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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우리는 망량의 요청에 따라 망량선사가 있는 마을로 이동했다. 물론 천암비서는 소나무숲에 묻는 걸 잊지 않았다. 마을 안으로 들어가자 천우진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이오?"
"스승님께 긴히 여쭤볼 일이 있어서 찾아왔네."
"저 자들은?"
천우진이 이쪽을 힐끔 보자 진소청이 그에게 포권했다.
"나는 뇌신류의 진소청이라 하오. 만나서 반갑소."
"흠, 당신도 무림인이군."
그리 달갑지 않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던 천우진이 말을 이었다.
"얌전히 있다 가시오. 근자에 스승님께선 신경쓰실 일이 많아지신 듯 하니."
"무슨 말인가 사제?"
망량이 질문하자 천우진은 한숨을 쉬었다.
"패왕(覇王)의 별이 움직였소. 사형은 천기를 읽지 않았단 말이오?"
"요즘 바빠서 천기를 읽을 틈이 없었네."
"성좌가 요동치는 걸로 보아서 조만간 거대한 존재가 날뛸 거라 생각되오. 선인계에서도 크게 주시하고 있으니 수호자인 스승님께 이런저런 요구가 많이 들어오는 것 같소."
"음... 그렇군."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궁금해져서 천우진에게 물었다.
"패왕의 별이 뭐요?"
그는 나를 잠시 째려보았지만 이내 설명해 주었다.
"별자리가 3원 28수로 이뤄져 있는건 당신도 알 거요. 그리고 그 3원 28수는 아주 오랜시간동안 역사 속에서 변동을 하고 있으며, 그 변동 속에서 북극성(北極星)을 도와 균형을 잡는 독특한 별이 있소. 그걸 천문에서는 패왕의 별이라 부르며, 그 별이 움직일 때 천하에 거대한 변동이 일어난다 했소."
"그런 게 있었던가..."
그러자 왠지 망량이 더 이상의 언급을 피하고 싶은 듯 나를 재촉했다.
"어서 갑시다. 시간이 없으니."
우리는 망량을 따라서 망량선사를 모시는 사당 앞으로 갔다. 그리고 망량이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했다.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을 꺼내 보시오."
"음? 그거야 상관없지만... 이걸 꺼내면 연금술사의 추적술법 때문에 위험해지는 거 아니오?"
"괜찮으니 어서."
파앗
나는 망량의 주문대로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을 목갑에서 꺼냈다. 초상기인 3체가 커다란 수정석비 아래에 나란히 누워있는 형태가 되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진소청이 놀라서 말했다.
"사제 이건 대체 뭔가? 왠 사람이..."
"좀 있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망량의 말대로 하죠."
"흐음."
망량은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사당 앞으로 가서 공손하게 예를 차리며 말했다.
"스승님. 제자 망량이 스승님을 뵙니다. 오늘은 거대한 의문점이 있어서 스승님을 찾아왔습니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마치 원래부터 망량선사라는 존재가 없는 것처럼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망량은 그 침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사실 알고 있습니다. 백웅의 윤회(輪回)는 무언가가 의문스럽고, 스승님은 그 위화감에 본신을 드러내기를 꺼리신다는 사실을. 지금까지 백웅의 전생행적을 들으며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에게 저주가 있다면, 이대로 피하기만 해서 좋은 일일지요? 그에게는 정의의 마음과 의지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기에 백웅과 뜻을 함께 하여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에 직면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술사의 길이라 늘 말씀하지 않으셨는지요?"
거기까지 말한 망량이었지만 여전히 대답도 반응도 없었다.
망량은 길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정 그러시다면 저 나름대로 도박을 하려 합니다. 여기에 현자의 돌을 제작할 수 있는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이라는 술체(術體)가 있으니, 이를 경계의 제망량께 공양하고자 합니다. 그 대신에 이 제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셨으면 합니다."
"......!!"
나는 깜짝 놀랐다.
