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99화 (199/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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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순간 칼을 뽑아들고 달려들 뻔 했지만 미호가 태연한 기색이라서 일단 살의를 가라앉혔다. 내가 침착하게 선지자를 노려보고 있자, 선지자가 다시금 심어를 보내 왔다.

[ 나를 괴물이라 생각하는가? 나는 선지자일 뿐이다.]

옆에 있던 미호가 말했다.

"당신은 천계(天界)에 더러 소식을 전하던 자가 아닌가? 이런 곳에 있었군."

나는 놀란 눈으로 미호를 쳐다보았다. 미호는 저 이족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러자 놀랍게도 이족도 미호를 알아본 듯 천천히 말했다.

[ 천계의 여우구나. 인간과 함께 올 줄은 몰랐다...]

"......!!"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내가 당황해서 서 있자 미호가 내게 설명했다.

"소웅. 저 존재는 아주 머나먼 옛날부터 있었던 존재이며 천계에도 가끔씩 방문하는 자이다. 이족(異族)이긴 하지만 천계와 호의적인 관계에 있고 굉장히 뛰어난 지능과 지혜를 지니고 있다."

"말이 돼? 천계는 이족과 적대관계 아니었어?"

내가 소리를 높이자 선지자가 대답했다.

[ 그대들 인간들은 외계(外界)의 종족을 뭉뚱그려서 이족이라고 통칭하지만, 실제로는 그 족속의 숫자는 수백 수천이 넘는다. 개중에는 너희 인간을 먹잇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 호전적인 종족이 대다수이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그리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천계와도 공존(公存)할 수 있다 생각한다.]

"......"

"저 말이 맞아. 저 선지자는 특별해. 위대한 종족이라고까지 불려."

충격과 공포다.

설마 이계의 이족이 이런 북방의 동토에서 선지자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천계나 요괴와도 호의적인 관계라니! 내가 멍하니 서 있자 선지자가 말했다.

[ 아라사의 수도인 모스크바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사실 북극으로 향하고 있소. 모스크바에는 북극으로 향하는 지도는 물론 관련된 지식이 많이 있을거라고 해서 가는 중이었지."

선지자가 자신의 얼굴을 꿈틀거렸다.

[ 틀리지 않다. 고대(古代)의 지식이 거기에 있지. 그곳에는 고대의 종족도 많이 살고 있다... 그럼 그대는 북극에 가서 무엇을 찾는가...]

이거까지 대답해야 하는가? 내가 미호를 쳐다보자, 미호가 내게 심어를 날렸다.

[ 걱정 말아라. 저 존재는 자기자신의 지식욕(知識慾) 외에는 아무 관심도 없으며 천계에서도 무해(無害)하다고 인정한 존재이다. 믿어도 될 것이다.]

[ 알았어.]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선지자에게 대답했다.

"칠요(七曜) 막야(莫耶)의 2차 봉인을 풀기 위해서요."

[ 칠요 막야? 대홍수의 흉측한 상흔을 머금고 있는 그것의 봉인을 해제한다라...]

선지자가 왠지 어이없어하는 기색으로 대꾸했다.

[ 너는 무섭지도 않으냐...? 막야의 2차 봉인이라고 하면... 그걸 수호하는 존재가...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생각해본 적 없느냐...?]

"......"

그건 그냥 비문(碑文)의 간략한 암시로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선지자에게 말했다.

"잠깐. 당신은 괴어(怪語)를 읽을 수 있소?"

[ 괴어?]

"당신들 이족들만의 언어를 말하는 거요."

[ 주술의 언어는 굉장히 많지. 네가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으니 구체적인 예시를 가져와라...]

"잠깐만 기다리시오."

나는 비등을 꺼내들고는 곧장 수요 막야의 유적으로 향했다.

파앗!

그리고 유적에 있던 비석을 밑둥부터 잘라서 목갑에 넣은 후, 다시 비등을 통해서 대사원으로 이동했다. 내가 순식간에 나타나서는 그의 앞에 비석을 놓자 선지자는 신기한 듯 말했다.

