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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이광과 의문의 은빛가면이 사라진 곳은 흔적을 따로 추적할 필요도 없었다. 그쪽 방향으로 가면 갈수록 광대한 기(氣)가 마치 폭발하듯 연이어서 터져나왔고, 그 파장은 멀리까지 느껴졌다. 나는 그들의 힘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영역에 이르러있는지를 알아차리고 침음성을 흘렸다.
"음."
미호가 말했다.
"저 난장판에 꼭 가야겠느냐?"
"어차피 이광이 지면 우리는 끝이야."
나는 결연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저 여우가면은 한씨세가 가주이자, 아마 백련교 호법사자일 테니까."
이것은 내가 전생을 통해서 알아낸 사실이다. 화신류의 지배자임과 동시에 한씨세가의 가주인 한백령, 그녀는 백련교 호법사자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화신류는 현재 백련교의 무류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광과 진소청도 그 사실을 뇌신류의 전승자로써 미리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백령을 보자마자 긴장한 것이다.
호법사자의 능력이 얼마나 가공한 건지는 풍신류 호법사자와의 싸움에서 충분히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이광과 호법사자의 결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보지 못했지만, 호법사자에게 승산이 낮다는 건 확실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광을 도와야만 하는 것이다.
타다닷
뛰어가다보니 장하산 정상에서 그들이 격전을 벌이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미호는 두말하지 않고 경공을 써서 뛰어올라가기 시작했다. 야산치고는 꽤 높았지만 우리가 정상까지 오르는데는 채 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콰과광
"하앗!"
이광의 절초(絶招)가 쏟아지고 있었다. 풍뢰(風雷)를 머금은 찰(刹)의 수법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었고, 그 와중에도 마치 버드나무처럼 흔들리며 행로가 분열되었다. 창술의 명인인 이광만이 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그러나 전투자세를 잡고 있던 한백령은 훗하고 웃으며 양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마치 불꽃으로 이루어진 환영이 날뛰는 듯 하더니, 그녀의 몸이 화염이 되어서 부스러졌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氣)로 만든 환영으로써, 실체는 이미 거대한 열양장(熱陽掌)을 뿜어내고 있었다.
콰앙 - !!
순식간의 일이었다. 단순히 일 장이 대지에 부딪힌 것 뿐일진대, 장하산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격한 진동과 함께 미진이 일어났다. 진폭과 함께 광대한 화염이 터져나왔고 그 범위는 무려 수십 장이나 되는 듯 했다.
"......!!"
이것이 절세고수들의 대결!
이광은 더 이상 공격해 들어갈 수 없음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그는 다소 피곤한 안색으로 한백령에게 말했다.
"장난치나? 왜 제대로 하지 않는 거요?"
"후후후, 무슨 소리인지."
"화신류의 진수는 쌍검술(雙劍術)이며 진야천랑검(眞夜天狼劍)이 최강의 검법이라는 걸 모른다고 생각하는가."
이광의 말에 한백령이 말했다.
"아끼는 가면이 깨졌으니 그정도 질문은 대답해 주마."
그 말대로였다. 그들은 이미 한참 싸운 모양인지 이광의 상반신에는 땀이 흥건했으며 한백령의 은빛 여우가면도 깨져서 오른쪽 눈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백령은 은빛 여우가면을 들어서 땅에 내팽개쳤고 이내 흑발의 절세미녀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났다. 그녀의 외모는 마치 인형같다는 느낌이 어울리는 단아한 모습이었다.
"나는 이 상황에서 목숨걸고 싸울 이유가 없다."
"......"
이광은 짐작한 내용인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장내에 도착한 나와 미호를 향해 말했다.
"경계해라."
짧은 말이었지만 거기에는 한백령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다는 이광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 사실을 한백령도 느꼈는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로 나와 승부를 결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안될 건 뭐요?"
순간적으로 한백령의 눈이 파르스름하게 물들었다. 그것은 명백한 살기였다.
"허세부리지 마라, 이광. 나는 지금 어느 쪽이 나은지를 재어보고 있을 뿐이니까."
"재어본다라... 그렇게 말할 거라면 제반사정을 말해 주시오. 그걸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거라고 생각하는데?"
"황궁에서 수십 년 굴러먹은 놈 아니랄까봐 얼척없이 뻔뻔하구나."
"칭찬으로 듣겠소."
한백령은 이광을 고까운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이광은 태연했다. 아무래도 한백령에게 있어서 이광은 짜증나는 후배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모양이었고, 그건 대단한 일이었다. 천하무적의 힘을 지닌 호법사자 조차도 이광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한백령이 말했다.
"현재 자신을 연금술사라고 자칭하는 괴인이 쌍문사가의 문인들을 모두 괴질에 빠뜨린 상황이다. 나를 포함한 쌍문사가의 가주들은 황연군의 간부를 없애고 오면 괴질에서 해방시켜 주겠다는 그 자의 약속을 믿고 어쩔수 없이 온 것이지."
