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46화 (146/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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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잠시 후 나는 사천당문의 내실(內室)까지 안내되었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천당문의 고수들을 힐끔 쳐다보며 생각했다.

' 역시 문지기 수준이 아니다. 어지간한 문파의 장로급... 이런 정예가 어째서 평상시부터 문파의 현관을 지키고 있단 말인가?'

아까는 그냥 가볍게 넘겼지만 확실히 이 세 명의 실력은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전력을 다하더라도 이들을 상처없이 이기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무리 사천당문이 큰 세가라고 해도 이런 고수들이 지천에 널려있을 리는 없을텐데 이상한 일이었다.

사천당문의 내실에 앉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자는 헌앙한 기도를 지니고 있는 한 중년인이었다. 강한 기세를 흘리고 있는 그는 대뜸 말했다.

"천하기재(天下奇才)로군. 과연 개방 사천지부를 뒤엎을만 해."

나는 내심 놀랐다. 너무 얕보이지 않기 위해서 천인봉혈법을 절반 단계로 축소시켜서 내공을 흘리고 있긴 하지만, 중년인은 내 능력에 동요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것은 내 진정한 무위를 측정하고 있으면서도 그 수준을 자기의 능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의깊게 중년인의 안광, 기세에서 그의 수준을 측정해 보았다. 그리고 암암리에 그의 기세가 그릇을 흘러넘쳐서 사방의 공간을 진하게 얽어매는 걸 알아챘다.

' 초절정고수...'

사천당문에 초절정고수가 있다면 단 한 명 뿐이다.

그것도 장년층의 고수라면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는 그에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무림말학이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네는 내가 누군지 알고 있나?"

"사천당문의 가주이신 일수나찰(一手羅刹) 당무극(唐無極)님 아니십니까."

내 추측에 그가 훗하고 웃으며 대답했다.

"맞았네. 내가 사천당문을 이끌고 있네."

일수나찰 당무극!

그는 대종개에게 들었던 사천땅의 주요고수임과 동시에 사천당문을 맡고 있는 가주였다. 구파일방과 마찬가지로 명문무림세가의 가주는 암암리에 문파최고수가 맡는게 무림의 상리였다. 그런만큼 사천땅은 물론 중원 전체를 통틀어서 내로라는 무림세가인 사천당문의 가주가 대단한 고수인 건 어느정도 예상이 되는 일이었다.

또한 일수나찰 당무극은 본신의 무공이 초절정급에 이르러있어서 중원무림에서도 암암리에 그를 사신(死神)처럼 여기며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있었고, 특히 마도팔마 중 독마(毒魔)라고 하는 자는 당무극에게 크게 패한 적이 있어서 사천당문은 절대 건들지 않을 정도였다.

내게는 다소 생소한 인물이었지만, 그것은 뇌신류의 이광이 독술과 암기를 주무기로 하는 사천당문에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은 것에 기인했다. 그가 일수나찰 당무극과 만날 일은 평생 없다고 보아도 무방했기에, 이광도 아마 당무극의 존재는 알고 있으되 아무 신경도 안 썼고 언급도 안 한 것이다.

' 어쨌든 일수나찰 당무극은 중원 땅에서 손꼽히는 암기의 고수다. 조심해야 해.'

나는 속으로 긴장했다.

예전에 진소청을 도우러 일류고수들과 싸웠을 때, 잔룡(殘龍)이라는 자도 암기의 고수였는데 사형이 끝없이 주의를 주었다. 진소청의 진정한 실력을 생각해 본다면 그건 정말로 각별한 일이었다. 초절정급의 강자인 진소청조차도 긴장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막을수가 없을 정도로 암기술이 까다로운 무공이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수나찰 당무극은 잔룡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는 초고수였다. 자칫하다가는 이 자리가 내 무덤이 될 가능성도 높았다.

당무극이 말했다.

"그래, 백웅. 자네가 우리 사천당문을 찾아온 용건이 무엇이지?"