[ 너는... 마도사의 유물을 사용하는군... 그 황금 비등은 압둘 알하자드가 제작했는데... 아주 재밌게 활용하는군...]

"제작자가 누군지는 알 바 아니오. 당신은 이 비석의 내용을 읽을 수 있소?"

[ 흐음. 잠시만...]

선지자는 자신의 동체를 옮겨서 비석 앞으로 이동했다. 둔해보이는 외관과 달리 의외로 재빨랐다. 그는 자신의 눈알을 옮겨서 뒤룩뒤룩거리며 비석을 한동안 관찰하다가 말했다.

[ 해석했다. 내용을 알고 싶으냐...?]

역시 같은 이족이라서 그런지 완전한 내용의 해석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나는 부분적인 해석밖에 못 했으므로 온전한 내용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 주시오."

[ 듣고 나서도 네가 제정신으로 북극에 향할 수 있을지 기대되는군.]

불길한 소리를 하던 선지자가 수요의 비문을 해석해 주었다.

[ 어둠의 노래와 짝을 이루는 자가 있다.

바람의 걸음걸이, 차갑고 흰 침묵의 신이 기다린다.

태초의 북(北)쪽에 도달하는 자에게 시련은 없다...

그러나 봉인을 풀고자 하는 자여, 침묵의 신을 만나라.

피를 그어 고대의 혈맥을 깨워서 도달하라.

이 제단에 바치는 것은 오로지 도달자의 피만 가능하다.

위대한 옛 존재여, 삼황오제(三皇五帝)께 영광을 부여하소서...]

"......!!"

[ 궁금한 게 있군. 그대는 수요의 제단에 자신의 피를 공양했는가...?]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그러고보니 수요의 제단에 피를 바쳐야 수요로 향하는 비밀통로가 열리기 때문에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내 피를 바친 것이다.

"그렇소."

[ 그렇다면 그대는 수요의 2차봉인을 풀 자격이 생긴 것이다. 제단에 피를 바친 자만이 그곳에 도달할 자격이 생긴다는 뜻이다...]

"거기까진 알고 있소. 뭔가 새로운 사실은 없소?"

그러자 선지자가 대꾸했다.

[ 너는 이 비문에서 암시하는 '옛 존재'가 무엇인지나 알고 말하는 것이냐?]

"잘 모르오. 모르니까 질문하는 거 아니겠소."

[ 바람의 걸음걸이, 차갑고 흰 침묵의 신... 이 표현이 가리키는 존재는 오로지 하나밖에 없다. 태초부터 존재했던 [옛 지배자]인 그 존재를 칭하는 것이다. 성간풍(星間風)을 타고 다니기 때문에 바람의 걸음걸이라 표현한다...]

선지자가 말을 이었다.

[ 그 옛 지배자는 바람을 타고 걷는 자.]

"음..."

[ 비문의 조건을 보아서는 네가 그를 만났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존재는 결코 인간의 힘으로는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대라신선의 힘이라 할지라도 말이오?"

선지자가 내 반문에 우습다는 듯 대답했다.

[ 고작 신선의 정신체가 옛 지배자와 힘의 격을 논할 수 있겠는가...]

"......"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을 확인당하니 기분이 찝찝했다. 그 말대로라면 설령 북극에 도착해서 막야의 2차 봉인지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내가 뜬금없이 그 존재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내가 고민하자 옆에 있던 미호가 선지자에게 물었다.

"[옛 지배자]라고 하면 세상을 뒤엎을 정도로 굉장히 강력한 존재들이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런 존재가 고작해야 칠요의 봉인이나 지키고 있는 거지?"

[ 음...]

선지자가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 칠요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삼황오제가 인간에게 하사한 것이다. 이 차이는 굉장히 크다... 다시 말하자면 [옛 지배자]에게도 위협이 될만한 거대한 권능을 품고 있는 게 바로 칠요인 것이다.]

