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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천향(暗天鄕)
이광은 먼저 다음 날부터 문하제자들을 정리했다.
"청룡무관을 해산한다."
그는 자신이 모아둔 재산으로 문하제자들의 귀로에 쓸 여비를 챙겨주었고, 이선 이상의 고참수련생들에게는 타 문파에 갈 수 있는 추천장을 써 주었다. 삼선수련생들은 대개 무학의 초보거나 진지하게 파고들지 않은 자들이었기에 그냥 해산되었다.
사범인 윤광과 지평은 이광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들 또한 경지가 낮은 편이지만 뇌신류(雷神流)를 습득한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타 문파에 내줄 수 없는 인재였던 것이다. 앞으로 십여 년만 더 수련하면 강호에 이름을 날릴만한 실력이 될 게 분명했다.
대신에 이광이 말했다.
"너희는 언제나 이 약을 가지고 있어라."
"이것은?"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자결할 수 있는 약이다."
윤광과 지평은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묵묵히 약을 받아들였다. 이광의 말 속에는 만일 포로로 잡힐 경우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고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죽음을 담보하는 길인데도 묵묵히 따라오는 걸 보면 그들의 뇌신류에 대한 충성심은 진짜인 것 같았다.
그렇게 뇌신류의 일행(一行)이 완성되자 이광이 말했다.
"첫 행선지는 춘경관(春景關)이다."
"춘경관? 그 곳은 기루(妓樓)가 아닙니까?"
나는 황당해서 되물었다. 그러자 이광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관중 일대에서 가장 큰 기루지."
"......?"
관중에서 가장 큰 기루이자 온갖 미녀들이 대기하는 장소가 바로 춘경관이었다. 관중 밤거리의 가장 중심가라고 할 수도 있었다. 물론 무인 이광의 고고한 격을 생각할 때 춘경관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그러나 다른 질문을 받지 않은 채 이광은 일행을 이끌고 춘경관으로 향했다.
춘경관에 도착한 이광이 입구에 서 있던 기녀에게 말했다.
"극호(戟虎)는 어딨나?"
"아! 극호 오라버니의..."
기녀는 이광과 안면이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우물쭈물하다가 말했다.
"극호 오라버니는 자기 방 안에 있어요."
"잘 됐군."
이광은 더 기다리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들어갔다. 기녀가 놀라서 이광을 가로막으려 했으나 될 일이 아니었다. 마치 무서운 창날처럼 기루 내를 후비고 들어가서 3층까지 올라간 이광이 왠 방 앞에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극호. 당장 튀어 나와라."
덜컹
그 말에 왠 한량이 즉시 문을 열었다. 그는 말 그대로 기생 오라비처럼 반반한 외모를 지닌 사내였는데 나이는 진소청보다 약간 위로 보였다. 삼심대 초중반의 기루 기둥서방이 그 곳에 서 있었다.
극호로 보이는 한량이 실실 웃었다.
"아이구 기둥서방 놈한테 무슨 일이십니까, 관주님."
"위장은 이제 됐다. 큰 일이 생겼으니 이제 뇌신류(雷神流)의 본령을 수행하라."
그 순간이었다.
스으
기생오라비 극호의 눈빛이 섬뜩하게 변했다. 그리고 헐렁거리던 기도가 말 그대로 절정고수의 그것으로 뒤바뀌었다. 그 모습은 영락없이 잘 단련된 뇌신류의 무인 그 자체였다. 극호의 입에서 음산한 말이 흘러나왔다.
"적입니까?"
"그렇다. 오늘부터 우리는 낙양으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짐 챙길 시간을 한 식경 주겠다."
"곧 따라나가겠습니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우리는 극호를 기다리며 춘경관의 1층에 앉아있게 되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물었다.
"사부님. 저 극호라는 자는 대체...?"
이광은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말했다.
"극호는 너와 마찬가지로 타(他) 뇌신류의 1번 제자였다. 풍신류에게 스승이 살해당하고 나를 찾아왔지."
