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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망량은 자신의 땀을 닦으며 말했다.
"그다지 시간이 없을 테니 빠르게 이야기하겠소."
사실 이 기책은 나 혼자서 실행하고 구출까지 끝내버려도 무방했다. 그러나 굳이 촉수두꺼비를 쓰러뜨리고 나서 망량을 찾아온 것은, 망량이 그렇게 하는게 낫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망량 생각에는 한꺼번에 모든 일을 처리하는게 좋지 않은 듯 했다.
"우선 습득했던 보물을 내게 보여 주시오."
나는 망량에게 나인성본전, 목갑, 쌍고일대검을 차례대로 보여 주었다. 망량은 그 보물 하나하나를 확인하다가 녹옥의 쌍검을 집어들고 말했다.
"쌍고일대검이 무엇인지 아시오?"
"그다지 잘 모르겠소."
"이것은 삼국시대 촉한 소열제 유비의 애검(愛劍)으로 불리는 것이오. 아마 진본이겠지."
촉한 소열제 유비.
그는 삼국시대를 제패한 간웅 조조에 맞서서 촉한 제국을 성립시킨 희대의 영웅이었다. 나 또한 삼국지를 읽으며 그가 쌍검을 썼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설마 그게 이것일 줄이야. 여동빈이 요도 무라마사보다 고평가를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제일 중요한 건 그거요. 촉수두꺼비를 상대하는 건 어땠소? 느꼈던 난이도를 말해 보시오."
"그야 여동빈이 다 해치워서 뭐라 할 말이 없었소. 여동빈은 쉽게 해치우더군..."
"그런게 아니라, 만일 당신이 여동빈의 힘을 빌리지 않고 홀로 상대한다면 말이오."
나는 그 질문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꽤 힘들 것 같소."
다른 건 둘째치고 촉수두꺼비는 크기만큼이나 내구도가 굉장한 놈이었다. 이광조차도 튼튼하다고 평가할 정도였고, 여동빈이 강기와 어검술을 뿜어내서 무수히 때려서야 쳐죽일 수가 있었다. 일반적인 초절정무인으로써는 상대하다가 진이 빠져서 죽기 십상이었고 그나마도 촉수두꺼비의 공격력이나 민첩성이 낮은 편도 아니었다. 내가 뇌명과 백웅결을 끌어올려 상대한다고 해도 최소한 반 시진동안 악전고투를 하게 될 것이다.
"좋소. 사실 그걸 듣고 싶어서 와 보라고 한 거요. 다음부터는 안 와도 되오."
망량은 흡족하게 대답하더니 말을 이었다.
"이제 돌아가서 인질을 모두 목갑에 넣은 후 내게 데려 와 주시오."
망량은 내게서 목갑 안에 있던 귀중품을 모두 받아서 보관한 후, 지필묵을 내어 주었다. 용도는 명확했다.
"알겠소."
계획이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나는 다시 비등을 써서 대뢰옥으로 이동했다. 역시 이 곳에는 간수가 따로 없는 탓에, 촉수거대두꺼비가 죽었는데도 알아낸 기색이 없었다. 설혹 알았다고 하더라도 샛길을 통해서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리기에 시간은 넉넉했다. 나는 뇌옥을 둘러보며 죄수들이 갇혀있는 창살을 하나하나 자르기 시작했다.
슈캉!
한철이었지만 내 내공과 검염을 동원하면 너무나 쉽게 잘렸다. 내가 한철을 잘라서 안에서 꺼내주자, 죄수들이 감격해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지옥에서 구원받은 기분이리라.
"오오오...!!"
"소협, 고맙소!!"
"이럴수가... 기적이야."
나는 창살을 자르며 그들에게 말했다.
"대뢰옥 입구에 일단 모여 있으시오. 변이된 자들도 부축해서 옮기시오."
"알았소."
그들의 숫자가 총 12명이며 개 중 변이된 사람이 3 명이었다. 그리고 총 인원 중에서 여인이 4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여인들은 다행히 아직은 강간이나 윤간을 당한 것 같지 않았다.