"그 말은..."

선지자가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했다.

[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삼황오제와 [옛 지배자]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르지. 특히 황제 공손헌원이라는 존재는 매우 이례적인 존재였으니 가능했을지도...]

"황제가 이례적인 존재라고?"

[ 황제 공손헌원은 유일하게 계약을 파기한 존재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을 축으로 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낸 존재이지. 그렇기 때문에 나조차도 그들의 행적을 짐작할 수 없다...]

"계약? 무슨 계약을 말하는 거지?"

[ 고대의 계약... 그것도 아주 먼 옛날의 계약으로 알고 있다... 자세한 건 모른다. 그저 정령들이 자주 언급해서 알고 있을 뿐.]

계약.

나는 왠지 이 단어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단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지자도 확실하게 모르는 것 같으니 이 사실을 나중이라도 캐어봐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머리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잠깐, 잠깐..."

[ 말해라...]

"만일 내가 막야의 2차 봉인을 풀고 [바람을 걷는 자]에게도 죽지 않는다면 그 힘으로 [옛 지배자]를 상대할 수 있을까?"

[ 충분히 가능하다. 앞에서 실컷 설명했지 않느냐...]

"그럼 아라사 제국의 수도에 있는 고대의 지식이란 건 어떻게 얻을 수 있지? 북극의 지도도 있나?"

[ 그곳에 있는 도서관을 찾아라. 고대의 도서관에 있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찾는데?"

그러자 선지자가 갑자기 입을 꾹 하고 다물었다. 나와 미호가 의아한 기색으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약간 노한 기색으로 대꾸했다.

[ 무상으로 알려줄만한 건 다 알려줬다... 이제부터는 댓가를 바쳐라...]

"댓가라고?"

선지자의 눈알이 번득거렸다.

[ 그렇다. 나는 수천 년에 걸쳐서 힘겹게 쌓아올린 지식인데 너희는 공짜로 모든 걸 가져가려 하느냐? 억울해서라도 댓가를 받아야겠다...]

"일리있는 소리군..."

하긴 지금까지 들은 지식만 해도 천금의 가치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지자를 달랠만한 선물이 뭐가 있다는 말인가? 나는 혹시나 해서 목갑에서 금괴를 꺼내서 그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어때? 순금이야."

[ 치워라... 그딴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이건 어떠냐? 천년설삼이다."

[ 기(氣)가 크게 응축된 덩어리군... 하지만 내게는 쓰레기만도 못하다.]

왜 이렇게 까다로운거냐?!

내가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자 선지자가 도리어 짜증을 냈다. 그도 그 나름대로 짜증이 난 기색이었다.

[ 됐다. 더 낼 댓가가 없다면 나는 이만 들어가 보겠다...]

위이잉

그 순간 공간이 왜곡되면서 기이한 통로가 생겼다. 역시 저 존재도 엄청난 세월을 살아온 이족답게 신기한 술법을 사용할 줄 아는 것이다. 만일 저 통로로 사라지면 두 번 다시 찾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 이건 어때?"

[ 뭐 말이냐.]

순간적으로 나는 목갑 안에서 마도서(魔道書)를 꺼냈다. 천암비서는 늘 가지고 다니니 제외했고, 저번에 손에 넣었던 나인성본전(螺湮城本傳)을 꺼냈다. 약간 아까운 기분이 들었지만 고개를 털었다.

' 어차피 읽을수도 없고 쓸 데도 없는 물건인데 뭐 어때.'

내 손에 들린 나인성본전을 발견하자 선지자가 몸을 멈칫거렸다. 그의 얼굴에는 믿을 수 없는 기색이 가득했다.

[ 아니... 그건...]

"내가 여행을 하면서 얻은 마도서야. 이 정도면 교환가치가 있지 않을까?"

슈우욱

선지자가 공간통로를 없앴다. 그러더니 확연히 얌전해진 기색으로 대답했다.

