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5화 (175/1,615)

0175 ----------------------------------------------

삼황오제(三皇五帝)

파앗

우리는 목갑과 비등을 이용해서 황산파로 향했다. 사실 그냥 비등만 써도 되겠지만 정신력의 소모를 피하고 싶다는 이광의 주문 때문이었다. 나는 황산파 근처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걸 보자 복잡한 기분이 되었다.

[ 스승님. 벌써 황산파를 쳐도 되겠습니까? 여러가지로 걸리는 게 많을텐데요.]

나는 그렇게 물었었다. 그러자 이광이 대답했다.

[ 뭐가 걸리느냐.]

[ 백련교주와 십년지약을 하기도 했고, 황산파는 구파일방입니다.]

[ 흥, 그런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광은 싸늘하게 웃었다.

[ 십년지약? 그 내용에 풍신류의 중원거점을 치면 안된다는 건 들어있지 않았다.

구파일방? 어차피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었는데 무슨 상관이냐.

그리고 우리는 선공을 맞았으며 풍신류는 숙적이다. 뭐가 더 필요하단 말이냐?]

[ ......]

[ 살겁(殺劫)이 두렵다면 지금 빠져라. 책하지 않겠다.]

[ 아닙니다.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와 있는 장소는 황산파의 연무장에서 한미한 구석이었다. 근처에 있던 황산파 제자 한 명이 깜짝 놀라며 우리를 쳐다보았다.

"아니... 당신들은..."

서걱!

이광은 가타부타 대답도 하지 않고 달려들어서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 자는 소리를 지를 틈도 없이 목이 허공에 떠올라 버렸다. 뒤에 있던 우리들은 그 광경을 보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간단한 행위로 보였으나 우리가 오늘 이 장소에서 무엇을 하게 될지 명확히 보여주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광은 우리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오늘 이 황산에 살아있는 건 아무것도 남기지 마라."

"네!"

"알겠습니다."

"... 넵."

진소청과 극호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바로 직전까지 풍신류의 제자였던 녹림왕 구철도 고통스러운 얼굴로 대답했다. 뇌신류와 풍신류, 숙적의 대결인 만큼 인정따위는 봐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뭔가 거리낌이 느껴졌다. 그래서 고개를 휘휘 젓다가 이광에게 말했다.

"아녀자와 임신부(妊娠婦)는 살려두면 안되겠습니까?"

이광의 눈이 사납게 번득였다. 그의 눈에서 호랑이같은 살기가 흘러나왔다.

"백웅. 너만이 의(義)와 협(俠)을 아느냐? 너만이 정의롭느냐? 우리는 의도 모르는 무도한 개자식들이라서 이 자리에서 적을 쳐죽이는 줄 알고 있느냐?"

"그... 그건."

"내가 모든 걸 책임지겠다. 네 판단대로 하되, 이 자리가 적지(敵地)라는 걸 잊지 마라."

"알겠습니다."

이광이 약간 화가 난 표정으로 돌아섰다. 평소에 냉정무심한 표정의 이광이 대놓고 화난 표정을 지었다는 건 적지 않게 불쾌하다는 뜻이었다. 나는 경험상 저런 이광에게 대들다가는 목숨이 날아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반성했다.

' 그래. 이 자리의 누구도 좋아서 살육을 하는 건 아니다...'

망량에게서 배운 의협 정신 때문에 이광의 몰살명령에 저항한 것이지만, 사실 뇌신류라는 운명공동체에서 명운을 걸고 풍신류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이라는 걸 감안해야 했다. 지금까지 일면식도 없던 사람들을 풍신류라는 이름으로 죽이는 게 누군들 달갑겠는가? 그러나 잠재적인 적을 남겨두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었다.

문득 망량의 말이 떠올랐다.

[ 나는 진랑곡에서 기다리고 있겠소. 당신은 부디 이번 싸움에서 많은 걸 배우시오.]

[ 전투경험이 많이 쌓이겠군.]

[ 이광에게서 배울 수 있는 건 그것만이 아니오.]

[ 응?]

[ 그는 뱀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패도(覇道)적인 인물이오. 그의 행동은 얼핏 무모하고 야성적으로 보이지만 모든 게 철저한 권모술수와 냉철한 판단력 아래 시행되는 것이오. 당신이 그의 판단력과 냉정함을 익힐 수 있다면 앞으로 더욱 큰 그릇이 될 수 있을 거요.]

