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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86화 (18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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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여동빈의 몸이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동시에 신검합일(身劍合一)의 기세로 치솟아 오르더니, 이내 천공에 한 자루의 거검(巨劍)을 소환했다.

[ 천둔검법(天遁劍法)!]

우웅

천둔검법으로 나타난 거검은 말 그대로 산맥을 잘라버릴 듯한 크기였다. 수백 장 크기나 되는 거검은 잠시 후 여동빈의 손가락을 따라 움직이더니 그대로 달기를 향해 날아갔다. 엄청난 크기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넘어선 속도인지라 가공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달기의 꼬리 중 세 개가 움직이더니 부드럽게 거검의 날을 감싸버리고 말았다. 모든 충격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긴 달기가 남은 여섯 개의 꼬리로 여동빈을 공격해 왔다.

쿠콰콰쾅

콰과과광

수백 장에 이르는 넓이가 쓸려나가면서 마치 폭약이 터진 듯한 파괴력이 대지에 붉은 상흔을 만들어 내었다. 일 격 일 격에 절세고수의 모든 내공을 담은 절초, 그 이상의 위력이 깃들어 있었고, 그건 이미 달기의 위력이 인간으로써는 감당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 저걸... 무공으로 잡는 건 무리야...!!'

나는 여동빈에게 몸을 맡긴 상황에서도 절망을 느꼈다. 어째서 진소청이 무기력하게 팔을 잘리고 이광이 목숨을 잃었는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요괴와 인간은 애초부터 상한선이 달랐으며 요괴가 요력을 극한으로 얻어낸 상태에서는 인간의 무(武)로는 건드리기도 힘든 지경까지 올라가버린다.

하지만 여동빈 또한 대라신선으로 추앙받는 투선(鬪仙)! 그는 전신을 둘러싸는 화룡(火龍)의 환(環)을 소환해내서 그 공격을 받아넘겼다.

[ 흐음!]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되치기를 이용해서 달기를 물러나게 만들었다. 오색찬란한 별빛이 흘러나오더니 검형(劍形)을 이루었다. 검형은 빛무리를 안고 날아가더니 달기의 미간을 때렸다.

여동빈의 공격을 맞은 달기가 살짝 비틀거렸다. 그러더니 깔깔거리며 웃었다.

[ 아하하! 팔선 최강자답구나. 제법 손이 매워.]

처맞은 주제에 뭐가 좋다고 웃고 있는 거냐?

나는 속으로 달기를 비웃었지만, 정작 여동빈은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여동빈이 속으로 내게 말했다.

[ 방금 그 공격은 전력을 다한 것이었다...]

......

전력을 다해서 미간에 절초를 격중시켰는데도 딱밤 맞은 반응밖에 나오지 않았다는 말인가? 그 말대로라면 여동빈과 달기 사이에는 생각보다 심대한 힘의 격차가 존재하는 듯 했다. 나는 급히 여동빈에게 말을 걸었다.

' 당신에게는 천계의 화룡을 소환하는 능력이 있잖아!'

화룡소환!

비록 그걸 펼치고 나서 내가 바로 죽어버리긴 했지만 그 위력만큼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방금 여동빈이 전력을 다했다는 공격, 그 이상의 파괴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여동빈은 의외라는 듯 대답했다.

[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냐! 그걸로도 쓰러뜨릴 수 없는 건가?'

[ ...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달기는 절교(絶敎)의 비술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절교?'

여동빈은 대답을 하지 않고 자신의 검을 잡으며 달기에게 외쳤다.

[ 달기! 이토록 무도한 짓을 하고도 인과율(因果律)이 그대를 가만히 놔둘거라 생각하는가? 설령 신이라 할지라도 인과율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사라라락...

달기는 자신의 거대한 몸뚱이를 움츠리는 듯 했다. 아마도 꼬리를 모아서 한번에 강력한 일격을 할 준비를 하는 모양이었다. 달기는 웃으며 대답했다.

[ 그것이 골치아팠다... 근원의 역풍(逆風)을 맞으면 나라도 위험하니까. 하지만 아주 훌륭하게도 너희가 빌미를 줬다.]

[ 빌미라고?]

달기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 네가 몸을 빌리고 있는 그 인간은, 마도사의 비등을 이용해서 초상기인을 훔쳐갔다. 그리고 멋대로 공양까지 해 주셨지.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그 물건은 결과적으로 '그 분'께 바칠 제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 그 분이라면... 대멸망 때의...]

