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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검마는 내 말을 듣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서문혜는 난데없는 급전개에 따라가질 못하는듯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검마 서문대룡이 말했다.
"그리 단칼에 거절할 줄은 몰랐군."
"죄송합니다."
"내 딸에게 그리 하자가 있다는 겐가?"
나는 저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 굳이 검마가 아니더라도 딸을 가진 부모라면 당연히 할법한 말이었다. 나는 여기서 어물쩡거리면 더 오해의 여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제게 사정이 있습니다."
"어떤 사정? 혼약자라도 있는가?"
"그렇진 않습니다만..."
"똑바로 말하게."
나는 뭐라 대답해야할지 망설였다. 전생의 능력이 있어서 함부로 사람에게 정을 줄 수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하지만 즉석에서 지어낸 거짓말으로 검마를 속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밀고 나갔다.
"죄송합니다.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
검마 서문대룡의 표정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감정의 변화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좋네. 허나 자네는 딸의 은인이니 그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무언가 하나 부탁할 게 없는가?"
내가 검마에게 얻어낼 수 있는 것.
지난번 생에서는 검마에게서 한 달 동안 검술지도를 받았다. 그게 큰 계기가 되어서 초절정의 경지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도 검술지도를 받는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내심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비등과 목갑을 써서 천지사해를 번쩍거리며 돌아다녔다. 지금은 내 개인적인 수련시간보다는 최단시간안에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저희 반천맹과 동맹(同盟)을 맺어 주십시오."
검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천맹?"
"들어보신 적 없으실 겁니다."
"그렇군. 들어본 적이 없어. 자네가 속한 단체의 이름인가?"
"그렇습니다."
검마가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갑작스러운 소리군. 물론 자네같은 기인(奇人)이 속해있는 곳이니 평범한 곳은 아닐 것 같네만, 그곳은 도대체 무얼 하는 문파인가?"
"정파도 사파도 아닙니다. 단지 추구하는 목표가 있을 뿐이지요."
"애매한 소리군. 나는 그런 자들 치고 제대로 된 자들을 본 적이 없어."
검마가 예리하게 지적했다. 나는 반천맹이 뭔지 물어보자 뭐라 말해야 할지 답답해졌다. 황궁에 존재하는 복마전과 마물에 대항해서 싸운다고 해도 그걸 믿어줄 것인가? 그 전에 복마전이나 마물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증명한다고 하더라도 검마가 반천맹과 손을 잡을 거라는 확신은?
그래서 나는 일단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망량이 황 장군을 설득할 때의 자세를 생각하면서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말을 골랐다.
"반천맹은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수면에 나올 겁니다. 그 때가 되면 저희의 조력자가 많이 필요해지죠."
"나중이라도 좋으니 동맹을 고려해달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긍정적으로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
검마는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후 자세를 바꾸어서 한쪽 주먹을 턱에 괸 자세로 잠들듯 눈을 감았다. 어색한 침묵이 반 식경 가까이 흘렀고, 그때까지 말없이 생각하던 검마가 말했다.
"한 가지 물어보지."
"네."
"자네가 반천맹의 최고 고수인가?"
나는 망설임없이 대답했다.
"현재는 그렇지만 곧 저보다 훨씬 강한 고수들이 합류할 겁니다."
"호오...?"
검마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 정도의 고수라면 내가 모를 리가 없지. 정말로 무림의 최정점에 속한 자들을 섭외할 수 있다는 건가?"
"네. 분명히 합류할 겁니다."
"재밌군."
검마의 말이 이어졌다.
"좋네, 그러면 자네들의 세력이 궤도에 올랐을 때 다시 찾아오게. 그 때는 동맹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인들은 걱정 말게. 딸아이의 뜻이니 최선을 다해 돌보지."
"거듭 감사드립니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동맹을 확정받지는 못했지만, 검마에게서 이 정도 답변을 들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실체도 힘도 갖추지 못한 반천맹이었기에 이 이상을 바라는 게 욕심이기도 했다. 사파제일문파가 그리 쉽게 타인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는 것이다.
자리가 파하고 내가 떠나려고 할 때였다. 검마 서문대룡이 말했다.
"너무 서두르는군."
"네?"