이광에 대한 망량의 평가는 아주 후했다. 하긴 그도 그럴것이 천하제일의 지략을 지닌 망량조차도 쉽사리 이광을 움직이지 못해서 때로 역풍을 맞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광은 적일 때는 괴롭고 아군일 때 믿음직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학살(虐殺)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대로 황산파의 내전 건물부터 휘저으며 눈에 보이는 모든 황산파 고수들을 척살하기 시작했다.

쓔욱!

푸콱!

극호의 창(槍)이 사납게 꿈틀거리며 순식간에 세 명의 황산파 무인을 죽였다. 나는 그동안 극호가 싸우는 광경을 좀처럼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금 보니 그의 창술도 대단한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창의 숙련도로 따지면 나보다 훨씬 높은 것 같았다.

"하핫! 겨우 이거냐?"

극호는 광랑하게 외치며 미친듯이 돌격했다. 그는 말 그대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것을 원수처럼 생각하는 듯 엄청난 기세로 싸우기 시작했다. 필생의 공력을 기울이며 황산파의 절정고수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는 모습이 대단했다.

까가강!

츄왁

내가 서너 명을 해치우다가 극호의 전투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진소청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사제. 아까 사부님의 말은 괘념치 말게. 어차피 이 황산에 아녀자같은건 없을테니."

싸움이 시작된 지 겨우 반 각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나와 진소청 근처에는 시체가 서른 구 가까이 널부러져 있었다. 진소청은 더 죽일 황산파 무인이 없어서 내게 이야기를 건 것이다.

"사형."

"극호 사형이 왜저리 열심히 싸우는지 알고 있지?"

이광은 좀 더 고수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간 후였다. 나는 이광이 근처에 없는 걸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 스승이 풍신류에게 살해당했죠."

"그래. 사제와 나는 극호 사형과 달리 풍신류에 직접적인 원한은 없어. 그래서 아까 사제의 말도 할만하다고 생각해."

촤악, 하고 진소청이 창에 묻은 핏줄기를 원형으로 떨쳤다. 그는 차분한 눈으로 전장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면 그들도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까?"

"......"

"더 이상 망설이지 말게. 우리는 뇌신류일세."

"알겠습니다."

파앗!

나는 진소청의 말에 긍정하며 전장에 다시 뛰어들었다. 그때까지 극호를 상대로 2대1로 대등하게 싸우고 있던 황산파의 절정고수들이 깜짝 놀랐다. 나는 그들이 황산파의 도복을 입지 않고 있으며 기묘한 흑풍의를 입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 풍신류 본단에서 파견된 고수들이군.'

공식적으로 황산파에 존재하는 절정고수는 약 6명이었다. 황산파의 사대장로, 그리고 좌우호법이었다. 이들은 아마 사대장로가 아닐테니 황산파의 좌우호법이거나 파견된 풍신류 고수일 확률이 높았다. 나는 그들 중 하나에게 거센 검풍(劍風)을 날렸다.

촤앗

"으윽!"

갑작스러운 공격에 한 명이 침음성을 흘리며 뒤로 삼 장을 물러났다. 나는 그가 빠른 신법으로 중심을 갖추기도 전에 연속으로 공격해 들어갔고, 극호 사형과 각자 일대일의 국면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죽어라."

극호가 살기를 내뿜으며 천뢰무극창을 내뻗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뇌창(雷槍)은 풍신류의 고수가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력했고, 이윽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적 한 명이 절명했다.

"끄아아악."

동료의 처절한 비명소리를 들은 눈 앞의 절정고수는 이를 앙다문 듯 했다.

"으으."

그는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신도합일(身刀合一)의 기세를 취했다. 죽든 살든 나에게 한 방은 먹이고 죽겠다는 동귀어진의 자세였다. 확실히 그는 오랜 시간동안 무예를 수련한 달인이었다.

하지만 나는 동귀어진을 받아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을 끌수록 숫자가 적은 우리 뇌신류 쪽이 불리했다. 나는 되려 그에게서 이 장을 물러난 후 멀찍이서 천뢰인(天雷刃)의 검기를 날렸다.

치리리링

"큭... 제대로 붙어라!!"

그가 격하게 외치며 천뢰인의 검기를 쳐냈지만 나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누구 좋으라고?"

거대한 천뢰인의 검기가 열 번쯤 날아갔을 때, 그는 체력과 기력이 모두 소모되어서 기진맥진해 있었다. 신도합일의 집중력도 풀려 있었으므로 나는 손쉽게 멸혼보로 다가가서 그의 명치에 뇌운강권을 먹일 수 있었다.

