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53화 (153/1,615)

0153 ----------------------------------------------

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도왕을 데리고 진랑곡에 돌아왔다. 진랑곡에 도착해서 망량에게 도왕 벽지상을 소개하자, 망량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더니 말했다.

"무슨 속셈이신지?"

도왕 벽지상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대답했다.

"재밌어보여서."

"그렇군."

망량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으로 도왕 벽지상이 머물 장소로 안내해 주었다. 그리고 되돌아와서 잠시 오화칠금선을 펄럭이던 망량이 나를 쳐다보더니 말했다.

"백웅.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나는 망량을 따라서 인적이 적은 풀숲으로 향했다. 망량이 바위에 걸터앉더니 말했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오?"

"어떻게라니... 이제 극호에게 가서 멸혼보를 연구해 볼 생각이오."

"......"

망량이 짧게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그것도 좋겠지만, 내가 알아낸 게 워낙 중대하여 도중에 말을 해야만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소. 당신은 반드시 이 모든 걸 알고 나서 행동을 결정해야 하오."

"흐음."

"그리고 이 대화는 아마도 천호께서 듣고 계실 듯 한데, 그냥 나와서 같이 이야기하셨으면 합니다."

사아앗

그러자 어딘가에서 둔갑술을 시전하며 미호가 출현했다. 미호는 몰래 둔갑술을 써서 무생물인 척 변신해서 숨어있었던 것이다. 나는 미호가 있을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놀랐는데, 미호도 마찬가지인듯 눈에 이채를 띄며 망량을 바라보았다.

"어찌 알았느냐? 네 술법경지가 그새 그만큼 심후해졌느냐?"

"아닙니다. 그저 제가 천호시라면 같이 듣고싶어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흐응... 쓸데없이 머리가 좋은 놈이로고."

망량이 섭선을 팔락였다.

"어차피 천호께서 백웅의 호위를 해주신다면, 천호께서도 이 이야기를 알고계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거기 앉으셔서 같이 들어주십시오."

"좋다. 얼마나 재밌는 얘기인지 어디 들어보자꾸나."

미호도 근처의 나무등걸에 앉았다. 나와 미호의 시선이 망량에게 쏠리자, 망량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진랑곡과 반천맹의 힘은 상당히 강해졌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인재들에게 영약을 투여하였으며 조직력도 갖추었으므로, 아마 모르긴 해도 일개 대문파급의 전력을 지니고있다고 자부하오. 하지만 아직 거사를 도모하기에는 부족한지라 현재는 암약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이오. 황연 대장군의 식솔을 구출하는데도 성공했지."

"그렇군."

"그리고 그 일과는 별개로 나는 백웅 당신에게서 두 가지의 과제를 받았었소."

"두 가지?"

망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가지는 칠요(七曜) 막야의 봉인해제법과 그 장소에 관한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수요의 유적 최심부에 있던 삼황오제 전욱의 동상과 갑골문에 관한 것이었소."

"그랬지."

나는 선명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전자의 경우 지속적으로 망량에게 알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내가 너무 빨리 죽는 바람에 별로 성과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는 이번 전생때 새롭게 알게 된 의문이었다. 내가 망량을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먼저 나는 의문을 가졌소. 어째서 막야는 다른 칠요와 달리 봉인(封印)이 따로 걸려있는 것일까? 어째서 수호자가 봉인지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걸 생각하던 중, 어쩌면 전욱의 동상이 그 의문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었소."

"삼황오제 전욱의 동상..."

"그래서 나는 막야의 봉인지를 상징하는 수수께끼의 비문을 해석하기에 앞서서 전욱의 갑골문부터 해석했소. 나 혼자였다면 오랜 시간이 걸렸겠지만 반천맹의 조직력을 이용해서 자료를 모은 덕에, 나는 반 년만에 전욱의 갑골문을 해독할 수 있었소."

거기까지 말한 망량이 잠시 숨을 들이쉬고는 말을 이었다.

"삼황오제 전욱의 갑골문은 다음과 같소.

[ 아아, 북(北)에 있던 천지간의 통로가 무너졌나니.

신자(神子) 고양씨(高陽氏)가 황제(黃帝)의 부름을 받아 되돌아가노라.

인간의 호소에 치수(治水)의 비법을 세상에 남기었도다.

그리하여 막야(莫耶)를 징표로 남긴다. ] "

"북쪽에 있던 천지간의 통로...?"