"말씀드렸듯이 정보를 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정보를 산다... 우리에겐 생소한 개념이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지. 자네가 충분한 댓가를 우리에게 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야."

꽤 긍정적인 어조로 대답을 한 당무극이 손에 깍지를 꼈다. 그는 흥미로운 표정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원하는 정보가 뭔지 말해보게. 그럼 내가 그 정보를 말해주는데 필요한 댓가에 가격을 매겨 주지."

"......"

나는 약간 불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에 가격을 매긴다, 얼핏 괜찮아보였으나 저쪽에서 원하는만큼 강짜를 부리겠다고 대놓고 말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금 내가 당무극과 교섭하며 섣불리 견제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흠... 저는 천상괴의 동방무결의 마지막 행선지를 찾던 중에 사천당문에 오게 되었습니다. 동방무결이 어디로 갔는지 알고자 합니다."

일수나찰 당무극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황금을 내놓게!"

"... 네?"

"내가 볼 때 그 정보는 천금의 가치가 있네. 천금을 마련하는 건 자네에게 무리일 것 같으니, 적어도 황금 1관을 내놓기 바라네."

황금 1관.

일개 평민에게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거금이었다. 심지어 그게 있으면 평생 줄이 안닿을 것 같은 권력자나 상인들도 저자세로 나오며 부탁을 들어주려 했다. 백이면 백, 아무리 귀중한 정보라고 해도 과하게 가격을 매겼다고 생각하리라. 나는 당무극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다가 반문했다.

"황금이 없다면 그에 상응하는 현물로는 안되겠습니까?"

"그것도 되지. 무림의 기보(奇寶)라던가 현묘한 무공비급, 그도 아니라면 절세의 영약(靈藥)이 있다면 받아들이겠네."

"차라리 황금을 내놓는 게 나은 수준이군요."

그러자 당무극이 피식 웃었다.

"나는 자네가 동방무결을 찾는 이유도 묻지 않고 있어. 지금 당장 무력으로 자네를 제압할 수도 있는데도 그러지 않고있고, 용독(用毒)도 하지 않고 있지. 이것이 사천당문에서는 굉장한 호의라는 걸 알아두었으면 하네."

"......"

사천당문식 호의는 뻔뻔함에 협박을 곁들이는 묘용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당무극을 한차례 비꼬아주고 싶었으나 참아내고는 연이어서 말했다.

"하는 김에 사천당문이 동방무결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리고 동방무결이 다시 찾아온다면 어떻게 대할 것인가 같은것도 알고 싶습니다만."

"호오... 황금을 내놓을 자신이 있는 건가?"

"어느 정도의 성의를 내놓을 것인가의 문제겠지요."

내가 교묘하게 말을 에둘러 하자 당무극이 껄껄 웃었다.

"하하, 그 패기 나쁘지 않아. 좋아. 자네 말대로 금을 내놓는다면 그것까지 이야기해 주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나는 품속에 있던 목갑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남아있던 금괴를 바로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렸다.

터억

"......"

마치 손주 재롱을 쳐다보는 듯하던 당무극의 표정이 기묘하게 이지러짐과 동시에 나는 씨익 웃었다.

"감정해 보시기 바랍니다. 10할 완벽한 순금이라고 보장드립니다."

아무리 당무극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평소부터 금괴를 들고다닐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정확히는 목갑의 내부공간에서 원하는 것만 집어낸 셈이었지만 당무극이 목갑의 존재나 공능을 알 리가 만무하다. 당무극은 순금에 손을 뻗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 하아, 진짜군."

"바로 알아보시는 겁니까?"

"하고 있는 일의 성격상 금은을 취급할 때도 많지. 어지간한 감정사에 못지 않은 안목이 있다고 자부하네."

내 말에 대꾸한 일수나찰 당무극이 나를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약속대로 정보를 말해주도록 하지. 그런데 그 전에 묻고싶은 게 있네."

"무엇입니까?"

"자네는 동방무결을 찾아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나는 그 말에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그가 무후사에서 무엇때문에 도왕과 마작을 벌였는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 사건 말이군."

