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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43화 (143/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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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황오제(三皇五帝)

사천으로 향하는 길은 꽤 멀고 험한 편이었다. 낙양 인근에서 출발했기에 기본적으로 천리길을 훌쩍 뛰어넘었으며, 무엇보다도 태어나서 가본 적 없는 미지의 땅에 간다는 두근거림이 내 심장을 사로잡았다.

사천은 파촉(把蜀)이라고도 불리는 땅이었다. 고대적부터 파촉 땅은 산세가 험준하고 가기 힘든 지형으로 유명했고 그런 까닭에 다른 지역처럼 평야를 내달리는 식으로 훨훨 넘어다닐 수는 없었다. 그 사실은 한 관문에 도착해서 즉시 알 수 있었다.

' 와... 이건 정말...'

나는 속으로 침음성을 흘렸다. 보통은 관문이 인위적으로 지어지기 마련이었는데 이 관문은 달랐다. 험준한 산세의 산길을 틀어막듯이 관문이 지어져 있었고 여기를 통과하려면 마치 큰 산을 등산하듯 올라야 했다. 말도 오기 힘들었다.

어지간히 무공을 수련한 자라고 해도 관문앞에 도달하는 것만으로 상당한 피로감을 느낄 정도로 험난한 지형의 관문! 좁디좁은 협곡을 꽉 막는 걸 보면 천혜의 요새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었다.

나는 원래는 관문검사를 대충 피해서 성을 넘을 생각이었지만 그럴 생각을 버려야만 했다. 이런 요새를 밤중에 몰래 넘는 건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자칫하다가는 크게 들쑤셔서 앞으로의 일이 꼬일 가능성도 있었다.

"... 그러니까 스승의 명을 받아서 무사수행의 일환으로 사천당문(四川唐門)으로 가는 중이다?"

"네, 그렇습니다."

"으음... 호패도 변변히 없는 아이가 무림인이라."

나는 수상쩍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관문 백호장에게 공손하게 포권했다. 그리고 슬며시 다가가서 은자를 쥐어주고는 말했다.

"저는 꼭 건너가야 하는데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안될 거 없지! 허허."

뇌물을 먹이자 바로 통과였다. 긴장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수월하게 통과했기에 나는 새삼 뇌물의 위력을 느꼈다.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는 곧장 성도(省都)로 향했다. 사천당문은 원래는 섬서성 인근지역에 있었다고 하지만 역사상 여러차례의 변란을 겪고 난 후에는 점차 외곽으로 나가버려서, 현재는 성도에 완전히 거점을 두고 있는 터줏대감이 되어 있었다. 섬서성과 사천성이 붙어있는 지역이긴 했지만 사천성은 매우 넓은 지역이라서 성도까지 가는게 또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타다다닷

나는 우선 내공과 경공의 힘을 믿고 험준한 파촉의 산을 넘어 보기로 했다. 말을 타면 조그마한 산길을 꼬불꼬불 돌아서 가는게 10배나 되는 거리와 시간을 낭비했기 때문이다. 지평선을 향해서 어떻게 방향을 잡고 가면 되는지는 이미 독도법(讀圖法)을 공부했고 수많은 경험으로 알 수 있었다.

"오오오오오오!!"

떨어진다!

나는 비명을 내질렀다. 높이가 무려 육백여 장이 넘는 험준한 산을 오른 건 좋은데, 만장단애를 뛰어서 넘는 도중에 실수해서 허공에서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협곡 사이의 하천이 눈에 다가오자 이를 악물고 내공을 모아서 방출했다.

꽈앙!

거대한 물보라와 함께 내 몸이 재차 허공으로 튕겼다. 나는 절벽의 바위 끄트머리를 잡고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갔다. 사실 내 내공이면 떨어져도 다치지는 않았겠지만 하천에 휩쓸려서 흘러가게 되면 너무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았다.

