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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나와 미호는 대초원이라고 불리는 지역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우선은 북쪽에 식수원(食水原)이라고 할만한 큰 호수가 있다는 북해빙궁주의 말을 들은 적 있었으므로 즉시 북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약 반 나절만에 커다란 호수가 눈에 보였다.
"흠... 여긴가."
항카 호수라고 하는 장소였고, 이 근처는 완전한 동토(凍土)가 아니라 더러 햇볓도 내려쬐며 풀과 나무도 상당히 무성한 곳이었다. 또한 호수라서인지 근처에 유목부족이 서성이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이 곳은 현재 고려의 영토이지만 고려가 요동땅에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할 수가 없으므로 어느 정도는 이 근방 부족들에게 자치를 맡기고 있다고 들었다.
나는 항카 호수의 크기가 상당히 넓다고 생각했다. 그저 1~2리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의 동정호(洞庭湖)에 못지 않은 듯 했다. 너비나 호수의 끝이 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반적인 호수와는 넓이를 달리하는 광대한 곳이었다.
' 우선 여기로 이동해도 좋겠군.'
탐사에 있어서 물이라는 건 아주 중요했다. 특히 호수인 경우 풍부한 식재료나 잠잘 곳을 구하기가 용이했다. 물론 우선적으로는 진랑곡에 들락날락할 생각이지만 급한 경우 항카 호수를 기점으로 재출발하는 것도 생각해볼 만 했다. 미호는 호수에 발을 담그며 장난쳤다.
"꺄하하. 물놀이나 좀 하고 가자."
"나중에 해도 되잖아. 시간을 아껴서 빠르게 아라사의 영토까지 가는 게 중요해."
"치... 어차피 대륙을 횡단하는 긴 여행이 아니냐? 조금 쉬어가면 어떻다고."
"미안."
미호가 볼멘 목소리로 말했지만 나는 다독여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여행을 해본 경험이 많기 때문에, 긴 여행일수록 더욱 고삐를 죄고 빠르게 끝내는 편이 시간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이득이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여행이 길어지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져서 도리어 후반에 더 힘들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미호에게 말했다.
"우선 호수를 중심으로 이동할 거야. 1차 목표는 후룬 호(湖)라는 곳으로 하자."
"방향은 어떻게 잡을 생각이냐?"
"기(氣)가 충만하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동서남북의 방위를 상황에 맞춰서 정확하게 향할 수 있어."
내공이 극도로 강해지면 천지간의 기와 감응하는 느낌이 들면서, 동시에 천지의 동서남북을 보지 않고도 파악할 수 있었다. 설령 나침반이 없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느 쪽이 동서남북인지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능력 덕분에 나는 사천성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정을 할 수 있었던 셈이었다.
"그래 빨리 가자."
미호 또한 대요괴로써 술법과 요력을 이용해서 나 못지 않은 속도로 이동할 수 있었다. 미호도 빠르게 여행을 하는 것에 동의하고는 우선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거의 하늘을 날듯이 강과 산맥을 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가는 게 가능했다.
타닷
우리가 후룬 호에 도착했을 때는 약 하루 하고도 한나절 정도가 흘러 있었다. 거의 쉴새없이 달려온 셈이었기에 나와 미호는 호수 근처에 앉아서 한나절 쉬기로 했다. 미호가 지쳤는지 자신의 다리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후우, 정말 큰 땅이다. 가도가도 땅밖에 안 보이는구나."
"중원도 마찬가지잖아?"
"여기는 밤에는 너무 춥구나. 일교차가 너무 커서 더 지친다."
"정 그러면 무생물로 변신해 있는 게 어때? 어차피 나만 뛰면 되는 거라서..."
지금까지 진랑곡에는 들르지 않았다. 망량이 신경쓸 것이 많아지면 좋지 않았고, 망량 본인도 가급적이면 행적을 노출시키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진랑곡에 자주 들를수록 사람들의 이목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자 미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본녀도 생경한 땅을 밟는게 신기하구나. 이런 곳에는 와본 적이 없으니 조금 더 풍광을 만끽하겠다."
나는 피식 웃었다.
"너도 사람보다는 자연에 있는 게 좋은가보지?"
"흥... 별로 가리진 않는다. 단지 자연에 있으면 본녀의 요력이 더욱 충만해지고 빠르게 회복되기 때문이다."
"그렇구나."
"물고기나 좀 먹어야겠다."
