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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4화 (154/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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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파앗!

나는 망량과의 대담이 끝나자마자 미호와 함께 비등으로 순간이동했다. 비등을 통해서 나타난 곳은 바로 황궁의 지하심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무저갱의 최하층이었다. 그리고 이 어둠속을 밝히고 있는 거대한 비석이 존재했다.

미호는 수정비석을 보더니 말했다.

"굉장하구나. 이 마력(魔力)은..."

"이게 현자(賢者)의 돌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적힌 비석이지."

나는 수정비석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13번째 전생에서, 나는 제갈부에게 이 수정비석의 존재를 안내받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제갈부는 내게 함께 현자의 돌을 연성하자고 제의했었다. 그러나 나는 제갈부를 신뢰할 수 없어서 그 제안을 거절하고 제갈부와 사생결단을 내려는 선택을 했었다.

' 역시 경비병같은 건 없군.'

이 장소는 황제나 연금술사 혹은 제갈부같은 최고위인사만이 도달할 수 있는 곳이다. 당연히 최고의 극비이며, 어쩌면 연금술사가 평소에 황제나 제갈부조차도 접근시키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고로 일반 경비병이 수정비석을 지키고있을 리는 없다.

내가 수정비석에 다가가서 목갑에 넣으려고 하자 미호가 갑자기 나를 제지했다.

"잠깐!"

"왜?"

"뭔가 술법같은 게 걸려 있다. 건드리면 술법의 근원에게 연결될 것이다."

"흐음."

그럴만도 했다. 연금술사에게 있어서 이 수정비석은 목숨보다 소중할 테니 온갖 방어술법을 걸어놔도 이상하지 않았다. 직접 수정비석에 접촉하는 건 꽤 위험할 듯 했다.

"미호. 해주(解呪)가 가능해?"

"힘들다. 이건 일반 술법이 아니라 마력(魔力)으로 주조된 마법(魔法) 같구나. 마신의 힘을 빌리는 술법이니 어렵다."

연금술사는 악신을 모시는 사제답게 괴이쩍은 마법을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대로 목갑을 수정비석에 들이대었다.

' 씁, 어쩔 수 없지.'

지금 들어온 것도 연금술사에게 알려졌을지도 모른다. 두 번 오기는 버겁다.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

슈르륵!

크기가 삼 장이나 되던 커다란 비석이 순식간에 목갑 안으로 빨려들었다.

키리리릭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붉은 눈 같은게 가득 소환되더니 빛이 번쩍번쩍 거렸고, 나는 급히 미호의 손을 잡으며 비등을 사용했다.

파앗!

나와 미호가 다시 나타난 곳은 천람의 방으로써, 아직 미완성인 초상기인(超上奇人)이 있는 연구실이었다. 이 곳 또한 경비병이 따로 없었으며 그저 석제단에 누워 있는 묘령의 소년소녀들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 4체?'

숫자가 늘었다. 예전에 왔을때는 저 묘령의 소녀 한 명 뿐이었는데, 옆에 소년 한 명과 20대의 미녀 한 명, 그리고 키가 멀대처럼 큰 장한이 한 명 더 있었다. 약 1년 사이에 연금술사는 초상기인의 실험체를 늘린 것이다.

어쨌든 망설일 틈이 없었다. 나는 초상기인이 수면상태인 걸 확인할 겨를도 없이 목갑을 뻗어서 그들의 몸뚱이를 목갑에 집어넣었다. 4명 모두를 목갑에 넣고 나자 나는 재차 미호의 손을 잡았다.

파앗!

다시 나와 미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진랑곡이었다. 정신없이 짧은 순간에 비등을 연속사용하자 긴장과 집중력이 크게 소모되는 기분이었다. 그건 미호도 마찬가지인지 약간 지친 표정으로 대청마루에 기대는 미호였다.

"하아... 하아..."

"해냈어."

그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망량이 빙긋 웃었다.

"잘 했소."

지금쯤이면 연금술사와 황궁 복마전 세력이 초상기인을 꽤 진척시켰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놈들이 힘을 키우도록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도중에 미완성 초상기인을 빼냄과 동시에 현자의 돌을 못만들도록 수정석비를 이쪽으로 가져온 것이다!

