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61화 (161/1,615)

0161 ----------------------------------------------

삼황오제(三皇五帝)

약 한 식경 후, 동방무결과의 이야기가 거의 다 되자 이광은 그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하는 기색이었다. 이대로 내공금제를 해서 그를 풀어줄 경우 강호에 하도 많은 적수를 만들어놓은 동방무결이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렇다 해서 내공금제를 풀어주면 그가 나중에 배신해서 백련교에서 고수를 불러 올 가능성도 있었다.

이광의 고민을 눈치챈 듯 동방무결이 말했다.

"아무리 자네들이 나를 무력으로 잡아왔다 하지만 이런 극비정보를 순순히 알려준 이유가 뭐라 생각하는가? 단순히 고문을 피하기 위해서?"

"무슨 말을 하고 싶소?"

"나는 백련교의 지위를 위해서 지난 세월동안 정보를 캐어왔던 게 아니야. 좀 더 재밌는 뭔가를 추구해왔다고 할 수 있지..."

동방무결의 말이 이어졌다.

"자네들 뇌신류가 천하무림에 새로운 축으로 우뚝 설 수 있다면 그걸 보고 싶군. 천하는 그렇게 되면 좀 더 재밌어질 걸세."

이광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당신은 흥미본위로만 살아가는군."

"허허, 칭찬으로 듣겠네."

그렇다.

동방무결이 백련교주에게서 모종의 댓가를 약속받고 용화수와 괴질의 치료법을 탐색했겠지만, 그의 본질은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모험가였다. 아무리 교주가 큰 댓가를 약속했다고 한들 그거 하나만으로 남만이나 천축까지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동방무결은 새로운 놀잇거리로 백련교와 뇌신류의 대립이라는 점에 주목한 모양이었고, 우리와 같은 배를 탈 용의가 있는 듯 했다.

동방무결이 말했다.

"말해두지만 교주는 뇌신류를 미워하지 않네. 도리어 자네들에게 안타까워하는 감정을 지니고 있지."

"헛소리 마시오."

"진짜일세. 내가 교주와 호법사자가 모여서 논의하는 자리에 함께 참석한 게 두 번이나 되는데, 그 때마다 교주는 '뇌신류가 있었다면' 이라는 한탄섞인 소리를 했었지."

"......!!"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교주는 자네들이 미워서 내쫓은 게 아닌듯 싶어."

큰일났다.

이광의 성격상, 이런 소리를 들으면 대번에 불처럼 화를 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그 순간 진소청과 극호가 동시에 이광을 쳐다보았다. 이광이 열받아서 동방무결을 패죽이지 않을까 염려되어서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광은 되려 무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한참 고민하던 이광이 말을 이었다.

"계속해 보시오."

"그렇다고 뇌신류가 다시 백련교에 종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 내 말은 자네들이 중원에서 새롭게 개파(開派)를 해도 교주가 굳이 토벌대를 보내거나 하진 않을 거라는 말일세."

"음..."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백련교라는 과거와 손을 떼고 새로운 무림의 강자로 진출해보는 게 어떨까, 싶군."

중원 뇌신류의 개파!

그것은 지금까지 뇌신류 고수들이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문파로써의 뇌신류는 본적이 백련교에 있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뇌신류는 선대의 복수를 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힘을 쌓고있을 뿐, 중원에 터전을 만든다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방금 동방무결이 말했던 [백련교의 토벌대]에 대한 걱정도 한몫을 했다. 만일에 백련교 세력이 뇌신류를 확실히 척결하기 위해서 토벌대를 보내면 뇌신류의 생존자들이 몰살당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만일에 동방무결의 말이 사실이라면 뇌신류가 앞으로 중원에서 자생(自生)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물론 뇌신류가 새롭게 개파할 경우 그 위력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본디 지닌 무예가 중원의 타 문파와는 수준이 다른데다가 곳곳에 있는 전승자들이 모이게 되면 순식간에 굉장한 전력을 보유하게 될 것이다. 단일문파로써 정사파의 거대문파연맹에 맞먹는 힘을 지니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광은 피식 웃었다.

"꿈같은 소리군..."

이광은 그 외에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에 진소청을 둘러보며 말했다.

"소청아."

"네."

"접객전에 방이 있을테니 손님께 내 주어라. 당분간 함께 지낼 것 같구나."

"알겠습니다."

동방무결이 그 말을 듣고 끌끌 웃었다.

"신중하군. 신중해서 나쁠 것 없지..."

"오늘의 이야기는 이만 파하겠소. 내일 다시 뵙도록 하겠소."