"산해경에 있는 삼황오제 전욱의 실수를 의미하오. 아주 먼 옛날에는 천계와 인계가 서로 통해 있어서, 등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도 인간이 생명체의 몸을 가지고 천계로 갈 수가 있었다고 하지. 그러나 전욱의 실수때문에 그 통로가 무너져서 등선이라는 체계가 생겨버렸다는 말이 있소."

그렇게 설명한 망량이 힐끔 미호를 바라보았다.

"천호께서는 천계에 있으셨으니 이 일을 왠지 잘 아실 듯 합니다만..."

"......"

미호는 망량의 설명을 듣고 뭔가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했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천계와 인계를 잇는 비밀통로가 존재하며, 그게 세상 어딘가에 있는 건 사실이다. 본녀도 그 통로 중 하나를 통해서 지상으로 추방되었느니라."

뜻밖의 이야기였다.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펼치며 물었다.

"그럼 어찌하여 그 통로를 통해서 천계로 돌아가지 않으시는지..."

"내가 나온 곳 외에는 다른 곳이 어디에 있는지 모를뿐더러, 그것은 뒷문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거기를 통해 천계로 들어갈 경우 바로 투선(鬪仙)에게 공격당해 소멸당하고 말 것이다."

"그렇군요."

잠시 뜸을 들이던 망량이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하여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바로 치수의 비법이라는 부분이오."

"치수?"

"고대에 굉장히 큰 홍수가 있었소. 엄청난 대홍수로써 천지가 물에 잠겨서 생명체가 전멸의 위기에 놓였다고 하오. 그 홍수를 막은 것은 삼황오제이자 시조신인 여와(女?)였으며 오색의 돌을 갈아 구멍 난 하늘을 메웠으며, 바다에 살던 큰 거북의 네 다리로 천지천상을 떠받쳤다는 전설이 있소."

"아, 그거 말이군."

나는 신화를 읽은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가 망량의 설명을 듣자 퍼뜩 떠올랐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인간의 대표인 곤과 우를 뽑아서 치수를 행하게 했다는 전설도 있소."

"흐음."

"내 생각이지만 아마 대홍수는 두 번 있었을 것이오. 한 번은 삼황오제의 권능으로 신격들이 막아내었으며, 다른 한 번은 곤과 우 임금이 하나라 사람들과 함께 중원의 대홍수를 막아낸 것이겠지."

거기까지 말한 망량이 눈을 빛냈다.

"나는 이렇게 가정했소. 혹시 곤과 우 임금은, 인간의 대표로써 삼황오제 전욱에게서 치수의 비법을 들어서 대홍수를 다스리는 데 성공한 것이 아닌가."

"......!!"

"그리고 전욱은 천계와 인계를 분리시키면서, 인간과 치수약속의 증표로 칠요 막야를 수요의 유적에 남기고 갔다고 볼 수 있소. 그렇지 않다면 전욱의 동상에 있던 갑골문과 막야가 연결되오."

치수약속의 증표.

나는 막야에 담겨있던 어마어마한 양의 수기를 생각했다.

이건 어쩌면 고대에 있었던 대홍수의 흔적이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전욱은 왜 천계와 인계를 분리시키고 떠난 거요? 그냥 삼황오제로써 세상에 군림했으면 되었을 텐데..."

"제일 첫 행에서 탄식하듯이 [북쪽에 있던 천지간의 통로]가 무너졌다고 되어 있소. 아마도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이유로, 그 통로가 무너지는 게 굉장히 위급한 상황이었겠지. 달리 말하자면 그 통로가 무너졌기 때문에 전욱은 급히 천계와 인계의 모든 연결고리를 끊어버리고 막야만을 남기고 가버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오."

"통로 하나 때문에...?"

"아아, 그건 알 수 없는 일. 너무나 고대의 비사라서 현재 남아있는 문헌이 없소."

짧게 탄식한 망량이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가설을 세웠소."

"어떤 가설이오?"

"막야에는 수분을 조종하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은 인간에게 허용되기에는 과도하게 강한 힘일 수도 있었소. 그래서 단순히 [옛 존재]를 배치해두지 않고,  치수의 축이 되는 장소에 와서 막야의 주인이 될 자격을 증명하라고 해두었을 수 있는 거지."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월요의 수호자인 이자나기노미코토만 해도 가만히 놔두면 7일 내에 일개 국가를 멸망시킬 정도의 어마어마한 마물이었소. 그 놈을 쓰러뜨리는 것만 하더라도 충분한 증명일 것 같은데..."