휘리릭
미호가 왠 날카로운 기운을 손에서 뿜어내더니 후룬 호수에 날렸다. 잠시 후 마치 실같은 기운이 물고기 여덟 마리를 꿰어서 허공에 들어냈다. 물고기가 파닥거리며 땅바닥에 내려앉자 미호는 기분이 좋은지 꼬리를 흔들었다.
"맛있겠다."
미호가 물고기에 손을 뻗자 나는 그 손을 쳐 냈다.
"미호, 안 돼."
"뭐가 안 되느냐?"
"호수 물고기는 기생충이 많으니까 구워먹어야 해."
"......"
미호가 순간 멍청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역정을 냈다.
"본녀는 요괴라서 그런 건 상관없느니라. 마(魔)의 일족이 아니면 상관없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도 먹어야 되잖아. 나는 날것은 싫어."
표사로 지내던 시절에 민물고기를 함부로 먹다가 기생충 때문에 죽거나 반신불수가 된 사람을 몇 번 보았다. 그 때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나는 결코 민물고기는 생으로 먹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끄응... 알았다."
미호는 아쉬워하며 화염술로 불을 지폈다. 물고기를 굽기 시작하자, 나는 미호에게 물었다.
"이제 슬슬 화염술을 가르쳐줄 때도 되지 않았어?"
석 달 동안 북해빙궁에 머무는 동안 미호는 귀찮다는 핑계로 내게 화염술을 일러주지 않았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었기 때문에 미호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종용한 것이다.
"흐응... 뭐 그렇구나. 아깝지만 가르쳐 주마."
미호가 쪼그려앉아서 말을 이었다.
"본녀가 사용하는 화염의 술법은 인간이 사용하는 술법과 다르느니라. 인간의 술법은 팔괘(八卦)의 힘을 빌려오는 것이지만 내 것은 요력에서 비롯된 화염이다. 그러므로 원래는 인간이 내 술법을 따라하는 건 불가능하지."
"흠..."
"하지만 너라면 쓸 수 있다."
"왜?"
"환혹주의 힘이 네게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꼬리의 요력이 네게 잠재되어 있으므로 약간 요령만 익히면 화염의 술(術)을 사용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 설명한 미호는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백웅. 요괴가 될 생각 없느냐?"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지만 미호의 눈빛은 진지했다. 물고기가 조금 익었다 싶자 미호는 나뭇가지로 물고기의 머리를 건드리며 말을 이었다.
"인간의 육신이 불편하고 제약이 많은 건 알고 있을 것이다. 네가 요괴가 된다면 지금보다 몇 배나 되는 수명을 얻게 되고 강력한 신체를 얻게 되지. 또한 지금까지 얻었던 기(氣)도 고스란히 보존되니, 네가 요괴가 되면 즉시 강력한 대요괴가 되는 게 가능할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요괴라는 건 결국 음(陰)이라서 술법에 약할 수밖에 없잖아. 언령(言靈)에도 약해지고. 그러느니 차라리 인간으로써 계속 사는 게 낫지."
술법지식으로 요괴의 약점을 알고 있는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미호가 생긋 웃었다.
"우후후, 약점이 있으니까 요괴가 되지 않는다라... 넌 역시 보통 인간과는 다르다."
"무슨 소리야?"
"달리 말하자면 약점이 없다면 요괴가 되는 걸 진지하게 고려하겠단 소리 아니냐? 평범한 인간의 발상은 아니지."
"......"
맞는 말이었기에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인간으로 남아있는 것에 크게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요괴가 되어서 강력해질 수 있다면 그것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요괴는 음양오행에서 음(陰)의 존재이기 때문에 어쨌든간에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도 술법에 선천적으로 약해진다. 지금은 그런 약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요괴화를 얻을 필요가 없을 뿐이다.
"이거 먹고 가르쳐 주마. 별로 어렵진 않을 거다."
그리고 나는 구운 물고기를 맛있게 먹어치우는 미호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맛있게 먹고 있는지라 보는 내가 더 배고플 지경이었다.
' 이게 그렇게 맛있나?'
나는 일단 물고기를 뜯어먹어봤지만 역시 담수어라서 그런지 그닥 진한 맛이 나진 않았다. 그래도 먹을 만은 했기에 이걸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물론 진랑곡으로 가서 뭘 먹는 게 훨씬 낫겠지만 미호는 별미를 즐기고싶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나는 미호에게 화염을 끌어내는 요령과, 화염을 소환하는 주언(呪言)을 배웠다.
화륵!
"바로 해내는구나."
"나 혹시 천재인가?"
