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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84화 (18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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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지금 당장은 움직이지 않기로 했다.

' 망량의 죽음이 병이나 과로때문이 아니라면 외부상황에 의한 것이겠지.'

그렇다면 뭔가 변화가 일어난 다음에 움직여도 좋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우선 벽력삼존이 합류한 뇌신류에서 최선을 다해서 생활하기로 했다.

뇌신류는 정천맹에게서 무림공적으로 지정받은 게 풀리게 되자 거칠게 없어졌고, 주변문파와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우선 관중의 육대가(六大家)와 다시 친교를 맺었고, 동시에 인근의 부호들에게서 자금을 모았다. 정확히는 부호들의 필요에 따라 몇 번 움직여주기로 약조하는 댓가로 앞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금력을 마련한 것이다.

관중에서의 입지를 만전으로 만든 이광이었지만 뇌신류에 다시 제자를 모집하지는 않았다. 더러 과거의 청룡무관 제자들이 재입관하기를 원했으나, 이광은 그들 전부를 거부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소수정예인 편이 나을뿐만 아니라 제자들 중에 타 문파의 간자(姦者)가 있을 가능성을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나는 벽력삼존 중 적월과 녹월에게 정식으로 내 소개를 다시 하게 되었다. 전후사정을 듣고 난 적월이 감탄하듯 말했다.

"네가 무당파 장삼봉의 비학(秘學)을 갖고 있다? 그럼 보여줘 봐라."

"알겠습니다."

뇌신류의 제자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나는 무당파에서 했었던 것처럼 장삼봉의 깨달음을 시연했다. 그 모든 것을 본 적월과 녹월은 경악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녹월이 격동을 금치 못하고 손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

"굉장하군. 과연 장삼봉이다."

"절세신공(絶世神功)이구나."

적월이 중얼거리다가 이광에게 말했다.

"네가 강해진 이유는 이 신공절학을 접목시켰기 때문이구나."

"부정하지 않겠소."

"저 괴물같은 애송이도 그럴테고..."

적월은 껄끄러운 눈으로 진소청을 쳐다보았다. 다들 티를 안 내고 있지만, 현재 뇌신류의 최강자는 단연 진소청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적월이나 녹월이 진소청을 대하는 태도는 불가해한 괴물(怪物)을 보는 눈빛이었다.

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흠! 하지만 우리 뇌신류의 무공도 그에 못지 않다."

"누가 뭐랬소?"

"내 생각에는 저 놈도 최종오의 연구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구나."

적월과 녹월이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하자 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나도 그럴 생각이었소."

그리고 나는 이광, 진소청, 적월, 녹월과 함께 모여서 뇌신류의 최종오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연구라고는 해도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깨달음을 풀어서 토론하는 형식이었고 실질적인 무예의 형(形)을 몸으로 연습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적월이 말했다.

"너희는 뇌신권에서 파생된 뇌운강권과 뇌운유권밖에 모르고 있는 듯 하군. 뇌신권의 상위절기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

이광이 대답했다.

"아쉽게도 모르오. 뇌신류의 권술(拳術)에 달통한 자는 드물었으니."

"크응... 종사의 후계자였던 너마저 그럴진대 다른 놈은 오죽하겠느냐. 하아..."

적월은 진심으로 답답한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뇌신권 상위절기인 뇌령인(雷靈印)과 구유강기(九幽?氣)의 요결을 전하겠다."

"고맙소."

옆에 있던 녹월이 말했다.

"이광! 너는 혹여 자전귀도(磁電鬼刀)와 명왕수(冥王手)를 알고 있는가?"

"모르오. 그건 뇌신류에서도 당신들 귀혼일파(鬼魂一派)의 독문무공이었잖소. 내 사부도 몰랐던 무공이오."

"그렇다. 하지만 이 또한 뇌신류의 무공임은 틀림없다. 나도 자전귀도와 명왕수를 너희에게 전해 주겠다."

순식간에 전대 뇌신류 고수들이 보유하고 있던 4개의 절학이 해금(解禁)된 상황이었다. 아무리 뇌신류 최종오의를 얻으려 한다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최대의 비밀일텐데 이리도 거침없이 내놓을 줄이야! 내가 놀라서 바라보자 이광이 천천히 말했다.

"호법들도 아시다시피 그 모든게 광세절학이지만 이걸 모두 섞는다고 해서 최종오의가 모습을 드러내리라는 법은 없소."

"그게 문제지.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뭘 알고 있다는 말이오?"

"네가 최종오의의 완성된 형(形)에 대해서 종사에게서 뭔가 전해들었다는걸..."

적월과 녹월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이광을 쳐다보았지만 이광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넘겨짚기도 수준급이군. 의미도 없이 떠보지 말고 시간을 아낍시다."

"흐음."

