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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스승님. 그 놈이 말한 게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어느 새 진랑곡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풍신류의 추적자나 이목이 있는지 철두철미하게 후미를 확인한 후, 내 목갑에 모두가 들어간 후 한꺼번에 비등을 이용해서 진랑곡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런 방식이면 그 어떤 추적자도 우리의 행방을 찾지 못할 것이리라.
그리고 진랑곡으로 돌아온 나는 이광에게 진기를 불어넣으며 기공치료를 행했다. 이광은 격렬한 싸움 때문인지 상당히 지쳐있었고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이광은 기공치료를 받아서 소주천을 끝내자 안색이 한결 나아진 듯 했다.
기세를 회복한 이광이 내 질문에 대답했다.
"놈은 정천맹을 움직여서 우리를 괴롭힐 생각이다."
그렇게 말한 이광이 슬쩍 망량을 쳐다보았다.
"그렇지 않은가, 반천맹주?"
"네 그렇습니다."
망량 또한 이 뇌신류가 기거하는 사원에 와 있었다. 아무리 기공치료가 끝난 후라지만 이광이 이렇게까지 뇌신류 외의 타인을 접근시킨다는 건, 반천맹주 망량을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망량은 오화칠금선을 펼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황산파 장문인 용중일... 그는 아마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의 직계일 것입니다. 아마 항렬로 볼 때 용비천의 친아들이겠지요. 그렇다고는 하지만 중원에 삼십 년도 되지 않아서 구파일방의 일문을 세운 무력과 지력은 만만히 볼 수 없을 듯 합니다."
"흥. 그 놈 따위는 단칼에 해치울 수 있네."
"그러나 할 수 없죠. 그는 풍신류의 제자임과 동시에 구파일방의 장문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문제지."
망량과 이광은 용중일 때문에 꽤 고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히 풍신류의 제자라면 닥치고 가서 두들겨 패서 죽이면 되지만 구파일방의 장문인이라는 신분이 걸렸다.
황산파를 멸문시키는 건 현재 이광과 진소청의 힘으로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황산파를 멸문시키는 순간 구파일방을 건드린 셈이 된다. 그리고 뇌신류는 대번에 중원의 정파를 적으로 돌리고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리라.
망량이 말했다.
"현재 이광 님께서는 정천맹주(正天盟主) 위지혼(尉遲魂)과의 합의하에 뇌신류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뇌신류의 정체는 강호무림에 대놓고 알릴게 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천맹주가 감싸주는 형태죠. 하지만 용중일이 저렇게 말했다는 건 정천맹주를 압박해서 뇌신류를 중원 정천맹의 잠재적인 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내 생각도 그렇네."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뇌신류는 정천맹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적이 된다니 무슨 소리요?"
"뇌신류의 본질은 백련교 사대무류요. 즉 원래 백련교를 수호하는 문파였으며, 이는 황실에서 대적할만한 이유가 되오. 또한 황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정천맹으로써는 뇌신류를 아군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소."
"우린 앞으로 백련교를 쓰러뜨릴 생각이라고 말하면 되지 않겠소?"
"훗... 그런 말이 정천맹에 통할지가 의문인 것이오."
망량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용중일이 저 계책을 대놓고 말하며 우리를 협박한 이유는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거요. 즉, 우리가 어떤 변명을 하더라도 뇌신류를 정파와 떼놓을만큼 황산파의 정치적인 영향력이 강하다는 뜻도 되겠지."
"그럴 수가..."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곧 망량의 말대로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 실제로도 우리는 백련교와 협상해서 뇌신류의 개파를 얻어냈다. 이걸 풍신류 소속인 황산파가 멋대로 포장해서 부풀리면, 틀림없이 우리가 백련교의 끄나풀이라는 식으로 매도될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백련교에 대항할 힘을 얻기 위해서 뇌신류가 일어설 준비를 하는 것이었지만 이걸 진정성있게 정천맹에 전달하기는 어려웠다. 구파일방 입장에서는 백련교의 첩자일지도 모르는 뇌신류를 감시하고 적대시하는 게 더욱 쉬운 일이리라.
