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82화 (182/1,615)

0182 ----------------------------------------------

삼황오제(三皇五帝)

명룡자와 신승을 눈앞에 둔 진소청은 별다른 동요가 없었다. 그것은 그가 적의 강함에 일희일비할 경지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사실을 눈 앞의 절세고수들도 알아차렸는지 흥미로워했다.

"굉장한 놈이군. 뇌신류는 전부 이런 괴물딱지들인가?"

명룡자가 중얼거리자 진소청이 피식 웃었다.

"그렇진 않소. 공연히 서로를 경계하지 맙시다."

옆에 서 있던 소림신승이 말했다.

"무당파와 뇌신류의 일인 듯 하니 빈승은 잠시 물러서 있겠네."

스윽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표표히 입구쪽으로 향했다. 언뜻 끼어들지 않겠다는 걸로 보였으나, 실상은 유사시에 퇴로를 막고 합공할만한 위치를 선점한 것이었다. 소림신승이라 해도 강호인은 강호인인 것이다.

명룡자가 날 쳐다보더니 말했다.

"정말로 네가 굴공검과 천축검을 사용할 수 있단 말이냐?"

아무래도 아까 청풍자를 비롯해 세 사람이 단순히 의논을 하는게 아니라 멀리서 오고 있는 명룡자에게 천리전성술(千里傳聲術)을 시도한 듯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뜸 이런 걸 질문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했소."

명룡자가 뒤를 돌아보자 무당파 장문인 청풍자가 포권하며 말했다.

"맞습니다 사숙. 저 백웅이란 자는 무당파의 비전절기를 터득했습니다."

"으음..."

명룡자가 침음성을 흘리다가 말했다.

"그럼 조건을 받아들여라! 뭘 고민하고 있느냐?"

그러자 청풍자가 난색을 표했다.

"사숙. 뇌신류는 현재 강호공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얼마 전 황산파를 멸문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백련교의 간세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런 마도(魔道)들과 교섭하는 것 자체가 본파의 명예를 떨어뜨립니다."

명룡자는 청풍자의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었다.

"흥... 좋아. 그럼 꼬맹아."

"날 말하는 거요?"

"그래."

나는 내심 황당했다. 명룡자의 외양은 겨우 10대 초반의 어린아이로써, 제법 성년에 가까워진 나보다 훨씬 작았는데 꼬맹이라니! 그러나 반로환동앞에서 그런 얘기를 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청풍자의 말에 뭔가 반박할 게 있느냐?"

"그야 물론이오."

나는 침착하게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꺼냈다.

"먼저 강호공적이라 함은 우리가 행했다고 하는 몇몇 문파의 멸문때문일 것이오. 그러나 그 혈사(血事)는 결코 우리가 한 게 아니며, 했다고 해도 개파대전을 일으키기 전에 공연히 의심을 살 짓을 할 필요가 없소."

청풍자가 버럭 외쳤다.

"그건 정황일 뿐이지. 실제로 너희가 익힌 뇌신류의 무공이 희생자들에게 뿌려졌다."

"당신들은 우리를 백련교의 일파라고 하면서 백련교의 무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나 보군."

"뭐라고?"

"백련교에는 사대무류가 있으니 뇌신류, 수신류, 화신류, 풍신류를 말함이오. 뇌신류는 반세기 이전에 백련교에서 추방당하여 흩어졌지만 그 이전에 천여 년이나 함께 있었소. 그런 까닭에 사대무류는 서로간에 기초무공이 비슷하며, 기본적인 자연지기의 시전은 따라할 수 있는 것이오."

후우웅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손에서 바람을 일으켰다. 비록 살상력을 줄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분명한 풍령지기(風靈之氣)의 시전이었다. 이광에게서 설명을 듣고난 후 시간을 쪼개서 연습하자 짧은 시간에 습득한 기술이었다. 풍령지기를 보고 무당파 문인들이 침음성을 흘리자 나는 말을 이었다.

"이것이 풍령지기요. 뇌신류의 고수는 기본적인 풍령지기를 구사할 수 있고, 풍신류 또한 면허개전을 얻은 달인급 고수가 뇌령지기를 쓸 수 있소."

"으음."

"당신들은 누구의 말을 듣고 우리를 흉수로 단정지은 것이오? 혈사가 벌어지기 전에 뇌신류는 변변히 강호에 알려져있지도 않았을 텐데, 누가 그리도 정확하게 뇌신류의 무공이라고 딱 잘라서 물고 늘어진 것이오?"

"......"

그 말을 듣자 청풍자는 생각나는 게 있는지 딱딱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계속 말했다.

