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81화 (181/1,615)

0181 ----------------------------------------------

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진소청과 함께 비등으로 호북성 인근으로 이동했다. 내가 직접 무당파가 있는 본산에 가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도보로 가야만 했다. 진소청은 나를 따라오면서 말했다.

"사제의 얼굴에 전에 없이 초조함이 가득하군."

"......"

"무슨 일이 있나?"

나는 진소청의 질문에 망설이다가, 산봉우리의 정상에서 이십여 장을 단숨에 경공으로 날듯 뛰어오르며 답했다.

"사형. 나는 이번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루고 말겠소."

"중요한 일이긴 하지. 사제가 무당파의 인정을 받는다면 상황이 크게 나아질 거야."

진소청이 대꾸하고는 석연치 않은 듯 말을 이었다.

"허나 사제... 지금처럼 동요해 있으면 본 실력을 낼 수가 없네. 무공이란 심기체(心技體)가 조화를 이루어야 하니, 무당산에 도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추스리게."

"알았소."

나는 진소청 나름대로 내게 걱정해주는 게 고맙게 느껴졌다.

' 미안하오 사형.'

망량이 격무 때문에 과로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진소청을 믿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직 섣불리 판단내릴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내는 것 뿐이었다.

파바밧

오래 지나지 않아서 나와 진소청은 무당산 인근 오십 리에 있는 작은 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하루종일 달리느라 꽤 지쳐 있었으므로, 우리는 그 마을에서 묵을 곳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작은 마을이라서 전문적으로 여관이나 여인숙을 하는 곳은 없었기에 별 수 없이 마을 촌장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묵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하루 정도야 뭐."

물론 공짜는 아니고 은자 세 냥을 지불해서 가능한 것이다. 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잠자리에 들어서 내공과 기력을 다시 회복했다. 내일이면 무당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몸 상태를 최고로 만들고 싶었다.

다음 날 우리는 무당산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소청 사형은 오기 전에 사 놓았던 둥근 삿갓을 슬며시 들며 말했다.

"사제. 무당파에는 해검지(解劍地)가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네."

해검지!

그것은 무당파에 존재하는 명소아닌 명소로써, 무당파에 입(入)하려 하는 자는 모두 무기를 놔두고 가라는 뜻이었다. 무사에게 있어서 병기가 목숨만큼 중요하다는 걸 생각해보면 황당한 일이었으나, 무당파는 그 전통을 개파 이래로 줄곧 지켜오고 있었다. 이제 약 백여 장만 더 걸어들어가면 아마 해검지가 나올 것이었다.

나는 묵묵히 있다가 중얼거렸다.

"오만하군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그리고 그건 더없는 오만이자 굴욕이었다. 생명과도 같은 병기를 놔두고 가라는 것은 그 자체로 무당파의 성세를 과시하는 것으로까지 보여졌다. 실제로도 강호무림에서 무당파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해검지같은 장소를 만들지 못했다. 해검지를 운영하고도 멀쩡할 정도로 무당파의 세력이 강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진소청이 장난스럽게 씨익 웃었다.

"사제. 한바탕 해 볼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형의 '한바탕'이 뭔지 아는 저로써는 불가(不可)합니다."

"응?"

"다른 때라면 몰라도 이번에는 안 된다구요."

나는 알고 있다. 진소청이라는 인간이 지금 명랑하게 웃고 있지만 '한바탕'에 나서면 그 누구도 말릴 수 없는 파괴신(破壞神)처럼 난폭해진다는 사실을. 과거 전생에서 진소청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종남파를 풍비박산 내버린 전적이 있었고 나는 분명히 그걸 옆에서 목격했던 것이다.

' 무당파와 이야기를 하러 왔으니 오늘은 안 돼.'

나는 진소청에게 간절히 말했다.

"사형. 부탁입니다. 이야기만 하는 게 낫습니다."

그러자 진소청은 시무룩하며 창을 늘어뜨렸다.

