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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51화 (151/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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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나는 미호와 함께 사천땅으로 먼저 갔다. 그리고 개방 사천지부장 대종개에게서 최신정보를 들었다.

"도왕은 찾았네."

그렇게 말하고는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던 대종개가 말했다.

"그리고 동방무결은, 미안하지만 아예 중원에 안 올 작정인듯 하네."

"아직도 남만에서 돌아온 낌새가 없소?"

"그렇네."

"의뢰를 한지 1년이 다되어가는데 그렇다면..."

"직접 가야겠지."

나는 동방무결을 찾고자 하면 남만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1년의 시간은 짧아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무림인이 그 시간동안 복귀하지 않는다는 건 왠만큼 큰일이 아니고서야 없었다.

대종개가 말을 이었다.

"남만의 행적을 알고싶다면 운남 만독문에게 부탁하는 편이 빠를 것이네. 개방의 정보망이 넓다하지만 운남지부는 따로 없기 때문이네."

"만독문이 그 지역의 패주요?"

"그런 셈이지. 운남 내에서는 그들에게 대적할 문파도 변변히 없으니, 아마 정보에도 가장 밝겠지."

나는 지금 당장은 동방무결을 찾으러 다닐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운남을 거쳐 남만까지 가는 것은 중원을 벗어날 정도로 길고 험한 여정이 될 게 분명하다. 다른 작업을 충분히 해놓고 움직여도 늦지 않았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고는 대종개에게 말했다.

"그럼 도왕의 정보를 주시오."

"그러지. 도왕은 약 두 달 전부터 사천무림에 나타났는데, 무슨 생각인지 한 도박장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있다."

"도박장?"

"이 성도에서 가장 큰 도박장인 촉한마장(蜀漢麻場)일세."

촉한마장이란 비단 성도뿐만 아니라 사천에서 가장 넓은 도박장으로써, 주 종목은 역시 마작(麻雀)이 가장 성행하는 곳이었다. 뿐만아니라 이 곳은 질낮은 삼류도박장이 아니라 고관대작이나 부자들도 자주 드나드는 곳으로 일종의 사교장 역할마저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오가는 금액도 일반 민초가 생각지도 못할 어마어마한 수준이었다.

거기까지 설명한 대종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덕에 모두가 골치를 앓고 있네."

"무슨 뜻이오?"

"도왕 벽지상이 도박에 나섰을 때의 승률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있나? 무려 8할 5푼이나 된다네."

"......!!"

"그나마도 마작에서는 아예 지지를 않지. 마작에 한해서는 신(神)적인 실력을 뽐내고 있네."

8할 5푼!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승률이었다. 100판을 하면 85판은 이긴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마작에서 지지 않는다니 도박(賭博)의 왕(王)이라는 칭호가 어울릴만 했다. 나 또한 마작을 몇 번 해본 적이 있었기에 믿지 못해서 눈을 껌벅이다가 말했다.

"그 자가 사기도박을 치는 거 아니오?"

"다들 그렇게 생각했지. 그러나 아니었네. 사천땅의 내로라하는 도박고수들이 모두 그의 수법을 탐색했지만, 그저 놀라울 정도의 수읽기와 심리전, 그리고 천운(天運)이었을 뿐이지. 되려 몇 명의 도박꾼들이 그에게 사기를 치려다가 걸려서 손목이 잘리고 말았고."

"......!!"

"그 때문에 촉한마장은 손님이 급속도로 줄어들어서 현재 운영이 거의 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지."

"그건..."

나는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위험하군. 그 자는 죽고싶은 건가?"

그랬다.

도박이라는 건 설령 늘 이길 수 있더라도 이겨서는 안되는 부분이 있었다. 도박의 본질적인 부분에는 늘 폭력(暴力)이 뒤따르기 마련이었고, 도박에 걸리는 어처구니없는 금액이나 댓가를 생각하면 언제든 살인이나 협박이 이어질 수 있었다. 하물며 고위인사들이나 도박꾼이나 암흑세력들이 개입하고 있는 촉한마장에서 모조리 따버린다면 당연히 철권제재가 들어오고 말 것이다.

내 질문에 대종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자의 무력이 상당한 수준이라서 당장 촉한마장에서는 그를 어찌하지 못하고 있네. 그러나 현재 사천의 대문파들이 그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조만간 도왕 벽지상은 살해될 것일세."