나는 혹시해서 망량에게 말했다.
"정천맹주 위지혼은 공명정대하고 현명한 인물이오. 그에게 잘 설명하면..."
"으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이광이 말했다.
"백웅. 위지혼은 물론 뛰어난 인물이다. 무당파 역사에서도 손꼽히는 무학의 천재이며 지혜와 수완도 뛰어나다. 내가 구파일방에서 인정하는 몇 되지 않는 훌륭한 고수지만, 그는 우리 말을 들어주지 못할 것이다."
"왜입니까?"
"그가 개인적으로는 우리 말이 옳다고 납득할 수 있을지언정, 조직의 수장으로써는 우리를 적대하는 게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
"그는 정천맹주이기 때문이지."
망량이 이광의 말을 받았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게다가 황산파는 구파일방의 일원으로써 발언권은 물론이고 공신력도 뇌신류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 황산파에서 작정하고 정천맹의 회합에서 우리를 백련교의 끄나풀로 몰아가면 어쩔수가 없습니다."
"으음."
나는 망량에게 물었다.
"우리가 뇌신류라 치면 놈들은 풍신류. 우리도 같이 가서 황산파가 백련교의 풍신류라는 걸 말해버리면 되잖소."
"그걸 어떻게 증명하오?"
"그거야 풍신류의 무공을..."
나는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게 문제요. 구파일방의 고수들은 명성이 자자한 백련교의 사대무류가 있다는 건 들어서 알고 있지만, 막상 그들의 무공이 어떤건지는 잘 모르오. 왜냐하면 백련교주가 외부에 세력을 뻗치지 않고 백련교인들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오. 막말로 황산파 고수들이 대놓고 풍신류 무공을 사용하고 다녀도 그냥 황산파 무공이려니 할 것이오."
"그러면 우리도 그놈들이 우리더러 뇌신류라고 하는 걸 억측이라고 받아치면..."
"그러면 우리는 뇌신류의 이름으로 개파를 할 수 없게 되고, 그러면 중원 각지에 흩어져 있는 뇌신류 전승자들을 모으기가 힘들어지겠지. 개파를 하는 의미가 퇴색되고 말 것이오."
"으음."
"게다가 용중일처럼 주도면밀한 인물이라면 이중삼중의 흉계를 파놓겠지."
어려운 문제였다.
뇌신류의 이름을 버리고 개파를 하면 일단 황산파의 정치공세는 피할 수 있겠지만, 이번 생에 10년 내에 뇌신류전승자를 모아서 최종오의를 얻는다는 목표를 달성하기는 지난해진다. 게다가 그 사실을 부정한다고 해도 황산파에서는 어떻게든 흉계를 꾸며서 우리를 정천맹의 적으로 만들려 할 것이다.
내가 고민하고 있자 이광이 말했다.
"반천맹주. 그래서 나는 개파를 미룰 생각일세."
"흠..."
"어차피 지금까지 미뤄왔던 일, 1년 정도 미룬다고 큰일 나지는 않겠지. 우리는 그 동안에 무공을 더욱 다듬어서 내실을 만든 후에 나서려 하네."
이광이 이번 비무에서 보여주었던 무위. 호법사자조차도 단기전에서 낭패를 보게끔 만드는 천공섬과 하늘에 뇌전을 새기는 절초! 그걸 더욱 다듬는다면 뇌신류의 무공은 한단계 진화하게 되리라. 이광의 말은 이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보였다.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것도 괜찮겠지만 너무 도룡신검 용중일을 얕본 수입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국 그 자의 흉계에 당하고 말 겁니다."
"자네가 용중일을 과대평가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안 움직이면 놈은 어찌할 방법이 없어."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오, 과대평가가 아닙니다. 되려 저는 이광 님이 용중일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생각합니다."
"무슨 소린가?"
