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89화 (189/1,615)

0189 ----------------------------------------------

삼황오제(三皇五帝)

천신 예(?)가 비명처럼 외치는 순간이었다.

촤라라락

하늘에서 갑자기 괴이한 형상의 존재가 하강(下降)하기 시작했다. 강신같은 간접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말 신력(神力)을 이용한 환영을 보여주는 일은 지금껏 드물었으므로, 나와 망량은 놀라서 그 존재를 바라보았다.

그 존재는 사람의 얼굴에 개의 귀, 그리고 알 수 없는 짐승의 몸을 하고 있었다. 외양은 두말할 것 없이 괴물이었으나 그 존재에게서는 사악함 대신에 신령스러움이 흐르고 있어서 신적인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망량이 그 모습을 보자 침음성을 흘렸다.

"사비시신(奢比尸神)이 동방상제 제준의 사도(使徒)로 내려오다니..."

사비시신이라고 하는 존재는 이윽고 입을 열어서 웅웅거리는 심어(心語)를 말했다.

[ 제준의 뜻 다음과 같다. 적궁(赤弓)도 백시(白矢)도 천제(天帝)의 소유. 필멸자(必滅者)에게 내리기에는 과한 축복일지니.]

그러나 예는 천신답지 않게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와 같은 존재에게도 감정이라고 부를만한 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더니 예가 자신의 등허리에서 붉은색 활을 꺼내더니 사비시신에게 말했다.

[ 그리 말할 것이라면 이 활으로 정령(精靈) 삼족오(三足烏)와 대풍(大風), 알유(??), 착치(鑿齒), 구영(九?), 파사(巴蛇), 봉희(封?) 등을 멸한 공업(功業)은 어찌 하오리까? 그 업(業)은 황제(黃帝)께서도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했소!]

[ ......]

[ 부디 옳은 판단을 내려 주소서.]

사비시신은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러더니 마치 까마귀를 닮은 듯한 짐승의 몸뚱이를 약간 움직였는데 그 순간 사비시신의 몸 근처에 현란한 빛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화려한 색채를 지닌,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들이었다. 망량이 그 새들을 보고 찬탄했다.

"오색조(五色鳥)라니!"

화아앗

오색조들은 서서히 홰를 치더니 빛덩어리가 되어서 하늘으로 날아갔다. 그 과정이 끝나자 사비시신 또한 갑자기 빛덩어리로 변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 우리가 어리둥절해 하자, 천신 예가 말했다.

[ 제준께서 허락해 주셨다. 너는 나의 축복을 받을지어다.]

아마도 사비시신이 예에게만 제준의 의사를 전달한 모양이었다. 예가 당장이라도 축복을 내리고 사라질 기세이자 나는 급하게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만 질문할 게 있습니다."

[ 무엇이냐?]

"어떤 축복인지 모르고 받으면 감당키 힘듭니다. 설명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난번에 얼떨결에 항우의 축복을 받았다가 뭔지도 모른 채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삽질을 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반드시 축복의 내용을 들어볼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천신에게 무례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천신 예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듯 내 질문에 대답했다.

[ 내가 내려줄 축복은 적궁백시(赤弓白矢)다. 뿐만 아니라 먼저 말했던 필중의 능력도 붙어 있다.]

"적궁백시의 힘은 무엇입니까?"

[ 네가 위기에 처하면 적궁이 나타나서 백시를 장전해 줄 것이다. 너는 그 백시로 위험을 넘길 수 있으리라.]

파아앗!

예는 그 대답을 끝으로 사라져 버렸고, 천우진은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역시 신급 존재들의 강신을 연거푸 한 여파 때문인지 굉장히 힘이 빠진 듯 했다. 나는 천우진이 예의 차례도 넘겨서 강신을 하면 어떻게 될지 궁금했지만, 이번 생에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의식이 끝난 후 천우진은 코피를 억지로 막은 채 말했다.