뻐어억!

"크어어억..."

그는 입에서 선혈을 토하더니 이내 절명해 버렸다. 일부러 팔다리를 잘라서 갖고놀다 죽일 수도 있었지만 내딴에는 자비를 베푼 셈이었다. 내가 장내의 전투를 마무리짓자, 진소청이 흡족하게 말했다.

"멋지군!"

극호가 자신의 창을 늘어뜨리며 말했다.

"스승님은 구철과 함께 도룡신검 용중일을 치러 가셨다. 얼른 도우러 가자."

"네."

타앗

우리는 동시에 내달려서 황산파 내전의 뒤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멀리 뒷산에까지 뻗어있는 거대한 대나무숲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광은 대나무숲에 용중일이 있을 거라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나는 경공으로 내달리며 대나무숲을 통과하며 생각했다.

' 확실히 무공을 수련하기 좋은 장소군.'

동시에 이런 장소는 적이 매복하기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대나무를 밟으며 빠르게 이동하던 중 곳곳에 처참하게 도륙당한 시체가 널려 있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이광에게 덤비던 풍신류 고수들의 말로인 듯 했다.

휘이익

나는 대나무 마디를 딛고 허공을 날며 말했다.

"벌써 끝나있는 거 아닐까요? 스승님이 그렇게 강한데."

"그건 아닐거야."

진소청이 전방으로 뛰어나가며 말을 이었다.

"도룡신검 용중일은 굉장한 고수였어. 백련교 회담때도 힘을 숨기고 있었으니, 솔직히 얕볼 수가 없을 것 같다."

"흐음."

옆에서 같이 달리던 극호가 진소청에게 물었다.

"야. 그러면 위험한 거 아니냐? 구철 그놈은 방금 전까지 풍신류 제자였는데..."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사부님은 구철이 두 번 배신할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받아들이셨을 테니까요."

"헤에 그런 거냐?"

"네."

우리가 잡담을 하는 동안에 어느 새 산을 넘어서 커다란 공터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는 황산파 본당에서 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마련된 이 대나무 공터에서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쿠우우우

장내에는 이미 다섯 명의 고수들이 대립하고 있었다.

뇌신류 측에는 이광과 구철이 각자 자신의 병장기를 들고 상대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풍신류 측에는 도룡신검 용중일과, 황산파의 좌우호법으로 보이는 고수들이 그의 옆에 시립해 있었다. 또한 여기저기에 죽은 시체가 십여 개 정도 널려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한 차례 학살이 벌어진 듯 했다.

이광은 우리가 도착하자 말했다.

"본당은 다 정리했느냐?"

"네."

"하급제자들까지 처리하고 왔어야지."

"이쪽 일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진소청이 차분하게 대답하자, 이광은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풍신류 측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용중일. 네게 승산은 없으니 이만 항복해라."

황산파의 장문인, 도룡신검 용중일.

구파일방에서도 알아주는 초절정고수이자 대검호(大劍豪)는 가당찮은 소리를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항복할 염치가 없으니 친히 내 목숨을 끊어주게, 이광."

이광이 이를 갈았다.

"너구리같은 놈. 풍신대(風神隊)를 본거지에 모아두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지. 모아놓은 정보에 따르면 너희 뇌신류의 행보는 지나치게 전광석화 같아서 천라지망이 안 통할 것 같았다."

스스스슥

"그래서 풍신대로 내 목부터 지켰지."

그와 동시에 대나무숲 뒤편에서 흑의를 입은 서른 명 정도의 고수집단이 나타났다. 그들은 지금까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이제야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들의 실력을 대충 판별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

강하다!

10번째 전생에서 봤던 풍신대보다 훨씬 강했다. 그때와 다른 점은 저 풍신대 하나하나는 꽤 나이를 먹은 3,40대의 장년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 자들은 풍신류 본가에서 특별하게 양성된 진짜 풍신류의 정예일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 하나하나가 절정고수...!! 뭐 이런 미친!'

내가 보았던 초기의 풍신대는 아마 차세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아직 전생 후 시간이 별로 흐르지 않은 시점이므로 전대 풍신대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풍신대 중에서 뇌신류 제자를 개개인의 무력으로 앞서는 존재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십 명이나 되는 절정고수 떼거지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다.

용중일이 말했다.

"오, 그래 자네 제자들은 하나같이 뛰어나군. 풍신대를 상대로 어디까지 선전할 수 있나 기대해 보지."

