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6화 (17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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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내가 깨어났을 때는 진랑곡의 수련사원 안이었다. 나는 옷이 새것으로 갈아입혀져서 누워 있었고 전투 도중에 입은 몇 개의 상처에 붕대가 싸여 있었다. 나는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다소 차가운 기온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초저녁이군...'

얼마나 잔 걸까?

마지막으로 온 전력을 다한 검강을 사용하고 탈진했다는 건 기억나지만, 이후 극호 사형이 나를 옮겼다는 것밖에 모른다. 다만 뱃속이 꽤 허기지고 나른한 기분인 걸로 봐서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듯 했다.

나는 뒷통수를 긁적거리며 침상에서 반쯤 일어나서 앉았다. 그리고 석양을 바라보다가 소주천행공(小周天行功)으로 내공을 점검해 보았다.

내공은 이상이 없다. 완전히 다 채워져 있다. 역시 자연치유력으로 회복된 모양이라서, 나는 붕대에 감싸인 상처도 완전히 아물었다는 걸 확신했다. 내가 그렇게 한동안 침상에 앉아 있자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형. 일어나셨어요?"

옥구슬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흠칫해서 문쪽을 보니, 내가 깨어난 기척을 알아챈 사공린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약간 뻘쭘해하며 대답했다.

"네, 린 사매."

"후후... 왜 존대를 하세요?"

"그야 사매가..."

나는 이야기를 하던 중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나이' 얘기가 나오려 하자 사공린의 표정이 점점 차가워지는 게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재빨리 말을 마무리했다.

"... 품격이 있으니까."

사공린은 빙긋 웃고는 내 근처로 다가와서 섬섬옥수를 이마에 갖다대었다.

"음, 열은 없네요. 사형. 몸 상태는 어떠신가요?"

나는 과거 절세미인이라 생각했던 사공린의 고아한 외모를 가까이에서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번 전생을 시작한지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몸뚱이가 완전히 사춘기로 접어들어서인지 얼굴이 빨개졌다. 그도 그럴것이 사공린은 지금껏 여행하며 보아왔던 모든 미녀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절세미모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괘... 괜찮아."

"사부님과 사형께서도 많이 걱정하셨어요."

달그락

사공린이 흑미로 만든 듯한 죽을 침상 옆에 놓았다. 따끈따끈한 걸로 봐서는 죽을 만들어놓고 시간 될때마다 데워놓은 모양이었다. 마침 허기지던 차였기에 죽 정도는 뚝딱 먹어치울 기분이라서 반가웠다.

"지금은 세분 다 출타하셨으니 이거 드시고 기운차려서 맞이해요."

"출타?"

"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시간이 얼마나 지났지? 그리고 전투는 어떻게..."

"극호 사형이 백웅 사형을 데려오신지 이틀이 지났어요. 풍신류와의 전투는 완전히 승리했다고 들었고요."

"승리? 그렇다면 황산파는..."

"멸문(滅門)했죠."

"......!!"

나는 침상에 앉은 채 이불보를 꽉 쥐었다. 그 험난한 전투에서 뇌신류가 마침내 완전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에 기쁨이 느껴졌다. 그리고 구파일방 황산파를 멸망시켰고 풍신류와 전면전이 되었으니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걱정도 되었다.

"아, 사형! 일어나셨군요."

"으음..."

그 때 지나가던 재후가 녹림왕 구철과 함께 내 방에 들어왔다. 재후는 딱 내 또래로 보이는 홍안의 미소년(美少年)이었고 녹림왕 구철은 나 이상으로 전신에 붕대를 칭칭 감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내게 포권하며 인사했고 나도 인사를 받아 주었다.

재후가 키득 웃으며 말했다.

"린 사저께서 사형 목욕을 다 시켜주셨다구요."

엥?!

내가 놀라서 사공린을 쳐다보자 그녀가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사공린이 재후에게 힐책하듯 말했다.

"재후, 왜 그걸 지금 말해?"

"그냥요~"

그러고보니 내 옷은 물론 속곳까지 모두 갈아입혀져 있었는데, 설마 사공린이 내 알몸을 모두 보았단 말인가? 나도 뻘쭘해서 얼굴이 홍당무처럼 되어있자 옆에 있던 구철이 걸걸한 목소리로 재차 포권하며 말했다.