"용중일은 혈혈단신으로 강호무림에 뛰어들어서 황산파 도인들의 협조를 얻어내고, 나아가서는 장로들과 제자들까지 키워내서 단시간에 구파일방으로 일어서게끔 했습니다. 그 정도의 호걸은 중원무림을 다 뒤져봐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는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말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용중일에게 시간을 주면 그는 없던 소문을 키워내고, 정천맹의 영향력을 더욱 키우고, 뇌신류를 대상으로 공작을 꾸며서 악명을 만들어 낼 겁니다. 아니 벌써 그렇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우리가 그의 계략에 적극적으로 대항하지 않으면 결국 사면초가에 몰리고 말 겁니다."
두쿵
그 순간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사면초가라는 표현을 듣자 난데없이 머리가 지끈거리며 왠 환영이 눈에 보였다.
' 뭐지?'
왠 절세미인이 금음을 뜯으며 노래를 부르는 풍경이었다. 흰 피부에 파란 눈동자를 지닌 그 미인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나는 그 환영에 잠시 젖어있다가 갑자기 정신을 차렸다. 왠지 정신을 빼앗긴 기분이다.
이광이 말했다.
"계략을 내 주게."
"한 가지 생각하고 있는 바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실행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나마도 확률은 반반입니다."
"그렇게 위험한 계략이란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지만 해야 합니다."
"......"
이광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우선 들어보고 결정하겠네."
"알겠습니다."
망량은 심호흡을 한 후, 진소청과 나를 한 번씩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며칠 후 백련교주를 방문하러 갈 것이오."
"무... 무슨 소리요? 백련교주?"
뜬금없는 소리에 망량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그러자 망량은 차분하게 장내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럴지도 모른다 생각해서 회담 때 보험을 들어뒀소. 백련교주의 호기심을 유발시켜서 그에게 반천맹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 두었지."
나는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이 들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백련교주를 직접 찾아간다니 자살행위요."
사실 이번에 황산파에서 뇌신류 개파를 논한 일도 거의 천운에 맡긴 도박이었다. 그 자리에서 백련교주가 그냥 뇌신류를 몰살시키고자 마음먹었다면 전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물론 내가 비등을 사용해서 대피시킬 수 있었지만 용비천을 제압했던 백련교주의 무공을 생각하면 그게 가능할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래서 내심 이번에 목숨을 건져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는데, 하물며 백련교주를 직접 보러 본거지로 찾아간다니? 백련교주에게 죽는 건 둘째 치고 거기에 가기도 전에 호법사자나 밑의 백련교 고수들에게 죽을 확률이 높았다. 제정신이라면 절대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동영의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나 동방무결같은 경우는 무사히 백련교주와 면담을 했지만, 그들은 애초부터 백련교와 은원이 없는 제 3자이며 관광객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백련교와 앙숙 관계이며 조만간 칼을 맞댈지도 모르는 사이였다. 너무나 위험성이 큰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망량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천하에서 용중일을 제어할 수 있는 인물이 몇 명이나 되겠소?"
"어... 그야 백련교주, 호법사자들이겠지."
"그렇소. 하지만 풍신류 호법사자는 원수지간이고 화신류 호법사자는 중립적이라서 용중일을 견제해주기 힘들지. 그리고 수신류 호법사자는 아예 우리와 친분이 없는데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오. 그러면 남은 건 하나, 백련교주를 직접 설득해서 용중일이 음모를 꾸미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 뿐이오."
"......"
나는 황당해서 대답했다.
"그, 그냥 뇌신류 말고 이름을 바꿔서 개파하는 게 어떻소? 그게 낫겠는데."
"백웅. 이 판세는 몸을 사리고 틀어박혀서는 죽는 길밖에 없는 판세요. 당장은 편할지 모르지만 나중에 역전할 방법이 없어질 것이오. 그럴 바에야 목숨을 걸고 활로를 찾아나서야 하오."
나는 들으면서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겨우 용중일 하나의 흉계와 영향력이 두려워서 백련교주 앞에 목숨을 걸고 설득하러 가야한다니? 평범한 사람이라면 백이면 백 망량이 미쳤다고 하고 내 선택이 옳다 하리라.
하지만 여태 망량의 판단이 틀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자 이광이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득할 셈인가?"