' 아마 금의위 총령이 내킬 때 여자들을 여기서 범하고 가는 모양이군.'
그리고 이광과 진소청이 뒤졌던 가장 안쪽의 뇌옥에 가자, 그 곳에는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노인이 있었다. 나는 익히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기에 천천히 그를 들여다 보았다. 그러나 노인이 말했다.
"아이야. 구해주러 온 것이냐?"
그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강한 위풍이 담겨 있었고, 노인이 상당히 강단있는 성격임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이성이 견명한 상태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해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황연 대장군."
"과연... 도움에 감사한다."
내가 창날을 자르고 황연 대장군을 부축해서 나오려고 하자, 그가 손을 내저었다.
"괜찮다. 혼자 걸을 수 있다."
"다행이군요."
"갇힌지 얼마 되지 않았다. 걱정할 필요 없다."
황연 대장군도 여기에 오래 갇힌 자가 변이한다는 사실은 알고있는 듯 했다. 황연대장군을 끝으로 더 이상 구출할 사람은 없었기에 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갔다. 모여있던 사람들이 변이자를 보며 놀라워하는 게 보였다.
"오오... 낫고 있어!"
"어떻게 된 거지?"
변이자들이 이족에게 침식된 부분이 눈에 보일 정도로 아물고 있었고 인간의 살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아마 거대촉수두꺼비를 쓰러뜨렸기에 주술의 근원이 붕괴된 것이리라.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자, 잠시 이 쪽을 주목해 주시오."
황연 대장군을 포함해서 장내의 이성있는 사람 10명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들을 차분하게 둘러보고 말했다.
"이제 당신들을 데리고 이 대뢰옥을 탈출한 것인데, 그 전에 당신들의 신분성명과 여기에 갇힌 날짜, 그리고 갇힌 이유를 알아보고자 하오."
"무슨 말이지? 그걸 꼭 알아야 하는가?"
고관대작 문관으로 보이는 한 장년인이 따져물었지만 나는 피식 웃었다.
"이 지옥에서 꺼내주는 건데 그 정도는 대답해줘도 되지 않소? 말해두지만 나는 딱히 데려가지 않아도 상관없소."
"... 아, 알았네."
그가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망량에게서 받아온 지필묵을 가지고 그들 하나하나의 신분성명과 갇힌 날짜, 이유를 따로 떨어진 방에서 기록했다. 황연 대장군을 포함해서 하나하나의 조사가 끝나자 나는 자료가 적힌 종이를 내 품속에 집어넣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이동하겠소. 하지만 당분간은 금의위때문에 본가로 못 돌아갈테니 그 점을 유념해 주시오."
"알고 있소."
"따로 은신처를 마련해 주겠소."
그들 모두가 금의위의 표적이 된 상태였기에 내 말에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나는 목갑을 그들에게 들이대었다.
"손을 넣어보시오."
"어... 어어?!"
사람들이 화들짝 놀랐다. 목갑 안으로 팔이 쑥 빨려들어갔기 때문인데, 이내 사람의 몸이 목갑 안으로 들어가자 어떤 사람들은 엉덩방아를 찧을 정도로 놀랐다. 목갑 안이 굉장한 수납공간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다들 너나할 것 없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목갑에 모아놓았던 내 보물을 걱정할테지만 망량에게 미리 맡겨두었기에 지금은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황연 대장군이 마지막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자네는 대체 누구인가?"
아이취급하던 말투에서 명백히 평대로 변해 있었다. 내가 황 장군과 눈을 마주치자 그가 말했다.
"나 또한 무공을 익혀서 자네 실력을 알 수 있네. 자네의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가진 자는 중원이 넓다지만 서너 명도 되지 않을 게야. 거기에 뛰어난 법보까지 지니고 있다니... 자네는 도대체 누가 보낸 것인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단지 의(義)를 위해 움직이는 자들이 있다고 알아 주십시오."
"의! 정의라... 허허..."
