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7화 (167/1,615)

0167 ----------------------------------------------

삼황오제(三皇五帝)

그리고 이광과 용비천이 삼 장 거리에서 마주보고 섰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았는데, 멀리에서도 그들의 팔근육이 힘줄이 솟아오를 정도로 긴장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서로가 투지를 강하게 불태우고 있다는 소리였다. 용비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 때의 애송이가 이렇게 내 앞에 다시 서다니 놀랄 일이구나."

"그 때도 당신은 내게 한 칼을 맞았지. 기억나지 않는가?"

이광이 창을 치켜들며 용비천의 얼굴을 가리켰다.

"뺨 밑의 칼자국은 내가 손수 만들어준 것 같은데."

그러자 용비천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그 댓가로 네놈은 만신창이가 되어서 만장단애 아래로 떨어졌던 걸 기억하고 있다."

"뭐 그 때는 꽤 힘들었지."

둘 사이에는 상당한 원한이 있는 듯 했다. 과거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한 이광이 진득하게 웃었다.

"오늘은 그 상처 하나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용비천도 마주 웃었다.

"누가 할 소리를..."

스으으으

나는 긴장한 채 비무대 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이광의 창은 전에 없이 강렬한 뇌기(雷氣)를 머금고 있었고, 용비천의 전신에는 마치 폭풍같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그들은 마치 자연지기 그 자체가 된 것 같은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다음 순간 -

현 뇌신류와 풍신류의 최강자들이 격돌했다. 나는 그 충돌의 첫 순간에서부터 종막까지를 숨도 거의 못 쉬고 지켜봐야만 했다. 초절정고수를 넘어선 자들의 대결이라는 건 천금을 주고서도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광의 순간속도는 뇌명을 일으키지도 않았는데도 나보다 훨씬 빨랐다. 그것은 멸혼보를 운용한 탓도 있겠으나, 그의 경공재간이 이미 명인급에 올라있어서 아무런 낭비가 없기 때문이리라.

이광의 창이 한 호흡을 열 번 쪼갠 순간에 이미 찰(刹)의 수법으로 용비천의 신형을 꿰뚫었고, 그보다 더 짧은 순간에 이광의 몸이 세 바퀴를 돌았으며, 더 짧은 순간에 세 개의 절초(絶招)가 연계된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푸왁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은 빠르게 분신을 만들어서 피한 듯 했으나, 이 장 밖에 나타난 그의 얼굴에는 곤혹감이 가득했다. 완전히 피한 듯 했으나 그의 팔뚝에 큰 상흔이 일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가 이광의 첫 초수를 피하긴 했으나 스쳤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세상에!'

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몸에 전율이 일어났다. 첫 초수대결에서 스쳤다는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저 용비천이 작정하고 빨라지면 얼마나 가공할만한 신법을 발휘하는지 알고 있었다.

뇌명을 쓴 나조차도 쫓기 힘든 속도에서 실체와 분간이 가지 않는 분신으로 자유자재로 잔영술(殘影術)을 쓰는데다 그나마도 환영이 가속하기 때문에 용비천을 따라잡는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나도 목숨을 댓가로 대라멸진을 쓴 상태에서야 따라붙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광은 아직까지 뇌명도 쓰지 않은 상태로 호법사자 용비천의 진체(眞體)를 완벽히 간파해서 그가 잔영술로 피할 수 없을 정도의 빠르기로 공세를 취했다는 뜻이다. 이건 이광의 역량이 호법사자의 멱을 충분히 딸 수 있을 정도의 사정권에 속한다는 뜻이었다.

파밧!

다음 순간 용비천의 신형이 다섯 개로 분열되었다. 그리고 고함이 터져나왔다.

"이건 어떨까!"