[ 후후후... 그 어떤 신도 자신의 제물을 빼앗긴 건 용서하지 못한다. 다소 절차때문에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그 분의 사도(使徒)로써 인계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받았다. 모든 역풍은 그분의 권능으로 차단된다는 말이다.]

거기까지 말한 달기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 아하하하하!! 이제 재밌어질 것이다. 은주시대 때처럼 즐거이 인육(人肉)을 씹으며 안락한 여흥을 즐길 날이 멀지 않았음이다.]

[ 그렇게는 되지 않는다! 내가 너를 막겠노라!]

[ 어디 해 보시지?]

쿠르르릉!!

여동빈은 한층 더 강하게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왠 주문같은 걸 외우면서 자신의 몸을 강화시키고 있었다. 여동빈과 몸을 공유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게 여동빈이 익힌 천계의 술법이자 비법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 그래서 화룡소환을 미루고 있었구나...'

화룡소환이 여동빈의 최대비기인 건 사실이지만 만에 하나 실패하면 큰일이다. 지금 달기는 단순한 육체의 방어력 뿐만 아니라 요력을 이용한 방어비술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 상태였다. 여동빈으로써는 먼저 그 방어용 술법을 걷어낸 다음에 제대로 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길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아직까지 여동빈은 전체 내공의 1할밖에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공수련을 반복하면서 점차 가용내력과 잠재력, 회복력이 늘어난 덕인지 여동빈이 싸울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늘어난 듯 했다. 그러나 달기의 힘이 훨씬 더 강하니 여동빈이 치명타를 입히기 위해서는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겨야 할 것이다.

여동빈의 눈에 불꽃이 튀며 검이 허공을 날았다. 이기어검(以氣御劍) 중에서도 심어검(心御劍)으로 보이는 경지가 공간을 꿰뚫었고, 이윽고 팔괘(八掛)의 형상을 하며 달기의 정면을 타격했다.

따앙!

달기는 이번에도 그저 딱밤을 맞은 듯한 반응을 보이며 살짝 뒤로 물러났다. 여동빈은 차분하게 달기를 공략할 생각인지 달기의 꼬리공격을 재빨리 피하면서 계속해서 현란한 검학을 이용하고 있었다.

달기 또한 여동빈의 전략을 알아챈 모양인지 가소롭다는 듯 말했다.

[ 투선이라고 하나 보패(寶佩) 하나 없는 놈을 두려워 할 성 싶으냐?]

까앙

약 백여 초를 싸웠을까? 여동빈은 엄청난 신법으로 움직이다가 갑작스럽게 달기의 꼬리공격에 걸렸다. 그는 검강(劍罡)을 끌어올려서 달기의 공격을 쳐냈지만 전신에 충격을 받는 건 피할 수가 없었다.

[ 쿨럭.]

그리고 인간 몸의 한계 때문일까. 호신강기로 버텼는데도 여동빈은 피를 토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여동빈의 실력에 내 몸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여동빈에게 빈틈이 생기자 달기는 마치 신이 난 것처럼 연속으로 공격을 해 왔다.

파바방

파방

빠르다... 너무 빠르다! 여동빈 또한 인간을 초월한 검속으로 그 하나하나의 공격을 걷어내고 있었지만, 달기의 공격은 생명체가 낼 수 있는 속도같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요력이 꼬리에 깃들어서 필살의 위력이 깃들어 있으니 너무나 무서웠다.

결국 여동빈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는 할 수 없이 화룡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

내 몸의 팔문(八門)이 신선 여동빈의 의지에 따라 강제로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팔문이 다 열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걸 여태껏 2번이나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생에서 어떻게든 내 명줄을 붙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었다.

' 여긴 닫자!'

나는 여동빈이 팔문 중에서 사문을 열 때 재빨리 천지를 흐르는 기혈 중에서 세 군데를 닫아 버렸다. 팔문개방과 큰 연관은 없지만, 팔문을 다 열고 나서 기가 누수되기 시작할 때 최대한 그 속도를 늦춰주는 급소였다.

[ 천계의 화룡이여!]