잠시 후 진소청이 동방무결을 데리고 접객전으로 갔다. 명목상으로는 손님을 묵게 하는 것이지만, 이광은 현재 동방무결을 신뢰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백련교로 보내줄수도 없어서 강제연금상태로 만들려는 듯 했다.

극호가 이광에게 말했다.

"계속 붙잡아둘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각 중이다. 하지만 저 자는 이미 뇌신류에 대해 상당히 많은 걸 알고 있다. 이대로 보내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이광의 말 속에는 살인멸구(殺人滅口)를 할 수도 있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었다. 내가 긴장해서 이광을 바라보자, 그가 말을 이었다.

"다만 아직은 생각해볼 게 있다. 너희는 동방무결을 감시하며 무공의 수련에 힘쓰도록 해라. 동방무결의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넵!"

자리를 해산해서 내 숙소로 가려할 때 이광이 나를 붙잡았다.

"백웅. 잠시 나 좀 보자."

"네."

이광은 와룡전의 한층 더 깊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백웅... 이제부터 내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하거라."

"네."

"너는 뇌신류 외의 다른 조직과 연계하고 있느냐? 혹은 그 조직의 수하인가?"

그 순간, 나는 이광이 나를 '심문'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럴 경우 평소에 묻던 것과는 그의 감지력이 차원이 달라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나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어떤 조직이지?"

"반천맹(反天盟)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반천맹이라... 어떤 조직인지 알 수 있겠느냐?"

"그 전에 여쭙고 싶은게 있습니다."

"말해 보거라."

"어째서 제가 다른 조직과 연계하고 있다고 생각하신 겁니까?"

그러자 이광이 표정없이 대답했다.

"네 행동은 얼핏 혼돈스러워보이지만 분명한 법칙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런 모든 행동은 배후에 조직이 있고, 그 목적성에 합치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것이지. 나의 직감으로 보았을 때 네게는 조직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군요..."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다.

"반천맹이란 황궁의 어둠과 맞서기 위해 창설된 조직입니다."

"황궁의 어둠이라...?"

"의사(義士)들이 모여서 금의위나 동창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 연유는 대뢰옥(大牢獄)의 존재에서도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흠칫

이광은 내가 대뢰옥을 언급하자 동요를 숨기지 못했다. 철혈의 이광조차도 꽤 놀란 듯 했다. 그는 침중한 낯빛으로 말했다.

"있을 법한 일이군."

"그간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만, 황연 대장군께서도 대뢰옥에 투옥당하셨다가 반천맹에게 구출되셨습니다."

"뭐라고!! 정말이냐."

"네. 또한 수도 인근에 금의위와 동창이 황씨 일족을 연금해둔 것도 구출했습니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면서 빤히 이광을 쳐다보았다.

"금의위의 수법은 잘 아실텐데요."

"......"

이광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깊게 몸을 뉘였다. 그는 한층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무엇을 노리고 내게 접근한 것이냐?"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대로는 뇌신류에 미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뭐라고."

나는 도박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이대로는 이광이 나를 불신해서 죽이려 들거나 내쫓거나 혹은 고문을 하려 들거나였다. 그럴 바에야 이광이라는 인간이 느끼고 있는 위화감이나 신념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는 게 낫다고 느껴졌다. 그것은 수십 년이나 이광이라는 인간을 관찰한 결과 나오게 된 직감이라고 봐도 좋았다.

"제가 청룡무관에 오기 전까지 사부께서는 어떤 계획이 있으셨습니까? 백련교에 원한을 지니고는 있지만 그걸 성취할 방법이 없어서 그저 일신의 무력을 닦으실 뿐 아니셨습니까? 제대로 된 전략과 방향을 얻게 된 건 제가 온 후입니다."

"음..."

이광은 정곡을 찔린 듯 침음성을 흘렸다. 나는 그가 뭐라고 하기 전에 빠르게 몰아쳤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백련교주가 죽을 때까지 기다리실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는 반천맹의 일원이기에 앞서서 뇌신류의 제자라는 자각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조금이라도 많은 정보와 힘을 규합해서 강호 최강의 대세력과 자웅을 겨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는 그렇기 때문에 반천맹주와 손을 잡은 겁니다."

"......"

"저를 반천맹의 간자라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겠지만, 제가 뇌신류에 손을 쓰려 했다면 진작에 썼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 주십시오."