풍신류 비기(秘技)

풍마멸진(風魔滅盡)

단순한 분신이 아니라 하나하나가 숨을 쉬고 맥이 뛰는 듯한 실체의 분신이 되어 현실에 구현화되었다. 나는 풍마멸진을 쓴 용비천에서 쉴 새 없이 두들겨맞은 적이 있었으므로 보기만 해도 아찔해졌다. 2할의 힘만 쓴 상태에서도 절정급 고수를 가볍게 조져버릴 수 있는 기술이었는데 본체가 저걸 쓰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 안돼!'

풍마멸진의 골치아픈 점은 공격하기 바로 직전의 순간까지 실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주 짧은 극순에 실체와 분신이 위치를 바꿔버리기 때문에 반격조차 불가능했다. 그리고 용비천이 손을 휘두르며 더더욱 분신을 늘였고, 이윽고 분신의 숫자는 무려 40체 가까이 늘어났다.

[ 풍마멸진 구극혈풍신권(究極血風神拳)!!]

혼자서 권진(拳陣)을 펼쳐서 일개인을 조져버릴 수 있는 풍신류의 비기! 저기에 수백 대나 두들겨맞은 기억이 생생하게 나서 몸서리가 쳐졌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외쳤다.

"피해!!"

용비천의 분신들이 일제히 둘러싸서 덤벼드는 순간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찰나 - 이광이 씨익 비웃음을 짓는 게 느껴졌다. 마치 십이율주와 겨루었을 때의 그 찰나같았다.

"조잡한 기술."

지잉

이광은 창을 가볍게 횡으로 휘두르는 듯 했다. 그의 움직임은 마치 공간에 접히듯이 끊겼고, 그것은 이내 내가 이광의 움직임을 안력으로 쫓기 힘들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공간에 덧칠되듯이 나타난 이광의 형체는 마치 시간을 끊는 듯 거대한 압력을 내뿜으며 전방으로 쇄도했다.

번개가 공간을 부순다.

압도적인 뇌기(雷氣)가 공명한다.

이광의 천뢰무극창의 초식 중 천뢰랑마(天雷狼魔)가 흘러나오더니 일섬(一殲)을 그었다. 동시에 달려들던 풍마멸진의 분신 중 열 개가 터져버리더니 섬광이 흘러나왔고, 이광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춤을 추듯이 뇌영(雷影)을 흩뿌렸다.

퍼퍼퍼펑!!

꽈광

폭풍같은 돌진과 함께 이광이 마지막 일 보(一步)을 내딛었을 때 풍마멸진은 완전히 중앙이 돌파당해 있었고 분신은 흔적도 없이 모두 날아가 있었다. 압도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뇌신(雷神)의 일보와 같았다.

방금 전까지 구극혈풍신권을 펼치던 용비천은 주먹을 거둔 자세로 비무대 끝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찰나지간에 이광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나 호신강기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리라. 용비천은 믿기지 않는지 자신의 주먹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말했다.

"뇌... 뇌신류에 그런 기술이 있었다고? 그럴리가."

"후. 당연히 기존의 뇌신류에는 없었지."

이광이 천천히 한 걸음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이것은 근래 두 달 동안 내 나름대로 창안한 절초다. 이름은... 그래, 천공섬(天空殲)이라 해 두지."

대충대충 말하는 이광의 말투에서, 그가 여태 절초의 이름도 변변히 생각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에 기가 막혔다.

' 뭐야? 아직 미완성이라는 거야?'

두 달 동안 장삼봉의 심득을 연구하면서 강해진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무학의 천재였던 이광은 천축검과 굴공참에서 묘리를 얻어내서 새로운 절초, 천공섬을 만들어낸 듯 했다. 하지만 이름을 지금에야 지은 걸 보면, 아직도 천공섬은 완성된 초식이 아니며 개발도상에 있다는 뜻이었다. 만일 천공섬이 완성된다면 어떤 위력을 지닌 절기가 될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이광의 말을 듣고 있던 진소청이 입맛을 쩝 다셨다.