물론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을 연구할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면 차라리 공양이나 해버리자는 이야기는 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설마 망량선사에게 바쳐버릴 줄이야? 그러자 잠시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쿠구구구
갑자기 거대한 수정석비가 위에서부터 가루가 되어서 흩어졌다. 무려 삼 장 크기의 수정석비가 모래먼지가 되어서 흩어지는데는 눈을 열 번 깜박이는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고, 이어서 누워있던 초상기인들도 괴이한 공간의 왜곡(歪曲)에 빨려들어가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일단의 광경은 마치 무언가가 공양물을 [먹어치우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괴이한 광경을 숨죽여서 보고 있자, 이내 중후한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퍼졌다.
[ 내 인간제자, 망량이여. 확실히 네가 원하는 세계의 비밀은 이만한 댓가가 있어도 알려줄지 말지 고민하게끔 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인간생명 100개 정도가 더 있어야 균형이 맞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
그러나 우리는 그게 망량선사의 목소리라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망량의 얼굴이 환하게 펴진 것이다. 잠시 후 망량선사가 말했다.
[ 그러나 네가 나의 제자라는 사실을 감안하여 이 공양물로 만족하기로 하겠다. 그에 따른 업(業)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 질문해 보거라.]
기묘한 말투였다. 마치 망량이 무엇을 질문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말투가 아닌가?
망량이 입을 열었다.
"현재 중원의 역사는 [옛 지배자]인 무생노모(無生老母)에 의해 왜곡된 역사입니까?"
[ 그렇다.]
그 말을 들은 망량은 물론 나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백련교의 신인 무생노모가 옛 지배자이며, 이 세상의 역사를 바꾸었다는 게 사실이라니! 망량선사는 마치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
[ 중원의 역사가 백련교에 의해 변하면서 고려와 동영의 역사도 바뀌었지. 물론 저 멀리 서역의 역사마저도...]
"그렇다면 백련교 또한 [옛 지배자]의 세력이라고 보아도 좋겠습니까?"
[ 그렇지는 않다.]
망량선사는 잠시 뜸을 들이고는 설명했다.
[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옛 지배자라고 불리는 자들은 동격(同格)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도 엄연한 위계와 서열이 있으며, 심지어 심대한 격차가 존재한다. 무생노모는 그들 중에서도 매우 강력한 존재로써 사실 인계(人界)에는 거의 관심이 없다. 그 존재는 외신(外神)이기 때문이다.]
"외신이란 게 무엇입니까?"
[ 옛 지배자조차도 신(神)으로 섬기고 신앙할 정도로 지고한 존재들이다. 애초에 인류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스스스
어느 새 장내에는 새까만 고양이가 나타나 있었다. 내가 늘 꿈에서만 보았던 망량선사의 화신이었다. 목소리를 내는 게 귀찮은지 자신의 화신을 보내서 대신 말하게 하려는 듯 했다. 고양이가 말했다.
[ 백련교의 시조는 불법(佛法)을 고도로 수양한 고승(高僧)이었다. 만당 시절, 인간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민초가 극도로 고통받자 그는 고뇌했지. 그리고 인간의 힘을 초월한 존재를 간절히 찾아다녔고, 그 존재의 힘으로 이 세상을 열반(涅槃)에 들게 하리라고 마음먹고 백련교를 만들었다.
외신(外神) 무생노모의 힘을 빌리는 주문을 얻은 덕이었지.
그렇기에 그들이 모시는 무생노모라는 존재는 사실 인간계에 백련교라는 교단이 있다는 것도 잘 모를 것이다. 섬김도 필요없는 존재니까. 단지 인간계에서 간절히 외치고 있으니 마법적인 가호와 축복을 내려줄 뿐이겠지. 그런 걸 세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잠깐. 좀 이상한데."
[ 뭐가?]
"옛 지배자란 놈들은 인간의 육체나 영혼을 공양받아야 그 댓가로 변덕스럽게 힘을 내려주는 거 아니었어? 왜 그 무생노모는 아무 댓가도 없이 심심풀이로 백련교에 힘을 주는 거지?"
내 질문에 고양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말했다.