일종의 견제였다.

망량이 말했다.

"수정석비는 여기서 꺼내지는 마시오. 아마 목갑은 아공간이라서 술법의 위치추적을 막을 수 있겠지만 밖으로 꺼낸 순간 위치를 들키게 될 거요. 진랑곡이 복마전에게 추적당하면 큰일이 벌어질 거요."

추적술같은 건 당연히 걸려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듯 했다.

"그럼 어떻게 하오?"

"두 가지 방법이 있소."

망량이 내게 우물물을 떠서 표주박에 담아 건네주었다.

"첫 번째는 백웅 당신이 아는 한 가장 멀고 외딴 장소에서 수정석비를 꺼내서 해석을 시작하는 것. 당연한 말이지만 연금술사가 초장거리 공간이동같은 걸 사용할 정도의 마법사는 아닐테니 추적같은 걸 당분간 잊어버리고 여유롭게 해석할 수 있소."

나는 물을 벌컥 마신 후 말했다.

"두 번째는?"

"수정석비는 그 자체로 굉장한 신보(神寶)라고 할 수 있소. 그걸 신께 공양함으로써 새로운 능력이나 축복을 얻을수도 있소."

"호오..."

후자의 선택이 끌렸다. 어차피 수정석비를 봐봤자 현자의 돌이 지금 내게 얼마나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그럴만한 노력을 들일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럴바에야 그냥 수정석비를 막야의 수기 바치듯 신에게 줘 버리는 것도 괜찮은 생각인 것이다.

"뭐 그건 지금 당장은 시간이 없는 일이겠지."

"초상기인은 어떻게 하면 되겠소?"

"그것도 마찬가지..."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동영쯤으로 날아가서 나 혼자서 연구한다면 그것도 좋겠지만, 지금은 반천맹의 수장으로써 세력을 키우는 중이라서 용이하지 않구려. 연금술사를 꺾은 후에 해도 될 것이오."

"으음..."

나는 망량에게 제약아닌 제약이 걸려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망량이 아무것도 짊어진 게 없었다면 수정석비와 초상기인을 머나먼 땅에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었겠지만, 반천맹의 수장이라는 직위 또한 있기 때문에 곤란한 것이다.

그 순간, 또 다른 방법이 생각났다. 하지만 그건 망량을 배신하는 일이나 다름없었고 당장 시도해야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가라앉혔다.

망량이 말했다.

"이로써 우리는 적어도 5년의 시간을 벌었다고 할 수 있소."

"5년이라."

"그 동안에 최대한 반천맹의 규모를 늘이고 힘을 쌓아서 안정적으로 적을 쓰러뜨릴 수 있도록 해야하오. 백웅 당신은 무공을 최대한 키우면 될 것이고."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황제가 죽지 않고 건재한데 어떻게 할 생각이오?"

"지난번에 황제가 사망한 건 굉장히 특수한 상황이었소. 정면에서의 역모는 불가하다고 일단 말해두지. 우리는 청류계 인사들을 규합하고 황제를 정치적으로 압박할 생각이오."

"황제 본인이 전적으로 복마전에 협력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소?"

"그게 가장 중요한 점이지."

망량이 근처에 걸터앉아서 말했다.

"황제가 자신의 의지로 복마전에 협력한다, 이건 우리의 대항이 무의미해질수도 있지만 반대로 좋게 작용할 수도 있는 사실이오."

"그게 무슨 차이가 있소?"

"자신의 의지로 연금술사의 계약을 거부할 수 있을 정도라면, 황제가 자신의 의지로 복마전을 내칠 수도 있다는 뜻이오. 적어도 황제가 꼭두각시가 되어서 복마전에게 조종당하고 있지는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지."

"......!!"

"현재로써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

황제가 복마전을 내쫓아 버린다!