"하지만 자기 병기를 맡기라는 무도(無道)한 놈들을 내버려두기에는 성미가 차지 않네."

"정 그러시다면 저 혼자 올라가겠습니다."

"끙... 어쩔 수 없지."

진소청이 마지못해서 내 뜻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거에도 혼자서 종남파를 뒤집어버렸던 진소청이니, 이번에 나서면 무당파를 아예 개박살내버릴 확률이 높았다.

곧이어 우리가 해검지에 도착하자 무당파 도사 다섯 명이 슬며시 나타났다. 그리고 우리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어디의 무림인이신지 알 수 있을런지요?"

"뇌신류에서 온 백웅과 진소청이오."

"......!!"

무당파 도사들은 소개를 받자 다소 놀란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도 뇌신류의 명성이나 악명을 충분히 들어서 알고있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그들 중 한가운데에 있던 도사가 성큼 걸어나오며 예리한 얼굴로 우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무당파의 제자인 무광(無光)이라 하오. 실례지만 뇌신류가 본파에 무슨 용건인지 알 수 있겠소?"

무 자 항렬이라.

그렇다면 그는 강호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후기지수로써, 무당파가 자랑하는 무당팔검(武當八劍) 중 한 명일 것이다. 아마 최소한 일류급 고수로써 강호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날리고 있을 듯 했다. 내공으로 보아서는 절정급에 가까웠다.

나는 무광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당신이 장로이거나 장문인이 아닌 이상 섣불리 말할 수가 없는 일이오. 그저 당신 문파의 절학(絶學)과 관계된 일이라고 전해 주시오."

"뭣...!!"

무광은 화가 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을 일개 문지기로 보고 무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로써도 뇌신류의 위신을 걸고 찾아왔으므로 이 이상 태도를 낮출 수 없었기에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단언하지만 당신 임의대로 처리하면 큰 사단이 날 거라고 말할 수 있소."

"으음."

그는 분을 가라앉히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들은 나를 따라오시오. 머물 곳을 안내해 드리겠소."

"알았소."

"그 전에 여기에서 무장을 해제해 주시길 바라겠소."

"그렇지 않는다면?"

그 순간 무광을 비롯한 다섯 무당파 제자들의 눈에 불꽃이 튀는 듯 했다.

"현명한 선택을 바라오."

그 기세가 심상치 않았고, 나머지 네 명의 무공도 무광에게 크게 떨어지지 않는 듯 했다. 나는 그걸 보자 어찌된 일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 이 해검지는 무당파에 들어가는 제 일 관문인 만큼 상당한 실력의 고수들이 경비하고 있구나.'

하지만 알 수가 없었다. 해검지라고 해도 그저 도학의 수련지에 흉한 병기를 들고 들어가면 안된다는 뜻일 뿐일텐데 왜 이리도 목숨을 건단 말인가? 혹은 이 해검지 자체가 무당파의 명예라는 것인가? 어떻게 생각해도 뇌신류의 문인인 나로써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건 진소청 사형이 더한지, 그는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거기 무광."

"왜 부르시오?"

"당신은 이런 곳 경비를 서면서 두렵지도 않나? 우리는 무당파에 악한 의도로 온 것도 아닌데 지금 태도를 보니 절로 무당파가 싫어져. 앞뒤 안 보는 사파(邪派)의 고수들이 와서 자네들을 쳐 죽이면 어쩌려고 그러나?"

"......"

"당신 실력이 괜찮지만 당신 다섯 명쯤 쳐죽일만한 고수가 세상에 많다는 걸 잘 알 텐데."

진소청의 말은 도발이 아니라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무광도 새대가리는 아닌지 진소청의 질문의 뜻을 잘 알아들은 듯 했다. 무광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내 태도가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하오. 하지만 사문의 임무를 받고 지키고 있으니 어쩔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오."

"흠."

"그리고 두렵지 않냐는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렇다고 말하겠소. 당신들 말마따나 우리 다섯 사형제를 일거에 쳐죽일 마두(魔頭)가 있을 수도 있겠지. 그리고 그럴 경우 우리 모두는 죽은 목숨일 거요."

