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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소교주의 괴질이 [옛 지배자] 때문이라니!
망량은 황산파의 회담에서 전음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었단 말인가? 우리가 놀라서 망량을 쳐다보자, 그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말씀드렸듯이 저희의 주적은 황궁이지만 정확히는 그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이족(異族)입니다. 그 자들의 암류를 조사하다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 그렇군... 그대들에게 공감이 가는군.]
백련교주는 짧게 탄식하더니 말을 이었다.
[ 자네는 며칠 전 내게 말했지. 소교주의 괴질을 고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다고. 그게 무엇인가?]
"바로 칠요(七曜)의 힘을 응용하는 것입니다."
망량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 저희가 괴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단서는 아주 적습니다. 암호처럼 되어있는 신화시대의 단서인데, 이걸 전해드린다 해도 찾아내기는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기왕이면 앞으로 백련교가 추구해야 할 방향을, 반천맹주로써 진언해드리기 위하여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 칠요... 방향이라...]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백련교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그 전에 신화시대의 단서라고 하는 것부터 듣고 싶군.]
"네. 바로 성련의 원형인 흑백련을 찾으면 괴질의 치유가 가능한데, 그게 삼황오제 전욱이 마지막으로 치수의 증거를 남긴 태곳적의 산이라고 합니다."
[ ... 확실히 찾기 어렵겠군.]
백련교주는 약간 어이없어 하는 기색이었다. 아마 정상적으로 동방무결이 이 단서를 가지고 백련교에 귀환했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 반응이었으리라. 망량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칠요의 힘이 있다면 흑백련이 없어도 [옛 지배자]의 저주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인지를 초월하는 힘이니 칠요를 먼저 노려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칠요라... 해동(海東)에 하나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지.]
"뭔가 하시고싶은 말씀이 있으신 듯 합니다만..."
망량이 말꼬리를 늘이자 백련교주가 말했다.
[ 반천맹주. 그대는 동방무결을 어떻게 했나?]
뜬금없이 핵심!
단순히 넘겨짚은 것일수도 있지만 백련교주는 대번에 우리가 정보를 입수한 방법을 유추해낸 듯 했다. 나와 진소청은 긴장된 기색으로 망량을 쳐다보았는데 망량은 뜻밖에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순순히 대답했다.
"현재 그는 저희 반천맹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 흐음... 그렇다면 그 외에도 내게 전해야 할 정보가 있을 텐데.]
"용화수(龍華樹)에 대한 거라면, 세상의 남쪽 끝에 있는 대륙에 숨겨져 있다고 합니다. 칠요 중 화요(火曜)의 비보 곁에서 잠들어 있다고 하지요."
[ 그렇군. 결국 칠요로 귀결되는 거였어.]
나는 그들의 대화를 따라갈 수 없었다.
즉 백련교주는 반천맹에서 백련교의 사자인 동방무결을 납치감금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망량이나 우리들을 분노해서 쳐죽이지 않고 차분하게 말을 잇고 있었다. 그리고 망량은 마치 그 사실을 예측이라도 한듯 태연하게 사실을 말해 준 것이다.
백련교주가 말했다.
[ 자네는 동방무결보다 더 나은 정보를 전할 수 있다고 확신했던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동방무결이 월국까지 가서 정보를 가져왔으나, 그걸 정리해서 옛 지배자에 도달하게 할 수 있는 건 저희밖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 무엇을 원하는가?]
"앞으로 칠요의 탐색과 소교주의 괴질치료에 대한 전반적인 임무를 저희 반천맹에게 맡겨 주십시오. 대신에 저희는 백련교와 우호적인 동맹관계를 맺고 싶습니다."
[ ......]
백련교주는 생각에 빠진 듯 한참동안 침묵했다.
나는 그제서야 망량이 말했던 '도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백련교주와 협상해서 칠요탐색의 의지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그 정보력을 댓가로 백련교와 동맹을 맺으려고 한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잘만 되면 반천맹은 단번에 무림최강의 무력단체를 등에 업는 셈이지만, 실패할 경우 우리 셋은 모두 이 자리에서 백련교주에게 죽고 말 것이다.
백련교주가 한참 후 입을 열었다.
[ 망량이라... 그대의 명호는 내가 아는 누군가와 똑같군. 그대는 망량선사와 어떤 사이인가?]
"저는 그 분의 제자입니다."
[ 역시인가. 참 재밌는 일이야.]
백련교주도 망량선사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는 왠지 웃는 듯한 기색이다가 말을 이었다.
[ 그대들도 알고 있겠지만 저주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하나는 태초의 성련같은 신성한 힘을 머금은 영약을 취득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저주의 술사를 해치우는 것이다. 내가 어째서 후자의 방법을 선택하지 못했다 생각하는가?]
"으음."
망량은 곤혹스러워하다가 정해진 대답을 했다.
