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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아무튼 저 중구난방스러운 말투 속에서도 확실한 것은 제갈사가 현재 몸이 아프다고 말하고 있으며, 망량과 나를 쫓아내려는 심산인 것 같았다.
망량이 말했다.
"수수께끼를 내기 싫으면 그것도 상관없습니다. 천기를 읽었는데 당신이 몇 년 내에 죽을 상이라고 나와서 혹시나 해서 방문했으니."
[ ......]
그러자 대웅묘가 꿈틀했다. 그러더니 네 발로 걸어서 앞으로 걸어오더니 이윽고 두 발로 우리 앞에 섰다. 기립하자 의외로 덩치가 커서 위압감이 느껴지는 게 대웅묘였는데, 대웅묘가 다시 입을 열었다.
[ 아주,,, 정확하다,,, 쒸,,,불너마,,, 왜,,, 나 뒤지는 꼴 보러.. 예까지 왔냐,,, 크크...]
망량은 정면으로 대웅묘를 노려보았다. 이 또한 그로서는 드문 행동이었다.
"그 이상한 말투 좀 집어 치우십시오. 또 이계(異界)에서 이상한 지식을 습득한 겁니까?"
[ 쒸,,, 펄,,, 어쩔건데,,, 썅노무,,, 시끼가...]
"여기 백웅이라면 당신의 그 갈증을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데려왔는데 헛수고였군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망량은 바로 고개를 돌려서 돌아가려 했다. 나도 망량을 따라서 이 장소를 나가려 하자, 그제서야 제갈사가 백웅묘의 입을 빌려서 제대로 된 말투로 말했다.
[ 참나 장난도 못 치냐? 기인(奇人)이 찾아온다는 점괘가 나와서 나름대로 재밌게 준비한 건데.]
망량이 눈에 힘을 풀었다.
"숙부. 불쌍한 백웅묘 그만 부려먹으십시오. 그 술법이 동물에게 좋지 않은건 알고 있잖습니까."
[ 알았다. 선비새끼야.]
선비라는 게 왜 욕이 되는 것인가? 선비(士)란 문무의 구분 없이 사회지도층으로써 강대한 세력을 지닌 사족(士族)을 일컫는 것이니 욕으로 쓰일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제갈사의 언행이나 행동 일체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으나, 아마 망량도 마찬가지인 듯 했다.
파앗!
잠시 후 백웅묘가 네 발로 어기적거리며 걸어나가고 비어있던 방 한가운데에는 삼십대로 보이는 떠꺼머리 청년이 나타났다. 청년의 외모는 망량과 비슷하다면 비슷했는데, 굉장히 퇴폐적이고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망량이 설명한 성격 그대로인 것이다.
놀라운 것은 망량과 나이차가 거의 안 나 보이는 외모라는 것이었다. 제갈사는 팔괘(八卦)가 새겨진 도복(道服)을 입고 있었는데 그는 별로 도사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속세의 인간이 대충 도복을 입고 있는 듯한 사이비스러운 느낌이었다.
제갈사가 말했다.
"현아."
"네."
"몸이 아픈 건 사실이다, 쉬펄. 환자한테 찾아와서 개지랄을 하는 게 내 조카라니."
그가 투덜댔지만 망량은 표정변화 없이 물었다.
"몸이 아프다고요? 병(病)입니까?"
"아니. 그냥 엿보기를 너무 많이 했더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지 뭐냐."
"......"
망량은 그 조롱같은 말에도 별반 화를 내지 않고 넘어가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자 기가 막혔다.
엿보기라고!
' 엿보기? 저 자는 도둑처럼 남의 생활을 훔쳐본단 말인가?'
저렇게나 술법을 익히고는 하는 짓이란 게 그런 좀도둑같은 짓이란 말인가. 나는 망량이 내렸던 후한 평가가 단박에 사라지는 걸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갈사에게는 믿음이라는 게 가지 않았다.
제갈사는 왠 유리알을 박아넣은 테 같은 걸 눈 앞의 코에 걸었다. 생전 처음보는 특이한 물건이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무튼 이제 내 천명(天命)이 오래 남았다는 생각은 안 든다. 수수께끼 낼 기분이 아니니까 이만 가 봐라."
"참 제멋대로군요."
망량은 갑자기 그답지 않게 성을 내며 말했다.
"나와 제갈부가 언젠가 결판을 내는 미래를 보았다면서 자기 하고싶은 것만 하다가 세상을 뜨면 그만입니까? 숙부 당신은 자기 목숨을 대체 뭐라 생각하는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상당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싫기는 해도 그냥 죽게 내버려두기는 짜증나는, 그런 복잡한 기분인 듯 했다. 좋으나 싫으나 혈육이며 친척이라는 건 그런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러자 제갈사가 근처의 침상에 앉아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편하게 죽으면 장땡이지 뭔 개소리냐? 억지로 명을 연장시키려다 더 비참하게 죽을 게 뻔한데 죽을 때만큼은 내 나름대로 선택한다는 소리다, 븅신아."