"그건 전적으로 제게 맡겨 주십시오. 제 목숨을 걸고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런 말로는 대답이 되지 않아. 자네 목숨만 걸린게 아니라 우리 목숨도 모두 걸려있기 때문이야."
이광의 눈매도 매서워져 있었다. 그 또한 망량의 말을 무리수라고 느낀 것이다. 그가 살기를 토해내기 일보직전에 망량이 흐름을 끊었다.
"하긴 저로써도 좀 더 정보가 필요하겠군요."
"무슨 정보?"
"뇌신류의 최종오의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광 님이 그걸 전수받지 못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습니다. 그걸 모르면 시작도 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외인(外人)인 자네에게 문파의 비사(秘事)를 이야기하란 말인가?"
그러자 망량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애초에 이번 회담에서 최종오의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건 이광님의 잘못이 아니십니까? 그 때문에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백련교에게 죽을 뻔 했는데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음."
이광이 침음성을 흘렸다. 뜬금없이 백련교주가 뇌신류 최종오의를 언급했을 때 모두가 느꼈던 당혹감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망량의 제안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이광이 입을 열었다.
"반천맹주. 자네가 이 비사를 외부에 누설할 경우 나는 만사를 제쳐놓고 자네의 모든 것을 없애버리고 말겠네."
"괜히 겁주지 마시고 말씀해 주십시오. 전 각오가 되어있으니."
"알았네."
이광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내가 최종오의를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걸 내 대(代)에는 되찾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종오의는 내 스승조차 습득하지 못했다."
"무슨 말입니까? 최종오의라는 건 어쨌든 전승자가 익혀야 하는 게 아닙니까."
망량의 의문은 지당했다. 아무리 어렵고 굉장한 기술이라고 해도 전승자가 익힐 수 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걸 익히기가 너무 어렵고 힘들다면 그건 최종오의라기보다는 미완성의 기술이었다.
"당연하지... 다른 삼대유파와는 달리 뇌신류의 최종오의는 미완성이었고 역사상 아무도 습득하지 못한 환상의 기술이다."
"환... 상의 기술? 대체 무슨..."
이어진 이광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먼저 권(拳), 검(劍), 창(槍)을 모두 최종절기까지 익힌 후 천령단을 얻는 게 기본조건이다. 그 후 각 분야 3인의 뇌신류 절세고수의 도움으로 완성할 수가 있는데, 문제는 그렇게 완성된 후 모든 것을 망각하고 갈아엎은 후에야 최종오의를 얻을 수가 있다."
"......!!"
"권, 검, 창의 뇌신류 절세고수 3명을 어디서 구할 것이며... 그들을 구한다고 해도 최종오의를 이루는 구결은 어디로 흩어졌는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나도 최종오의에 대해서는 대충 윤곽만 알 뿐 어떤 기술인지 전혀 모르네. 그리고 그들을 모아서 수련에 성공한다고 쳐도 지금껏 익혔던 모든 걸 망각하고 갈아엎는다는 게 대체 가능하기나 한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말한 이광이 전에 없이 한숨을 쉬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완성의 기술을 최종오의라고 칭하는 이유는, 천 년 역사 뇌신류의 달인들이 판단하기에 그렇게 해야만 뇌신류의 극(極)에 도달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내 스승은 뇌신류 역사상 손꼽히는 천재이며 뇌신류 호법사자였으나 최종오의를 얻지 못했네."
"......"
"아니 솔직히 이런건 최종오의도 기술도 아니지. 그냥 꿈."
이광의 스승은 뇌신류의 호법사자였으나 뇌신류의 숙청 때 협공에 당해서 반시체 상태가 되었다. 이광은 그런 스승을 간신히 구출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목숨을 잃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이딴 기술을 내가 제자들에게 왜 말해줘야 한단 말인가? 쓸데없는 환상 때문에 수련에 방해가 될 게 뻔했네."
"그렇군요..."
망량이 침음성을 흘리고는 물었다.
"그럼 최종오의의 이름이 뭔지만이라도 알 수 있겠습니까?"