"우리가 무림공적으로 지정받은 것은 바로 그 풍신류의 짓이오. 우리는 풍신류의 선제공격에 대해서 최대한 정당방위를 실천한 것에 지나지 않소. 황산파를 멸문시킨 것은 풍신류의 중원거점이었기 때문이오."

"그런 소설같은 이야기를 지어내면 바로 믿을 줄 알았나?"

"왜 믿지 못하는 거요?"

"황산파가 구파일방에 편입된지 십여 년이 넘었고, 도룡신검 용중일도 뛰어난 정파의 명숙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익힌 무공이 황산파 도인들의 맥(脈)을 잇는다는 것도 이미 문파장로들이 검증을 끝냈다. 그 모든 걸 네놈들의 세치혀만 듣고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자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들은 아마 황산파의 기묘할 정도로 강력한 무공에 의구심 또한 지니고 있겠지. 황산도인들의 도가무공만으로는 불가능한 신위를 여러번 목격했을 테고. 또한 정체불명의 무공도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이건 망량이 내게 짚어준 부분이었다.

"......"

망량의 예상대로 청풍자는 다시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찝찝함을 그대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잘 들으시오. 백련교 사대무류인 풍신류의 역사 또한 천 년이오. 그들의 무공은 황산파 본연의 도가무공보다 몇 수는 위에 있으니, 적당히 풍신류의 깨달음을 섞어서 종속시키는 건 일도 아니오. 당신 또한 무학의 종사라면 내 말이 가능한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오.

또한 우리는 백련교주를 통해서 이 사실을 공증할 수도 있소. 실제로 황산파가 풍신류 소속인지 아닌지를."

"저, 정말인가...?"

"그렇소."

이건 약간의 허세가 섞인 말이었다. 실제로 백련교주가 공증을 해줄지 어떨지는 모른다. 그러나 백련교주의 입장에서 반천맹은 아들의 괴질을 낫게해줄 단서를 찾아다니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으므로, 풍신류와 저울질해보면 이쪽이 중요할 것이다. 허세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거짓말도 아닌 셈이다.

거기까지 옆에서 차분히 듣고 있던 명룡자가 끼어들었다.

"즉 너희는 선제공격을 당했을 뿐이고,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어야 할 것은 사실 황산파이자 풍신류이며, 황산파의 멸문도 정당방위라고 하는 것이렷다?"

"노도(老道)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저희는 정천맹의 포위를 돌파하면서도 대량학살을 피했고 최대한 자기방어에 집중했습니다. 정말로 우리가 무림공적이자 흉수라면 그렇게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흐응... 강호에는 귀계가 많으니 네 말도 쉽사리 믿을만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나도 한 가지 묻고 싶구나."

명룡자가 느긋하게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너희 뇌신류가 원래 백련교 소속이란 것도 사실이겠지. 즉 중원무림의 잠재적인 적이다. 그 사실은 어찌 대답하려 하느냐?"

나는 그 말에 거침없이 대답했다.

"적이라고요? 자기자신을 과대평가하시는군."

"뭐라고...?"

"당신들 정천맹은 백련교의 적이 아니오. 적이라 함은 생사를 걸고 서로가 멸(滅)할 때까지 싸워야하는 존재 아니오?"

나는 장내의 무당파 고수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지만 백련교주가 그럴 마음만 있었다면, 반 년도 되지 않아 정천맹은 모두 멸망하고 팔황구주(八荒九州)가 그들의 발 아래에 들어갔을 것이오. 지금껏 정천맹이 강호의 태두로 지내고 있는 건 그저 백련교주가 중원을 침공할 마음이 없기 때문이란 말이오!"

"......!!"

그 말에 옆에 있던 청일자와 청균자가 발끈하는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놈! 어디서 감히 무당을 모욕하느냐!"

파아앗

청일자의 강대한 장력(掌力)이 청균자의 쌍장에서 뻗어나온 오색기운과 합쳐져서 날아왔다. 그것은 협격술의 하나로써, 아마도 무당면장(武當綿掌)일 듯 했다. 절정무공인 무당면장이 초절정고수의 손에서 펼쳐지자 그 자체로 가공할 위력의 절기가 되어서 내 몸을 찢어버릴 듯 했다.

' 으윽...!!'

나는 그 순간 피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했으나, 이윽고 움직임을 멈췄다. 왜냐하면 직전에 명룡자의 신형이 움직이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파앙!

명룡자가 일 장을 움직이며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청일자와 청균자의 면장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명룡자는 둘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멍청한 놈들! 어찌 감히 사자(使者)에게 손을 쓴다는 말이냐?"