확실히 그렇게 된다면 반천맹을 만들어서 귀찮게 뭘 해야할 이유는 없다. 황제가 만악의 근원과 손을 잡고 권력과 힘을 휘두르는 게 문제였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이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주억거리자 옆에서 듣고 있던 미호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하하... 괜히 백웅 듣기 좋은 소리만 하고 있구나. 그게 그리 쉬운 일일까?"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권력자가 불로불사(不老不死)와 영생(永生)을 전제로 복마전과 손을 잡은 것이다. 그 이상의 이득이나 압박을 주지 못하면 황제는 결코 복마전과의 연계를 끊지 못한다. 그리고 권력자에게 불로불사와 영생, 그 이상의 댓가가 어디 있을까?"

"......"

미호의 웃음에는 동영 땅에서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가의 관점이 스며들어 있었다. 확실히 권력자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불로불사를 댓가로 내세운다면, 황제는 결코 복마전과의 연대를 포기하지 않으리라. 잠시 생각하던 망량이 말했다.

"그를 꼭 개심(改心)시키지 않더라도 다른 방법은 있습니다. 단지 그게 가장 이상적이라는 것 뿐."

"우후후... 가시밭길이구나."

"어쩔 수 없겠지요."

한탄한 망량이 내게 말했다.

"백웅. 그렇기에 당신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오. 사실 내가 아무리 날고기어봐야 반천맹을 이용해서 황궁과 맞서는데는 한계가 있소. 당신이 움직이면서 변수를 만들어내고, 나아가서는 적의 헛점을 만들어낼 수 있으니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시오."

"알았소."

우리는 진랑곡에 되돌아와서는 도왕을 찾아갔다. 도왕은 짐을 다 풀고 복장을 갈아입었는데 여염집의 규수와 같은 옷이었다. 화사하면서도 청초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미녀가 서 있었다.

도왕 벽지상이 나를 발견하더니 훗하고 웃었다.

"바빠보이는군."

"실제로 바쁘니까."

나는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

"도왕 벽지상. 네가 알고 있는 모든 걸 말해줘야겠다. 동방무결을 만나게 된 경위, 그리고 무후사에서 도박을 하게 된 경위, 그리고 그 원숭이가면의 괴인들이 누구인지..."

"역시 그걸 물어보려 한 거군."

"성의껏 대답해주길 바란다. 고문을 하긴 싫으니까."

도왕 벽지상의 눈이 가늘어졌다. 마치 웃는 듯 했다.

"무른 것 같지만 그만큼 냉철하고 강인하군. 그 나이에 쌓을 수 있는 마음수양이 아닐텐데."

"쓸데없는 소리는 관둬."

"좋아. 중요한 일도 아니니까 얘기해주지."

그녀는 동방무결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동방무결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는 내게 제안을 했었다. 커다란 도박판이 있으니 제발 내게 나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동방무결이 부탁을 했다고?"

"그래. 그리고 나는 그에게 먼저 빚을 진게 있었으므로 그걸 탕감하는 조건으로 동방무결을 따라다녔다. 먼저 동방무결이 나의 실력을 시험해보고싶다고 해서 사천의 도박장을 돌아다녔고, 실력검증이 끝나고나자 무후사로 갔지."

"빚? 어떤 빚을 말하는 거냐?"

그러자 벽지상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말할 수 없다. 그와 나의 개인적인 빚이니까."

"흐음... 계속해 봐."

"무후사에 도착해서 마작을 했다. 마작판은 이쪽에서 준비해갔고, 거기에는 원숭이가면을 쓴 흑의인 2명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지. 나는 16국에서 완전히 다 따서 이기는데 성공했고 동방무결은 내게 고맙다고 했다."

"그게 끝인가?"

"그래."

"원숭이가면을 쓴 놈들이 누군지는 모르나? 무후사에서 굳이 마작을 벌인 이유라던지..."

내 질문에 벽지상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원숭이가면을 쓴 자들은 엄청난 고수로 보였다. 동방무결도 섣불리 그들에게 무력을 쓰는 걸 고려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리고 동방무결은 엄청난 댓가를 그 도박판에 걸었던 것 같고, 마작이 끝나고나서 원숭이가면을 쓴 놈들과 뭔가 속닥대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

"무후사에서 마작을 벌인 이유같은 건 모르겠다. 아마 동방무결 본인만이 알고 있을 거다."

나는 황당해서 벽지상에게 말했다.