"천신 예는 역사상 손꼽히는 강력한 투신(鬪神)이오. 그의 능력을 얻었으니 당신의 행동은 천지간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음이니, 아무쪼록 조심하시오."

이 놈이 내게 조언을 해 주다니?

여태껏 없었던 일이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우진은 늘상 강신의 피로도 때문에 반쯤 기절하거나 빨리 꺼지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곤 했던 것이다. 그만큼 천신 예가 적궁백시를 내게 전해준 일이 이례적이라는 반증이기도 했다.

"조심하라니 그건 무슨 뜻이오?"

천우진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의 이마를 짚었다. 상당한 두통을 눌러참는 기색이었다.

"함부로 쓰면 재액(災厄)이 일어날 거란 말이오."

"알았소. 고맙소."

"으윽... 머리가... 그럼 가 보시오."

나와 망량은 천우진을 뒤로 하고 마을에서 나왔다. 나는 힐끔 마을을 뒤돌아보았는데, 역시 망량선사는 이번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천우진이 경고할 정도의 이변이라고 해도 그가 나설 정도의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뜻인 걸까?

나는 망량과 함께 늘 가던 마을의 조그마한 주점으로 향했다. 망량은 배가 고팠는지 닭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말했다.

"당신 말대로라면 지금 남은 일정은 무영문에 가서 서문혜를 비롯한 사람들을 해방시켜주는 것이겠구려."

"그렇소. 늘상 하던 일이지."

"흐음... 나쁘지 않지만 이번엔 좀 달리 생각합시다."

"어떻게?"

망량이 닭다리를 한입 베어물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그 일을 하기 전에 먼저 내 숙부인 제갈사부터 만나봐야 한다는 소리요."

"아..."

"당신은 그 일을 크게 중요하지 않게 생각했던 건지 모르지만, 지금부터 몇 년 되지 않아서 제갈사가 죽는다는 건 아주 큰 문제요. 그 자는 결코 타인에 의해서 죽지 않소."

나는 놀라서 망량을 바라보았다.

"타인에게 죽지 않는다고?"

망량은 결코 사람을 허투루 보는 자가 아니다. 망량이 한 말이나 사람을 고르는 안목은 이미 황연 대장군이나 이광 및 천하의 영웅들이 인정한 바가 있었다. 그런 망량이 단호하게 이렇게 후한 평가를 내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아버지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소. 제갈사가 패왕(覇王)을 섬기게 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거라고. 나와 제갈부가 힘을 합쳐야 할 것이라고."

"......!!"

"물론 제갈사는 굉장히 염세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이라서 누굴 모시거나 할 자가 아니지. 그러나 그의 지혜와 책략은 나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부분이 있어서, 그 평가는 결코 과장된 게 아니라 생각하오."

나는 솔직히 망량의 평가를 믿기 힘들었다. 만일 내가 망량과 초면이었다면 뭘 믿고 이렇게 자화자찬을 해대나 싶었겠지만, 나는 무려 14회차 수십 년에 걸친 인연으로 망량의 능력을 똑똑히 확인한 바가 있었다. 내가 볼 때 망량보다 뛰어난 책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망량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책사라니!

그래서 나는 반발감이 들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하는 놈인지 모르지만 어차피 자살로 혼자 죽는 놈이오. 변변찮을 것 같소."

"하하. 난 되려 당신과 잘 맞을지도 모른다 생각하오."

"엥? 무슨 뜻이오?"

"만나보면 알 거요."

킬킬 웃는 망량의 모습은 이제 완전히 부담감을 떨친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걸로 됐다 생각했기에, 더 이상 툴툴댈 건 없다 생각했다. 그래서 실질적인 이야기로 들어갔다.

"그건 그렇고 그 자는 장령곡주로서 내방한 자에게 3가지 수수께끼를 내고, 맞춘 자에게 황금을 준다 들었소. 그 수수께끼의 답을 혹시 아시오?"