당무극은 납득한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묘한 표정을 지었다.

"... 헌데 동방무결에게서 자신의 몸을 지킬 자신은 있는건가?"

"호신용 무술은 충분히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생각하면 더 말 않겠네."

잠시 후 당무극은 '정보'를 말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천상괴의 동방무결이 최근에 사천당문을 방문한 것은 약 세 달 전의 일으로, 내 전생이 시작되기 훨씬 전의 시점이었다. 동방무결은 다짜고짜 사천당문의 독(毒)을 공부하고 싶다며 억지를 부렸고, 당무극은 처음에 그를 얌전히 돌려보내려 했다. 그러나 말싸움이 일어나고 서로의 자존심 때문에 으르렁거리기 시작하자 일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동방무결은 사천당문의 정예에게 밀려서 도망치고 말았다. 거기까지 말한 당무극이 씁쓸하게 말했다.

"본가의 정예인 만독대(萬毒隊)가 그날 이후로 외당인물들을 대신해서 경계를 서고 있지. 언제 또 그 늙은이가 깽판을 치러올지 몰라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네."

"그랬군요."

내가 입구에서 마주쳤던 세 명의 절정고수들은 만독대로써, 사천당문이 자랑하는 최고의 정예이자 내당의 실력자들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사천당문에서 장로 직속에 있는 최정예이며 장로와 별로 실력차이도 나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독공과 암기술을 죽을 각오로 익히는 기재들이니 실력이 특출날 수밖에 없었다.

' 사천당문의 수면마비산을 아마 그 때 동방무결이 훔쳐갔나 보구나.'

직접 물어서 확인해 보고 싶으나 안될 일이었다. 내가 당무극의 입장이라면 자기 문파의 비밀창고가 털렸다는 일은 결코 입에 담고싶지도 않을 것이고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을 것이다. 섣불리 호랑이 코털을 뽑는 언행은 조심해야 했다.

나는 궁금한 점을 물었다.

"천상괴의 동방무결의 의술 실력은 비공식적으로 천하제일(天下第一)을 논한다고 들었는데 어째서 그가 사천당문의 독술 지식을 탐했다고 생각하십니까?"

"흐음... 그 점에 대해서는 나도 줄곧 생각해 본 적이 있었네."

그리 저항감이 느껴지는 질문이 아닌지, 당무극은 옆에 있던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그 자는 나름대로 필사적이었네. 취미 수준으로 알아보려는 게 아니라 정말로 써먹을 데가 있기 때문에 독술을 배우려는 듯 했지. 물론 혈연 외에는 결코 전수할 수 없으니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네만, 그 자는 온갖 대가를 제시하며 나를 꼬드기려 했지."

"그 정도로 절실했습니까?"

"그래. 지금 생각하면 그 자는 의(醫)와 독(毒)이 궁극에 달하면 도달하는 경지를 추구하려 했던 것 같아."

동방무결은 독술을 배우려는데 필사적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 정보를 되뇌고는 재차 물었다.

"혹시 독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도 가능합니까?"

"안될 건 없네. 약독(藥毒)은 원래 한가지이니 독도 잘 쓰면 바로 약이 되지. 중요한 건 성분의 함량과 비율일 뿐."

"그게 설령 저주(詛呪)에 의한 괴질이라고 해도 말입니까?"

"저주? 술법을 말하는 건가?"

"네."

"으음..."

당무극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었는지 인생을 찌푸리고는 생각에 잠겼다. 반 각 동안 고민을 하던 당무극이 대답했다.

"통상적인 독으로는 불가능하겠지. 저주독은 다른 독과는 달리 물질적인 매개체나 병원(病原)이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독성이 강해도 원래는 불가능해. 그러나 술법의 인과(因果)조차 끊어버릴 수 있는 독이 딱 하나 존재한다네."

"그게 무엇입니까?"

"무형지독(無形之毒)! 이론상 존재하는 최강의 독일세."

무형지독!

생전 처음 듣는 개념이었다. 심지어 화서명 밑에서 10여년 가까이 의술에 용맹정진하면서도 비슷한 단어조차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당무극이 말했다.

