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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검신-122화 (122/1,615)

0122 ----------------------------------------------

암천향(暗天鄕)

나는 그로부터 한 시진동안 가만히 앉아서 생각에 빠졌다. 지금도 장내의 대치상황은 그대로이지만, 나에게는 그저 생각할 시간이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게 가장 옳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 이건 쉽게 반복되는 상황이 아냐.'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가 있었다. 아무리 전생을 반복한다고 해도 이광이 뇌신류 제자들에게 반천맹주 망량을 노리게끔 하는 일은 쉽게 벌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여러가지 요소가 겹쳐져서 나타난 일이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 순응해서 지켜보는 건 그리 득이 되지 않는다. 관찰효과보다는 앞으로 독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은 최대한 모두에게 도움이 될 방안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건 전생자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나직이 극호를 불렀다.

"극호 사형."

"왜?"

"지금쯤 스승님과 진소청 사형은 마물 근처까지 갔겠지요."

"뭐... 그렇겠지. 대군이 막아선다 해도 그들을 막을 수는 없으..."

타앗

나는 별안간 발검(拔劍)해서 극호에게 달려들었다. 뇌신류 포위의 가장 큰 축은 뛰어난 절정고수인 극호였으므로, 그를 제압해야 했다. 극호는 난데없는 기습이었는데도 내 공격에 민첩하게 반응해서 창두를 돌리며 만승검결 쾌(快)결을 막아내었다.

까강!

윤광과 지평은 약간 늦게 반응했다. 그들이 당황해서 창날을 돌리려 할때 극호가 버럭 외쳤다.

"반천맹주를 죽여!"

극호는 내가 덤볐으니 이미 정상적으로 싸워서는 임무도 못해낸다는 걸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유사시에 망량을 죽이라는 명에 따라서 지시를 내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에 파고들어서 강렬한 내공을 머금은 뇌운유권으로 순식간에 윤광과 지평의 혈도를 제압했다.

털썩

윤광과 지평이 전신에서 힘을 잃고는 쓰러졌다. 극호의 표정이 일그러졌고, 나는 극호가 창날을 늘어뜨리자 말했다.

"애초에 이건 말이 안되는 짓이란 걸 알고 있을 거요, 극호 사형."

내 내공은 인간이 정상적으로 쌓을 수가 없는 비상식적인 수준이었다. 그래서 이광이 아무리 뛰어난 대법을 펼친다고 해도 나를 금제하는 건 불가능했다. 힘을 돋우어서 금제를 풀어둔 채 가만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뿐이다.

극호 주변에 반천맹의 고수들이 슬그머니 몰려들었다. 극호는 그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꼬맹이. 니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알고 있느냐? 이건 사문인 뇌신류에 대한 배신이다."

"배신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사부를 도울 테니까요."

"무슨 개소리냐?"

나는 극호에게 말했다.

"사형. 나를 믿어 주시오. 이 자리에서 우리끼리 싸우는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니까."

"믿을 게 없어서 배신자를 믿으라고?"

"나는 지금부터 스승님을 도우러 갈 것이오."

"......?!"

극호는 물론 사람들의 표정이 기묘해졌다. 내가 품 속에서 황금비등을 꺼내더니 난데없이 옆에서 멀뚱멀뚱 쳐다보던 미호에게 다가갔기 때문이다. 나는 힐끔 망량을 보며 말했다.

"뇌신류 사람들을 해치지 말아주시오."

"물론이오. 잘 갔다 오시오."

망량은 이미 내 의도를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미호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며 장내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내가 황금비등을 들고 미호에게 말을 걸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같이 가자, 미호."

"무슨..."

나는 황금비등의 옆구리를 문지른 후 미호의 손을 잡았다. 황금비등은 굳이 불을 안 붙여도 등허리를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발동하는 마도구였다.

