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전생검신-134화 (134/1,615)

0134 ----------------------------------------------

암천향(暗天鄕)

"자, 그럼 각자 위치로 향하시오."

나는 다음 날 아침, 망량에게서 백인대의 지휘를 명 받았다. 밤새워서 손자병법을 읽었고 기초적인 군략과 지휘법을 습득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군사(軍師)의 복장을 갖춘 망량이 대군 앞에 나섰다.

이 자리에 모여있던 숙장들은 망량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백면서생이 난데없이 수만 명이나 되는 군사를 움직인다고 하니, 경험많은 장군들의 입장에서는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망량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군사들 앞에 나서서 호령했다.

"전진!"

그리고 서서히 거대한 군대가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말을 탄 채 백인대를 뒤에 끌고 군대의 행렬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 군이 수도를 방어하고 있을 병력보다 열세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수만 대군의 맨 앞에서 움직인다는 건 굉장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망량은 이런 대군을 이끌면서도 긴장하지 않는 것일까? 힐끔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망량은 긴장하기는 커녕 여유롭게 오화칠금선을 부치고 있었다. 나는 옆에서 말을 타고 있는 다른 숙장들의 얼굴을 살펴보았지만 그들 또한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

황연 대장군이 같이 있기 때문이라는 건 머지않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실지휘를 내리는게 망량이지만 황연 대장군의 뜻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원래라면 왠만한 전사도 코웃음치며 무시할 장군들이 망량같은 백면서생의 지휘에 일사불란하게 따르게 해 주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우리 군은 약 하루를 행군한 끝에 낙양에서 사십 리 거리에 있는 평야에 도착했다. 그리고 곧이어 지평선 저편에서 이미 진을 치고 대기하고 있는 시꺼먼 군세가 눈에 보였다.

쿠르르르...

구름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인간이 저렇게 많을 수 있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 된 듯 싶었다.

20만 대군!

그것도 정예 어림군이 10만 이상 포함되어 있는 대군이 진을 치고 있는 것이다. 시꺼먼 기병이 대오를 잡고 돌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수천 명이 족히 넘었다.

그들은 우선은 지켜보기로 한 모양인지 선공을 해 오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거리를 두고 대군이 대치하자, 적 측에서 한 명이 말을 타고 뛰쳐나와서 외쳤다.

"역도들이여! 어찌 황명에 거역하여 어리석은 죽음을 자초하는가? 역도의 수괴, 황연을 따라 구족이 멸망되는 걸 원하는가? 황제 폐하께서는 그대들 전부가 역도이리라고 생각지 않으시니, 지금이라도 창과 칼을 내려놓고 항복하라!"

일종의 심리전이었다. 아군의 동요를 일으켜서 전투를 쉽게 하려는 작전이었다. 그러자 망량이 히죽 웃으며 옆에 있던 북룡대의 궁사대장에게 명령했다.

"머리통을 날려 버리시오."

"네."

퍼벅!

순식간의 일이었다. 궁사대장이 쏜 화살은 일반적인 사거리를 두 배 이상 뛰어넘어서 날아갔고, 그대로 도발꾼의 미간을 관통해 버렸다. 나는 그 솜씨를 옆에서 보며 놀랐다.

' 대단한 궁술이다.'

북룡대 궁사대장은 아마 강호에 나가더라도 상당한 절정고수로 대접받을 실력인 듯 했다. 북룡대가 황연 대장군 밑에서 극한의 실전으로 단련되며 군부의 무공을 수십 년간 익힌 최정예라고 들었기에, 그들을 인솔하는 궁사대장도 만만히 볼 자가 아니었다.

다그닥

도발꾼이 처참하게 말에서 떨어져서 죽자, 이번에는 망량이 말을 타고 본진 앞으로 살짝 나왔다. 그리고는 내공을 돋우어서 외쳤다.