그렇게 험준한 산을 넘기를 무려 6일 밤낮이었다. 원래 이 정도 속도라면 섬서성을 한 차례 횡단했을 테지만, 나는 지금 내가 맞는 길을 가는지도 가물가물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산의 평균적인 높이와 험준함이 섬서성의 지형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험난했기 때문이다.

' 이젠 아예 인적도 안 보이는군...'

나는 이름없는 야산의 중턱에 걸터앉아서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지금 동서남북을 구분하면서 계속 서쪽으로 가고 있긴 하지만 굉장히 까다로운 과정이었다. 말을 타는 것보다는 몇십 배 빠르게 가고 있지만 그래도 힘든 게 사실이다. 내게 호법사자급의 내공이 없었다면 초절정무림인조차 시도하지 못할 일이다.

도중에 배가 고파서 지나가던 멧돼지를 한 마리 잡아먹었다. 멧돼지구이는 꽤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나서 다시 미친듯이 산중을 달리고 또 달리기 시작했다.

타다다닷

' 어라?'

그렇게 험준한 산중을 달리다보니 뜬금없이 왠 무문(武門)의 건물이 산중에 떡하니 서 있는 게 보였다. 인적이 없는 곳이었기에 나는 신기함을 느껴서 그 무문의 현판을 바라보았다. 현판에는 백리세가(百里勢家)라고 적혀 있었다.

백리세가는 무림에서 별로 유명한 가문이 아닌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며칠 동안 밤을 새서 산을 넘느라 피곤했던 참이었고 정보도 알아볼 겸 백리세가의 문을 두드렸다.

"실례합니다."

문지기도 없는지라 반응이 오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아주 한참 후, 안에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면서 사람이 나왔다.

"뉘시오?"

"저는 지나가던 백웅이라고 합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쉬었다 갈 수 있겠습니까?"

"흐음."

밖으로 나온 자는 약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는 망설이는 기색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루 묵고 가게 소협."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는 그 청년을 따라서 무문 안쪽으로 걸어들어왔다. 걷는 도중에 그 청년 이외의 인기척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며, 건물 전체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이상해서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 청년이 씁쓸하게 말했다.

"두리번거리지 않아도 여기에는 나만 살고 있네."

"네? 어찌 이런 산중에 홀로..."

"......"

청년은 껄끄러운 듯 말을 하지 않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참, 그러고보니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군. 나는 백리정운(百里正雲)이라고 하네. 현재 백리세가의 가주(家主) 노릇을 하고 있지."

"백웅이라고 합니다. 무사수행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자네처럼 어린 자가 무사수행이라... 대단하군."

백리정운은 내가 홀로 돌아다닌다는 사실 자체에 감탄하고 있는 듯 했다. 하긴 이 험난한 사천의 산속을 헤매고 돌아다니는 10대 소년 자체가 드물긴 할 것이다. 백리정운은 내가 머물 방을 정해주고는 밥을 지으러 갔는데, 나도 가만히 앉아있기가 뭐해서 밥짓는 걸 도와주러 갔다.

그런데 부엌에 가 보니 먹을 게 없었다. 고작해야 한 줌의 쌀에 풀떼기가 있었고 그걸로 밥을 지으려는 듯 했다. 나는 기가 막혀서 백리정운을 쳐다보았는데,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미안하군. 지금 돈이 없고 쌀이 없네...

"......"

명색이 무림세가이며 가주일텐데 이렇게 가난할수가 있단 말인가? 잘 보니 백리정운의 몸은 많이 홀쭉했으며 아마 오랜 세월 소식(小食)을 했기 때문으로 보였다. 그나마 그의 내공이 나이에 비해 심후한 편이라서 적게 먹으면서도 버틸 수 있는 듯 했다. 나는 백리정운에게 말했다.

"상당한 무공을 지니신 듯 한데 돈 정도는 쉽게 버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하하... 물론 그렇지. 하지만 섣불리 세상의 은원에 휘말리기 싫어서 조용히 지내고 있네."