"어디까지나 그런게 있다, 정도일세. 우리 사천당문은 물론 만독문(萬毒門)이나 망혼곡(忘魂谷)에서도 역사상 무형지독을 만들어낸 일은 없네. 그저 궁극의 경지로 삼고 나아갈 뿐이지."

"무형지독이 술법의 근원을 끊을 수 있다는 건, 무형지독 또한 물질적인 독이 아니라는 말씀이신지?"

내 질문에 당무극이 약간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바로 그렇네. 자네는 꽤 머리가 돌아가는 듯 하군."

"음... 무형지독이 물질적인 독이 아니라면 그걸 애초에 어떻게 만들어낸단 말입니까?"

나는 황당해져서 반문했다. 나는 이미 흑두사의 머리를 짜내어서 직접 독약을 제조해본 적이 있었기에, 독의 제작이 얼마나 형이하학적인 구차한 과정을 거치는지 알고 있었다. 물질적인 독이 아니라니 그런 건 존재 자체가 모순이었다. 당무극은 독 이야기가 나오니까 재미있는지 신이 나서 말했다.

"무형지독의 원리는 만물에 존재하는 가장 근원적인 고리를 자유자재로 해체한다는 점에 있네. 당연한 말이지만 물질에서 비롯된 독은 또다른 물질으로 막을 수 있는 법. 그러나 물질이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독이 존재한다면, 그 독은 그 어떠한 수단으로도 해독제나 방어법을 만들어낼 수 없지 않겠는가?"

"마치 소설(小說)같군요."

"흐흐. 그래서 독술을 연마하다보면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든다네. 보통의 무림인들이 무공의 극을 추구하는 것과 같은 심정이지."

나는 가만히 놔뒀다가는 당무극이 한도 끝도없이 독 이야기를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동방무결은 그 후에 도왕을 만나서 암흑가의 도박판을 쓸고, 연이어서 무후사에서 마작을 치고는 사라진 모양이더군요."

"나도 그 소식을 들었네. 여하튼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야."

"동방무결이 어디에 갔을지 짐작가시는 곳이 있습니까?"

"그는 아마 운남(云南)으로 갔을 것이네. 마지막으로 내가 입수한 정보가 운남의 오월족 땅을 지났다는 거였으니."

"......?"

운남이라니?

그곳은 중원의 최남단으로써 중화를 벗어나서 남만족의 땅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운남을 지나서 오월족 땅을 지났다는 건, 그가 중원을 떠났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짓자 당무극이 말했다.

"이건 충고이지만, 동방무결을 쫓지 않는 게 좋다고 보네. 물론 자네가 동방무결을 잡아와 주면 좋겠지만 그 노괴를 상대로 그런건 무리겠지. 자네처럼 어린 기재가 섣불리 목숨을 잃는 일이 없었으면 하네."

"동방무결의 무공이 그렇게 높습니까?"

"과감없이 말하자면, 그 자의 내공은 천하제일(天下第一)이 틀림없네. 그 자는 별격에 가까워."

"......!!"

나는 갈수록 내 머릿속의 동방무결의 무공이 올라가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는 그냥 초절정고수의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저렇게까지 표현하는 걸 보면 분명히 그보다 훨씬 위였다. 호법사자도 섣불리 대할 수 없을 정도의 초절정무공이라는 건 사실이었던 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초절정고수 당무극은 물론 당문의 절정고수들의 협공에서 멀쩡히 도망칠 수는 없으리라.

' 이거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는데.'

지금까지는 동방무결을 상대하더라도 뇌명과 백웅결을 살리면 적어도 도주할 틈은 쉽게 낼 수 있을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동방무결이 생각이상이라면 뭘 해보기도 전에 제압당할 가능성이 있었다. 여차할 경우 동방무결과 대등 혹은 그 이상으로 싸울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만 하는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그가 익힌 무공의 특징이라도 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기어코 그를 쫓을 셈인가 보군."

