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91화 (19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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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망량과 함께 진랑곡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망량이 말했다.

"당신의 말을 들은 결과, 지금까지 내가 전략을 잘못 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소."

"무슨 뜻이오?"

망량은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지금까지의 '망량'은 당신이 나름대로 수련을 하고 변수를 찾아서 움직이게끔 놔두고, 반천맹을 키워서 황궁을 견제하는 동시에 유사시에 뇌신류와 연합할 준비를 하고 있었소. 황연이라고 하는 강력한 한 수를 지니고 있으니 당연한 행보였지. 달리 말하자면 언제든 천하를 쥘 수 있게끔 준비했었던 셈이오.

그러나 '달기'의 존재가 드러난 이상 그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소. 말하자면 당신의 15번째 생인 지금에 와서 크게 전략을 수정할 필요가 생긴 것이오."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뜻이오?"

"가령 14번째 전생에서 우리가 황궁에서 초상기인을 훔치지 않고 놔둔 채 시간이 흘렀다고 가정해 보면, 달기의 개입은 없었겠지. 그러나 초상기인은 몇 년 지나지 않아서 꽤나 실전에 써먹을 수 있을만큼 제작이 되어버릴 것이오.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흥해버리지. 즉 지금 이대로는 '단체' 대 '단체'의 싸움으로써는 결코 황궁측을 이길 수가 없소."

"하지만 내가 암천향의 [옛 지배자]의 권능을 빌려서 황제를 암살했을 때는 무난하게 황궁점령까지 갔었잖소."

"그렇지만 최종방어인 제갈부를 자력으로 처리할 수 없었소."

"흐음..."

"설령 상황이 좋게 흘러가서 제갈부가 그 상황에서 우리에게 투항했다고 하더라도, 결국 황궁을 건드린다는 건 [옛 지배자]의 공양을 담당하는 하위신도를 치는 것과 같소. 시간문제일 뿐 언제든 [옛 지배자]는 우리 일에 끼어들어서 달기를 파견하는 게 가능하다는 소리지."

거기까지 설명한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전략을 잘못 세웠다고 한 것이오. 지금까지는 단지 황실을 전복시키고 [옛 지배자]의 개입이 들어오기 전에 질서를 세울 작정이었는데, 달기의 위력이 그리 엄청나다면 모든 계획을 수정해야 하오. 무엇보다도 우리는 지금 연금술사가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왜 마도(魔道)의 술법을 시전하는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오."

"......"

나는 망량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는 반문했다.

"어떻게 해야하오?"

망량은 찻병을 들어서 내 잔에 따뜻한 차를 따라 주었다.

"지금 상황은 정보가 너무 많아서 도리어 무엇을 해야할지 헷갈리는 상황이오. 내 생각에는 당신의 의사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보오."

"내 의사?"

"내 머릿속에는 논리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어 있으나 당신에게 선뜻 제시할 수가 없소. 왜냐하면 지금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섣불리 추진하다가는 지금까지처럼 전제부터 틀려먹거나 큰 실수를 해버리기 때문이오."

망량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의 '감'이 중요한 것이오."

"난 별로 감이 좋지 않은데..."

"당신은 이미 15번이나 시간회귀를 반복했소. 그리고 보통 사람의 수십 배나 되는 경험을 지니고 있지. 그런 당신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이란 게 있을 거라고 믿고 있소."

"으음..."

망량의 말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기에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감? 그런 게 내게 있었던가?

지금까지는 그냥 좋아보이는 게 있으면 대충 가서 일단 들이대보고 판단하는 편이었다. 그러다가 죽기도 많이 죽었기 때문에 내 감각이란 걸 크게 신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망량이 저렇게 말해주니 무시할수도 없어서 나는 곰곰히 생각을 해 봤다.

그리고는 제일 하고 싶은 걸 말했다.

"우선 미호를 만난 다음에, 백련교주를 만나고 싶소."

그러자 망량이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백련교주를? 왜 그렇게 생각한 것이오?"

나는 천하기재 망량에게 내 감을 이야기하기가 멋쩍었다. 딱히 확실한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거야... 백련교한테 천하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백련교가 천하무림을 지배하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백련교와 공연히 척을 지느니 그냥 백련교 맘대로 하라고 내버려두고 싶었다.

"......"

망량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나는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싶어서 전전긍긍했지만, 이윽고 망량이 탄식하듯 말했다.

"아아... 과연 당신이 전생자(轉生者)라는 걸 지금에야 완전히 믿을 수가 있겠소!"

"어..."

"당신이 한 말은 나도 해답 중 하나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지만, 보통 사람은 결코 그런 발상을 하기가 쉽지 않소. 게다가 접근하는 방식이 나와는 완전히 다르구려."

망량은 진정으로 감탄한 듯 했다. 내가 망량과 오래 같이 지내왔지만 이런 반응을 본 일은 별로 없었기에 나는 괜스리 기분이 좋았다. 사실 백련교에 천하를 주면 어떻게 된다 아니다를 거의 생각하지 않고 말한 것이지만,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잡은 격 같았다.

망량이 말했다.