수련은 우선 적월과 녹월이 하루에 세 시진동안 우리에게 뇌령인, 구유강기, 자전귀도, 명왕수의 주된 구결을 가르치며 무공을 지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광 또한 그들에게 지금까지 무당파 절학을 접목시키며 만들어낸 깨달음을 공유했다. 남는 시간에는 서로가 무공에 대해서 느꼈던 점을 토론하며 장단점을 짚어내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또 한번 이런 모임에 끼이게 되자 큰 부담감이 느껴졌다. 아니, 저번보다 더했다. 그때는 그저 느낀 점을 이야기할 뿐이었다면 이번에는 뇌신류의 초고수들과 심오한 토론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 위가 녹을 거 같군...'

다행히도 이광이 나를 배려해줬는지 나는 그저 계속해서 무당파의 무공을 연마하면서 그들에게 전수하는 것으로 족했다. 토론에 굳이 끼지 않고 듣기만 해도 되었다.

그렇게 약 반 년이 지났다. 무공의 공유는 꽤 진척이 되어있었고 이제 토론보다는 각자가 깨달은 것을 연습하고 체계화시키는 과정이 된 듯 했다. 물론 가장 큰 성취를 얻은 것은 진소청으로 보였고 실제로도 진소청이 주도적으로 토론을 이끌고가고 있었다. 그가 가장 앞서고 있기 때문이다.

적월과 녹월은 내게 청월을 한시바삐 찾으러 갈 것을 요구했지만 이광이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왜냐하면 부사산의 위험성을 내가 이광에게 미리 말해두었기 때문에, 충분한 무력이 없으면 청월을 탐색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망량에게서 큰 변화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난(亂)을 일으킬 거라고?"

"그렇소."

망량이 말하기를, 드디어 황연 대장군을 위시해서 결집한 세력들이 군(軍)을 일으켜서 현 황조에 난을 일으킬 거라는 말이었다. 나는 예상하긴 했지만 설마 진짜로 일어날거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질문했다.

"잠깐. 당신은 되도록 황제를 죽이면 안된다는 의견 아니었소? 어째서 갑자기..."

"내 천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오. 이대로라면 황제를 정점으로 한 세력이 한도끝도없이 강해질 뿐이오. 칠 수 있을 때 쳐야지."

망량은 이제 완전히 건강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얼마 안가서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듯 했다.

"지난번에 당신은 완전히 어림군을 격파했었소. 이번에도 이기겠군."

"하하, 뭐 그렇게 되면 좋을 거요. 다만..."

"다만?"

"황궁 근처에 심상치 않은 요기(妖氣)가 감돌고 있다는 보고를 들은 바가 있소. 예측불가한 변수가 존재할지도."

"놈들이 또 이계의 존재를 소환한 게 아니겠소?"

그러자 망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오. 마치 원래부터 존재하던 '무언가'가 일부러 모습을 드러낸 것 같다고 해야할까... 마기(魔氣)와는 다르오."

"흠."

"그렇다고 해서 난을 일으키지 않을수도 없는 노릇이지. 당신과 뇌신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때 말하겠소."

그리고 머지않아 석 달 후, 망량의 말대로 난이 일어났다.

황연 대장군의 반란!

명분이란 지난번과 같이 대뢰옥의 존재를 공표하고 동창 금의위의 전횡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었다. 또한 망량이 반천맹을 통해서 많은 준비를 했는지, 지난번과 달리 도리어 어림군보다 더 많은 병력이 모아진 것이다. 숫자가 적어도 망량의 지휘력으로 승리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의 승패는 불을 보듯 뻔했다.

이광은 그 소식을 전해듣고 뇌신류 전원을 집결시켰다. 그리고 말했다.

"나는 우국지사 황연 대장군과 망량을 도울 생각이다."

망량과 그 어느때보다 오랫동안 의견을 조율한 탓인지, 이광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반천맹과 운명공동체가 되었다는 사실에 합의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물론 이광의 말에 딱히 반박하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사공린이 조용히 손을 들며 말했다.

"동창이나 금의위의 암습을 막는 것입니까?"

"그렇다. 그리고 나와 진소청은 장군의 직위를 지니고 일군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말한 이광이 쓱하고 적월과 녹월을 바라보았다.

"두 분은 아군 수장의 호위를 맡아 주시오."

"너무 우리를 얕보는 거 아닌가? 동창이나 금의위 따위랑 투닥거리라니."

"정말로 중요한 임무이기에 부탁드리는 거요."

"흥. 알았다."

뇌신류 고수들은 바로 다음 날 망량의 진영에 합류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황연 대장군의 군세는 어림군과 부딪혔고 대전(大戰)이 벌어졌다. 나는 망량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고 그의 곁에 섰다. 이번에도 망량은 신들린 듯한 지휘를 선보였고, 지난번보다 더 압도적으로 추풍낙엽처럼 황군이 쓰러져 갔다.

뇌신류의 제자들 중에서 전장에서 죽을 정도로 어수룩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녹림왕 구철은 원래부터 풍신류의 절정고수였고, 재후나 사공린도 근 반 년동안 무위가 엄청나게 올라서 절정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뿐만아니라 새로 입문한 서문혜도 뇌신류의 무공을 접목시켜서 자신의 무위를 올린 것이다.