"지금 느긋하게 놀고 계시는군. 결판을 내려면 더 좋은 절초가 있으실 텐데..."

"......"

나는 진소청을 빠르게 돌아보며 물었다.

"사형. 무슨 소리입니까? 천공섬보다 더 강한 초식이 있습니까?"

"음, 사제. 비무가 끝나고 말해주려 했지만 그냥 지금 말해줘도 좋겠지."

진소청이 말을 이었다.

"원래 뇌신류의 창법은 천뢰무극창에서 끝일세. 하지만 사제가 전해준 새로운 무공의 묘리 덕분에, 사부님과 나는 창술의 새로운 지평을 볼 수 있었지. 나름대로 이야기를 한 결과, 천뢰무극창에서 더욱 진화된 창술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다고 확신했네."

"네?!"

"우선은 관전이나 합세. 나중에 자세히 말해주겠네."

나는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진화된 천뢰무극창!

그것은 대체 어떤 무공일까?

내가 머릿속으로 열심히 상상을 하는 동안에 비무대 위에 서 있던 용비천은 이를 으득 악무는 기색이었다. 그는 날카롭게 이광을 노려보더니 말했다.

"네 창술은 공간을 억제하는 공능이 있구나. 척인력(斥引力)을 도입했느냐?"

"알면 뭐 어쩔 셈인가? 어차피 풍신류의 비기 중에는 이걸 막을만한 기술도 변변히 없을텐데."

퉁명스럽게 대답한 이광이 난데없이 뇌공섬(雷空殲)을 날렸다.

쿠꽈과광!!

먼지구름이 휘날리며 거대한 폭발과 뇌전이 내려쳤다. 원래는 뇌공섬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광이라고 해도 약간 기를 끌어모으는 과정이 필요했는데, 지금은 그냥 단타로 뇌공섬을 쓸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난데없이 필살기를 날렸기 때문인지 이광의 안색이 창백해진 게 보였으나 용비천은 그 이상 손해를 본 모습이었다.

"하압."

이광은 천공섬을 계속 펼치며 뇌신처럼 계속 번쩍였다. 섬광이 일어난 후에는 반드시 폭발이 일어나며 용비천의 신형이 튕겨나갔다.

용비천이 뒤로 크게 물러서며 몇 번이나 호신강기를 펼쳤다 터뜨리기를 반복했다. 그의 가공할만한 내공의 힘으로도 쉽사리 받아낼 수 없을 정도로 뇌공섬이 강력한 기술인 탓이었다. 그는 어느 새 이마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팔뚝에 핏줄이 솟아올라와 있었고, 그 빈틈을 놓치지 않으며 이광이 달려들었다.

이광의 창이 뇌전의 투로를 만들어내며 극순의 시간을 갈랐다. 벌떼 우는 듯한 소리가 울리는 것은 이광의 창극에 감히 대항할 수 없는 척력과 인력이 감돌고 있다는 뜻이었다. 용비천은 더 이상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전신에 힘을 끌어모았다.

쿠구구구구

갑자기 비무대 위에 거대한 소용돌이와 폭풍이 몰아치는 듯 했다. 용비천이 자신의 전신에 힘을 모으자 몸에 소용돌이가 감싸였고, 이내 태풍을 만들어내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광은 공격하다말고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그게 천령단의 힘이냐?!"

[ 그렇다. 너같은 벌레는 평생가도 도달할 수 없지!]

자부심을 담아서 외친 용비천이 이글거리는 분노를 담아서 주먹을 내질렀다.

[ 이거나 받아라!]

태풍 한가운데에서 공간이 왜곡되더니 곳곳에서 풍탄(風彈)이 생겨났다. 풍탄 하나하나는 크기가 무려 십여 장에 이르렀는데, 나는 그 풍탄을 보자 모골이 송연해졌다. 저 풍탄을 맞고 미호가 죽었었다. 하나의 위력만 해도 절세적인데 풍탄의 갯수가 무려 오십여 개 가까이 허공에 떠올라있는 것이다.