내가 격렬하게 말을 토해내자 이광은 침묵한 채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원래의 이광이라면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한 후 나를 무력으로 제압하려 들었겠지만, 내가 한 말은 하나같이 이광이 품고 있는 모순과 고민거리를 꿰뚫고 있었다. 이광은 생각이 없는 병신이 아니기 때문에 닥치고 팬 다음에 생각한다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광이 침묵을 깬 것은 약 반 각이 지나서였다.

"좋다. 그러면 너는 언젠가 내게 반천맹과의 연수를 제안하려 했다는 말이구나."

"그렇습니다."

"가능하다 생각했느냐? 나는 진충보국(盡忠報國)을 늘 생각하고 있으며, 반천맹이 금의위에 대적함은 그들에게 전권을 내린 황제(皇帝)께 대적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금의위가 아무리 썩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전면적으로 응해줄 수는 없다."

얼핏 보면 이광이 내 제안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광이 좀 더 대답을 듣고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강하게 대꾸했다.

"그러면 우국지사 황연 대장군께서 대뢰옥에 투옥당하신 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네 말일 뿐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만일에 확인하실 수 있다면 반천맹과의 연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실 겁니까?"

"...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금의위가 황제폐하의 뜻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여서 그런 엄청난 짓을 저지른다는 건 믿기 힘들다."

나는 그 순간 황연 대장군과 이광의 문답을 보았던 기억이 났다. 그 때의 이광은 분명히 크게 흔들렸기에,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하며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여쭙겠습니다. 사신위 청룡 이광이 영혼을 다한 충성을 바친 것은 선제(先帝) 폐하가 아니셨습니까? 설마 금의위에 충성을 바치셨던 겁니까?"

"......!!"

"물론 사부께서는 선제의 아들되시는 현 황제께도 충성을 바치고 있으실 겁니다. 허나 그렇다면 대명(大明)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건..."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황제께서 대명제국을 상징하신다면, 그 빛에 꼬여든 어둠을 떨쳐내는 게 진정한 충의(忠義)가 아닐지요! 그것이 선제께 진정한 의리를 지키는 일이 아닐지요!"

순간 이광의 눈빛이 급격하게 흔들렸다. 계속해서 정곡만 후려맞던 그가 무너진 것 같았다. 정확히는 그의 신념을 부수지 않는 선에서, 생각하는 방향을 바꿔버린 느낌이었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황연 대장군의 말을 옮겨온 것이었지만 그만큼이나 이광에게 잘 통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은 이광의 신념과 배치되지 않는다. 황제는 지존이지만 거기에 꼬여드는 날파리를 없애야 한다는 데는 이광 또한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말은 이광이 반천맹과 연수할만한 명분을 만들어 준 셈이었다.

이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 네 말이 맞다. 설마했지만 금의위가 거기까지 타락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이광이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면 현재 반천맹에서 황연 대장군과 식솔들을 보호하고 있는건가?"

"그렇습니다. 직접 뵙기를 원하십니까?"

"아니... 됐다. 네 말이 거짓말이라면 애초에 내게 목갑이나 비등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겠지."

지금 당장이라도 비등을 이용해서 반천맹으로 날아갈 수 있는 이상, 내가 어설픈 거짓말은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그는 의자에 깊게 몸을 뉘이더니 말했다.

"백웅. 너는 반천맹주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반천맹주는 저의 동료이자 천하에 둘도 없는 책사(策士)입니다."

"청룡무관에 너를 보낸 건 반천맹주의 의지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저의 의지로 왔습니다. 삼절 이광이야말로 백련교와 풍신류에 맞설 수 있는 뇌신류의 주장(主將)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으음... 너와 반천맹주는 동료인가 보군."

"그렇습니다."

이광은 손에 깍지를 꼈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고 내게 금과옥조같은 이야기를 해 주어서 고맙다. 네가 조금이라도 허투루 거짓을 고했다면 나는 결코 너를 용서치 않았을 것이다."

무덤덤하게 이야기하는 이광이었지만 나는 속으로 약간 소름이 끼쳤다. 지난 세월동안 이광을 관찰해온 게 있었기 때문에 저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광과의 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어서 그를 동료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도 확신할 수 있었다.

곧이어 이광이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동방무결의 처분이나 앞으로 뇌신류의 방향은 나로써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너같은 인물을 부릴 수 있는 반천맹주의 의견과 지혜를 들어보고자 한다."

"그 말씀은..."

"반천맹과 연수하겠다. 나와 소청이를 그에게로 안내해 다오."

나는 이광의 확답을 듣자 한고비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동방무결을 숙소에 데려다놓은 진소청이 되돌아오자, 황금비등을 이용해서 진랑곡으로 향했다.

파앗!