거기까지 말한 무광이 결연하게 주먹을 불끈 쥐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린 사형제들이 열심히 도법(道法)을 수양하는 장소에 흉인과 흉기들을 함부로 들일 수는 없는 것이오. 우리는 우리가 죽더라도 이 관문을 지킬 각오로 늘 임하고 있소이다. 우리가 설령 죽는다 해도 사문이 반드시 복수해 줄 것을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오."

무광의 말투에는 신념이 있었다.

"흐음..."

진소청은 팔짱을 낀 채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았소."

휘익

그리고는 진소청은 망설임없이 해검지에 자신의 창을 꽂았다. 나도 덩달아 내 무기를 꽂고나서 무광을 따라갔다. 그들을 따라가던 중 진소청이 말했다.

[ 역시 무당파구나. 이 자들은 하급제자같은데 기골이 있다.]

[ 정파의 양대 태두니 당연하겠지요.]

[ 무당파의 장문인은 보통 인물이 아닐 것 같구나. 정말로 그들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

아마 진소청은 무당파의 정기(精氣)가 어떤지를 일부러 시험해본 모양이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하급제자들의 사기와 기골에서 문파의 뼈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험결과는 무당파가 태산북두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인 듯 했다. 진소청의 말투에 경계심마저 들어있는 걸 보면 상당해 보였다. 아마 무당파의 힘은 종남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강성하리라.

[ 해야지요.]

나는 이 자리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무당파를 뇌신류의 편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 일을 이루지 못하면 망량이 제대로 계책을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당파의 지객당 건물에 들어서서 한참동안 기다리게 되었다.

그렇게 약 반 시진이 지나자, 무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장문인께서 직접 보겠다 하셨소. 따라오시오."

무광을 따라서 산길을 약 오 리 정도 걸었다. 보통 사람이 걷기에는 상당히 먼 거리였기에 무당파의 권역이 꽤 넓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곳곳에 근거지를 만들어서 무당산 전체를 자신들의 세력에 넣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당파의 장문인전에 들어서자, 그곳에는 세 명의 고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양 옆에 무당파의 절정고수들이 십여 명 정도 도열해 있었다.

"그대들이 뇌신류의 사자인가?"

중후한 음성.

호호백발에 기다란 흰 수염을 기른, 전형적인 선풍도골(仙風道骨)의 노인이 무당파 의복을 입고 가운데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도 두 명의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무당파 복색을 한 삐쩍 마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기파가 그리 강하지 않고 느긋했으며 차라리 일반인에 가까워보였는데, 나는 그게 도리어 초절정의 경지 중에서도 반박귀진(返璞歸眞)의 경지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광과 진소청도 이르러있는 경지로써 강대한 기를 숨겨서 내면에 갈무리할 수 있다는 걸 뜻했다. 나는 현재로써는 반박귀진을 얻지 못했고 침술에 의존해서 기를 숨기는 상태였기에, 초절정의 경지 내에서도 격차가 있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 굉장한 자들이다...!!'

나는 잠시 그들의 무위에 경동하다가 포권을 하며 말했다.

"뇌신류의 백웅과 진소청입니다."

"나는 청풍자(靑風子)라고 하며 이 옆은 나의 사제인 청일(靑一), 청균(靑筠)일세."

"무당파의 장문인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무량검선(無量劍仙) 청풍자(靑風子)!

그는 현 무당파의 장문인이자 천하에서 상대가 없다는 일대검선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는 의심할 바 없이 현 무림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고수였으며, 무당속가를 맡고 있는 정천맹주 위지혼의 스승이기도 했다. 도가문파 내에서는 제일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옆에 있는 청일자나 청균자 또한 그의 항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가의 초절정고수로써 그들 셋은 무당파의 상징이라 해도 다름이 없었다. 나는 눈 앞의 청풍자의 존재감을 다시 생각하다가 용건을 꺼냈다.