"네. 그가 오월땅이 아니라 남만으로 가더라도 찾아내고 말 겁니다."

"좋아. 그가 익힌 절기는 수공(手功)과 장공(掌功)인 듯 했고, 강경함 속에 유함을 숨기고 있는 절정무공이었네. 내가중수법에도 매우 익숙했고 특히 범위를 장악하는 지구전에 강력했네. 또한 그 자는 호신강기(護身?氣)도 단시간 끌어올릴 수 있었으니 정말로 조심해야 하네."

"......"

내공을 모아서 인위적으로 호신강기를 만든다?

그건 보통의 내공으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강기는 검기나 검염과 달리 순수한 깨달음으로 만들어내지 않으면 내공소모량이 너무나 컸다. 뇌명의 소모율을 상회할 정도이니 보통 무림인은 강기를 만들어보려다가 이승을 하직할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공을 모아서 억지로 호신강기로 자신을 방어할 정도라면 정말로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였다.

나는 이해가 안 되어서 말했다.

"동방무결은 그 정도의 엄청난 무공을 갖고있으면서 어째서 무림인으로 이름을 날리지 않은 겁니까?"

"알 게 뭔가. 그런 관심종자."

"......"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당무극을 보니 정말로 동방무결이 싫은 모양이었다. 천하무림인들에게 사신같은 존재로 군림하는 사천당문의 가주에게 이 정도로 미움을 사는 동방무결도 어지간한 인물이었다.

나는 덤으로 질문했다.

"만일에 인면지주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고, 그 내단을 채취하려 한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요?"

"으하하, 자네도 소설을 좋아하는군. 인면지주같은게 실제로 있겠는가."

"뭐 있다면 말이지요."

"흐음... 그런 게 있다면, 나라면 먼저 산성체액을 다 빼놓고 나서 내단이 모습을 드러내면 피독주를 미리 장비하고 수투로 옮기겠네. 햇빛이 닿지 않고 서늘한 곳에서 33일간 땅에 묻고 숙성시키면 과한 독기가 빠질테고, 그때부터 연단술을 이용해서 세심하게 독단으로 정제하겠지."

"그렇군요. 시체는 어떻게 하죠?"

"시체도 기(氣)가 뭉쳐있는 덩어리일테니 독기를 다 빼서 말린 후 빠개서 먹으면 영약과 자양강장 내지는 정력증강의 효과가 있겠지. 특히 구전에 따르면 사람얼굴 부분을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던데."

당무극은 반쯤은 유쾌하게 내 말에 대꾸하는 듯 했다. 하긴 사천당문까지 와서 금괴 내놓고 독 이야기를 열심히 질문하는 인간이 나 말고 달리 있을 리가 없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인면지주의 시체를 재활용하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도왕의 행적은 혹시 모르십니까?"

"그 자도 모습을 감추었네. 그런 건 개방에나 가서 물어보게나."

"네."

그리고 나는 용건이 끝나자 사천당문을 나와서 인적없는 곳에서 비등을 사용한 후, 다시 인적없는 계곡으로 갔다. 내 옆에 있던 미호가 흥미로운 듯 말했다.

"이야기를 잘 끝냈구나. 매혹술을 따로 안 써도 되는구나."

"뭐... 다행이군."

미호는 당무극을 대면하기도 전에 둔갑술을 이용해서 당무극 근처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미호 정도의 대요괴라서 가능한 둔갑술이었다.

무생물로 둔갑한 것이었기에 당무극이 아무리 고절한 무공을 지니고 있어도 눈치챌 수 있을 리는 없었다. 만일 이야기가 꼬이거나 당무극과 전투하게 될 경우, 미호가 기습하듯 튀어나와서 매혹술을 걸거나 습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당무극이 의외로 이야기가 통하는 인물이었기에 무리수를 두지 않아도 되었던 것이다.

미호가 말했다.

"그럼 다음 목적지는 운남이로구나."

"그래."

나는 눈을 빛냈다.

"그 전에 동방무결을 상대할만한 고수를 좀 찾아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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