후와아악

그러자 내 머릿속에 황금비등이 보여주는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그 과정을 무미건조하게 쳐다보며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암천향의 영상이 지나가자 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가겠는가?]

다른 곳에 가고 싶다.

[ 가본 곳밖에 갈 수 없다.]

여기로 갈 거다.

[ 좋다...]

파아아앗!!

그리고 다음 순간, 나와 미호가 서 있는 장소의 풍경이 뒤바뀌었다. 나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진짜로 이루어진 걸 보니 약간 흥분했다. 내 손을 잡고 함께 이동한 미호는 멍청한 표정으로 한동안 서 있더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음기와 사기가 흘러나오는 음산한 비밀장소. 한철으로 된 창살이 여기저기에 잘려 있고 죄수들을 꺼낸 흔적이 있다. 미호 또한 식신을 통해 이 곳의 풍경을 보았기에 금새 알아챈 듯 했다.

나는 씩 웃었다. 모험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뢰옥이야."

그랬다.

나는 황금비등으로 갈 수 있는게 오직 그 세 장소 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망량선사가 비등을 활용하라는 이야기를 했기에, 어쩌면 황금비등으로 다른 장소도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약간은 모험이었으나 어차피 가만히 있다가 다 꼬이는 것보다는 나았기에 한 시진동안 생각을 한 결과 실천하게 된 것이다.

미호는 기가 막힌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 황금비등은 가본 곳이라면 어디든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냐?"

"그래. 직접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미친... 그래서 여길 본녀와 와서 대체 뭘 하겠다는 거냐?"

"너는 망량만큼 머리가 좋으니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 알 텐데."

"......"

미호가 나를 노려보다가 요력을 실어서 카랑카랑하게 외쳤다.

"너는 대체 왜 위험한 일을 사서 하는 것이냐? 이 마물에게 도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서 그러느냐? 아무런 댓가도 없는 일인데 대체 왜?"

"그래야 [다음]으로 나갈 수 있으니까."

"하아..."

"여기까지 왔으니 도와줘, 미호. 부탁이야."

미호는 팔짱을 낀 채 한동안 고개를 돌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섣불리 말을 걸면 역효과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가만히 서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반 각 동안의 침묵이 끝나자 미호가 나직이 말했다.

"그러면 나와 약속을 하나 해라, 백웅."

"어떤 약속?"

이어진 말에 나는 잠시 숨을 멈췄다.

"진소청이든 이광이든 방해가 되면 망설임없이 죽여버려라."

"......!!"

"이건 절대조건이다."

나는 별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미호가 어떤 심정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수호대상인 나를 위험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온갖 애를 쓰는 상황이었다.

이야기가 되자 미호가 말했다.

"진소청과 이광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구나."

"기(氣)가 멀리에서 다가오고 있다."

내 기감에 따르자면 진소청과 이광의 기가 약 백여 장 밖에 있었다. 아마도 샛길을 조심스럽게 타기 위해서 속도를 내지 않는 모양이었다.

"귀찮아질지도 모르니 먼저 마물을 탐색하자꾸나. 어차피 시간을 아껴야 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

"알았어."

나는 미호의 제안에 따라 저번에는 깊이 파고들지 않았던 대뢰옥의 심층까지 가기로 했다. 어차피 이광을 여기서 맞닥뜨려봐야 말싸움이나 싸움밖에 나지 않을 것이기에, 기왕이면 괴물이라도 확실히 목격해 두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후우우우우 -

심층까지 가자 거대하게 파인 대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 하나의 내부를 통째로 깎은 것 답게 직경이 백여 장도 넘어보이는 거대한 암혈(暗穴)이 무저갱처럼 존재했다. 여기저기에 구름사다리나 계단이 마련되어 있어서 밑으로 내려갈 수는 있었지만, 갈수록 소리조차도 잦아드는 암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호가 무저갱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함부로 내려갈 수가 없겠구나. 그 마물은 저기에 있다."