살해된다!

정보단체에 종사하는 대종개가 이렇게 확신할 정도라면 도왕은 현재 정말로 위험한 상황임에 틀림없었다. 만일에 도왕이 납치당하거나 살해당한다면 동방무결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하게 되므로, 내게 있어서는 큰일이 틀림없었다.

' 극호에게 들렀다가 갈려고 했는데, 지금 당장 도왕을 찾아야겠군.'

나는 생각하다가 말했다.

"구체적으로 도왕 벽지상을 노리는 문파가 어디어디요?"

"그 정보는 은자 오십 냥일세."

나는 신경질을 냈다.

"정말 뻔뻔하군. 은자 오십냥이 뉘집 애 이름인 줄 아시오?"

"하하, 우리 개방이 백웅 당신에게 정보를 넘기는 순간 우리도 위험부담을 감수해야하지. 그걸 감안하시게."

나는 어쩔 수 없이 은자 오십 냥을 꺼내서 그에게 건넸다. 내가 돈이 부족할 일은 없었지만, 거지답지 않게 미친듯이 돈을 밝혀대는 대종개에게 약간 질렸기 때문이다. 대종개는 은자를 챙기자 입을 열었다.

"총 여섯 군데."

"그렇게 많소?"

"청성파(靑城派), 사천당문(四川唐門), 혈염문(血染門), 쌍성도문(雙星刀門), 절룡방(絶龍邦), 천심회(天心會)."

"......"

나는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청성파는 구파일방의 하나였으며 사천당문은 사천땅에서 최강의 세력을 자랑하는 패주(覇主)였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미파는 들어있지 않았지만, 여승들의 문파가 이런 도박장 일에 끼어드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대체 구파일방이나 사천당문이 도왕을 잡는데 끼어들 이유가 뭐요?"

"예전에 청성파의 장로가 도왕을 훈계하려다가 도박에 져서 명검(名劍)을 강탈당했고, 사천당문은 평소부터 그를 좋게 보지 않았네. 까불락거리는 걸 당문가주가 싫어했다던가."

"흐음."

"혈염문이나 쌍성도문은 원래부터 촉한마장의 뒤를 봐주고 있던 흑도문파였지만 다른 세력을 끌어들였고, 절룡방은 사천땅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흥문파일세. 천심회는 원래 밀교단체였으나 무림단체로 바뀐 곳이네."

나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아... 미치겠군. 절룡방이나 천심회도 촉한마장의 의뢰를 받은 거요?"

"그렇네. 절룡방의 경우는 도왕을 잡아서 자기네들의 명성을 높이고 싶은거고, 천심회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일세."

골치가 아팠다. 대종개의 말대로라면 사천무림에서 힘깨나 쓰는 문파가 6개나 나서서 도왕 벽지상을 잡아죽이려 한다는 뜻이 아닌가? 내가 도왕을 구하러 나설 때 얼마나 되는 고수들을 상대해야할지 생각하자 꽤 괴로운 상상이 이어졌다.

"혹시 청성파 장로나 사천당문의 장로... 혹은 특히 강한 고수가 있소?"

"자세히는 모르지만, 청성파 장로 본인이 명예를 되찾기 위해 끼어든다는 소문이 있네. 사천당문은 잘 모르겠고. 그 외의 문파에서도 아마 절정고수급이 나서지 않을까..."

"초절정고수는?"

"초절정고수는 그리 흔한 존재가 아니지. 만일에 나선다고 해도 청성파 장문인이나 사천당문의 가주, 혹은 천심회주 정도일텐데 그런 하늘위의 존재들이 겨우 도왕 하나 잡으려고 친히 행차하겠는가?"

"그건 그나마 다행이군..."

그러자 대종개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니. 백웅 자네는 정말로 도왕을 구하러 갈 셈인가?"

"그렇소."

"도왕 벽지상의 무위가 절정지경이라서 어중이떠중이가 그를 건들지 못했네. 그 때문에 혈염문과 쌍성도문도 부담이 되어서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 건데, 절정고수들이 드글드글할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나는 피식 웃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오."

"허허..."

"촉한마장의 위치를 알려주시오. 그럼 나머지는 다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러지..."