이윽고 풍탄이 엄청난 속도로 지상으로 떨어져내렸다. 그것도 가속도를 받았는지 왠만한 절정고수들은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였다. 공기를 예리하게 베며 날아오던 풍탄 하나가 이광의 횡참에 걸리자 옆으로 튕겨져 날아갔다.

꾸콰콰쾅

"......!!"

멀리로 날아간 풍탄이 약 십 리 밖에 있는 왠 산봉우리에 부딪히더니, 그대로 지형을 무너뜨려 버렸다. 여기서까지 파괴의 흔적이 보일 정도면 실제로는 맞는 순간 반경 수백 장을 풍압으로 날려버릴만한 위력이 있다는 뜻이다. 저런 무지막지한 위력이니 미호도 아홉 개의 목숨을 순식간에 소비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당연히 관전하고 있던 황산파 문인들이 경악해서 공포에 빠졌다.

"으아아악!!"

"사, 사람살려!"

그들은 무공을 익힌 고수답지 않게 허겁지겁 관전석에서 일어나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심지어 황산파 장로들은 그들을 말리지 않고 인솔해서 같이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저정도 되면 이미 무공이 아니라 천재지변급이기 때문이다. 애먼 풍탄에 휘말려서 몰살당하는 것은 아무도 원하지 않으리라.

"흐음..."

이광은 비무대 한켠에 서서 풍탄과 태풍의 소용돌이를 말없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내공을 돋우어서 백련교주에게 사자후를 내질렀다.

[ 교주! 내가 저 자의 팔을 취한다면 이 비무를 내 승리로 인정해 주겠소?]

뜻밖의 사자후인 듯 관전석에 앉아있던 백련교주 측에 시선이 쏠렸다. 호법사자 두 명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백련교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육합전성으로 화답했다.

[ 할 수 있다면.]

좌중이 긴장으로 물들었다.

이미 풍신류 호법사자 용비천이 천령단의 힘으로 일으켜낸 자연지기의 태풍은 쉴새없이 커져서 비무대를 거의 먹어치운 상태였다. 게다가 그 높이가 천공의 구름에까지 닿여 있었고 풍탄은 발사되기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인간의 무공으로 저 상황을 타개할 수는 없을 듯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이란 말인가?

스으으

그리고 이광은 천천히 창을 늘어뜨리며 천뢰무극창에 존재하지 않는 기묘한 창식을 잡았다. 그 자세는 마치 돌격창(突擊槍)을 잡은 것처럼 전진만을 생각하는 듯 했고, 차라리 앞뒤가리지 않는 동귀어진을 위한 검식에 가까워보였다. 그 자세를 잡은 이광에게 용비천이 분노의 육합전성을 토해내었다.

[ 놈!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죽어라!!]

천공을 메우는 듯 하던 수십 개의 풍탄이 한꺼번에 이광에게로 쏟아졌다. 피할 방법도 없어보이는 탄막이었고, 이 풍탄이 떨어질 경우 이광은 물론 근처에 있던 뇌신류 제자들도 모두 죽어버릴 것 같았다.

"어엇."

그 순간 이광의 몸이 광채를 남기고 사라졌고, 나도 갑작스럽게 몸이 떠밀리듯 옮겨지는 걸 느꼈다.

' 뇌명(雷鳴)?'

꽈과광

찰나지간의 일이었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뇌신류 제자들과 함께 엎어지듯 풍탄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수십 장 밖에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건 아마 순간적으로 진소청이 뇌명을 써서 우리 모두를 옮겼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리고 내가 천공을 올려다 보았을 때였다.

역린(逆鱗)!

마치 하늘에 뇌신이 붓을 한 획 그어버린 듯 상처가 남아 있었다. 이광의 신형은 천공 높이 떠올라 있었고 창식의 전개를 완전히 끝낸 후였다. 그리고 잠시 후 태풍을 일으킨 호법사자 용비천 근처의 바람이 산산히 흩어졌다.