미호는 대요괴라서 마력에 훨씬 민감했다. 미호는 대충이나마 마물이 웅크리고 있는 위치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는 힐끔 미호를 보더니 말했다.

"무섭진 않아?"

"흥, 네 전생(前生)에서 만났다는 이자나기노미코토는 격외의 존재다. [옛 지배자]에 가까운 힘을 가진 상고시대의 마물이겠지. 밑에 있는 놈도 강하긴 하지만 월요의 수호자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다."

"그렇군."

"다시 말해두지만 네 목숨을 소중하게 여겨라."

"알았어, 고마워."

나는 슬슬 저쪽에서 이광과 진소청이 다가오는 걸 알아챘다. 그들도 약간은 긴장했는지 천천히 걸어오는 중이었다. 나는 되려 그들 쪽으로 다가가서 포권했다.

"제자 백웅이 스승님을 뵙니다."

"......"

이광은 믿을 수 없는걸 본 눈빛이었고, 옆에 있던 진소청도 적지 않게 놀란 듯 했다. 이광은 금제해두었던 내가 여기까지 온 게 더욱 놀라운 모양인지, 배신이라던지 분노감을 잊어버리고는 내게 질문했다.

"네가 무슨 수로 여기까지 왔느냐? 우리보다 먼저?"

"이 물건 덕분입니다. 황금비등을 이용하면 가본 적이 있는 곳에 순간이동할 수 있지요."

".......!!"

"물론 저도 제대로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섣불리 추천드릴 수 없었습니다."

내가 변명 아닌 변명을 하자 이광이 고개를 저었다. 그의 얼굴에는 난색이 잔뜩 떠올라 있었다.

"도대체... 넌 무슨 생각이냐? 그럴 거면 처음부터 우리와 온다고 하면 되지 않았느냐? 지금 바깥에 5만 어림군에 동창의 정예들이 깔려 있어서 일대 결전을 치르고 여기까지 왔거늘."

"죄송합니다. 제게도 사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분을 돕고 싶다는 마음은 사실입니다."

"으음..."

이광은 갈피를 잡을 수 없어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그를 배신하고자 했다면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게 나았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이광 앞에 순간이동까지 써서 모습을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이광이 힐끔 미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는 왜 데리고 온 것이냐?"

"미호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술법사입니다. 미호가 있으면 한결 수월하게 잡을 수 있을 겁니다."

이광이 잠시 생각하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좋다. 거기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할 수 없지. 네가 내 금제를 푼 것은 불문에 붙일 것이고 앞으로도 묻지 않을 것이다. 정 여기까지 왔다면 최선을 다해라."

"알겠습니다."

"혹시 돌아갈 때도 비등을 쓸 수 있겠나?"

나는 이광의 질문에 힐끔 미호를 바라보았다. 미호가 영언으로 내 머릿속에 말했다.

[ 저 둘의 정신력이라면 괜찮을 것이다.]

"네, 괜찮을 겁니다."

"다행이군. 나갈 때 목숨을 걸어야 할거 같았는데."

이광이 저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지금 바깥은 엄청난 대군과 정예들이 우글대고 있을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곧 무저갱이 보이는 계단까지 도달했고 소리가 잦아드는 어둠 속을 관찰했다. 이광은 무저갱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굉장한 사기(邪氣)로구나."

"우선 내려가야할 것 같습니다."

"껄끄럽군. 하지만 비등이 있으니 한결 낫겠구나."

이광을 선두로 해서 줄을 서서 천천히 무저갱의 계단을 내려갔다. 빛이 잦아들자 이광과 진소청은 횃불을 켰다. 하지만 횃불로도 어둠 속에 반딧불이 된 것처럼 갈수록 빛이 희미해지자, 모두가 심상치 않은 것을 느꼈다. 이정도의 어둠은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화륵

결국 미호도 여우불을 소환해서 주변을 환히 밝혔다. 여우불은 광채가 뛰어났기에 한결 나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 어둠속을 걸어내려가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다 소모되어서 공포에 질릴 게 분명했다.