[ 나야말로 이상하군. 그 존재가 왜 그런 걸 신경써야하지?]
"뭐?"
[ 인간들이 무생노모라고 부르는 그 존재는, 우주의 중앙에서 불경스런 일언(一言) 만으로도 삼천세계를 파괴하는 힘이 있다. 옛 지배자라는 자들은 그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절한 댓가가 있어야 하지만 그 존재는 다르다. 무한(無限)의 권능을 지니고 있기에 하릴없는 여흥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망량이 몸을 움찔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생전 처음 보는 '공포'라는 감정이 드러나 있었다. 그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떨더니 말했다.
"서, 설마 스승님... 그 존재는 예전에 말했던 그..."
[ 그렇다. '그'다.]
"이럴수가... 역시..."
망량이 침통한 표정을 짓자 고양이가 그를 달래주려는 듯 다가갔다. 그리고 망량의 바지자락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더니 말했다.
[ 걱정 마라. 그 존재는 이 세계를 인식하고 있지 않다. 그저 혼돈 속에 잠들어 있지. 백련교도 그 자의 권능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그저 힘의 극미하고도 극미한 편린을 아무 이해도 없이 가져다 쓸 뿐이다. 네 걱정은 지나치게 앞서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망량이 크게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렸다.
[ 그러나 네 걱정도 일리는 있다. 만일 백련종의 창시자가 남겨둔 최초의 법문(法文)을 백련교에서 해석하여 온전히 외신의 힘을 얻게 된다면 위험하다.
뭐 그 존재는 선종(禪宗)또한 창시했으니, 현재 무생노모의 법문은 이 세상의 온갖 불종에 흩어졌겠지. 그래서 적어도 천 년 정도는 아무런 걱정거리가 없으리라고 본다.]
나는 끼어들어서 질문했다.
"위험하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위험하다는 거지? 무생노모의 완전판 경문을 외우면 외신이 강림하나?"
[ 아니, 끝난다.]
"뭐가 끝나는데?"
[ 그냥 모든 게 끝난다. 더 생각할 필요도 없겠지.]
"......!!"
나는 경악했다.
백련교에서 모시는 무생노모라는 신이 그렇게 위험한 존재였다는 말인가?!
' 근데 어째 말하는 걸 보면 너무 아득하게 높아서 되려 걱정이 덜하다는 말투군...'
망량은 아마 그 무생노모의 정체가 뭔지 대충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게 굉장히 큰 비밀이라고 여겨서, 대라신선으로써의 망량선사에게 공양물을 바쳐서까지 들어야겠다고 결심한 듯 했다.
망량선사의 화신인 고양이는 이윽고 사당 위에 폴짝 뛰어올라가더니 말했다.
[ 그건 그렇고 오랜만이구나 미호. 하는 일은 잘 되어가느냐?]
스스스슥
그러자 내 목에 걸린 곡옥의 형태에서 미녀의 모습으로 미호가 변신했다. 그녀는 고양이를 보더니 심통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망량선사! 남 일 신경쓰지 마라. 네가 나한테 뭐 해준 게 있다고 오지랖이란 말이냐?"
[ 그것도 그렇군. 하지만 천계의 그 귀여운 꼬마여우가 잘 지내는지 늘 걱정되어서 말이지.]
"이익. 이 늙퉁이 아재가..."
미호는 왠지 발끈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냥 넘어가는 듯 했다. 그리고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하는 김에 인심 좀 더 써봐."
[ 무슨 소리지?]
"초상기인인가 뭔가는 몰라도 수정석비는 궁극의 연금술인 현자의 돌을 제작할 수 있는 거였는데 고작 정보 하나 알려주고 끝낼 셈이냐? 제자를 사랑한다면 좀 더 팍팍 도움을 달라는 말이다!"
나는 당당하게 말하는 미호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망량선사는 대라신선을 뛰어넘는 힘을 지닌 선계의 수호자인데, 그런 망량선사에게 강짜를 부리는 배짱이라니? 자칫하다가는 여기서 14번째 죽음을 맞이할까봐 더럭 겁이 났다.