"그건..."
"아 됐어! 죽을 때 편하게 죽는 것보다 나은 복(福)이 어딨어, 안 그래?"
그렇게 말한 제갈사가 동의를 구하듯 나를 쳐다보았다.
"......"
굉장히 싫게 느껴지는 인물이었지만 나는 순간 그 질문에 별다른 대답을 못 했다. 입이 굳어버린 것 같았다.
편하게 죽는 게 장땡!
' 말이야 맞는 말.'
세상에서 그 이치를 나보다 강하게 실감하고 공감하는 인물은 없는 것이다. 온갖 다양한 방법으로 사망해 봤지만 잠들듯이 죽는 것보다 좋은 축복은 없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서야 아까 망량이 했던 말 뜻을 겨우 알 것 같았다.
나와 제갈사가 의외로 맞을지도 모른다고 했던 말.
' 제갈사 이 놈도 늘 죽음을 납득하며 살아가는 거구나.'
언제 죽어도 상관없지만 하고싶은 건 하고 죽어야겠다는 삶의 자세.
나처럼 전생자(轉生者)가 아닌데도 그저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저런 자세를 취하는 건 광기(狂氣)라고 볼 수 있었다. 보통 인간의 9할 9푼은 말로는 인생 덧없다고 하면서도 중요한 국면에서 크게 집착할 수밖에 없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제갈사가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한다는 건 지금 바로 느낄 수 있는 공감대였다.
그러자 제갈사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 또한 내가 망설인 이유를 심정적으로 짐작한 모양이었다.
"이것 봐라? 현이 니가 데려왔다길래 천하영웅이나 의협(義俠) 나으리일 줄 알았는데, 어디서 이런 흙수저같은 종자를 데려왔냐?"
망량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그의 이름은 백웅(白熊)입니다. 앞으로 그와 함께 천하를 주유할 생각입니다."
"허어 참! 너를 데려갈 정도면 소열제 유비 정도는 되는 그릇일 거라 생각했는데 뭔 어줍잖은 놈탱이를... 너희 아버지가 울겠다."
"함부로 아버지 언급하지 마십시오. 의절당한 주제에."
"아, 미안 미안. 근데 어이 없어서."
제갈사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눈을 게슴츠레 뜨며 내게 말했다.
"내공 엄청나고 무공도 훌륭한 것 같지만 내 눈은 못 속여, 쉬펄. 흙으로 된 그릇을 억지로 부수고 깨면서 확장공사를 겁나게 하셨구만? 범인(凡人)은 아니지만 영웅도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너 자신은 어떻게 생각하냐?"
"......"
이 새끼 재수없다. 당장 쳐죽이고 싶다.
하지만 그런 분노의 감정과는 별개로 그동안 쌓인 경험은 확실히 한 가지 사실을 고하고 있었다.
' 대단하다.'
제갈사는 나를 아주 정확하게 판단했고, 그건 결코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이광같은 매의 눈도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나'라는 인격의 본질을 파악했기에 놀라움이 더했다.
제갈사 또한 틀림없는 천재(天才)이자 달인(達人)의 반열에 올라있는 괴짜이며, 지금 내 감정에 따라서 그를 감정적으로 대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그 손해는 얼마나 될지 모른다. 이번 생의 죽음으로 직결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죽고 나서도 수십 수백년동안 후회할 일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빡치는 감정을 잠시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나는 평범한 인간이 분명하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뿐이오."
"최선을 다해서 현재를 살아간다, 아주 그럴듯한 말이지. 반박할 말도 별로 없는 아주 정치적인 말이야. 정작 그런 말하는 놈 치고 잘된 놈은 못 봤다만."
"뭔 개소리요?"
"월월."
장난치듯 이죽거리던 제갈사가 팔짱을 끼며 말을 이었다.
"뭐 좋아. 아무튼 걸물까진 아니지만 재밌는 물건이란 건 인정해 줄까. 그러니까 내 수수께끼나 한 번 맞춰봐라."
나는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난 별로 지혜에 자신 없소만."
"크크크하하... 뭐 이런 건 댓가가 없으면 재미가 없겠지."
제갈사가 광소(狂笑)를 흘렸다. 내 경험상 저런 웃음은 머리 한 군데가 고장난 놈이 아니면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이 놈은 미쳤다. 어딘지 모르지만 타버린 뇌수가 혼돈속에서 반죽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기를 하자는 거군."
