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72화 (172/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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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진랑곡에 돌아오자 우리는 다시 이광을 찾아갔다. 비등을 사용해서 빠르게 이동하며 다녔으므로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은 상태였고, 뇌신류의 제자들이 불을 밝히고 이광을 눕힌 채 간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이광에게 내공금제를 하는 김에 강한 수혈을 자극했기 때문에 그는 오랫동안 잠들어있게 된 것이다.

나는 천천히 다가갔지만 그 순간 사공린이 발검(拔劍)했다.

피잉 -

검끝이 내 목젖 앞에서 멈춰서 떨렸다. 나는 이 쾌검의 솜씨가 예전에 봤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정밀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사공린 또한 두 달동안의 수련으로 엄청난 진보를 보인 것이다. 그녀는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물러서세요."

"내공금제를 풀려는 것 뿐이오."

"그걸 어떻게 믿죠? 진소청 사형도 우리를 배신한 마당에."

나는 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뇌신류의 제자로써 나를 접근시키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악의를 품고 사혈(死穴)을 눌러버리면 이광은 그대로 죽은목숨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진소청이 한걸음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그럼 내 목숨을 인질로 잡아."

"......!!"

진소청은 거침없이 성큼성큼 걸어서 사공린 앞에 섰다. 아무런 방비없이 서자 사공린이 말했다.

"무슨 의도죠?"

"말 그대로.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니 두말하지 않는다."

"정말로 제 검에 목숨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나요 사형?"

소리없이 그녀의 검이 움직였다. 그녀는 어느 새 절정급의 검술을 지니게 된 듯 했다.

사공린의 검기가 진소청의 목젖에 핏방울을 만들어 내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진소청은 목뼈가 쩍 갈라져서 죽을 게 뻔했다. 그러나 진소청은 흔들림없이 말했다.

"그래."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극호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린아, 비켜줘라."

"극호 사형."

"내가 책임진다. 저 놈아가 저런 말 하고 남을 기만한 적은 없지."

사공린의 검이 거두어졌다. 나는 어색한 침묵을 등지고 이광에게 다가가서 해혈(解穴)을 했고 수면상태도 풀어 주었다.

잠시 후 이광이 번쩍하고 눈을 떠서 상체를 일으켰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관련자가 모두 모여있자 대번에 상황을 판단한 듯 했다. 그는 잠시 나와 망량을 노려보더니, 이내 안타까운 눈으로 진소청을 바라보았다.

"소청아... 네가 어째서..."

진소청이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허나 그게 제가 생각하는 옳은 길이었습니다."

"......"

이광은 침음성을 흘렸다. 깨어나자마자 날뛸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그는 진소청에게 제압당했다는 정신적 충격이 더 큰 모양이었다. 그는 상체만 일으킨 채 침대에 한동안 앉아 있다가 말했다.

"... 지금은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모두 나가라."

이광이 고개를 돌려서 누웠다.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있는 자는 장내에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말없이 이광의 방에서 걸어나갔다. 나는 뇌신류 제자들이 나나 진소청에게 따지거나 울분을 흘릴 줄 알았지만, 뜻밖에도 그들은 아무런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되려 내가 민망해질 정도였다.

휘이잉

대신에 극호가 팔짱을 낀 채 숲의 찬바람을 맞고 있다가 말했다.

"어이, 반천맹주라고 했냐?"

"그렇소."

망량이 대답하자 극호는 망량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사부는 네 편이 될 거다."

망량이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자 극호가 신경질적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네놈 뜻에 따라갈 수밖에 없겠지."

"그럼 나야 좋은 일이오."

"빌어먹을."

그는 한 마디 욕지기를 하고는 침묵해 버렸다.

' 그도 알고 있군.'

극호는 물론 뇌신류 제자들은 알고 있다. 여기서 나나 진소청을 성토해봤자 상황이 바뀌지는 않는다는 것을. 결국 이광의 뜻에 달려있지만, 이광은 진소청을 벨 수가 없기에 결국 반천맹의 뜻에 따를수밖에 없다.

독단적으로 떨어져 나가봤자 백련교와 십년지약을 맺은 이상 철저하게 손해가 될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망량에게 거대한 위협을 느낀 시점의 이광이면 몰라도 한차례 기세가 꺾이고 냉정해진 이광은 앞으로도 반천맹의 편에 설 수 밖에 없다 - 그 사실을 극호가 읽어낸 셈이었다.

하지만 이건 뇌신류가 전적으로 굴복했다는 뜻이 아니었다. 도리어 망량이 지금부터 제대로 방향을 잡아서 나아가지 않으면 언제든 반천맹의 뒤통수를 때릴수가 있다. 다만 다행인 것은 극호는 진소청을 원망하기보다는 절반쯤은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그 날 사원에서 적당히 불을 피워서 끼니를 때운 후 잠들었다. 나는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 쳇. 어떻게든 되겠지.'

이광이 모두를 불러모은 것은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떴을 때였다.

"반천맹주. 앞서 내가 그대의 목숨을 노린 걸 사과하겠네."

