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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쏴아아
해풍(海風)을 가르고 동영땅에 도착해서 미호를 따라서 대지를 내달렸다. 나는 생전 처음보는 동영의 풍광과 건축양식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원이나 고려에서는 볼 수 없었던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기와는 물론 전반적인 모양 자체가 달랐다.
미호가 말했다.
"현재의 동영땅 최고 권력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라는 인물이다. 영주로써 전란을 최종적으로 평정한 자이며 현재 그가 집권한지 20년정도 지났지."
"동영 사람 이름은 괴상망측하군."
"우후후, 이곳은 섬나라라서 독자적인 문화가 강하느니라."
나는 물가에 앉아서 맨발로 물을 튀기며 놀고있는 미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네가 천황이라는 존재를 홀렸다면서? 그러면 천황이 도쿠가와 이에야스인가 하는 놈이냐?"
미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둘은 엄연히 다른 존재이니라."
"......? 천황이란 게 동영에서 가장 고귀한 혈통이라면서?"
"그야 그렇지."
"하늘이 둘로 양립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러자 미호가 키득거렸다.
"우후후... 그게 재밌는 점이지. 쉽게 말하자면 천황이란 건 허수아비 군주이자 정신적인 상징물에 가깝다. 그리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현 막부의 최고실권자로써 진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지. 이해가 됐느냐?"
"......???"
나는 더 알 수가 없어서 팔짱을 낀 채 고민했다. 그리고 물었다.
"역성혁명이 일어난 거 아닌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왜 천황의 구족을 멸하지 않는거지?"
"아하하하! 말했잖느냐. 정신적 지주라고. 천황의 혈통은 현인신(現人神)으로 취급받으며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실권을 휘두를 뿐 천황을 따로 건드릴 이유가 없는 셈이지."
"이해가 되지 않아."
"중원의 천자(天子)와는 다른 개념이니라. 여긴 좀 이상한 땅이기도 하고."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실히 이 섬나라 동영은 꽤 별스러운 곳인 듯 했다. 고려만 해도 중화의 문물과 유사성이 많았기에 적응하기에 편했는데, 여기는 정말로 변방의 야만족속인 듯 했다.
"미호. 그러면 네가 천황같은 허수아비를 홀릴 게 아니라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홀리면 더 좋지 않았을까?"
"그렇긴 하지만 본녀는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동영에서 권세를 휘두를 생각은 없느니라. 어차피 지상계에서 유희를 할 뿐이니 천황을 갖고놀면서 지내는 게 편하고 안전하지."
나는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질문했다.
"음양사(陰陽師)라는 놈들에게 퇴치당할 가능성 말인가?"
"그렇다. 아베노 세이메이(安倍晴明)때부터 내려오는 츠치미카도 일족이 있는데, 놈들이 꽤 성가시지. 지금은 본녀도 몸을 사리고 있느니라."
"흐음..."
동영 땅에도 십이율같은 술법사 집단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지율 스님에게 동영땅에는 음양도라고 하는 독특한 술법을 사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문득 지율 스님에게 뒤통수맞은 기억이 나서 인상을 찌푸리자 미호가 말했다.
"원래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천황이라는 존재를 그리 좋게 보지 않았느니라. 홀대하여 빈궁하기 짝이 없는 삶을 살게 할 예정이었지. 그러나 본녀가 천황을 도와서 그가 살 곳을 마련해주었고 상당한 지위를 누리게 했느니라. 지금은 천황이 막부에 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이지."
"그게 대단한 건가?"
"끄응... 엎드려 절 받기구나! 흥!"
미호가 왠지 심통이 나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서둘러 미호에게 말했다.
"아냐. 내가 잘 몰라서 그래. 아무튼 네가 원하면 동영의 조정에 꽤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소리 맞지? 대단하네."
"우후후, 나님의 힘이니라."
미호는 단번에 기분이 좋아진 듯 우쭐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미호가 오랜 시간동안 매혹술을 이용해서 막부에 자기 편을 만들고, 천황에게 호의적인 여론을 만듬과 동시에 세력을 일궈낸 모양이었다. 미호가 사실상 동영 땅의 권력자라고 봐도 될 것이다.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거랑 내가 멸혼보를 터득하는게 무슨 상관이 있는데?"