"사... 사숙."

"너희가 하는 짓이 진정으로 무당의 명예를 모독하는 것이다. 꿇어앉아라."

"네."

명룡자가 명령하자 청일자와 청균자는 대 옆에 꿇어앉게 되었다. 백발이 성성한 무당파의 초절정고수가 저런 꼴을 한다는 게 우스웠지만 명룡자의 배분과 무공이 그만큼 대단함을 뜻했다. 명룡자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청풍아. 너와 나는 저 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 않으냐?"

명룡자의 물음에 무당파 장문인 청풍자가 침울한 인상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숙. 백련교의 힘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음은 사실이지요."

명룡자가 나를 돌아보더니 말했다.

"헌데 그렇다면, 뇌신류는 백련교에 맞서싸울 적(敵)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냐?"

"물론이오."

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얼마 전 개파대전을 치르기 전에 백련교주와 교섭했소. 그리고 십 년 이내에 하나의 조건을 달성한다는 전제하에, 중원 뇌신류의 독립을 보장받았소. 이 정도면 우리가 뇌신류로써 백련교와 맞설만한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오."

"그 조건이 뭐지?"

"미안하지만 우리가 말했던 조건을 승낙할 때까지는 말씀드릴 수가 없소."

한참을 생각하던 명룡자가 말했다.

"조건을 받아들이자."

"사숙."

"어차피 무림공적이 현재는 유명무실한 것이라는 사실은 너도 알고있을 것이다. 그리고 백련교가 얽혀있다면 허명(虛名)에 붙들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는 강하지 않으면 생존조차 불가능한 시대가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명룡자의 몸은 어린아이였으나 그의 말에서는 현기가 흘러나왔다. 청풍자도 그 사실을 느꼈는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고 포권하며 말했다.

"사숙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명룡자가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너희도 우리 조건 하나를 들어줘야겠다."

"무엇이오?"

"네가 지금 당장부터 우리 무당파에 남아서 절기를 모두 전해줘야겠다. 그래야 형평성이 맞지 않겠느냐?"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할 뻔 했지만, 문득 망량이 떠올랐다. 망량의 천명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지금부터라도 내 의술으로 그를 돌보면서 명을 늘려줘야 했다. 무당파에서 시간을 낭비할수록 곤란할 것이다.

"지금 당장은 곤란하오. 나중이라도 꼭 전해드리겠소."

"그럴 수는 없지."

명룡자는 이쪽을 싸늘하게 쳐다보았다.

"네 문파일이 얼마나 급한지는 몰라도 언제 이쪽에 올지는 기약이 없다. 당장 네가 남아서 우리에게 비기를 넘기는게 우선이 되어야 하는게 아니냐?"

"무당파가 이리도 사람을 믿지 못하다니."

"허튼소리 하지 마라. 원래 교섭할수도 없는 영역이지만 많은 양보를 해주었지 않느냐? 너희야말로 사람을 등쳐먹으려고 드는구나."

명룡자의 말도 틀린 건 없었다. 내가 고민하자 진소청이 옆에서 한걸음 걸어나오며 나섰다.

"무인의 명예를 걸고 말할 수 있소. 내 사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킬 것이오."

"그래. 언제든 지키려 하겠지. 하지만 그게 언제냐는 말이다."

"내 사제는 늦어도 3년 이내에 무당파에 무공을 전하러 와줄 것이오."

"참 편리하게도 말하는군. 그래도 3년이 넘으면? 그때는 어떻게 할 텐가?"

그러자 진소청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때는 이 진모가 무당파에 와서 목숨을 내놓겠소."

"......!!"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깜짝 놀라서 진소청에게 전음을 보냈다.

[ 사형 무슨 소립니까!]

[ 망량의 천명이 2년 남짓 남았다고 들었네. 망량의 명을 늘인다해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 그게 아니라 왜 사형이 목숨을 거냐는 겁니다.]

[ 자네가 목숨을 걸어봐야 저들이 믿지 않을걸세. 이 쪽이 낫지.]

[ 하지만...]

[ 걱정 말게. 이게 최선이니까.]

우리가 전음으로 대화하는 동안에 명룡자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는 이내 의자에 턱을 괴며 말했다.

"진소청이라 했지. 자네는 틀림없이 이백 년에 한 명 나올까말까하는 엄청난 천재일세. 자네같은 천재는 여태 살면서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어."

"과찬이오."

"헌데 자네의 목숨을 내놓겠다고? 그게 진심인가?"

"사내는 두 말을 하지 않는 법이오."

"... 좋아, 믿어주지."