"......!!"
"그러나 극호는 경계병을 자처했다. 가끔씩 내가 무공을 지도해주는 대신, 뇌신류에 위협이 되는 자가 관중에 돌아다니는지 알아보고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그건 저 녀석 나름대로 살아가는 법이겠지."
나는 놀랐다.
' 이광이 어째서 타 뇌신류라는 말에 크게 거부감이 없었는지 알 것 같구나.'
나처럼 이광을 찾아온 뇌신류 제자가 이미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했다.
"청룡무관의 제자가 되는 편이 훨씬 무공을 쌓기 좋을텐데 왜 그러는 겁니까?"
내가 볼 때 극호의 실력은 굉장했다. 지금 당장 강호에 뛰쳐나가도 구파일방의 장로급과 비견할 수 있거나 그 이상이었다. 극호의 나이를 고려하면 그 또한 최상승의 후기지수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캐어묻지 마라. 정 그걸 묻고 싶다면 본인에게 물어보아라."
쉬익
"맞아, 꼬맹아. 함부로 캐묻지 마."
어느 새 극호가 정리를 끝냈는지 3층에서 뛰어내려서 홀연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경공은 대단히 빠르고 쾌활했으며, 심지어 나는 그가 마지막에 삼 보(三步)의 변화를 행한 게 뇌영보 천주살의 비기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명백히 뇌신류의 면허를 얻을 만한 고수였다.
극호가 킬킬거리며 내 이마를 튕겼다.
"뭐 걱정 마라. 나 이래봬도 친해지기 쉬운 남자라구."
"그다지 친해지고싶지는 않소만."
"누가 뭐래냐~"
그렇게 일행이 7명으로 늘어난 후, 우리는 말을 타고 낙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이광이 말하길 현재 사신위 백호인 금의위 총령이 큰 부상을 입은데다 금의위 전력도 반 이상 털린 상태이기에, 그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할 정도의 정보망을 가용하기 힘들 게 뻔했다. 그나마도 감시하는 자들은 전문적인 추종술 담당이 아니었기에 이광이나 진소청이 발견하자마자 바로 죽여버렸다.
퍼벅
이광이 감시자의 머리통을 부숴버리고는 중얼거렸다.
"조금 부족하겠군."
"뭐가 말씀이십니까?"
나는 피묻은 칼을 닦으며 물었다. 이 매복지에도 금의위 대원이 두 명 있길래 내가 죽인 것이다. 이광이 나직이 말했다.
"낙양에 입성해서 우리의 눈과 귀가 되어줄 조직, 그리고 최소한 십여명 이상의 고수가 필요하다. 그래야 대뢰옥을 뚫어볼 만 하다."
"대뢰옥이 그렇게 위험한 곳입니까?"
"대명(大明)이 성립하고 나서 태조께서 대뢰옥을 만드셨는데, 역사상 대뢰옥에서 탈출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또한 대뢰옥은 온갖 기문둔갑과 술법, 황실에서 엄선된 고수들로 지켜지는 곳이므로 허투루 볼 수 없다."
나는 이광이 이렇게 신중한 걸 처음 보았기에 침음성을 흘렸다. 내가 본 이광의 무공신위는 가히 천지가 개벽할 수준, 혹은 호법사자 급으로 보였기에 대뢰옥이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까지 했다.
그 때였다. 나는 좋은 생각이 나서 이광에게 말했다.
"제 친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친구 말이냐?"
이광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저만치에서 다가오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저런 아이냐?"
"......"
나는 미호를 논하자 할 말이 없었다. 미호는 삼선수련생의 해산명령이 떨어진 후에도 생떼를 써서 일행에 달라붙은 것이다. 부모없이 갈곳잃은 불쌍한 여자아이의 연기를 하면서 훌쩍훌쩍 울어대자 결국 이광은 미호를 받아들여 줬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그는 틀림없이 도움이 될 겁니다."
