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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망량의 말에 나는 약간 생뚱맞음을 느꼈다.
이 세상의 북쪽 끝이라니!
물론 지금까지 얻은 정보에 따르자면 막야의 2차 봉인을 풀어서 칠요의 진짜 힘을 얻기 위해서는 북쪽 끝에 가서 시련을 돌파해야 한다. 그러나 그걸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것인가?
내가 궁금한 눈으로 쳐다보자 망량이 부연설명했다.
"지금 우리가 처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아시오? 다름이 아니라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오."
"......"
나는 그 말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현실을 꿰뚫고 있어서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침묵하자 망량이 말했다.
"달기라고 하는 존재의 힘은 추측하건대 대라신선이 단체로 덤벼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마왕(魔王)급이라고 할 수 있소. 나는 물론 당신도 수백 년을 수양한들 달기의 힘에 도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요."
"그렇겠지..."
나는 항우의 힘을 빌어서 달기를 격퇴했으나, 그게 굉장한 운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항우가 일반적인 대라신선을 초월한 규격외의 힘을 지니고있지 않았다면, 그리고 망량선사에게서 파천의 가호를 받아서 달기의 비술을 돌파하지 못했다면 저항할 방법이 없었다.
"[옛 지배자]까지는 몰라도 '달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 하오. 그리고 현재 우리가 가진 패 중에서 가장 거기에 근접해 있는 것은 다름아닌 수요(水曜) 막야(莫耶)라고 할 수 있는 거요."
"가능하겠소?"
"칠요는 상고시대에 삼황오제라는 신적인 존재들이 인간에게 내려준 최대급의 유물이오. 대라신선들조차도 그 존재를 경외할 정도이니, 칠요로 되지 않는다면 다른 그 어떤걸로도 안될 것이오."
그렇게 말한 망량이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원래라면 내 계산에 막야의 비밀을 찾는 것은 황궁을 쓰러뜨리고 난 다음에나 시도해볼 일이었을 거요. 솔직히 말하자면 뜬구름잡는 일이고 성공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오. 그러나 지금은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오."
"세상의 북쪽 끝이라 해도 너무 막연하오."
"뭐 지금 당장 가지 않아도 좋소. 당신 나름대로 북으로 향할 방법을 생각하고 연구해보았으면 하오."
"으음."
세상의 북쪽 끝으로 가는 법!
내게 뜻밖의 과제가 떨어진 셈이었다. 내가 고민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미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쩐지 대충대충이라는 느낌이군. 왜 다른 칠요를 찾을 생각은 하지 않느냐?"
"단의 일족이 보유한 칠요는 강탈 불가능이며 월요 또한 훔치려 들면 대재앙이 일어날 것입니다. 또한 화요는 전대미문의 남쪽 대륙 오지에 있을 것이고 팔괘도의 행방은 오리무중. 가진 걸 최대한 살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
미호는 잠시 침묵하다가 망량을 째려보았다.
"설마 자포자기한 건 아니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시행착오는 감수해야겠지요."
"흐응."
그리고 우리는 황연 대장군의 식솔을 구출하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아군이 없었기 때문에, 약 한 달 정도 준비하고 나서 구출에 나서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그동안 얻었던 무공을 다듬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14번째 삶에서 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내 무공이 초절정의 초입을 확연히 넘어서서 그 이상의 경지로 접어드는 것을 느꼈다. 정확히는 내가 얻은 장삼봉의 심득이나 천재들과의 수련이 벽을 용이하게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 아무리 해도 무쌍패(無雙覇)는 제대로 쓰기가 힘들군.'
나는 장삼봉의 심득을 다시 한 번 펼치면서 중얼거렸다. 다른 무공수법은 이제 몸에 붙은 것 같지만 무쌍패만큼은 잘 익혀지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쌍패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무언가 반격용 무공이란 건 알겠지만 구체적인 위력이 와닿지 않는 무공이었다.
"무사시나 한조가 있었으면 손쉬울텐데 말이다."
결행 당일, 미호는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미호와 함께 황연 대장군의 가솔들이 연금되어 있는 마을로 이동했다.
파앗
우리가 나타난 곳은 그 마을의 후미진 창고였다. 미호가 말했다.
"그럼 나는 여기에 진을 치고 전귀후귀와 식신을 소환하겠느니라. 너는 나머지 놈들을 처리해라."
"맡겨 둬."
파아앗
잠시 후 미호의 주변에 주술로 만들어진 광원이 떠다니더니 음양사의 호위인 전귀와 후귀가 나타났다. 그리고 동시에 여기저기에서 식신들이 나풀거리다가 점차 경화되어서 물리적 실체를 가지기 시작했다.
"으아아!"
"뭐야 이건?!"