"그러지 말고 대련이나 한번 해 보는게 어떤가?"
부드럽게 권유하고 있지만 강압에 가까운 제안이었다. 내가 섣불리 거절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검마 서문대룡과의 대련은 내게 도움이 될 게 분명했기에, 나는 속으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한 수 부탁드립니다."
이윽고 나와 검마는 대련장 위에 올랐다. 야밤중이었기에 옆에 따라나온 무영문 고수들이 대련장 주변의 횃불을 밝혔다. 검마가 내 허리춤에 있는 무라마사를 보며 말했다.
"그 도는 뭐지?"
"명도 무라마사입니다."
"무라마사!! 잠시 볼 수 있겠는가."
"원하는대로 보십시오."
내가 무라마사를 건네주자, 그는 마치 홀린 듯 무라마사의 도신을 자세히 관찰했다. 그리고 찬탄성을 내었다.
"과연 요도(妖刀)다. 인간의 생명을 빨아들일 듯 하구나."
무라마사를 다 살펴본 검마가 내게 다시 무라마사를 건네주었다. 나는 무라마사를 다시 칼집에 넣고는 검을 뽑았다. 왜도(倭刀)와 검(劍)은 비슷해 보였으나 행법이 완전히 달랐기에 섣불리 도를 손에 들 수가 없었다.
내 자세를 살피던 검마가 말했다.
"자네의 스승이 누구지?"
"말씀드리기 곤란합니다만..."
"나는 백웅 자네같은 인물을 키워낼만한 기인을 들어본 적이 없어. 정파삼대기인인 태산노옹이나 소림의 명호대사라고 해도 자네같은 자를 키워내는 건 불가능할 걸세. 무공이 하늘에 도달한 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야."
나는 쑥쓰러운 기분이 들었다. 검마가 이렇게 나를 과대평가하는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진심을 담아서 말한 평가인 듯, 검마가 말했다.
"그렇기에 욕심이 생기는군."
"......?"
"내기 하나 해 보는게 어떤가?"
"내기요?"
"이번 비무에서 자네가 나를 상대로 이백 초를 버틸 수 있다면 나는 반천맹과 두 말 없이 동맹을 맺어주겠네. 전폭적인 조력도 약속하지. 하지만 버티지 못한다면, 자네는 내 사위 겸 제자가 되어줘야겠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다.
이기면 반천맹과의 동맹 확정에 조력!
지면 사위 겸 제자...?
나는 생각하던 중 깜짝 놀라서 말했다.
"네? 사위라고 하는 건..."
"내 딸과 결혼해라."
"헉!!"
"무영문의 절학은 혈족 외에는 문외불출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핫."
껄껄 웃는 검마를 보자 나는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 어떻게 보면 이기든 지든 상관없는 꽃놀이패를 뽑은 것일수도 있지만, 서문혜와의 결혼은 그다지 내키는 게 아니었다. 게다가 검마의 사위 겸 제자가 되면 얼마나 무영문에 휘둘릴지도 짐작가지 않았다.
"만일 제가 그 내기를 거절한다면 어쩌시겠습니까?"
"동맹은 없었던 일로 하지."
"......"
나는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했다. 약점이 노출되어서 발목을 잡힌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현 시점에서 반천맹은 아직 발호하지도 않은 상황이었으므로 꼭 약점이라고는 볼 수 없긴 했다. 그렇기에 망량도 굳이 나보고 무영문과 결혼동맹을 맺으라고 강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12번째 생에서 황궁돌격때 느꼈던 황궁의 전력은 상상 이상으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특히 초상기인(超上奇人)이라고 하는 별격의 전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조금이라도 많은 세력이 필요하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선은 시도해봐야 한다. 그리고 현재 검마와 나의 차이도 알 수 있었으며, 초상승의 검도고수와 겨루는 경험은 앞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내가 투지를 끓어올리자 검마가 흐뭇하게 말했다.
"좋아. 우선은 무검(無劍)으로 해 보지."
비무가 시작되었는데도 검마는 검을 뽑지 않았다. 지난번처럼 허허롭게 맨손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가 검 없이도 검기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딱히 검이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저 상태의 검마도 토나오게 강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긴장한 채 생각했다.