"......"

이광은 잠시 침묵하다가 내게 전음을 날렸다.

[ 언제든 비등을 쓸 준비를 해 둬라.]

[ 알겠습니다.]

이광은 현재 후퇴에 초점을 맞춘 듯 했다. 그도 그럴것이 절정고수라고 하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무예에 있어서 하나의 극점을 넘보는 달인을 의미했다. 그런 존재가 수십 명이나 모여있으면 단순히 비기를 난무해서 이길 수는 없다. 또한 용중일이라고 하는 초절정고수도 있었기에 쉽사리 승산을 점치기 힘들었다.

스스슥

나, 진소청, 극호, 구철이 풍신대 앞에 섰다. 나는 풍신대가 뿜어내는 합진(合陣)의 기(氣)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저 자들이 합격술도 수련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내 내공으로 압박감을 몰아내고 있었지만 확실히 버거운 상대라는 게 느껴졌다.

' 흠. 어디 해볼까.'

나는 진소청과 극호에게 전음을 보냈다.

[ 20초만 내가 힘을 모을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진소청과 극호는 내가 무얼 하려는지 알아챈 듯 했다. 그래서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해 보자."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쒸잉 -

까가강!

요란하게 검풍(劍風)과 도풍(刀風)이 사방에서 휘날렸다. 풍신대 고수들이 본격적으로 풍백보를 운용하며 우리를 사방에서 둘러쌌고, 우리는 사방을 틀어막으며 그들의 합격진을 막아내야 했다.

"하압!"

동시에 이광은 번개처럼 달려들어서 용중일과 양대호법에게 비기 뇌공섬을 날렸으며 뇌룡(雷龍)이 전방으로 쭉 뻗어나갔다. 전장을 분리하려는 의도였다.

콰과광

잠시 후 이광을 포함해서 네 명의 고수들이 저만치 일 리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여기저기에서 빛이 난무하며 이광과 진소청, 구철이 온힘을 다해서 풍신대와 싸우는 게 느껴졌다. 곡옥의 형태로 있던 미호가 다급하게 말했다.

[ 괜찮겠어? 안 도와줘도 괜찮겠느냐?]

' 괜찮아. 잘 봐.'

우우우웅

나는 검신(劍身)에 힘을 가득 불어넣었다. 그러자 천뢰인이 가득 끌어올려지더니 내 내공을 극도로 함축하기 시작했다. 천뢰인은 엄청난 내공을 받자 뭉게뭉게 피어오르더니 순식간에 일 장도 넘는 크기로 솟아올랐다.

쿠구구구

눈 앞에 뇌광(雷光)이 튀기 시작했다. 과거보다 백웅결으로 더욱 내공다루는 기술이 진보했고, 더욱이 가용내력도 크게 늘어났다. 그렇기에 천뢰인을 최대치까지 모으는 시간은 예전보다 훨씬 줄어든 상태였다. 풍신대는 내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챈 듯 더욱 격렬하게 공격해 들어왔다.

"죽여라!!"

콰앙

"그럴 수는 없지!"

놀라운 일이었다. 풍신대 절정고수들이 다함께 절초를 뻗어내서 그야말로 죽나싶은 순간, 진소청이 노호성을 내지르며 번개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가 뇌명(雷鳴)을 끌어올린 것이다!

"으아악."

근처에서 달려들던 풍신대 고수들 중 다섯 명의 목이 떨어지고 두 명이 튕겨져 나갔다. 진소청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지만 놀라운 일이었다. 대문파의 장로급 고수들을 순식간에 다섯 명이나 해치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극호가 진소청의 분전을 보더니 이를 악물며 외쳤다.

"으오오오오!!"

멸혼보(滅魂步)

비기(秘技)

천광(天光)

극호의 멸혼보에서 갑작스럽게 열두 개나 되는 뇌영(雷影)이 튀어나왔다. 멸혼보에서 뇌영을 생성하는 재주는 뇌신류에서 극호밖에 할 수 없는 재주로써, 극호만이 전수받은 멸혼보의 요령때문에 가능한 걸로 보였다. 그리고 극호는 지난 시간동안 수련을 하며 멸혼보의 진수에 한층 더 다가간 듯 했다.

"커억."

멸혼보 비기 천광이 펼쳐짐과 동시에 빈틈투성이 진소청을 노리고 달려들던 풍신대 고수들이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졌다. 놀랍게도 멸혼보에서 생겨난 뇌영이 마치 실제하는 것처럼 적을 공격한 것이다! 통상적인 분신에서 있을 수 없는 공격력이었기에 장내의 모든 고수들이 깜짝 놀랐다.