파아앗

"커헉!!"

용비천이 울혈을 토해냈다. 그의 왼쪽 팔이 베어져서 허공을 날았다. 놀랍게도 이광은 천공에 거대한 뇌인(雷印)을 남기며 용비천의 방어를 찢어버린 것이다! 이광은 허공에서 재도약해서 용비천의 팔을 잡아챈 후 땅으로 내려앉았다.

사방팔방을 터뜨렸던 풍탄이 무색하게, 용비천은 형편없는 몰골로 겨우겨우 허공에 떠 있는 모양새였다. 용비천이 참혹한 안색으로 이광을 노려보았다.

"노옴...!!"

이광도 별로 상태는 좋지 않아보였다. 뇌명을 순식간에 끌어올리자 내공이 진탕된 듯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그러나 용비천의 팔을 약속한대로 베었으니, 이 비무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이대로 싸운다면 내공이 진탕된 이광이 지겠지만, 단기전에 있어서는 이광의 승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백련교주가 모를 리가 없었다. 잠시 후 백련교주의 중후한 육합전성이 황산 봉우리 전체에 울려퍼졌다.

[ 뇌신류의 승리다.]

"교... 교주!!"

용비천이 항의하듯 백련교주 쪽을 쳐다보았지만, 백련교주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 추하군 용비천. 그만 땅에 내려오지 그러나?]

"아직 저는 진 게 아닙..."

[ 천령단의 힘을 빌려서 이기는게 비무에서 옳은 일이라고 보는가...? 내가 그대를 잘못 본 모양이군.]

"이익. 하지만..."

그 때였다.

계속해서 용비천이 대꾸하며 항명하자 화가 난 듯, 백련교주가 발 뒤에서 손가락을 까닥거리는 듯 했다.

꾸궁!

"......!!"

순식간의 일이었다. 백련교주의 손가락질 한 번에, 이광의 필살절초에도 힘을 유지하고 있던 용비천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듯 떨어진 것이다.

"으악..."

용비천이 피를 토하며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어떤 일이 생긴건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물론이고 진소청마저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적어도 삼십 장은 떨어진 관전석에서 무슨 수를 쓰면 풍신류 호법사자를 허공에서 떨어뜨릴 수 있는 것인가?

용비천은 이광에게 떨어진 팔보다 지금의 타격이 더욱 격심한 듯 땅바닥에 엎드려서 부들거리는 듯 했다. 그러더니 일어서서 교주에게 무릎을 꿇었다.

[ 죽을 죄를 졌습니다.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교주가 대꾸했다.

[ 정리하게.]

[ 존명!]

그것이 이번 비무의 결과가 되었다.

잠시 후 용비천의 풍탄과 태풍으로 아수라장이 되었던 황산파 비무대 근방은 소란이 잦아들었고, 대피했던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두가 모여든 앞에서 백련교주가 우리 뇌신류 제자들을 세워놓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 뇌신류의 승리다. 우리는 약속을 지키며, 뇌신류의 임시개파를 10년 연장해 주겠다.]

이겼다!

우리는 승리를 쟁취한 사실에 기뻐서 환호성을 내지를 뻔 했다.

그 때 갑자기 망량이 앞으로 재빨리 튀어나와서 포권을 하며 말했다.

"교주시여! 그 단서를 나중에 서신으로 전해드리고자 말씀드렸으나 그냥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 음...? 그래, 말해 보게.]

원래 교섭조건은 황산파에서 백련교와 뇌신류가 교섭을 하고, 뇌신류가 개파를 인정받는 대신 차후에 소교주 괴질의 치료법을 서신으로 전달하는 것이었다. 망량이 나선 때가 다소 생뚱맞았으나 교주는 어리둥절해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러자 망량이 전음으로 입술을 달싹거렸고, 교주는 차분하게 듣는 듯 했다.