' 여동빈이 펼쳐냈던 장삼봉의 심득... 그걸 그대로 몸으로 되살리는 거다...'
얼마 전의 일이었기에 그 몸의 기억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는 내면에서 백웅결을 끌어올려서 잠재력을 향상시켰고, 동시에 장삼봉의 심득을 닥치는대로 무의식에서 퍼 올렸다. 수많은 깨달음이 머릿속을 무분별하게 스쳐지나가는 와중에 나는 하나의 검학(劍學)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 이걸 써 보자.'
심득(心得)
굴공참(屈空斬)
나는 검법의 기수식에서 자연스럽게 횡베기를 했다.
부웅
그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으나, 굴공참이 채 펼쳐지기도 전에 검마는 뭔가 감을 잡은 듯 했다. 그리고 굴공참의 궤적을 피해서 좌장(左掌)을 휘둘렀다.
콰광!!
가벼운 폭음과 함께 진공파가 밀려 나왔다. 나는 굴공참이 힘을 싣기도 전에 발단에서 검마가 검기로 막아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검마는 바로 공격해 오지 않고 신기한 듯 말했다.
"대단하군. 그건 무슨 무공인가?"
나는 힘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냐고 하셔도 직전에 막아버리시면 할 말이 없습니다."
"미안하네. 위험한 건 원천봉쇄하는 게 기본이라서."
"그럼."
우우우우
나는 만승검결의 환(幻)결을 펼치며 서서히 영역을 넓혔다. 절정 이상의 고수끼리 겨룰때는 단순히 치고박는 게 아니라 서로간의 영역을 겨루는 결계(結界)의 싸움이 되기 십상이었다. 자신에게 안전한 영역에서 적을 공격하고, 적을 불안정한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게 기본이었다. 그렇기에 고도의 무공의 겨루기가 될 수록 마치 바둑같은 영역싸움이 되었다.
검마는 내 변화에 마주 대응했다. 그는 여전히 검을 뽑지 않은 상태였으나 양 팔을 벌리더니 기운을 헝클어뜨리며 서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백웅결을 끌어올렸기에 대응속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쏴앗
천천히 접근한 영역이 처음으로 충돌했다. 폭음같은 건 울려퍼지지 않았고, 검영(劍影)이 흩날리며 서로의 공간에 침범했다. 나는 몸을 3회전 시키면서 빠르게 검마의 공격을 만승검결로 쳐 냈고, 검마는 내 검영을 튕기며 재차 두 걸음을 접근했다.
눈을 깜박이기도 전에 검마의 우장(右掌)이 선연한 빛을 발했다. 그리고 마치 원통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는데, 나는 그 공격이 너무 빨라서 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급히 힘을 끌어올려서 튕겨내었다.
꾸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내 오른발이 비무대에 크게 박혔다. 막아내는 건 성공했으나 너무 큰 역도(力導)가 실려있어서 화경으로 흘려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내공격차에 상관없이 이런 위력을 낼 수 있다는 건, 검마가 의념(意念)의 경지에 올랐기 때문이리라.
' 이광에 못지 않은 초고수...!!'
나는 이를 악물고는, 이번에는 장삼봉의 심득 중 다른 것을 써 보기로 했다.
심득(心得)
천축검(天縮劍)
내 검이 휘둘러지자 이번에는 공간이 크게 오그라지더니 주변에 있는 것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여동빈이 펼쳤을 때는 수십 장 크기의 촉수두꺼비를 강제로 물에 빠뜨릴 정도의 압력이었으나, 나는 서툴러서 그런지 강한 흡인력이 나는 정도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리 검마는 쉽사리 천축검을 무마시키지 못하고 끌려오는 모습이었다.
공간이 끌려들어오며 먼지구름이 일어났다.
"으음!"
검마는 눈썹을 꿈틀거리고는 손을 휘둘러서 무형의 검기를 수십 가닥 떨쳐내었다. 마치 수놓듯이 펼쳐진 검기는 허공을 감싸더니 천축검의 중심을 타격했고, 응집되어 있던 압력이 폭발과 함께 흘러나왔다.
꽈광!
