무 험준한 자연지형 때문에 마음이 꺾일 것 같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아냐. 좀 더 가보자.'

타닷

나는 다시금 달렸다. 달리고 또 달리면서 간혹 숨이 찼지만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렸다. 달리면서 뇌명은 쓰지 않고 멸혼보만 쓰면서 달렸는데, 뇌명을 쓰면 조금 빠르게 갈 수는 있으나 혹한을 견딜 내공 분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멸혼보는 적은 내공으로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에 좋았다.

쿠르릉...

나는 눈사태를 3번째 피하며 바닥에 착지했다. 도중에 동굴이 보이길래 안에 들어가서 쉬었다.

"후우..."

절벽에 마련된 자연적인 동굴은 그리 깊지 않았고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을만한 장소였다. 나는 동굴바닥에 누워서 미호에게 중얼거렸다.

"미호. 진랑곡에 돌아갈까?"

[ 여기가 어딘 줄 아는 것이냐?]

"잘 모르겠어."

[ 그럼 사람이 사는 지형이나 특이한 게 나올 때까지 계속 가 보려무나.]

나는 내 마음이 약해진 걸 깨닫자 기가 막혔다. 어찌나 자연이 험난한지 기가 질린 것이다. 하지만 미호의 말에 마음을 다잡으며 새하얀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 동굴에서 약 한 시진동안 눈을 붙이고 쉰 후 다시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공이 다시 완전히 회복되었으므로 또 뛰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뛰고 또 뛴다. 북쪽을 가리키는 방향 하나만 믿고, 앞에 산이 있든 강이 있든 절벽이 있든 아랑곳하지 않고 전부 넘어갔다. 세상에 이런 방식으로 대륙을 넘는 사람은 나 이외에는 달리 없을 것이다.

그렇게 다시 하루 내내 계속 뛰자, 드디어 내공이 바닥을 보이는 느낌이 들며 으슬으슬하게 추운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기절할 것처럼 체력이 소모되었지만 바로 그 때 비등을 꺼내들었다.

파앗

진랑곡에 돌아오자 동태같은 꼴이 되어있는 나를 망량이 발견했다. 동시에 목걸이의 형태에서 미호가 다시 변신해서는 여우불로 내 몸을 덥혀주었다. 내가 그렇게 반나절을 잠들었다가 일어나자 망량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정말 괜찮겠소?"

나는 머리를 휘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소... 앞으로 며칠만 더 가면 될 것 같소."

지금까지 최소한 일천 리는 달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될 것이다. 아무리 대륙이 넓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달린 만큼의 거리를 더 달린다면 필연적으로 끝이 보일 거라는 예감이 든 것이다.

나는 다시 미호와 함께 비등으로 마지막에 도착했던 절벽으로 갔다. 이름도 모르는 험준한 산의 절벽에서 나는 경공으로 뛰기 시작했다.

"우오오오오오!!"

오기가 생긴다. 어쨌든 달린다!

나는 어느새 무아지경에서 계속 생각없이 달리고만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내공이 끊어지지 않을까만 염려하면서 멸혼보로 달리고 또 달렸으며, 천지가 뒤집힐 정도로 거대한 산사태를 종종 피해다녔다.

그렇게 약 사흘 밤낮을 달린 결과 -

"......"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나는 빙판 위에 서서 황량한 설원을 바라보며 생각했지만, 역시 이상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법인데, 왠지 여기는 어두워지지 않았다. 몸의 감각으로는 밤이 되고도 충분한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내가 내심 고민하고 있을 때 미호가 목걸이 형태에서 되돌아와서 말했다.

"밤이 오지 않는구나."

"어떻게 된 거지?"

이 곳은 도리어 눈바람이나 폭풍이 몰아치지 않는다.

고요하다.

미호는 황량한 느낌 마저 드는 빙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뜻이 아니겠느냐."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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