금의위들이 비명소리를 지르며 미호의 소환물과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대규모 인원이 모인 십이율의 토벌대조차도 전멸을 각오해야했던 전력이니 틀림없이 금의위 놈들도 애먹을 것이다.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미호를 바라보았다.
"위험하면 꼭 피해."
그러자 미호가 깔깔 웃었다.
"아하하... 지금 네가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냐? 고맙구나."
나는 머쓱해졌다. 사실 미호가 그 동안 초절정을 넘어선 절세고수들에게 약간 기가 죽은 모습을 보여서 그렇지, 그 실체는 대요괴라 칭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요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내가 미호를 걱정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 풍신류 호법사자의 일 때문에 괜히 걱정이 되는군.'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 나는 망량이 했던 '힘이 부족하다'라는 말과 겹쳐져서 앞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는 의욕이 마구 샘솟았다.
나는 마을 바깥으로 나가서 여기저기 혼란이 창궐하는 것을 지켜봤다. 그리고 혼란의 와중에도 황연 대장군의 가솔들이 특정한 건물에 모여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저기다.'
나는 은밀하게 멸혼보를 이용해서 그 건물 근처에 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주변에서 금의위 고수들이 다섯 명이나 한꺼번에 나타났다. 그들은 나를 둘러싸고 살기를 내뿜었다.
"어린애?"
"얕보지 마라. 저 경공술은 심상치 않다!"
스스스
그들은 이내 나를 죽이기로 무언의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의 살기를 맞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 당신들은 정말 죄가 많은 사람들이다.'
그저 지배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개처럼 움직이면서 자기 머리로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충족시키면서 그 이상을 바라보지 않는다. 어떤 점에서는 가련한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죽인다.
그러니까 죽인다.
왜냐하면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잘 가라!"
나는 짤막하게 외치고는 그대로 달려들어서 검염을 날렸다. 내 검염은 허공에서 비스듬하게 실처럼 늘어지더니, 이내 옆에 있던 금의위 두 명을 동시에 상하로 분단시켜버렸다. 나머지 금의위들이 깜짝 놀라며 내게 자신들의 절초를 날렸으나, 나는 예전 이상으로 그들의 공격이 쉽게 넘길 수 있는 것을 깨달았다.
' 이렇게 약했나?'
콰직!
나는 이윽고 슬격(膝擊)으로 한 놈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리고 남은 두 놈의 심장에 검격을 날렸다. 마치 실끊어진 인형처럼 피를 뿜어내며 쓰러지는 꼴은 무력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나 허약한 모습이었지만, 실상은 그들 하나하나가 어디를 가도 대접받는 일류고수 수준이었다.
내가 그 동안 너무 높은 수준에서 놀았던 탓에 그들이 약해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상받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이광이 말했던 대로 천외천을 인식하고 있는 한 언제까지나 손해보는 기분만 들기 때문이다. 이 더러운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더 강해져서 일가(一家)를 이루어야 했다.
"다, 당신은?"
나는 황연 대장군의 식솔들을 가둬놓은 건물에 도착하자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는 구출하러 온 백웅입니다. 설명드릴 시간이 없으니 어서 이 목갑에 손을 내미십시오."
"잠깐! 세 명이 다른 건물에 있소."
"어디 말입니까?"
"이십 장 밖에 있는 목재소에..."
"알았습니다."
슈슈슉
황연 대장군의 일가를 모두 목갑에 넣고 밖으로 빠져나오자, 팔짱을 낀 세 명의 고수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절정고수급으로써 나를 향해 무서운 살기를 뿜어내는 중이었다.
"이놈..."
그들 주변에는 하나둘씩 금의위의 정예고수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 숫자가 열 명을 넘어가자 나는 그들을 흘끔 쳐다보며 말했다.
"천호들이군."
"작정하고 온 놈이구나. 편히 죽지는 못할 것이다."
금의위의 천호급은 모두 절정고수로써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자가 셋이나 있으며 다른 금의위 대원들과 합공을 해온다면 두렵기 짝이 없는 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겁을 먹기보다는 잔잔한 마음으로 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 미리 말해둔다."
그러자 천호 중 한 명이 코웃음을 쳤다.
"하! 미친 놈!"
"죽여!"
말이 끝남과 동시에 사방팔방에서 금의위 정예고수들의 절초가 동시에 덮쳐왔다. 그저 칼만 휘두르는 왈패의 공격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살의를 머금은 예리한 무림고수의 공세였다. 과거의 나였다면 이 공격에 치명상을 각오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씩 웃으며 백웅결과 뇌명을 동시에 발동하며 멸혼보를 시전했다. 그러자 마치 시간이 느리게 변한 것 같았으며 내 반응속도는 미친듯이 빨라졌다.
촤좌좍!
멸혼보로 공격이란 공격은 다 피하면서 뇌명으로 가속하며 절세검초로 썰어버리니 순식간에 일곱 명의 고수들이 검하고혼이 되었다. 피보라가 일어나는 가운데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되어 있는 천호의 미간에 검기를 날렸다.