"저주의 술사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정답이네.]
백련교주의 신형이 약간 옆으로 눕는 형태가 되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 지금부터 몇십 년 전의 일이었네... 나는 어떤 신적인 존재와 마찰이 생겨서 싸울 일이 생겼지. 정확히는 그 존재와 겨루어서 그의 물리적 실체를 파괴한 적이 있었네. 그 존재가 강력하긴 했으나 내 상대는 아니었어.]
"......!!"
그 순간 나와 망량은 두 눈을 부릅떴다.
' 미... 미친!!'
설마 백련교주는 [옛 지배자]와 전투를 한 적이 있단 말인가?!
천계에서도 건드리지 못하는 강대하기 짝이 없는 무시무시한 사신(邪神)과?!
전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기에 나는 그만 입을 벌렸다.
[ 하지만 그 자는 난데없이 영혼째로 날아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고, 그 이후 내 아들인 소교주에게 끔찍한 저주의 괴질이 씌워졌지.]
"......"
[ 나는 그 존재를 추적해서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싶었지만 이미 영혼이 되어서 사라져버린 자를 쫓을 방법이 없었네.]
망량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교주께서 해치우신 것은 아마 [옛 지배자]의 화신(化神)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옛 지배자란 존재는 이미 [죽음]을 초월했기 때문에 화신이 죽을 경우 본체가 암천향(暗天鄕)이라 불리는 이계(異界)로 되돌아가게 됩니다."
[ 알고 있네. 나 또한 그 사건 이후로 이족과 옛 지배자에 대해 많은 걸 조사해 보았으니...]
백련교주가 한숨을 쉬었다.
[ 내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차원을 넘어선 이계인 암천향까지 가서 그 존재를 찾아내 죽인다는 건 무리였지. 그래서 나는 전자의 방법으로 정상적인 치유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네.]
나는 사건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백련교주가 옛 지배자를 쳐죽였지만 그 옛지배자가 죽으면서 남긴 저주 때문에 소교주가 괴질에 걸린 것이다. 대충의 상황은 이해가 되었지만 나는 내심 풀리지 않은 의문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연금술사]가 수도에 뿌렸던 괴질이 소교주의 괴질과 대동소이했던 것일까?
괴질의 진행은 사람마다 편차가 있는데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망량이 말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습니다. 어찌하여 교주께서는 옛 지배자와 싸우게 되셨습니까?"
[ 서역(西域)에서 푸른 눈의 이방인이 찾아온 게 계기였지.]
"이방인?"
[ 그 이방인은 자신이 무명제사서(無名祭事書)를 얻는다면 천하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고 내게 제안했네. 허나 나는 관심이 없어서 그 자를 무시하고 내쳤는데, 그 자가 죽기 전에 자신의 생명을 댓가로 옛 지배자를 소환했네.]
무명제사서!
나는 힐끔 망량을 쳐다보았다. 망량과 눈이 마주치자 그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 서역의 이방인은 [연금술사]와 같은 마도사(魔道師)일 것이고 강력한 마도서인 무명제사서를 얻기 위해서 중원 땅까지 찾아온 듯 했다. 그리고 백련교주가 직접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그를 위험하게 여겨 척살대를 파견했을 것이고, 마도사는 죽기 전 홧김에 자기 영혼을 바쳐서 [옛 지배자]를 소환한 듯 했다.
망량이 물었다.
"교주께선 혹시 황궁이 이족의 힘을 빌리고 있고, 황제가 그들의 힘으로 불로불사를 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물론일세. 지금까지는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서 내버려두었지.]
백련교는 황궁의 암류를 파악한 상태이다. 하지만 인신공양의식이나 황궁 금의위의 활동같은 게 백련교에 직접 타격이 없기 때문에 무시했던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소교주의 괴질치료가 급한 상황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망량은 말했다.
"저희라면 칠요의 행적을 찾는 동시에 무명제사서와 치료법 모두를 찾아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를 믿어 주십시오."
[ 그렇게 하지. 앞으로 잘 부탁하네.]
"감사합니다."
[ 단, 동방무결은 이쪽으로 보내게. 그의 수고에 보답을 해 주어야 하니.]
"알겠습니다."
이야기는 평탄하게 흘러갔다. 나는 백련교주에게 맞아죽나 싶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탄했다. 내심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망량이 승산이 있으니까 도박을 걸었다는 걸 깨달았다. 교주로써도 뜬금없는 동방무결의 정보 하나만 믿고 움직이기 보다는, 이족이나 마도서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고 있으며 그 탐색과정을 대신 해 주는 반천맹이라는 단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맹을 맺어주신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만..."
[ 무엇인가?]
"현재 풍신류에서 뇌신류를 견제하고자 나선 듯 한데 이는 뇌신류와 연수하고 있는 저희 반천맹에게도 큰 타격일 수 있습니다. 이를 좀 막아주셨으면 합니다."