미호는 어느 새 요염한 절세미녀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다. 미호가 풍만한 가슴으로 내 머리 뒤에서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부드러운 감촉이 강했다.
"지금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느냐?"
"잘 몰라."
"교토(京都)의 천황궁(天皇宮)이니라. 천황의 세력이 가장 큰 근거지이자 내 매혹술을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곳이지."
미호의 섬섬옥수가 슬며시 내 상의를 헤치고 들어왔다. 내 가슴을 잠시 쓰다듬던 미호가 말했다.
"마음만 먹으면 에도막부를 배후에서 조종해서 이 동영땅에서 가장 뛰어난 무예자를 교토로 불러올 수도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술의 명인(名人)들이니, 네가 애를 먹고 있는 그 멸혼보라는 보법에 대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군..."
"뭐, 꼭 그런게 아니더라도 네 비등이 천황궁을 기억하게 되지 않느냐? 일석이조지."
순간 미호의 손이 내 하초를 스치고 지나갔고,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헉."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호의 매혹술이 강하게 내 몸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미호가 묘한 표정을 짓더니 깔깔 웃었다.
"아직 어려서 덜 여물었구나~"
이게 또 나를 놀리다니!
"시끄러! 5년만 있으면 몸이 다 자랄거다."
"꺄하하하."
나는 허파에 구멍뚫린 것처럼 웃어대는 미호를 보자 곤란해졌다. 그리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이 여우는 평소에는 천년묵은 구미호처럼 잔망을 떨면서 왜 가끔씩 애처럼 장난질을 치는 것인가?
나와 미호가 교토의 천황궁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약 사흘이 지나서였다. 미호는 어느 새 기품있는 귀비(貴妃)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고, 덩달아 나도 호위무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천황궁의 경비들은 극상의 예절을 갖추어서 미호를 맞이했고, 아무런 저항 없이 천황궁 안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천황이 미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약간 흐리멍텅한 눈으로 미호를 보며 비척거리며 다가왔다.
"오오... 그대가... 왔군..."
미호는 가볍게 웃으며 천황의 눈 앞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천황은 마치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 누워서 잠들어 버렸다. 미호가 말했다.
"이제부턴 편하게 지내도 된다."
"그는 완전히 홀려 있군."
"동영에서 지내며 가장 중요한 인간이니 말이다. 그에게는 보통 인간보다 더 강한 매혹술을 걸어 뒀느니라."
천황의 몸을 일으켜서 침상에 뉘인 미호가 나를 돌아보았다.
"우후후... 뭔가 원하는 건 없느냐? 부든 여자든 원하는대로 찾거라."
미호가 자신있게 말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런데 전생해서 천황궁에 비등으로 찾아온다고 해도 갑작스러워서 네가 나를 죽이려 들지 않을까? 뭔가 좋은 방법 없겠어?"
"흐음..."
미호는 옆에 있던 의자를 끌어당겨서 앉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서왕모께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거라. 그럼 아마 믿을 것이다."
"흐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네 말을 전부 믿는 것은 아니다. 지금은 본녀도 믿어가는 중이지. 하지만 네 행동은 왠지 신뢰를 주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다."
나는 미호의 말에서 아직은 좀 벽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계약관계 이상을 원하는 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후 미호에게 말했다.
"구체적으로 막부의 검사(劍士)들이 어떻게 나를 도울 수 있다는 거지?"
"간단하다. 그 멸혼보라는 무공을 익히는 조건을 현재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 그러면 시행착오를 통해서 알아봐야지."
"너, 설마..."
미호의 눈이 초승달처럼 변했다.
"막부에 충성하는 검객들은 모두 알아주는 검의 천재들이다. 동영 땅에서도 손꼽히는 실력자들이지. 그들에게 멸혼보를 전수해 보고, 멸혼보를 익히는데 성공한 자들의 공통점이나 경험담을 취합해 보면 되지 않겠느냐?"
"......!!"
