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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87화 (187/1,615)

0187 ----------------------------------------------

삼황오제(三皇五帝)

항우의 거대한 힘이 달기를 덮치는 순간 전신에서 활화산같은 열기가 들끓는 것이 느껴졌다. 항우가 끌어올린 기세가 너무 거대해서 몸이 감당하지 못하고 타들어가는 일이었다. 의식의 한켠에서 관찰자처럼 지켜보고 있던 나는 항우의 힘이 뭔가 다른 거라고 직감했다. 그도 그럴것이 생명력, 기력 모두가 쇠한 상태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힘을 휘두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쿠콰쾅

항우의 기세가 산맥을 두 번 분단시켰다. 십자로 거대한 흉상(凶傷)이 대지에 아로새겨지고, 그 때까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었던 달기의 몸뚱이는 피떡이 되어서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푸른 피를 쏟아내며 발버둥치던 달기가 외쳤다.

[ 나는 '그 분'의 권능을 받았노라! 정명자(定命者) 따위에게 지지 않노라!!]

그것은 마치 주술적인 언어로 보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문(呪文)이 되어서 달기의 전신을 새하얗게 감싸는 듯 했다. 아마도 검선 여동빈이 말했던 절교의 비술이란 걸 다시금 펼칠 생각인 듯 했다.

"죽어라!"

그러나 항우는 그런 달기의 발버둥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힘껏 일격을 내리꽂았다.

꽈르릉

뇌천(雷天)이 휘몰아치며 대지가 역전했다. 달기의 주변에 나타나는 수백 겹의 주술방어막이 항우의 발길질 한 방에 날아가 버렸다. 다시 맨몸뚱이가 거꾸로 치솟아 오르며 거대한 피해를 입자, 달기는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 아악... 이건 파천(破天)의 가호...]

후두두둑...

달기는 그 외마디 비명을 끝으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항우와 같은 몸을 공유하고 있는 '나'는, 항우의 투신(鬪神)으로서의 직감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달기는 이제 현신(現身)한 몸뚱이를 더 유지할 수 없기에 영혼을 빼어내서 도망치는 중이라는 게 느껴졌다.

[ 제망량의 가호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달기의 술법능력은 엄청난 힘을 가진 듯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항우에게는 손도 발도 못 쓰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건 아마도 내게 씌어져 있는 파천의 가호가 달기에게 뭔가 제약을 가하는 듯 했다.

그러자 항우는 싸늘하게 웃으며 앞으로 손을 내뻗었다.

"도망 못 친다."

항우의 손이 앞으로 내밀어지며 강하게 움켜쥐는 순간이었다. 저너머에 있던 빈 공간이 그대로 사로잡히면서 강력한 어둠의 기운이 흑색 연기를 내뿜으며 나타났다. 달기의 탈출시도를 손움켜쥠으로 막아버리는 항우의 힘은 불가해(不可解)하기 짝이 없었다.

달기의 혼백이 말했다.

[ 세상에 어찌 이런 우연이 있는가? 너와 같은 자가 강신할 일이 천지창조 이래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파천의 가호까지 두르는 우연이 있을 수가 있는가?]

그것은 마치 넋두리에 가까웠다. 마왕이라고 불리는 절대적인 대요괴지만 그런 달기에게 있어서도 지금 항우의 강신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했다. 항우는 그 말을 듣자 우묵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죽어라."

[ 카하하... 잊지 않겠다... 항우...]

파앗!

항우의 무자비한 철권이 내려찍히는 순간 달기의 사악한 혼백은 산산히 부숴져서 사라지고 말았다. 검은 연기가 흩어지는 동안에 항우의 냉막한 얼굴이 언뜻 스쳐지나간 듯 했다. 항우는 하늘에 뜬 상태로 한동안 가만히 있다가 지상으로 내려왔다.

항우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내 품 속에 있던 비등을 꺼냈다.

슈욱

비등을 이용해서 손쉽게 항우가 이동한 장소는 바로 황궁이었다. 항우가 비등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둘째치고 그가 난데없이 황궁에 나타난 이유가 짐작이 가지 않아서 어리둥절했다. 그러자 항우가 뚜벅뚜벅 걸어가면서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청소를 하러 왔다."