하지만 고양이는 느긋하게 사당의 지붕에 웅크리더니 말했다.
[ 현자의 돌 진본을 가져왔다면 파천의 가호를 내렸겠지만 제작법만으로는 의미없다. 그자체로 뛰어난 법보라는 건 인정하지만 대가가 부족하지.]
"그~러~니~까~ 너는 태상노군이 아니라면 옥황(玉皇)의 명령이라도 개무시하는 미친놈이잖아? 그런 대가따위는 좀 무시할 수 있지 않냐고."
[ 흐음...]
미호가 험악하게 말하자 고양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러더니 망량에게 말했다.
[ 그럼 나의 제자 망량이여. 두 가지 제안이 있는데 들어보겠느냐?]
"하명하십시오, 스승님."
이어진 말에 장내의 모두가 깜짝 놀랐다.
[ 너는 이제 곧 죽을 운명이다.]
"그렇군요."
[ 네 수명을 늘리면서 약화된 가호를 받을테냐, 그렇지 않다면 네 운명에 수긍하고 다른 자들에게 가호를 돌리겠느냐?]
망량이 죽을 운명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버럭 외치며 달려들었다.
"빌어먹을 무슨 소리야!! 망량이 왜 죽어!"
고양이의 몸은 흐릿해지더니 사라져서 다른 곳에 나타났다. 애초에 환영이라서 내 힘으로는 붙잡을 수 없었다. 고양이는 아무 감정 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 망량의 천명(天命)은 본디 고희(古稀)를 넘어섰다. 그러나 백련교의 천명과 네 운명, 기타 왜곡된 천명에 휘말려버린 바람에 극단적으로 남은 시간이 줄어들었지. 이제 곧 일이 년 내로 죽음의 운명이 찾아오게 될 것이다.]
"......!!"
망량선사는 마치 찌르듯이 일침을 가했다.
[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 너와 함께 하는 한.]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설마... 내가 망량을 끌어들이는 순간, 그는 천명을 누릴 수 없게 되는거란 말인가?'
그럴만도 하다. 백련교나 천하무림은 물론 황궁에 대립하며 온갖 모험을 하는 것이다. 내가 파리목숨처럼 죽어나가는 일은 거의 당연한 것이었으며, 망량도 그만큼의 위험부담을 무릅쓴다. 그렇다고 하지만 대라신선급 존재에게 죽음을 언도받는다는 건 무게감이 다른 일이었다.
그 때 망량이 말했다.
"스승님. 저는 후자를 택하겠습니다."
"......!!"
내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던 진소청이 내 입을 막으며 멈춰세웠다. 그러자 망량선사가 말을 이었다.
[ 정말 그걸로 좋겠느냐?]
"네."
[ 네가 지금이라도 백웅을 버리고 다른 주군을 찾아간다면, 너는 본래 수명인 고희를 모두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책사로써 원하는만큼 마음껏 재량을 발휘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후자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냐?]
"물론입니다. 저는 선택했으니 스승님은 망설이지 마십시오."
[ ... 좋다.]
파앗!
[ 파천의 축복을 내렸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기를 바라겠다.]
그 말을 남기고 망량선사는 사라졌다.
나는 석양을 받은 채 멍청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팔락이며 땀을 닦았다.
"어, 덥군."
나는 그를 바라보며 멍하니 말했다.
"대체... 어째서..."
망량의 수명은 몇 년 남지 않았다는 말.
나는 너무나 큰 충격이라서 멍하니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진소청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사형!! 왜 나를 막았소!!"
거대한 사자후가 울려퍼졌다.
진소청이 순간적으로 나를 막아서 제압하지 않았다면 나는 분명히 뛰어들어서 모두 취소하고 망량의 수명을 늘여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소청때문에 제압당해서 아무것도 못한 것이다. 그러자 진소청이 침중하게 말했다.
"그가 전음으로 내게 부탁했네."
"뭣..."
"맞소. 내가 진소청에게 당신을 막으라 했소."