나는 침음성을 흘렸다.
' 이건 나로써는 해볼 수 없는 발상이군.'
확실히 그 말대로 한다면 극호 본인도 모르고있는 멸혼보의 전수조건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막부라고 하는 동영 최대의 권력에 충성하는 검객들이라면 다들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을테고, 그들을 통해서 멸혼보의 진실된 전수조건을 알 수 있다. 물론 뇌신류의 비기가 유출된다는 단점은 있겠지만 그건 나중에라도 처리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밑져야 본전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렇게 하지."
"으흠... 그러면 백웅 너를 천황가의 무예사범으로 임명하고 막부에 손을 써서 검객들을 불러오게끔 시키겠다. 그리고 네가 천황궁에서 그들을 지도하는 형식이 되면 딱 좋을 듯 싶구나."
"알았어. 몇 명을 부를 생각이지?"
"총 10명을 부를 셈이다. 당대에 이름높은 동영의 검호나 무예가는 딱 그 정도니까."
나는 미호의 계책대로 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잠시 망량에게 가서 지금까지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망량은 무공을 수련하고 있다가 내 보고를 듣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신혼살림이 재미지겠군."
"무, 무슨 신혼이오?"
내가 당황해서 반문하자 망량이 껄껄 웃었다.
"하하, 농이오. 그것보다 나도 미호의 계책에는 찬성이오. 중원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무술실험이겠지만 그녀가 동영의 천황가를 지배하고 있으니 가능하겠군."
"지금 내가 당신을 도울 일은 없겠소?"
"황연 대장군 일가의 구출을 걱정하는가 보군."
"그렇소."
저번부터 남아있어서 찝찝한 일이었다. 황연 대장군의 일가는 현재 금의위에 억류되어서 연금상태였고, 황연이 구출된 지금은 언제 몰살당하거나 인질로 쓰여서 고문당할지 모르는 판국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을 한시바삐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망량이 말했다.
"좀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건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오."
"무슨 말이오?"
"황연 본인도 일가의 구출을 그리 기대하지 않고 있소. 금의위가 철통같이 지키는 그 방어를 뚫고 반역을 감수하면서까지 구해낸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그도 알고 있기 때문이오. 구해낼 수 있다면 황연에게 빚을 지울 수 있으니 좋은 것이고, 만일 일가가 몰살당하거나 인질이 된다면 그때 황연은 충성심을 내다버리고 현 황조에 적대심을 굳히게 되겠지."
"......!!"
"물론 나도 내버려둘 생각은 없으니 이미 손은 썼소. 당신은 그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오."
나는 망량이 무서운 자라는 걸 새삼 느꼈다. 성품이 옳고 발라서 늘 정도(正道)의 계책을 쓰기에 망정이지, 만일에 망량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략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굳이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시점에는 딱 하나 있소."
"음..."
"아주 중요한 일이오."
나는 긴장한 채 망량의 입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망량은 섭선을 촤락 펼치며 진지하게 말했다.
"동영 특산품을 선물로 갖고 오시오...!!"
"......"
"비싼 걸로."
나는 망량의 부탁을 새겨듣고는 다시 동영으로 돌아왔다.
"이걸 받거라."
"이게 뭔데?"
동영에 돌아오자 미호가 내게 왠 황색 거울을 내밀었다. 내가 신기한 눈으로 미호를 바라보자, 미호가 느긋하게 침상에 누우며 말했다.
"그건 동영 천황가에 전해지는 십종신보(十種神?) 중 하나인 충진경(沖津鏡)이라고 하느니라. 본녀가 네게 예전에 줬다는 팔지경(八咫鏡)의 모조품과 동격이다. 중원으로 따지면 상급 법보라고 할 수 있지."
"충진경이라..."
"그걸 매일 갖고 다니면 언어의 독해력(讀解力)과 습득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또한 네 법력도 증강되겠지."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진짜냐? 이걸 갖고 있으면 언어를 빨리 배울 수 있다는 거냐?"
"그렇다. 천황이 고려나 중원의 말을 터득할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는 것이다."
"호오..."