"아무튼 이 구철, 백웅 사형의 신위(神威)에 감복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형."

"나야말로 잘 부탁하오."

"편하게 말씀 놓으십시오. 제가 막내니까요."

"... 알았어."

녹림왕 구철은 원래 풍신류의 간자로써 녹림십팔채의 수장인 호왕채를 이끌고 군림하던 절정고수였다. 그러나 이광에 의해 등용되어서 뇌신류의 막내제자가 되어버려서 현재 배분은 새파랗게 어린 재후보다도 더 낮은 상황이었다. 뇌신류의 사승관계는 나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는 구철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지금 사부님과 사형들은 어디 가신 거지?"

"그 분들은 현재 반천맹주와 함께 장령곡(長領谷)으로 가셨습니다."

"장령곡...?"

"네. 장령곡주에게 볼 일이 있다 하셔서. 그 이상은 모릅니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장령곡!

그 곳은 분명히 세 개의 질문에 정답을 맞추면 호화로운 금은보화를 선물해 준다는 곳이었다. 동시에 답을 틀린 자에게는 혹독한 제재를 가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아마도 말을 들어보니 망량도 뇌신류 사람들을 따라서 간 모양이었는데 망량이 직접 움직여야 한다는 게 신기했다.

' 아, 맞아. 장령곡주도 망량의 일족이었지.'

망량 본인은 꽤 껄끄러워하는 기색이었지만 장령곡주도 아마 천문관 일족이며 제갈씨라고 들었던 것 같았다. 일이 꼬여서 낙양에서 전면후퇴를 했을 때도 최후의 수단으로 의지하려고 했을 정도인 것이다. 장령곡주가 보통 무림인물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 때였다.

[ 사제들이 많이 떠받들어줘서 살판났구나, 백웅.]

미호의 영언이 들려왔다. 그러고보니 목에 걸려있던 곡옥이 없어서 미호가 어디갔을까 궁금해하던 차였는데 역시 내 주변에 있었던 것이다. 힐끔 창문쪽으로 가서 들여다보자 미호가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나는 진랑곡에서 동방 늙은이를 갖고놀고 있다. 좀있다 밥먹고 나를 찾아오거라.]

"음..."

나는 별 수 없이 사제들과 대충 두런두런 이야기를 마친 후 흑미죽을 먹고나서 진랑곡 쪽으로 걸어갔다. 아마도 미호는 진랑곡에 유폐된 동방무결을 찾아간 모양이었다. 사제들에게는 따라오지 말라고 말해두었다.

내가 동방무결이 살고 있는 한적한 초가집으로 가자 문 앞에서 미호가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깔깔대고 있었다.

"아하하. 배가 많이 고파보이는 얼굴이구나."

"티가 나?"

"며칠이나 굶었을테니 죽갖고는 감당이 안되겠지."

미호가 생글생글 웃으며 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좀 있다 나랑 맛있는 거나 먹으러 가자꾸나."

"으응. 그런데 여긴 왜 온 거야?"

내가 알기로 동방무결은 진랑곡의 외딴 초가집에 내공을 봉쇄당해서 평범한 촌로처럼 하루하루 먹고살고 있었다. 이제 내가 내공금제를 풀어주지 않는 이상 평생 그렇게 살아야하는 신세라서 누구도 동방무결의 거취를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미호가 동방무결을 찾아와 있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미호가 말했다.

"사실 네 수발을 거들어주다가 도중에 심심해서 진랑곡으로 나왔는데, 생각해보니 빠뜨린 게 있지 않느냐."

"빠뜨린 거?"

"너희는 형식적으로만 동방무결의 정보를 얻어냈을 뿐 그의 심층기억까지 읽지는 못했지. 본녀는 그게 그 동안 껄끄러웠기에 저 늙은이를 확실히 홀려놓았다."

"......!!"

나는 놀라서 초가집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러자 거기에는 완전히 매혹에 걸려서 넋이 나가있는 동방무결이 침상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다행히 미호가 뭔가 해꼬지를 한 건 아닌지 그냥 앉아있을 뿐이었다.

"뭐야. 그래서 심문한 거야?"