"칠요 사이에도 격차가 있다는 거겠지."

망량이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월요의 공능이 어떤건지는 모르지만, 지금 세상에 신화급 대홍수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 것 같소? 아마 모르긴 해도 중원땅에 있는 인간들 중에서 8할은 죽고말 것이고 문명은 최소 오백 년은 퇴화할 것이오. 중원 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 천지천상의 균형을 한번에 뒤집어버릴 수 있는 대재해의 열쇠가 바로 막야일지도 모르는 일이오."

"으음."

"확신할 수 있소. 수요 막야는 칠요 중에서도 상위급 칠요. 막야의 봉인을 푸는 날 당신은 천하에 적수가 드물게 될 것이오."

"오오...!!"

나는 망량의 말에 뛸듯이 기뻤다.

그 말대로라면, 나는 다른 일 제쳐놓고 막야의 봉인을 푸는 법부터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대홍수를 일으키는 능력 자체를 써먹을 수는 없겠지만, 막야에 깃들어있는 다른 초능력을 사용한다면 내 목적을 달성하기도 매우 쉽다. 어쩌면 [옛 지배자]에게 대항할만큼의 능력을 얻게될지도 모른다.

그 때 얌전히 망량의 말을 듣고 있던 미호가 말했다.

"그래서 막야의 진짜 봉인을 수호하는 장소가 어디냐? 그 장소가 굉장히 곤란한 곳에 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 거겠지."

"......"

망량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미호가 눈치가 빨라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번갈아서 쳐다보자, 망량이 조심스럽게 내게 말했다.

"백웅... 하나 말해두겠소."

"무엇이오?"

이어진 말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이 세상은 둥근 구 형태요."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 없소! 당연히 편편한 모양이며 세계의 끝이 있을 것이오."

"왜 그렇게 생각하오?"

"그야 둥근 구 모양이면, 세상 밑으로 떨어져버릴 거 아니오?"

"......"

망량이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

"당나라의 이선이 <문선>에 단 주석에 이런 언급이 있소.

땅은 네가지 방향으로 움직인다. 동지에는 위로 올라가는데 북서쪽으로 3만리를 간다.하지에는 아래로 움직여 남동쪽으로 3만리를 간다. 춘분, 추분이 그 중간에 있다. 땅은 항시 움직이지만 사람은 알지 못하는데 이는 배안에 있으면 배가 가고있는것을 모르는것과 같다.(河圖曰:地有四游,冬至地上行,北而西三萬里;夏至地下行,南而東三萬里。春秋二分,是其中矣。地常動不止而人不知,譬如閉舟而行,不覺舟之運也)."

"......?"

"하늘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땅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오. 음... 뭐라해야할까."

망량이 왠 둥그런 수정구를 품 속에서 꺼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당신은 이 수정구에서 계속 걸어가면 미끌어져 떨어질 거라 생각하는 것이오. 하지만 이 수정구의 내면에는 강력한 인력(引力)이 있어서 위에 있는 모든 걸 붙잡고 있지."

"억지같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소?"

망량이 한층 더 강하게 주장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아니오. 천문을 보는 자들은 별의 위치를 살피던 중에 이렇게 가정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소. 그래서 몇백 년 전부터 천문관 가문을 지내던 우리 제갈 가문은 세상이 구 형태라는 걸 인정했고, 세상의 끝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소. 제갈 가문 뿐만 아니라 대명제국의 대현(大賢)이라 불리는 자들도 얼추 알고 있지만 입밖으로 내지 않을 뿐이오."

"......"

나는 입을 벌렸다.

세상이 둥글다니!

' 망량이 나를 놀리나? 나를 기만하는 건가?'

내가 망량에게 지니는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었지만, 그 신뢰가 흔들릴 정도로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이 세상이 둥그런 원형이며 우리가 대지에 붙박혀서 살고 있다니! 나는 혼란스러워서 머리를 짚으며 물었다.

"잠깐! 그러면 태양과 별, 달은 대체 무엇이오?"

"아주 머나먼 곳에 존재하는 천체(天體)요. 작아 보이지만 아마 우리가 사는 대지보다 훨씬 더 클 것이오."

"......?!?!"

내가 경악하자 옆에 있던 미호가 말했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백웅."

"미호..."

"나는 탄생시절부터 천계에 있었으나, 그 어떤 천선도 세상의 끝 따위는 이야기한 적도 논한 적도 없느니라. 세상의 끝이 없기 때문에 신선들이 논하지 않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으... 으음..."