한참 후 우리는 무저갱의 가장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바닥의 땅에 발을 딛자, 이 앞에는 마치 피로 이루어진 듯한 불길하고 시꺼먼 물결이 개울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차마 겁이 나서 이 물이 어떤 물인지 만져볼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미호가 여우불을 띄워서 물가 저편으로 서서히 보냈다. 그러자 일렁이는 여우불 사이로 거대한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오오오

그것은 몸의 크기가 오십 장은 될 법한 마물(魔物)이었다. 미끌거리는 두꺼비를 닮은 회백색의 생물이었는데, 머리가 달려있어야 할 부분에는 분홍색 촉수가 꿈틀거리는 거대한 입이 달려 있었다.

번들거리는 몸뚱이에서는 매캐한 냄새를 흘리는 체액이 분비되고 있었으며 어둠 속에서 무언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하니, 그것은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입의 분홍촉수를 이용해서 뭔가를 뜯어먹고 있는 과정이었다.

츄곽

츄르륵...

"윽..."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했더니, 바로 대뢰옥에서 흉신의 축복을 받아서 기묘한 종족으로 변이한 변이자의 시체였다. 미호가 내 머릿속에 영언을 보냈다.

[ 저 마물이 중앙에 터를 잡고 주법(呪法)의 근원이 되어 있다. 아마 주술을 시전하는 대신에 정기적으로 인간이나 변이자의 시체를 제물로 공양했을 것이다.]

[ 저 촉수두꺼비가 물로 둘러싸여 있는데 어떻게 공격하지?]

[ 글쎄. 우선 이광에게 맡겨라.]

아니나 다를까, 이광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탐색전을 할만한 놈이 아닌 것 같구나. 바로 최대절기로 해치우자."

"네."

휘익!!

곧장 이광과 진소청은 뇌령(雷靈)을 일으키며 뇌광을 튀겼다. 그리고는 수상비의 경공을 펼쳐서 거침없이 두꺼비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그제서야 우리들의 기척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돌려서 손을 크게 휘둘렀다.

화악

"읏...!!"

나는 적어도 오십 장은 되는 저편에서 촉수두꺼비가 팔을 휘두른 풍압이 여기까지 날아오는 걸 느끼고는 기가 막혔다. 저 놈의 힘은 말도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아마 지근거리에서 공격하면 절정고수의 절초 못지 않은 속도와 힘을 과시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광과 진소청은 쉽사리 뇌영보로 촉수두꺼비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거대한 사자후가 울려퍼졌다.

[ 비기 뇌공섬!! ]

[ 비기 뇌공섬!! ]

쿠콰콰콰쾅

번쩍하고 거대한 섬광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무저갱 여기저기에 폭발이 일어났다. 가공할 기력의 창이 떨어지면서 촉수두꺼비에게 타격을 준 것이다. 촉수두꺼비는 비명을 지르며 갑자기 입에서 체액을 무수히 뿜어 내었다.

[ 삐에에엑!! ]

체액은 마치 거대한 폭우처럼 몰아쳤다. 나는 저런 게 전방에서 몰아칠 경우 수백 명의 병사가 한번에 몰살할 거라는 사실을 깨닫고 소름이 돋았다. 그러자 이광과 진소청은 바로 몸을 빼서 다시금 이쪽으로 되돌아왔다.

착지한 이광이 중얼거렸다.

"엄청나게 튼튼한 놈이군. 그리고 위험해."

"중상일까요?"

"모르겠다. 저런 마물은 생전 처음 보는구나."

화르르륵...