태연하게 말하는 망량이었다. 나는 이해가 안되어서 망량에게 외쳤다.
"그냥 당신의 수명을 늘이면 되는 거요! 그깟 가호가 없으면 뭐가 어떻다는 거요?! 대체 뭐가 어떻다고!! 당신만 있으면 되는데!"
망할 망량선사의 가호 따위 아무래도 좋다. 어째서 망량이 일찍 죽어야 한다는 말인가?
망량이 살아서 계속 나를 도와줘야 의미가 있었다.
설령 내가 도중에 죽는다 하더라도 망량이 계속 살아주면 그것도 좋은 것이다.
내가 피를 토하듯 외치자 망량이 말했다.
"항우."
"뭣?"
"충분히 예상할 수 있소. 아마 내 천명이 극단적으로 짧아진 이유는 당신에게 내려온 항우의 축복 때문일 것이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물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자, 망량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백웅. 지금까지 당신이 어떻게 전생하면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있소?"
"음... 그건..."
"당신은 잘 진행하다가 난데없는 불확정요소로 인해 급사(急死)하기 일쑤였소. 그리고 이번의 불확정요소는 항우이고, 당신과 내가 뜬금없이 죽게 될 이유는 그것밖에 없소."
망량이 섭선을 접어서 나를 가리켰다.
"그리고 항우의 축복에게서 당신을 막아 지켜줄 수 있는 건 동급의 가호 뿐. 그렇기에 나는 내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존재인 스승님께 파천(破天)의 가호를 받아 당신을 지키기로 마음먹은 것이오."
"파천의 가호가 무엇이길래..."
"걱정하지 마시오. 스승님의 가호는, 어쩌면 당신이 지금까지 받은 모든 가호를 합한 것보다 강력할지도 모르니."
그렇게 말한 망량이 미호와 진소청을 한번씩 바라보더니 말했다.
"제가 죽고 나면 백웅을 잘 부탁드립니다. 당신들의 도움이 있다면 백웅은 끝까지 갈 수 있을 것입니다."
"......"
미호와 진소청은 뭐라 말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미호가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하다, 인간. 내가 괜한 말을 꺼내지만 않았어도..."
"아닙니다. 미호님이 말씀하지 않았다면 제가 말하려 했습니다. 어차피 다가올 일이었으니까요."
훗하고 웃은 망량이 내게 말했다.
"그럼 진랑곡으로 돌아갑시다. 서둘러 다음 수를 준비해야겠소."
"... 어째서."
나는 망량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목이 메고, 표정이 일그러지고, 타는 느낌과 함께 눈에서 굵은 물방울이 떨어진다. 이렇게 추하게 운 적은 달리 없었던 거 같은데 감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강짜를 부리며 망량선사에게 수명을 늘여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망량 본인이 그걸 가장 원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어째서 자신의 죽음에 그리도 무덤덤하오..."
망량이 오화칠금선으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 누르더니 말했다.
"글쎄. 당신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오."
"응...?"
"내가 쓸데없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늘 죽음을 반복하는 당신에게 신뢰를 얻기 힘들겠지. 그냥 그런 문제요."
"......!!"
망량은 내 손을 걷어내며 그저 냉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죽는다는 보장도 없소. 천명이라는 건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라, 나중에 상응하는 공물을 바치면 다시 수명을 늘일수도 있소. 동영 땅에는 태산부군제라는 술법도 있고. 그렇지요 미호 님?"
미호는 망량이 자신을 지적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있다."
망량이 껄껄 웃었다.
"뭐 그런 거지."
"그런 거요?"
망량이 힘주어 내 손을 맞잡았다.
"물론이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질질 짜면서 시간낭비를 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 이길 준비를 하는 거요!"
"... 알았소!"
나는 망량의 말을 듣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망량의 말대로 파천의 가호라는 걸 이용해서 앞으로의 진행을 유리하게 이끌고, 망량의 목숨을 늘일만한 기물이나 법보를 찾으면 되지 않는가?
우리는 그렇게 파천의 가호를 받아서 진랑곡으로 되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