나는 신기함과 동시에 약간 억울함을 느꼈다. 이걸 진작에 갖고 있었으면 고려에서 고려말 공부한다고 십수 년 동안 쌩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예전 10번째 삶에서 미호와 좀 더 친하게 지낼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불려온 동영땅의 학자에게서 고작해야 사흘남짓 동영의 말과 글을 배웠는데 무시무시한 속도로 터득하는 걸 스스로 느꼈다. 고려말을 배울 때의 10배 속도는 되는 듯 했고 지금은 벌써 어렴풋하게나마 동영말이 어떤 어조인지 알아들을 것 같았다.
' 굉장해... 이 속도면 석 달이면 동영 언어를 모두 배울 수 있겠어.'
ゑゐ の ....
겨우 10 주야만에 나는 기초회화를 모두 습득하고 글자와 문법은 물론 상당한 수준의 고급어휘까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동영 언어의 특징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가 있었다.
' 고려말과 비슷해...'
문법이 많이 유사했고 어휘 중에서도 마치 분화된 것처럼 동질감이 느껴졌다. 고려말을 먼저 익히고 동영말을 익히든, 동영말을 먼저 익히고 고려말을 익히든 크게 다를 것은 없을 것 같았다. 단지 심화해서 파고들수록 두 언어 사이에는 깊은 골이 존재했으며 그건 특히 '발음(發音)'에서 드러났다.
나는 한 달쯤 지나자 왠만큼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미호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동영말로 말했다.
"알아듣겠느냐?"
"물론."
"그럼 슬슬 검호들을 불러오겠노라."
잠시 후 미호가 사전에 교토에 불러두었던 동영땅의 검호들이 안내되어왔다. 미호는 귀비의 모습으로 변신해 있었고 천황이 발 뒤에 근엄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가만히 어전에 서 있었는데 곧 천황이 말했다.
"그대들에게 특별히 명을 내리겠다."
"네! 명령하십시오."
장내에 모여있던 검호는 총 열 명이었다. 천황은 매혹술에 걸린 상태로 천천히 그들을 쓸어다보더니 말했다.
"여기에 있는 무예사범... 백웅에게 특별한 신법(身法)을 지도받도록 하라... 그리고 그 신법을 성의껏 연마하여 백웅 사범에게 그 결과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하거라."
그러자 검호들이 머리를 조아린 상태로 당혹스러운 듯한 눈으로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난데없이 천황이 자신들을 궁으로 불러들여서 무공을 전수한다고 하니 놀랄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제일 앞에 있던 중늙은이 검객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신(臣)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가 감히 여쭙겠습니다."
"말하거라."
"저 백웅이란 자의 실력은 물론 나이치고는 엄청난 수준이지만, 무의 궁극을 보았다 하기엔 아직 섣부른 경지가 아닐지..."
미호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냐하면 미호의 매혹술은 천황의 이성을 조종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고급적인 대화로 들어가면 천황이 자율의지로 이야기하게끔 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하게 조종해서 완전히 수동조종을 하던가 아니면 천황의 자율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미호의 선택은 후자였다. 매혹술을 좀 더 느슨하게 하고 천황의 이성작용을 강하게끔 한 듯 했다. 천황은 턱을 괴고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대가 검성(劍聖)이라 불리는 최고의 무사라는 건 알고 있네. 허나 우물안 개구리처럼 갇혀있어서 무(武)의 진보는 없는 법. 백웅은 머나먼 중원에서부터 무예를 전파하고 공유하러 이 나라까지 찾아온 인물이니, 그의 진심을 아무쪼록 헤아리게."
그러자 카미이즈미 노부츠나라고 불린 자는 뭔가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더욱 크게 머리를 조아렸다.
"제가 감히 그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신명을 다해서 받들겠습니다."
"좋네. 그럼 부탁하겠네."
"존명!"
그리고 나는 그날부터 동영땅의 검호들에게 멸혼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내가 멸혼보를 연습할 시간을 늘림과 동시에, 멸혼보에 숨겨져 있는 전수조건을 알아내고, 나아가서는 멸혼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타인의 재능을 권력을 이용해서 사용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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