마침내 육문까지 개방되었을 때 여동빈은 명옥에 힘을 모아서 화룡을 소환했다. 명옥이 깨어지며 거대한 불꽃의 용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영체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적룡(赤龍)은 그 자체로 봉황에 맞먹는 천계의 최상급 신수(神獸)! 아니나 다를까 달기조차도 화룡이 소환된 모습을 보자 기에 눌리는지 주춤거리며 뒤로 약간 물러서는 모습이었다.

우우

잠시 후 화룡이 몸을 뒤틀더니 전신에 신통력을 모았다. 그리고는 몸을 쫙 뻗어서 그대로 달기의 본체에게로 쇄도해 갔다.

달기가 화를 내며 외쳤다.

[ 응룡(鷹龍)도 아닐진대 내가 이딴 것에 죽을 것 같으냐?]

쿠와앗

달기의 본체 입에서 거대한 파장이 터져나왔다. 그것은 마치 언령(言靈)과 같았는데, 실제로는 이족(異族)이 사용하는 주술어로 보였다. 달기가 토해낸 언령이 허공에서 화룡과 부딪히더니 허공에 큰 반발력을 만들어내었다.

한동안 서로 힘을 겨루던 두 술법은 잠시 후 화룡이 달기의 언령을 이기며 쇄도해 들어갔다.

콰과과과광!!!

마치 산악이 통째로 불타는 것 같았다. 순식간에 번쩍거리며 태양같은 빛이 하늘을 채웠다. 그만큼 화룡의 폭발이 엄청난 규모로 적을 공격했다는 소리였다. 나는 직접 쳐다보면 눈이 멀어버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동빈이 빙의한 몸이라서 그런지 아무런 고통 없이 극렬한 빛을 쳐다볼 수 있었다.

[ ......]

적중한 건 틀림없었지만 여동빈의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저 몸이 그을렸을 뿐 크게 다치지 않았다.

달기는 자신의 꼬리 하나를 핥짝이면서 되려 음침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언령을 내뿜으면서 화룡의 힘을 크게 감소시킨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격을 달리하는 적!

여동빈이 화룡을 소환하려고 내 팔문까지 모두 열어놓은 상태였지만 내가 급소의 혈을 닫은 덕에 아직 죽음까지는 꽤 시간이 남아 있었다. 여동빈이 허공에 뜬 채 중얼거렸다.

[ 연자여, 미안하다... 내 힘으로는 저 마왕을 어찌할 수 없구나...]

어째서?!

저 달기라는 게 도대체 뭐길래?

은주시대에 은나라를 망하게 한 사악한 악녀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니었던가? 그런 존재가 어떻게 저렇게 엄청난 힘을 가질 수가 있는 거지?

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의문이 떠올라서 여동빈에게 향하자, 그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 봉신연의(封神演義)라고 하는 전설은...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 진실은 대멸망(大滅亡)... 그것이 바로 황제(黃帝) 공손헌원(公孫軒轅)의 뜻이었다, 연자여.]

무슨 소리야?

[ 정말로 미안하구나...]

내가 더 이상의 의문을 떠올릴 새도 없이 전신에서 급속히 힘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나는 더 이상 무공술을 유지하지 못하고 천천히 땅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달기는 그런 나를 치려면 얼마든지 칠 수 있음에도 마치 장난감을 지켜보듯이 공격하지 않고 있었다.

이윽고 내게서 여동빈의 강신이 완전히 풀렸다.

' 크윽...!!'

나는 마치 십만번 베기를 했을 때와 같은 극렬한 피로감이 전신에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눈꺼풀이 천만근처럼 느껴졌고 당장이라도 누워서 자고 싶었다. 그러나 그 잠이 곧 죽음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억지로 기운을 보존하며 버티고 섰다.

어차피 팔문을 열었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죽겠지만, 이 남은 기운으로 일 초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얻어내고 죽겠다. 그럴 각오로 여기에 온 것이다.

내 눈에 결연한 빛이 감돌자 달기가 흥미로운 듯 말했다.

[ 재밌는 인간이군... 눈에 절망도 공포도 없어... 정신도 멀쩡하다니... 후후.]

"... 여기 있는 인간들을 살려 줘."

[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나는 힘없이 웃었다.

"내가 엄~청난 비법이 있거든..."