[ 우리는 영명하신 황제폐하께 거스르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분을 현혹시키는 아첨꾼과 괴뢰를 거두어, 밝고 영광스러운 대명제국의 앞날을 만들어가는 것일지니! 황연 대장군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결단을 내린 게 아니다! 금의위와 동창의 행패가 너무나 극심하여 그 해악이 일반 민중에게 달할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 이것이야말로 애국애족(愛國愛族)이다! 황연 대장군의 결사적인 각오를 같은 군인으로써 느낄 수 없단 말인가!]

그러자 도리어 저쪽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다른 건 둘째치고 황연 대장군이라는 이름은 군인들에게 절대적인 신망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망량의 웅변력에는 굉장한 호소력이 담겨 있었다.

그러자 저쪽의 지휘관이 악을 쓰면서 외쳤다.

"공격!! 저 놈의 개소리를 멈춰라!"

쿠르르르

그리고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수십만 대군이 정면에서 마치 밀물처럼 밀려드는 모양새였다. 평야에서 이런 대치양상이 된다면 숫자가 적은 쪽이 절대적으로 불리하게 마련이었는데, 망량이 도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지 궁금했다.

"적의 선두는 기병이다. 포진 사수 일발 장전!"

망량이 손을 올렸다.

"홍이포 발사!"

꽈과과과광!!

그 순간이었다. 천지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듯 했다. 전방에 배치되어 있던 홍이포 수천 문이 동시에 발사되면서 달려오던 기병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순식간에 수백 수천 명의 기병이 찢겨나가고 낙마했으며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으아아아악."

"아아악."

그 박력이 굉장했는지 적의 대군은 달려들다 말고 주춤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망량이 지휘대 위에 앉아서 느긋하게 중얼거리는 걸 들을 수 있었다.

"대명제국이 넓다지만 극히 일부의 수군을 제외하고는 최전방의 북룡대만이 홍이포를 실전운용하고 있지. 이걸로 적의 예봉은 꺾었다."

투두두두

그래도 아직도 적의 공격은 밀려들고 있었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돌진시키면 이득을 보리라는 심산인 듯 했다. 적들과의 거리가 약 삼십 장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리고 망량이 깃발을 들어서 두어 번 휘둘렀다.

"쳐라!"

큰 북소리가 울린다.

갑자기 우리 군의 진형이 마치 콩이 쏟아지듯이 흩어졌다. 망량은 사전에 포진을 위시해서 대열을 섬세하게 구분해놓고 있었는데, 만부장과 천부장들이 차례대로 그 깃발을 해석해서 면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구조였다. 나도 백인대를 이끌고 정신없이 산개해서 몰려나갔다.

잠시 후 흩어진 듯한 부대들은 각개전투를 하려는 듯 하다가 다시 좌측으로 모이면서 적의 날개를 꺾기 시작했다. 하도 기묘한 운용이라서 전방에서 싸우는 나로써는 전황이 어떻게 되는지 도저히 파악할 수가 없었다.

채앵 챙 -

콰광

우와아아아 -

뭐가 어찌되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할 일은 하나 뿐이었다. 나는 살기를 북돋우며 외쳤다.

"가자!"

나는 백인대를 이끌고 검과 창을 휘두르며 적들을 베어 나갔다. 나는 갑옷을 입은 무사들을 베어나가는 도중에 창이 검보다 훨씬 편리하고 강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창이 괜히 전쟁용 병기가 아닌 것이다. 내가 검을 들었을 때 더 강하긴 하지만 창이 훨씬 효율적이었기에 결국 나중에는 창만 휘두르며 싸우게 되었다.

그리고 전장에서 수백 명을 베며 날뛰던 도중에 기가 질렸다.

' 뭐야? 도저히... 끝이 안 날 것 같다.'

츄왁

까강!

"오오오오오!!"