이광이 강조하듯 말했다.
"무혼(武魂)!"
그 순간,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왠지 저걸 얻기 위해서 뼈와 살을 깎는 모험을 거쳐야 할 것만 같았다. 내가 그런 불안감을 느끼든말든 망량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야기를 정리했다.
"알았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제 어쩔건가?"
"백련교에 갈 터이니 백웅과 진소청을 대동하겠습니다. 제 호위로 필요합니다."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군. 나는 자네가 구체적인 방안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네."
"백련교주에게 이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망량이 그렇게 이야기를 꺼낸 후 말했다.
"그리고, 우리 반천맹과 손을 잡는다면 단숨에 황궁을 쳐서 멸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뭐라고?!"
이광이 노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망량은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최고의 계책이지요! 백련교가 직접 나설 수만 있다면 황궁을 지키고 있는 금의위 동창은 물론이고 사신위나 제갈부도 한번에 쓸어버릴 수 있습니다. 간신배들까지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않습니까?"
"자네... 백련교와 진심으로 손을 잡을 셈인가."
이광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건 망량을 죽이기로 결심했다는 뜻이었다.
망량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죽일 테면 죽이십시오. 어차피 이게 안 통하면 우린 결국 다 죽을 겁니다."
멈칫
이광이 출수하려다가 멈췄다. 그것은 이광이 망량의 말을 깊게 생각해서 멈춘 게 아니었다. 그가 출수하려는 행로에 어느새 진소청이 가로막고 있었고, 그의 손이 이광의 창대를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이광은 당혹스러운지 진소청을 쳐다보았다.
"이거 놓거라."
"왜 죽이려 하십니까?"
"반천맹주는 너무 위험하다. 나는 더 이상 그를 다룰 자신이 없으니 죽여야겠다."
이광은 더 이상 망량의 계책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저번부터 징후는 보였으나, 그는 망량의 거침없는 계책과 과단성, 그리고 끝모를 기책에 두려움과 불만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다룰 자신이 없다면 죽이는 게 그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자 진소청이 말했다.
"그럼 저는 스승님을 막겠습니다."
좌중의 시선이 진소청에게 쏠렸다.
여태껏 조용히 이광의 뜻에만 따랐던 진소청이 처음으로 그의 뜻에 반기를 든 것이다. 진소청은 흔들림없이 확고한 눈으로 이광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
이광과 진소청의 대치는 약 일 각 동안 계속되었다.
숨막힐 듯한 침묵이 끝난 것은 이광이 자신의 창을 늘어뜨렸을 때였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래, 어쩔 수 없겠구나..."
파바밧!
그 순간이었다.
이광은 전의를 수그리는 듯 하다가 난데없이 출수해서 망량의 목을 따려 했다. 그 속도는 너무나 빨라서, 망량 바로 옆에 있던 나조차도 한쪽 팔을 희생해도 망량의 치명상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이를 악물고 몸으로 때우려고 달려들 때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난데없이 이광이 땅에 쓰러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수도(手刀)를 세운 진소청이 서 있었다.
"헉...!!"
나는 깜짝 놀랐다.
눈 앞의 상황은 명백했다.
이광을 진소청이 제압해 버린 것이다! 그것도 이광이 무방비 상태도 아니었는데 단지 뇌명을 쓰는 것만으로 이광을 단숨에 기절시켜 버린 솜씨였다.
이광의 움직임은 흐릿하게나마 보였는데 진소청의 움직임은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이게 의미하는 바는 굉장히 컸기에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세... 세상에...'
단기전에서 풍신류 호법사자를 몰아붙인 이광.
그런 이광을 감당할 만한 무인은 적어도 중원에서는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절세천재 진소청은, 두 달 동안 이광조차도 뛰어넘어버린 것이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건 실력차가 있다는 소리였다. 그것도 지금 펼친 뇌명은, 내가 알던 뇌명과 이미 다른 무공이었다. 진소청은 뇌명을 진화시켜서 자기류로 개조해버린 듯 했다.
진소청이 씁쓸하게 말했다.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