사실 그런 건 없다. 없지만 그냥 허세를 부려 본다. 이제 와서 남은 수단도 없기 때문에, 일초라도 더 생존하기 위해서 되지도 않는 알량한 몸부림을 쳐 본다.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잘났다는 듯이 목숨을 끊으라고 들이미는 건 성미에 맞지 않는다. 죽어도 내가 죽는다.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조금이라도 더 발악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전생자로써 살아가는 건 불가능한 것이다.

달기가 키득 키득 웃었다.

아하하...

아하하하하하....

같은 구미호(九尾狐)이긴 했지만 미호와 달기의 웃음은 많이 달랐다. 미호 또한 약한 자에게 인정사정없는 성격이지만 달기처럼 사악하지는 않았다. 어딘가 순수한 면이 있는 미호와는 달리, 눈 앞에 있는 거대한 요호(妖狐)는 그 자체로 무시무시한 마(魔)에 물들어있는 존재였다. 괜히 여동빈이 달기를 마왕(魔王)이라고 칭한 게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달기의 웃음은 내 감정을 순식간에 진탕시키며 뼛속깊이 절망감과 공포를 심어넣으려 했다. 그 자체가 강대한 정신공격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대뢰옥에 있던 마물보다 몇 배는 강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그 정신공격을 무시하며 버텼다. 그리고는 말했다.

"칠요(七曜)의 장소와 획득방법을 알고 있다고..."

[ ......!!]

달기는 정말로 놀란 듯 했다. 저 정도 되는 신화급의 마물에게 있어서 칠요란 역시 각별한 의미가 있는 듯 했다. 달기가 슥 하고 앞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악하고 지독한 마물의 냄새가 난다.

가슴이 마구 떨리고 있을 때 달기가 말했다.

[ 말해라.]

"팔문을 열어서 나는 곧 죽는다고."

나는 유들유들하게 말했다.

"내가 왜 말한 줄 알아? 너는 팔문을 개방한 인간을 살릴 능력도 없는 파괴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지. 실컷 궁금해하고 죽는 게 좋아."

그러자 달기가 노해서 말했다.

[ 이 놈! 그 말이 거짓이면 네 동료고 뭐고 모든 인간을 씹어서 먹어버릴테다.]

"하... 그... 그러던... 가..."

점차 숨이 거칠어진다. 기혈을 봉해서 팔문의 부작용을 막는 것도 한도가 있다. 나는 숨이 가빠지면서 전신의 기가 모두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반 각도 지나지 않아서 내 숨이 끊어질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내가 앞으로 풀썩 주저앉자 달기가 말했다.

[ 꼬리 하나의 힘이면 충분하다...]

달기의 은빛 꼬리가 내 머리 위에 얹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녹아들듯 흡수되더니 내 생명력을 다시 보(補)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내 몸은 회복되는 것 같더니 원상태로 되돌아 왔다.

하지만 팔문을 개방했다는 건 '그릇이 깨졌다'와 같은 것.

이것은 그저 달기의 아홉 꼬리 중 하나의 강대한 술력(術力)으로 임시변통을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이 꼬리의 힘이 머지않아 떨어지면 그대로 사망할 것이다. 나는 달기가 나를 완전히 회생시킬수도 있는데도 일부러 시한부 인생으로 만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 그야 뭐 듣고싶은 것만 듣고 나서 죽이면 될 테니 말이지...'

나는 심호흡을 하고는 달기에게 말했다.

"말하기 전에 약속해 줘. 더 이상 여기서 생명체나 인간을 죽이거나 잡아먹지 않겠다고."

달기는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 웃기는군... 감히 나와 거래를 하겠다고? 인간 따위가?]

뭔가 반응이 이상하다.

나는 몰아붙이기 식으로 교섭을 하려던 중 달기의 힘이 급격히 살의로 물드는 것을 느꼈다. 크게 달기의 기분이 상한 모양이었다.

슈웅

달기가 갑자기 자신의 꼬리의 힘을 도로 내게서 빼내버리며 말했다.

[ 그냥 죽어라. 네놈이 죽고 나서 알아내면 그만이다.]

"......!!"

죽은 자에게서 정보를 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여동빈이 진 시점에서 이미 선택지가 사라져 있었다. 무슨 수를 썼어도 죽는 건 어쩔 수 없으리라. 나는 여기까지 몰리자 되려 마음이 편해졌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생명력이 꺼지기 일보직전이었다.

나는 희미하게 고개를 꺼뜨리며 중얼거렸다.