이광의 목소리는 다시 힘을 되찾은 상태였다. 그의 눈빛에는 정광이 감돌아서, 하루의 시간동안 그가 충분히 정신적인 기력을 회복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부치며 말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도 이 일에 대해 논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맙네."

이광이 옆에 있던 나와 진소청을 보며 말했다.

"너희들의 행동도 불문에 붙이겠다. 이 일은 없었던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상황을 얼추 정리한 후 이광이 물었다.

"반천맹주. 그럼 말해 주게. 나를 제압한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론이지요."

망량은 우리가 백련교에 들러서 백련교주와 이야기했던 내용을 모두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망량선사에게 들러서 파천의 가호를 받은 이야기도 했다. 거기까지를 주의깊게 듣고 있던 이광이 말했다.

"즉... 백련교 소교주의 괴질은 인간이 아닌 사신(邪神)의 짓거리이고, 백련교주는 앞으로 그 단서와 칠요를 찾게 될 것이며, 그 일을 반천맹이 대리하게 되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지? 소교주가 회복되면 백련교는 거침없이 세상에 나올 것이고 뇌신류는 커볼 틈도 없이 짓밟힐 텐데."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펄럭이며 대답했다.

"반대로 여쭤보겠는데, 만일 그 사실을 전하지 않았다면 백련교가 괴질을 회복할 방법을 찾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

"그쪽에서 괴질치료법 탐색을 반천맹에게 맡겼다는 건,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적수의 정보도 충분히 전해들을 수가 있고요. 괴질치료법같은 건 필요할 때 찾아서 확보해둔 후 백련교와 추가협상을 하는데 쓸 수가 있습니다. 나쁠 게 없는 선택입니다."

"그건 너무 긍정적인 해석이군. 우리 사이에 아직 그 정도의 신뢰가 쌓인 것 같지는 않은데."

망량은 중요한 설득구간이라 생각했는지 옆에 놓아둔 물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진중한 눈으로 말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백련교는 이미 화신류 호법사자를 황도 낙양의 한씨세가에 침투시켜 놓았고, 풍신류로 하여금 구파일방은 물론 마도팔문에까지 영향력을 뻗치게 만들어두었습니다. 이미 그들은 천하를 언제든 장악할 발판을 마련해 둔 상황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그들을 배척하며 일방적으로 정보를 얻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동창과 개방 수뇌부를 동시에 장악하지 않는 한에는 절대 불가능이죠."

"흐음."

"백련교는 가장 큰 적수입니다. 그런 만큼 가까이 두면서 최대한 정보를 이끌어 내어야겠죠. 이제부터의 행동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광은 망량의 말을 곰곰히 생각했다. 그리고 약 반 각이 지난 후에야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의 말이 맞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반천맹주 망량, 자네는 정말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 있군. 소청이가 그대를 얻었다면 좋았을텐데..."

뭔가 한숨 비슷한 소리를 하던 이광의 싸늘한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왠지 모를 살기가 느껴져서 내가 움찔하자 이광이 살기를 거뒀다. 그러더니 말을 이었다.

"좋아. 그럼 용중일의 다음 수를 백련교주가 막아준다는 거겠군. 어떤 전개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막아내지는 못하고 일단 일이 벌어진 후에 사후수습에 나서는 수준일 겁니다. 우리는 그 때까지 버텨내야겠지요."

"으음... 역시 무림공적(武林公敵)인가."

"틀림없을 겁니다."

듣고 있던 나는 망량에게 질문했다.

"무슨 소리요? 무림공적이라니..."

이어진 망량의 무덤덤한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지금쯤 어디에선가 뇌신류의 무공에 참혹하게 살해당한 시체가 만들어지고 있을 거요. 그리고 정천맹 구파일방에서는 그 원인을 조사하다가 백련교의 사특한 첩자인 뇌신류의 존재를 알게 되고, 뇌신류를 무림공적으로 지적하겠지."

"......!!"

"그래서 지금 막기는 늦었다는 거요. 이미 증거도 증인도 정치도 끝나있을테니 우리가 손쓸 수 있는 건 없소."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황당해서 허둥대자 이광이 쓴웃음을 지으며 내게 설명해 주었다.

"백웅. 잘 들어라. 반천맹주가 말한 것은 무림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멸문의 행태이다.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라 정천맹이나 마도팔문에서는 무림공적을 지정해서 멸망시킨 일이 많이 있다."

"그, 그런. 구파일방이 우리를 협공한다는 겁니까?"

"정확히는 용중일의 요청을 받은 구파일방의 무력단체와 오대세가의 의협들, 그리고 마도팔문에서 쥐꼬리만큼 보내놓은 마도고수들이겠지. 본래 무림공적이라는건 정사파가 함께 치도록 되어 있으니까."

"......"

이광과 망량은 왠지 무림공적이나 지정되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알고 있는 듯 했다. 아마도 이광은 전직 황궁출신인데다가 무림정보를 상세히 잘 알고 있는 백전노장이기 때문일 것이다. 망량은 원래 그러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량이 차분하게 말했다.