그렇게 우리는 무당파와의 교섭을 했다. 우리측 조건은 무당파가 사건의 진상을 정천맹에 알림과 동시에 공존을 위해 노력해주는 것이었으며, 무당파의 조건은 내가 3년 내에 찾아와서 무당파 절기를 반환하는 것이었다. 명룡자는 지금 당장 내가 남아있길 원했지만 뇌신류가 바쁘다는 걸 감안해준 듯 했다.

교섭이 끝나고 우리가 돌아갈 준비를 하자 소림신승이 진소청에게 말을 걸었다.

"혹여 그대는 진천휘 장군의 아들이 아닌가?"

멈칫

진소청은 그 말을 듣자 멈춰섰다. 그리고는 나직이 대답했다.

"왜 그런 질문을 하시오?"

"빈승은 진천휘 장군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네. 하늘에 닿아있던 그의 지략 덕분에 목숨을 건진 일도 있었지. 그리고 자네의 모습은, 젊었을 적의 그를 많이 닮아있군..."

"......"

소림신승은 거의 확신하고 질문한 듯 했다. 진소청은 묵묵히 서 있다가 대꾸했다.

"그대들이 우리 뇌신류의 동지가 아닌 이상 언급할 수 있는 일이 아니오."

"그렇겠지..."

소림신승이 빙긋 웃으며 합장했다.

"나무아미타불."

우리는 무당파에서 나와서 비등을 이용해 뇌신류로 되돌아왔다. 뇌신류가 기거하는 사원에 도착했을 때 재후가 반갑게 맞이해 줬다.

"오셨군요 사형들!"

"다른 사람들은?"

"개인수련 중입니다."

잠시 후 우리는 이광과 망량이 있는 회의자리에 참석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말했다. 끝까지 다 들은 이광이 만족스럽게 웃으며 나를 칭찬했다.

"잘했다 백웅. 이로써 한숨 돌렸구나."

"감사합니다."

이광이 웃는다는 건 그만큼 이번 교섭이 중요했다는 뜻이다. 하긴 무당파의 중재가 없다면 앞으로도 정천맹과 얼마나 피튀기게 싸워야할지 짐작도 가지 않기 때문이다. 망량은 그동안 정양한 모양인지 다소 혈색이 되돌아와 있었고, 그가 따끈한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말했다.

"적당히 때를 봐서 청룡무관으로 돌아가시지요. 때가 되면 정천맹에서 사람을 보내올 것입니다."

"그리 할 생각일세."

이광이 망량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말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겠군. 정천맹과 정전협상을 하고 난 다음부터 어떻게 움직일 생각인가?"

"제 생각이지만, 아마 벽력삼존(霹靂三尊)이란 분들은 이미 청룡무관 근처를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근거인가?"

"그 분들도 우리 생각과 다르지 않을테니까요. 이미 뇌신류의 힘은 확인했으니 적당히 합류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펄럭거리며 말했다.

"문제는 그분들이 합류한 후에도 뇌신류 최종오의를 얻지 못했을 상황입니다..."

"그 때는 어쩔 수 없지. 최대한 10년간 다른 뇌신류 고수를 기다리며 버티는 수밖에."

"......"

망량은 이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혹여나 하여 여쭙겠습니다만, 만일에 백련교주가 풍신류에 대한 복수를 허용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 뇌신류가 들어오라고 제안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망량의 말은 있을 법한 일이라서, 옆에서 듣고 있던 진소청과 극호가 움찔했다. 그들 또한 그런 상황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 듯 했다. 그러자 이광은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불가(不可)!"

"역시 백련교주까지 치셔야 성이 풀리시겠습니까?"

"말을 이상하게 하는군. 애초에 풍신류만의 힘으로는 전성기의 뇌신류를 치는 게 불가능했네. 내 사부의 실력은 용비천보다 두 배는 강했어. 백련교주가 뇌신류를 숙청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뇌신류가 축출된 것일세."

이광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만악의 근원은 백련교주! 그 자를 없애지 않는 한 뇌신류에 미래는 없네."

"그렇다면 뇌신류가 축출된 이유가 뭐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망량이 너무 직설적으로 파고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이광은 한번 망량을 죽일뻔한 적이 있었는데 이렇게 대담하게 나서다니! 나는 이광이 다시 살기를 내뿜을까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지만, 의외로 이광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건 나로서도 알 수가 없네."

"알 수 없다고요?"

"그래. 사실 내 사부인 뇌신류 호법사자와 교주는 평소부터 매우 절친한 관계였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부가 교주에게 당해서 중상을 입은 채 쫓겨왔고, 바로 그 날이 뇌신류가 뿔뿔이 흩어진 날이 되었지."