"그렇소. 내가 생각할 때도 지금 그 방법을 가장 시도해 볼만 하오. 지금까지는 우리 힘만으로 황궁을 쓰러뜨리려 했지만, 차라리 강호의 지배권을 포기하고 백련교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것도 괜찮을 것이오. 최악(最惡)보다는 차악(次惡)이 나을 테니까."

"좋군!"

"하지만 그건 한 가지 사실을 의미하는데... 괜찮겠소?"

"뭐가 말이오?"

이어진 망량의 말에 나는 안색이 굳어졌다.

"당신은 이번 생에는 이광과 협력하거나 그의 가르침을 받을 수가 없소. 이광은 백련교나 그들을 돕는 자들을 모조리 원수로 생각하기 때문이오."

"......!!"

그 생각을 못 했구나!

확실히 백련교를 도우게 된다면, 백련교와 원수지간인 세력인 뇌신류와는 연수할 수 없다. 뿐만아니라 앞으로 이광을 만날 기회가 있을지나 의문이었다. 나는 이광을 썩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이광이나 진소청같은 무술의 천재들과 함께 수련하는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건 꽤 뼈아픈 타격이었다.

나는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음... 백련교에 천하를 주고, 나는 뇌신류에 들어가서 같이 싸우는 건 어떻소?"

"그건 너무 당신 좋을대로만 생각하는 것이오. 백련교에게 천하를 준다함은 백련교주가 본격적으로 백련교의 모든 힘을 사용해서 중원정벌에 나서는 것이지. 뇌신류가 생존이나 가능할 것 같소?"

"......"

"단언컨대 지난번 생의 관조적인 백련교를 상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오. 엄청난 난이도일 거라 생각하오."

"으음."

"둘 다 얻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것도 당신의 감에 맡기겠소."

다시 선택을 해야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게 굉장히 큰 전환점이라는 걸 느꼈다. 지금껏 망량에게 무언가를 상담하면 단순명쾌하게 방향을 제시해줬을 뿐, 이렇게 내게 '선택'을 하게끔 한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일이 중대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차를 마시면서 약 한 식경동안 침묵하며 고민했다. 망량도 차를 마시면서 말 없이 침묵에 동참하면서 나를 기다려주었다. 나는 곧 대답했다.

"뇌신류는 버리겠소. 하지만 진소청은 우리 편으로 하고 싶소."

내 대답에 망량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역시 당신은 재밌는 사람이오. 열 가지 경우를 생각했는데 하필이면 그 중에 가장 힘들어보이는 길이라니."

"안 되겠소?"

"안될 게 뭐가 있겠소? 해 봅시다."

"고맙소..."

나는 망량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망량이 말했다.

"그럼 나는 준비를 하고 있을 테니, 당신은 우선 미호를 데려오도록 하시오."

"알겠소."

"아, 참고로 아오키가하라 수해라는 곳은 지금 생각하지 말아 주시오. 괜히 꼬일 것 같소."

"유념하겠소."

아마 망량은 내가 괜히 아오키가하라 수해에 호기심이 생겨서 탐사를 하려다 죽는 걸 염려한 듯 했다. 확실히 아직 힘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그런 마경(魔境)에 뛰어들 수 없다. 나는 이번 15번째 생이 커다란 계획의 준비라는 느낌이 들었으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행동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윽고 비등을 사용해서 교토의 천황궁으로 향했다.

슈웅!

' 미호가 다음번 전생부터는 자신을 직접 데려오라고 했었지.'

나는 미호의 부탁을 떠올리며 천황궁 내부로 걸음을 옮겼다. 이렇게 직접 맞이하러 오지 않으면 미호는 서왕모의 명을 따르기 위해서 중원까지 수천리 길을 여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천황궁 내부의 별실을 지나서 큰 별전 마당까지 걸어오자 갑자기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키이이잉 -

그것은 정신을 혼란시키는 음역인 듯 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주술에 어떻게 대비하는지 알고 있었으므로, 청각을 최대한 닫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머리가 어지럽던 증세가 사라지고 서있을 만 하게 되었다.

쿠궁! 쿠궁!

동시에 저만치에서 왠 도깨비같은 게 두 마리 나타났다. 나는 그 두 존재가 무엇인지 익히 알고 있었기에 중얼거렸다.

"전귀(前鬼)와 후귀(後鬼)로군."

미호를 처음 만났을 때, 십이율의 무인들을 거의 전멸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음양사의 식신(式神)! 전귀와 후귀의 위력은 술법사의 수준에 비례하기 때문에 미호의 환술수준이 굉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나라고 해도 전귀와 후귀를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전귀와 후귀는 선공을 가하지 않고 가만히 나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어디에선가 심어(心語)의 술법이 들려 왔다.

[ 네놈은 누구냐? 누구이길래 천황궁에 겁도 없이 침입했느냐?]

그리고 이 말투는 굉장히 낯익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미호! 나를 찾고 있었을 텐데?"

[ ......]

"서왕모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자."

미호는 한참동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전귀와 후귀 사이에 갑작스럽게 반인반요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름답지만 요사스러운 여우요괴의 모습을 한 미호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구나. 네가 서왕모께서 말한 그 인간이구나."