이광의 말대로 무저갱의 어둠은 이제 꽤 밝혀져 있었다. 놈을 둘러싸고 있던 피빛 강가에 뇌전으로 인해 불꽃이 옮겨붙었고 화염이 강 위에서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기름기가 많이 섞여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 촉수두꺼비는 크게 상처를 입은 듯 앞쪽 다리가 날아가고 등허리가 터진 듯 했다. 촉수두꺼비는 이쪽을 인지하고 노려보는 듯 하다가 갑자기 거대한 소리를 토해냈다.

[ ?????? - ]

그 순간이었다.

"크윽..."

"헉."

그 때까지 여유롭게 재차 적을 공격할 준비를 하던 이광과 진소청이 비틀거리더니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내가 놀라서 다가가자, 그들은 격렬한 정신적인 환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단지 극도의 자제력으로 그걸 참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이미 이성도 거의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

미호가 말했다.

"역시 정신계 주술을 쓰는구나. 보통 인간이라면 즉사할 테지만 참아내는군."

"정신계 주술이라고?"

"네게 보호를 걸어줄 생각이었는데 넌 아예 영향도 안 받는구나. 어찌된 일이냐?"

미호가 희한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놈이 그냥 사자후를 터뜨렸다는 감각만 있을 뿐 정신계 환각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미호의 매혹술에 자주 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뭔가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불길의 강 저편을 바라보았다.

"안 덤비네."

촉수두꺼비는 저 덩치로 그냥 이쪽까지 달려오더니 도약해서 공격할 수 있을 텐데 그냥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미호가 대답했다.

"자신의 염(念)을 강화시켜서 이광과 진소청을 더 강하게 주살(呪殺) 하는 중이다. 이대로 가면 둘은 죽을 것이다."

"뭣!"

나는 경호성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검에서 검염을 일으켰지만, 막상 놈을 공격하려 하니 별로 방법이 없어서 망설여졌다. 귀중한 창을 던져도 놈이 피할 가능성이 있었고 다가가서 공격하려니 불길의 강을 건너야 했다. 그러나 나는 수상비의 신법을 시전할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미호가 말했다.

"이광과 진소청이 거의 다 죽여놓았으니 네가 마무리를 하면 될 것이다."

"어떻게...?"

"힘을 최대한 모아보거라."

쿠구구구궁

나는 미호의 말대로 내공을 검에 전력으로 집중시켰다. 그러자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강력하게 검에 거대한 기운이 맺혔다. 뇌전의 칼날이 삼 장 크기로 늘어나자, 미호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바로 전이술로 가겠다. 한 방에 처치해라."

"알았어."

쉬익!

그리고 미호와 내 몸은 불길의 강을 건너서 촉수두꺼비의 바로 옆으로 순간이동했다. 짧은 거리라면 미호는 타인과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촉수두꺼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전력을 다해서 검을 내리쳤다.

쿠콰콰콰쾅

[ 끼르... 끼르르르륵!!]

폭음과 함께 촉수두꺼비는 거대한 비명을 질렀다. 한 방에 몸뚱이가 3등분 나고 촉수들이 터져나갔기 때문이다. 이건 틀림없이 치명상이었고 촉수두꺼비는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전력을 다한 내 공격은 비기 뇌공섬에 못지 않았고, 되려 상회하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미호가 자신의 아홉 꼬리를 소환해서 강렬한 여우불꽃으로 주변에 튀는 체액을 태워 버리자, 부상을 입을 염려도 사라졌다. 미호는 쓰러진 촉수두꺼비를 질린듯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아직도 살아있다니..."

그랬다. 촉수두꺼비는 몸뚱이가 산산조각나고도 아직도 두부(頭部)가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문득 놈의 머리 부분이 내게 말을 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 왜... 인간의... 편....]

약간이지만 어떤 뜻인지 들린 것 같다.

그리고는 촉수두꺼비는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고 미호도 한건 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더니 미호가 나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멍청아! 이제 알겠느냐? 이광과 진소청이 없었더라면 이 놈에게 이런 피해를 입히려면 죽을 다리를 몇 번이나 건너야 했을 것이다. 이런 최상급 마물을 잡겠다고 하는 건 죽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미안... 그래도 이겼잖아."