황 장군이 씁쓸하게 웃었다. 갑자기 금의위에게 납치감금된 그로써는 그 단어에 헛웃음이 나올 만 하리라. 나는 황 장군에게 말했다.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재 혈족분들께서도 연금상태인 걸 알고 계십니까?"
"아마 그렇겠지. 금의위가 작정한 듯 했으니."
"황 장군께서는 모든 것을 걸고 금의위와 승부를 볼 각오가 되어 있으십니까?"
이 질문은 망량이 내게 추천해 준 것이다. 망량은 내게 이 대답을 듣고 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 질문의 대답에 따라서 차후 행동이 바뀌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황 장군이 물어볼 것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 내 목숨을 거는 한이 있어도 금의위 놈들을 처단할 것이다."
원했던 대답이었다. 나는 훗하고 웃었다.
"좋습니다."
파앗
나는 황 장군까지 목갑에 넣은 후 다시 비등을 이용해서 망량에게로 갔다. 망량은 바쁘게 준비를 하고 있던 모양인지 자신의 집 마당에 온갖 도구를 꺼내놓은 상태였다.
"왔군!"
나는 사람들의 신상명세를 적은 종이와 지필묵을 망량에게 건네주었다.
"황 장군은 긍정적인 대답을 했소."
"그렇군. 그러면 내가 그들을 보호해 주도록 하겠소."
"진랑곡에서 맡을 생각이오?"
"보기보다 나는 여기서 세력을 많이 꾸렸소."
망량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망량은 사실 진랑곡에서 탱자탱자 놀기만 한 게 아니라 진랑곡 자체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만들었고, 많은 연락책과 부하를 두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것도 없이 무(無)에서 반천맹을 만든 게 아니었다. 나는 잠시 후 목갑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을 꺼냈다.
"오오...?!"
"여긴?!"
사람들은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갑자기 왠 산중의 오두막에 와 있으니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망량이 말했다.
"여러분 놀라지 마십시오. 앞으로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는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저는 망량이라고 하며, 여러분을 물심양면으로 도우려 합니다."
나는 망량과 함께 그들을 진정시킨 후 미리 준비된 비밀거처로 데려갔다. 망량은 이 산의 뒷편에 또 다른 은거지를 만들어 둔 것이다. 사람들에게 지금 세상으로 나가면 안되는 이유를 설득한 후 그들이 묵을 방을 하나하나 정해 주었다.
"변이자들은 앞으로 차차 치유될 것이오. 그때까지 그들을 도와주시길 바라오."
"맡겨두시오."
그리고 황 장군을 불러서 나와 망량, 셋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망량이 이야기를 꺼냈다.
"황 장군. 저희는 반천맹이라고 하는 단체이며 황실의 불의를 고쳐서 황제폐하의 올바른 선정(善政)을 위하려는 단체입니다. 저희는 황 장군의 납치 소식을 듣고 바삐 움직여서 구출하게 되었습니다."
망량은 결코 황실에 대적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절대 반역이나 역모의 기치를 꾸며서는 안 되었고, 황제를 돕는다는 명분만이 가능했다.
그러자 황 장군이 감탄한 듯 말했다.
"과연 빠르군. 내가 갇힌지는 겨우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
시간적으로 볼 때 굉장히 넉넉한 듯 했다. 아마 사나흘 정도는 넉넉잡아도 괜찮을 것이다. 망량이 말했다.
"허나 저희 반천맹이 알아본 바로는 황 장군의 납치시도는 금의위의 폭주(暴走)가 아닌걸로 알고 있습니다."
황 장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무슨 소린가?"
"황제께서 이 일에 직접 관여하심을 확인했습니다."
"... 믿을 수 없다."
그는 별반 표정의 변화를 얼굴에 띄우지 않았으나 이쪽 말에 동의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평생 국가에 충성을 바치며 살아온 청렴결백한 명장이자 대장군이었다. 차라리 자기가 죽는 한이 있어도 충성을 부르짖으며 죽어갈 자였기에 이런 말에 쉽사리 동의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망량은 몰아붙이듯이 말했다.