[ 본교의 호법무류는 그리 치졸한 짓을 하지 않네.]
"물론 그렇겠지만 아랫것들이 과한 충성심으로 움직이는 일이 있지 않습니까? 소교주 괴질의 치료법을 찾는 과정에 문제가 생길지 몰라서 말씀드렸습니다."
[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다분히 정치적인 대화였다.
백련교주는 모르는 체 했지만, 사실 그 정도 되면 풍신류가 뭘 꾸미고 있냐는 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망량은 [수뇌부는 모르는 일]로 슬며시 이야기를 옮겼고, 백련교주도 마지못해 받아주는 척 한 셈이다.
얼추 협의가 끝난 것 같자 나는 옆에 서 있다가 백련교주에게 물었다.
"저어... 한 가지 여쭤보아도 되겠습니까?"
[ 그대는 백웅이라 했었지. 물어 보게.]
"괴질의 치료법으로 용화수를 찾으신 듯 한데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습니까?"
용화수.
그건 단순한 수종이 아니라 불교의 시조인 석가모니가 해탈했다고 하는 나무였다. 즉 신력(神力)을 머금은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백련교도 그 기원이 백련종인 만큼 불교와 연관이 있어서 생각했을 수도 있으나, 좀 더 자세한 걸 알고 싶었다.
백련교주는 의외의 질문인 듯 턱을 쓰다듬는 듯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 무생노모(無生老母).]
"......?"
[ 본교가 모시는 위대한 신의 이름이지. 창세주인 무생노모(無生老母)께서는 미륵을 이 세상으로 보내서 자신의 흩어진 자녀들을 거두어들여 진공가향(眞空家鄕)에 귀의시키고 평화로운 천년왕국이 인간세계에 실현될 것이라 약속하셨네. 이 백련교의 교리를 알고 있는가?]
"예전에 들어서 대충은 알고 있습니다."
[ 사실 나는 괴질을 치유하기 위해 내가 아는 한 가장 강력한 술법사에게 조언을 구하러 간 적이 있었네. 그 때 그 술법사도 나를 도울수는 없다 했으나 천행(天幸)이라 말했었지.]
"천행이라고요?"
[ 옛 지배자의 마력(魔力)이라면 백련교 전체를 파멸시킬 저주를 내릴 수도 있으나, 무생노모의 가호 덕분에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말이었네. 그래서 나는 무생노모께 가장 큰 공양과 공덕을 바칠 방법이 무엇인가 생각하던 중, 신화의 위력을 품고 있는 백련교의 설화수인 용화수라면 방법이 될 거라 생각한 것일세.]
"으음..."
무생노모의 가호!
나는 쉽사리 믿기지 않는 일이라 침음성을 흘렸다.
물론 백련교가 종교집단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저 종교집단의 탈을 쓴 마교(魔敎)같은 집단이라 생각했다. 실제로도 감숙성에 원래 흥성하고 있던 마교를 무찌르고 백련교가 터를 잡은 것이다. 하지만 백련교주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진심으로 교주로써 무생노모를 신앙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종교에 크나큰 정체성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 때 망량이 불쑥 물었다.
"그럼 교주께서는 미륵(彌勒)이란 어떤 존재라 생각하십니까?"
[ 윤회의 고리를 없애는 존재일세.]
"무슨 뜻입니까?"
[ 미륵이 용화수 아래에 하생(下生)하는 순간 이 세상 모든 자는 깨달음을 얻어 승천(昇天)하게 되네. 허나 그것은 또한 육신의 굴레와 영혼의 굴레를 벗어던져 상천(上天)에 도달한다는 것... 그 순간 모든 윤회의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지.]
나는 그러려니 하고 교주의 종교이론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망량은 상당히 심각한 얼굴로 진지하게 교주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는 턱을 괴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계속 물었다.
"그렇다면 미륵은 신(神)이 아니라 생각하십니까?"
[ 그렇네. 미륵은 신이 아닐세. 그 자체로 존재하는 우주의 법리(法理)라고 생각하네.]
"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역에서 온 마도사에 대한 자세한 정보와 함께 백련교의 교서(敎書)를 몇 권 얻을 수 있었다. 거기까지 진행하고 나자 백련교주가 진소청을 보더니 말했다.
[ 이광의 제자. 훌륭한 성취구나.]
"감사합니다."
[ 그대들이 본교에 되돌아오면 좋을 것을.]
그는 적지 않게 아쉬워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백련교주가 이 정도의 평가를 한다는 사실에 새삼 진소청의 무시무시함을 깨달았다. 달리 말하자면 천하제일인조차 인정하고 그 재능을 탐낼 정도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후 우리는 백련교의 소교주를 직접 보게 되었다. 소교주는 천법당(天法堂)이라고 이름지어진 건물에서 요양 중이었는데, 왠 신령스러운 자단목에 감싸여서 누워 있었다. 망량이 옆에서 소교주가 누워있는 침상의 환경을 보며 감탄했다.