"흥!!"

촉수두꺼비가 죽자 주살이 풀리는지 이광과 진소청이 강 너머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게 보였다. 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미호가 말했다.

"걱정 마라. 강력한 주술이었으니 제대로 움직이려면 한 식경은 걸릴 것이다."

"그런 걸 걱정하는 게 아닌데."

나는 촉수두꺼비가 앉아있던 곳의 뒤편 강가에 쭉 길이 나 있는 걸 발견했고, 미호와 함께 전이술로 그 길을 따라서 뒤쪽으로 가 보았다.

그러자 그 곳에는 은밀한 동굴이 파여 있엇고 그 안을 더욱 들어갔을 때였다.

그 안에는 왠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책은 인피(人皮)로 장정되어 있었고 기묘하고 강력한 사기(邪氣)가 느껴졌다. 책의 표지에는 <나인성본전(螺湮城本傳)>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나인성본전?"

"굉장히 오래된 책인 것 같구나."

"설마 저 촉수두꺼비는 이 책을 지키고 있었던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혹시 읽을 수 있겠느냐?"

나는 책을 들춰보았다. 역시 괴어(怪語)로 되어 있었으며 읽을 수가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게 이상한 점이었다.

나는 칠요의 유적에 있는 괴어는 알게모르게 해석이 가능했지만, 천암비서나 이 나인성본전에 수록된 것 같은 괴어는 읽는 게 불가능했다. 왜 그럴까 생각했지만 역시 괴어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종족의 언어가 존재한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나는 나인성본전의 옆에 왠 손바닥만한 조그마한 상자와 한 자루의 쌍검(雙劍)이 존재하는 걸 발견했다. 조그마한 상자는 뭔지 잘 모르겠으나 한 자루의 쌍검은 녹옥(綠玉)의 빛이 휘황하게 흘러나오고 있었고 영험한 기운이 가득했다. 내가 그 쌍검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자 미호가 말했다.

"우선 다 갖고 나가자꾸나."

"이걸 어떻게 안 들키고 가지고 나가?"

"흐음..."

미호도 난감한 듯 했다. 보물을 발견했는데 뒤에 따라올 이광과 나눈다는 게 꺼림칙한 일인 것이다. 내가 별 생각없이 조그마한 상자의 뚜껑을 열었을 때였다.

쑤욱...!!

"허억!"

나는 깜짝 놀랐다. 상자 안으로 내 팔이 통째로 아무 저항 없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손바닥만한 목갑에 내 팔이 먹힌 듯한 장면이었다. 나는 놀라서 급히 팔을 빼냈는데, 별다른 저항 없이 빠져나왔다.

그 광경을 보던 미호가 말했다.

"혹시... 그건...?"

그러더니 미호가 쑥 하고 목갑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미호의 얼굴이 상자에 먹히듯이 들어갔다. 미호는 다시 얼굴을 빼 내고는 내게 말했다.

"이것은 시공간 주술이 걸려있는 목갑이구나."

"설마..."

"그렇다. 이 안의 공간은 적어도 백여 장은 되는 것 같으니, 네가 원하는만큼 물건을 넣어도 될 것이다."

나도 목갑에 머리를 집어넣어보자,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다. 안에는 텅 빈 흰색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고 그 모양은 사각 상자였다. 나는 쌍검과 나인성본전을 목갑 안에 넣어버렸는데 굉장히 편리한 기분이 들었다.

' 이거 괜찮은데.'

지금까지의 전생에서는 보물을 얻을 기회가 많았지만, 그걸 들고다니는 방법에 대해서 고심해야 할 때가 많았다. 일부러 깊은 곳에 숨겨두고 귀찮게 꺼내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이 목갑이 있다면 얻은 물건을 전부 안에 넣어둘 수 있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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