"아주 뻔한 수법이지만 용중일이 대놓고 말해줘도 막을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석적이고 강력한 흉계요. 왜냐하면 그는 구파일방 황산파의 장문인이고 심지어 정천맹 내에서의 발언권과 영향력도 강력하오. 용중일이 강짜를 부리는데도 정면으로 반박할만한 인물은 종남파의 연정홍 장문인 정도겠지."

"연정홍..."

나는 연정홍 장문인 이야기가 나오자 기억이 떠올랐다.

종남제일검(終南第一劍) 연정홍!

그는 종남파의 십대장로를 합친것보다 더욱 강렬한 인상을 내게 남겨준 적이 있었다. 십대장로가 합공하겠다고 위협하는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진소청이, 연정홍이 나타나자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던 적이 있었다. 연정홍은 절정고수를 완전히 초월한 극강의 초절정 검도고수인 게 틀림없었다.

"잠깐. 뇌신류 무공흔적이라는 걸 놈들이 어떻게 만들겠소? 어떻게 뇌신류의 무공을 쓴단 말이오?"

"내 생각이지만 뇌신류와 풍신류는 기본적인 무공을 공유(共有)하고 있을 거요. 그렇지 않습니까?"

망량의 눈은 이광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이광은 한숨을 쉬었다.

"그 말이 맞네. 뇌신류와 풍신류를 포함한 사대무류가 함께 지내온지도 천여 년이나 되는 세월이었기에, 기초적인 내공심법이나 권장법 정도는 상당히 많은 부분이 닮아있지. 심화과정으로 갈수록 차별될 뿐 놈들도 기초적인 뇌령지기를 사용할 줄 안다."

"......!!"

"물론 우리도 풍령지기(風靈之氣)를 쓸 수 있지. 이런 식으로."

후웅

이광의 손바닥 위에서 바람같은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충분히 실전에 쓸 수 있을 정도로 날카롭고 정제된 기운이었다. 아마도 이광은 비전수법을 이용해서 뇌룡일기공을 운용해서 풍령지기를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바람의 기운을 거둔 이광이 말을 이었다.

"마찬가지로 화신류와 수신류도 얽혀 있지. 태초부터 전해지는 사대무류는 자연지기를 근간으로 하기에 근본부터 닮을수밖에 없다."

귀중한 사실을 알게 된 듯 했다. 나는 신기해서 이광에게 질문했다.

"그럼 저도 수련을 하면 화령지기나 수령지기를 다룰 수 있는 겁니까?"

"그렇다. 그러나 네 내공의 근원은 뇌령(雷靈)이기에 기초수준 이상은 다룰 수가 없다. 상생상극(相生相極)이 명확하기 때문이지."

"저기... 그럼 그동안 왜 이 사실을 안 알려주신 겁니까?"

"그야 이런걸 알아봤자 네 수련에는 방해만 될테니까."

"......"

이광이 일부러 말을 돌려서 했지만, 그게 사실상 [재능이 부족하니까 가르쳐주는 거나 잘 배워라] 라는 의미라는 건 충분히 알 수가 있었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전생에서의 이광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그러자 이광이 멋쩍은 듯 말했다.

"물론 지금의 너라면 충분히 쉽게 배울 수 있을 거다. 원하면 바로 알려 주마."

"네 감사합니다."

그도 무작정 내 재능을 갖고 몰아붙이기엔 염치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뇌신류에 쌓인 공적이 있기 때문이리라.

망량이 말했다.

"우리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인가?"

"하나는 백웅의 목갑을 이용해서 아예 동영으로 피신해 버리는 것. 또 하나는 중원에서 무림공적으로써 맞서싸우면서 버티는 것."

"후자의 이득은?"

"어쨌든 뇌신류는 개파를 한 것이니 그 이름이 중원에 떨쳐질 겁니다. 악명으로라도 떨쳐지겠지요. 그리고 천지사방에 흩어져 있던 뇌신류의 달인들이 그 소식을 알게 될 겁니다."

"그들을 받아들일 때까지 버티자는 소리군."

"가능하다면 말이죠."

나는 듣고 있다가 망량의 말에 딴지를 걸었다.

"설령 버티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무림공적으로 몰리고 있는 뇌신류에 굳이 달인들이 찾아와서 합세를 해 줄거라 생각하오? 와봤자 죽을 가능성이 높을 텐데."

내 질문에 망량은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이광이 씩하고 웃었다.

"우리 뇌신류에 그렇게 앞뒤 다 재어보는 이성적인 놈이 많다고 생각하느냐?"

"......"

왠지 반박하고싶은데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이었다.

망량이 말했다.

"그럼 우선 내일 모레라도 강호문파에 첩지를 돌리고 개파대전을 열도록 하지요. 아무리 무림공적으로 지정한다고 해도 일단 개파대전을 여는 때만큼은 공격을 하지 못하는 무림의 불문율(不問律)이 있으니까요."

"그게 좋겠군."

뇌신류 개파대전!

풍신류의 흉계에 대항하는 뇌신류의 선전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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