잠시 후 대종개가 촉한마장의 위치를 알려주고 약도를 건네주었다. 여기서 약 이십 리를 가면 도착할 수 있을 듯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빠져나온 후 미호에게 말했다.

"미호. 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거라고 생각해?"

미호는 동영에서 가져온 찹쌀떡 경단을 오물거리며 먹고 있었다. 사실 미호와는 별 상관없는 일이기에 그냥 남일보듯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제대로 듣고 있었는지 미호가 말했다.

"망량한테 가서 물어 보거라. 괜히 멋대로 나서다가 후회하지 말고."

"...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상처받는데."

"괜히 섬세한 척 하지 말거라. 애초에 확신이 없으니 본녀에게 물어본 게 아니냐?"

투덜거리던 미호가 말을 이었다.

"다만 이건 알아두어라.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좋지만, 너무 망량에게 지혜를 의존하다가는 더 크게 후회할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음..."

"가장 중요한 결정은 결국 너 자신이 내려야 하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일도 네가 직접 해야 후환이 덜하지. 그리고 필요해서 조언을 구할 경우, 그 조언을 쓸데없이 의심하지 마라. 뭐 이 이상은 말하지 않겠노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맞아. 고마워 미호."

미호의 말마따나 나는 이따금 망량에게 지혜를 구할지 말지를 고민하고는 했다. 중요한 일일 경우 망설임없이 망량에게 물어보지만, 너무 과하지는 않을지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미호의 말은 내게 적절한 기준을 제시해 줬다고 할 수 있었다.

파앗!

나는 미호와 함께 진랑곡으로 향했다. 간만에 도착한 진랑곡은 별로 모습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망량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 강해졌군.'

겨우 일 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망량은 상당한 내력을 머금은 무공실력을 갖추게 된 듯 했다. 아마 흑백련을 소화하면서 뛰어난 무공의 재능으로 빠르게 습득했으리라. 망량은 대청에 앉아서 책을 보다가 나를 보자 반가워했다.

"간만이군! 잘 지냈소?"

"물론이오. 여기 선물이 있소."

나는 망량을 보자 동영에서 가져온 의복을 꺼냈다. 두세 벌의 옷을 살펴본 망량이 말했다.

"이것이 바로 닌자(忍者)의 잠행복이오?"

"그렇소."

미호에게 부탁해서 삼대인자가문 중 하나인 센가지 가문에서 억지로 받아낸 물건이었다. 센가지 가문은 핫토리 가문이라고도 불렸으며 현 막부 휘하에서 가장 성세를 떨치는 가문이기도 했다.

"후후... 수집욕이 생기는군."

망량은 특이하게도 동영의 옷을 좋아하는 듯 했다. 나는 덤으로 인형과 동영의 도(刀)를 꺼내서 그에게 건네주었는데, 망량은 인형의 솜씨에는 감탄하면서도 도를 보자 인상을 찌푸렸다.

"저질 금속으로 만들어졌군. 이런 건 기념품의 의미가 없소."

"흐음, 뭐 그런가."

"인형은 잘 만들어졌군. 동영의 인형사가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더니 그 말대로요."

망량은 이후 한 식경동안 기념품을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즐겼다. 그리고 충분히 즐겼다 생각했는지 내게 말했다.

"선물 고맙소."

"별것 아니오."

"자, 그 동안의 경과를 말해 주시오."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그러자 망량이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별 일 아니군. 그러면 내가 말하는대로 진행해 보시오."

"어떻게?"

나는 약 반 시진동안 망량의 계책을 들었다. 그리고 모두 듣고 나자 감탄했다.

"과연...!!"

"중요한 건 도왕을 구해내는 게 아니오. 그로 인해 쓸데없는 원한을 만들지 않도록 신경쓰시오."

"유념하겠소."

"아, 그리고 돌아오면 할 이야기가 있으니 꼭 들리시오."

"알았소."

망량은 원래 내가 귀환하면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지금 급한 일이 생기자 미루는 듯 했다. 나는 망량의 계책대로 진행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우선 이번 일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파앗!

나는 먼저 비등을 이용해서 사천당문으로 향했다.

"가주께 부탁을 하러 왔습니다."

"부탁?"