"저희의 방문에 갑작스러우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현재 그대들 뇌신류는 정천맹에 의해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얼마 전에는 구파일방 황산파를 멸문시켰지. 그대들보다 더한 악적(惡敵)은 천하에 없네. 이 자리에 죽고 싶어서 찾아온 겐가?"

우우우우

청풍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세 명의 초절정고수들이 기운을 일으켰다. 마치 거대한 힘이 유형화되어서 내 주변을 살기로 압박하는 듯 했다. 그들이 기를 숨기는 걸 멈추고 본격적으로 무형지기를 이용해서 나에게 압박을 주는 것이다. 물론 아무리 그들의 기운이라고 해도 호법사자의 무형지기에 비할 바는 아니었기에, 나는 침착하게 버티고 설 수 있었다.

"짜증나는군!"

진소청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갑자기 손을 휘저었다.

후웅

"......!!"

"아니?!"

무당파 문인들이 모두 놀랐다. 진소청이 단순히 손을 휘저은 동작만으로 청풍자, 청일자, 청균자 세 사람의 기운이 동시에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들 셋은 내상을 입지는 않은 듯 했으나 진소청의 재주에 크게 놀란 듯 했다. 특히 가운데에 앉아있던 청풍자는 너무 놀랐는지 앉아있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어찌 그 나이에 그런 경지를...!!"

진소청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원하는대로 해검지에 무기까지 두고 와 줬는데 기세로 압박부터 하다니. 무당파는 고작 이런 곳이었나?"

"뭐라고..."

"분명히 말해두지만, 나는 사제의 부탁 때문에 한 수 접고 있다. 하지만 내가 손을 쓰기 시작하면 여기 있는 모두는 죽는다."

파아아앗

그 순간 아수라(阿修羅)의 형상이 비쳐보인 건 내 착각이었을까? 진소청의 전신에서 엄청난 무형지기가 치솟아 오르더니 사방에 몰아쳤고 기의 폭풍이 일어났다. 그 기세를 이기지 못하고 사방에 도열해 있던 무당파의 절정고수들이 피를 토하며 날아갔다.

"으아아악."

"허억."

눈 앞에 있던 무당파의 삼대 초절정고수들은 비틀거리며 각자 세 걸음씩을 물러섰다. 청풍자는 가장 무공이 높은지 눈을 부릅뜨며 한 걸음을 물러서는데 그쳤다. 진소청의 무형지기가 실재하는 것도 아닌데 기세만으로도 장내를 휩쓸어버린 것이다. 진소청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똑같이 되돌려줬을 뿐이니 뭐라 하지 마시길."

"사형. 이건 좀..."

내가 주변을 둘러보자 사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무당파 고수들은 기절한 사람도 있었고 내상을 입고 운기조식을 취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소청이 조금만 기세에 악의를 불어넣었다면 눈 앞의 세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을 것이리라.

진소청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듯 청풍자가 눈에 불을 켜며 말했다.

"감히 무당파를 무력으로 겁박하고도 괜찮으리라 생각한 거냐?"

"아주 괜찮겠지. 왜냐하면 내 사제가 가져온 제안은 너희가 거부하기 힘들 테니까."

"뭣이라고..."

"자."

진소청이 나를 쳐다보자, 나는 그가 나를 위해 판을 깔아주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진소청은 무당파가 오만해서 내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을 거라 생각했구나.'

진소청은 처음부터 무당파 고수들이 강할까봐 걱정한 게 아니었다. 그들이 품고 있는 중원 태두의 정파라는 자부심 때문에 오만해져서 내 제안을 듣고도 묵살하거나 우습게 볼 가능성을 염려한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뇌신류의 방식]으로 내가 이야기하기 편한 상황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나는 내심 진소청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천천히 말했다.

"무당 장문. 나는 우연한 기회에 큰 기연을 얻었소. 그리고 그 기연은 무당파와 큰 연관이 있었으므로 이걸 돌려드리기 위해 찾아온 것이오."