"이 건물 자체가 신전(神殿)같군. 영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저 침상도 굉장한 영력구조로 이루어져 있소..."
가까이에서 소교주를 보자, 예상했던 대로 괴질때문에 몸의 절반이 이족(異族)처럼 변해 있었다. 다만 소교주의 얼굴은 멀쩡한 상태였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괴질이 덜 진행된 상태였으며 현재는 식물인간처럼 그저 숨만 쉬고 있는 가사상태로 보였다. 소교주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자 우리는 백련교주에게 인사를 하고 백련교를 빠져 나왔다.
우리는 백련교를 나와서 수백 리 떨어진 곳까지 비등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근처의 객잔에 앉아서 이번의 일에 대해서 회의를 했다.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망량. 그럼 풍신류의 계략은 막을 수 있겠소?"
"솔직히 잘 모르겠소. 큰 후환까지는 막을 수 있겠지만 소소한 타격은 있을 거요."
"백련교주가 직접 막아주는데도 말이오?"
"그건 너무 백련교를 호의적으로 바라본 거지."
망량이 짧게 탄식하며 말했다.
"백련교주의 명령이 내려와서 용중일이 계획을 멈추기는 할테지만, 백련교도 뇌신류가 막 크기를 바라지는 않소. 즉 백련교주가 '언제쯤' 멈춰줄까가 문제요. 그 시간이 너무 늦는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지도 모르오."
"으음."
"뭐 그래도 최악의 형태는 피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합시다. 백련교주의 체면상 그렇게까지 악독하게 굴지도 않을테고."
망량이 말하자 나는 망량에게 말했다.
"망량. 그런데 아까 미륵 질문은 왜 한 거요?"
다른 건 다 현실적인 주제와 관련있는 질문이었지만 망량의 미륵 질문은 약간 생뚱맞은 것이었다. 나는 그게 망량의 지식욕 때문에 나온 질문인지, 아니면 그것조차도 우리의 생존현안과 관련된 것인지 못내 궁금했던 것이다. 진소청도 궁금해하는 눈으로 망량을 쳐다보자 그는 섭선을 부치며 말했다.
"아직은 가설단계이지만 말해두는 게 좋겠지."
"말해주시오."
"쉽게 말해서, 무생노모의 가호라는 게 미심쩍다는 말이오."
"......?"
이어진 말에 나는 머리를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옛 지배자]의 마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같은 [옛 지배자], 혹은 그 이상의 신적 존재라고 스승님께 들은 바가 있소. 즉 정말로 무생노모의 가호라는 게 존재하고 그게 [옛 지배자]의 저주를 약화시켰다면, 그 말은..."
망량은 말을 끝맺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 백련교의 신(神)인 무생노모 또한 [옛 지배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요?"
"그냥 가설이지만."
"하지만 백련교는 인신공양을 바치지도 않고 종교단체보다는 무력단체에 가까운데..."
"모든 [옛 지배자]가 인신공양을 즐기는 건 아니오. 그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관심이 없는 존재이고, 그들이 바라는 건 때로는 무형적인 공양일 수도 있소. 이 가설대로라면 백련교 또한 '무언가'를 공양하는 대신에 강대한 힘을 손에 넣었을 수도 있겠지."
"......!!"
망량은 이야기하기가 꺼려지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그는 보기드물게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아무튼. 그 까닭에 나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소. 그렇다면 무생노모가 이 세상으로 보내어서 세상을 해탈에 이르게 한다는 미륵이란 존재는 무엇인가? 교주보다도 백련교의 교리를 잘 아는 자가 없기 때문에 물어봐야 했지."
"교주는 미륵이란 신이 아니라 했소."
"그렇소. 미륵이란 신이 아니라 법리(法理). 그게 정말 골치아픈 대답이오."
"왜 그렇소?"
"왜냐하면 저 백련교의 미륵에 대한 해석은, 중원은 물론이고 모든 천축과 세계의 불자(佛者)들의 해석과 반대이기 때문이오. 교주의 대답은 무생노모란 존재가 실재(實在)하며 그 존재가 우주적인 법리인 미륵을 움직일 [힘]이 있다고 대답한 것과 마찬가지요. 게다가 윤회의 고리를 없앤다니... 그것은 아예 이단적인 사상이오."
망량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나와 진소청이 궁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아무튼 아직은 가설이오. 나는 스승님께 들러서 이 일을 질문해봐야 할 것 같소."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요?"
"당연한 일이오."
망량이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백웅. 나를 스승님께 데려다 주시오. 나는 나중에 진랑곡으로 되돌아 가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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