"허억, 허억."

녹림왕이라 불리던 구철은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십여 초의 난전이었지만 그는 체력과 기력이 다 떨어져서 죽기 일보직전으로 보였다. 그 또한 뛰어난 절정고수였지만 풍신대의 합공은 격이 다른 것이다. 나는 구철을 보자 마음이 조급해졌다.

' 더, 더, 더!!'

쿠구구구구...

뇌광을 머금고 피어오른 검기는 이윽고 강대한 뇌령지기로 구름을 형성했다. 파직거리며 일어난 전광은 마치 뱀처럼 검신을 휘감더니, 이윽고 부피를 줄이며 압축되기 시작했다. 나는 예전에 내었던 최대출력 천뢰인의 한계를 지금 이 순간 넘어섰다는 걸 알아챘다.

집중한다.

정제한다.

그리고, 내 모든 내공을 이 하나의 선(線)에 압축한다.

내 집중력이 하나가 되어서 발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일그러지듯이 뭉쳤다. 감각이 지나치게 팽배해져서 이명(耳鳴)이 울릴 정도였다. 머리가 윙윙거리며 아팠지만 다 무시하고 오로지 천뢰인을 압축시키는데에만 집중했다.

' ... 왔다!'

콰칭

그 순간이었다. 내 모든 내공을 불어넣은 천뢰인이 완성된 것은.

"이야아!"

나는 그 천뢰인을 들고 삼 초도 버틸 자신이 없었으므로, 사방팔방에서 몰려드는 풍신류 고수들을 향해 내리쳤다.

검강(劍罡).

그 찰나의 순간에 진소청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그 말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전에 천지가 빛으로 뒤덮였다.

쿠콰콰콰쾅

뇌광(雷光)이 폭풍을 안고 폭발하기 시작했다. 번개가 스쳐지나가자 그 자리에 있던 풍신대 고수의 몸뚱이가 말 그대로 소각되었다. 가공할만한 열과 뇌전이 사방팔방에 광선처럼 내려꽂히는 광경은 차라리 마법처럼 보였다. 실제로는 내가 꾸역꾸역 압축해 두었던 힘이 불규칙적으로 토해지는 것에 가까웠다.

빛이 새하얗게 일그러지더니 붉은 연옥을 만들어낸다. 풍신대 절정고수 여섯 명이 또다시 소각되었다. 나는 이 광폭한 힘을 제어할 수가 없어서 미친듯이 휘둘리며 기절할 것 같았다. 그러나 간신히 버티며 최대한 많은 적을 맞추려 했다.

콰광

다시 한 번 2차폭발이 일어났다. 이번에는 근처에 몰려들었던 네 명의 풍신대 고수들이 육편이 되어서 사라졌다. 그들은 마지막 발악으로 나를 죽여보려 했던 모양이었지만 천뢰인의 검강에는 사각이 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군이 맞지 않게 하려고 부단히도 힘을 썼다. 진소청을 포함한 뇌신류 제자들은 이미 내 근처에 딱 붙어 있었지만 지금 토해내는 힘이 너무 강해서 어떤 여파가 올지 몰랐다.

쿠구구구...

마침내 천뢰인의 발휘가 끝났을 때, 산이 무너지고 구릉이 평탄해져 있었다. 이 곳이 대나무숲이었다는 걸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대나무숲에 대나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파괴가 지나간 것이다.

나는 적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쓸려나간 걸 알고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후우..."

이겼다.

비록 내공이 완전히 떨어져서 회복하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어쨌든 내 힘으로 적을 물리치는데 성공한 것이다!

내 옆에 앉아있던 극호가 이죽거렸다.

"크크크... 진짜로 내공으로 검강을 만들어버리네. 이 괴물자식."

나는 왠지 모르게 유쾌해져서 웃었다.

"헤... 헤헤... 천년설삼... 드시죠..."

"줘야 먹지 자식아."

시덥잖은 소리를 하는 동안 진소청이 말했다.

"극호 사형. 사제를 데리고 피해 주십시오."

"갈 거냐?"

"네. 충분합니다."

"알았다... 백웅은 내게 맡겨라..."

"저는..."

아.

정말 지친다...

나는 그들의 말을 끝까지 듣지 못하고 기절했다.

과거 10만번 베기를 했을 때 이상의 피로도가 한번에 몰려왔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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