내가 혼돈스러워서 고개를 갸우뚱하자 망량이 쓴웃음을 지었다.

"당장 믿기는 힘들겠지. 우선은 세상이 둥글다는 가정하에 이야기를 하겠소."

"... 알았소."

"그럼 이 수정구를 보시오. 수정구의 제일 끝을 이렇게 하면..."

푸욱

망량이 큰 철심을 수정구에 찔러넣었다. 미리 철심이 들어갈 구멍이 파여있었는지 아무런 저항없이 들어갔다. 망량은 수정구 한가운데를 꿰뚫은 철심을 손으로 잡으며 말했다.

"축(軸)이 있지. 이 축의 끝에 있는 양극단의 점(點)이 있다고 하면, 이 곳은 어떤 장소이겠소?"

"......"

나는 머리를 가라앉히고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아주 추운 장소겠지..."

세상이 둥글다는 말을 믿을 수는 없지만, 그 말을 만일에 믿는다면 북쪽으로 갈수록 추워진다. 그리고 추워지는 이유는 아마 햇빛을 덜 받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친다면 축의 양극단은 세상에서 가장 추운 장소일 수밖에 없다. 망량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바로 그거요!"

"뭐가 그거란 말이오?"

"수요의 유적에 있던 비석의 내용은 이랬소.

[  ... 어둠의 노래... 짝을 이루는 자... 바람의 걸음걸이... 차갑고 흰 침묵의 신... 태초의 북(北)... 도달자... 시련은 없다... 그러나 봉인을 풀고자 하는 자... 침묵의 신을 만나라.... 피를 그어... 깨워서 도달하라... 이 제단에 바치는 것은... 도달자의 피...]

태초의 북이라고 하는 게 무엇이겠소? 앞서 말한 전욱의 갑골문과 딱 맞아떨어지는 문장같지 않소?"

"......"

"막야의 권능이라고 하여 도가에 전승되어 오는 게 천빙(天氷)이라는 술법이오. 이것은 극한의 냉기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얼려버려서 대라신선조차도 소멸시킬 수 있다는 비술이지. 이 전승까지 합쳐보면... 그 태초의 북이라고 하는 장소는, 다른 의미에서 이 세상의 끝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일 가능성이 높소."

나는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망량이 중대한 이야기라고 했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나는 한동안 말을 더듬더듬하다가, 내 생각을 확인할 겸 망량에게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북해빙궁보다 더욱 북쪽... 파란 눈의 야만족들조차도 추워서 살지 못하는 빙해(氷海)를 넘은 절지(絶地) 어딘가로 가야한다는 소리인가?"

"바로 그렇소."

망량이 단호하게 말했다.

"북쪽의 끝에 있는 땅으로 가서 [옛 존재]의 제단을 발견해서 당신의 피를 공양하면 막야의 봉인이 풀리게 될 것이오."

현실감이 없다. 나는 머리가 띵해서 잠시 휘휘 저었다. 이 세상이 넓다고 하지만 그런 곳까지 가보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십이율에 도전할 때 북해빙궁에 가본 적은 있었으나 그곳은 일년내내 눈보라가 몰아치는 극한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더욱 북쪽으로 가면 아예 사람이 살 수 없는 설원이 등장하게 된다.

그 설원을 다시 몇천 리나 관통해서 북쪽 끝으로 가야 한다니!

황당한 건 미호도 마찬가지인지 망량에게 딴지를 걸었다.

"쉽게 믿을 수가 없구나. 그리고 논리에 비약이 너무 많고 증거도 없다. 태초의 북이라는 말 한 마디만으로 세상의 끝까지 가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백웅에게는 제 가설을 말해두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망량의 뜻을 알 수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망량. 고맙소."

나는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몸이었다. 지금까지도 너무 빨리 죽어댔기 때문에 망량의 조사결과를 들어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했던 것이다. 망량은 그 점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가 없는 가설이라고 할지라도 내게 최대한 알려주기를 원하는 셈이었다. 망량의 배려라고 할 수 있었다.

망량은 한고비 넘겼다는 듯 이마의 땀을 닦고는 말을 이었다.

"으음, 그리고 한가지 더."

"뭐요?"

"이제 슬슬 극비임무를 부탁하고 싶소."

"어떤...?"

망량이 씨익 웃었다.

"가만히 적이 성장하는 걸 보고있을수만은 없지. 도둑질을 해 줘야겠소."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