나는 사천당문의 가주인 당무극을 대면한 자리에서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혹여 인면지주의 내단(內丹)을 얻으실 수 있다면, 도왕 벽지상을 노리는 걸 멈추고 저를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당무극은 껄껄 웃었다.

"으하하하... 간만에 와서는 실없는 소리라니."

"농이 아닙니다. 현재 사천당문과 도왕 사이에 큰 원한이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흐흐... 물론 내 개인적으로는 그 괘씸한 놈을 잡아서 족치고 싶지만, 그 놈이 크게 잘못한 게 없는 건 사실이지. 자네 말대로 해줄 수는 있어."

그리고는 당무극이 한층 크게 웃어제꼈다.

"인면지주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일세! 크하하."

아마 당무극은 내가 간만에 그를 찾아와서 농담이나 한다고 생각한 듯 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럼 다시 내기하시겠습니까?"

"뭐? 진심인가?"

"제가 이기면 제 부탁을 들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말이 거짓일 경우, 저는 금괴 세 개를 드리겠습니다."

터엉

탁자 위에 금괴 3개를 놓자 당무극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 독을 방비할 수투도 빌려 주십시오."

당무극의 표정이 예리해졌다. 약간의 살기마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웅. 나는 자네가 전에없이 뛰어난 재능을 지닌 절세기재이기에 좋게 봐 주고 있었네. 설령 이 자리에서 농짓거리나 하러 왔다 해도 그냥 웃어넘길 수 있었어. 그러나 이렇게까지 하는 이상, 자네는 자네 말에 책임져야겠지."

"무엇을 원하십니까?"

당무극이 금괴를 집어서 내게 되돌려줬다.

"금괴같은 건 되었네. 만일 자네 말이 거짓일 경우, 자네는 목숨으로 책임지게."

"알았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수투를 빌려서 당문을 나왔다. 그리고 비등을 써서 수요의 유적으로 갔다. 수요의 유적에 도착하자 미호가 신기한지 여기저기 둘러보는 듯 했고, 나는 수투를 끼고 절벽에 박혀있는 인면지주에게로 다가갔다.

인면지주는 죽인지 오랜 시간이 흘러서인지 산성체액이 다 빠져있었고 미라화 되어있었다. 약간 새하얗게 굳어있는 인면지주의 시체를 다리부터 들어서 천천히 목갑에 집어넣자, 놀랍게도 엄청난 크기차이에도 불구하고 삼 초도 되지 않아서 쑥하고 모두 들어갔다.

' 크기같은 건 목갑에 넣는데 별 관계 없구나.'

나는 인면지주를 가지고 다시 당문가주에게 가려 했다. 그러자 미호가 아쉬운 듯 내 소매자락을 잡아끌었다.

"백웅... 그 거미 나주면 안되겠느냐?"

"응?"

"맛있을 거 같은데..."

미호는 인면지주를 본체로 변해서 씹어먹고싶은 듯 했다. 나는 황당해서 반문했다.

"독이 있어서 소화 못하는거 아냐?"

"결코 아니다. 원래 여우는 거미를 좋아하느니라."

미호가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고민했지만 이내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중에 월요의 유적에서 한마리 잡아서 줄게."

"크으응.. 약속한 것이다."

"당연하지."

미호가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보자 귀여우면서도 쓴웃음이 지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외견을 하고 있어도 어쨌든 미호의 본질은 대요괴인 것이다. 나는 수요의 유적에 더 챙길 게 없는지 다시 한 번 둘러본 후 사천당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당무극 앞에 찾아가서 인면지주의 시체를 목갑에서 꺼냈다.

두웅

"허... 허억....!! 허억?!"

당무극은 너무나 놀라서 할 말을 잊은 모습이었다. 당무극은 내가 조그마한 목갑에서 인면지주의 시체를 꺼낸 것, 그리고 진짜로 인면지주가 자기 눈 앞에 있는 것, 그리고 너무나 빠른 시간에 가져온 것 등등 할 말이 많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리벙벙할 때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부탁 들어주셔야 합니다."

"무... 물론... 물론일세... 으허허허... 인면지주... 인면지주의 내단...!!"

그는 넋이 나간 듯 중얼거리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시체는 내게 주게!"

"물론이지요! 대신 도왕의 일에서 제게 최대한 도움을 주십시오."