"......!!"

"더 이상의 이야기는 긴밀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오만."

듣는 귀가 적으면 좋겠다는 의도를 넌지시 말하자, 청풍자는 침음성을 흘리며 말했다.

"으음. 모두 나가거라. 그리고 백 장 떨어져라."

"장문인..."

"어차피 진소청이 싸우려 들면 너희는 도움이 안 된다."

"넵."

무당파의 고수들이 우르르 몰려나가자, 장내에는 뇌신류 두 명과 무당파 세 명밖에 남지 않았다. 청풍자가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기연이 우리 무당파의 절학인가?"

"'우리 무당파' 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구려. 왜냐하면 이건 한 절대종사(絶對宗師)의 집대성이기 때문이오."

내가 굳이 정정하는 걸 들은 청풍자는 물론, 옆에 있던 청일자와 청균자의 얼굴이 갑작스럽게 변했다. 그들은 뭔가 감을 잡은 듯 했다.

"설마..."

"내가 얻은 것은 장삼봉 진인의 유학(遺學)이오."

"......!!"

그러자 청풍자 옆에 서 있던 청균자가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외쳤다.

"믿을 수 없다! 너희 마도 놈들이 그 분의 깨달음을 얻었다 말하는 것이냐!"

"그렇지 않고서야 일부러 거짓을 말하려고 이 무림상황에 우리가 직접 무당파를 찾아올 수 있겠소?"

"노옴. 그러면 어디 한 번 펼쳐보아라."

"원하신다면..."

나는 청풍자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해검지에서 검을 놔두고 왔는데 한 자루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걸 써라."

청풍자가 자신의 검을 휙하고 던져 주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검을 받았는데 청풍자가 상당한 내공을 실어서 던진 느낌이 났다. 어지간한 청년고수는 검째로 날아가서 피를 토하고 죽을 정도의 압력이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 어지간히도 자존심이 상했나보군.'

그리고 나는 서서히 장삼봉 진인의 절학을 하나하나 펼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

몸이 기를 따라서 무리없이 움직이며, 그 동안 피땀흘리며 연습했던 성과가 하나하나 드러나기 시작했다. 시작은 굴공검과 천축검이었으며 두 개의 검법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흡인력(吸引力)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오오..."

"저건...!!"

그들은 굴공검이 공간을 왜곡시키고 천축검이 빨아들이는 광경을 보자 놀라운 탄성을 터뜨렸다. 나는 보여줄만큼 보여줬다 생각되자 이번에는 다른 무공을 하나하나 펼쳐보이기 시작했다.

진무칠절경(眞武七絶經)

현천오신결(玄天五神決)

태극요지유검(太極曜志柳劍)

칠성둔영(七星遁影)

이 네 개의 절학(絶學)은 굴공검과 천축검과는 달리 실전에서 쓸만큼 연마되지 않았으나, 굴공검과 천축검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면 이 무공들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무쌍패(無雙覇)만큼은 도저히 시도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이건 장삼봉이 만들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패도적이며 강력한 무공이었으며 굉장히 까다로웠다. 아마도 이거 하나에 입문하기 위해서 십수년 이상 고련해야할 게 분명하다.

파바바밧

마지막으로 칠성둔영이 일곱 개의 방위를 점하며 날아드는 형상을 보여주자, 정확하게 삼백 초를 시연한 셈이 되었다. 내가 숨을 고르며 천천히 납검(納劍)하자 청풍자가 탄성을 터뜨렸다.

"... 백웅 그대는 그 무공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

"물론이오."

"말해 주게."

"굴공검(屈空劍), 천축검(天縮劍), 진무칠절경(眞武七絶經), 현천오신결(玄天五神決), 태극요지유검(太極曜志柳劍), 칠성둔영(七星遁影)! 장삼봉 노사는 이 무공이 말년의 깨달음이었다 했으므로 아마 무당파가 모르는 게 대부분일 것이오."