"꺄하하 그럴 리가. 내 꼬리의 기운을 갖고있으니까 당연히 화염술을 잘 하지 깔깔."
"......"
괜히 잘난 척 한 것 같아서 암울해졌다. 미호에게서 화염술을 전수받고 나자 나는 간단한 주언만으로도 도깨비불을 소환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을 조명이나 전투용으로 쓸 수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미호가 웃었다.
"그 술법은 지금은 미약하지만 너의 술력과 함께 성장하는 술법이다. 그래서 앞으로 얼마나 강해질지는 너에게 달렸다 할 수 있지."
"환영술(幻影術)도 쓸 수 있을까?"
"그건 인간의 술법 쪽을 배우는 게 나을 것이다. 훨씬 선천적인 술법이라서 네게는 안 맞을 것 같구나."
"알았어."
우리는 전수가 끝나고나자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제 막 대초원의 거대한 고원(高原)에 진입했고, 여기저기에 고원의 부족들이 보였다. 그들은 한때 대원제국을 세웠던 초원의 후예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더러 무공을 익힌 자들도 있는 듯 했으나 우리가 인간을 뛰어넘은 속도로 뛰어가자 함부로 시비를 걸려고 하지 않았다.
끼이이익
그렇게 약 사흘 밤낮을 달렸을까?
나는 야밤중에 호수에 도착했다는 걸 느꼈다. 도중에 거의 멈추지 않고 왔으니 정말로 말보다도 더 빨리 온 셈이다. 나는 미호의 등을 토닥거려주며 말했다.
"잠깐 여기가 어떤 곳인지 물어보고 올게."
"끄응..."
미호는 체력이 다 떨어졌는지 나무등걸에 앉아서 쉬었다. 미호 왈 이것도 미호 나름의 수련으로써 극도의 체력하강 이후에 요력이 상승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호를 놔두고 이 근처에 있는 인기척을 찾아서 달려갔다.
타닷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근처에서 불을 피우고 야영하고 있는 초원의 부족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나를 발견하자 놀라서 칼과 활을 꺼내들고 뭐라 소리치는 듯 했으나, 나는 북해빙궁주에게 배웠던 인사법을 행했다.
차분하게 팔과 어깨에 차례대로 손을 댄 후 심장에 두 손을 모으며 무릎을 꿇자, 그들은 잠시 후 진정해서 무기를 내려놓았다. 이것은 초원의 부족에 공통되는 인사법으로써 [나는 여행자이며 도움을 요청합니다] 라는 뜻이었다. 내가 경계를 풀자 그들 중 꽤 나이가 들어보이는 초원인이 다가와서 말했다.
"#*(&[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물론 나는 초원의 말을 거의 몰랐다. 그래서 중원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초원인은 옆에 있던 왠 청년을 불렀고, 그 청년이 잠시 후 말했다.
"중원 말, 할 줄 압니다. 말해보십시오 여행자."
나는 그 청년과 초원인들의 행색을 살폈다.
' 화승총을 들고 있군.'
역시 초원인들은 총기를 쓸 줄 아는 모양이었고 실제로도 장비하는 편인 듯 했다. 나는 그들의 총에 신경쓰면서 말했다.
"저는 중원에서 온 여행자인 소웅입니다. 이 근처의 호수에서 야영을 하고자 하는데, 그 호수의 이름을 알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청년이 옆의 초원인에게 통역을 하고 이내 그들의 대답이 들려 왔다.
"오브스 호수라고 합니다."
"저희는 크림 칸국을 향해서 여행을 하는 중인데 얼마나 더 가야 하겠습니까?"
이것도 북해빙궁주의 조언에 따른 질문이었다. 대놓고 아라사 제국의 수도라는 모스크바에 간다고 하면 초원 사람들이 절대 좋은 눈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 질문을 듣자 청년은 약간 놀란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그곳은 여기서 아주아주 멀리 있습니다. 적어도 이천 리 길이 넘습니다."
"도중에 목표로 삼을 만한 곳이 있을까요?"
청년이 다시 통역을 하자 장년인이 뭐라고 이야기하는 듯 했다. 잠시 후 청년의 대답이 들려왔다.
"타타르들의 땅으로 가고자 한다면 도중에 아스타나에 들러서 선지자(先知者)에게 지혜를 구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하십니다."
"아스타나?"
청년이 씩 웃었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대지입니다. 그 곳에 위대한 선지자가 있으니 여행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네요."
"선지자는 아스타나의 어디에 있습니까?"
"대사원에 살고 있습니다."
아스타나의 선지자? 대사원?