"내가 낸 수수께끼를 맞출 수 있다면 네놈이 원하는 걸 뭐든 한 가지 들어주겠다."
"틀리면?"
내가 반문하자 제갈사가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음... 보통은 죽으라고 하거든. 그런데 네놈은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영 비뚤어져 있는 것 같으니 그건 별로 벌(罰)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그럼 어디보자 뭘로 할까..."
"......"
왠지 망량이 제갈사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놈의 성격으로 볼 때 장령곡주로서 수수께끼를 맞춘 자에게는 금을 줬겠지만, 틀린 자는 모조리 죽음을 내렸으리라. 제멋대로 사람을 죽여대는 마두나 다름없었으므로 망량으로써는 그를 숙부취급해주기 꺼려지는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제갈사가 딱하고 손가락을 튀겼다.
"그래! 그 때는 네놈에게 저주를 하나 걸어주겠다."
"어떤 저주?"
"크흐흐, 그건 말할 수 없지만 기대해도 좋다."
제갈사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더니 말했다.
"자 결정해라. 풀어볼 것이냐 말 것이냐?"
나는 힐끔 망량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망량의 의사가 전해지자 지체없이 대답했다.
"안 할 거요."
저주를 건다는 데 왜 하냔 말이다. 제정신인 인간이라면 결코 '예'라는 선택을 할 수가 없게끔 되어 있었다.
제갈사가 야유하듯 말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쫄리냐?"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망량이 볼 때도 제갈사의 수수께끼를 푸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위인 듯 했다. 나도 공연히 만용을 부릴 이유가 없었기에 여기서 발을 빼기로 한 것이다. 제갈사는 큭큭거리며 웃더니 이윽고 침상에 누웠다.
"그럼 꺼져. 난 환자니까 쉬어야 해."
"안 물었고 궁금하지도 않소."
내가 괜히 오기가 생겨서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제갈사는 뭐가 그리 좋은지 낄낄대는 것이었다.
"크하하하하하!! 우연 보소."
"......?"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대체 뭘 보고 들었길래 저렇게 미쳐있는 걸까.
나는 망량과 함께 장령곡을 빠져나왔다. 나는 곱지 못한 눈으로 장령곡을 뒤쪽으로 흘겨보았다.
' 저런 놈은 영입할 수 있어도 내 쪽에서 사양이다.'
뛰어난 능력자같긴 하지만 저 놈은 왠지 재수없었다. 정말 피치못할 사정이 아니면 내 발로 장령곡에 와서 그를 등용할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속으로 이를 갈고 있자 망량이 씁쓸하게 말했다.
"참고로 그가 저번에 내게 냈던 수수께끼는 [ 아침엔 발이 네 개, 점심엔 발이 두 개, 저녁에는 발이 세 개인 게 무엇인가 ] 였소."
"그런 생물도 있소?"
"사람이오."
"응?"
"지팡이."
"아...!!"
나는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말뜻을 알아챘다. 확실히 사람의 일생을 초년기에서 말기까지 비유하면 그렇게 되리라. 그러자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이건 그의 기분이 좋을 때 냈던 수수께끼요. 내가 이걸 풀었지만 사실 그가 거의 맞춰보라고 던져보다시피 했던 거요. 그러나 지금은 그의 기분이 좋지 않아보이니, 정말 제정신으로는 맞출 수 없는 미친 문제가 나올 거요."
"총 3개를 맞춰야 하는 거 아니오?"
"그건 그냥 어중이떠중이를 걸러내려고 만들어 낸 헛소문이오. 그냥 1개만 맞추면 되는데 그 하나가 무척 어렵지."
"......"
그딴 문제는 완전히 자기 맘대로 정답을 정할 수 있는 게 아닌가?
내 마음속에 불만이 쌓여가는게 보였는지 망량이 말했다.
"아마 그는 광기와 우울증이 쌓여서 몇년 내로 자살하는가 보군. 그를 영입하는 건 힘들 것 같으니 포기합시다..."
"알았소."
그러나 나는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뭐지? 저 자는 뭔가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전생자로서의 직감!
아직 다 캐내지 못했다는 껄끄러운 감각!
이성적으로는 망량의 판단이 10할 옳지만, 뭔가 제갈사가 단순히 광기나 우울증으로 죽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건 어찌보면 동류(同類)라고 할 수 있는 나만의 직감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에이 몰라. 다음에 오자.'
나는 우선 제갈사의 일은 넘기기로 했다. 그에게만 신경쓰기에는 할 일이 태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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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몸이 그리 좋지 않았고 신경쓸 일이 있어서 격일연재처럼 되었습니다. 하지만 격일로 할 생각은 없고 앞으로도 매일연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늘 재밌는 글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