"답은 알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오."

"무슨 말이오?"

망량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게 참 곤란한 부분인데... 그는 그 수수께끼의 답을 정해놓은 게 아니란 기분이 드오. 그렇다기 보다는 마치 상대방이 어떤 답을 내는지 알고싶어 한다고 해야할까? 그는 자신을 내방하는 자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있소."

"음...?"

"뭐 내가 함께 가면 문제없을 거요."

"그렇겠군."

나는 망량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마 망량은 이미 장령곡의 수수께끼 3개를 모두 풀어본 적이 있는 듯 했고, 답을 알면 그 의의 따위 알게 뭔가. 중요한 건 제갈사가 살았는지 뒈졌는지를 알아보는 것이었으므로 상관없었다.

' 목갑 속의 시간은 거의 멈춘다. 하루이틀 정도 늦어도 상관은 없겠지.'

제갈사가 살아있는지 어떤지를 하루라도 빨리 알아보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다. 나는 무영문의 일을 약간 뒤로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밥을 다 먹고 난 후, 나와 망량은 비등을 이용해서 조그마한 마을로 이동했다. 이 마을은 내가 막야의 수기에 대해서 잘 몰랐던 무렵에 수재(水災)를 구원해주고 댓가로 장령곡의 정보를 받았던 마을이었다.

나는 감회가 새로워서 슬쩍 촌장집을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예전에 침수될뻔한 마을에서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갔던 풍채있는 촌장노인이 보였다. 나는 그를 보자 반가워져서 인사했다.

"안녕하시오."

그러자 촌장은 인상을 찡그렸다.

"어디서 이런 버릇없는 놈이! 감히 어른에게 평대를 하느냐."

"......"

나는 황당함을 느꼈지만, 그럴 만 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무림고수들에게 내 내공의 엄청남을 보여주면 반로환동한 고수인가 싶어서 내 평대에 크게 딴지를 걸지 않지만, 평범한 사람이 보기에는 나는 영락없이 10대 초중반의 어린 소년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인사를 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망량을 끌고 그 마을에서 나왔다.

잠시 후 마을에서 나오자 망량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이라면 육체의 나이상 함부로 평대하면 안된다는 걸 알텐데 왜 그런 실수를 한 것이오?"

"그게..."

나는 망설이다가 망량에게 이유를 말했다. 지난번의 기억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실수했다고 대답하자 망량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앞으로 이런 실수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하면 안 되오. 지금까지는 전생하면서 크게 신경쓸 일이 없었겠지만, 갈수록 당신이 쌓는 기억과 인연은 많아질 거요. 그게 혼재(混在)를 거듭하게 되면 장기적으로는 정신이상 증세가 올 수 있소."

"......!!"

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망량의 말대로 지금 일은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심적으로 우울해질 수 있는 계기일수도 있었다. 그리고 기억이 쌓이면서 정신력에 이상이 올 수 있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쨌든 기억은 쌓이는 건데... 내 기억력이 다 따라잡지 못하는 날이 오면 어떻게 해야하겠소?"

"그것도 생각해볼 일이겠군. 흐음..."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해결방안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확실치 않군."

"그게 뭐요?"

"일단 장령곡에 갑시다. 숙부를 본 후에 말해도 늦지 않소."