내가 대답하자 당무극이 눈에서 총기를 되찾으며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어떤 놈들이 끼어들었는지 모르지만 다 떨쳐내 주겠네."

"청성파 장로, 혈염문, 쌍성도문, 절룡방, 천심회가 끼어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하! 청성파 장로라... 두검자(枓劍者)겠군. 늙은이가 주책부리기는..."

당무극에게 청성파 외의 다른 문파는 신경쓸 가치도 없는 듯 했다. 천하오대세가의 일원이자 사천에서 손꼽히는 대문파 다웠다. 차가운 웃음을 짓던 당무극이 말을 이었다.

"걱정 말게. 내 직접 만독대(萬毒隊)를 이끌고 촉한마장에 가도록 하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래..."

당무극이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 백웅 소협. 결혼은 했나?"

"......"

"내 막내딸인 소혜(素惠)가 정말 참한 아이인데..."

나는 서둘러서 말을 돌렸다.

"아! 저는 볼 일이 있어서 급히 가봐야겠습니다."

"차라도 좀 마시고 가지 그러나."

"아닙니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도망치듯 사천당문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미호와 함께 다시 성도로 향했고 촉한마장에 도착했다. 우선 당무극이 움직여준다고 했으나 사천당문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적어도 하루가 걸리기에, 그 전까지는 도왕 벽지상의 움직임을 파악해둬야 했다.

촉한마장은 입장하는데만 은자 십여 냥이 필요했다. 일개 표사는 일년동안 돈을 모아도 들어올까말까한 장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돈을 내놓은 다음에도 마장의 문지기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거... 죄송합니다만 다음에 오실 때는 좀 좋은 옷을 입고 와 주십시오. 격의가 필요한 장소인지라..."

"다음부터는 그러지."

"들어가십시오."

나는 미호와 함께 촉한마장 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내 옆에서 손을 잡고 걷고 있던 미호가 깔깔 웃었다.

"원래라면 저 문지기가 우리 옷차림 때문에 돌려보냈을 것이다. 촉한마장 장사가 안되긴 하나 보구나."

"여기에 도왕이 있다는 증거지."

"후후후, 마작은 나도 좋아하느니라. 간만에 재밌는 구경이겠구나."

잠시 후 나와 미호는 총 5층으로 되어있는 거대한 촉한마장의 1층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1층에는 몇 개의 마작판이 벌어져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중앙의 마작판에는 네 명의 작사가 앉아서 마작을 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한 여인의 존재가 두각을 나타냈다. 그녀는 자의(紫衣)을 입고 있었는데 약간 날카로운 인상의 미녀였다.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천천히 마작의 패를 올리고 있었는데, 이윽고 상대방의 인상이 새하얗게 변했다.

"서... 설마..."

"화료(和了)."

잠시 후 자의미녀의 입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십삼요(十三?)."

술렁...!!

그 순간, 그 마작판을 주시하고 있던 관객들이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오오오오...!!"

"세상에!!"

"저 상황에서, 저게 나오나?!"

그들은 처음부터 마작판을 구경하고 있던 듯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는 반쪽짜리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아마도 비밀리에 촉한마장을 찾은 고위인사나 부자들인 듯 했다.

' 도왕이 싹쓸이하는 판을 유희용으로 구경하는가 보군.'

그러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작사 중년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 이럴수가... 당신은... 어떻게 그 상황에서..."

미녀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동(東)패를 건네줘서 고맙군."

"으아... 아아아아...!!"

중년 작사는 울부짖더니 이윽고 뒤로 넘어가서 혼절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들려서 실려나갔는데, 관객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기절할 만도 하지..."

"칠천 냥이 걸려 있었지 분명?"

"저 자도 파산(破産)이군. 하지만 섬서에서 제일가는 도객(賭客)이 저렇게 도왕에게 털려서야..."

칠천 냥!

일개 도박판에서 한번에 오간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이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한 방에 역만이 떠버리자 도저히 뒷감당이 안될 정도의 금액이 나와버린 모양이다. 관객들은 다들 흥미로움과 동시에 질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서 냉미녀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왕 벽지상."

지금까지 따로 들은 바는 없었지만, 틀림없다.

저 여인이 바로 도왕이라 불리며 사천 제일의 도박꾼이었으며, 동시에 천하제일을 논하는 도박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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