"그렇다니까."

"하지만 본녀가 계시를 받은 것은 겨우 하루나절밖에 되지 않았다. 너는 어찌하여 이렇게 빠르게 나를 찾아올 수 있었느냐?"

"우선 식신부터 치우지 그래? 무서워서 말을 못 하겠어."

"흥..."

퍼엉

미호가 손을 휘두르자 전귀와 후귀가 소환해제되었다. 미호는 내 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보아하니 중원의 무인(武人)인 것 같은데 어떤 경과인지 말해다오."

"물론. 그러기 위해서 널 찾아왔으니까. 단지 네가 내 말을 모두 믿어줘야 해."

"흐응... 믿는다는 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인데 말이다."

"믿기 싫으면 안 믿어도 돼. 어차피 네가 해야하는 일은 달라지지 않잖아."

그러자 미호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희한한 놈이구나. 왜 본녀와 구면인 것처럼 이야기를 하지?"

"그거야 나는 전생했으니까."

"뭐?"

그리고 나는 망량에게 했던 것처럼, 장장 한 시진동안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미호에게 해 주었다. 망량에게도 했던 작업이지만 14번이나 되는 삶을 풀어서 얘기하려다 보니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미호는 들으면서 지루하지도 않은지 심각한 얼굴로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 있었다.

나는 미호에게 내 말의 신뢰성을 높여주기 위해서 비등과 목갑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비등이나 목갑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하자 깜짝 놀랐다.

"세상에... 이것은 마(魔)의 유물이구나! 굉장하구나."

"이제 좀 믿겠어?"

"신기한 이야기구나."

미호는 그 외에도 잡다한 궁금증을 내게 캐물었다. 나는 알고있는대로 성의껏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질의응답이 약 한 식경정도 지나자, 미호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인 듯 하구나. 그렇게 똑똑해보이지는 않는데 이야기의 아귀가 전혀 틀리지 않는구나."

"......"

똑똑해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새삼 약간 상처를 받았다. 내 표정이 울적해지자 급히 미호가 나를 달랬다.

"아! 아니다. 그저 네 말의 진실성을 확인해보려 했을 뿐이다."

"무슨 소리야?"

"인간이란 아무리 이야기를 지어내도 세부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위화감이나 모순이 생겨나게 된다. 하지만 네 이야기는 그런게 느껴지지 않더구나. 그래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뭐 그렇겠지. 이런 이야기를 바로 믿으라는 것도 힘들겠지."

미호가 장난스럽게 내 뺨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후후, 백웅. 그래서 너는 내가 중원까지 고생하지 않도록 나를 데리로 와준 것이냐?"

"그래. 그건 네 부탁이었지."

"으흠... 말이 나온 김에 그냥 여기서 사는 게 어떻느냐? 너를 동영의 천황 자리에 대신 앉혀줄 수도 있는데."

나는 미호의 제안에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 돼. 황궁을 내버려두면 엄청난 참극이 벌어질테니까."

나는 그렇게 말한 후 퍼뜩 생각나서 미호에게 물었다.

"맞아! 미호 너는 달기와 같은 대요괴에 대해서 들어본 적 없어? 너와 같은 구미호 요괴였다고."

"......"

미호는 내 질문에 우물쭈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대답했다.

"본녀가 지상에 내려온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애초에 본녀는 천계(天界)가 태생으로써 은주시대같은 상고시대에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느니라. 그런 엄청난 구미호 요괴가 있다는 것도 지금 처음 들었다."

"흠... 하지만 구미호 요괴가 그렇게 흔하지는 않잖아? 미호 너만 해도 천호(天狐)고."

내가 이의를 제기하자 미호가 말했다.

"세상에 널린 게 여우요괴이니 자기 나름대로 수행을 해서 아홉개의 꼬리를 얻고 천호의 경지에 오른 놈도 있을 것이다. 달기란 요괴도 은주시대부터 아주 오랫동안 수행을 해서 그렇게 된 게 아닐까?"

미호의 말은 그럴듯 했다. 요괴 또한 인간과 마찬가지로 수양을 해서 도력을 손에 넣을 수가 있었으므로, 오랫동안 수행을 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힘을 얻을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럼 가자. 앞으로 잘 부탁해."

"아! 잠시만."

"왜?"

"네 말을 듣고보니 내 친위대를 좀 데려가고 싶구나. 아마 그 망량인지 뭔지 하는 인간의 계획을 꽤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친위대...?"

"그렇다. 동영에서 천황을 홀린 후 내 나름대로 점찍어둔 녀석들이지."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 그러고보니 미호는 혼자서 중원까지 온다고 그런 친위대를 대동할 생각도 못 했겠구나.'

지금은 내 이야기를 듣고 비등이라는 편리한 이동수단이 있으니 자기 친위대를 중원까지 데려가려는 듯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력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기에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어떤 녀석들인데?"

미호가 까르르 웃었다.

"딱 2명을 데려갈 생각이니라."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미호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와 핫토리 한조(服部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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