나는 이미 2백 명, 아니 3백 명에 가깝게 창검을 휘둘러서 적을 도륙하는 중이었다. 검기가 엄청난 내공과 함께 뿜어져 나와서 한 합에 서너 명씩 썰어버렸다. 보통 강호에서의 전투라면 이 정도 베었으면 문파가 멸문했거나 대부분의 싸움이 끝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베고 또 베는데도 적들이 천지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으니 기가 질렸다. 마치 수많은 벌레들이 쉴새없이 덤벼드는 것 같았다.

이렇게 되면 무공의 고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중무장한 병사일 경우 검기나 검염을 쓰지 않으면 일격에 죽이기도 힘들었다. 나는 어느 새 내가 전장에서 대활약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점차 무미건조하게 살육만 거듭하면서 전장 어딘가에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내 무위 덕에 나를 따르는 백인대는 거의 죽지 않았지만, 허무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었다.

이게 바로 전쟁인 것인가.

나는 순간적으로 거대한 전쟁에서 일개인의 무공이라는 게 얼마나 초라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마치 [군대]라고 하는 이름의 불사신(不死神)같은 거대한 생명체와 맞닥뜨린 듯한 기분이었다.

콰릉

그리고 갑자기 적의 대군의 일각이 무너지면서, 그 곳에 난데없이 아군이 난입하는 걸 볼 수 있었다. 번개의 섬광이 지나친 후, 거기에 이광과 진소청의 모습이 있는 걸 발견하자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 병력을 나누어서 후면에서 적을 급습했구나!'

대책없이 평야에서 맞닥뜨린 게 아니다.

처음부터 몰래 병력을 매복시킨 망량이었다. 그것은 적과 어디쯤에서 마주칠지 이미 예상하고 작전을 짰다는 증거였다.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쿠르르르

"움직여!"

낭랑한 망량의 외침과 함께 깃발이 움직이자, 그 움직임은 채 30초도 되지 않아서 대군의 후미까지 전달되었다.

평야에서의 정면대결인데도, 망량의 깃발에 따라서 이쪽의 병력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다면공격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적들은 병력의 우위를 못 보는 상황이었고, 심지어 정면의 포격때문에 계속 힘이 분산되고 있었다. 평야에서의 정면 회전에서 정예군을 상대로 찍어누른다는 것은 망량의 엄청난 전술지휘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전방에서 싸우는 나조차도 전혀 전투가 어떻게 되어가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병력 하나하나를 백 단위로 머릿속에서 생각하며, 유기적인 흐름을 구성하고 대군을 정면에서 박살낼 수 있는 망량의 전술지휘 수준은 상상을 불허했다.

분명히 장군이라 불리는 자들 중에서 극소수만이 가능한 재주이리라. 괜히 황연 대장군이 망량에게 고평가를 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콰과광!

"우오오오오!!"

"돌진! 방패병이 뚫렸다."

"기병 선두 전진!"

마치 무술의 고수가 삼류를 무술의 묘(妙)로 제압하듯, 어이없게도 3배의 병력차이가 나는 평야의 회전은 갈수록 이쪽에 승기가 오고 있었다. 저쪽의 병력은 이미 반수 이상 줄어 있었는데 이쪽은 최전방의 부대 빼고는 별다른 피해가 없는 듯 했다.

"으으, 으으으!! 황연이 아니라 백면서생이 지휘한다 들었는데?! 이럴 수가!!"

나는 어느덧 정신없이 싸우다 보니 왠 지휘관이 비명을 지르는 곳까지 와 있었다. 나는 저 놈의 옷이 고급스러웠으므로 높은 놈이라고 예감했고, 곧장 달려들어서 공격했다.

"아니!"

"막아라!"

그러자 뜻밖에도 그 지휘관을 지키려고 금의위 다섯 명이 동시에 내게 덤벼들었다. 그들 하나하나의 실력이 일류고수급 이상이라서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전장에서 금의위를 마주칠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고수 상대라면 검이 낫지.'

나는 그대로 무기를 바꿔들었다. 그리고 만승검결에 굴공참을 시전해서 그들의 움직임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허공이 흔들리며 그들의 절초가 하나같이 무마되어 버리며 여기저기로 튕겨났다.