내게 말을 한 겁니까?

내가 억지로 내면의식에서 말을 걸어봤지만 항우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걸어갔다. 항우가 난데없이 황궁 내부에 나타나자 근처에 있던 금의위 위사들이 칼을 뽑아들고 외쳤다.

"멈춰랏!"

"수상한 놈이다 죽여라!!"

동시에 일류 절정급 무위를 지닌 금의위 위사들과 천호들이 수십 명이나 달려들었다. 또한 저만치에서 동창 소속의 고수들도 깨알처럼 몰려드는 듯 했다. 하지만 항우는 칼을 뽑지도 않고 그저 발을 한 번 굴렀다.

퍼퍼퍼펑!!

몰살(沒殺)!

비명소리가 날 틈도 없이, 피비린내가 혈무(血霧)와 함께 자욱하게 퍼져나갔다. 항우가 한 번 진각을 내려찍은 것 뿐이었지만 반경 오십여 장 내에 있던 모든 생명체의 몸뚱이가 산산이 터져나간 것이다. 피의 폭풍이 몰아쳤지만 항우의 몸에는 피 한 방울 묻지 않고 그저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갈 뿐이었다.

곧이어 항우의 앞에 황궁의 사신위 중 두 명이 나타났다. 백호인 금의위 총령과 현무인 동창제독 환야였다. 그들은 창백한 안색으로 항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괴, 괴물 놈."

"이족의 신에게서 받은 힘을 보여주마."

스아아앗

"마인화(魔人化)!"

금의위 총령과 환야의 몸뚱이가 갑작스럽게 변화했다. 그것은 지난번에 보았던 인지나 이성이 없는 괴물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인간과 괴물이 반쯤 섞인 듯한 모습이었다. 금의위 총령도 환야도 자신의 이성을 충분히 유지하는 듯 했다. 그리고 금의위 총령과 환야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해 왔다.

퓨칵!

"크아아아!!"

실로 무시무시한 힘과 속도였다. 마인으로 변신한 총령과 환야는 가히 진소청의 뇌명을 연상시킬 정도의 속도로 이쪽을 공격해 들어온 것이다. 이미 인간의 무(武)에서는 도달하기조차 힘든 한계라고 할 수 있었다.

' 설마 총령이 이족의 시술을 온전히 다 끝내면 저렇게 마인의 힘을 손에 넣는 건가?'

나는 순간 총령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해졌었다는 전생의 경험을 떠올렸다. 아마도 시술이 다 끝나지 않으면 불완전한 거대 촉수괴물의 모습으로 남게 되고, 시술이 온전히 끝나면 반인반마(半人半魔)의 가공스러운 힘을 손에 넣게 되는 것이리라. 황궁을 가만히 둬서는 안된다는 망량의 말은 틀림없는 진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 소용 없다.

퍼벙

두 황궁고수가 덮쳐오는 순간 항우의 양 주먹은 그들의 모가지를 그대로 터뜨려버리고 말았다. 인지를 넘어선 힘과 속도라고 하지만 항우 앞에서는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머리통을 잃어버린 두 고수의 몸뚱이가 벽에 처박히자 항우는 손에 묻은 피를 잠시 털어내고는 다시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갔다.

저벅...

좀 더 앞으로 걸어가자, 그곳에는 세 명의 초상기인(超上奇人)이 서 있었다. 우리가 초상기인을 훔쳐간 후 새로 제작한 듯한 그 초상기인들은 아무런 표정도 감정도 없는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초상기인들 중 중간에 있던 새하얀 머리카락의 미소년(美少年)이 손을 휘둘렀다.

"죽어라!"

그리고 다음 순간, 항우는 세 명의 초상기인을 모조리 쳐 죽이고 말았다.

"으으윽..."

두 명의 목을 뽑고 심장을 터뜨렸으며, 새하얀 머리카락의 미소년의 명치에 수도(手刀)를 쑤셔박아 버린 것이다. 초상기인이 피를 쿨룩하고 토해내자 항우가 냉막하게 말했다.