"그렇다. 할만큼 다 해놓고 네가 눈을 뜨기만 기다리고 있었지."

동방무결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도 아예 반응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절정의 매혹술에 당하면 기억이 사라지는 것이다. 나는 초가집의 의자에 앉아서 대꾸했다.

"그 때 동방무결이 말했던 정보가 거짓이라고 생각되진 않아. 실제로도 효과가 있었고 백련교주조차도 그의 정보를 모두 믿었지. 살기 위해서 모두 토해냈던 거 같은데 그거 말고도 또 꿍치고 있는 정보가 있었다고?"

미호가 팔짱을 꼈다.

"정보라고 하기보다는... 그가 숨기고 있는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삼황오제(三皇五帝)에 대한 부분이었지."

"삼황오제?"

그게 여기서 왜 나온다는 말인가?

삼황오제는 전설상에서 중토(中土)를 지배했던 최초의 신적인 군주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요순 임금 이상의 모든 삼황오제는 신(神)으로 취급하는 게 정석이었다. 온갖 도가나 불가문파의 상고시대 신화에 필수적으로 얽혀있는 존재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칠요(七曜)를 인간에게 내려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내가 궁금한 표정으로 미호를 바라보자, 미호가 동방무결에게 말을 걸었다.

"여봐라. 네가 남만족과 접촉해서 월남의 도서관에 들렀을 때의 일을 상세히 말해 봐라."

"알겠습니다..."

동방무결은 마치 인형처럼 대답하더니 말을 이었다.

"저는 남만 제일의 패주(覇主)인 흑태자 나레쑤언에게 성련(聖蓮)을 진상하는 댓가로 대도서관을 열람할 기회를 손에 넣었습니다... 그 때 수상한 일족과 마주쳐서 추가로 거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놀라서 그에게 질문했다.

"수상한 일족? 무슨 소리야."

아마 동방무결이 백련교주의 후원을 업은만큼 목적달성을 위해서 성련 몇 줄기를 교섭용으로 쓸 수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건 그렇다치고 수상한 일족 얘기는 지금껏 한 마디도 들은 적이 없었으므로 당황스러웠다.

"저는 남만과 월남 전반의 말을 할 수 있었으나... 도서관의 고문(古文)을 해석하기엔 역량이 부족했습니다... 그 때 고문의 해석을 댓가로 성련을 받겠다고 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나레쑤언이 그들에게 추가로 외주를 맡겼습니다... 저는 그들의 도움으로 도서관의 장서를 해석할 수 있었고... 더불어 거인(巨人)의 유적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인?"

"삼황오제의 전설에 나오는 염제(炎帝) 신농씨(神農氏)의 후손... 이른바 치우(蚩尤), 과보, 공공, 형천과 같은 거대신의 일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만 오월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장소에 신비한 유적을 만들어서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

거인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말인가!

산해경을 비롯해서 중원의 상고시대를 전하는 신화에는 공통적으로 거인족이 출현했고, 그들의 공통점은 신(神)이나 천제(天帝)에게 맞서다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묘사되는 거신족의 크기는 너무나 컸기에 그저 신화라고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거인이 실제로 역사속에 있었다니!

"그래서? 그 유적에 들어가 봤나?"

"그 수상한 일족... 스스로를 축융족(祝融族)이라고 밝힌 자들의 도움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무시무시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무시무시한 것...?"

"그 곳에는... 상고시대의 신족(神族)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마(魔)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절대적인..."

동방무결이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 더불어, 그 축융족조차도 해석할 수 없는 의문의 괴어(怪語)가 가득 적혀 있었으며... 그 괴어는 결계(結界)를 형성하여 그 신족을 봉인하고 있었습니다... 축융족의 임무는 영겁토록 그 결계를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

괴어.

나는 그 말을 듣자, 지금까지 수집했던 괴이쩍은 마도서(魔道書)를 떠올렸다. 나는 아까 챙겨놓았던 목갑을 꺼내서 그 안에서 <나인성본전(螺湮城本傳)>이라는 책을 꺼냈다. 천암비서를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므로 그에게 나인성본전을 보여주며 말했다.

"혹시 그 괴어가 이런 식으로 생겼던가?"

"... 오, 오오... 틀림없습니다... 형태는 약간 다르지만... 특유의 느낌은 똑같습니다..."