퓨슉 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상처에서 핏줄기가 배어나왔다. 외부에 큰 상처는 없었지만 그는 이미 뇌가 곤죽이 되어서 죽어있었다. 나는 남아있는 자들을 향해 연거푸 뇌령인(雷靈印)을 날렸다.
쿠콰쾅
"으아아악."
"아악."
뇌신류 적월 호법에게 사사한 뇌령인! 이것은 뇌신류 권술의 상위비기로써 뇌령지기를 머금은 장력을 날리는 수법이었다. 비록 내 성취는 뇌령인의 1성에 불과했지만 엄청난 내공 탓에 순식간에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내가 금의위 고수들의 합공을 물리치는 데는 겨우 15초 정도밖에 들지 않았다. 나는 제비처럼 날아서 앞으로 향하며 천호 하나의 덜미를 잡아챘다. 천호는 단념했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죽여라..."
"궁금한 게 있는데."
휘익
나는 그를 데리고 멸혼보로 훨훨 날아서 약 이십여 장 떨어진 목재소 건물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주변에 누군가가 없는 상황에서 나는 그에게 중얼거리며 질문했다.
"만일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다면 황연의 가솔들 중에 노약자라도 죽였을 건가?"
내 질문에 그 천호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물론이다. 그게 우리 임무라면."
"그게 당신 가족이라고 할지라도?"
"......"
"나라고 당신들을 무작정 쳐죽이고싶은 건 아냐. 좀 더 생각을 해 봐."
더 피를 보기는 싫다. 죽일만큼 죽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슬며시 덜미를 놓아주자, 그 천호가 이를 앙다물며 말했다.
"빌어먹을... 잘난 체 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의 신념을 걸고 국가에 충성하고 있다! 너같은 반역도에게 설교들을 정도가 아니다."
"네에, 그러시겠지요."
"우리는 황제폐하의..."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자 나는 짜증이 나서 검을 휘둘렀다.
푸콱!
천호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죽어서 황제폐하께 충성하라고. 병신새끼."
순간 나는 내가 무슨 소리를 했는지 경악했다.
"......!!"
내가 말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음산하고 잔인한 목소리가 목에서 흘러나온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 또한 분명한 나의 의지였으므로 나는 일순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별일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는 목재소 안에 들어가서 나머지 세 명을 마저 구출했다.
나는 구출이 끝나자 미호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미호는 나를 반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좋~아! 그럼 가 보자꾸나."
파앗
미호와 함께 진랑곡의 입구에 도착했다. 미호는 빨리 쉬고 싶은 듯 걸음을 재촉했지만 나는 생각할 게 있었으므로 천천히 걸었다.
"......"
"표정이 왜 그러느냐?"
나는 마음이 너무 꺼림칙했으므로 조심스럽게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왠지 내 의지가 변덕스러워진 것 같아."
망량에게도 털어놓고 싶지만 일단은 미호에게 말하기로 했다. 미호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쳐다보자 나는 말을 이었다.
"방금 금의위 놈들을 죽일 때,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댔어. 그런데 도중에 더 죽이기가 싫어서 약간 자비를 베풀려고 했는데, 갑자기 또 짜증이 나서 한방에 죽여버렸어."
"흐음..."
"모르겠어. 갑자기 변덕이 끓어올라. 왜 이러는 거지?"
혼란스럽다.
지금까지 무(武)와 살업을 행하면서 나는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그저 순도높은 집중력으로 싸움에만 집중했다. 죽이면 죽이는 거고 살리면 살리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 내 행동은 바로 직전에도 변덕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인 것이다. 내 의지를 내가 통제하지 못한 셈이었고, 이것은 무를 닦는 무인이라고 보기에는 좋지 않은 마음상태였다.
미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본녀는 네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유를 아는 거야?"
"그거야 쉬운 거 아니냐."
이어진 미호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고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너는 방금 전의 전투를 유희(遊嬉)로써 즐긴 게다. 그리고 패배한 놈을 재밌게 갖고 놀다가 귀찮아져서 죽인 거다. 단지 그것 뿐으로 보이는구나."
"내가... 그저 장난으로 싸웠다고?"
"그게 아니지. 싸움은 진지하게 행했으나 패자를 다루는 방식에 차이가 생긴 것이다."
미호는 요괴 특유의 요안을 번득이며 웃었다.
"본녀는 되려 반갑구나. 인간같은 거 좀 죽이면 어때서 그러냐? 재밌게 즐기면 그만이니라."
"......"
나는 내심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이거 어떻게 하지?'
미호의 말이 의미하는 점은 하나였다.
내 안의 잔학성이 크게 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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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몽사몽하며 써서 용량이 적습니다 죄송하니다 ㅠ 선추코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