"으음.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나는 침음성을 흘리고는 백리세가를 뛰쳐나갔다. 그리고 약 반 시진동안 산을 돌아다니다가 큰 멧돼지를 잡아서 갖고왔다. 부엌에 멧돼지를 내팽개치자 백리정운이 깜짝 놀란 얼굴로 외쳤다.

"대단한 무공이군! 어찌 그 나이에 그 정도의..."

"이거 한 마리면 요깃거리가 될 겁니다."

나는 백리정운과 함께 열심히 멧돼지의 털과 가죽을 벗기고 구웠다. 제법 큰 놈이었기에 지글지글 굽자 둘이 먹고도 꽤 양이 많이 남았다. 만족스럽게 멧돼지를 먹은 백리정운이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으으... 거의 1년만에 제대로 먹은 것 같네. 고맙네 소협."

노숙도 질려서 잠시 잘 곳을 찾아온 것 뿐인데 얼떨결에 멧돼지를 또 잡은 셈이었다. 나는 손을 저으며 백리정운에게 말했다.

"그나저나 하산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빈궁하게 홀로 사시는 것보다는..."

내가 얼추 보기에 백리정운의 무공은 일류급 고수중에서도 꽤 뛰어난 편이었다. 물론 지금 내 수준에서 판단하기에는 약한 편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다. 백리정운의 나이가 젊은 것을 감안하면 그는 상당한 수재였다. 그의 무공이라면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럴 수는 없네. 아버님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는 좀 더 수련을 해야해."

"어떤 수련 말입니까?"

백리정운은 멧돼지 다리를 크게 뜯으며 말했다.

"우리 백리세가는 한때 사천에서 손꼽히는 대문파였네. 그러나 무공이 쇠하면서 점차 문하제자들이 떠나기 시작했고, 몇 년 전에는 백리세가의 혈족들도 자기 살 길을 찾아서 떠나버렸지... 내가 세가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무공을 개선하고 대성시켜야 하네."

"그렇군요."

나는 신기함을 느꼈다. 백리정운의 무공은 나이에 비해 상당한 편인데, 근간이 되는 무공이 그렇게 별로란 말인가? 나는 호기심을 느끼고는 백리정운에게 말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비무를 해볼 수 있겠습니까?"

"하하... 과객에게 괜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모양이군. 좋네."

백리정운이 빙긋 웃었다.

나는 백리정운과 목검을 들고 백리세가의 마당에서 마주섰다. 백리정운이 말했다.

"자네의 실력이 상수이니 내게 3초를 양보해 주게."

"물론입니다."

파바밧

비무가 시작되고 백리정운의 검초가 쏜살같이 뻗어나왔다. 나는 그의 검이 상당한 쾌검결을 머금고 있으며 강직한 기세를 머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3초동안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공격하는 검초는 틀림없이 일류고수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나는 내공의 우세함을 앞세울 필요도 없이 그의 검초에 존재하는 약점이 다 보였고, 설렁설렁 검을 움직여서 그의 헛점을 공략했다. 내 몸이 뇌영보에 따라서 부드럽게 움직이며 헛점을 찌르자, 백리정운은 꽤 당황하는 듯 했다.

결국 약 삼십 초만에 승패가 명확하게 났고 내 검은 그의 목젖에 닿아 있었다. 백리정운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졌네."

"좋은 비무였습니다."

내가 목검을 거두자 백리정운이 말했다.

"자네는 나이답지 않게 엄청난 실력을 지니고 있군. 대문파 장로에 못지 않은 듯 하네..."

"아닙니다. 그보다 무공의 약점이라는 건 역시 검법이 너무 정직하군요."

"......!!"

백리정운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놀라서 말했다.

"그걸 바로 간파했단 말인가?!"

"그야 검을 겨루었으니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렇지 않네. 일견식에 그걸 알아낸 자는 거의 없었어."

나는 목검을 거치대에 올려두며 말을 이었다.

"강검(强劍)이긴 하지만 변화가 별로 없고 단조로워서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걸로 보입니다만..."