"그딴 능력은 내게 통하지 않는다."

"그... 그런 것 같군... 괴물..."

초상기인의 목이 앞으로 꺾이자 항우는 수도를 빼내서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뭔가 알 수는 없지만 초상기인이 [능력]을 썼는데도 항우가 모조리 무시하고 공격해서 척살한 모양이었다.

뚜벅

뚜벅

나는 항우의 내면에서 그의 행보와 감정을 읽어내자 질리는 기분이 들었다. 항우는 지금까지 수많은 인간을 쳐죽였는데도 찝찝함이나 가책따위는 조금도 없었으며 그저 벌레를 쳐죽이는 듯한 귀찮음만을 느끼고 있었다. 또한 설령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게 악인이 아니라 선인(善人)이라 할지라도 문답무용으로 쳐죽였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백전연마의 무술달인이나 사파의 마두라고 해도 이런 정신상태를 가질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자기 앞에 존재하는 모든 적을 죽이는걸 벌레잡이 이상도 이하로도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감정의 질박한 유동성이 모조리 배제되어버린 듯한 괴기스러움이 느껴졌다.

이윽고 항우는 황제가 앉아있는 어전 앞에 도착했다. 황제는 옥좌에 앉은 채 힘없이 항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설마 달기가 질 줄은..."

항우는 그가 황제라는 걸 파악한 듯 눈썹을 꿈틀대며 말했다.

"자진(自盡)하라."

피잉!

항우의 손에서 날아간 단검이 황제의 귀옆머리 근처에 꽂혔다. 황제는 천천히 그 단도를 뽑아내며 말했다.

"배려해줘서 고맙다. 다만 죽기 전에 너의 이름을 알 수 있겠는가?"

항우는 냉막하게 대답했다.

"항적(項籍)."

그 대답을 들은 황제가 경동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더니 허탈하게 웃었다.

"과연... 영광이오."

푸욱

황제는 이윽고 자신의 목에 단검을 찔러서 자결했다. 피분수가 치솟아 올랐지만 그는 끝까지 옥좌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황제의 몸뚱이가 피투성이가 되어서 추욱 늘어지자 항우는 황제의 목에서 단검을 뽑아냈다.

"......"

황궁을 순식간에 초토화시킨 항우는 다시금 비등을 꺼내들었다.

파앗!

이번에 항우가 비등으로 이동한 곳은 고려 강화도 마니산에 있는 월요(月曜)의 봉인지였다. 그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봉인지 안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월요를 상자에서 꺼내버렸다.

쿠구구구...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바깥에서 거대한 진동이 울렸고, 월요의 수호자가 태동(胎動)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머지 않아서 무시무시한 월요의 수호자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항우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라서 속으로 전전긍긍해하고 있자, 항우가 다시 내게 말을 걸었다.

"속이 시원하겠지."

무슨 소립니까?

"제단에 피를 바치든 안 바치든, 월요를 꺼내가려고 하면 월요의 수호자는 깨어난다."

그걸 알려주려고 일부러 여기까지 온 겁니까?

"그렇다."

항우는 그 말을 하고 나서 근처의 산야로 이동했다. 이윽고 거대한 섬광과 함께 이 강화도 마니산에 월요의 수호자가 소환되었고,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크기의 이자나기노미코토가 포효했다.

쿠오오오 -

항우가 물끄러미 그 월요의 수호자를 쳐다보더니 덤벼들었다.

쿠콰콰쾅!!

그저 몸통박치기일 뿐이었다. 그러나 항우의 공격을 받은 월요의 수호자는 갑작스럽게 몸통 한켠이 뻥하고 뚫려서 휘청거렸다. 나무의 줄기가 뜯겨져나간 듯 몸을 가누지 못하던 월요의 수호자가 갑자기 광선포를 수백 개씩이나 소환해서 뿜어내었다.

콰과광

천지가 멸망하는 듯한 그 파괴의 흔적 속에서도 항우는 광선포를 피하지 않고 그냥 주먹을 휘둘러서 되쳐 버렸다. 광탄은 그대로 되돌아가더니 월요의 수호자에게 박혔고, 이윽고 월요의 수호자는 자폭해 버렸다.