잠시 후 교주가 말했다.

[ 그대는 정말 대담하군. 어디서 그런 패기가 끓어오르는 거지?]

"백련교의 광명에 감복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 좋아... 그 조건 받아들이지. 나중에 사람을 보내주겠다.]

"감읍할 따름입니다."

휘이익!

그리고 잠시 후 교주가 탄 가마와 호법사자 일행은 황산파에서 홀연히 떠나갔다. 놀라운 점은 6인의 가마꾼들 조차도 허공답보(虛空踏步)를 써서 가마를 나르는 것을 보면 초절정급 이상인 것으로 보였다. 내가 교주가마의 뒷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 기가 질려서 말했다.

"저 가마꾼들은 대체 뭡니까?"

"백련교 원로원의 고수들이다."

이광은 어느새 운기요상을 끝낸 듯 팔짱을 끼며 대꾸했다. 내가 이광을 돌아보자 그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저 놈들이 진짜 골칫거리지."

"하하. 대놓고 여기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곤란하오."

저만치에서 함께 송별을 하고 있던 황산파 장문인, 도룡신검 용중일이 이쪽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우리가 힐끔 용중일을 쳐다보자 그가 우리에게 포권을 했다.

"오늘은 정말 뜻깊은 날이었소. 비록 내가 뇌신류와 겨뤄보지 못한 건 한이 되지만, 이만 헤어질 시간인 듯 하오."

그랬다. 따지고보면 정상적인 흐름이라면 진소청과 용중일이 한차례 겨루는 걸 봤어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난데없이 풍신류와 뇌신류의 최강자들이 격돌하는 바람에 아쉽게 기회가 물건너간 것이다.

그러자 이광이 싸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속보이는군. 우리 무공을 좀 더 캐내고싶다는 건가?"

"한 번 겨뤄보는 것만으로 도둑질할 만큼 이 용모의 수양이 깊지 않소이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피곤해서 비무를 할 수가 없군. 나중에 따로 날을 잡으시오."

이광답지 않게 용중일의 은근한 비무제안을 거절하는 모습이었다. 원래라면 트집을 잡아서라도 풍신류의 고수를 없애버릴 이광일텐데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서면 뭔가 안좋을 것 같았기에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고 지켜보았다.

용중일이 훗하고 웃었다.

"이광. 당신은 정천맹과 얼마나 깊은 관계를 맺고 있소?"

"남의 연애사를 궁금해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질문이군. 개소리를 할 거면 꺼지시오."

이광이 조롱하며 뿌리쳤지만 용중일이 집요하게 말했다.

"개소리일지 어떨지는 두고봐야겠지."

"......"

용중일의 입가에 진득한 웃음이 스쳐지나갔다.

"하하, 별 뜻은 없소."

저게 무슨 말일까?

내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광과 망량의 안색이 좋지 않게 변했다. 그들은 용중일의 말에 숨겨진 뜻을 간파한 모양이었다. 이광의 눈에 살기가 흐르며 앞으로 창을 잡고 나서려는 순간, 망량이 한호흡 빠르게 치고 나왔다.

"쓸데없는 심모원려에 감사드리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가봐야겠소. 천하의 황산파가 손객을 괜스리 오랫동안 잡고 있는 무례한 짓은 하지 않겠지?"

"아아, 물론이오."

"우리의 앞길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경우 그 또한 황산파의 책임일 것이고."

"......"

용중일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너무 오래 잡고 있었군. 이만 가 보시오."

그렇게 우리는 황산파에서의 회담을 마치고 다시 떠나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스토리가 조금 막혀서 늦었어요 ㅠㅠ 죄송합니다!

연중 같은거 안 하니 걱정 마시길!

그리고 헬스는 꽤 힘들군요... 과연 뱃살이 빠지는게 먼저인가 내가 죽는게 먼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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