청풍자가 꺼지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지 않네. 굴공검과 천축검을 제외하고는 모두 본파의 비전(秘傳)이며 실전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지. 그리고 그 굴공검과 천축검은 본파의 사숙께서 현재도 연마하고 계시는 것일세."

"... 사숙?"

이게 무슨 소린가?

청풍자는 딱 봐도 노인이었고 백발이 성성했는데 저런 노인의 사숙이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말인가? 내가 굳어있자 청풍자가 우묵한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 무당파의 비전을 뇌신류 제자가 습득한 건 사실인 것 같군. 그대는 무엇을 원하고 우리를 찾아온 건가?"

"다른 게 아니오. 현재 우리 뇌신류의 수장께서는 더 이상의 전투가 불필요하다 생각하시기에 곧 정천맹과 정전협정을 하시려 하오. 우리가 무당파의 비전을 되돌려줄 터이니, 그 때 뇌신류와의 정전을 지지하고 다른 문파들을 설득해주길 바라오."

"......"

청풍자가 다시 자리에 앉았고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청일자와 청균자도 입술을 달싹이는 걸로 보아서 그들끼리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듯 했다. 내 옆에 있던 진소청도 전음을 했다.

[ 사제. 무시무시한 실력자 두 명이 여기로 다가오고 있어.]

[ 네? 어떤 실력자입니까?]

[ 모르겠군. 확실한 건 눈 앞의 세 사람보다 더 강해.]

[ 그, 그럴수가.]

[ 어서 결정하게. 확실하게 도망칠 거라면 지금밖에 없어.]

나는 이를 악물었다.

' 이게 실패하면 망량의 계책도 실패하고, 그의 명이 줄게 될 거야. 그것만은 안 돼!'

원래라면 무리하지 않고 도망쳤겠지만 나는 오기를 부릴 수밖에 없었다.

[ 아뇨! 좀 더 버티겠습니다.]

[ 알았네.]

잠시 후 청풍자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내 선에서 결정할 수 없는 일이군. 이 문제는 사숙께 맡기도록 하겠네."

판단을 떠넘겼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보며 으르렁거렸다.

"구파일방의 장문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만 어쩔 수 없군. 다른 건 몰라도 굴공검과 천축검은 사숙의 평생 비원이었어. 나는 사숙의 뜻을 반드시 들을 수밖에 없네."

"으으..."

바로 그 때였다.

쿠웅!

장문인전의 천정을 뚫고 두 개의 신형이 내려섰다. 아마도 진소청이 말했던 '어마어마한 실력자'인 듯 했다. 그 두 개의 신형은 각자 꾀죄죄한 10대 소년도사와 가사를 입고 있는 승려의 모습이었다. 10대 소년도사의 나이는 현재의 내 나이보다 어려보였다.

소년도사는 신경질적으로 청풍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청풍아! 너는 왜 이런 중요한 일이 있는데 나를 늦게 부르느냐?"

그러자 청풍자, 청균자, 청일자가 동시에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땅에 박았다.

"명룡자(冥龍子) 사숙을 뵙니다!"

명룡자라 칭해진 소년도사 옆에 있던 승려가 나직이 말했다.

"명룡자와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이렇게 큰 일이 생기다니."

"흥... 신승(神僧)이라고 자처하면 뭘 하나? 천기 하나 읽을 수 없는데."

"그거 미안하군. 허나 노납도 그 칭호가 그리 달갑진 않다네, 명룡자."

나는 그들의 등장을 듣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걸 느꼈다.

' ... 마, 망했다.'

명룡자와 신승!

명룡자는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반로환동(返老還童)을 이룩한 절세고수이자 망량이 칭한 은막의 고수일 것이다. 그리고 신승은 바로 소림사의 최고반열로써 정파 삼대기인(三代奇人)의 한 사람인 것이다.

저 둘이라면 설령 호법사자라 해도 쉽게 보지 못한다!

정파의 태두라는 소림사와 무당파의 최고고수들이 이 자리에 와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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