동시에 검마는 신출귀몰한 신법으로 파고들어서 지난번처럼 내 명치를 노렸다. 저번에는 어떻게 되는건지도 모르고 당했으나, 백웅결이 향상되고 수준이 높아진 지금은 검마의 공격을 다섯 치 거리에서 간파할 수 있었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검마의 공격을 쳐 내었다.
쐐액
검마는 한 번의 방어에 굴하지 않고 재차 손가락을 뻗어서 무형의 검기를 하나의 칼날처럼 만들어서 재공격 해 왔다. 허공에서 마치 환영이 만들어지는듯한 신법은 환상적이었다. 나는 여기까지의 진행은 예상하지 못했지만 오기를 부려서 공격을 막아내었다.
쾅!!
둔중한 격음과 함께 나와 검마의 몸뚱이가 동시에 일 장씩 밀려났다. 내 검의 검신에서 치익거리며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검마의 손가락은 약간 붉게 변해 있었다. 찰나간의 격돌에서 큰 기의 충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검마는 자신의 손을 털며 중얼거렸다.
"일지검(一指劍)에 이어 나선경(羅線經)도 막아냈다라... 훌륭하군."
"......"
"지금까지가 70초로군. 실력은 충분히 보았으니, 이제는 자네를 인정하고 검(劍)을 쓰도록 하겠네."
이윽고 허공섭물로 대련장에 있던 청강장검 하나가 검마의 손에 빨려들어왔다. 나는 검마를 보고 질문했다.
"검 없이도 검기를 쓰실 수 있는데 어찌 검을 드시는 겁니까?"
검마가 피식 웃었다.
"바보같은 소리를 하고 있군. 내가 무검(無劍)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렇다 해도 검을 드는 게 더 강한 게 당연한 이치일세. 단지 전력의 평균치가 높아졌다는 이야기일 뿐이야."
"그렇군요."
"자네의 검술은 정말로 독특하고 뛰어나군. 일대종사의 위풍이 느껴지니, 최선을 다해서 나를 즐겁게 해 주게."
후와악
"헉..."
나는 그 순간 검마의 전신에서 뿜어져나오는 투기 때문에 뒷걸음질을 칠 뻔 했다. 이건 뭔가 잘못 걸린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기운은 이광, 혹은 십이율에서 사울아비 문주나 조의선인에게서밖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그 때 나는 예외없이 미친듯이 처맞은 기억이 나는 것이다.
검마의 눈이 한 순간 붉게 물들었다. 그가 기운을 올리면서 농밀한 살기(殺氣)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숨겨둔 힘이 있는 것 같은데 제대로 써 보게. 안 그러면 힘조절이 안되서 죽일지도 몰라."
그는 내가 뇌명(雷鳴)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 듯 했다. 뇌명의 실체는 모르겠지만 내게 비장의 한 수가 있다는 사실은 승부사의 감각으로 알아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적지 않게 고민이 되었다.
' 뇌명을 써야하나?'
이광이 말하기를 뇌명은 결전비기라서 엄청난 전력의 상승을 가져오지만, 동시에 비장의 무기이기 때문에 결코 함부로 노출시켜서는 안 되는 기술이었다. 근본적으로는 호흡법임과 동시에 기의 유동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타 문파에 뇌명의 비밀을 간파당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생사대적을 반드시 죽인다는 각오가 아니면 뇌명은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나 또한 상대를 10할 완벽하게 쳐죽여야 하는 상황이며 목격자가 없을 때만 뇌명을 쓰고 있었다.
' 음... 우선은 상황을 살펴보자.'
눈 앞의 검마가 초절정고수이며 중원에서 세 손가락에 드는 검의 명인(名人)이라는 사실이 너무 걸렸다. 그 또한 무술의 천재인 게 틀림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뇌명을 간파당해서, 그가 뇌명의 파해식을 만들어내거나 뇌명과 비슷한 절기를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중에 이광에게 먼지나게 맞는 정도가 아니라 살해당할 가능성이 높았으며, 뇌명을 간파한 검마가 얼마나 강해질지도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해서 여동빈을 불러 보았다.
[ 여동빈이여! 나를 도와주시오.]
그러자 천계에서 여동빈의 대답이 들려 왔다.
[ 연자여. 인간이랑 싸우는데 왜 나를 부르는 것인가?]