"그게 우리 백리세가의 천강검(天降劍)의 단점이지... 후우..."

백리정운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면서 현재 문제가 뭔지를 알 수 있었다.

' 백리정운의 무재(武才)는 뛰어나다. 그러나 기초가 되는 내공심법이 크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검법은 강검이긴 하지만 단점투성이다. 그래서 더욱 올라갈 수도 있지만 일류 수준에서 정체되어 있구나.'

동시에 내심 신기함을 느꼈다. 원래 나는 매번 뇌신류를 연마할때마다 재능이 부족해서 발버둥치며 괴로움을 느낄 정도의 둔재였는데, 어느새 타 문파의 무공을 보고 단점을 세부적으로 짚어줄 수준이 된 것이다. 수십 년 동안의 고생이 헛것이 아니었다는 증거였다.

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래서 천강검법을 개선하기 위해서 세상에 나가지 않고 검술을 연구하고 있으신 겁니까?"

"그렇네. 내가 천강검을 고쳐내서 백리세가의 무공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떠났던 문인들도 다시 돌아올 것이니까."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뭐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아무런 대적자도 없이 연구에 매달리는 건 무술의 상리와 맞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사람을 만나보고 그들이 지닌 무예의 장단점을 알아보아야 무예를 발전시킬 수 있겠지요."

"......!!"

백리정운은 머리를 크게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말을 이었다.

"무예가 마주치면 상승효과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천강검의 단점은 다른 검술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확신을 담아서 말한 건 백웅결의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무당파 현천신공의 진기도인법에 화씨세가의 화씨백팔침의 공능을 담아서 이광의 천재성으로 다듬어진 무공! 이 세상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조합이란 게 무공에는 존재하는 것이다.

"나도 생각했던 바였지만, 나는 이 백리세가의 터전을 지켜야 하기에 함부로 하산할 수가 없네."

"사람이 중요하지 건물이 뭐가 중요합니까?"

"너무 함부로 말하는군."

"당신이 백리세가의 가주라면, 당신이 백리세가의 모든 것이 아닙니까?"

"......!!"

동시에 백리정운은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그 자세로 한동안 굳어 있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 고맙네. 어리석은 나를 깨우쳐 줘서."

"아닙니다."

나는 그 날 백리정운과 함께 건물을 다시 한 번 청소한 후 잠자리에 들었다. 백리세가가 한때 융성한 건 사실인지 잠을 자기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좋은 건물이었다. 백리정운이 터전을 지키려고 매달리는 마음도 이해가 되었지만, 그래서는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었다. 중요한 건 무공이지 건물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나는 근처의 개천에서 몸을 씻고는 백리세가를 나섰다. 백리정운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비록 내 문파의 비전무공을 전해줄 수는 없지만, 자네의 목적이 무사수행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네."

"네? 무슨..."

"용왕곡(龍王谷)이라는 장소에 엄청난 무공을 지닌 은거고수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네. 나 또한 돌아가신 아버님께 전해들은 거라서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건 세간에 퍼지지 않은 진짜 정보라고 확신하네. 사천의 고수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이 그 자와 교류를 트고 있다더군."

"은거고수라..."

나는 호기심을 느꼈다. 백리정운이 훗하고 웃으며 말했다.

"나도 조만간 세가의 짐을 정리하고 강호무림으로 나가 볼 생각이네. 자네는 내게 큰 은인일세."

"모쪼록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자네도 잘 가게."

나는 백리정운과 헤어져서 또다시 산골짜기를 달리고 또 달렸다. 목표인 사천당문까지는 아직도 한참 남은 듯 했다. 나는 이름없는 험준한 산맥의 정상에 올라서 팔짱을 낀 채 생각했다.

' 동방무결의 마지막 행적은, 분명히 사천당문이라고 했었지...'

사천당문에서 동방무결의 정보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천당문의 본거지가 있는 성도로 가야 한다. 나는 눈빛을 빛내며 다시 미친듯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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