"정말로 대뢰옥의 지옥같은 풍경을 보고도 그리 생각하십니까? 단순히 역모죄가 의심된다고 해서 인간을 그런 괴물으로 변이시키는 게 허용된다 생각하십니까? 지금의 금의위가 황제폐하를 거스르고 저런 가공할 짓을 독단적으로 저지르는 게 가능하다 생각하십니까?"
"......"
"금의위 총령이 아무리 부하에게 신망이 높고 통제력이 높다 해도 결국은 무관(武官)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동창이나 다른 고관대작에게 소식이 흘러나가게 되어 있죠. 그 사실은 황 장군께서 저보다 훨씬 잘 아실 겁니다. 그런데도 대뢰옥이 저렇게 유지된다는 것은..."
"그만하게. 알아 들었네."
황 장군은 마치 앓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그는 한참동안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다가 한숨을 쉬었다.
"... 하아,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네. 허나 믿을 수가 없어..."
"알고 계신다면 바꾸어야 합니다. 현재의 황제폐하는 어린 시절부터 영재(英才)로 이름높으셨던 총명하신 분. 분명히 주변에 꼬인 간신배들이 폐하를 사특한 길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으음..."
망량이 한층 강하게 말했다.
"일족의 안위는 물론 천하의 안녕이 걸려 있습니다. 여기서 대항하기를 포기한다면, 머지 않아 황 장군의 구족이 멸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의로운 자들이 금의위의 손에 무수히 죽어나가겠지요."
"그것은 아니되네."
"그렇습니다. 아니될 일입니다."
그러더니 망량은 황 장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강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건 구국지사인 황 장군 뿐이십니다. 제발 저희를 도와서 정의를 위해 싸워 주십시오."
황 장군은 침묵하다가 말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게..."
그리고 황 장군은 은거지로 되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망량에게 말했다.
"그가 도와 주겠소?"
"저 분은 대쪽같은 분이며 두뇌도 뛰어난 분이라서 이런 설득 한두마디에 섣불리 흔들리지 않소."
"그럼 설득하는 의미가..."
망량이 훗하고 웃었다.
"하지만 설득을 시도한다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오. 어차피 저 분도 자신의 가치관과 이득에 따라서 결정을 내리겠지만, 자신을 도와주는 세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가 나니까. 하물며 황제 그 자체가 금의위를 움직인다고 하면, 군부를 섣불리 움직이거나 제장들을 믿을 수도 없지."
"아..."
나는 12번째 삶에서 내가 알아냈던 사실이 괜한 삽질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황제가 직접 금의위를 조종한다, 라는 사실에는 이렇게 큰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황 장군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외부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제 3자의 세력이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이렇게 서로 이용하는 관계가 형성되는 거요."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면 신뢰같은 게 존재할 수가 없군."
"원래 그런 거요. 서로가 속고 속이고 이용하던 중에, 믿을 만한 자를 선택하고 고르는 것이지. 이게 조직의 상리요."
나는 망량이 일부러 황 장군의 대면까지 나를 동행시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황 장군 또한 무인이라서 무공을 익혔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망량을 제압하려고 시도하는 경우를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망량이 그의 마음에 씨앗을 심을 때까지 내가 경호하는 역할을 해 주어야 했다.
나는 망량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당신 혼자 저 자들을 통제할 수 있겠소?"
"걱정 마시오. 되려 저들이 내게 쫓아내지 말라고 부탁하게 될 거요. 당신은 걱정 말고 남은 일을 처리하시오."
"알았소."
나는 망량을 믿고 바로 비등을 써서 이동했다.
파앗!
이번에 이동한 장소는 해적섬의 은밀한 비밀장소였다. 암초 사이에 만들어진 비밀공간으로써, 나는 여기에 있으면 혈도단 단장의 처소에 빠르고 은밀하게 숨어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밀장소를 통해서 은형술로 혈도단 단장들이 거주하는 숙소로 가자, 창가로 안쪽의 난행(亂行)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