"아니 그럼 아예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 아냐? 그렇게 위험한 자리에 아무것도 모르고 찾아갔다는 말인가?"

"그게 재밌는 것이다."

"......"

나는 질려서 도왕 벽지상을 쳐다보았다. 이 여자는 머릿속 어딘가가 망가져 있었다. 아무것도 몰라도 그저 자신을 자극시킬 수 있는 도박판이면 대충 뛰어들어서 목숨마저 걸 수 있었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사고방식에 가까웠다. 그러자 그녀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 아. 그러고보니 동방무결이 어디 갔는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는 분명히 흑태자(黑太子)라는 자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흑태자? 그건 또 뭐냐?"

"남만땅에서 제일 가는 권술(拳術)의 고수라던데."

"으음."

남만의 흑태자. 그건 또 뭐하는 놈일까?

나는 뜻밖의 정보를 얻어내긴 했지만 이해가 안되어서 그녀에게 물었다.

"동방무결의 목적은 대체 뭐냐? 놈은 뭐하러 중원을 벗어나서 남만까지 간 거지?"

"그는 병(病)을 고치고 싶다고 말했다."

"병이라."

"확실한 건, 그는 방법을 찾아내기 전에는 절대 중원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곰곰히 생각에 잠기자 그녀가 손깍지를 끼며 말했다.

"너희와 같은 패가 되고 싶다. 왠지 재밌을 것 같아."

"그렇다면야..."

나는 슬며시 미호를 바라보았다. 미호는 기다렸다는 듯 갑작스럽게 도왕 벽지상에게 매혹술을 걸었다. 그러자 벽지상의 눈이 흐릿해지더니 이윽고 뒤로 넘어가듯이 쓰러졌다. 초절정고수인 장봉마저 한방에 거꾸러뜨린 매혹술을 벽지상이 당해낼 리가 없는 것이다.

미호가 투덜거렸다.

"그냥 처음부터 매혹술을 걸면 되지 않느냐?"

"매혹술만으로는 끄집어낼 수 없는 것도 있고, 이 녀석이 어디까지 우리에게 진심인지 알아봐야하잖아."

"흐응... 이 년에게 관심이 있는 거냐?"

"왜 이야기가 그런 쪽으로 가냐."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 여자는 아름답지만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심성이 아냐. 설령 지금보다 10배나 아름답다고 해도 내 쪽에서 거절이다."

"우후후, 백웅 너에게 그런 평가를 듣다니 어지간하구나. 하긴 도박에 미친다는 건 무서운 일이지."

깔깔 웃던 미호가 벽지상을 심문하기 시작했다.

"자, 나를 보아라..."

그리고 하나하나 매혹을 걸고 물어본 결과, 벽지상은 하나도 거짓말한 게 없었으며 전부 그대로 말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말로 벽지상은 동방무결에 대해 거의 아는 게 없었던 것이고, 우리와 동료가 되려하는 듯 했다.

"개인적인 빚... 이라는 건 절대 말하려 들지 않는군."

매혹술로 모든 걸 알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자가 굉장히 강한 의지로 거부하고 마음을 닫아두는 내용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심문을 끝낸 미호가 말했다.

"문제없을 듯 하구나."

"잘됐지 뭐. 하나라도 고수가 아쉬울 때니까."

"이제 어디 갈 생각이냐?"

"극호한테."

나는 기절한 벽지상을 망량에게 인도하고는 미호와 함께 극호가 있는 관중으로 향했다. 관중에 도착하자 나와 미호는 잠시 객잔에 들러서 밥을 먹었다. 미호는 소면을 후루룩 먹다가 말했다.

"백웅. 극호에게 어디까지 설명할 생각이냐?"

미호의 질문은 중요한 문제였다. 나는 망량과 미호에게는 완전한 동료라고 생각해서 전생에 관한 것은 물론 대부분의 정보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극호는 중립적인 인물인데다가 신뢰관계도 전혀 쌓을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런 극호에게 [동영에서 멸혼보를 검호에게 전수하는 실험을 했다] 라고 말해봤자 죽일놈 취급밖에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도와줘."

"어떻게?"

나는 자신있게 대답했다.

"미인계(美人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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