"괴질이라... 어떤 괴질 말이오?"
"인간의 몸에 알 수 없는 종양이 돋아나고 사지 끝에서부터 검게 물드는 괴질이다. 별로 고통은 없어보이지만 그게 더 무섭지.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변해가는 것 같아서 직접 보면 그 참상이 끔찍하다."
이광은 잠시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말했다.
"그런 것 치고는 당신은 너무 태연해 보이는군. 한씨세가의 가솔들은 괴질에 걸리지 않았다는 말이오?"
"설마. 단지 비슷한 걸 이미 본 적이 있을 뿐이다."
한백령은 불편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소교주(小敎主)가 걸린 괴질과 비슷했다. 거의 유사했지."
"......!!"
이광이 흠칫 놀랐다.
"백련교가 소교주의 중태 때문에 중원진출을 미룬다는 소문이 사실이었군."
"뭐 그런고로 저 괴질이 당장 크게 발병할 것은 아니며 전염도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아마 술사를 쓰러뜨리면 풀리겠지."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상황을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쌍문사가의 가주들은 원인불명의 괴질이 무엇인지 몰라서 젖먹던 힘까지 다해서 암살을 하러 온 것이지만, 한백령은 괴질이 무엇인지 대충이나마 알고 있는 듯 했다.
이광은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과연. 그래서 내 힘을 시험한 거요?"
"그래. 네가 뇌신류에서 제일 가는 고수인 건 사실이고, 황궁의 결계를 뚫고 갈 역량이 있을지 알아봐야 하니 말이다."
"내가 그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 때는 나로써도 어쩔 수 없지. 전력을 다해서 너희를 베어버리고 황연과 망량이라는 자의 목을 따서 연금술사에게 가져다주는 수밖에."
스르륵...
소리소문없이 한백령의 양손에 쌍검이 잡혀 있었다. 단지 검을 잡은 것 뿐이었는데도 무시무시한 기세가 무형의 압박을 가해 오고 있었다. 예전에 내가 느낀 것과는 천지차이로써, 말그대로 천하를 두조각 내버릴만큼 거대한 무형지기였다. 심지어 이광조차도 흠칫하며 뒤로 물러날 뻔 한 것이다.
한백령은 진심이었다.
이 자리에서 자기와 손을 잡든가, 아니면 생사결을 하든가!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광이 말했다.
"당신은 연금술사의 약속을 믿지 않고 있군."
"어떻게 그런걸 믿느냐? 그것은 전염병이나 독 같은게 아니라 저주의 일종이다. 놈이 약속을 지키리라는 보장 따위는 어디에도 없지."
"그렇겠군. 상황은 잘 알았소."
이광은 고민하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쪽의 여인은 누구냐?"
"미호의 손윗누이입니다. 우리를 도와주러 왔습니다."
"허, 그러냐. 마침 잘 왔구나. 상황은?"
"적은 모두 궤멸되었습니다. 다만 진소청이 탈진해서 일단 두고 왔습니다."
"잘했다."
허허 웃던 이광이 다시 한백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단, 명확한 계획이 없다면 우리도 범의 아가리에 목을 들이밀 수는 없소."
"계획은 있다."
팔짱을 낀 한백령이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결론은 그 연금술사라는 놈을 베어버리면 된다. 놈은 황궁 깊숙한 곳에 있으니, 그 곳에 가기 전에 제갈부의 결계를 뚫어야 한다. 단지 내 힘만으로는 장담할 수 없으니, 네 힘을 빌리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본다."
"... 그건 우리 군의 군사(軍師)와 논해야 하겠군. 제갈부에 대해서는 내가 아는 바가 없소."
"그래. 나도 그의 신기묘산(神機妙算)이 탁월하다 들었다."
"따라 오시오. 너희도 와라."
나는 이광의 말에 대답했다.
"제 방법을 써서 따라가겠습니다."
"흠, 그래라."
파앗
잠시 후 한백령과 이광의 신형이 멀리로 가 버렸다. 나와 미호는 남겨진 채로 장하산의 정상에 남은 참상을 관찰했다. 미호는 곳곳에 타들어가고 파헤쳐져서 마치 천재지변이 일어난 듯한 광경을 보더니 질린 듯 말했다.
"저 자들은 도저히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힘을 지니고 있구나. 어떻게 인간인데 저렇게 강할 수가 있지?"
"당연한 거야. 저들이야말로 온 세상을 통틀어서 열 손가락에 드는 강자들이니까."
"흐응...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
"우선 망량의 소견부터 들어봐야겠지. 망량이 답이 없다고 하면 그건 정말로 답이 없는 거니까."