"윽?!"

"이건 대체 무슨 검법...!!"

금의위들은 예상도 하지 못한 굴공참의 효과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금의위들이 비틀거리며 멀어지자, 나는 단숨에 횡으로 검을 휘둘러서 지휘관의 목을 베어버렸다.

써걱하는 소리와 함께 지휘관의 목이 허공을 날았고 나는 그 목을 잡아챘다. 그리고 크게 외쳤다.

"적장 물리쳤다!"

우오오오오!!

갑자기 주변에서 함성이 끓어올랐다. 근처까지 와 있던 아군 병사와 장수들이 함성을 내지르는 것이었다. 장수 한 명이 환호성을 질렀다.

"맙소사!! 적 총대장을 베었구려!"

"......?!"

이 놈이 총대장이었단 말인가?!

그러고보니 금의위가 다섯 명씩이나 몰려들어서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금의위들은 나를 막지 못해서 총대장이 살해당하자 침통한 표정을 짓더니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는 얼떨결에 큰 전공을 세웠다는 걸 깨닫고는 뻘쭘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 이걸로 한사람 몫은 한 건가?'

그 날의 회전은 아군의 압승으로 끝났다. 나는 적병들을 죽이거나 혈도를 제압해서 포로로 남겼다. 망량이 포로를 잡으라고 한 이유는 그들에게서 정보를 들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전투결과를 종합해 보니 적은 무려 12만명 가량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고, 나머지는 항복하거나 패잔병이 되어서 도주했다. 그 반면에 아군 병사는 고작해야 1만 5천의 손실이 있었을 뿐이며 그나마도 부상자가 많은 편이었다. 평야에서의 정면회전에서 압도적으로 이겨버린 것이다.

대승도 이런 대승이 없다. 아마 대명제국의 전쟁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나는 압도적으로 이긴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단순히 지휘관의 역량 차이만으로 이렇게 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말인가? 내가 의문점을 망량에게 묻자, 그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내 지휘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만으로는 이길 수가 없지. 황실어림군과 북룡대의 질적인 차이 때문이오."

"질적인 차이?"

"그렇소."

망량이 오화칠금선을 팔락거렸다.

"황실어림군은 장비가 뛰어나고 훈련도 많이 받긴 하지만 그것 뿐이오. 그들은 평생 제대로 된 '적'이라는 걸 만날 일이 없었소. 말하자면 전투경험이 전무에 가까운 것이지."

"아, 그렇군."

"그러나 북룡대는 최전방의 초원군 잔당은 물론 온갖 전투에서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이며 병사들 하나하나가 굉장한 전투경험을 보유하고 있소. 북룡대는 애초에 황연 대장군이 직접 키운 친위대나 다름없지.

그런 북룡대가 주축이 되어서 우월한 홍이포로 사거리를 제압하며 전장을 휩쓸었고, 이광과 진소청이 별동대를 이끌고 적 지휘관들을 지속적으로 암살하며 대군을 제 집처럼 파고들었소. 지는 게 이상하지 않소?"

"....."

물론 망량의 말이 맞을 것이다. 온갖 요인이 모두 섞여서 승리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총지휘관인 망량이 중앙에서 버티지 못했다면 아무리 북룡대나 이광 진소청이 강하더라도 아군이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그건 백인대를 이끌고 최전방에서 싸웠던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수만 대군을 움직이면서 한치의 실수도 없었던 것이다.

' 천재군...'

천하에 둘도 없는 전략전술의 귀재(鬼才).

그게 바로 망량이었다.

============================ 작품 후기 ============================

묘사 소폭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리플의 논쟁이 불쾌하다는 의견을 보내준 쪽지가 3개나 도착했기에 우선 관련 리플을 삭제했습니다

과한 논쟁을 지양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모든 독자분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 모두가 즐겁게 보면 좋을 거 같아요

앞으로도 더 좋은 작품을 보여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