때는 저녁이었다. 노을빛이 저물고 있는 진랑곡의 산중에서, 망량의 초갓집은 가까이 보였다. 이광과 진소청은 정신력이 다소 소모된 듯 했지만 견딜만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나는 우물가에 걸터앉아서 뭔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 망량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망량! 우리가 왔소."

내가 망량을 부르자 그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내 뒤쪽에 서 있는 이광과 진소청을 보자 약간 놀란 표정을 짓더니 상황을 짐작한 듯 부드럽게 웃으며 걸어왔다.

"오셨군. 사신위 청룡을 뵈어서 영광입니다."

"흐음."

"안으로 드시지요."

잠시 후 우리 넷은 좁은 오두막에 마주보고 앉아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망량에게 우리가 이곳에 오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했고, 동방무결이 말했던 정보도 전해 주었다. 망량은 눈을 감고 천천히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우선 해결책을 말하기에 앞서 황연 대장군을 한번 뵈시지요."

"알겠네."

우리는 망량의 인도에 따라서 황연 대장군의 거처로 갔다. 진랑곡은 꽤나 넓은 계곡이었기에, 망량이 기문절진을 설치해놓고 황연 대장군과 그의 일족이 몰래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두고 있었다. 평범한 촌락마을처럼 보였으나 이광이 거기서 황연 대장군의 얼굴을 발견하자 깜짝 놀랐다.

"자... 장군!"

황연 대장군도 꽤 놀란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내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왔는가?"

그리고 그들은 만나서 무언가 한 식경 정도 이야기를 주고받는 듯 했다. 나와 망량은 그 동안에 먼 발치에서 이야기를 했다. 망량이 내게 투덜댔다.

"예상보다 빠르잖소. 적어도 2년은 더 준비했으면 좋았을텐데."

"미안하오. 하지만 이광의 성격상 그를 속일 수도 없었소."

"흠... 어쩔 수 없지. 되려 당신이니까 그 위기를 넘겼을 거라 생각하니."

망량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하지만 일이 좀 까다로워질 것 같구려. 강호(江湖)가 크게 진동할 터이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나 망량이 이 순간 상당히 먼 미래까지 내다보았다는 건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이광에게 줄 계책을 짜놓았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이광과 황연의 면담이 끝나자 우리는 다시 망량의 초갓집에 돌아왔다. 이광은 아까보다 훨씬 신뢰를 머금은 눈빛으로 망량을 보고 있었다. 황연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반천맹주 망량. 실례지만 지혜를 구하겠네. 그대는 우리가 어떤 행보를 취하는게 좋다 생각하는가?"

"......"

적극적으로 지혜를 구한다는 말을 하는 걸 보면 황연 대장군이 망량의 지혜에 대해 크게 평가한 모양이었다. 오화칠금선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고 한참 생각하던 망량이 대뜸 이광에게 말했다.

"개파(開派) 하십시오."

"으음...!!"

"강호에 뇌신류를 정식으로 출범시키는 것입니다."

"동방무결이란 자의 말을 믿어도 된다는 말인가?"

"설마요. 이건 그것과 다른 문제입니다."

망량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더니 말했다.

"동방무결이 뇌신류가 어쩌고저쩌고 한것은 전혀 믿을 게 되지 못합니다. 애초에 동방무결이 그 엄청난 내공을 쌓을 수 있었던 이유가 뭐겠습니까? 보나마나 젊었을 적 백련교를 방문했을 때 의뢰를 받는 댓가로 백련교의 성련을 다량으로 섭취했기 때문일 겁니다."

"......!!"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런 건 생각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하긴 그 엄청난 내공은 성련이 아니면 불가능할지도...'

망량의 말이 이어졌다.

"본인의 말로는 욕심없이 움직였다고 하지만 세상사는 오는 게 있으니 가는 게 있는 법. 틀림없이 용화수나 흑백련의 탐색댓가로 뭔가 보수를 약속받았을 겁니다. 그렇기에 동방무결은 전적으로 백련교주의 직속수하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런 자가 무력에 윽박질려서 내놓은 말을 신뢰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지요."

"내 생각도 그렇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뇌신류가 강호에 나와야 한다는 말에는 찬성입니다."

"왜 그런가? 토벌대가 찾아올지도 모르는데."

"토벌대는 오지 않습니다."

이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설마 백련교주가 뇌신류를 긍휼히 여긴다는 헛소리를 진짜라 생각하는 건가?"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망량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협상을 하는 겁니다."

"협상?"