"백웅, 너는 망량을 굉장히 신뢰하고 있구나."
"물론!"
미호는 잠시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갑자기 나를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미호가 살며시 내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티내지 말거라. 본녀는 질투심이 강하니까."
"......"
이게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곧 나와 미호는 비등을 써서 막사로 되돌아왔고, 이광이나 한백령이 도착하기 전에 먼저 망량을 찾아갔다. 망량도 상황을 보고받았는지 군사복을 다 차려입고 진중에 나와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매혹술에 걸려있는 장씨세가의 가주, 장봉을 꿇려앉힌 채로 심문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망량."
"아, 백웅. 어딜 갔던 것이오?"
나는 망량에게 잠깐동안에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 그렇게 되어서 잠시 후 이광과 한백령이 도착할 것이오. 그리고 이 장봉이라는 자는 미호의 매혹술에 걸렸으니 따로 고문하지 않아도 정보를 얻어낼 수 있소."
"흐음, 골치아프게 됐군."
망량이 꺼지듯 한숨을 쉬었다.
"설마 그와 정면승부를 하게 될 줄은..."
"제갈부가 그렇게 무서운 존재요?"
"중원지보(中原之寶)."
망량은 씁쓸하게 말했다.
"대명이 건국된 이래 최초로 인간이 받은 대기재의 칭호요. 그 자는 격이 다르오. 모든 점에서 완벽한 인간이지."
나는 망량이 너무 자신감이 없는 것 같아서 싫어졌다. 내가 보는 망량은 늘 패기있고 열혈스럽게 정의를 관철하는 사나이였다. 그런데 누군가와 대면하기도 전에 이렇게 자신감을 잃고 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망량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말했다.
"너무 기죽지 마시오. 내가 볼 때는 당신도 엄청난 천재이고 우리의 희망이오. 그깟 중원지보가 뭐라고 기죽어야 하오?"
"음...?"
"당신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책사요."
망량은 내 격려에 잠시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유쾌하게 웃었다.
"으하하핫!! 과연! 천하제일이면 중원지보를 능가할 수 있는가."
"물론 그렇지 않겠소?"
"알았소. 내 꼭 힘을 내리다."
곧이어 이광과 한백령이 도착했다.
"소청이는 어디 있나?"
이광은 돌아오자마자 진소청부터 찾았는데, 진소청은 현재 천년설삼을 복용하고 기운을 추스리며 자기 막사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이광은 그가 천년설삼의 기운을 소화하며 대주천을 거의 완료해가는 모습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아니 이건?!"
나는 그에게 전음을 보냈다.
[ 천년설삼을 먹였습니다.]
"엉?!"
[ 기운 차리라고...]
이광은 진심으로 황당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 손을 꽉 붙잡고 말했다.
"... 고맙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별 말씀을."
"한백령. 잠시 기다려 주시오. 이 이야기는 소청이가 깨어난 후에 하고 싶소."
같이 막사에 들어와 있던 한백령이 감탄한 듯 말했다.
"이 아이가 네 애제자군. 과연 진성이만큼 훌륭한 자질이구나."
"진성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소청이가 더 훌륭할 거요."
"뭐라고?!"
순간 파직거리는 기류가 흘렀다. 나는 그 모습을 보자 당황했다.
"두 분 진정하시고..."
"흠!"
"흥!"
서로가 짜증을 내는 걸 보자 나는 기가 막힐 지경이 되었다. 천하에서 내로라하는 절세고수들이 왜 자기 후계자 자랑때문에 유치한 기싸움을 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저게 자식키우는 심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긴 했다.
진소청이 깨어나서 기운을 갈무리했을 때는 약 반 시진이 흘러 있었다. 진소청은 내공을 소화하며 한단계 높은 경지로 향한 듯 눈빛에 정광이 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이번 일의 관계자가 전원 망량의 막사에 모였다.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팔락거리며 한백령에게 말했다.
"그럼 죄송합니다만 이번 일의 경과를 다시 자세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한백령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우리도 너희 황연군이 황실어림군과 결전을 벌여서 승리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쌍문사가의 가주들이 모여서 앞으로의 거취를 회의하는 자리였지. 그런데 난데없이 자신을 연금술사라고 밝힌 괴인이 나타나서, 우리 외의 가솔 모두를 괴질에 걸리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우리가 황연이나 황연군 간부의 목을 베어 온다면 괴질을 치유해 준다고 협박하더군."
"괴질이라는 게 백련교 소교주가 걸린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죠."
"그렇다. 완전히 같은지는 모르겠으나 증상이 대동소이하다."
"그리고 저주의 일종이라..."
망량은 잠시 생각하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백웅. 미안하지만 낙양성에 침투해서 괴질에 걸린 자를 빠르게 납치해 와 주시오."
"나 혼자 괜찮겠소?"