나는 망량이 재촉하는 이유가, 내가 더 이상 이 일을 깊게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라는 걸 알아챘다. 망량은 순간적으로 내가 전생자(轉生者)로써 겪게 되는 우울한 심상이 어떤 것이냐는 걸 짐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거의 틀리지 않았기에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 확실히 기억이 쌓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내 기억력으로 무리없이 전부 기억하고 있지만, 왠지 이대로 10회차만 더 지나도 상당한 망각이나 유실이 찾아올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단순한 경험이라는 측면에서는 걱정할 바가 아니지만 정밀한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결점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기억의 축적을 효과적으로 넘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망량과 함께 산길을 따라서 장령곡으로 향하면서 끊임없이 생각했다. 물론 망량은 이미 뛰어난 두뇌로 답을 내놨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생각을 멈춰서는 안 된다. 망량이 주구장창 이야기했던 것은 [자기 머리로 생각하라] 라는 명제였다.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깨닫지 않은 지식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이윽고 장령곡의 앞에 도착했다. 장령곡은 분지지형에 갇힌 듯한 장소로써, 떡하니 이 장 정도 되는 높이의 벽이 서 있었다. 그리고 장령곡으로 들어가는 벽 사이의 통로에는 별다른 문지기가 없었다.

망량이 앞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대로 쭉 오 리 정도 걸으면 결계(結界)가 나오게 되오."

"결계라고? 제갈사도 술법(術法)을 시전할 수 있소?"

"물론이오. 그것도 상당히 뛰어난 술법사요."

그렇게 대답한 망량이 더운지 오화칠금선을 얼굴에 부치며 말했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장사음수진(長蛇飮水陣)이 펼쳐져 있었소. 물론 그 인간의 배배꼬인 성격상 결코 같은 진을 놔두지 않았을 테니, 이번에는 새롭게 결계를 파해해야 할 것이오."

"자신 있소?"

"그리 자신 없소. 그러니 당신이 안되면 도중에 비등으로 탈출해 줘야겠소."

"......"

망량의 진법지식은 환신 천우진이 펼쳤던 기문둔갑 문제마저 단시간에 풀어낼 정도로 뛰어났다. 그런 망량도 제갈사의 진법을 파해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제갈사를 만나는게 생각보다 귀찮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젠장. 술법을 제대로 배우든지 해야지.'

내가 속으로 툴툴거리고 있을 때 앞에 가던 망량이 멈춰섰다. 갑자기 왠 깃발이 가득 꽂혀있는 평지가 등장한 것이다. 망량은 깃발의 배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여기서 한 걸음만 앞으로 옮겨도 진법이 시작되오."

"이건 어떤 진이오?"

"천혼일기(天混一氣)의 진(陣)이오. 정말 인성 하고는..."

망량이 혀를 끌끌 차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인성? 그렇게 사악한 진이오?"

"사악하다기보다는 못된 진이오. 제대로 걸려도 죽지는 않겠지만 죽을 정도로 고생하다가 눈물콧물 질질 싸고 도망치게끔 되어 있소. 망신살을 주려는 용도로 만든 진이라고 할 수 잇소."

"......"

아마 제갈사는 지난번에 망량이 자신의 진법을 뚫고 와서 수수께끼도 모두 대답하고 가자 자존심이 상했던 게 아닐까? 아마 거의 틀림없었기에 나는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어차피 성격이 배배 꼬인 인간이라면 어지간해서는 화를 부르게 마련이었다.

스스스스

망량은 깃발의 운행을 살피며 차분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것도 정갈하게 방위를 맞춰서 상하좌우로 일정한 법칙에 따라서 나가는 듯 했다. 그렇게 약 이십여 장 정도 나아갔을까, 망량이 내게 말했다.

"내가 걸은대로 따라오시오. 파해했소."

"... 그게, 다 외우지 못했는데..."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당연히 망량의 걸음을 외워야했기에 눈을 부릅뜨고 쳐다봤지만, 어느 순간부터 헷갈려서 잘 모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그럼 둘러가서 진법의 핵(核)을 점해서 풀어버려야겠군. 조금 기다리시오."

그렇게 말한 망량은 깃발이 빼곡하게 꽂힌 곳을 알 수 없는 법칙에 따라서 상하좌우로 걸음을 옮기며 뱅뱅 돌았다. 그렇게 약 삼백여 걸음을 옮겼을 때, 망량은 한 지점에 멈춰서서 거기에 있던 붉은색 깃발을 땅에서 뽑아 버렸다.