[ 물론이다. 르뤼에의 서(書)라면 충분히 그럴 가치가 있지...]

"르뤼에의 서?"

[ 그것은 흉신(凶神)과 그의 일족에 관해 쓰여있는 마도서이다. 인피로 장정된 것을 보니 하(夏) 나라때 만들어진 진짜배기군... 그걸 내게 준다면 정보를 주마.]

"르 뤼에는 뭔데?"

[ 흉신이 거하는 해저의 도시다...]

이게 그런 물건이었단 말인가?

나는 신기해하면서도 선지자에게 나인성본전을 던져주었다. 선지자는 책을 팔락거리며 읽더니 진품확인을 하고는 말했다.

[ 이 귀한 물건을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있는가...?]

나는 대뢰옥에 있던 거대촉수두꺼비와 싸운 이야기와, 그 촉수두꺼비의 뒤편에 있던 동굴에서 발견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선지자가 신기해했다.

[ 달의 짐승을 굳이 경비로 세웠다라... 희한한 놈들이군.]

"달의 짐승?"

[ 네가 싸웠던 그 괴물은 달의 뒤편에 살고 있는 마물(魔物)이다. 원래 이 세계에 사는 존재가 아니다...]

"뭐 그렇겠지만."

아무래도 선지자는 이족에 관한 지식이 해박한 듯 했다. 그리고 복마전과는 같은 패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선지자는 나인성본전을 챙긴 후 말을 이었다.

[ 큰 댓가를 받았으니 특별히 '문'을 열어주겠다... 고대도서관으로 바로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문?"

선지자가 두 눈을 꿈틀거리더니 기묘한 초록색 안광을 허공에 내뿜었다.

파지직

우우웅 -

"......!!"

그 순간 거대한 강당 한가운데에 공간의 통로가 만들어졌다. 아무래도 저 선지자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술법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놀라서 쳐다보자 선지자가 말했다.

[ 이제 가면 된다.]

"좋아. 그거 좋군. 이 길로 가면 모스크바의 고대 도서관에 도착한다는 거지?"

[ 마도서나 이족의 유물이 있다면 또 찾아와라... 그에 상응하는 지식을 거래해 주마.]

"물론. 근데 북극으로 향하는 길은 열어줄 수 없어?"

[ 내 공간술법은 그 비등과 같은 원리이다... 가본 적 없는 곳은 문을 열어줄 수 없다.]

"흠,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마도서라는 건 내가 가져봤자 쓸데도 없었다. 이족의 박식한 현자인 선지자와 앞으로 거래할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 혹시 지식 말고 다른 것도 거래해 줄 수 있나?"

[ 그건 댓가 나름이다...]

"알았어. 당신을 뭐라고 부르면 되지?"

[ 선지자 라고 부르면 된다.]

나는 새로운 거래상대가 생겼다는 것에 만족하며 공간의 통로로 걸음을 옮겼다.

파앗!

나와 미호가 공간의 통로에 들어가자 잠시 후 거대한 장서실에 도착해 있었다. 미호가 신기한 듯 말했다.

"여기가 바로 고대의 도서관이구나."

"그러게."

인간의 흔적이 없다. 아주 오래 전부터 시간이 멈춰있는 듯 했고 더러 공기가 멈춘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아마도 고대의 기술으로 밀폐되어서 책을 보존하게끔 되어 있는 지저의 비밀공간으로 보였다.

나는 사방 한가득 꽂혀있는 책들 중 몇 개를 뽑아서 읽었다. 하지만 금새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으으. 고대 문자인가..."

이족의 언어는 아니다. 키릴 문자도 아니다. 완전히 새로운 언어인 것으로 보아서 또다시 언어를 습득해야만 이 곳의 책을 해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호는 울적한 표정이 되어있는 내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일단 아라사 제국의 수도까지 바로 온 게 아니냐? 우선 나가서 아라사 구경이나 해 보자꾸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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