"네. 바로 소교주의 괴질을 치유할 방법을 가르쳐 주는 대신에 뇌신류의 개파를 정식으로 인정하라는 거죠."

"동방무결을 백련교로 돌려보내지 말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를 저희 반천맹에서 관리하겠습니다. 천하제일의 의원이니만큼 도움을 받을 일도 많을테니까요."

망량의 말 뜻은 명백했다.

동방무결의 정보를 가로채서 뇌신류의 개파를 위한 협상재료로 삼는 것!

잠시 생각하던 이광이 말했다.

"내가 아는 백련교의 힘이라면 그런 제안따위는 무시하고 바로 토벌대를 보낼 수도 있네. 그렇게 무력행사를 할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인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방무결의 말마따나 교주는 뇌신류가 어떤 유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뇌신류가 추방당한지 한 세대가 지나서 고수들이 성장한 상황에서 섣불리 자파의 전력을 보내서 토벌할 수 있을거라는 확신이 없을 겁니다. 하물며 소교주의 괴질에 대한 정보를 이쪽에서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무리죠."

"으음."

"그래도 정히 걱정되신다면 이쪽에는 비등이 있습니다."

좌중의 이목이 내게로 쏠렸다. 망량이 씨익 웃었다.

"만에 하나라도 전투에서 밀린다 하더라도 비등으로 언제든 어디로든 도망칠 수 있습니다. 적에 치명적인 정보를 가진 상황에서 이보다 더 좋은 패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 그렇군. 확실히 그래."

이광은 망량의 말뜻을 단번에 이해한 듯 했다.

백련교에서 순식간에 우리를 섬멸시키고 정보를 캐내려 하는 선택도 할 수 있었지만, 그 선택은 전원을 사살하거나 포획한다는 게 전제가 되어야 했다. 언제든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면 백련교의 그런 시도는 멍청한 짓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망량이 말했다.

"개파하십시오. 뇌신류의 힘을 결집시켜서 강하게 키운다면 나중에는 백련교도 섣불리 공격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

"만일에 백련교에게 그 단서를 알려줬다가 정말로 괴질을 치유하면 어떻게 하는가? 그들은 그때야말로 천하에 거칠 것 없이 진출하게 될 텐데."

"후후. 삼황오제 전욱이 치수의 증거를 남긴 곳이라... 그런 몇마디 문장만으로 영약의 위치를 찾을 수 있다면 천하의 보물사냥꾼이나 학자들은 모두 떼부자가 되어있을 겁니다. 수십 년이 지나도 못 찾을 게 분명하니 안심하십시오."

유들유들하게 웃는 망량이었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망량은 내 전생동안 모아온 정보를 거의 다 갖고 있는 상황이기에, 동방무결이 설령 백련교로 귀환한다고 하더라도 백련교가 당장 흑백련을 찾아내는 일이 없다는 걸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정보를 손에 쥐고 있는데 두려울 리가 없었다.

이광이 확신을 얻은 듯 말했다.

"좋네. 반천맹과 연수하고, 곧 백련교와 협상할 준비를 하지."

"앞으로 많은 협력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쪽이야말로 잘 부탁하네."

그렇게 뇌신류와 반천맹의 동맹이 이루어졌다.

나는 비등을 가지고 뇌신류에 복귀하기 전 망량에게 물었다.

"망량. 뇌신류가 천하에 우뚝 서게 되는 경우는 여태 없었소. 왜 이런 위험한 제안을 한 것이오?"

지금까지 내 전생에서 해본 적 없는 선택을 한다는 것. 그것은 미래의 예측이 틀어진다는 뜻이기도 했다. 망량이 일부러 앞으로의 미래를 이용해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버리면서까지 뇌신류의 개파를 주장한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망량이 훗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바로 당신을 위해서요."

"무슨 말이오?"

"현재 당신이 지닌 뇌신류 무공은 완전한 게 아니오. 파편화 되어있지. 그것은 백련교의 뇌신류가 무너져서 추방당할 때 뇌신류 소속의 무수한 달인들이 뿔뿔이 흩어졌기 때문이오. 뇌신류의 모든 비전무공을 한 몸에 익히는 건 인간으로써 불가능하기에 각자의 달인들이 지니고 있던 비기가 따로 존재했겠지."

"음, 설마..."

"그렇소."

망량의 눈이 빛났다.

"이번 기회에 뇌신류를 개파시키고, 당신은 파편화된 뇌신류의 무공을 모두 끌어모으시오. 그게 이번 전생에서 당신이 노려볼 일이오."

============================ 작품 후기 ============================

논란이 있어서 비전->계획 으로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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