쿠콰콰쾅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전쟁의 함성과 파괴음이 울리는 가운데, 나는 적월과 녹월 두 뇌신류 호법이 미친듯이 날뛰는 걸 볼 수 있었다. 적월의 장기는 권(拳)이었고 녹월의 장기는 도(刀)였는데, 그들은 한번 손을 쓸 때마다 지휘관을 암살하러 온 금의위 고수들을 쳐죽이고 있었다.

"크하하하하!!"

호쾌하게 시체를 양산하고 있는 두 사람의 실력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강했다. 적이 아닌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나는 전장이 거의 압승으로 정리되는 분위기가 되자, 망량에게 말했다.

"이 전쟁은 이겼구려. 당신이 죽을 명운같은건 안 보이는군."

"글쎄... 지난번에는 회전에서 이긴 다음에 연금술사가 한 수를 썼지."

중얼거리던 망량이 말했다.

"백웅. 부탁 하나 하겠소. 지금 즉시 낙양으로 가서 한백령을 만나시오. 그리고 화신류의 주력고수들을 이쪽으로 인솔해 주시오."

"알았소."

나는 망량의 명이 내려지자마자 비등으로 낙양 한씨세가로 향했다. 한백령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반군(反軍)의 전령으로써 온 것이냐 뇌신류의 일로 온 것이냐?"

"전자입니다."

"말해 보아라."

"이제 곧 황궁측의 주술사... 저희는 '연금술사'라고 불리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이계의 술법을 황도 낙양에 시전하려 들 것입니다. 그 피해를 입기 전에 서둘러 한씨세가의 고수들을 대피시켜 주십시오."

"이계의 술법?"

나는 연금술사가 쓰게 될 저주의 술법과 앞으로 변화할 양상을 한백령에게 말했다. 한백령은 그 말을 듣고는 반문했다.

"대피라. 그건 너희측에 투항하라는 소리겠지?"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잠시 생각하던 한백령이 말했다.

"알았다. 여기서 한 식경만 기다려라."

한백령은 한 식경만에 한씨세가의 가솔들과 고수들을 모은 듯 했다. 그들 중에는 한씨세가의 식객도 있었지만 정체불명의 고수들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아마 비밀리에 파견된 화신류의 달인급 고수들이리라. 나는 그들 모두를 목갑에 집어넣은 후 한백령에게 물었다.

"가주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쌍문사가의 문주들을 모아서 말을 해 둘 생각이다."

"의미없는 일 같습니다만..."

"몰랐으면 모르되 짐작하고 있다면 방법이 있지."

한백령은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비등을 타고 다시 망량에게로 왔는데, 이제 완전히 전장이 승리로 끝나고 정리를 하는 단계였다. 막사에 있던 망량에게 임무를 수행했음을 알리자, 망량이 씁쓸하게 웃었다.

"정말이지 화신류 호법사자다운 발상이군. 막무가내야."

"무슨 뜻이오?"

"내버려 두시오. 아마 좋은 소식이 있을지도 모르니."

망량의 말은 사실이었다.

황연 대장군의 군세가 황도 낙양 앞까지 진군해서 대기했지만 예전처럼 심상치 않은 안개와 암운이 낙양에 끼지 않았다. 그것은 연금술사가 술법을 전개하지 않았다는 소리였기에 나는 의아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 두 시진이 지났을까? 성문 밖으로 대여섯 명의 신형이 경공으로 튀어나왔다.

"투항하러 왔소."

그 신형의 주인공들은 바로 쌍문사가의 가주들이었다. 그들은 망량의 막사에 찾아와서는 한 개의 상자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망량 대신에 옆에 있던 군관이 상자를 개봉하자, 역한 피냄새와 악취가 막사에 끓어올랐다. 망량은 코를 막고 악취를 참다가 내용물을 확인하고는 쌍문사가의 가주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건 연금술사의 목이오?"

"그렇소."

태검문주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놈이 겁도 없이 우리를 협박하러 온다기에 미리 대비하고 있다가 합공해서 쳐 죽였소."

"잘 하셨소. 아주 큰 일을 해내셨구려."

그랬다.

한백령은 연금술사의 앞으로 행보를 미리 들은 후 아마 쌍문사가의 문주들에게 자신의 무력과 정체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리고 연금술사가 저주술법을 펼치고 나서 쌍문사가의 문주들에게 황연 암살을 의뢰하러 찾아오자 대뜸 합공해서 쳐죽인 것이다.

무인이란 대비를 하고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전투력이 천지차이였기에, 연금술사는 아마 변변히 반항도 못 하고 초절정고수들의 합공에 사망했으리라.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술법의 주재자가 사망했으니 술법과 저주도 풀린 것이다.

망량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의 다 됐군. 이제 한 수만 남았소."

한 수.

그 한 수를 두는 순간, 대명제국의 황조가 뒤바뀌게 된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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