풍신류 호법사자를 빈사상태로 몰아넣었던 수백 수천개의 폭발이 스러진다. 항우는 그 파괴 속에서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은 듯 유유히 천상을 날다가 갑자기 어딘가로 향했다. 이자나기노미코토가 소멸된 자리에서 땅바닥에 뭔가 떨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항우는 그 물체를 주웠다. 그리고는 왠 흑요석같은 보석이라는 걸 확인한 후 여기저기로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재밌군."

뭐가 재밌다는 걸까?

그러나 항우는 한 마디도 설명을 해 주지 않고는 다시 비등을 사용해서 이동했다. 이번에 그가 간 곳은 왠 기이한 기암괴석이 가득한 장소였다. 어느 인적없는 산맥의 일부처럼 보였는데 굉장히 음습하고 한기가 느껴졌다.

항우는 그 산의 정상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이걸로 마지막이다."

뭐가 마지막이란 겁니까?

"내 축복은 네가 패도(覇道)를 쉽게 걸을 수 있게끔 운명을 조정해 주고, 만일 네가 죽게 되면 네가 원했던 것들 중에서 아무거나 이뤄주는 것이다."

......!!

설마 그 동안 뇌신류가 패도를 걸으며 승승장구했던 것은 항우의 축복이 일조했던 결과란 말인가? 그리고 항우가 죽고 나서야 빙의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가 머릿속을 정리하려 하자 항우가 말을 이었다.

"달기와 싸우게 될 줄은 몰랐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그래서 선물로 한 가지 더 가르쳐주고 가겠다."

아니... 뭘 가르쳐주신다고 해 봐야... 저는 이미 죽은 거 아닙니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네게는 망각의 인(印)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환생(還生)할 확률이 높다."

망각의 인? 그게 뭐죠?

"모든 정명자는 윤회의 고리에서 망각하게끔 각인이 영혼에 새겨져 있다. 다만 아주 가끔 그 각인이 사라져 버리거나 애초에 없는 놈이 있다. 그런 놈은 기억을 지닌 채 환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까지 설명한 항우가 말을 이었다.

"슬슬 다 왔군."

항우가 도착한 산의 정상은 굉장히 고적하고 공기가 적었다. 한없이 고요한 이 산야에는 어둠이 자욱하게 깔려있었지만 동시에 빛의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안정된 영성(靈性)이 마치 신전(神殿)처럼 느껴졌다.

항우는 그 자리에 선 채 말했다.

"바로 이 장소가 천지간(天地間). 하늘과 땅의 통로가 닫힌 곳이다."

이 곳이 삼황오제(三皇五帝) 전욱이 하늘을 닫은 장소란 말입니까?

"그렇다."

뚜벅

뚜벅

"나는 잘 모르겠지만, 이 곳은 신선들에게도 극비(極秘)로 취급되는 것 같더군. 보통 인간은 길을 헤매서는 결코 들어올 수 없고 술법사라도 신선들에게 걸리면 사지가 찢겨서 죽게 된다."

신선이 왜 그리 극단적인 행동을 한단 말입니까?

"신선도 정신체에 불과하지. 내가 볼 때는 이족 놈들과 다를 게 하나 없다."

그렇게 천계에 대한 혹평을 쏟아내던 항우가 근처의 바위에 편하게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늘어져라 누우면서 말했다.

"그럼 잘 가라."

동시에 항우의 영혼이 내 몸에서 빠져나가더니 천지간의 구름 위로 승천(昇天)하는 게 보였다. 아마도 항우는 손쉽게 천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천지간에 온 듯 싶었다. 또한 항우의 힘으로 되살아나 있던 나는 순식간에 전신에 힘이 빠지면서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한 숨 자고 싶다. 항우는 아마 잠들듯이 죽으라고 나를 배려해 준 듯 했다.

그래서 피식 웃었다.

' 이걸... 고맙다고 해야하나...'

아, 졸린다.

나는 의식이 사라지며 편하게 잠들었다.

그것이 내 14번째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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