"어떤 자냐?"
"늘 뛰어난 지혜와 지략을 지니고 있는 의협입니다."
"흐음..."
나는 망량을 떠올렸다.
' 망량은 이맘때쯤부터 이미 낙양에서 활동했다고 말했어.'
10번째 전생에서 고려에 찾아왔던 망량은 그 동안의 경과를 모두 말해줬다. 망량은 단체를 하루라도 빨리 만들면 좋다고 생각했기에, 내게서 영약과 자금을 받은 후 곧장 하산해서 낙양으로 왔다고 한다. 지금은 내가 전생한 지 꽤 지난 시점이었으므로 망량이 반천맹의 기초를 만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나는 반천맹과의 접선 방법도 이미 알고 있었다.
며칠 후 일행이 낙양에 도착하자, 나는 이광, 진소청, 극호와 함께 풍우 객잔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풍우 객잔은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하고 작은 객잔이었지만 나는 객잔 주인에게 가서 소곤거렸다.
[ 하늘에 반(反)하여 정의를 실천하리니.]
꾸벅꾸벅 졸고 있던 객잔 주인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는 일행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따라오시오."
역시 반천맹은 이미 결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객잔 주인은 객잔 뒤편에 있던 조그마한 문을 열었는데, 그 문은 뒷산의 동굴과 연결되어 있었다. 동굴은 미로처럼 꼬불꼬불하게 되어 있었는데 한참을 따라가다보니 또 다른 문이 나왔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간 주인은 이번에는 알 수 없는 장소로 나와서 나무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이런 식으로 두세 번을 반복하고 나자, 거기에는 무기점(武器店)이 있었다. 이렇다할 것도 없이 평범한 무기점이었으나 객잔 주인이 한적한 공터의 무기점으로 따라 들어가자, 뜬금없이 무기점 뒤편에 넓은 공간이 출현했다.
화아악
"......!!"
과거 십이율주의 대면에서도 보았던 [밖보다 안이 넓은 공간]이었다. 이런 건 고급술법으로밖에 창조할 수 없었다. 커다란 평야같은 풀밭이 펼쳐지자 나를 따라온 뇌신류 일행은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백웅 당신이었소?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고수들을 떼거지로 데려온 건지~"
유쾌하고 익살맞은 목소리와 함께 먹빛 학창의를 입은 문사(文士)가 풀밭 저편에서 걸어 왔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기에 반갑게 외쳤다.
"망량!!"
"어험, 반천맹주(反天盟主)라고 불러 주시오."
"아, 그래."
망량이 헛기침을 하자 나는 뻘쭘해졌다.
나는 용건을 말했다.
"우리를 좀 도와줬으면 하오."
"흐음, 도와준다라..."
그리고 망량은 내 주변을 둘러보더니 한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듣던대로 대단한 기도(氣道)시군요, 사신위 청룡 이광 어르신."
"나를 아는가?"
"반천맹은 이런저런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니까요. 얼마 전 수병곡에서 큰 사건이 벌어진 것도, 금의위 총령이 청룡무관을 방문했던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재밌는 친구군."
망량이 싱긋 웃었다.
"여러분의 친구 반천맹주입니다."
"좋네 반천맹주. 자네가 이끄는 반천맹의 정보력은 잘 알겠어. 허나 자네들을 신뢰할 수 있을지 알 수가 없군."
"공통의 적(敵) 금의위가 있다는 걸로는 안되겠습니까?"
"나는 기본적으로 정보단체를 믿지 않아. 필요에 따라 서로 이용할 뿐이지."
그러자 망량이 한층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러면 서로 이용하면 될 일이지 뭐가 걱정이십니까? 저희는 필요하고도 남은 정보를 최대한 신속하게, 그리고 개방이나 하오문에 걸리지 않게 전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래할 만 하시겠죠."
망량이 약간 말을 덧붙였다.