"선지자에게 지혜를 구해야하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그 분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신 분이기에 모두가 존경합니다."
"그렇군요."
여하튼 잠시 후 그들에게 지형이나 방향의 설명을 듣자 대충 어디에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을 받은 댓가로 지난번에 잡았던 구운 물고기를 목갑에서 꺼내서 세 마리 건네주었고, 그들을 기뻐하는 듯 했다. 초원인들은 중원과 달리 금은보화를 거래하지 않고 생필품을 거래하기 때문이다.
나는 미호에게 돌아와서 말했다.
"이 곳은 오브스 호수이고 아스타나의 선지자에게 가서 길을 물어야 한대."
"아스타나의 선지자? 그건 또 뭐냐?"
"모르겠어. 예언자나 현자인 모양인데."
미호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봤자 인간 나부랭이겠지. 쉴만큼 쉬었으니 어서 가자꾸나."
나와 미호는 잠시동안의 휴식을 끝내고 다시 산야를 달리기 시작했다. 보통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수준의 강행군이었지만 나는 엄청난 내공으로 체력을 대신 소모해서 달릴 수 있었고 미호는 근본이 대요괴라서 인간과 비교 불가능한 체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렇게 약 하루 이틀동안 꼬박 밤새서 달렸을까?
나는 엄청난 한파가 몰아치는 대지에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방 가득히 설원(雪園)이었으며 느껴지는 추위가 지금까지와 비교를 불허했다. 나는 미호를 힐끔 바라보았지만 미호가 괜찮다는 듯 말했다.
"본녀는 여우불을 소환하면 춥지 않느니라."
화륵 하고 여우불꽃 두세 개가 주변에 나타나자 미호는 추위를 가볍게 극복한 듯 했다. 나도 내공만으로 한서불침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내공의 쓸데없는 소모가 아까웠으므로 목갑에서 두꺼운 털옷을 꺼내서 입었다.
휘오오오
말 그대로 엄청난 추위였다. 입김이 그대로 서리처럼 변해서 날아가고 오줌을 눈다면 그대로 얼음이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이런 추위 속에서 인간이 살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는 한도 끝도 안 보이는 설원의 평야를 한동안 걸었는데, 이윽고 특이한 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쿠궁...
"아니..."
나는 놀랐다.
이렇게 지옥같은 추위 속인데도, 크기가 무려 백여 장은 될 법한 거대한 크기의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얼기설기 만들어진 게 아니라 제대로 된 건축기술로 만들어진 곳이었으며 중원의 건축양식같지도 않았다. 그 사원에서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더 기묘함을 불러 일으켰다.
휘오오오
휘오오오 -
칼바람이 미친듯이 몰아쳤다. 계속 서 있어봤자 별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나와 미호는 대사원의 거대한 정문을 열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문은 열려 있었기에 큰 힘을 쓰지 않고 들어올 수 있었다.
두쿵
대사원의 문이 닫혔다. 우리는 생전 처음보는 내부의 건물 양식에 신기함을 느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있자, 저만치 대사원의 제단(祭檀)같은 게 보였고 제단 옆에 한 명의 인영이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인영에게로 다가가자 그 존재가 말했다.
[ 아주 먼 곳에서 온 이방인이군. 그대들은 서쪽을 향해 가고 있는가...?]
미호의 것과 같은 심어(心語)였다. 그래서인지 통역도 필요없이 바로 해석이 되어서 머릿속에 전달되는 듯 했다. 어둠 속에 모습이 숨겨져 있어서 그 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바로 보이지 않았다.
' 술법에 능통한 자 같군.'
나는 미호를 힐끔 바라본 후, 그의 말에 대답했다.
"그렇소. 당신은 선지자요?"
[ 그렇다. 너희는 어찌하여 이 대사원을 찾아왔는가...]
"나는 소웅, 이쪽은 미호라고 하오. 우리는 아라사 제국의 수도로 향하고 있소. 그곳으로 향하는 길을 당신이 알 거라고 해서 찾아왔소."
스윽...
잠시 후 선지자가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나는 벼락을 맞은 듯 놀랐다.
"......!!"
이족(異族)!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이족과도 달랐지만, 어쨌든 인간도 요괴도 아닌 괴이흉측한 모습의 이족이었다. 동체(動體)를 중심으로 마치 얼굴의 역할을 하는 듯한 촉수와, 집게가 여러 개 뻗어져 나와 있었다. 쉬킥 쉬킥 하는 소리가 들리며 기묘한 이족의 신진대사를 진행하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