"망량... 미호... 진소청... 미안..."

내가 먼저 죽을 줄 알았다면, 미리 해 두는 건데.

그 방법을 썼다면 어쩌면 오늘같은 불상사를 면했을 텐데.

후회를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여유가 날 때'라고 억지로 자기위안을 거듭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미래의 일은 한치앞도 예측할 수 없다는 걸 잊어버린 댓가를 치르는 듯 했다.

투욱

손목이 떨어지고, 잠시 후 나는 완전히 생명을 잃었다.

그것이 내 14번째 죽음인 줄 알았다.

[ 이제야 죽었나? 그럼 내 차례다. ]

콰과과광

무덤덤한 목소리와 함께, 내 몸이 일으켜세워지며 달기의 정면에 주먹을 후릴 때까지는.

[ 크아아악!!]

달기의 비명소리!

거대한 폭음과 함께 여동빈이 전력을 다했어도 어쩌지 못했던 달기의 거대한 몸뚱이가 뒤로 훨훨 날아가더니 어딘가의 야산에 처박혔다. 동시에 주변에 펼쳐져 있던 안개의 결계가 뒤흔들리면서 시야가 더욱 밝아진다.

꾸드득

주먹을 쥔 손에서 소리가 흘러 나온다.

권태로워하는 내 얼굴이 피웅덩이에 비쳤다.

'나'는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며 말했다.

"죽인다!"

휘리리릭

달기의 몸이 재차 거대한 산악처럼 일어섰다. 그리고 아홉 개의 꼬리가 동시에 인간의 무공으로는 어쩌지도 못할 정도의 빠르기로 날아들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달기의 저 공격을 무탈하게 막아내거나 피해내지는 못했다. 하물며 독을 품고 공격하는데야 내 일신의 무공으로는 꼬챙이가 되어야 정상인 것이다.

콰악!

[ 아니?!]

달기가 경악성을 냈다.

그 한 순간, 내 몸이 움직이더니 아홉개의 꼬리를 동시에 잡아버린 것이다. '나'는 시뻘건 안광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흉성(凶性)이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성좌(星座)의 힘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죽어라!"

쿠구구구구

달기의 산악처럼 거대한 몸이 들어올려 진다. 실제로도 산과 같은 무게라면,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수백 장에 가까운 그 몸뚱이는 일개 인간의 손에 의해 들어올려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산을 뽑는 것과 같았다(力拔山).

그리고 달기를 들어올린 '나'는 그대로 달기의 몸뚱이 전체를 옆에 있던 야산에 휘둘러서 패대기쳤다.

꽈아앙!!!

[ 크아아아아악!!]

달기가 비명을 질렀다. 지형이 달기의 충돌에 의해 뒤바뀌어 버렸다. 산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고 그 자리에 길이 하나 생겨버린 것이다. 먼지구름, 아니 폭풍(爆風)이 천하에 유장하게 흐르며 세계의 변동을 고했다.

그 변화 속에서 '나'는 목을 뚜둑거리더니 흉흉한 안광을 흘렸다. 세상이고 나발이고 눈에 보이는 건 모조리 죽여버리겠다는 천살성(天殺星)의 기운이었다.

"... 죽어라!!"

'나'의 몸이 전방으로 쇄도했다.

그것은 팔문을 모조리 개방했을 때보다 도리어 더욱 빠른 속도였다. 별의 힘, 천지간의 힘이 모조리 안에 끌어모이면서 인간의 기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방대한 권능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실로 파괴만을 위해 만들어진 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 이것은 -

실로 세상을 뒤덮는 힘이다(氣蓋世)!

달기가 비명을 질렀다.

[ 이런... 이런 말도 안되는! 네가 어떻게!!]

'나'의 전신이 달기의 몸뚱이에 몸통박치기를 해서 분쇄해 버리기 직전.

그 때 달기가 처절한 단말마를 외쳤다.

[ 항우(項羽)!!!]

그리고 세상이 새까맣게 변했다.

정확하게는 서초패왕 항우의 일격이 달기에게 적중한 순간 산맥의 일단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중력에 역행하며 바위들이 천상으로 치솟으며 만들어진 그림자가 음파를 가렸고, 마치 거대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파괴력이 세상을 쪼갰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

동서고금(東西古今)에 이 말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드디어 자신의 축복을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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