"덤으로, 아마 그 쪽이 더 절박할 테지만."
"......"
이광은 침묵한 채 망량을 응시했다. 하지만 망량은 이광이 기도를 쏘아내자 잠시 움찔했을 뿐 태연히 버티는 기색이었다.
한참 후 이광이 입을 열었다.
"반천맹주... 대단한 기량이군. 마음에 들었네."
망량이 이마에서 땀을 닦았다.
"하하, 그러면 이야기가 성립된 걸로 알겠습니다."
"그렇게 봐도 좋네."
즉석에서 반천맹과 뇌신류의 동맹이 이뤄진 것이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 새삼 망량이 대단한 인물이라는 걸 느꼈다. 세상에 저 무신(武神) 이광을 상대로 정면에서 교섭을 하다니. 물론 망량이 이광의 눈빛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줬던 흑백련 뿌리로 인해 높아진 내공이 한몫 하겠지만, 이광이 말한 [기량]이라는 것은 심기체와 지력을 모두 합한 개념 같았다.
망량은 전 중원을 통틀어도 손꼽히는 천재(天才)인 것이다.
망량이 곧이어 어딘가 응접실로 향했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망량이 말했다.
"그럼 시간이 없으니 요점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먼저 제 생각으로 청룡 이광님과 뇌신류 문하제자들께서는 대뢰옥에 갇힌 황연 대장군을 구출하실 듯 한데, 맞는지요?"
"그렇네. 이미 다 짐작하고 있었군."
"그저 정보를 모아서 계산해 본 결과입니다."
촤르륵
망량이 왠 지도를 펼쳤다. 망량은 지휘봉으로 지도의 한 부분을 짚더니 말했다.
"이것은 제가 사전에 입수한 대뢰옥의 심층지도입니다. 그리고 제 생각대로라면 아마 황연 대장군은 아마 여기쯤에 있을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이게 대뢰옥의 진짜 지도라는 증거는?"
"황실에 저를 도와주는 조력자가 있습니다. 이 지도가 잘못되었다는 건 그 즉시 반천맹의 모든 연맹원들의 목이 날라가는 사태이므로, 아무쪼록 신뢰해 주셨으면 합니다."
"흐음..."
"저는 여기서 제안합니다."
망량의 눈이 반짝였다.
"청류계(淸流係)의 인사들을 먼저 움직여 주십시오. 그들로 인해 정국이 뒤흔들리면 분명히 대뢰옥의 방어가 약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량의 제안을 들은 이광이 잠시 멍청한 표정을 짓더니 한숨을 쉬었다.
"정말 귀신같은 친구군. 내 속을 다 읽고 있는 것 같아."
"청룡 어르신께서 청류계의 수장인 등곽(鄧郭) 어르신과 의형제라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어르신이라면 분명 그 분을 움직일 수 있겠지요."
"좋네."
"그리고 당분간은 저희가 제공하는 은신처에서 지내시길 바랍니다. 꼬리를 떼드리는 것까지는 할 수 없으니 그 쪽은 양해 바랍니다."
"걱정 말게. 그 정도 졸자들은 우리가 해결할 수 있어."
곧이어 은신처를 소개할 부하들을 불러모은 망량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저희 나름 준비할 게 필요하므로, 사흘 후에 뵙겠습니다."
"알겠네."
번개처럼 이야기가 성립되고 헤어진 듯 했다.
나는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어서 남아 있었다. 나는 망량에게 말했다.
"어떻게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이오?"
"그냥 이것저것 하다보니 그렇게 됐소."
"......"
망량이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거사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것 같군. 잘 부탁하오, 백웅."
나는 그의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잘 부탁하오."
반천맹과 뇌신류의 동맹이 성립함과 동시에, 내가 쌓아왔던 인연이 마주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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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에 예비군 훈련 가기 전에 급하게 한편 써서 올려봅니다. 이히히 즐거운 예비군이다~ 6년차인데 교육받는다~ 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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