"으음."

역시 남만 월족의 땅에도 이족(異族)과 관련된 유적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면 어째서 그게 삼황오제의 흔적과 연결이 되는 것인가? 나는 머릿속에서 불길한 상상이 스쳐지나갔지만 이내 고개를 털었다. 지금으로써는 거의 모든 게 억측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축융족은 거인족의 후예라고 했는데 그럼 몸뚱이가 아주 거대했겠군."

"아니오... 그렇지 않고 평범한 인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라고 볼 수 없는 독특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무슨 능력?"

"그들은... 타 존재와 몸을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

"그들의 기원이 된 염제의 권능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그 능력을 이용해서 수천 년이나 살아오는 자도 있었습니다..."

몸을 교체한다!

그 말대로라면 영혼만 멀쩡하다면 무한히 몸을 바꿔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나는 그의 말을 믿기 힘들었지만, 미호의 매혹술에 완전히 걸려있는 상태라서 믿지 않을수도 없었다. 그래서 머릿속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그들이 성련에 욕심을 낸 이유는 뭐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신체교체능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동되는 거지? 당신은 어째서 몸을 빼앗기지 않은 거지?"

"그 능력은 강압적인 게 아니라 상대방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본인들 말로는 본래 일족의 능력보다 열화되었다고 했습니다..."

"흐음."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 외에 네가 보았던 특이한 것은 또 없나?"

"무창(無窓)의 탑... 거무튀튀한 돌로 만들어진 이상한 탑이 있었습니다..."

"탑이라고?"

"그 탑은 축융족의 생활공간임과 동시에 유적인 걸로 보였습니다... 그 외에는 딱히 없습니다..."

축융족!

무창의 탑!

나는 왠지 이게 염제 신농씨의 칠요인 화요(火曜)를 얻을 수 있는 단서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후로도 동방무결에게 이런저런 걸 캐물었지만 역시 나머지는 다 아는 것 뿐이었다. 나는 문득 심술궂은 생각이 들어서 동방무결에게 물었다.

"이봐. 당신이 익힌 무공은 무엇이고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지?"

"으... 으윽..."

동방무결은 이번 질문에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미호가 말했다.

"심층 무의식에서부터 거부하는 것은 매혹술로도 끌어내기 힘드니라."

"무슨 소리야?"

"달리 말하자면, 저 비밀은 저 자가 차라리 찢겨죽는 한이 있어도 절대 말하지 않는 비밀이란 것이다. 계속 묻다가는 미치거나 정신이 붕괴될 것이다."

"으음..."

나는 아쉬운 느낌이 들었다. 그 말대로라면 초절정고수를 매혹술로 홀려서 무공의 비밀을 알아내는 건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말이 아닌가? 동방무결쯤 되는 초고수의 무공이라면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아깝다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넌 어떻게 생각해? 삼황오제가 이족과 관련이 있다고 봐?"

내 질문에 미호는 심각하게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인간인 내가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게 사실 이상한 일이었고, 천계에 살고있었던 미호가 더욱 관련성이 깊었다. 그렇기에 미호도 이번 일을 유희거리가 아니라 중대하게 취급하는 모양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미호가 대답했다.

"내가 모시던 서왕모께서는 사실 인간에게 보이는 모습과 본체의 모습이 따로 있느니라."

"......?"

"즉... 천계에서 존재하는 모습은 인간들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우상(愚狀)을 투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천계에 존재하는 자들은 모두가 정신체(精神體)이기에 비교적 자유롭게 자신의 외양을 바꿀 수 있지."

그렇게 말한 미호가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그리고 천여 년 가까이 서왕모를 모시면서도 나는 여태껏 그 분의 진짜 모습을 뵌 적이 없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천계에서도 '오래된 자'와 신참의 격차는 매우 크느니라. 나는 천계에서는 꽤 어린 편에 속하는 편이고, 서왕모께서는 천계 생성 이전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존재. 그 분은 상고시대에 있었던 일을 전혀 내게 말해준 바가 없느니라."

"흠."

"대라신선들조차도 꺼리는 비밀이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 비밀이 삼황오제에 관련된 거라는 사실은 확실해 보이는구나."

나는 미호의 대답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천계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자들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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