"아직은 괜찮소. 제갈부는 결계를 황성에만 집중시키고 있으니, 은형술과 경공을 이용하면 쉬울 거요."
나는 망량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막사에서 나가서 비등을 사용했다. 그리고 비등을 이용해서 한씨세가로 이동했다. 한씨세가로 이동하자 곳곳에 사람들이 비척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고, 그 모습은 마치 이성이 없는 듯 했다.
끔찍한 것은 한백령이 말한 대로 그들의 피부가 썩어들어가듯 검은빛을 띄고 있으며 몸을 점차 잠식해가는 듯 했다. 게다가 곳곳에 끔찍한 종양이 생겨나서 진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피해서 은형술과 은신술으로 상태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개중 멀쩡해 보이는 자를 찾아 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진성이라고 불리는 사내는 괴질의 진행상황이 거의 없어보였다.
"으으윽..."
다만 괴질이 팔다리의 첨단에 머무르는 대신에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정신력으로 저항하는 듯 했으나 전신에 땀이 흐르는 듯 했다. 나는 한진성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괜찮소?"
"다... 당신은...?"
"나는 황연군 소속의 백웅이라 하오. 한 가주께서 우리와 행동을 함께하셔서 적의 수괴를 물리치기로 하셨소."
"그... 그거 잘됐군.. 커억!"
"......"
나는 피기침을 토하는 한진성을 요상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 왜 한진성은 경과가 덜하고 다른 자들은 마치 이족(異族)처럼 변해버렸을까?'
이 차이는 어째서 나는 것인가. 나는 고민해 봤지만 내가 당장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비등을 이용해서 한진성을 우리쪽에 데려가볼까 생각했지만, 괴질에 저항하기도 힘든 한진성이 비등의 악몽같은 광경을 버틸만한 정신력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자칫하다가는 그를 죽일 수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좀 참으시오. 술사를 쓰러뜨리면 풀릴 것이오."
"으으으... 잠시..."
내가 나가려고 하자 한진성은 피를 토하더니 말했다.
"... 이 부근에 괴인들이 떠돌아다니니 부디 조심하라고, 전해 주시오..."
"괴인?"
"그렇소... 마치 뱀과 같은 인간이... 삼지창이나 큰 칼을 들고 돌아다니고 있소..."
"뭐라고? 그런 걸 보고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소?"
"길거리를 보시오... 자욱한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소..."
나는 급히 바깥을 살펴 보았다. 그 말대로 황도는 거대한 안개에 휩싸여서 이 장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바깥에서 보기에는 전혀 이런 안개가 보이지 않았는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일까?
그리고 한진성의 말대로 쉬쉭거리는 소리와 함께 뱀 인간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서 돌아다니는 모습도 곳곳에서 보였다. 사람들은 그들과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구석에 숨어 있었다.
' 뱀 인간... 저 놈들도 이족(異族)이다.'
나는 뱀 인간과 싸워본 적이 있었다. 놈들은 무예수준이 그리 뛰어난 건 아니지만, 선천적인 신체능력이 워낙 좋아서 어지간한 고수들도 애먹을만한 놈들이었다. 아마 연금술사가 술법으로 이 안개와 뱀인간들을 소환해냈으리라.
"알았소. 기다리시오."
나는 먼저 한씨세가의 방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있던 보검 용연검을 꺼내서 목갑 안에 넣었다.
그리고는 지나다니던 괴질 감염자를 하나 붙잡아서 같이 비등으로 본진막사 안으로 이동했다. 한백령은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아니?"
"망량. 이게 바로 감염자요."
내가 망량에게 감염자를 보여주자, 그는 상세하게 여기저기를 관찰하는 기색이었다. 약 한 식경동안 말없이 감염자를 관찰하던 망량이 말했다.
"이런 건 그 어떤 문헌에서도 보거나 들은 적이 없소."
"말했잖느냐. 이건 보통 괴질이 아니라고."
"......"
나는 고민하는 망량에게 현재 낙양 내의 상황을 말해 주었다. 망량은 거기까지 듣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별 수 없군. 제갈부를 뚫지 않는 한 연금술사를 죽일 수는 없겠어. 그러면 정면돌파를 해 봅시다."
"어떻게?"
망량이 씨익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굉장히 쉽소."
쉬이익!
잠시 후 나는 비등을 든 채 내황각(內皇閣)의 최상층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이 곳은 제갈부의 집무실이었다. 앉아서 책을 읽고 있던 제갈부가 음? 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그대로 목갑을 열어서 해방했다.
파바밧
"......!!"
제갈부가 깜짝 놀랐다.
난데없이 목갑이 열림과 동시에 한백령, 진소청, 이광, 망량, 미호가 동시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나는 제갈부에게 씩 웃으며 말했다.
"여어 반갑소."
목갑과 비등.
두 개의 상승효과를 발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