"으음..."

"이제 와서 교주가 어째서 뇌신류를 쫓아냈는지는 알 바가 아닐세. 그 때문에 수많은 뇌신류의 고수들이 희생되었고, 자신들의 인생을 손해봤지. 교주는 반드시 그 일의 죄과를 치뤄야만 하네."

"알았습니다. 백련교를 칠 수밖에 없겠군요."

망량은 시원스럽게 대답한 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제 제 부탁도 들어주셔야겠습니다. 뇌신류의 일이 정리되었으니 반천맹의 일도 도와주어야 형평성에 맞을테니까요."

"무슨 일을 도와달란 거지?"

"암살(暗殺)!"

이광은 침묵했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동의한듯 되물었다.

"누구를 암살하면 되는가."

망량이 예리하게 눈을 번득였다. 그 눈은 약간 퀭하게 들어가 있었다.

"금의위 총령, 내황각주 제갈부, 연금술사!"

"......!!"

"이 세 명을 죽여주셔야겠습니다."

망량의 말에 이광은 침음성을 흘리고는 약간 생각을 거듭하는 듯 했다. 다만 그 고민은 가능불가능을 따지는 게 아니라,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광의 대답은 상당히 정확하게 나왔다.

"적어도 1년은 필요하겠군. 2년을 준다면 8할 확률로 성공할 것일세."

"1년 내에 해야 합니다."

"그렇게 서둘러야 하는가?"

"네. 우리가 강해지는 만큼 저쪽도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이미 손쓰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음... 고려하겠네."

이광과 망량이 모인 대담이 끝난 후, 나는 망량에게 따지듯이 말했다.

"망량 무슨 생각이오?! 제갈부는 당신의 형 아니오?"

그렇다.

중원지보라고도 불리며 내황각주이며 대결계사이자 초절정고수에 술법사인 제갈부. 그는 제갈일족의 일원이며 망량 제갈현의 친형인 것이다. 지금 망량은 자신의 형을 암살하는데 조력해 달라고 했으니 놀랄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망량이 침중하게 말했다.

"... 어쩔 수가 없소. 나도 제갈부를 죽이고싶은 건 아니지만, 불가피한 일이 되어버렸소."

"무슨 뜻이오?"

"내 숙부인 제갈사가 살아있었다면 내가 죽더라도 당신을 도와서 지략을 짜내서 그와 맞설 수 있었을 거요. 그러나 뇌신류의 무력만으로는 제갈부가 참여한 황궁진영을 감당하기에 역부족이오. 차라리 황궁의 힘이 아직 덜 자랐을 때 무리해서라도 그를 제거해야만 승산이 있을 거요."

망량이 기침을 토하더니 말했다.

"또 한 가지... 그들은 이미 새로운 초상기인을 제작했을 거요. 같은 방법은 두 번 통하지 않소. 이번에는 견제가 아니라 확실히 죽여버려야만 후환이 없을 거요."

"너무 경계하는 거 아니오? 금의위 총령도 제갈부도 사실 무력만 치면 백련교의 호법사자보다 훨씬 약한데."

내가 볼 때 이번 생의 최대 장애물은 바로 백련교였다. 물론 백련교와 꼭 싸워야하는 건 아니지만, 백련교의 압도적인 힘은 황궁따위는 씹어삼킬 듯 했다. 그래서 당분간 황궁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망량은 황궁을 크게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망량이 자리에 앉아서 쉬면서 말을 이었다.

"... 당신도 풍신류가 황궁과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을 거요."

"그렇소. 풍신류가 황산에서 보여줬다는 그 용인(龍人)은 아마 연금술사의 작품일 테니."

"황궁이 두려운 점은 수장 개개인의 무력이 아니오. 그들은 이계의 사신(邪神)의 권능을 빌린 외법(外法)으로 얼마든지 전황을 뒤집을 수 있소. 그리고 제갈부가 황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 그걸 증명하오."

"무슨 말이오?"

"지난번 전생에서 내가 말했다고 하는데, 제갈부는 머리가 굉장히 좋은 사람이오. 그래서 질 편을 억지로 일으키기보다는 이길 편에만 붙소. 그게 무엇을 뜻한다고 생각하오?"

내 표정이 굳어졌다. 망량이 한숨을 쉬었다.

"제갈부는 나이가 어렸을 때부터 황궁에 백련교를 이길 비장의 한수가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말이오. 그게 바로 황궁을 어떻게든 빠르게 쓰러뜨려야 하는 이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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