[ 에또... 그러니까...]
[ 마물이 아니면 부르지 마라.]
그리고 교신이 끊겼다.
아무래도 여동빈은 대(對) 마물전이 아니면 안 나와줄 듯 했다. 나는 별 수 없어서 입술을 꾹 깨물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자 검마가 약간의 분노를 실어서 말했다.
"상수(上手) 앞에서 감히 수를 아껴? 죽고싶은가?"
"죄송합니다. 이 절기는 결코 유출할 수가 없습니다."
검마가 차가운 분노를 내뿜었다.
"좋다. 원하는 대로 해 주지!"
그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검마의 기운이 거대하게 확대되더니, 그의 검이 허공에 떠올라서 엄청난 힘의 집중을 일으켰다. 저 검에는 상상하기 힘든 거력(巨力)이 웅크리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나는 저 경지가 뭔지 알고 있었기에 경악해서 외쳤다.
"이기어검(以氣御劍)!"
강호무림에서 소문으로만 떠돌던 궁극의 검경(劍境)!
푸콱
순식간에 내 팔이 잘려나갔다. 나는 백웅결을 이끌어내고 뭐고를 떠나서 아예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멍청하게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엄청난 속도 - 아니, 생물체로써는 반응이 거의 불가능한 속도로 날아들었기에 도저히 대응 자체가 불가능했다. 뇌명을 써야 그나마 최소한의 피해로 사지를 보존하는 게 가능할 것이다.
' 진심이었어... 진짜 뇌명을 써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나는 왠지 여동빈의 이기어검술에 당했던 마물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펼치는 나로써는 왜 저 강력한 마물들이 피하지도 막지도 못하고 퍽퍽 터져나가는지 궁금했었는데, 이런 속도와 힘이라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기어검의 진짜 위력은 검을 조종한다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속도와 파괴력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이다.
검마가 창노한 목소리로 외쳤다.
"초절정에 겨우 진입한 수준이면서 감히 수를 아낀다고! 하 좋다... 네 선택대로 해 보아라!"
검마는 말하면서 분노하는 성격인 듯,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열이 올라 있었다. 시종일관 느긋하고 기품있던 성격과는 대조적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내 선택이 그의 역린(逆鱗)을 건드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뜯겨져 나간 팔죽지의 고통을 느끼지도 못하고 멍하니 생각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그리고 생각하던 중 한 가지 결론에 이르렀다.
검마 서문대룡은 타고난 철혈의 승부사!
승부를 신성시하는 자이기에, 어설픈 심산으로 승부를 얕보는 건 결코 용서치 않는 것이다. 그와 싸울 때는 죽든살든간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 때였다.
서문혜가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아버님, 그만두세요!!"
그 순간이었다. 검마 서문대룡이 막 이기어검을 발출하려고 할 때 그가 멈칫거렸다. 머리 끝까지 화가 치솟아오른 서문대룡이 겨우 이성을 찾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그는 잘려져나간 내 팔을 보더니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 아, 이런."
내가 지혈을 하고 있자, 그가 말했다.
"면목이 없네."
그가 팔을 주워주더니 내 팔죽지에 갖다대었다. 그리고는 기(氣)를 흘려보냈는데, 격심한 고통과 함께 머리가 깨질 듯 했다.
"윽..."
잠시 후 내 팔이 약간 덜렁거리긴 하지만 붙어있었다. 그가 자신의 진신내공을 소모해서 기공치료를 해 준 모양이었다.
' 절단면이 깨끗해서 다행이군.'
이 정도면 내가 후속치료를 하면 장애없이 붙일 수가 있었다. 그렇다 해도 팔이 제대로 잘려본 건 큰 충격이었으므로 나는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서문혜가 내게 달려오더니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괜찮아요?!"
"......"
"아버님!! 어찌 이런..."
서문혜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서문대룡이 할 말이 없다는 듯 침묵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미안하네. 머리에 열이 오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성격일세."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제가 고수와의 대결에서 무례했습니다."
"허허... 십 년 내에 가장 큰 실책이군."
이윽고 서문대룡이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부디 머물고 가 주게. 대결은 내가 졌네."
============================ 작품 후기 ============================
내용 수정했습니다. 너무 성급했던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