"진법이 사라졌소. 이제 그냥 걸어서 통과하면 되오."

"겨우 이걸로 되는 거요?"

"이 천혼일기의 진은 정석 중의 정석으로 만들어진 진법이오. 날고기는 고수가 한달음에 경공으로 뛰어서 통과하려 해도 무조건 걸릴수밖에 없지만, 올바른 순서에 따라서 파해하면 아녀자나 어린아이라도 없앨 수 있게 되어 있소."

"호오..."

"그렇다 해도 아주 있는 힘껏 꼬아놔서 왠만한 진법지식으로는 들이댈 수 없겠지만."

망량이 사납게 중얼거리는 걸 보니, 보기와는 달리 망량도 천혼일기의 진을 파해하는데 고생한 모양이었다.

' 망량은 제갈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군.'

악우(惡友)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나는 망량이 부순 진법 안으로 걸어들어갔는데, 고작해야 무릎에 올까말까한 조그마한 깃발들이 모여서 사람을 마음대로 가두거나 홀릴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이윽고 나와 망량은 왠 청색과 녹색 기와가 번갈아 얹혀 있는 특이한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집의 마당에는 대나무숲이 있었는데 바람이 불면서 기이한 소리를 흘리고는 했다.

따각

따각

집 앞에는 기이한 기구가 주인없이 나와 있었다. 바퀴가 네 개 달려 있었는데 마치 사람이 앉아서 이동하라고 만들어진 듯한 물건이었다. 그 물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망량이 외쳤다.

"제갈사! 손님이 왔는데 사륜거(四輪車)를 덜렁 내놓는 저의가 뭐요? 당장 나오시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 대신 주인없는 사륜거가 갑자기 끼익거리면서 기와집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명백히 술법에 의한 것이었기에 제갈사가 우리를 인도하는 게 분명했다. 별 수 없이 사륜거를 따라서 걸어가자, 이윽고 기와집의 문이 열렸다.

덜컹

이 곳에도 술법이 펼쳐져 있다는 기분이 든다. 기와집 안으로 들어가자, 거기에는 왠 곰이 있었다.

"......?!"

대웅묘(大熊猫)!

대나무숲 근처에서 서식한다는 흑백(黑白)가죽을 지닌 게으른 곰이 살풍경한 기와집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이다. 나는 당황해서 그 대웅묘를 쳐다보았는데 잠시 후 대웅묘가 입을 열어서 사람 말을 했다.

[ 쉬,,, 펄,,, ]

"......"

[ 카악... 퉤이...]

이건...

[ 귀.. 찮... 으니까.. 꺼... 져... 븅... 쉰... 그지 쉐리들아...]

속세의 왈자패들이나 쓸 법한 막장스러운 말! 아마도 본체는 어디 다른데 있고 곰에게 말을 대신하게 시키는 모양이었다. 뜻밖의 상황에 욕을 먹었는데도 화가나기보다는 황당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망량이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수수께끼 안 낼 겁니까?"

대웅묘가 입을 열었다.

[ 야~~~ 이넘아~~~~ 개븅,,, 쉰거튼,,, 쓰댕,, 내가,,,, 왕년엔... 멀쩡헌,,, 몸이었는데~~~ 지금 몸이... 작신나게,,,, 아프다~~~]

말이 느린 것 같으면서 은근히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대웅묘가 근처의 죽순을 주워들어서 뜯으며 말했다.

[ 이제 그만,,,, 이 피곤헌, 삶,,,,에다가,,,,마췸표를,,찍,어버리구다가 쉬픈,,건지~~~~~ 흐흐흐,,,, 그러니,,까네,,,꺼져라,,,, 쉬,,, 펄.... 네넘덜,,보다두,,, 오래,,살아온,,,윗,,어른의,,조언이다~~~]

"......"

첫 대면부터 광기(狂氣)가 발랄하다.

그것이 내가 제갈사에게서 받은 첫 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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